방송자료

 

1. 개요
2. 역사
3. 사례
3.1. 한국 지상파
3.2. 영화
4. 매체별 목록
4.1. 한국
4.2. 해외
5. 관련 문서


1. 개요


텔레비전에 방송된 내용을 방송국의 취재진들이 촬영하거나 녹화해 자료로 만들어 방송사 내에 보관하는 것. 과거엔 비디오테이프필름이 방송자료의 주를 차지했으며 1990년대 중후반부터 VOD 서비스가 시작 된 이래로 2000년대 들어선 VOD의 비중도 늘어났다.

2. 역사


과거 대한민국의 방송자료 보관은 매우 부실하였다. 이는 당시 방송된 자료를 녹화해 둘 2인치 비디오 테이프 가격이 높았고 둘째로는 필름의 가격도 만만한 것이 아니였기 때문이었다.[1][2] 극 초기 1950~60년대 생방송으로 내보내야만 했던 시절보다는 자료를 손쉽게 녹화해 두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나, 당대엔 홈비디오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가정용 VHS와 베타맥스 같은 것도 없었고, 가격도 비싸서 1970년대 기준으로 2인치 비디오 테이프 1장이 15만원으로 몇 달치 봉급에 해당할 정도로 높았기 때문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미 녹화된 비디오 테이프를 계속해서 돌려쓰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관행은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 이어져왔다. 당시 방송자료실이 음반이나 필름 위주로 보존된 것도 그 이유이다.
그러다보니 이 당시 방송자료의 대다수가 보존되지 못한 채 영영 소실되었다. 텔레비전 방송 자체는 이미 이승만 정권 때인 1956년에 시작되었음에도 전두환 정권 초중기까지 방송자료의 공백이 크다. 그나마 일부 프로그램은 문화영화라는 명목으로[3] 국립영화제작소에 일부 보존되어있기 때문에 1950년대~60년대의 예능 프로그램을 찾으려면 KBS와 MBC가 아니라 국립영화제작소KTV 홈페이지에서 찾아야 되며, 당대의 프로그램이 보존되어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일부 특집프로그램이나 영상 정도가 보존되어있는 실정이고 1970년대 중반까지의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보존되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대 방송에 대해 상세한 것을 알려면 대본과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존해야 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반에는 VHS베타맥스의 보급으로 비디오 테이프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져서 70년대 초반이전 시기보다는 상황이 다소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방송자료의 전량보존은 이뤄지지 않아서 대다수 예능프로그램들과 드라마들은 몇십회에서 몇백회 가량을 찍으면 그 중에서 몇회 내지 수십회 가량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우거나 1회, 마지막회, 심지어 대본만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라디오 방송도 사정이 마찬가지라서 카세트 테이프가 값싸게 공급되기 이전에는 라디오 방송자료 보존도 제대로 안됐고, 설사 된다 해도 중요 프로그램이나 시그널 음악 정도나 보존하던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예외적으로 TV문학관은 필름으로 찍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편이 남아있다.
1977년 국제TV아카이브연맹(FIAT)이 세워진 후 1980년대 초반부터 방송영상 자료의 비디오 복사판매가 시작되면서 방송자료 보존의 필요성이 크게 증가했고,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방송자료 관리규정'을 제정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나서 올림픽 방송을 준비하려는데 방송자료가 미비한 것을 깨달은 방송사에서 전체 방송자료 보관을 시작하게 되었다.[4] 다만 90년대 초반까지도 일부 방송자료들의 자료관리가 부실했는지 없는 방송자료들도 일부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19년에 KBS에서 후술할 일본 NHK의 것을 참고해 아카이브 수집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 중이다.
