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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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前 SK 와이번스, LG 트윈스 소속의 외야수, 現 LG 트윈스 소속의 코치.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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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고등학교 3학년 당시엔 1루수이자 3번 타자였다. 4번을 치던 나지완과 함께 신일고를 2003년 황금사자기 우승팀에 올려놓았으며 왼손투수가 필요한 경우 등판하였다 다시 1루수로 되돌아가곤 했다.[11] 단 본인의 활약과는 별개로 신일중 재학 시절 일찌감치 부친상을 당하는 등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후 2004년 KBO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에 2차 5라운드로 지명되어 계약금 6,500만원 및 연봉 2,000만원에 입단한다.
2.2. SK 와이번스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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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하였다. 입단 첫 해에는 엔트리 확장 때 1군에 등록되어 대타로만 기용되어 10타수 2안타라는 성적을 거둔 것이 전부. 이후 1군에 계속 오르지 못하다가 2007년 6월에 상무도, 경찰청도 아닌 '''일반 현역병'''으로 입대하며 군 복무를 하게 되었다. 제30기계화보병사단에서 신병교육대 조교로 군 생활을 하였다. 복무 중에도 꾸준히 나름대로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2009년 6월에 제대했으나, 그가 현역으로 군 복무를 하는 동안 2007년과 2008년의 SK는 한국시리즈에서 2연패를 달릴 정도로 물이 오른 상태였다. 게다가 박재홍, 박재상, 김강민 등 외야 자원들이 차고 넘쳤기 때문에 그가 1군에 들어올 자리는 사실상 없었고, 제대한 후 신고선수로 등록되며 2군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는 SK가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그친 2009년에도 계속된다.
2.2.1. 2010 시즌
허나 2010년, 박재상과 박재홍이 부상으로 빠지며 외야수 자리에 공백이 생기자 1군으로 콜업되었으나 수비 빼면 볼 게 없는 자동아웃, 특히나 타격 직전 배트가 올라가는 불안정한 스윙 동작 때문에 첫 안타가 나오기 상당히 오랜 시일이 걸렸다. 후반기 들어서는 타격자세가 많이 안정된 편이다. 그래도 작년부터 이어오던 22연승이 깨지고 다시 16연승을 내달릴 때 안정된 수비를 바탕으로 필요할 때마다 타격이 터진 임훈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임훈이 빛났던 것은 4월 20일 두산 베어스전 국내 야구장 중 가장 홈런을 치기 어려운 잠실 야구장에서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치는데 고창성의 몸쪽 공을 그대로 당겨 넘겨버려 역전승을 이끌고 생애 첫 MVP에 등극한다. 또 8월 16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는 무려 5타수 4안타의 맹공을 휘둘렀고 임훈의 맹활약에 힘입어 팀은 7:0의 완승을 거둔다.
이 외에도 한국시리즈 직행에 한 경기를 남겨두었던 9월 22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도 5타수 2안타를 뽑아냈다.
시즌 마지막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김민우의 타구를 호수비 플라이아웃 처리했으나… 사실은 오심이었다. 다만 몸을 날려서 어떻게든 잡아보려했던 정신은 높이 사줄만 했다.
이렇듯 후반기에 보여준 대단한 활약에 감동(?)한 SK팬들은 '''임신'''이라는 약간은 미묘한(…) 별칭을 붙여주었다. 이때부터 출루를 하면 착상, 타점을 올리면 출산 안타성 타구가 호수비에 막히면 피임기구 등의 드립이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 유행하기 시작한다.
SK 외야는 박재상, 박재홍, 김강민이 2009년 확실한 해결사였고, 지금도 클린업 트리오로 자주 나오는 박정권, 혹은 정상급의 수비를 보여주는 조동화 등 경쟁자가 많지만 준수한 타격능력과 수비능력을 가진 만큼, 2011년 시즌이 많이 기대되는 선수이다. 은퇴한 김재현이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기 전에 신일고 직속 후배인 그에게 야구 장비를 전부 물려주고 갔기 때문에 SK 팬들은 캐넌의 기운을 좀 받았으면 하는 기대를 많이 했다.
