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소급 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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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扶桑型戦艦'''
1. 제원
2. 개요
3. 개발
4. 문제점
4.1. 주포
4.2. 부무장
4.3. 장갑
4.4. 속도
4.5. 시설
5. 실전
6. 개장 계획
7. 평가
8. 여담
9. 대중매체에서의 후소급
10. 관련 문서


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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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건조 (1915년)
대개장 (1935년)
최종사양 (1944년)
배수량
기준배수량 29,326t
상비배수량 30,600t
기준배수량 34,700t
공시배수량 39,154t
유지
전장
205.13m
212.75m
유지
전폭
28.65m
33.08m
유지
흘수선
8.69m
9.69m
유지
보일러
궁원식 혼소보일러 24기
로호함본식 4기+하호함본식 2기
로호함본식 4기
터빈
브라운 커티스식 증기터빈 2기 4축
함본식 터빈 4기 4축
유지
출력
40,000shp
70,000shp
75,000shp
속도
22.5Knot
24.5Knot
유지
항속거리
8,000해리/14Knot
11,800해리/16Knot
유지
연료
석탄 4,000t
중유 1,000t
중유 5,100t
유지
승무원
1,193명
1,396명
유지
주포
41식 35.6cm 45구경장 2연장 주포탑 6기 (총 12문)
유지
유지
부포
41식 15.2cm 50구경장 단장 부포곽 16기 (총 16문)
유지
41식 15.2cm 50구경장 단장 부포곽 14기 (총 14문)
대공포
없음
12.7cm 2연장 대공포탑 4기 (총 8문)
유지
대공기관총
없음
13mm 4연장 4기 (총 16문)
25mm 2연장 8기 (총 16문)
25mm 3연장 8기 (총 24문)
25mm 2연장 16기 (총 32문)
25mm 단장 39기 (총 39문)
13mm 단장 10기 (총 10문)
어뢰
53cm 수중발사관 6문
제거
없음
레이더
없음
없음
21호 대공레이더 1기
22호 수상레이더 2기
13호 레이더 경보기 2기
장갑
현측 305mm
갑판 64mm
주포탑 정면 279mm
주포탑 천정 152mm
바벳 203mm ~ 305mm
함교 351mm
갑판 100mm
나머지는 유지
대개장시를 유지
함재기
없음
3기, 캐터펄트 1기
유지

2. 개요


일본 제국 해군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후소(扶桑)'''.
동형함으로는 1번함 후소, 2번함 야마시로가 건조되어 총 2척으로 함급 취역이 마무리되었다.

3. 개발


공고급 순양전함을 건조하면서 영국으로부터 얻어낸 기술을 발판으로 국산 전함을 건조하는데, 이것이 바로 후소급이다. 일본 해군 사상 최초의 국산 전함, 그것도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는 기념비적인 존재인 셈이다. 후소(扶桑)는 산해경에 나오는 태양이 떠오르는 땅에 자란 거대한 나무의 이름으로, 그야말로 일본[1] 그 자체를 뜻하는 말이다. 대부분 고대 일본의 쿠니에서 이름을 딴 다른 전함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네임쉽 후소의 명칭만 일본 그 자체였다는 점에서 건조 당시의 일본 해군의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2]

그러나 일본이 처음으로 건조하는 제대로 된 드레드노트급 전함인만큼[3],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기에 공고급의 설계를 답습하는 방향으로 나가기로 한다. 공고급의 주포탑을 그대로 가져와서 달되, 배의 장갑을 두껍게 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짓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더라도 계획 당시 세계 최대의 배수량과 무장을 가지며, 속력도 준수할 것으로 예상했다. 애시당초 후소급은 미 해군의 '''뉴욕급 전함의 대항마'''로서 설계된 물건이기 때문. 그래서 일본은 모자란 화력을 만회하기 위해 2연장 주포탑 '''6개(!)''' 를 만들어서 후소급 전함에 달았다. 이것으로 공고급을 능가하는 화력을 얻어냈고, 당시에는 다른 해군들도 2연장 포탑을 다수 탑재하는 방식으로 전함을 만들었으니[4] 최초의 자국산전함치고는 대만족...'''일리가 없다.'''
문제는 '''영국과 미국같은 다른 열강들이 너무 강하게 치고 나갔던 것'''. 이 시기의 해군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고, 1915년 후소급이 사실상 취역한 시점을 조금 넘어서자(사실상의 정식취역은 1917년) 영국은 크고 아름다운 15인치 주포를 전함 달기 시작했고, 미국은 14인치 주포 3문을 장착한 3연장 포탑을 만들고 있었다. 14인치 주포 2문을 달아놓은 2연장 포탑으로는 조금 부족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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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소급 2번함 야마시로, 뒤로 향한 3번 포탑과 반듯한 마스트로 인해 전방을 향한 포탑과 그로인해 꺾인 마스트를 가진 후소와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4.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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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장 이전의 후소[5]
대개장 이후의 후소

'''보라, 이 크고 높은 함교를!'''[6]
막상 만들어진 후소급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애초에 4척이 건조예정이었으나, 2척만 만들고 나머지는 개량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세급 전함으로 만들어진다.
물론 이런 문제점은 일본군도 인식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여러 차례 개장을 받게 된다. 특히 1935년의 대개장은 함 전체의 모습을 뒤집어 엎을 정도의 개장이었는데, 출력의 증가, 속도의 증가, 함체 연장, 사격통제장치의 개선, 연돌의 단일화, 장갑의 일부 증대, 대공화기의 도입등 굵직한 개선사항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개조해도 원판이 워낙 안 좋았기에, 후소급은 일본 전함 중에서는 공고급 순양전함과 함께 가장 말석의 자리를 차지했다.