다만 일부 자료들과 당시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홍보 목적 등등으로 촬영하거나 조공(...)한 자료들은 일부 존재하고 있으며, MBC 아카이브나 KBS 아카이브 'KDAS'[5]로 접속하거나 연락해 자료들을 열람하거나 구매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비디오 테이프나 필름 등 마그네틱 매체들이 앞으로 열화되어 사라질 가능성이 제기되자 방송사들은 디지털 파일 변환으로 전환했다.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도 1970년대 초까지 방송자료를 녹화하는데 쓰인 비디오 테이프를 재활용해 돌려쓰는 경향이 짙어 TBS 테레비후지 TV를 제외한 채널들의 1950~70년대 초의 방송자료는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며, 다른 방송사들도 1970년대 초 이전의 자료들이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NHK도 2014년부터 '프로그램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개발도상국들 중에서 1960~70년대 방송자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대한민국의 개발도상국 시기에도 방송자료 보관이 미비했던 점과 비교해보면 방송자료 보관은 당시 국가의 경제 규모나 현황에 따라서 보유 방송자료 수가 크게 엇갈리는 점(보관 시점이 선진국이었나 개도국이었나의 차이)도 어느 정도 관련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선진국이라고 해도 적지 않은 방송자료들이 테이프 덮어쓰기로 사라진 경우가 많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서구권 국가들이나 소련에서는 비교적 일찍 방송자료 보관을 시작해 1930~40년대 자료는 많이 남아있진 않아도, 1950년대 자료부턴 어느 정도 남아있는 등 수많은 방송자료들이 현존하고 있다. 허나 BBC는 Equity(영국예술인노동조합)과의 재방송 금지 협약과 방송국 공간 협소, 테이프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방송자료 폐기를 1977년까지 여러 차례나 진행했다. 이 때문에 닥터 후의 극초기 에피소드 중 일부는 찾아내지 못해 전세계적으로 카피를 찾아내려 애쓰는 상황이다. 이른바 '미싱 에피소드' (Missing Episodes)라 불리는 것들. 그리고 서구권이라고 해도 일찍 보존을 시작했음에도 한국처럼 비싼 2인치 비디오테이프를 썼던 적 있어서 자료 소실과 관리 소홀로 상당수의 1970년대 이전 방송자료가 사라졌다고 하며, 다른 국가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참조
유실된 자료들은 개인이 비디오로 녹화한 것이 아니면 영영 볼 수 없는 현실이며, 책과 마찬가지로 설사 소장한다 해도 소장자가 여러 핑계를 대며 기증 안한 채 사망하거나 집 정리 등 개인 사정으로 쓰레기장으로 내다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 유튜브에도 일부 영상에 녹화된 방송자료들이 업로드되어 있으므로 참고할 것. 물론 저작권 문제로 삭제와 복구가 일어나기도 한다.
가슴 아픈 사정이 담겨있지만, 현존해 있는 방송자료들과 2010년대까지의 방송자료들을 감상해보면 시대상이 변화하면서 방송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당시 사람들의 자세한 생활상을 알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면 방송사 ID에 1980년대 초까지 배경을 채색한 타이틀 카드를 활용했던 점과 1970년대 초기까지 프로그램 타이틀과 출연자 이름, 프로그램 소개 등의 자막에 윤곽선이 없었던 점, 1980년대까진 TV 프로그램의 부가 자막 활용 빈도가 무척 적었던 점, 1970년대까지 채널 CI가 미삽입되었던 거랑[6] 초상권 문제의 해결이 미비했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의 말투가 현재와 다른 것 등을 들 수가 있다.
이러한 사정상 1950~70년대 사회상을 보여줄 때 대부분 방송자료들은 대한뉴스 영상자료 화면이 나오며, 비슷하게 1910~1940년대까지 개봉된 미국 영화 중 일부 작품들도 부실한 필름 보관, 제작사 측의 자체적인 자료 폐기, 화재 발생 등으로 필름이 유실된 작품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는 1947년까지 썼던 필름의 주 재질이 질산염이었던 것과 더불어 재질상 인화성이 무척 높았던 관계로 영화사 필름 창고에서 대형 화재가 여러 번 발생해 영화 필름들이 소실된 경우도 있었다.

