쾨니히급 전함

 


1. 제원
2. 개발
3. 특징
4. 활동
5. 최후
6. 동형함 목록
7. 미디어 등장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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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König-Klasse Großlinienschiff'''[1]

1. 제원


선행함
카이저급 전함
후계함
바이에른급 전함
배수량
25,796톤(기준)
28,600톤(만재)
전장
175.4m
전폭
29.5m
흘수선
9.19m
터빈
3축 파슨스 터빈 3기
출력
30,576 마력 (22,801Kw)
속도
21.5노트
항속거리
12노트로 8,000해리
승무원
1,136명
주포
30.5 cm SK L/50 2연장 5기 (총 10문)
부포
15cm SK L/45 단장 부포곽 14기 (총 14문)
8cm SK L/45 단장 부포곽 10기 (총 10문)
어뢰
50cm 어뢰관 5기 (총 5문)
장갑
측면장갑 120~350mm
포탑정면 300mm
장갑함교 300mm
갑판장갑 60~100mm(최대)

2. 개발


[image]
쾨니히급 전함은 독일 제국이 구식함을 대체하기 위해 나싸우급, 헬골란트급, 카이저급같은 전함들을 설계 건조했는데 그중 가장 마지막으로 설계하고 건조된 것이 쾨니히급 전함이다. 그탓에 독일드레드노트급중에서는 가장 설계적으로 안정적이고 독일 전함 설계의 기본이 되었다.[2]

3. 특징


쾨니히급 전함은 이전에 건조했던 전함들과 다르게 모든 포탑을 함 중앙에 배치했다. 카이저급이 중앙부 포탑의 대각선 배치로 포각의 제한이 생기고 탄약고 유폭의 위험성이 있었던 반면에 쾨니히급은 전방에 적층식으로 2문, 중앙에 1문, 후방에 2문으로 적절한 화력배치를 했다. 그이외는 거의 카이저급과 동일했고 사실상 카이저급의 개량형에 가깝다.[3] 다만 포탑 배치의 변경으로 좀더 효율적으로 장갑을 달 수 있게 되어서 좀더 효율적인 방어를 할 수 있다는 점의 차이가 존재한다.

4. 활동


독일 전함영국 전함에 비하면 수가 적기 때문에 현존함대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주로 영국 해군을 도발하기 위해 순양전함으로 구성된 히퍼 제독의 제1 정찰함대가 활동하고 있었고 주력함대는 주로 독일 연안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스카보로우 추격(Raid of Scarborough)때 독일의 잉게놀 제독이 신형 쾨니히급 4척이 포함된 17척의 전함을 지휘하고 있었고 제법 영국 연안에 가까운 곳까지 출격했지만 히퍼 제독의 제1 정찰함대가 영국 데이비드 비티 제독의 순양전함 함대의 추격을 받았고 그외 영국의 전함 6척이 오고있다는 정보를 받고 잉게놀 제독은 철수를 명령했다. 충분히 독일 해군이 유리한 상황이었는데 잉게놀 제독은 영국 해군과의 교전을 회피했고 이탓에 잉게놀 제독은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 이후에는 순양전함간의 간간한 교전이 있었지만 전함간의 전투는 없었다. 하지만 영국의 순양전함은 빠른 속도로 독일 해군의 활동을 방해했고 새롭게 대양함대의 사령관이 된 셰어 제독은 영국 순양전함 함대를 괴멸시키기 위해 히퍼 제독의 제1 정찰함대를 미끼로 삼고 유인해서 독일 주력함대가 영국 순양전함들을 공격하겠다는 작전을 세우고 출격했다. 문제는 영국은 독일의 암호를 해독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은 이 독일 대양함대를 괴멸 시키고 싶었기 때문에 낚시에 걸린 척을 하고 존 젤리코 제독의 지휘하에 영국 본함대(Grand Fleet)를 출격하기로 했다. 이로써 유틀란트 해전이 발발했고 생각과는 다르게 순양전함간의 교전은 영국이 큰 피해를 입었다. 비티 제독의 기함 라이온급 순양전함 HMS 라이온이 대파되었고 HMS 인디패티거블과 HMS 퀸 메리가 폭침했다, 당시 전함의 속력은 20노트대였기 때문에 양측다 전장 도달 속도가 늦어졌지만 영국의 신형 고속전함,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이 빠르게 전장에 도달했고 막강한 15인치 포탄을 사격해서 영국 순양전함에 비해 튼튼했던 독일 순양전함을 개발살내버렸다.
그사이에 독일 주력함대가 전장에 도달하는데 성공했고 전위에 있었던 쾨니히급이 주력함대 중에서 제일 먼저 영국 순양전함을 발견했고[4] SMS 쾨니히, SMS 그로서 퓌르스트, SMS 마르크그라프가 영국 순양전함 HMS 타이거, HMS 프린세스 로열, 이미 손상을 입은 HMS 라이온을 발견, 포격을 가했다. 그와중에 영국 구축함 HMS 네스터와 HMS 노마드가 돌격하자 그로서 퓌르스트와 마르크그라프가 일제히 사격했고 부포에 의해 네스터의 기관실이 무력화 됐고 곧 두척이 격침된다. 하지만 쾨니히급들은 전장에서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과 거리가 멀어서 조우하지 못했고 상대적으로 뒤에 있었던 카이저급나싸우급, 헬골란트급이 조우해서 교전하게 된다. 이후 쾨니히급들은 혼전이 된 상황에서 영국 순양함들과 교전했고 그중 쾨니히는 아군 순양함과 교전중이었던 HMS 디펜스를 일제사격으로 탄약고 유폭시켜 굉침시킨다.[5] 쾨니히급들은 유틀란트 해전중에 전부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셰어 제독이 영국의 본함대가 오기 전에 철수를 명령하면서 쾨니히급들이 반신불구가 된 순양전함들을 호위해주며 귀항한다.
1917년, 독일은 에스토니아 일대까지 점령해서 러시아 제국을 꺾기 위해 발트해에서 지상군을 지원하고자 알비온 작전을 실행했다. 독일은 15인치포를 장착한 신형 바이에른급 전함까지 동원했고 러시아 해군의 주력함인 강구트급 전함들은 핀란드만이나 크론슈타트항에 있으면서 교전회피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리가 만에 고립된 러시아 해군에게는 러일전쟁 때의 주력함이었던 전 드레드노트급 2척만이 있었다. 리가 만의 무후(러시아어로는 몬) 섬과 마괴 섬의 요새를 향해서 독일 전함들이 포격을 가하자 방어를 위해 러시아 해군은 보로디노급 전함 슬라바와 전함 체자레비치, 장갑순양함 바얀, 아드미랄 마카로프, 디아나가 출격하면서 문 사운드 해전이 발생했다. 문 사운드 해전에서 SMS 쾨니히 와 SMS 마르크그라프는 빠르게 러시아 해군에게 접근했고 러시아 해군의 12인치보다 더 우월한 사정거리를 이용해서 쾨니히는 슬라바를 관광태운다. 슬라바가 좌초되자 러시아 해군은 항구로 후퇴했고 독일해군은 목표에 달성했다고 보고 귀항한다.