4.1. 주포


주포는 공고급 순양전함의 14인치(35.6cm) 45구경장 Vickers Mark "A" 주포를 일본식으로한 41식 35.6cm 45구경장 주포다.
주포탑의 중량은 688t이며 부앙각은 -5°~+25°, 부앙각 조절 속도는 3°/s, 포탑 회전속도는 5°/s이다. 기본적으론 360° 회전포탑이나 전방과 후방포탑은 선체 중심선 기준으로 ±150°의 회전이 가능하며, 중앙부 포탑은 구조물이 사각을 가려 선체 중심선 기준으로 양 측면 120°만 조준할 수 있다. 장전은 +5도에서 포신을 고정하고 장전하며 최대 분당 2발까지 사격이 가능하다. 그리고 개량시마다 주포의 앙각을 높여 최종적으론 -5°~+43° 사이에서 673.5kg의 철갑탄을 최대사거리 35,450m까지 사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당 주포를 장착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주포 12문을 장착하겠다는 목적을 위해 '''2연장 주포탑'''을 사용하는 바람에 '''주포탑을 6기나 장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장착 위치도 함수방향에 적층식으로 주포탑 2기, 함미방향에 적층식으로 주포탑 2기까지는 괜찮았으나, 함체 중앙에 주포탑을 2기 장착한 것이 큰 문제점이었다. 이것은 일본이 특별히 바보짓을 한 것은 아니며, 다른 해군국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에서도 나타난 트렌드로, 단지 일본은 배워오는 입장이라 질이 못한 만큼 양으로 때운 것이 이런 배를 건조하게 되었다. 공고급의 계보인 라이온급 전함들을 보면 주포탑 4개만 단 배도 1,2번 포탑은 함수 함교 앞에 모여 있지만, 3번 포탑은 중앙부 약간 뒤에 있고, 거기서 한참 띄운 자리에 4번 포탑이 있다. 후소급과 이세급은 공고급 설계를 기본으로 새 기관을 달면서 3번 포탑을 2개로 늘리고 4번 포탑을 2개로 늘린 것이나 같다.
어쨌든 중앙부 주포탑은 1기만 있어도 넓은 갑판면적을 잡아먹고, 내부에도 바벳과 탄약고가 쐐기처럼 자리잡아서 함내 시설물 배치를 망치며, 사격각도에 제한을 받기 때문에 사실상 측면으로만 사격가능한 주포탑이 되는 등의 수많은 문제가 있어서 이미 타국에서는 중앙부 주포탑을 제거하기 시작하던 상태였다.[7][8] 여기에 더해서 중앙부 주포탑은 다른 주포탑과는 달리 함체 중앙부에서 서로 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상부구조물 배치시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일제사격을 할 때마다 배 전체를 연기로 자욱하게 덮는 것도 모자라서 함체에 후폭풍이 직격으로 날아왔으며, 함체에 주는 진동이 매우 커서 사격통제가 어려워지는 문제점을 낳았다. 그래서 일본은 교차사격을 애용했다. 교차사격은 함포 사격시 2연장 주포탑의 포신중 하나만을 발사한 뒤, 그 사격의 결과를 반영해서 곧바로 나머지 포신이 발사. 그리고 재장전을 마친 다른 한쪽의 포신이 재발사하는 방식으로 사격간의 간격을 줄이고 명중률을 높히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사격통제 및 관측은 용이하지만 1회 사격시 포탄이 6발 밖에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협차시 상대방 전함에 주포탄이 명중할 확률과 명중수량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게다가 전함의 주포는 빨리 재장전이 가능한 화포가 아니므로 속사포처럼 빠르게 쏴서 1회당 발사하는 포탄의 수량축소를 빠른 발사속도로 만회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후소급 전함은 운이 좋아서 먼저 상대방을 협차해놓고 정작 주포탄을 못 맞추거나 1-2발만 맞추는 바람에 상대방에게 역관광당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12발을 동시에 쏘건 6발을 동시에 쏘건 함체에 미치는 충격은 비슷하므로 조준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된다면 굳이 12문의 주포를 장착할 이유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후소급 전함은 주포탑의 장전방식을 새로 도입했는데, 이것이 말썽을 일으켰다. 원래 과거의 장전방식은 자유장전방식인데, 말이 자유장전이지 실제로는 사격한 후에 포신을 다시 +5도 정도의 각도로 일일히 내린 후에나 재장전이 가능하므로 번거로운 반면에 신규 도입한 고정장전방식은 포신을 +5도로 내려서 재장전하는 것은 동일하나, 사격 후에 포신이 자동으로 +5도까지 앙각을 조절하므로 재장전속도가 빨라지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해당 방식을 도입한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취급 및 정비가 힘들어지는데다가 심심하면 고장이 일어났는데 이렇게 될 경우에는 현지수리가 곤란하므로 해당 주포탑은 사격이 불가능한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그래서 이후의 일본 전함들은 다시 자유장전방식으로 돌아갔으며, 야마토급 전함에서야 다시 고정장전방식을 채용하게 된다.
또한 중앙 포탑의 높이가 일정하게 높은 동일선상도 아니었고, 2기씩이나 있는 점은 후일에 있던 개장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그런데 일단 '''중앙 포탑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 후소급은 엄청난 대개장 비용을 사용해 속력을 최대한 높혀 25노트까지 달성하는데 실패하고, 그보다 더 높은 속도 역시 달성이 불가능한데, 실제로 개장 당시 중앙 포탑으로 인해''' 보일러 높이에 제한이 걸려''' 기관 출력을 크게 높일 수 없었고, 이는 실제로 공고급 순양전함이 후소급 전함보다 선체의 폭과 길이가 짧은데 비해, 속도가 월등히 빠른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일본의 기술력으로는 작은 공간에 큰 출력의 기관을 탑재하기가 어렵다는게 현실이다.
다음 함급인 이세급 전함의 경우 중앙 포탑을 적층식으로 쌓아 올려, 좀 더 많은 기관용적을 확보해 후일의 대개장 이후 속도를 25노트대로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9] 그러나 이세급은 그 대가로 승무원 거주 구역이 모든 일본 전함 중 가장 작은 전함이 된다.
마지막으로 '''영국이 3연장 주포탑 기술을 제공한다는데 거절했다'''는 점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논의가 좀 더 필요하다. 당시에는 아직 영일동맹의 전성기가 끝나지 않았고 초기의 후소급 전함 설계는 공고급 순양전함의 설계와 비슷한 시기에 영국의 빅커스 사에 의뢰한 상태였다. 이 때 영국에서는 후소급 전함에 12인치 3연장 주포탑 탑재를 제안한다. 그러나 일본은 3연장 주포탑을 채택하면 함폭을 더 늘려야 하며, 동시사격이 불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를 대면서 이 제안을 거절한다. 이는 일본 해군이 공고급 순양전함에 채택 예정이었던 빅커스 제 12인치 50구경장 함포에 극히 회의적이었으며,[10] 공고급 순양전함에 채택한 14인치 45구경장 함포의 성능을 마음에 들어했다는 것이 더 큰 이유를 차지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변명거리는 있었다.[11] 그리고 당시 전함 설계의 패러다임은 일단 큰 주포를 올리고 본다는 것이었는데 이미 공고급에서 14인치의 맛을 본 일본에게 12인치가 눈에 들어올 리가. 그 제안을 한 영국부터가 주포의 구경을 올리면 올렸지 3연장 주포탑을 사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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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부무장