3. 사례


  • 1970~80년대 초까지 방영된 한국의 인기 프로그램들도 자료가 소실되는 경우가 허다해서 1970년대 초반의 인기 드라마였던 아씨와 여로도 마지막회 1회분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며, 수사반장전설의 고향도 초기 상당수 에피소드를 영구감상할 수 없게 되었다.
  • 재야 현대사학자들 입장에선 방송자료의 소실로 인해 굴곡진 권위주의 독재정권 때 저질러진 국가폭력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1989년 KBS노동조합(제1노조)이 발간한 자료집 <5공하 KBS 방송기록>과 2003년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낸 <80년 신군부 부역언론인 방송모니터 보고서(3차)>에 따르면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해 제5공화국 초기에 저질러진 왜곡보도에 대해 연구하는 데 난항을 겪었다.(미디어오늘 기사 참고)
  • 같은 시기 방영되었던 해외 애니메이션들도 방송 자료가(들장미 소녀 캔디, 은하철도 999, 톰 소여의 모험 등) 유실된 작품들이 있어서 재더빙해 방영하기도 했다.[7]
  • 1960~70년대 초기 일본에서 방영된 홍백가합전, 인기 드라마, 쇼 프로들을 포함해 빅 X처럼 일부 애니메이션들이 당시 방송자료 보관 체계의 미비함으로 에피소드가 유실당한 프로그램들이 많다.[8]

3.1. 한국 지상파


방송 자료 보관 체계의 미비함으로 인해 가장 많이 피해를 본 한국의 방송사들은 KBS, MBC, 동양방송으로, 2010년대 중반에 남아있는 자료들을 KBS와 MBC는 각각 아카이브로 정리해 열람, 구매, 구독 기능 등을 제공하고 있다.
KBS 자료들의 경우 2017년 2월 말부터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자료들이 이관되어 2018년 3월부터 차례로 업데이트 되고 있으며,[9] MBC는 회원가입 후 사업자등록번호를 입력해야 자료 열람이 가능한데 30일 기준으로 15000원을 신용카드나 계좌이체로 지불해야 한다. 이용료 지불이나 가입 조건에 까다로운 점들이 있지만 온라인 열람이 가능한 점에선 KBS보단 개방적임을 알 수 있다. 허나 아카이브 사이트도 방송자료를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방송국 내의 VOD로 봐야 되는 프로그램들도 있고, 일부 방송자료는 출연금지 연예인이 나오거나 저작권 문제 등으로 비판매, 비공개 목적으로 외부인 열람이 제한된 자료들도 있다. 2018년 들어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유튜브에다 'KBS 옛날티비'나 'MBC 옛능' 등 공식 채널을 개설해 과거 영상 클립이나 풀영상을 올리고 있다.

3.2. 영화


현재 한국영화의 초기작들은 상당수가 유실된 상태이며[10], 1996년 이전까지 영화법상 의무납본제도가 없었던 데다 원본 프린트 보존의 개념도 없어서 해외 영화제 같은 데에 무턱대고 원본 필름째로 내주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며, 한국영상자료원도 의무납본제 이전에 영화인들로부터 위탁이나 기증 형식으로 자료를 받았다. 오발탄의 경우 이렇게 유출된 프린트를 해외에서 발견해 영어자막을 지우고 복원한 케이스이다.
한편으로 한국영화 관계자나 영화 팬들은 한국영화의 마지막 보물창고로 꼽고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평양주석궁(...)이다. 바로 김정일 콜렉션이 그것인데, 김정일 생전에 모아둔 그 시절 한국영화 프린트가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던 초기인 80년대까지 주력하던 것이 문화 선동 선전 분야였고 신상옥 영화감독이나 최은희 배우를 납치할 만큼 남한 쪽 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공동경비구역 JSA 개봉 당시에는 프린트를 하나 떠서 북한에 선물해주기도 했다. 언젠가 남북관계가 더 활성화되면 저 아카이브들이 다시 세상 빛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있지만 국제정세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아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히가시오사카의 원로 영화수집가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도 <아리랑> 같은 일제 시기 한국영화들을 소장한다는 소문이 돌아 1970년대부터 몽양 여운형의 친척 여운각을 비롯해 다큐멘터리 PD 정수웅, 나운규의 차남 나봉한 감독, 호현찬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 김연갑 아리랑보존회 회장 등 남북한을 막론하고 여러 영화인들과 언론인들이 필름 찾기에 나섰으나, 아베는 여러 차례 갖은 핑계를 대며 반환을 하지 않었으며 1934년작 단편영화 <아름다운 이웃 사랑(隣人愛の麗容)> 정도만 공개했고, 2005년에 상속자 없이 사망했다. 이후 그가 지닌 필름 전량이 일본 문화청으로 넘겨졌으나 해당 영화들은 한 개도 찾지 못했다.

