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라이온즈/1998년
1. 스토브리그
1.1. 코칭스태프 이동
백인천 감독이 건강 문제로 감독직을 사임했다. 그러면서 서정환 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됐다. 비록 1년만 뛰고 해태로 트레이드됐지만, 어쨌든 사상 처음으로 삼성 선수 출신 감독.
서정환 감독이 부임하며 코치진도 대다수 물갈이됐다. 조창수 감독 대행이 물러나며 빈 수석코치 자리에는 차동열 배터리코치가 수석코치를 겸직하게 됐다. 기존의 투수코치였던 임호균, 권영호 투수코치 대신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코치였던 후지시로 카즈아키를 영입했다.
1.2. 선수 이동
1997년 시즌 후 프로야구 원년 멤버로 당시까지 유일하게 현역 선수로 남아 있었던 이만수가 끝내 방출되면서 은퇴했다.
1997년 11월 11일 재정 악화로 어려움에 처해있던 해태 타이거즈의 조계현을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12월 6일에는 OB 베어스에서 방출된 김형석과 해태에서 방출된 정회열을 영입했다. 12월 31일에는 OB 베어스 포수 김광현을 현금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1998년 2월 10일에는 해태에서 방출된 이순철을 영입했다. 2월 25에는 박현영을 쌍방울 레이더스에 내주며 대신 쌍방울의 1999 신인지명 2차 1라운드 지명권을 양도받았다.
김태한이 1998년 2월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군입대했다.
1.3. 신인 지명
- 포지션은 지명 당시 기준.
- ※표시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입단하지 않은 선수.
- #표시는 대학 진학이나 유급으로 이후에 지명 당해가 아닌, 그 이후에 입단한 선수.
1.4. 외국인 선수
1997년 11월 15일 미국에서 열린 외국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우완투수 호세 파라와 좌완투수 스캇 베이커를 지명·영입했다.
2. 전지훈련
마무리 훈련은 여전히 호주에서 치렀다.
서정환 감독의 부임으로 오키나와 전지훈련 대신 미국 플로리다의 베로비치 다저타운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할 계획이었으나, IMF 사태로 다시 오키나와에서 전지훈련을 치렀다. 투수들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캠프가 있는 미야자키에서 훈련했다. 신인임에도 과감하게 1번타자로 기용돼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강동우가 오키나와 전지훈련의 소득이었다.
3. 정규 시즌
타선의 무게감은 전년도에 비해 떨어졌지만 그래도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다. 문제는 마운드였는데 스캇 베이커, 박충식, 조계현 외에는 이렇다할 선발투수가 없었다. 그나마 조계현은 150⅓이닝을 소화했지만 평균자책점이 5점대였다. 외국인 선수 최대어로 손꼽히며 마무리 투수를 맡은 호세 파라도 기대만큼 뛰어난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66승 58패 2무로 2위를 차지했다. 승률은 4위를 차지했던 지난해가 훨씬 좋지만 현대가 독주하고 아래쪽의 전력 평준화가 일어나는 바람에 겨우 +8의 승패마진으로도 정규시즌 2위를 했다.[12]
신인 강동우가 규정타석을 소화하고도 3할 타율을 기록했지만, 현대 유니콘스의 고졸 신인 김수경에게 밀려 신인왕을 수상하지 못했다.
3.1. 선수 이동
7월 31일 김훈이 쌍방울 레이더스로 이적했다.
4. 포스트시즌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에게 1승 3패로 패해 또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강동우가 이병규의 타구를 잡으려다 펜스에 부딪히면서 무릎 골절상을 당했다. 이로 인해 강동우는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대표팀에서도 빠졌고, 2년간의 재활을 거치고 2000년 말에서야 복귀했다.
5. 선수별 개인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성적.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 투수는 이닝이 많은 순서대로, 타자들은 타수가 많은 순서대로.
5.1. 투수
- 우완
- 좌완
5.2. 타자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6. 수상 및 기록
- 김한수 : 골든글러브 3루수 부문
- 양준혁 :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타율 1위(.342), 안타 1위(156개), 출루율 1위(.450)
- 이승엽 : 골든글러브 1루수 부문, 득점 1위(100득점), 장타율 1위(.621)
[1] 페넌트레이스에서는 2위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3위 LG 트윈스에게 업셋을 당해 최종 순위는 3위.[2] 단국대 진학 이후 2002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계약하면서 지명권 소멸.[3] 중앙대 진학 이후 2002년 입단.[4] 상무 입대 이후 2000년 입단.[5] 성균관대 진학 이후 2002년 입단.[6] 성균관대 진학 이후 지명권 포기.[7] 동아대 진학 이후 2002년 입단.[8] 단국대 진학 이후 원래 지명권을 포기했으나, 2003년 신고선수로 입단.[9] 계명대 진학 이후 지명권 포기.[10] 상무 입대 이후 지명권 포기.[11] 건국대 진학 이후 2002년 입단.[12] 롯데 자이언츠는 2013년 +8의 승패마진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