부포의 경우에는 6인치(15.2 cm) 50구경장 Vickers Mark M을 일본식으로한 41식 15.2cm 50구경장 부포를 사용한다. 장착 방식은 단장 포곽방식을 써서 선체 양 측면에 장착하며, 한쪽 측면에 8문씩 배치하므로 총 16문을 장착한다.
포곽방식을 사용하므로 -5도에서 +30도의 앙각을 가지며 좌우로는 140도의 포신 선회가 가능하다. 장전은 +7도에서 포신을 고정하고 장전하며 발사속도는 분당 5-6발이다. 그리고 45.36kg의 철갑탄을 19,500m까지 날릴 수 있다. 물론 포곽방식 특유의 문제점은 있지만 그 당시의 사정을 감안하면 평균적인 부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해당 부포의 문제점은 '''포신의 상하좌우조절을 인력으로 하는데다가 무거운 포탄을 수동장전'''한다는 것이다. 일단 무거운 포신을 인력으로 움직인다는 것 자체는 둘째치고라도, 포탄의 중량이 45.36kg이고, 나중에 개발된 ASW탄은 한술 더 떠서 51.3kg이다. 이런 수준의 포탄 무게는 서양인중 건장한 체격을 가진 사람에게도 무리인데, 당시의 일본인들에게는 완전히 무리였다. 따라서 스펙상의 분당 발사속도는 전혀 의미가 없으므로 부포 화력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더해서 주포 사격시마다 포연으로 인해 시야가 가리기 때문에 부포를 조준하기도 힘들었다.
건조 당시에는 함선의 대공능력은 크게 고려되지 않던 시절이었으므로 대공화기는 설치하지 않았다.[12] 그러나 주포탑 6기를 배치하는 구조 탓에 나중에 다른 것을 갑판 위에 놓기 어려웠다. 그리고 억지로 뭔가를 달아놓으면 주포탑 선회가 힘들어지고, 포격에 방해가 된다. 나중의 대개장시부터 대공화기를 더 달기는 했는데, 주포 사격에 방해가 될까봐 많이 달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대공방어를 위해서 대공화기를 증설하긴 했는데, 제대로 된 대구경 대공포보다는 간단하게 설치가능한 대공기관총 위주로 달아서 수량에 비해 대공화력이 약하고 사정거리가 짧았다.[13] 이러니 적의 '''공군'''이 나타나면 속수무책이다. 하지만 정작 대공 화기 수량이 적은 편이라 달던 안달던 결과가 별로 달라질 일이 없었다는게 함정.

