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세리스 1세
1. 소개
타르가르옌 왕조의 5대 왕이자 자에하에리스 1세의 손자. 아버지는 자에하에리스 1세의 삼남 바엘론 타르가르옌이며 모친은 알리사 타르가르옌. 생몰년은 77AL ~ 129AL(52년), 재위 기간은 103AL ~ 129AL(26년).
젊은 시절에 즉위해 '젊은 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타르가르옌 왕조의 최전성기를 통치한 왕이었지만 동시에 의도치 않게 몰락의 길을 마련한 왕이기도 하다.
실사화 배우는 패디 콘시다인(Paddy Considine).
2. 행적
2.1. 왕자 시절
비세리스는 자에하에리스의 삼남[1] 인 바엘론 왕자의 세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원래 후계자였던 아에몬 왕자가 전사한 후, 안달족 전통의 계승법을 따르자면 아에몬 왕자의 유일한 자식인 라에니스 공주가 그 후계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자에하에리스는 라에니스 대신 바엘론을 후계자로 선택했으며 나중에는 칠왕국의 수관으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이에 알리산느 왕비와 자에하에리스가 후계 문제로 다투는 등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비세리스는 후계자의 장남이라는 위치에 있게 되어 바엘론이 무사히 즉위한다면 차차기 국왕이 될 것으로 확실시되었다.
하지만 바엘론 왕자는 사냥 도중 입은 상처가 도져 아버지보다 이른 죽음을 맞이했다. 남은 자에하에리스의 아들들은 모조리 죽거나 계승권을 잃거나 아예 관심이 없어져버려[2] 분명한 후계자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계승법의 원칙으로 돌아가자면 장남부터 아래로 맏이에 해당하는 라에니스가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합당하지만, 후계자로서의 입지가 확고했던 바엘론의 맏아들 비세리스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자에하에리스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주는 대신 AC 101년 대협의회를 열어 후계자를 결정하려 했다. 주요 후보는 비세리스 왕자, 그리고 라에니스가 코를리스 벨라리온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인 라에노르 벨라리온이었다. 대협의회에서 비세리스는 참석한 영주들 대다수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고, 자에하에리스는 비세리스를 자신의 후계자로 공포한다.
AC 93년 비세리스 1세는 왕자 시절 사촌이자 첫번째 아내가 되는 아린 가문의 아엠마 아린과 결혼하여 AC 97년 딸 라에니라 타르가르옌 공주를 얻는다.
2.2. 집권 초중기
비세리스가 재임할때 타르가르옌 왕조는 최전성기를 맞이한다. 비세리스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정책과 모토를 그대로 잘 계승하여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은 앞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밝은 미래를 꿈꾸었으며 발리리아 멸망 이후 개체수가 급감했던 드래곤들은 그 수가 스물을 넘었다.
또한 비세리스의 궁전은 매우 호화롭고 아릅답기로 유명했으며 자신의 딸 라에니라를 매우 총애하였는데, 라에니라가 8살이 되던 해에 그녀를 왕실 술 맡음이[3] 에 임명하고 토너먼트와 축제 연회 등에 참석할 때에는 항상 자신의 딸을 옆에 두고 같이 참석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라에니라 공주는 칠왕국을 '행복의 나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비세리스가 총애하는 동생 다에몬 타르가르옌 왕자가 형에겐 아들이 없으니 자신에게 후계자 지위를 내려 왕위를 물려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평소 동생이 원하는건 뭐든지 들어주던 상냥한 형이던 비세리스도 이 요구에는 심히 당혹해하였다고 전해진다. 결국 비세리스는 이 요구를 무마시킬 겸 다에몬에게 소협의회 참석 권한과 킹스랜딩 도시경비대 지휘관직을 하사한다. 동시에 왕으로서 다에몬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선왕 자에하에리스의 수관이었던 오토 하이타워 경을 자신의 수관으로 임명해 서로 견제하게 한다.
이때문에 비세리스는 후계 논란을 종식시킬 아들을 갈구하게 되었고 다행히 아에마가 AC 105년 아들 바엘론 왕자를 출산하였다. 하지만 아에마는 난산 도중 목숨을 잃었고 바로 다음날 바엘론 왕자마저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다에몬이 술자리에서 죽은 아들을 '하루살이 후계자'라며 패드립을 지껄인 사실을 보고받자 격노하여 다에몬에게 추방령을 내렸으며 선례를 무시하고 자신의 딸인 라에니라 공주를 드래곤스톤의 공주이자 후계자로 공표하였다.
