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급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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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uirassé de classe Bretagne'''
1. 제원
2. 개요
3. 상세
4. 실전에서의 활약
5. 동형함 목록
6. 미디어에서 등장


1. 제원


이전급
쿠르베급 전함
다음급
노르망디급 전함 (계획)
됭케르크급 전함 (실질)
기준배수량
23,558톤
만재배수량
26,000톤
길이
166.0m

26.9m
흘수
9.8m
속력
20노트
무장
340 mm/45 (13.4") Model 1912 연장포 5기
138.6 mm/55 (5.46") Model 1910 단장포 22기
47mm/50 Model 1902 대공포 4문
450mm 어뢰발사관 4기[1]
장갑
측면:270mm
갑판:40mm
포탑:340mm
사령탑:314mm

2. 개요


'''브르타뉴급 전함(La Cuirassé de classe Bretagne)'''[2]은 1915년에 취역된 프랑스 해군 최초의 슈퍼 드레드노트급으로, 기존 쿠르베급 전함 설계를 바탕으로 무장을 강화한 전함이다. 1912년부터 건조 시작하여 1916년에 취역, 1953년까지 운용되었다.

3. 상세


프랑스는 자국이 청년학파에 따라 삽질을 하는 동안 영국, 독일의 해군이 너무 강해진 현실에 직면했다. 특히 가장 위협적이었던 독일 제국 해군의 부상은 프랑스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만약 이대로 전면전을 했다가는 영국이 중립을 지킬 경우 독일에 제해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 프랑스는, 프리드레드노트급인 당통급을 건조한 직후 곧바로 드레드노트급인 쿠르베급의 건조를 시작하였다.[3] 그리고 쿠르베급을 완성하며 이제 자국도 거함의 건조가 가능하다 자신한 프랑스는 본격적으로 독일의 전함들을 상대할 수 있는 슈퍼드레드노트를 건조하기로 계획한다.
브르타뉴로 명명된 이 새 함급은 쿠르베급을 바탕으로 하되 장갑 배분이 힘든 현측 주포탑을 제거되었으며, 대신 중앙포탑이 장착되어 독일의 쾨니히급 전함과 같이 전면 4문, 후면 4문, 중앙 2문의 구조가 되었다. 다만 장갑 자체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또한 부포의 배치와 개수를 유지했다. 주요 개선점인 주포의 경우 1912년 개발 완료된 340mm 주포 10문을 장착하였다.
이후 브르타뉴급에 만족한 프랑스는 화력 우위에 도달하기 위해[4] 3연장 포탑 개발을 건너뛰고 4연장 포탑의 개발에 들어가 성공하여 노르망디급 전함을 건조했으나, 종전과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약 10년 뒤에 됭케르크급 전함을 건조하면서 실제로 장착된다.

4. 실전에서의 활약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냥 프랑스 최초의 슈퍼드레드노트라는 점이다. 드레드노트급 수준의 장갑에 포만 슈퍼드레드노트인 수준이었다. 동시기 전함과 비교할 경우 영국의 아이언 듀크급은 13.5인치(343mm) 주포 10문에 현측 12인치였으며 미국의 뉴욕급도 장갑은 아이언 듀크급, 주포는 14인치(356mm) 10문이었다. 독일의 쾨니히급은 주포는 비록 30,5cm 10문이었지만, 대신 15인치 주포도 막을 수 있는 현측 350mm의 장갑을 가지고 있었다. 브르타뉴급은 이렇게 체급 자체가 타국의 동급 전함들보다 한 단계 낮은 상황에서, 숫자로도 타 국가들보다 모자른 3척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쨌든 프랑스는 '자국도 슈퍼드레드노트를 보유했다!'를 선전했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1, 2번함 브르타뉴, 로렌은 지중해에 파견되어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과 싸우는 이탈리아 해군을 지원해주러 갔으며 3번함 프로방스는 영국과 독일에 질 수 없다고 함대 기함으로 활동했다.[5]
아드리아해에서 브르타뉴급은... 한게 없었다. 당시 오헝과 이탈리아의 드레드노트 전함 보유수는 거의 비슷했고(테게토프급 전함 4척 vs.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 3척,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 2척, 단테 알리기에리급 전함 1척) 둘다 3연장 12인치 주포를 운용해서 화력도 비슷한 상황이었다.[6] 당연히 양측의 세력이 비슷하다 보니 서로 간만 보고 있었는데, 이와중에 브르타뉴급이 온 것이다. 오헝은 독일처럼 해안포격-도주를 반복할 뿐 전면적인 교전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 소형함간의 교전만 치열했다. 실제로 이탈리아와 오헝은 서로에게 한방을 먹여서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 2번함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테게토프급 전함 4번함 센트 이슈트반이 격침되었다.[7] 이런 상황이니 브르타뉴급도 쫄아서(...) 항구에서 놀다가 전쟁이 끝났다.
전후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때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구제해주는 규칙 덕분에[8] 브르타뉴급은 어쨌든 넘사벽인 넬슨급 전함을 제외하면 주변에 대항할 만한 군함이 별로 없는 상황이 되었다.(영국은 예외로 치더라도) 당장 수가 모자른 판이라 쿠르베급에 당통급 프리드레드노트도 현역으로 굴리는 판이었으니 브르타뉴급는 1선급 전력으로 보존되고 있었다. 이후 됭케르크급 전함의 건조로 프랑스가 고속전함을 보유하자 1선에서 내려오나 싶었지만... 문제는 히틀러가 재무장을 시도하고 있다보니 그런 정세에서 브르타뉴급는 쉴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번에는 파시스트가 집권한 이탈리아 탓에 지중해도 혼자 지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다.[9]
브르타뉴급의 최후는 불우했다. 프랑스가 어쩌지도 못하고 독일의 침공에 당하자 영국이 캐터펄트 작전을 발동하며 프랑스 함대를 무력화 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브르타뉴는 과거 함께 항해했던 HMS 후드, HMS 밸리언트, HMS 레졸루션의 집중포화에 격침되었고 프로방스는 그대로 좌초했다.[10][11] 프로방스는 어찌어찌 비시 프랑스가 건져 올렸지만 툴롱 프랑스 함대 자침때 결국 또다시 차가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한편 로렌은 카사블랑카에 있어서 언니와 동생의 비극은 피했다. 마침 로렌은 금괴를 수송하고 있었고 이후 영국에게 접수되어 알렉산드리아 항에 잡혀있다가 자유 프랑스북아프리카 전역이 종결되고 난 1943년, 자유 프랑스에게 리슐리외를 빌려가는 대신 로렌을 반환했다. 이후 용기병 작전때도 프랑스 대표로 참여했고 1953년까지 훈련함, 해상막사로 쓰이다가 퇴역, 스크랩되었다.