4.3. 장갑


방어력에 신경을 썼다는 것은 사실이다. 배수량의 약 26%를 방어력 강화에 사용했고, 그 결과 스펙상으로는 현측장갑에서 가장 두꺼운 부분이 305mm, 주포탑 전면이 279mm, 장갑함교가 351mm이므로 나름대로 준수해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방어력이 낮았다. 현측장갑에서 305mm의 장갑을 유지하는 곳은 수선부 근처에 한하며, 높이도 낮은데다가 길이도 전방부 함교 중앙부에서 후방부 함교 직전인지라 이 장갑으로 보호받는 곳은 동력부와 3, 4번 주포탑의 탄약고 정도다. 나머지는 229mm 수준이라서 1, 2, 5, 6번 주포탑의 탄약고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그렇다고 주포탑 바벳이 강력한 것도 아니라서 일부 돌출되는 부위만 305mm지 다른 곳은 203mm다. 그리고 부포곽이 있는 측면은 152mm 수준으로 적의 주포탄이 명중하면 절대로 방어가 불가능하다. 갑판장갑도 총 합계는 64mm지만 다층식이라 각 장갑의 두께는 사실상 파편방어수준이고, 공고급 순양전함처럼 약간의 경사장갑을 주지 못하고 수평으로 달아놓았기 때문에 방어력이 약간 까진다.
따라서 이런 방어력으로는 미국 표준전함의 초기 주포14인치(35.6 cm) 45구경장 Mark 1은 물론이거니와 알래스카급 대형순양함의 주포인 12인치(30.5 cm) 50구경장 Mark 8도 못 막는다.

설상가상으로 스펙상으로는 VC(Vickers cemented) 장갑판이지만 실제로는 방어력이 더 낮았다. 당시의 일본은 제강기술이 아직 강대국보다 떨어지므로 305mm 이상의 두께를 가지는 장갑판을 만들어내지도 못할 뿐더러 VC 장갑판을 라이센스해서 만들어도 그 성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펙과는 달리 그 이하의 방어력을 낸다. 그래서 과거의 전(前) 드레드노트급 전함처럼 8,000m 이하의 포격전만 감안한데다가 대응방어의 기준도 철갑탄이 아니라 고폭탄을 기준으로 한다는 자기합리화를 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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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서 주포탑 6개를 달았기에 그만큼 방어해야 할 면적이 늘어났다. 함체의 50% 정도가 바이탈파트였다고.[14] 때문에 장갑을 그만큼 넓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정된 중량에서 장갑이 넓게 퍼지면, '''당연히 장갑판이 얇아진다.''' 한마디로 말해서 집중방어의 개념도 없고, 적용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널리 퍼진 주포탑 덕분에 주포탑 탄약고도 분산되었으므로 피탄시 위험도가 높은 지역이 늘어났다. 그래서 나중의 대개장에서도 장갑의 재질을 교체하고 갑판장갑만 100mm로 강화하는 선에서 마무리한다.

4.4. 속도


속도는 40,000마력으로 22.5노트를 달성했으므로 그 당시의 기준에서는 나름대로 준수해보인다. 그리고 영국제 엔진과 동력기관을 달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문제점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22노트 이상의 속도를 내면 동력기관이 고장날 확률이 매우 높았으며, 시험항해에서 야마시로가 잠시동안 23노트를 달성했더니 증기터빈의 베어링이 몽땅 망가지는 등의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21노트가 한계점이라 다른 일본의 전함들과 공동작전을 하면 함대 속력을 깎아먹게 된다. 그래서 후소급 전함은 따로 전대를 구성하거나 다른 함대에 편성하더라도 함대 최후방에 놓아서 다른 함선의 항진에 지장을 주는 일을 막으려고 했다.
이 문제는 대개장시에 동력부를 모조리 교체해서 75,000마력으로 출력을 높여서 해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24.5노트가 한계라서 일본이 생각하던 개장전함의 속도인 25노트를 맞추지 못했으며, 사실 이 속도도 약간 무리한 것이라서 실제로는 23-24노트가 한계점이었다.
다만 이건 후소급 '자체'의 문제라기는 조금 애매하다. 후소급 이상의 고속전함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던, 일본의 저질 체력(국력) 탓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 후소급이 건조되던 시기에는 아직 고속인 순양전함과 저속인 전함이 나뉘어 있었고, 고속전함의 시대는 아직이었다. 개함으로 따지면 미국의 표준형 전함들과 영국군 슈퍼 드레드노트 다수의 저속도 만만찮거나 더 심각했다. 미국과 영국은 저속전함을 커버할 다른 여유[15]를 마련할 수 있어서, 개함의 문제가 후소급만큼 부각되지 않았을 뿐.