2.2.2. 2011 시즌
2011년 4월 2일 정규시즌 개막전에서 3타수 1안타, 4월 3일에는 4타수 4안타(!)를 몰아치며 캐넌이 빙의한 듯 대폭발. 이틀간 성적만 따지면 타율이 '''7할'''[12] 을 훌쩍 넘겼다. 시즌 전 어깨 수술을 받은 박재상도 예상 외로 복귀가 빨라서 박재상-김강민-임훈으로 이어지는 외야진이 구성됐다. 그러나 김강민이 부상을 당해서 조동화가 중견수로 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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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번트 실패와 자신의 뒤를 넘겨 버리는 홈런이 나왔다. 물론 홈런이야 자기가 맞은 건 아니지만 당하고 난 다음에 멍한 표정이... 그래서 그런지 분명 삽을 푼 것인데도 불구하고 귀여움을 받았다.
그런데 2011 시즌 중반에 담 때문에 2군에 내려갔다온 뒤로 영 메롱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클러치 에러를 남발하는 어떤 난쟁이 외야수도 밀어내지 못하는 상황. 그래서 캐넌이 주고간 장비를 다른 사람 주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거기다 놀기 좋아한다는 소문에 팬클럽이 챙겨 준다는 이야기까지 있어서 우려를 샀다.
그래도 전년에 이어 준수한 백업 외야로 활약했다. '''백업 주제에 3루타를 6개'''나 쳐서 리그 2위에 올랐다.
KIA 타이거즈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3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9번타자, 4차전은 대수비로 출장하여 9타수 2안타 1타점 타율, 장타율, 출루율 모두 .222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대수비, 3차전은 대주자, 5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 1볼넷 1득점 타율, 장타율 .250, 출루율 .400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2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7번타자, 3차전은 대주자로 출장하여 2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임훈은 2011년 포스트시즌에서 15타수 3안타 1볼넷 1타점 1득점 타율 .200, 장타율 .200, 출루율 .250을 기록했다.
2.3. 롯데 자이언츠 시절
12월 7일 롯데가 FA 임경완의 보상선수로 임훈을 지목했다. SK 측에서 작은 이승호의 보상선수로 좌완투수 허준혁을 보상선수로 데려왔기에 롯데에서 등번호 69번을 받았고 그렇게 롯데에 뿌리박을 것으로 보였다.
2.4. SK 와이번스 2기
그런데 롯데로 이적한 FA 정대현의 보상선수로 다시 SK에 리턴픽되었다.
그 와중에 연봉이 100% 올라간 것이 위안. 그런데 이 연봉 인상은 '''롯데 프런트'''에서 한 액수이다. 정확히는 SK서 연봉 관련 자료를 건네받아서 책정한 거긴 하지만 어쨌든 나름대로 재밌는 점.
2015 시즌 후 롯데 자이언츠가 FA로 풀린 심수창을 한화 이글스로 보내면서 보상 선수로 박한길을 지명했을 때, 롯데 프런트는 임훈의 사례를 참고하였다. 바로 보호선수 명단 제출 타이밍이었다. 심수창을 보낸 후 넥센 히어로즈에서 손승락을 영입하면서 보호선수 명단을 넥센 히어로즈에 보냈는데, 박한길이 보상선수로 공시되기 직전에 명단을 보냈기 때문. 보상선수를 지명하고 2~3일 있다가 KBO에 공시되므로, 이 기간 사이에 보상선수 지명자는 KBO에 공시되기 전까지 본 소속 팀이 유지되는 중이라는 점을 간파하여, 롯데는 회의한 끝에 2015년 12월 10일에 히어로즈에게 보호선수 명단을 넘겼고, 박한길은 다음 날인 12월 11일 KBO에 보상선수 지명 공시가 뜨면서 롯데 소속으로 변경됐다. 그래서 규정상 당시 아직 한화 소속이었던 박한길은 알아서 보호됐던 것이다. 게다가 KBO에서 롯데 구단이 히어로즈 구단에 보호선수 명단을 넘긴 날짜(12월 10일)를 기준으로 롯데에 소속되어 있는 선수들 중에서만 보상선수를 지명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 내심 박한길을 기대했던 넥센 히어로즈가 입맛만 다신 채 15억 9,000만 원의 보상금만 받아 가면서 프로야구판 한수지의 케이스가 나오지 않게 됐다.
