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위

 

[image]
본명
미셸 성 위(Michelle Sung Wie)[1]
미셸 위 웨스트(Michelle Wie West)[2]
한국명
위성미(魏聖美)
국적
[image] 미국[3]
본관
장흥 위씨
출생
1989년 10월 11일(35세), 하와이 주 호놀룰루
학력
스탠퍼드 대학교
종목
골프
데뷔
2005년 LPGA 입회
신체
185cm, 70kg
스폰서
나이키 골프
가족
할아버지 위상규[4], 큰아버지 위봉,
아버지 위병욱, 어머니 서현경[5],
시아버지 제리 웨스트, 남편 조니 웨스트,
딸 마케나 카말레이 유나 웨스트(2020년 6월 21일생)
링크

1. 소개
1.1. 개인사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우승 경력
5. 상금 및 순위
5.1. LPGA
6. 기타


1. 소개


[image]
미국 LPGA에서 활동했던 前 골프 선수이다. 한국계 미국인 2세이며, 첫 등장부터 전 세계적인 선풍을 불러 일으키며 여자 타이거 우즈가 될 것으로 의심치 않았던 선수였다.[6]
하지만 흥행을 위한 각종 단체, 스폰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모의 오판으로 어렸을 때부터 혹사당하였고 이 때문에 선수로서의 기본인 '우승'이라는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먹튀'라는 비난을 받으며 대학 진학 및 졸업을 하였다. 인간적으로 성숙해 진 뒤 2014년에는 메이저 우승 등 프로 입문 후 최고의 시즌을 보내었다.
다만 혹사로 인해 부상을 달고 사는 처지가 되어, 이후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2019년에는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컷오프 탈락했으며, 임신 후 딸 출산과 코로나19 확산이 겹쳐 선수 생활은 중단된 상태다.

1.1. 개인사


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미국 국적의 한국계 미국인이며, 주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7]와 어머니가 모두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도 곧잘 구사하며 의사소통에 크게 지장이 없다. 어렸을 적에는 축구를 했었다고 한다.
무한도전 1회에 출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출연 후 부진에 빠졌고, '무한도전의 저주'는 그렇게 시작되었다.[8] X맨-일요일이 좋다 2006년 5월 21일과 28일 편(133회, 134회)에 출연한 적이 있다. 팀으로는 아니고 그저 X맨 게임중 이슈가 되는 몇 게임에 출연한 것과 당연하지에서 이승기와 로맨스를 꾀한 이후, SBS와 함께 각각 10만 달러씩 난치병 어린이를 돕는 곳에 기부를 한 뒤 돌아갔다.
스탠퍼드 대학교에는 조기 전형으로 합격하여 2007년 가을에 입학하였다. 원래 PGA, LPGA 선수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프로에 뛰어들어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 관례였는데 최근에는 대학을 포기하고 프로 생활에 전념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미셸 위는 학교를 계속 다녀 졸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학교생활과 선수생활을 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2008년 스탠퍼드 대학교의 농구 선수이자 미셸 위의 1년 선배인 로빈 로페즈와 사귄다는 기사가 나왔다. 결별 기사는 아직 나온 것이 없다.
한국 언론과의 각종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며 애국심을 나타내었고, 부모님의 고향인 전라남도 장흥군의 주민들은 후원회를 결성하여 재정지원을 하기도 하였다.
출생 당시에는 한국미국이중국적이었으나, 행정안전부 관보에 따르면 이후 대한민국 국적 포기 신청을 하였고 2013년 2월 21일 대한민국 법무부가 허가하였다. 현재는 단독 미국 국적이다.
2011년 발효된 국적법은 선천적 복수국적자에게 만 22세 전에 "국내에서 외국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쓸 경우 복수국적인정한다. 한국 국적 포기가 미국에서 프로 골퍼로서 활동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은 아니었다는 얘기이다.
"1989년생인 미셸 위는 시기를 놓쳤다"는 의견도 있으나, 법무부 관계자에 따르면 "적용연령이 넘어선 경우에도 본인의 요청이 있으면 심사 가능하다"고 한다. 미셸 위의 선택은 법무부의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이루어진 것으로, 완전한 본인의 선택이다.
"철저하게 상업화된 LPGA에서 살아남아야 할 프로 골퍼로서 스폰서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의 보호 아래 성장하며 정체성이 성립되었으며, 앞으로도 미국에서 생활할 것이므로, 여러모로 미국 국적을 택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유리하다"는 것이 골프계의 시각이다.
애초에 미셸 위의 '고국행'은 스폰서가 주도한 수익성 마케팅의 일환이었으나, 국내 언론은 이것을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고국 방문'으로 포장하여 보도하기에 바빴다.
이러한 한국 국적 포기 때문에 인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난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특히 스티브 유와 비교하면서 비난을 받고 있다. 여자이기에 '군대 문제'와는 결부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비난의 수위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그동안 미셸 위를 응원해주었던 일부 팬들은 배신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훗날 미셸 위가 다시 한국에 온다고 하더라도 국적 논란 때문에 어떻게 받아 들여질 지는 알 수 없다. 2019년 조니 웨스트와 결혼했으며 슬하에는 2020년 생의 딸 카말레이 유나 웨스트가 있다.

