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찬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전 유성구)'''
제15대
조영재

'''제16대
송석찬'''

제17~19대
이상민
[image]
'''이름'''
송석찬 (宋錫贊)
'''출생일'''
1952년 1월 15일 (72세)
'''출생지'''
충청남도 대덕군[1]
'''최종 학력'''
명지대학교 법학 학사
'''소속 정당'''
'''무소속'''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16
1. 개요
2. 여담
3. 선거 이력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
1952년 충청남도 대덕군 유성면 봉명리(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온천동)에서 태어났다. 유성초등학교, 유성중학교, 유성농업고등학교(현 유성생명과학고등학교), 명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신한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2] 이후 민주화추진협의회 농림수산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다. 1987년 6월 항쟁 주도 혐의로 구속되기도 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평화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대전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주공화당 박충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평화민주당의 후신 신민주연합당 후보로 대전직할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대전광역시 유성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유성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0년 유성구청장직을 사퇴하였다. 그리고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대전광역시 유성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한나라당 조영재[3]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1년 자유민주연합에 대한 의원 꿔주기로 장재식, 배기선, 송영진 등과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가[4] DJP연합이 붕괴되자 새천년민주당에 복당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노무현 후보를 비판하며 후단협에 참여해서 당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통령 후보와의 단일화를 촉구하며 탈당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지만 노무현이 극적으로 단일 후보가 되자 곧바로 복당해 선거 운동을 적극 도왔으며 이듬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 이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때 격분하며 투표함을 집어던지는'''[5] 돌출 행동을 보여 일시적으로 주목받게 되자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려다가 도로 취소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이후 2006년 지방선거에서 유성구청장으로 복귀하려 했으나 당내 경선에서 떨어졌고, 탈당하여 국민중심당에 입당해 자유선진당까지 갔으나, 지역구 라이벌 이상민이 공천에 탈락해 자유선진당으로 당적을 옮기자 당내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이후 민주당에 복당한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유선진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 복귀한 이상민에 공천에서 밀리자 민주통합당을 탈당하여 자유선진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지만 민주통합당 이상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선진당의 후신 선진통일당새누리당에 흡수될 때 반대하여 다시 민주통합당으로 복당하였다. 정치 행보가 다소 철새이긴 하지만 워낙 새누리당 계열과는 척을 진 인물인지라 그쪽으로 가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던 듯.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후보를 지원하였다.
이후 국민의당에 입당하여 공동선대본부장, 고문이 되었으며 바른정당과의 합당에 반대하여 민주평화당으로 당적을 옮겼으나 2019년 자신을 포함한 당 고문단이 동반탈당했다.

2. 여담


  • 2001년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을 위해 새천년민주당에서 임대(?)될 때, 김대중 대통령에게 "여당으로 한 마리 연어가 되어 돌아오겠다." 라는 유명한 말로 연어라는 별명을 획득하였다. 이를 곱게 볼 리 없는 한나라당 장광근 대변인은 한국 국회는 272명의 국회의원과 연어 한 마리로 구성돼 있다라는 비아냥섞인 논평을 발표했으며, 이후에도 이규택을 비롯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송석찬에게 "야 연어!"라고 부르는 등 본명보다는 별명으로 많이 통했다. (.....)
  • 처음 출마했던 1988년 총선 때는 대전을 비롯한 충남 권역이 신민주공화당의 텃밭이었고 첫 당선을 맛본 1991년 지방선거 때는 3당 합당으로 인해 민주자유당이 우세했으며, 특히 1995년 지방선거에서는 JP가 탈당해 차린 자유민주연합이 충청권 전역에서 바람을 일으켰음에도 구청장에 당선되었다. 그리고 국회의원에까지 올랐는데 민주당 간판 하나만으로 충남권에서 근 20년 동안 이 정도의 행보를 보인건 지역감정에 맞서 싸웠다고 할만한 듯.
  • 호남출신은 아니지만 잠시 2010년대를 제외하면 죽 동교동계와 정치적 행보를 해왔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대전 서)
평화민주당
8,880 (8.59%)
낙선 (4위)

1991
1991년 지방선거
(대전시의회 유성 1선거구)
'''신민주연합당'''
'''10,165 (40.6%)'''
'''당선 (1위)'''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 유성구청장)
'''민주당'''
'''20,764 (42.47%)'''
'''당선 (1위)'''
1996년 탈당
새정치국민회의 입당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 유성구청장)
'''새정치국민회의'''
'''25,416 (58.71%)'''
'''당선 (1위)'''
2000년 사퇴
(16대 총선 출마)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대전 유성)
'''새천년민주당'''
'''20,971 (35.23%)'''
'''당선 (1위)'''
2000.12.24 탈당
자유민주연합 입당
(의원꿔주기 파동)
2001년 탈당
민주당 복당
(DJP연대 파기)
2002년 탈당 및 복당
(후단협 참가)
2003년 탈당
열린우리당 입당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대전 유성)
자유선진당
19,962 (15.91%)
낙선 (3위)



[1]대전광역시 유성구[2] 송석찬 의원 본인의 말에 의하면 민주인사 13인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3] 자유민주연합 공천에서 탈락하자 한나라당으로 당적 변경[4] 이 때 한 유명한 말이 '''"여당으로 한 마리 연어가 되어 돌아오겠다."'''이다.[5] 당시 보도 자료에서 투표함을 두 번이나 집어던지는 인물이 바로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