결국 KBO가 2016년 1월 12일 이사회를 열어 FA 보상선수로 지명받아 이적한 선수를 20명의 보호선수 및 보상선수 명단에서 제외한다고 개정했다. 즉,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이적한 선수는 자동 보호 대상이 되는 것. 따라서 임훈과 같은 보상선수 리턴픽 사례가 다시 일어나기는 불가능해졌기에 임훈의 리턴픽이 KBO 리그 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리턴픽이 되었다. 정현석의 한화→삼성→한화는 보상선수 지명 후 트레이드를 통해 돌려보낸 경우라 예외이다.
2.4.1. 2012 시즌
2012년 시즌 '''물빠따''' SK 타선에서도 최하위권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수비는 리그에서도 알아주지만, 결국 호수비를 보여준 4월 27일 경기 후 내려간 2군에서 5월이 지나고서도 아직 1할을 못치고 있다.
하지만 5월 중순 1군에 올라와 타율을 2할 중후반까지 끌어올리며 6월 중순엔 2번 타순까지 올라갔다. 박재상의 공백을 훌륭히 메꾸면서 주전 우익수이자 2번타자로 꾸준히 출장 중이다.
8월 22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날은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선발 출장했는데 수비에서 뻔한 플라이를 판단미스로 놓친 것이 2실점으로 이어져 팀이 어렵게 가는 데에 일조(?)하였다. 그리고 연장 11회말 볼넷으로 출루하였고, 최정 타석때 런앤히트로 스타트를 매우 훌륭하게 끊었으나, 헛스윙이 됐더라도 도루 타이밍이었고 우익수가 공까지 더듬었음에도 불구하고 홈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이 날 경기에서 나온 2번의 뇌를 빼놓은 수비로 인해 자신감이 위축된 임훈이 겁을 집어먹고 파고들지 못한 걸로 보인다. 그리고 안경현 해설은 이걸 보고 탄식했다. 정근우의 스퀴즈 때 홈인을 해서도 임훈의 표정은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타석에선 3타수 2안타 2볼넷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10월 5일까지의 성적은 116경기 출장 312타수 84안타 .269. 준주전급으로 활약하며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도루가 3개에 불과한 점과 볼넷/삼진 비율이 1:3 정도로 좋지 않다는 점은 마이너스.
주전급으로 뛴 지 3년이 된 2012시즌까지 볼 수 있는 희한한 점은 장타력은 부족하지만 빠른 발을 이용해 3루타를 꽤 많이 만들어내는 편[13] 이면서 도루는 한 시즌을 뛰면서 10개를 넘어본 적이 없다는 점. 이는 도루 센스의 부족으로 보인다.
한편 다른 팀 상대로는 강한 편이면서 유달리 '''롯데'''전에서는 약하다. 그 때문인지 롯데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큰 힘을 쓰지 못했다. 때문에 FA 보상선수 해프닝 사건과 연관해 이를 말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2012 시즌 팀내 끝내기 안타 기록 3위에 랭크되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1, 2차전은 대수비, 3, 5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7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은 대수비, 2차전은 대타, 3~5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여 10타수 2안타 1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2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임훈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17타수 2안타 1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118를 기록했다.
2.4.2. 2013 시즌
2013년 시즌을 앞두고 박재홍이 은퇴를 하자 2013년에도 외야 한 자리를 차지할 듯 싶었으나 이명기, 한동민 등이 치고올라오며 40경기 출장에 타율 0.222에 그치며 대부분의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2.4.3. 2014 시즌
스프링캠프 때 대활약했으나, 그 이후에 어깨부상 때문에 콜업이 늦어졌다. 5월 말에야 1군에 올라와서 5월 30일 기준으로, 타율 '''.525'''으로 맹활약하는 중. 그리고 24일 LG전에서 임정우에게 개인통산 2호포를, 그것도 2010년 첫 홈런을 기록한 후로 무려 4년 만에 홈런을 쐈다! 보통 테이블세터진이나 하위타선에 위치하던 선수가 5월 말 현재 5할이 넘는 좋은 타격감으로 주로 중심타선인 3번에 배치되면서 쏠쏠한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중.
