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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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24, 14/16/17/18층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에 위치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본사 사옥.
스마트미디어 시대에도 사랑받는
'''혁신 공기업으로 거듭나겠습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CEO 인사말 中
'''광고산업을 선도하는 공영미디어렙'''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회사소개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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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방송광고의 판매대행 등 방송광고 관련 사업을 하는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준시장형 공기업.
'한국방송광고공사법'에 근거하여 1981년 '한국방송광고공사'라는 상호로 설립되었고,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설립되었을때 네덜란드 방송광고협회(STER)[2] 의 사례를 크게 참고했다. 1981년부터 1995년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모든 방송광고 거래 대행 업무를 독점했으며, 1990년대 중반에 케이블 방송이 시작되면서 형식상의 독점체제는 깨졌지만 여전히 지상파 방송국들의 광고업무를 독점적으로 대행했고, 2000년대까지도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이 케이블에 비해서 월등히 높았기 때문에 여전히 상당한 권한을 가진 기관이었다. 그러나 2008년, 헌법재판소에서 지상파 광고 독점 업무대행이 위헌결정이 났고 이후로 위 법률에 갈음하여 '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 시행됨에 따라 SBS와 지역민방 광고대행업무를 맡는 미디어크리에이트(현재의 SBS M&C)라는 회사가 설립되어 업무범위가 대폭 축소됨에 따라 2012년 5월 지금의 상호가 되었다.
산하 기구로는 공익광고협의회가 있으며, 노조는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이다.
일화를 들자면 직원들이 야구 보면서 오디오는 끄고 임용수가 한 원음방송 중계를 듣고 있었다고..
2. 역대 사장
- 홍두표 (1981~1986)
- 하순봉 (1986~1988)
- 남웅종 (1988~1993)
- 성낙승 (1993~1996)
- 서병호 (1996~1998)
- 배기선 (1998~2000)
- 강동연 (2000~2003)
- 김근 (2003~2006)
- 정순균 (2006~2008) - 현 서울특별시 강남구청장.
- 양휘부 (2008~2011)
- 이원창 (2011~2014)
- 곽성문 (2014~2017)
- 민원식#s-2 사장대행 (2017~2018)
- 김기만 (2018~ )
3. 사업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다음 각 호의 사업을 한다(방송광고판매대행 등에 관한 법률 제29조).
- 방송광고의 판매대행
- 네트워크 지역지상파방송사업자와 중소지상파방송사업자에 대한 지원 등 방송광고 균형발전을 위한 지원 사업
- 방송광고제작산업 육성, 광고 표준화, 광고효과 측정, 광고 유통기반 구축·운영, 광고 관련 조사·연구·교육, 공익광고 등 방송통신광고산업 진흥 관련 사업
- 시청점유율 조사·검증·산정 관련 방송통신위원회가 위탁하는 업무
- 그 밖에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광고산업 육성을 위하여 위탁하는 업무
- 이상의 사업에 부대되는 사업
4. 사훈
'''개발하는 의지, 창조하는 행동, 화합속의 약진'''
5. 사가
작사는 본사 사가제정위원회, 작곡은 이범희가 맡았다.
6. 로고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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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구 로고 (1981년-2007년)
구 로고는 1981년 오리콤에 의뢰하여 제작되었다. 공영 미디어렙이라는 정체성에 맞게 방송 광고 영업을 상징하는 TV 브라운관 형태에 좌삼곡(左三曲),우삼곡(右三曲)의 공간은 영원을 향한 다이나믹한 전진을 표현한 것이며, 3이 취하는 안정과 조화는 곧 소비자,광고주,매체의 삼위일체로 무궁한 번영의 약속을 상징한다.[8] 또 하나의 삼행삼공(三行三空)은 컬러 TV의 기본이 되는 RGB를 상징하고 있다.로고에 사용 된 글꼴은 불명. 일단 1992년부터 1997년[9] 까지는 HY견명조를 썼다.