4.5. 시설


후소급이 건조될 때만 하더라도 영국이 사격방위반 같은 장거리 사격용 사격관제 및 관측기술을 전해주지 않았기에 마스트의 구조는 간단했다. 그러나 그 당시 기준으로도 포격관측이 어려웠고, 연통에서 나오는 매연이 관측을 방해하는 등의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사격방위반등의 기술을 확보한 후 장거리 포격전을 대비해서 여러 관측장비를 장착하게 되었는데, 놓을 것은 많은데 주포탑 때문에 놓을 곳은 별로 없다보니 거의 함교에 몰아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 후소급의 함교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아지고 말았으며, 특히 1번함 후소의 함교는 수면 위 40미터까지 솟아올라갈 정도였으며 '''15층'''이란 괴물같은 층수를 기록했다. 경계도중 후소를 마주친 미 해군의 잠수함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같은 전함을 발견했다."'''고 보고를 올린 일화도 있다는 모양이다.
물론 단순한 함교의 높이로만 따지자면 나가토급이 수면으로부터 41미터, 야마토급에 이르러서는 51미터로 후소급의 함교는 일본군 기준에서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다. 문제는 후소가 나가토나 야마토에 비해선 한참 작은데도 40미터라는 것. 게다가 함교에 중요시설이 밀집하다보니 각 시설에 할당된 공간도 좁아서 원할한 업무가 어려우며, 높은 곳에 중량물이 올라가게 되므로 무게중심이 크게 상승하여 복원성이 악화된다. 그리고 함교에 피탄을 당하면 중요한 시설이 파손될 확률이 높아지므로 명중당한 포탄의 위력에 비해 심각한 손상을 입는데다가 재수없으면 주포탄 1발만 맞아도 함교의 모든 기능이 정지함에 따라 전함 한척이 그대로 깡통으로 전락할 수 있었다. 외관상으로도 전체적인 밸런스가 맞지 않고 이상할 정도로 앙상한 함교의 형태가 불안감을 줬다.
그리고 정찰을 위해 관측기를 배에 실어야 하는데, 대공화기도 놓을 데가 없는 후소급에 비행기를 실을 자리가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1번함 후소는 3번 포탑 위에 캐터펄트를 달고, 거기서 비행기를 발진시키는 편법을 쓰게 되었다. 이것 자체는 1차대전 참전 군함 중, 함재기 발달을 고려하지 않고 건조된 전함, 순양함들이 주로 이런 방식으로 운용했으므로 뻘짓은 아니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마천루 수준의 함교가 방해가 되었고, 그래서 '''함교의 뒷부분을 파내고''' 억지로 빈 공간을 만들었다.역시나 일본군 무기답게 함교가 무너질까봐 정말로 걱정되는 결과물이었고, 2번함 야마시로도 그게 걱정되었는지 함미 부분을 늘린 후 거기에 비행기를 탑재할 공간을 만들었다. 추가로 3번 포탑 자체를 전방이 아닌 후방을 향하게 배치해서 함교를 파낼 필요가 없어졌다.[16] 후소 역시 나중에 야마시로와 마찬가지로 개조됨으로서 포탑 위에 비행기를 놓는 엽기적인 짓은 안 하게 되었으나, 괴이한 함교구조물은 그대로 남았다.
마지막으로 거주성도 나빠졌다. 주포탑을 6기나 탑재하는 것 자체가 함체 내부의 공간을 많이 잡아먹는데다가 주포탑이 산지사방에 흩어져 있으므로 중량물이 너무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함교를 제외한 상부구조물의 평균 높이가 낮아졌으며, 부포곽까지 가득 들어찼기 때문이다.

5. 실전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전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후소는 '''훈련함'''으로 뛰어다녔다. 성능도 문제지만 함대결전을 준비하는 일본군 해군의 방침 때문에 함부로 전장에 나서지 않은 탓도 있다. 그래서 일본 전함 중 전장에 나선 것은 '''너무 약해서 함대결전 레이드에서 빠진''' 공고급 뿐이었지만, 그 활약상에 대해서는 항목을 참고.
이후에도 미드웨이 해전으로 인해 항공모함이 부족해지자, 개장해서 항공모함으로 만들 대상에 올랐지만, 이때도 사고로 인해 주포탑 1기가 파괴된 이세급 전함이 철거공사와 비용이 덜들어간다고 선택되었고, 후소급은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야 후소급은 결전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너무 느린 속도나 낡았다는 이유로 인해 야마토급 전함이 소속된 주력 부대인 구리다 함대가 아니라 조공역할을 담당해서 남쪽 방향에서 수리가오 해협으로 진격하는 니시무라 함대에 소속된 후소와 야마시로는 용감하게 레이테 만으로 진격하지만, 그들의 앞에는 미군의 어뢰정, 구축함, 순양함, 전함 등이 잔뜩 모여 매복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뢰정의 공격을 시작으로 해서 구축함, 순양함, 전함들이 차례차례 공격에 들어갔고, 진주만에서 침몰했다가 건져져서 수리된 전함[17]들은 복수를 위해 포문을 열었다.
전투의 양상은 쓰시마 해전의 재림이 되었고, 이번에는 일본 해군이 상대의 아가리로 들어갔다. 결국 후소는 진격 도중에 플레처급 구축함 멜빈(DD-680)의 어뢰공격을 받고 엔진실이 침수당하고 3번 포탑의 주포 탄약고가 인화하는 바람에 거대한 유폭을 일으키며 두동강이 나면서 침몰했고, 야마시로는 미군 전함들의 단종진 앞까지 갔지만 미군 전함과 순양함이 쏜 포탄 '''300발'''과 어뢰 2발을 신나게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되어 침몰해버렸다. 후소가 먼저 침몰했다는 설과 야마시로가 먼저 침몰했다는 설이 있지만, 둘 다 침몰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후소는 함장인 반 마사미 소좌이하 승무원 중 10명만이 생존했고, 야마시로 역시 니시무라 쇼지 소장과 함장인 시노다 가즈키요 소좌이하 승무원 대다수가 전사했으며 생존자는 단 10명에 불과했다.