이에 다에몬은 반발하였지만 건달 왕자로 악명 높던 다에몬보다는 선군인 비세리스의 딸이 낫다고 판단한 영주들과 기사들은 공주를 지지했고 별다른 지지기반도 없던 다에몬 왕자는 미친듯이 분노를 토해내며 수도를 떠났다. 어찌되었건 비세리스는 그녀를 자신의 후계로 성심성의껏 교육했으며 소협의회에도 참석시켜 정치를 배우게 하였다.
2.3. 두번째 결혼
아엠마 아린이 산고로 인해 사망했을 때 비세리스 1세는 아직 서른도 되지 않는 젊은 나이었기에 주변의 권유로 재혼 상대를 물색한다. 이에 소협의회에서는 드리프트마크의 영주 가문이자 대협의회에서 비세리스 1세의 지지를 표명한 라에노르 벨라리온의 누이인 라에나 벨라리온과의 결혼을 조언하였다.
보통 비세리스는 소협의회의 조언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였지만 이번 일만큼은 본인이 주도하길 원했다. 비세리스는 대신 그간 눈여겨봤던 하이타워 가문의 여식이자 왕의 수관 오토 하이타워 경의 딸인 알리센트 하이타워와 결혼한다. 그리고 AC 106년 성대한 결혼식이 거행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라에니라 공주와 그녀의 의붓 어머니가 된 알리센트 하이타워의 사이도 좋았고 모든 것이 잘 돌아갈 것처럼 보였다. 오직 동생 다에몬만이 불만을 가져 격렬한 항의를 담은 편지를 보내 반발하였으며 이로인해 비세리스의 총애를 잃은 다에몬은 삼두정과 벌인 스텝스톤 군도 쟁탈전에서 비세리스 1세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얼마 안가 행복해 보였던 가정도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바로 알리센트가 AC 107년엔 아에곤 왕자를, 109년엔 헬라에나 공주를, 그리고 110년엔 아에몬드 왕자를 연달아 낳은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라에니라와 알리센트의 관계는 파국을 맞이했다. 그러나 남성 후계자가 생겼음에도 비세리스 1세는 후계를 바꾼다는 조칙 하나 내리지 않고 여전히 법적인 상속자는 아에곤 왕자가 아닌 라에니라 공주였다.
이에 왕의 수관 오토는 비세리스 1세에게 아에곤 왕자가 후계가 되어야한다고 여러 차례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세리스가 마음을 바꾸려하지 않자 이제 오토는 협박까지 해대가며 왕을 겁박했고 이에 분노한 비세리스는 오토를 파임, 올드타운으로 돌려보내고 새로이 라이오넬 스트롱 경을 수관으로 임명해버리고 만다. 덕분에 한동안은 후계 문제가 잠잠해질 것이라 보였으나 오히려 문제는 계속해서 심화되어가고 있었다.
남부의 명문가 출신 왕비인 알리센트는 자신의 세력을 동원해 아에곤 왕자를 지원하는 '''"왕자파"'''를 결성해 아에곤 왕자가 정당한 후계자라고 주장하고 다녔고, 이에 라에니라 공주는 '''"공주파"'''를 만들어 그녀 또한 자신의 세력을 동원해 왕비파와 치열하게 대립하였다. 이때 칠왕국에 대사를 파견한 브라보스, 볼란티스, 펜토스에는 궁정 내부의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한지에 대한 서신을 자국으로 보낸 기록이 있다.
그리고 AC 111년 토너먼트가 열리고, 이 토너먼트에 두 세력이 참가하여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정작 우승한 사람은 왕비파도 공주파도 아닌 건달 왕자 다에몬이었다. 다에몬은 우승을 거머쥐고선 그 명예와 스텝스톤 군도의 왕의 왕관을 자신의 형제 비세리스와 새 아내인 알리센트에게 바쳤다. 그러나 그로부터 6개월 뒤 다에몬은 칠왕국으로부터 추방되는데, 그랜드 마에스터 룬시터에 의하면 왕과의 대화 도중 다툼으로 인해 그리 된 것이라 하지만 몇몇 소문에 따르자면 다에몬이 라에니라의 처녀성을 앗아가서라는 얘기도 있다. 둘 중 뭐가 맞았던 간에 비세리스는 처음엔 다에몬을 처형시키려고까지 했으나 셉톤 유스테스가 친족살해의 죄는 그 무엇으로도 무마시킬 수 없다고 권고하자 결국 그냥 추방형으로 끝내고 만다.