하지만 그런 의미는 일반 사람들이 알 턱이 없었고, 당시 로고에서 사람의 두개골이 연상된다는 평이 많았다. 좋게 봐주면 동아오츠카 로고와 비슷해보이기도 한다. 즉, 의도만 좋은 로고인 셈.
또한 2004년부터는 공익광고에서 로고가 나올 때 징글음이나 내레이션으로 대체되었으며, 그 영향은 지금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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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현 로고 (2008년-현재)
씨앗, 별, 콩, 진주 등을 디자인 소재로 삼아 집중과 확산이 동시에 느껴지는 조형으로 디자인하여 즐거움, 다양성, 성장, Blooming, Network, Connection, Care 등의 이미지를 표현함으로써 건강한 미디어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여 밝고 따뜻한 세상의 꽃을 피워가는 사랑 받는 공익기업으로서의 코바코의 비전을 형상화하였다. 시각적 주목력이 높은 ‘코바코 Red’를 Main Color로 사용하여 일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 진취적 기상을 표현하였다.
다만 로고만 바뀌었을 뿐이지 실로폰 징글음은 2020년 현재도 쓰이고 있다.
7. 사건·사고
7.1. 한국언론진흥재단과의 한국언론회관(한국프레스센터) 건물 소유·운영권 갈등
공공기관끼리 소송전을 하고 있다.
1984년 문화공보부 주도로 작성된 ‘한국언론회관 운영계획’에는 수입구조가 취약했던 사단법인 한국언론회관(현 한국언론진흥재단)[11] 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짜냈는데, 1985년 신문회관 건물이 있던 자리에 정부가 주주였던 서울신문과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자금으로 지어졌음을 감안하여 서울신문사와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층별로 나눠 건물 소유권을 갖고, 한국방송광고공사가 소유한 9개층의 관리·운영권은 사단법인 한국언론회관이 맡도록 한 것이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한국방송광고공사이던 당시에는 광고 거래를 독과점으로 해먹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었으나 1995년 즈음 케이블방송이 등장하면서 독점이 깨지고, 2008년 헌법재판소에서 지상파 광고판매 독점마저 위헌으로 결정되면서 수익성 측면에서 비상이 걸리게 된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입장에서는 준시장형 공기업으로 정부 도움은 적고 알아서 수익 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성격이 강해졌는데, 임대료 장사로라도 뽑아먹기 좋은 서울 한복판(중구 태평로)의 건물을 그냥 놔두기엔 너무 아까워졌고, 한국언론진흥재단 입장에서는 재단법인 특성상 영리성이 약한데 임대료를 물거나 쫓겨나야 되는 신세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과거 문화공보부(1968년~1990년) 시절에는 소관부처가 단일화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부처에서 적절한 조정이 가능했었으나 2008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한 후 2012년 한국방송광고공사가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로 이름을 바꾸고 소관 기관마저 바뀌지만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그대로 문화체육관광부 아래 있게 되면서 상위기관 간에도 잡음이 생기게 되었다. 이 때문에 2013년 기획재정부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은 한국언론회관 9개층 가운데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사용하고 있는 3개 층은 공사 소유로 하고, 나머지 6개 층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유로 하되 재단이 관리·운영하는 안을 내놨다.#
2014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운영권 관련 계약을 2013년 12월 말일자로 파기한다고 통보했는데,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정부광고 독점대행으로 2015년 당기순이익 186억 원의 안정적 조직으로 성장했으나 30여 년간의 특혜를 누리고자 비정상적 계약조건을 유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은 “프레스센터 운영에 따른 연간 순이익이 5억 원 정도여서 처음에 이 금액을 주겠다고 했으나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거부했다. 이후 관리비 4억을 포함해 연간 9억 원을 제시했으나 역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법정 다툼에 이르러 2016년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계약 파기를 통보한 2014년부터 발생한 임대료와 지연손해금 등 157억원을 언론재단이 공사에 줘야 한다(서울신문 소유분 제외)며 민사조정을 신청했다. 결국 법정 다툼으로 흘러가 2017년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5부(부장 임태혁)는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을 상대로 2017년 1월 제기한 부당이득금 청구소송에서 “언론재단은 공사에게 220억 7,000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재판부는 “이번 판결의 결과가 확정되는 게 아니다. 당사자들이 합의하면 판결보다 합의가 우선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송비까지 들게 된 입장인 공사 측이 합의를 시도할 지는 미지수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측도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라 합의는 요원해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언론진흥재단에 팔이 굽게 된 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관훈클럽,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신문윤리위원회 등 언론6단체는 정부의 문제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신문 관련 단체들이 재단 편을 들고 있지만, 한국방송협회 등 방송 관련 단체들은 공사 편을 드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는데 이는 방송협회 자체가 각 방송사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고, 방송광고 독점이 깨진 이상 방송사들에게 공사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문사들이 재단편을 드는 기사를 많이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신문사들이 재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때문이다.