6. 개장 계획


[image]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이후 후소급 전함의 주포를 교체하는 근대화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키이급 전함, 토사급, 아마기급 등에 탑재하려던 41cm 주포를 후소에 탑재하려 한 것인데, 2연장과 3연장 주포탑 두 기씩과 그 중 한 주포 위엔 캐터펄트를 올려 정찰기를 띄우는 디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연히 군축조약으로 41cm 주포를 막 장착할 수도 없고 경제 상황도 안 좋아서 취소되었다.[18] 히라가 유즈루의 자료에서 언급만 되었고 그 외의 내용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7. 평가


'''「후소는 전함과 포격전을 할만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 후소의 전 함장 즈루오카 노부미치
일본 최초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서, 그 이후에 만들어진 일본 전함의 초석이 되었기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성능과 전과와 인기는 망했어요. 전과도 없고 성능도 뛰어나지 않기에 일본 전함 중에서 가장 인기가 없다. 게다가 특징면에서도 참 위치가 안좋은데, 공고급은 빠른 속도, 이세급은 항공전함, 나가토급은 전쟁 전간기를 주름잡은 경험 , 야마토급 전함은 말 안해도 다 알듯이 가장 거대한 전함으로 나름대로 특징을 가지지만, 후소급의 특징은 그로테스크한 40미터급 파고다형 함교. 덕분에 각종 작품에서 야라레메카가 돼버리기도 한다. 사실 후소급도 격침만 안 됐으면 적어도 항공전함 개수는 받았을 가능성이 있었으나 그 전에 격침된 바람에.
그리고 후소급 전함이 차라리 대개장을 받지 않고 그대로 전장에 투입되었으면 건조 당시에는 준수했으나 시대의 흐름을 못 이긴 구식 취급을 받아서 그럭저럭 평가가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 있었지만, 1935년에 배를 밑바닥부터 뜯어고치는 수준의 대개장을 하면서 돈과 자재를 많이 썼는데도 불구하고 기존의 단점을 별로 개선하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가 돼서 더 까인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도 기술력의 부족보다는 일본군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더 컸다. 한마디로 말해서 잘못된 생각으로 돈과 자재를 낭비했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된 것이다.

8. 여담


의외로 서양에서는 밀덕 사이에서 주류라고 하긴 그렇지만 매니악한 인기를 지녔다. 성능이고 뭐고를 떠나서 생긴게 멋있다는 건데, 특히 크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 매니아들 사이에서 후소급의 높고도 뭔가 메카메카한 함교는 언터쳐블급. 후소급에 가장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인물로도 일본인이 아니라 폴란드 모형전문가인 Janusz Skulski로 평가되고 있다. 월드 오브 워쉽의 제작진은 "'''이거 만들고 싶어서 게임을 개발했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image]
워게이밍 코리아의 인벤축전.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일부 밀리터리 게임에서는 묘하게 성능이 좋게 나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는 일본군 미션중에 전함을 모는 미션중에서 후소를 몰게 되는 미션이 상당히 많은데, 20노트라는 괴멸적인 속도는 어쩔 수 없어도 화력은 상당히 버프를 받아서 무쌍을 찍을 수 있다.[19]
월드 오브 워쉽에서도 비슷한 성능을 가진 함선끼리 매칭이 되고, 현실과 달리 함교에 포탄을 맞아도 큰 피해가 없도록 구현된 게임의 특성 상 실제 역사상의 안습한 성능은 온데간데없고 356mm 12문의 강력한 화력과 뛰어난 집탄률, 동티어에서 독보적으로 긴 사거리를 가져 대다수의 유저들이 입을 모으는 상당한 명품 전함이 되었다.
일본군 해군의 군함 명명법 규칙에서 완전히 벗어난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전함은 일본의 옛 번국 이름, 항공모함은 상서로운 동물의 이름, 순양전함과 중순양함은 산 이름, 경순양함은 강 이름, 구축함은 기상현상[20]에서 함명을 따 왔는데 상술했다시피 1번함 후소의 이름은 번국 이름이 아닌 일본 그 자체를 칭하던 말인 부상국(扶桑国)에서 함명을 따 왔다.
군함을 설계하고 건조할 때 동형함끼리는 같은 설계를 공유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외형이 비슷하게 생겼고 세부적인 부분만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라 함선에 대해서 깊은 식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동형함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데 비해서 후소급의 경우 3번 포탑이 1번함 후소는 앞을 향하고 있고, 2번함 야마시로는 뒤를 향하고 있어서[21] 1번함과 2번함의 구분이 아주 쉽다.

9. 대중매체에서의 후소급


  • 가공전기에서는 첫 번째로 격침된다. 설명한 대로 너무 일본군만 이기는 거 같을때 전개상 격침하라고 던져줘도 아깝지 않은 성능이기 때문이다.

