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이슈트반 왕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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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란스라이타니아(Transleithania)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중 헝가리가 지배하던 지역을 의미한다. 공식 명칭은 '''헝가리의 성 이슈트반 왕관령(A Magyar Szent Korona Országai)'''이다.
명칭의 '이슈트반 왕관'이란 헝가리 왕국의 초대 국왕인 이슈트반 1세의 왕관을 뜻하는데, 이 왕관은 헝가리에선 단순히 왕관을 넘어서 헝가리의 국권 자체를 상징할 정도로 상징성이 크다. 그래서 '이슈트반 왕관령'이란 명칭이 붙은 것. 현대에도 이 이슈트반 왕관은 헝가리 국권의 상징으로 헝가리 국회에서 보관하고 있다.
19세기 초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이 퍼뜨린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헝가리인들은 수백년 동안 헝가리를 지배해 온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격렬한 독립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1848년 오스트리아에서 '빈 체제'에 항거한 3월 혁명이 일어나고 새 황제가 즉위하자 헝가리인들의 저항은 더욱 고조되어 코슈트 러요시의 주도 아래 부다페스트와 데브레첸에서 반 오스트리아 혁명을 일으켰다. 이 때 헝가리 혁명군은 오스트리아군을 연달아 격파하며 독립에 거의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크로아티아인, 슬로바키아인, 루마니아인 등 헝가리 내부의 소수민족과의 갈등과 자국내 분리주의 운동의 확산을 우려한 러시아 제국의 개입으로 인해 헝가리 혁명은 실패하고 만다. 헝가리 혁명을 진압하고 난 후 오스트리아 당국은 보복으로 헝가리 전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트란실바니아와 크로아티아 등 소수민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을 분리한 후 헝가리어의 교육을 금지하고 독일인을 이주시키는 등 헝가리 지역의 독일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이런한 강압적인 통치 방식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계를 맞게 되었다. 결국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전한 뒤 오스트리아 제국이 독일 연방에서 축출당하며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된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스트리아 정부는 방침을 전환해 제국 내 제2의 세력을 차지하고 있던 헝가리인들에게 공동의 제국을 제안했다. 대타협[2] 의 결과 헝가리인들은 헝가리 왕국을 건국하고 독립적인 정부와 의회 등을 구성하는 대가로 오래 전에 헝가리 공주와 결혼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머나먼 후손인 현재의 황제(당시의 황제는 프란츠 요제프 1세)를 왕으로 인정하여 이중 제국이 출현했다. 이렇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등장했고 이렇게 헝가리인들은 비록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왕으로 모셨지만 분리된 왕국을 만들었다.
1867년부터 헝가리인들은 오스트리아 독일인과 함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얻으면서 트란스라이타니아 지역의 다른 민족들[3] 을 탄압했다. 이들 중 가톨릭 교도가 아닌 정교회 신자였던 루마니아인과 세르비아인은 더 많은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자치권이 박탈되었으며 1878년 이후에는 제국 바깥에 루마니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이 수립되었기 때문에 소수 민족 탄압은 루마니아, 세르비아의 반감과 적대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발칸 반도에서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입지를 좁히게 되었다. 1918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패배하면서 헝가리 왕국도 소멸되었다.
2. 구성국
[1] 사실 트란스라이타니아의 공식 국기는 아니고 헝가리와 크로아티아를 의미하는 깃발이다. 트란스라이타니아가 공식 석상에서는 참여할때는 헝가리 왕국 국기와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 국기를 같이 사용했다. [image] [image][2] 독일어로 아우스글라이히, 헝가리어로 키에제제시.[3] 슬로바키아인, 루마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우크라이나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