특히 중소신문사의 경우 재단의 지원금이 경영과 생존에 큰 역할을 하기때문에 그들에게 재단은 소위 "갑"이된다.
재단사업에 언론인재교육, 복지증진, 해외연수, 언론인대출 등의 사업이 있어 대형이든 소형이든 신문사들도 재단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으므로 재단측의 의견을 옹오하는 기사를 많이 낸다.
8. 기타
방송프로그램 반응을 집계하는 시스템인 RACOI를 방송통신위원회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
한국 아이돌 팬들도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 기업인데, 연예인 팬미팅과 싸인회에 자주 활용되는 목동 방송회관 '''코바코홀'''을 이 회사가 소유하고 있으며, 운영은 리딩컨버젼스에서 맡아서 하고 있다. 공식 인스타그램
[1] 특이하게도 위반시의 과태료 제재 규정이 없다. 이 법률의 전신인 구 한국방공광고공사법도 마찬가지이기는 했다.[2] 네덜란드 공영방송인 NPO의 광고판매를 담당한다.[3] 창설은 1981에 했으므로 1981~1982년 동안에는 "방송광고향상협의회"라는 명으로 사용했다.(밑에 내용을 참고) 로고는 똑같으나 광고의 효과가 달랐다.[4] 항상 저 글씨체는 아니었다. 당시 광고기술의 한계로 글씨체가 들쑥날쑥했다.[5] 대체로 이렇게 썼다는 것이지, 항상 이렇다는 아니다. 몇몇 광고에는 한국방송광고공사 "제공"이라고 덧 붙여졌으며 그 이외에도 글씨체, 문구 등을 꾸준히 바꿔오고 있다.[6] 이후(2014 ~)에는 공익광고에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회사 명칭이 빠지고 그냥 공익광고협의회 명의만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로고도 작게 줄여 사용되고 있다.[7] 이렇게 "ㅇ"을 최대한 둥글게 강조한 글씨체를 공자 글씨체라고 한다. 영문에서는 Futura 폰트가 있다.[8] 출처: <광고로 세상과 소통하는 KOBACO 30년사> p83.[9] 한국방송광고공사 글씨까지 포함하면 1998년.[10] 상계역에서 찍은 사진이다.[11] 1999년 한국언론회관(1962년 사단법인 한국신문회관 설립 후 1984년 한국언론회관이 됨)+한국언론연구원(1964년 사단법인 한국신문연구소 설립 후 1981년 한국언론연구원이 됨)+한국언론인금고(1974년 재단법인으로 설립) 통합으로 한국언론재단이 되고, 2009년 한국언론재단+신문발전위원회(2005년 10월 신설)+신문유통원(2005년 11월 신설) 통합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된다. 사실 한국언론회관은 사단법인으로 민간기관 성격을 띄고 있었고, 이 때문에 5공 정권(전두환)에 회관을 빼앗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