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춘군

 



'''조선 세종의 왕자'''
'''수춘군
壽春君'''

'''군호'''
수춘군(壽春君)[1]
'''시호'''
안도(安悼)
'''본관'''
전주(全州)
'''이름'''
현(玹)
'''부왕'''
조선 세종
'''생모'''
혜빈 양씨(惠嬪 楊氏)
'''부인'''
영천군부인 연일 정씨(延日 鄭氏))
'''자녀'''
1남 1녀[2]
'''묘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생몰
기간
'''
'''음력'''
1431년 7월 13일 ~ 1455년 6월 5일
'''양력'''
1431년 8월 20일 ~ 1455년 6월 19일
1. 개요
2. 생애
3. 사망과 이후
4. 여담
5. 가족과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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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전기의 왕족. 세종의 13번째 아들이자 서6남으로, 어머니는 혜빈 양씨이다. 친형제로는 형 한남군과 남동생 영풍군이 있고 전주이씨 수춘군파의 파시조이다.

2. 생애


1437년(세종 19년) 12월 8일 수춘군(壽春君)으로 봉해졌다.#
1443년에 세종이 병에 걸려 소헌왕후와 함께 온양행궁에 갔을 때 세종의 명으로 궁궐을 살피고 지키는 일을 맡았다.# 수춘군은 세종이 먹을 탕약을 손수 관리하고 쾌유 기도를 드리는 등 정성을 다해 사람들이 만고의 효자라고 칭송했다고 한다.
단종 즉위 후 왕족들이 수양대군 편과 반대 편으로 갈릴 때 반대 편에 섰다. 아버지큰형에 대한 의리도 있었고, 무엇보다 그의 어머니 혜빈 양씨가 수양대군 대립 세력의 대표격이었기 때문.

3. 사망과 이후


1455년(단종 3년) 6월 19일에[3] 이복형 금성대군 사저인 교거에서 사망했다. 향년 23세.[4]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선위하기 한 달 전이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있다.

4. 여담



5. 가족과 후손


영천군부인 연일 정씨와 혼인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다. 딸은 심온의 증손자인 청안군 심순로와 혼인하였다. 그 사이에 둔 딸 심씨는 성종의 왕자 영산군과 결혼했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수춘군의 사후 양자로 이복형 밀성군의 3남인 수안군 이상이 입적되어 대를 이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수춘군이 수양대군의 반대편에 섰고, 그의 어머니 혜빈 양씨 또한 세조의 정적으로 사형당했기에, 수춘군의 제사를 대놓고 지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를 딱하게 여긴 이복형 밀성군이 수춘군의 제사를 몰래 지내주었다. 그리고 밀성군 사후에는 밀성군의 3남인 수안군이 수춘군의 제사를 모셨다. 이후 수춘군이 복권될 때 이런 사연이 왕에게 전달되어 수안군이 정식으로 수춘군의 후사가 된 것이다.
단, 시기는 자료마다 다르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 따르면 중종 때라고 한다.# 하지만 위키백과의 밀성군 항목에 따르면 사육신이 복권된 후인 숙종 시기라고 한다.#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관련 자료가 나오지 않는다.
[1] 군호는 강원도 춘천의 별호인 수춘(壽春)에서 따왔다[2] 1남은 양자이다.[3] 음력 6월 5일.[4] 세는나이 2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