2. 선수 경력


LPGA 데뷔 전 미국 아마 골프계를 평정하고 주목을 받았다. 당시 미국 국적의 LPGA 스타 플레이어가 적었고 다들 중견급이었기 때문에 미국 LPGA의 차세대 기대주로 기대가 엄청났다. 13세인 2002년부터 LPGA 투어에 출전을 했으며, 데뷔 첫 해인 2005년 나이키소니 등 세계의 유수 기업들이 앞다투어 스폰서가 되었고 '''1,000만 달러'''에 달하는 계약금을 받는 것으로 유명해졌다. 이는 그 당시 LPGA의 여제였던 아니카 소렌스탐의 계약금보다 약 2배 정도 많은 액수였다. 특히 미셸 위의 경우는 다른 여자 선수들에 비해 월등히 신체조건이 좋았기 때문에 '''성(性) 대결'''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고, 본인 또한 기회가 될 때마다 성대결을 시도할 것이라며 그 기대를 한층 더 증폭시켰다.
그러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장타는 정말 쭉쭉 나갔지만 문제는 샷의 정확도가 엄청나게 떨어진다는 것이었고, 멀리 나간 샷은 페어웨이 또는 그린을 벗어나 벙커에 빠지거나 풀숲으로 들어갔다. 본인 또한 주위의 과도한 기대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면서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다만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말을 '그저 그런 선수였다'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미셸 위는 세계랭킹 최고 2위까지 올랐고, 부진과 부활을 반복하며 세계랭킹 10위 이내를 여러번 노크한 좋은 선수였다. 다만 유소년 때부터 엄청난 유망주로 불렸고 15세~16세에 메이저 대회 순위권을 수 차례 찍으며 역대급 선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던 것에 비하면 그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2.1. 2005년


LPGA투어 프로 자격요건 중 '나이'를 채우지 못한 미셸 위는 초청선수 자격으로 투어에 데뷔했다. 미셸 위가 LPGA 투어 프로가 된 건 2009년부터다.
나비스코 챔피언십 공동 14위, 맥도날드 챔피언십 준우승, 에비앙 마스터스 공동 2위, 브리티시 오픈 공동 3위 등의 성적을 내며 15세 나이의 제한된 기회에서도 상당한 실적을 냈다.

2.2. 2006년


전 해의 선전을 바탕으로 2006년 2월 롤렉스 여자골프 랭킹이 생기자 마자 3위를 마크하고, 이후 2위까지 오른다. 나비스코 챔피언십 공동 3위, 맥도날드 챔피언십 공동 5위, US오픈 공동 3위, 에비앙 마스터스 공동 2위 등을 기록하지만 우승컵을 안지는 못했다.
초청선수 자격으로 참가하던 터라 주로 메이저 대회 위주로 플레이했으며, 중소규모 대회는 거의 참가하지 않고 나머지 시간은 거의 성대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딱 한 번 KPGA투어인 SK텔레콤 오픈에서 컷오프를 통과한 것을 제외하고 나가는 대회마다 컷오프 탈락하면서 "스폰서 때문에 남자 대회 나가는 것 아니냐", "LPGA에서부터 우승이나 해봐라" 등의 비난에 직면하게 되었다. 남자 대회를 많이 출전하면서 여자 골프계에서도 안 좋은 소리가 나왔으며,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도 "여자 대회 우승부터 하고 나가라"는 쓴소리를 했다.[9]
그러나, 정작 소렌스탐 본인부터 2003년 미국 PGA 투어 뱅크 오브 아메리카 콜로니얼 대회에 여자선수로 58년만에 남자 선수들의 PGA 대회에 도전했다가 2라운드 합계 5 오버파 145타로 출전 선수 113명 가운데 공동 96위. 1오버파 142타에 끊긴 결선 진출 기준 타수에 4타나 모자라는 기록으로 마무리했었고 이후로 남자 골퍼들과 여럿 이벤트 대회를 치뤘기에 미셸 위를 욕할 자격이 있느냐는 역비난을 받기도 했다. 다만 소렌스탐은 이미 LPGA를 평정한 선수였기 때문에 이를 내로남불이라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2.3. 2007년, 2008년