6월 27일 LG 트윈스와의 문학 홈경기에서 9회말 1사 2루 상황에서 대타로 나와서 이동현에게 끝내기안타를 작렬하며 당일 MVP로 선정되었다. 2년 만에 친 개인 통산 2번째 끝내기 안타이다.
아쉽게도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타격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수비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이제는 확실히 주전은 아닐지라도 SK의 외야 한 자리를 책임지는 선수가 되었다.
2.4.4.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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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이후 주전 타자들의 부진으로 생긴 공백을 임훈이 메워줬다. 하지만 활약은 아니고 그냥 정말 '구멍만 메워' 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시즌 중반까지 장타가 한 개도 없을 만큼 처참했다.
2.5. LG 트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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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7월 24일 3대3 트레이드로 여건욱, 진해수와 함께 LG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LG 트윈스에서의 등번호는 정의윤이 사용하던 24번으로 확정되었다. 양상문 감독에 의하면 다른 이적생들과 같이 바로 1군에 등록될 예정이라고.
2.5.1. 2015 시즌
2015년 7월 26일 kt wiz와의 경기에서 6회말 2사 1루에서 손주인과 교체되어 새 팀에서의 데뷔전을 치렀다. 1루에 있던 박용택이 4구째 도루 성공하여 2사 2루 상황에서 김재윤의 7구를 받아쳐 1-2루간을 가르는 안타를 쳤다. 2루에 있던 박용택은 홈인. LG에서의 첫 타석에서 안타, 타점까지 때려냈다. 8회말 1사 2, 3루 상황에서는 바운드 큰 유격수 땅볼로 3루주자 박용택을 홈으로 불러들이며 2타점째 기록, 순조로운 출발을 보여줬다.
다음 경기인 사직 롯데전에서도 강한 안타성 타구[14] 를 날렸으나, 하필 1루수가 수비 잘하기로 유명한 골퍼였기 때문에 호수비에 걸리고 말았다.
8월 4일 NC와의 잠실전에서는 5회말 시즌 1호 홈런[15] 을 때렸다. 15시즌1호 이 홈런으로 LG는 영패를 면할 수 있었다.
SK에선 주로 대수비로 나오던 선수였으나 LG로 이적한 후 리드오프에 중견수로 선발 출장하며 완전히 주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기존 엘지의 외야수들에게 볼 수 없었던 멋진 수비를 보여주며 맹활약을 하는 중이다. 더블아웃① ②
특히 8월 22일 넥센과의 잠실전에서 유한준의 우중간을 가르는 안타성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내 선발 투수 우규민의 인사를 받기도 했다. 슈퍼캐치
9월 2일 넥센과의 원정 경기에서는 무려 5타수 4안타, 1타점 1득점을 기록하며 활약했으나 팀이 승리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다음날 kt와의 잠실전에서는 전날의 활약이 무색하게 안타를 하나도 치지 못했으며 출루도 한 번 하지 못했다.
그러나 9월 4일 경기에서는 4타수 4안타, 1타점 3득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 날 LG가 낸 득점의 대부분이 그의 출루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리고 4안타 중 두 번은 기가 막히는 코스의 기습번트안타였는데 그 안타로 본인이 왜 리드오프인지 증명했다. 특히 6회말 스퀴즈번트는 벤치의 사인이 아닌 본인의 판단으로 한 것이었으며 팀이 연패 중이라 너무 이기고 싶었고 번트 코스만 좋으면 자신이 죽더라도 3루 주자가 충분히 들어오겠다고 봤다는, 팀을 우선하는 취지의 인터뷰 기사도 나오기도 했다.
9월 5일에서는 3타수 1안타를 기록했지만 안타를 치지 못한 두 번이 모두 득점권(2사 2, 3루 & 2사 1, 3루)이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9월 9일에도 4타수 2안타를 쳐냈다. 그리고 팀은 대승했다.