4. 매체별 목록



4.1. 한국


  • KBS 아카이브 - http://kbsarchive.com/ https://www.youtube.com/user/KBSArchive/[11]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KBS 채널에 일부 자료가 올라온다.
  • MBC 아카이브 - https://www.mbcarchive.com/
  • JTBC[12]
  • SBS 오아시스 - http://oasys.tv/#index/Index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춘하추동 방송 - 방송자료의 역사에 대한 보조 자료로 활용하면 좋다.
  • TVCF - 광고 전문 사이트로, 방송자료가 간간히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광고자료관 - https://www.kobaco.co.kr/site/admuseum/archive/1/selected?metaCode1=video
  • 광고정보센터 - https://www.adic.or.kr/

4.2. 해외



5. 관련 문서



[1] 그나마 저렴했던 16mm 필름을 이용해서 방송을 녹화하는 키네스코프(키네르코)방식이 있긴 했다. 화질열화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비디오 테이프가 위낙에 비싸다보니 영미권이나 서구권, 동구권 등지에서 널리 쓰였고, 일본에서도 상당수 프로그램의 녹화에 활용되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리 보편적으로 쓰이지 못했으며, 서구권이라해도 모든 방송 프로그램을 보존하는데 쓰던것은 아니었다. [2] 거기에다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필름에서 은을 뺄려고 필름을 재활용(?)하는 일이 성행했었다.[3] 예술영화나 독립영화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개념은 절대 아니고 콘서트와 재담을 찍은 영상이며,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이전인 1970년대 이전에는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직접 찍은 영상을 시골 순회상영을 했었다.[4] KBS 9시 뉴스는 1987년 1월 1일부터 전량보존을 시작했고, 드라마는 1988년부터 전량보존을 시작했다고 한다. MBC도 뉴스데스크 전량보존을 시작한 때가 1988년부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뉴스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있는 편이기는 했다.[5] MBC와 달리 관계자들만 가능한 폐쇄 아카이브 시스템이다.[6] 이 두 가지는 당시는 세미-디지털(아날로그가 혼용된) 작업이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컴퓨터가 매우 고가의 장비였던데다가 손으로 그린 그림이나 활자로 찍은 것을 다시 텔레시네로 전사해서 "수파"라는 자막을 오버레이로 입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7] 다만 미래소년 코난, 개구리 왕눈이, 이상한 나라의 폴, 꼬마자동차 붕붕의 KBS판 방영분을 EBS에서 재방영한 것과, 플랜더스의 개, 소공녀 세라, 요술공주 밍키처럼 방영분이 DVD 발매, 케이블 재방영, 인터넷에 일부 방송자료들이 남아있는 애니메이션들도 존재한다.[8] 간간이 유튜브에 일본인들이 업로드하는 클립 영상을 검색하면 1960년대 중후반에 녹화된 일부 프로그램 자료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9] 비디오 테이프를 30만 장 넘게 소장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볼수 있는 자료는 1만 장도 채 안 되며, 대신에 디지털 파일로 저장된 프로그램 위주로 서비스하고 있다.[10] 특히나 영화 필름들은 농부들이 쓰는 밀짚모자의 테두리 같은 것에 쓰이느라 잘려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외국의 경우도 조르주 멜리에스의 초기작 필름들이 구두공장에 재료로 팔려나가버리기도 했다.[11] 사이트 자체의 검색기능이나 감상기능 자체는 있는 모양이지만 KBS 직원들이나 일부 방송관계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인들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다만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영상자료는 올라와 있으며 2018년 말부터 단계적으로 유튜브에다가 영상을 풀고 있다.[12] 내부 홈페이지인 TBC 추억여행 코너과 다큐멘터리 'TBC 31년만의 귀환'에서 일부 동양방송 자료들을 시청할 수 있다.[13] 일부 방송자료들을 검색해 시청 가능하다.[14] 1940년대 이후의 프랑스 방송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는 사이트로, 일부 자료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열람해야 하는 자료들도 존재하는 점에 유의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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