부상과 학교생활 적응 등이 거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 대회에 많이 참가하지도 않았고, 참가한 대회들도 컷오프 탈락하거나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신지애는 2008년과 2009년 3승을 연달아 거두는 등 LPGA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된 것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2.4. 2009년


본격적으로 프로 자격으로 LPGA에 뛰어든 첫 해.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래도 괜찮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대회에서 우승하며, '''생애 첫 LPGA 우승'''을 했다.
[image]
''감격의 첫 우승''

2.5. 2010년, 2011년


CN 캐나디언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추가하였고, 이후 자주 10위 안에 자주 들면서 현재 세계랭킹 10위까지 올라간 상태다. 학교생활을 병행하면서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괜찮은 수준이다.

2.6. 2012년


고질적인 문제 퍼팅을 해결하려고 허리를 90도로 굽히는 괴상한 퍼팅 폼을 시도 중이다. 그렇게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2013 크래프트 나비스코에서는 3퍼팅을 3홀에서나 했다!) 본인은 괜찮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모든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추어들에게도 퍼팅 폼의 타산지석 쯤으로 언급된다.

2.7. 2013년


결국 학교 졸업 이후 잠재력이 폭발할 것이라는 기대치에 비해서는 매우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2.8. 2014년


고향인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LPGA 3승째를 달성했다. 여전히 퍼팅을 포함한 숏 게임 자세는 그리 좋은 평을 듣고 있지 못하지만 숏 게임 성적 자체는 의외로 상당히 개선되어 종종 상위권에 입상하고 있다. 참고로 2014시즌 독보적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계 뉴질랜드리디아 고(한국명 고보경)와 미셸 위는 모두 한국인 부모를 두었으나 한국 국적으로 활동하지는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덕분에 경기를 감상하며 "역시 LPGA는 한국 세상이군"이라 여기던 한국 팬들이 스코어보드에서는 성조기와 뉴질랜드 국기를 목격하게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정작 한국 국적의 선수들은 아직 1승을 올리지 못했으며, 박인비를 제외하면 대부분 개인적 부진으로 인해 분위기가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image]
6월 23일(한국시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메이저 대회 '''US 여자오픈에서 2언더파로 우승'''하며, 2005년 프로 전향 이후 9년 만에 드디어 커리어에 '''메이저 대회 우승'''을 추가하였다. 시즌 2승이자 통산 4승을 달성했다.

2.9. 2015년


11위를 한 것 이외에는 10위 이내 근처에도 못가며 부진한 해를 보냈다.

2.10. 2016년


부진이 더욱 심해졌다. 25번 대회 참가해서 12번 컷오프 통과로 컷오프 비율이 절반도 안 된다. 최고 성적이 공동 10위 한번 한 것에 그쳤으며, 결국 랭킹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극도의 슬럼프를 겪고 있다.

2.11. 2017년


전반적으로 고른 기량을 보이며 8회의 TOP 10을 기록했다. 우승은 없었지만 시즌 상금 순위 19위를 기록하며 어느 정도 존재감을 알렸다. 2018년도에 들어서는 첫 두 경기에서 연속 11위를 하며 TOP10급의 기량을 보여 주더니 급기야 3월 4일에 끝난 'HSBC Women's World Championship'에서는 3년 8개월 만의 우승을 거두며 재도약을 알렸다.
[image]
동타를 기록하며 진행한 18번째 홀에서 세컨샷이 그린에 못 미쳤는데, 11m 남겨 놓고 시도한 퍼팅이 성공하면서 감격의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 우승으로 미셸 위는 세계 순위 12위로 겅충 뛰어 오르며 다시금 옛 명성에 걸맞은 활약이 준비 되어 있음을 알려 주었다.

3. 플레이 스타일


매우 남성스러운, 강한 스윙을 보여주는 선수이다.
왠만한 남자보다 뗏장[10]을 넓고 크게 퍼내는 것으로 유명. 그런 강한 스윙으로 어렸을 때는 남자 프로들 못잖은 거리를 날렸으나 성장하기 전의 무리하게 강한 스윙이 몸을 망쳐 지금은 '장타자 계열'에는 속하지만 이를 장점으로 삼기에는 애매한 샷 거리를 보여 준다.
부상이 많아 지자 스윙 자세를 조금씩 변화해 왔는데, 본인에게는 맞을 수 있지만 보는 이들에게는 억지로 쥐어 짜내는 듯한 스윙이라는 평가와 함께 비판 받는 경우가 많다[11]. 아래 영상을 보고 각자 판단토록 하자.