5.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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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퍼플로에서의 SMS 쾨니히
이후 독일 해군은 더이상 활동을 하지 않았고 제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되자 쾨니히급은 카이저급, 바이에른급과 함께 영국 스캐퍼플로로 이동하여 로이터 제독의 명령에 따라 자침한다.

6. 동형함 목록


함명
유래
취역
최후
쾨니히(König)
뷔르템베르크의 왕인 빌헬름 2세
1914년 8월 10일
1919년 6월 21일 자침
그로서 쿠르퓌르스트
(Grosser Kurfürst)
프로이센의 시조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
1914년 7월 30일
마르크그라프(Markgraf)
바덴 변경백
1914년 10월 1일
크론프린츠(Kronprinz)
황태자 빌헬름
1914년 11월 8일

7. 미디어 등장



  • 월드 오브 워쉽 독일 5티어 전함으로 등장한다. 5티어인데도 불구하고 12인치를 달고 사거리도 그리 긴 편은 아니지만 각 잘 주고 10km 초반대에서 교전하면 별 문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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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관련 문서



[1] 독일어에서 마지막에 오는 g는 엄밀하게 보면 h발음이 아니다. 대략 발음하면 쾨니히가 아니라 쾨니khㅣ에 가깝다.[2] 설계의 완성은 바이에른급 전함이다. 참고로 제2차 세계 대전때의 비스마르크급 전함도 기술의 단절로 바이에른급 전함의 설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3] 독일 해군이 상당히 떡장을 좋아하게된 원인은 영국 해군이 빠른 속도로 대구경포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오라이언급 전함을 건조하면서 12인치가 아닌 13.5인치라는 거포를 장착한 슈퍼드레드노트가 등장한 탓에 독일은 무장강화가 어려웠지만 장갑은 대응방어를 할 수 있게 튼튼하게 만든 것이다.[4] 초반에 2척이 순삭당하고 기함이 박살났지만 수가 여전히 많기 때문에 유틀란트 해전 끝까지 교전을 계속했다.[5] 보통 주력함간의 교전을 제1 목표로 해서 그렇지 전함은 문제없이 순양함들을 순삭시키는게 가능하다. 월드 오브 워쉽을 하면 알겠지만 괜히 순양함이 전함간의 교전거리를 잘못 계산해서 전함의 일제사격에 시타델(집중방어구역)털려 훅 가는 것은 이상할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