  • 월드 오브 워쉽의 일본 트리에 등장하며 6티어에 위치해있다. 이전 티어인 순양전함인 공고에 비해 속도가 느리지만, 장갑과 체력이 공고에 비해 향상되었다. 현실과는 다르게 근접전 위주로 벌어지는 해당 게임의 특성상 14인치 12문의 위엄이 상당하다. 집탄도 미국에 비해 좋아서 5~6발만 맞추기만 하면 체력 1-2만 빼는건 일도 아닌 수준이다. 후소의 단점 중 상당부분이 구현되지 않았거나[22] 워쉽에서 의미가 없는 단점이라[23] 한때 명품으로 취급되었고, 오죽하면 나가토가 재발견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나가토가 기뢰 취급을 받았을 정도. 자세한 사항은 월드 오브 워쉽/일본 테크 트리/전함을 참조.
  • 월드 오브 워플레인 2.0 이전 버전[24]에서 연합군 / 추축국 공통 중장갑 타겟으로 등장한다. 파괴 시 전술점수 16점을 획득하며, 상대방은 제공권의 최대 16%를 잃는다.
  • 툼 레이더(2013) 에도 난파선 으로 출연한다. 난파선 해변에서 레예스가 고치는 배 옆을 보면 좌초한 전함이 있는데 이게 특유의 마스트와 주포 배열로 후소급으로 추정된다
  • 네이비필드에서는 이세와 함께 일본의 2차 전함으로 나온다. 이세와 가장 큰 차이는 후소의 요구레벨이 1레벨 더 높고 보조수병석이 1석 더 많다. 하지만 이세의 경우 항공모함 개장이 가능하여 이세의 선호도가 더 높다.
  • 네이비필드2에서는 일본의 3차 전함으로 나온다. 3차 전함중에서는 콜로라도와 샤른호르스트가 누가 더 병X같은지 경쟁중이라 쓸만한 전함 취급받는다. 오히려 14인치 12발을 일제사격으로 제대로 처맞으면 5차전함들도 비명을 지른다.
  • 함대 컬렉션에서는 1번함 후소와 2번함 야마시로가 캐릭터로 등장하였으며, 불우한 함생을 반영해 둘 다 불행이 따라다니는 캐릭터가 되었다. 전함 중 가장 레어도가 낮고 개장 전에는 성능도 낮지만 1차 개장을 할 경우 실제로 계획만 있었던 항공전함으로 개장되며 실제 역사상의 참담한 성능을 나타내듯 미개장 시에도 낮았던 성능이 크게 개선되지 않아 여전히 저열한 성능을 가진다. 하지만 2차 개장을 마치면 41cm 연장포와 41cm 삼연장포를 혼합 탑재하는 가상의 개장사양이 적용되며 매우 강력한 항공전함으로 탈바꿈한다. 자세한 사항은 후소(함대 컬렉션), 야마시로(함대 컬렉션) 문서 참고.
  • 전함소녀에서 후소야마시로가 등장한다. 과거에는 저속전함에 성능도 영 좋지 못하고 개조도 없어 초반에만 쓰이는 강화재료에 지나지 않았지만 개조가 업데이트되어 최강급 저속전함으로 탈바꿈하였다. 언니인 후소는 시제 35.6cm 3연장포를 탑재한 항공전함 사양이 되었으며, 동생인 야마시로는 히라가 유즈루가 제안했던 설계안인 41cm 3연장포를 탑재한 전함 사양이 되었다. 두 자매 모두 자신의 화력을 증가시키는 스킬인 하시라지마 함대를 받았는데 이는 지옥같았던 후소급의 훈련에서 비롯된것으로 보인다.
  • 벽람항로에서도 등장한다. 후소(벽람항로)야마시로(벽람항로)를 참조. 특히 야마시로는 실제 역사에선 받은 적도 없는 항공전함 개조를 달고 나왔는데, 실물 후소급 전함의 미묘한 성능을 개장 완료시의 성능으로 표현했다는 평. 이후로 후소도 항공전함 개조가 추가되었다.