그 후 비세리스 1세는 왕실 내부의 정쟁을 심각히 받아들이고 그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탕평책을 내놓는다. 모든 자식과 아내를 공평하게 사랑하여 서로 사이좋게 만들어 모두 윈윈해보자는 건데 안타깝게도 잘 먹히지 않았다. 그리고 AC 113년 라에니라 공주의 나이가 차자 왕과 소협의회는 공주와 결혼할 만한 신랑감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이때 알리센트 왕비가 아에곤 왕자와 라에니라 공주를 서로 결혼시켜야한다며 압력을 넣는다. 그러나 이 계획은 결국 기각된다. 그 이유는 당시 아에곤 왕자는 아직 10살도 채 안된 어린아이였고, 더욱이 왕의 수관인 라이오넬 스트롱이 이 혼인을 주장하는 알리센트 왕비의 목적이 바로 라에니라를 제치고 친아들인 아에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서라는 걸 알아낸 것이다.
결국 이 계획은 무산되고 소협의회는 드리프트마크의 후계자인 라에노르 벨라리온과의 결혼을 추진한다. 라에노르는 당대의 실력자 코를리스 벨라리온의 아들이자 자에하에리스 1세의 손녀인 라에니스 타르가르옌[4] 의 아들이기도 했으며, 이 결혼은 비세리스로 인해 후계자에서 밀려난 라에니스 및 벨라리온 가문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내는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라에노르는 어릴 때부터 여성에겐 별달리 관심이 없었고 결혼 얘기가 나돌기 훨씬 전부터 어린 나이의 종자와 연애질이나 하고있었던 등 동성애자임이 거의 확실했다. 이 점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결혼을 추진한 그랜드 마에스터 멜로스는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나는 생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일단 차려지면 먹는다"는 말로 우려를 일축했다. 라에니라 공주 또한 라에노르와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으나 결혼하지 않으면 후계자의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결국 굴복한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라에니라 공주는 드래곤스톤에, 라에노르는 드리프트마크에 계속 머무르면서 서로를 소와 닭 보듯이 했고, 이 결혼에서 라에니라가 낳은 삼형제는 사생아라는 의혹이 당대에도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며 실제로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라에니라의 첫째 아들 자카에리스 벨라리온이 태어나던 시기에 비세리스는 알리센트로부터 막내아들 다에론을 얻는다. 비세리스는 공주파와 왕비파 사이의 대립을 어떻게든 완화시키기 위해 두 아기를 젖형제로 키운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비세리스의 동생 다에몬은 라에노르의 여동생 라에나로부터 쌍둥이 딸을 얻었으며, 딸들을 궁정으로 데려가 왕의 축복을 받게 해주고 싶다는 편지를 쓴다. 소협의회는 반대했지만 비세리스는 다에몬도 아버지가 되었으니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이를 받아들였다.
2.4. 후기
AC 120년은 칠왕국의 많은 주요 인물들이 사망하여 '붉은 봄의 해'로 불렸다. 연초에는 다에몬 타르가르옌의 아내 라에나가 유산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라에나의 장례식에서 아에몬드 타르가르옌 왕자는 강력한 드래곤 바가르를 얻었지만 라에니라의 세 아들들과 충돌, 한쪽 눈을 잃었다. 라에니라 공주와 알리센트 왕비는 격렬하게 대립하였으며, 비세리스 왕은 둘 사이에서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이 와중에 비세리스는 라에니라의 아들들에게 제기된 사생아 의혹을 알게 되고 하윈 스트롱 경을 드래곤스톤에서 쫓아내 하렌홀로 보내버린다. 이후 하렌홀의 원인불명의 화재 사고로 하윈 스트롱 경과 그의 아버지이자 수관인 라이오넬 스트롱 공이 사망한다. 비세리스는 새로운 수관으로 장인인 오토 하이타워를 다시 소환하였으며, 이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왕비파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라에니라의 남편 라에노르 또한 이 해에 사고로 사망하였으며, 이후 1년도 지나기 전에 라에니라 공주와 다에몬 타르가르옌은 비세리스 몰래 결혼하였다. 이로써 다에몬은 완전히 라에니라파로 자리잡았으며 조정 역시 두 쪽으로 갈라졌다.
AC 127년에 라에니라는 자신의 둘째 아들 루세리스를 드리프트마크의 후계자로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고[5] , 벨라리온 가문의 일부 사람들은 벨라리온 왕자들의 사생아 의혹을 제기하며 국왕인 비세리스에게 항의했다. 이 때 비세리스는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의 혀를 자를 것을 명령하는 폭군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 직후 비세리스는 철왕좌에 손을 베이며, 상처가 덧나 손가락 두 개를 잘라야만 했다. 비세리스는 이때 이후로 다시는 철왕좌에 앉지 못했다.