5. 동형함 목록


  • 1번함 브르타뉴(Bretagne)[12]
  • 2번함 로렌(Lorraine)[13]
  • 3번함 프로방스(Provence)[14]
  • 4번함 바실레프 콘스탄티노스: 그리스가 주문하여 건조 중이었으나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중단되었고 전쟁이 끝났지만 재개되지 못하고 주문 취소 및 건조가 완전 중단되어 해체되었다.(그리스가 터키 독립전쟁때 전비로 돈을 다 날려먹은 탓에 주문을 취소시켰다고 한다.)

6. 미디어에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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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체고정형 수면하 발사관[2] 라 '퀴ㄹㅎㅏ쎄 드 클라스 브흐따뉴'정도로 읽을 수 있다.[3] 당시 프랑스는 자국 해군의 수준이 영국보다 4년 정도 늦다고 판단했다. 수적 차이는 무시하더라도 일단 프리드레드노트급도 부족한 상황이었으니 유일한 드레드노트인 쿠르베급은 프랑스 입장에서 굉장히 귀중한 자원이었다.[4] 프랑스는 15인치급 주포 개발이 늦어졌다. 15인치급을 달게 된 것은 거의 20년 뒤인 리슐리외급 전함이다.[5] 나름 자존심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1916년에 브르타뉴급 전함 3척 다 취역했는데, 하필 이때 영국은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 독일은 바이에른급 전함이 등장한 뒤였다.[6] 왠지 모르지만 오헝의 테게토프급 전함(또는 비리부스 우니티스(Viribus Unitis)급)의 3연장은 송탄기가 2개밖에 없어서 반쪽짜리 3연장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참고로 이 3연장 포탑은 당시는 오헝제국령이었던 체코의 슈코다사가 개발한 것이다. 이 슈코다사 포탑을 보고 배워서 3연장 포탑을 탑재한 전함이 러시아 제국강구트급 전함인데 강구트급 전함의 주포탑은 각포의 부앙각 조절을 따로따로 할 수 있었고 당연히 송탄기도 3개였다.[7]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완전히 침몰은 안됐지만 폐함 직전이라 해군군축때 고철로 만들어버린다.[8] 뭐 두 나라 다 4연장포탑(프랑스)니 15인치 주포(이탈리아)니 했지만 완성을 못해서(...) 군축때 남들 배라도 줄이자는 심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스크랩했다.[9] 나중 일이었지만, 무솔리니는 히틀러에 비하면 똘끼가 적어서 프랑스가 무너질 때까지 영국, 프랑스와의 외교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침공으로 외교적 고립을 초래했긴 하지만 영국이 1940년에 무솔리니에게 '대전쟁(The Great war)때 전우였으니 연합군으로 참전해 독일을 막읍시다.'라는 편지를 보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무솔리니는 저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10] 이때 됭케르크는 좌초되었지만 이와중에 스트라스부르는 아군을 방패삼아 튀었다.[11] 한편 브르타뉴는 처참하게 당해서 많은 전사자가 나왔는데, 이때 프랑스 국민들은 영국에 분노해서 '브르타뉴를 잊지말자!'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 횃불 작전때 비시프랑스군이 '나쁜 영국놈들이 오면 저항할거야.'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12] 프랑스어에서 gn는 느-뉴 스러운 발음을 낸다.[13] 여담으로 건조 될 때 로렌은 프랑스땅이 아니였다(...).[14] 철자를 주의하자. Provence다. 영어식으로는 프로빈스(Province). 프로빈스라는 단어가 주(州), 지방이라는 뜻이 있으며 둘다 같은 어원인 라틴어 프로빈키아(Provincia)에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