10. 관련 문서


'''머리가 너무 커서 배의 안정성에 문제가 생긴 군함들만 기술했다.'''
  • 류조[25]
  • 일본군/무기
  • 일본군의 무기체계

[1] 日本도 이 구절에서 나온 이름이다. 태양(日)이 본래(本) 있는 곳.[2] 한국으로 치환하면 다른 전함들은 '목지국', '사로국' 등이라면 후소만 '청구' 정도 되는 셈. 청구도 산해경에 나오는 이름이다.[3] 드레드노트급을 건조하려는 시도 자체는 했었다. 사쓰마급 전함카와치급 전함 문서 참조.[4] 대표적으로 미국의 와이오밍급 전함, 후소급과 마찬가지로 2연장 포탑 6개를 달고 있다.[5] 이 때까지만 해도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설계가 눈에 띈다. 전방 삼각마스트와 연돌의 형태가 영국의 전함들을 연상시킨다.[6] 다만 함교의 높이 자체는 40미터로 이후의 나가토(41미터)나 야마토(51미터)보다 낮은데 선체 크기에 비해 함교의 높이 비율이 커서 유난히 높아보이는 것. 거기다 야마시로에는 해당하지 않는 후소만의 특징으로 함교 하층부 후방이 3번 주포탑 위에 올린 정찰기 사출기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앞쪽으로 음푹 파인 듯한 구조로 만들어져 어딘가 불안정하고 부실해보이는 탓도 있을 것이다.[7] 굳이 변명하자면, 후소급이 설계되던 시기엔 아직 중앙부 주포탑을 제거하는 방식이 자리잡기 이전이었다. 당장 영국 해군만 하더라도 앙 애슐론 방식 포탑을 달은 드레드노트들이 드글드글했고...오히려 일본 해군은 함체 중심선에 포탑을 몰아넣는 설계를 빠르게 도입한 편이다.[8] 다만, 일본 해군이 어떻게 여겼는 지는 모를 일이다. 나가토급에는 중앙부 포탑이 없지만, 이후 야마토급 이전에 건조를 시작했거나 계획한 카가급, 키이급, 아마기급 전함과 순양전함의 포탑 배치는 모두 공고급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중앙부 포탑이 있거나 그에 준하는 함 중앙에 가까운 위치에 3번 포탑을 배치해 놨다. 이렇게 하면 건현 위 공간낭비가 있고 주장갑대가 길어져 같은 배수량으로 쓸 수 있는 장갑이 얇아진다.[9] 이탈리아에 이보다 더 성공적인 예시가 있는데 바로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 이 경우는 아예 중앙 주포탑을 뽑았고 결과적으로 속도를 21.7노트에서 26노트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10] 일본 해군은 이미 카와치급 전함에서 빅커스 12인치 포의 엉망진창인 산포계에 데일 데로 데여본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문제의 포를 개량했답시고 들고 오니 당연히 의심할 수 밖에...[11] 참고로 동시대에 최소한의 공간으로 주포 12문을 탑재'할' 전함이 있었는데 바로 '''프랑스'''의 노르망디급 전함. 프랑스는 예상을 뛰어넘는 '''4연장''' 포탑 3개를 달았다.(완공되진 못함)[12] 아직 비행기가 군함을 공격할 수단이 없었던 시기었기에 이때의 전함은 대공무장을 많이 갖추지는 않았다. 잘해봐야 기구나 비행선 격추용으로 몇 문의 대공포를 갖추는 정도가 전부였다.[13] 다만 이것은 일본 전함들의 공통된 문제점이기도 하다. 후속함인 이세급과 나가토급도 대구경 대공포는 후소급과 마찬가지로 89식 대공포 8문이 전부이고 오직 야마토급 전함만이 건조 당시 89식 대공포 12문, 증설을 통해 24문을 보유하여 비교적 넉넉한 수량을 갖추었다.[14] 쉽게 말해서 적 전함의 주포탄에 피격당하면 '''1/2확률로 치명상을 입는다는 거다. 전함이!''' 특히 함체 중앙은 P, Q 포탑과 탄약고 + 보일러와 터빈(기관부) + 함교가 나란히 배치되어있어서 피격시 타격이 더욱 크다.[15] 미국은 노스캐롤라이나급, 사우스다코타급, 아이오와급. 영국은 킹 조지 5세급,뱅가드급[16] 그래서인지 후소의 함교보다 야마시로의 함교가 좀더 안정적이고 정돈된 형태를 띈다.[17] 콜로라도급 메릴랜드(BB-46, 16"×8), 웨스트버지니아(BB-48, 16"×8), 테네시급 테네시(BB-43, 14×12), 캘리포니아(BB-44, 14"×12)의 4척이 후소급 격침에 크게 활약했다. 물론 메릴랜드 등 일부 전함들은 격침까지는 이르지 않았었다.[18] 만약 이 개장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방어력만 빼고 그럭저럭 괜찮은 물건이 나왔겠지만 이 정도 개장이면 개장을 넘어서 아예 배를 새로 만드는 수준인데,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의 예를 보면 짐작할 수 있듯 이 정도 규모의 개장을 하려면 새로운 전함을 건조하는 비용과 맞먹는 거금이 들 것이다.[19] 물론 후소를 편애해서 그런거라기보단 후소의 원래 스펙대로 미션을 진행하면 도저히 견적이 안나와서다.[20] 단, 대전 말기에 마츠급 구축함이 취역할 때부터 식물 이름을 붙이는 것으로 규칙이 변경되었다. 항공모함의 경우도 운류급 2번함 아마기부터는 중순양함처럼 산 이름을 쓰게 되었다.[21] 건조 당시에는 후소와 야마시로 모두 3번 포탑이 뒤를 향하게 되어있었지만 대개장을 받으며 후소는 3번 포탑이 앞을 보도록 방향을 바꾼 반면에 야마시로는 3번 포탑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긴 것이다.[22] 단적인 예로 비대한 함교는 맞으면 끝장나는 바이탈 파트가 아니라 그냥 스치면 별 거 아닌 대미지가 들어오는 부분일 뿐이다. 물론 구축함이나 순양함은 때릴 곳의 면적이 픽셀 단위로 넓어지는 셈이지만, 실상 전함에게 위협이 되는 건 전함이라 보통 의미가 없다.[23] 14인치가 약하다는 문제는 상대의 뉴멕시코바이에른과 동급 화력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으며, 포탑이 많다는 것은 오히려 포탑 하나가 나가면 화력이 25% 감소하는 뉴멕시코에 비해 고작 화력이 1/6 감소한다는 장점이 된다. 부포는 우수하다는 게 의미가 있으려면 비스마르크 정도는 돼야 하고, 대공무장은 어차피 평등하게 빈약하다.[24] 사실상 중국서버 한정[25] 문제는 류조의 경우는 후소나 다른 배들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는 것. 항공모함이면서도 아일랜드가 없이 비행갑판 바로 아래 나 있는 창문들이 함교다. 류조 문서로 가서 보면 딱 일본 옛 시대의 아타케부네세키부네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배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더라도 딱 가분수가 바로 떠오를 정도의 언밸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