''미셸 위 드라이버''

''미셸 위 아이언''
퍼팅이 매우 약한 편이고 이 때문에 퍼팅 자세와 그립을 여러 번 바꾸었는데 프로 입문 후 최초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14년부터 보인 ㄱ자 퍼팅 자세는 투어에서 가장 유니크하고 유명한 모습이 되었다.
[image]

4. 우승 경력


  • 메이저 우승은 볼드 처리
  • 2018년 현재 LPGA 통산 5승
2009 LPGA 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12]
2010 LPGA 투어 CN Canadian Women's Open
2014 LPGA 투어 Lotte Championship
2014 LPGA 투어 '''U.S. Women's Open'''
2018 LPGA 투어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5. 상금 및 순위



5.1. LPGA


  • 2006년 : $730,921(-)
  • 2007년 : $23,024(-)
  • 2008년 : $62,763(-)
  • 2009년 : $918,659(14위)
  • 2010년 : $888,017(9위)
  • 2011년 : $627,936(18위)
  • 2012년 : $158,546(64위)
  • 2013년 : $355,853(41위)
  • 2014년 : $1,924,796(4위)
  • 2015년 : $348,918(49위)
  • 2016년 : $76,109(105위)
  • 2017년 : $930,575(19위)
  • 2018년 : $277,480(2위, 현재)

6. 기타


  • 2013년 경 "프로 골퍼 미셸 위 누드 촬영에 도전하다"라는 제목으로 미셸 위와 얼굴이 닮은 인물의 누드사진이 각종 커뮤니티에 돈 적이 있었으나 얼굴이 조금 닮은 인물인 것으로 밝혀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 처음 골프선수로 출전했을 때는 '미쉘 위'로 표기되어 논란이 있었다. 미쉘 위로도 이 항목에 들어 올 수 있다.
  • 미셸 위는 2006년 여자 세계랭킹이 처음 도입됐을 때 3위였고, 이후 2위까지 올랐었다. 1위의 넘사벽 아니카 소렌스탐과 격차가 크긴 했다.
  • 2019년 5월 한 라디오에서 타이거 우즈의 스윙코치 출신의 '행크 헤이니'[13]가 LPGA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선수들에 대해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미셸 위는 즉시 트위터를 통해 "이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이라며 항의했고, 결국 해당 발언 당사자로부터 사과를 받았다.
[1] 결혼 전 사용했던 이름이다.[2] 조니 웨스트와의 결혼 후 사용하고 있는 이름이다.[3] 한국은 출생국가와 상관없이 한국 국적을 부여하는 속인주의 국가이다. 출생 당시에는 한국미국이중국적이었으나, 행정안전부 관보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적 포기 신청을 하였고 2013년 2월 21일 대한민국 법무부가 허가하였다. 현재는 단독 미국 국적이다. 기사[4]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기동리 장흥 위씨 집성촌 출신이다.[5] 1985 미스코리아 보령제약[6] 아마도 지금의 리디아 고가 보여 주는 지배력을 미셸 위에게서 기대했을 것이다.[7]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미국의 대학 교수이고 할아버지 역시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를 지낸 학자 집안이다.[8] 웃자고 하는 소리다. 무도 출연 이후 3개월만에 맥도날드 챔피언십 공동 5위, US 오픈 공동 3위, 에비앙 마스터스 공동 2위를 기록했다.[9] 다만 이 시절이 미셸 위가 돈을 가장 많이 벌던 때였다. 2014년 대회 우승 및 여러 수익을 따져도, 이때 남자 대회만 집중적으로 나가던 시절 벌어들인 수익보다 못하다고 한다. 이는 결국 프로모션의 측면에서 여성이 남성 대회에 출전한다는 이슈몰이가 얼마나 돈이 되는지를 보여준 사례.[10] 클럽이 필드를 파고 들면서 자연스레 잔디가 파지는 것을 의미. 국어 사전에는 '흙이 붙어 있는 상태로 뿌리째 떠낸 잔디의 조각'이라고 명명되어 있다.[11] 특히 임경빈 JTBC골프 해설 위원이 매우 낮은 평가를 내린 바 있다.[12] 프로 데뷔 첫 우승[13] 우즈와는 2010년 션 폴리로 스윙코치를 교체하면서 결별 후 헤이니가 우즈의 사생활을 까발리는 책을 출판하면서 웬수지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