비세리스 1세는 AC 129년 3월 3일에 레드 킵에서 낮잠을 자다가 사망했다. 그의 죽음 직후 공주파와 왕비파 사이에 거대한 내전이 시작되었다.
3. 평가 및 기타
늙은 자에하에리스를 계승해 '젊은 왕'으로 불렸으며, 온화한 성격과 선정으로 영주들과 백성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타르가르옌의 최전성기를 통치한 왕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못난 자식과 자신의 오판으로 인해 타르가르옌 왕조 몰락의 씨를 뿌린 왕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비세리스 본인은 왕으로서 그럭저럭 유능했지만 후계자이자 맏딸인 라에니라와 두번째 왕비 알리센트, 아들 아에곤 2세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용들의 춤의 불씨를 지피고 말았다. 특히 딸 라에니라 공주를 후계자로 삼았으면서 수관 자리에는 알리센트의 아버지인 오토 하이타워 경을 앉히는 등 본의 아니게 두 진영의 대립을 부추기기도 했다.
다음 왕인 아에곤 2세에게 노골적으로 유리한 타이밍에 죽었기 때문에[6] 자기 부인이나 아들에게 당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7]
참고로 최강의 드래곤인 발레리온의 마지막 주인이었다. 물론 발레리온은 그 당시에 이미 고령인데다가 평화로웠던 시기라 딱히 활약할 일도 없었고, 얼마 뒤에 수명이 다해 죽는다. 비세리스는 발레리온이 죽고 난 이후에도 다른 드래곤을 길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모친 알리사 타르가르옌이 비세리스가 태어난 직후 갓난아기였던 그를 가슴에 안고 자신의 드래곤 멜레이스에 탑승해 함께 비행을 했는데, 알리사의 말에 따르면 비행 도중에 비세리스가 계속 웃었다고 한다.
비록 타르가르옌 왕조 치하에 칠왕국의 최전성기를 통치했고 나라도 그럭저럭 잘 다스렸지만, 후계자 선정 방식으로 인해 나라 전체를 혼란스럽게 만든 암군이기도 하다. 이미 지난 대회의에서 압도적인 수의 영주들이 남계계승을 여계계승보다 지지한다고 밝혔으며, 장남보다 장녀를 우선 순위에 두는 방식은 도른을 제외한 칠왕국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비상식적인 계승이였다.[8] 그리고 라에니라 타르가르옌의 후계자들인 벨라리온 형제는 사생아 의혹이 짙게 있었으며, 이는 라에니라뿐만 아니라 라에니라의 다음 세대도 계승 분쟁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이 컸다. 당장 본편에서 조프리의 사생아 의혹으로 인해 나라 전체가 갈라져 싸운 대전쟁이 일어난 걸 생각해보자. 하지만 비세리스 1세는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힘과 지위가 있었음에도 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이는 칠왕국 사상 최대의 내전인 용들의 춤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비세리스 1세도 본편의 로버트 바라테온처럼 가족들과 후계자 관리를 실패하고 위험한 불씨를 방관한 암군이었다.
[1] 장남인 아에곤 왕자가 요절했고 차남인 아에몬 왕자는 타스로 쳐들어온 해적들과 싸우다가 전사.[2] 5남 바에곤 왕자가 그 경우. 아치마에스터가 되어 왕위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3] 왕의 잔에 술을 따르는 직책. 독살 위험이 있으므로 매우 신뢰하고 총애하는 사람에게만 내리는 직책이다.[4] 자에하에리스 1세의 차남 아에몬 타르가르옌의 외동딸.[5] 첫째인 자카에리스는 라에니라 다음으로 칠왕국을 계승할 것이었으므로.[6] 정식 후계자인 라에니라가 임신 중이라 움직일 수 없는 사이 갑자기 비세리스 1세가 사망했다. 아에곤 2세는 라에니라가 부재한 틈을 타서 수도에 있는 자기 누나의 지지세력을 숙청하고 지방세력과의 연계를 꾀한다.[7] 비세리스 1세의 사망 직후 궁정 광대 머시룸은 왕은 독살당했다는 말을 했다. 다만 머시룸은 당시 킹스 랜딩에 있던 게 아니라 드래곤스톤에 있었다.[8] 몇몇 가문에서 여자 영주가 나오기도 했지만 극소수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적자가 모조리 죽어서 마지막 남은 적녀에게 계승권이 돌아간 것에 가깝다. 아에곤 2세도 엄연히 왕비인 알리센트가 낳은 비세리스 1세의 적자였던 걸 생각하면, 라에니라만큼이나 정통성이나 혈통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던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