10월 6일 2015년 마지막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안타를 쳐냈고 팀은 승리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87'''로 마쳤지만 트레이드 이전 타율이 2할 1푼대에 불과한 것을 감안한다면 이적 후에 타율을 상당히 많이 끌어올렸다. 이적 후 출루율도 4할에 육박하면서 1번 타자 역할도 잘 수행했다고 볼 수 있을 듯. 특히 수비적 측면에서 본다면 구멍 취급받던 LG 외야가 임훈과 신인 안익훈의 합류 이후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박용택 등 최고참 선수와 안익훈, 서상우 등 신진급 외야 자원의 나이 차이가 크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30대 초반의 임훈이 중간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5.2. 2016 시즌
2.5.3. 2017 시즌
시즌을 앞두고 결혼을 하였다.
LG 외야수 후보들이 많아 경쟁이 매우 심화되었으나, 양상문에 의해 꾸준히 기회를 받고 있다.
중요한 상황에 대타로 나오면 내야 플라이, 만루기회에서는 외야 플라이, 가끔 경기가 이미 결정난 상황에 안타. 야수 조장이지만 야수들 중에서도 가장 부진한 축에 들고 있다.
다행히도 4월 중후반부터 살짝 회복세에 들어서면서 간간히 적시타를 치고 있다. 4월 21일 경기에서는 승리를 확정짓는 1타점 적시타를 치기도 했다. 23일에도 3안타를 기록. 현재 타율이 무려 3할 7푼 9리까지 올랐다.
채은성이 넓어진 스트라이크존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부진하고, 이병규는 타격부진에 더해 설렁설렁 뛰는 태도로 지탄을 받고 있는 중이라 임훈의 선발경기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5월 11일 삼성전에서 결승타를 때려낸 이후, 선발로 출장하거나 대타로 나와도 죽어라 땅볼만 치면서 경기를 신나게 말아먹는 중이다. 대타로 나왔을 때 이병규와 함께 팬들이 한숨을 쉬게 하는 인물
5월 21일 2번타자로 나와서 3연속 삼진을 당하며, 대타 이병규로 교체되었다.
SK와의 삼연전에서 2사 득점권찬스 대타뜬공 및 만루 대타 병살을 선보이며 팬들이 노이로제에 걸리게 했다. 이제 대타 임훈이라는 4글자가 방송에서 흘러나오면 LG 팬들은 탄식을 흘리고, 상대편 팬들이 임훈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지경까지 갔다.
5월 말 1군에서 말소된 후 시즌 끝까지 1군에 전혀 올라오지 못했다. 최종 성적은 85타석 타출장 0.293/0.318/0.305 ops 0.623. 타율은 나쁘지 않으나, 출루율과 장타율이 .........
2.5.4. 2018 시즌
'주전 우익수가 명확하지 않은 팀 스쿼드를 생각하면 이천웅, 이형종 등과 경쟁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임훈도 이제 선수 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상황이라 경쟁자들보다 나이가 많다는 점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3월 24일 NC 다이노스와의 원정 개막전에서 팀이 1-4로 지던 9회초 대타로 나와 김진성을 상대로 초구 솔로포를 쳤다.
다음 날인 3월 25일 경기에서도 경기 후반 대타로 출장하였으나 외야 뜬공으로 물러났다.
3월 27일 넥센과의 시즌 1차전에 '''5번 타자'''(??????)로 출장했다..... [16] 기록은 5타수 1안타 1득점 2삼진으로 매우 좋지 않았다.
3월 29일 넥센과의 시즌 3차전에서는 9회초 팀이 4:9로 뒤지던 마지막 이닝에서 병살로 경기를 종료시켰다.
3월 30일 잠실 KIA전 8회말 1사 만루상황에서 흔들리는 투수상대로 어이없는 타격으로 포수 파울플라이 아웃되었다. 결국 이 타석에서의 어이없는 결과로 곧바로 이천행을 통보받았다. 현재 2군에서 좋은 타격을 보여주고 있지만 부상 회복중인 이형종이 중견수, 우익수를 다 볼 수 있는데다, 1군 자원들 중 그나마 부진한 선수가 안익훈 뿐이라 기회를 받긴 쉽지 않아 보인다.
4월 18일 다시 1군으로 콜업되었다. 1군 콜업 이후 그래도 나올 때마다 안타 하나씩은 쳐준다. 그러다가 채은성이 제 페이스를 찾은 덕택에 외야진에 김현수-이형종-채은성 주전 라인이 정립되었기에,[17] 스타팅에 포함되는 일 없이 백업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6월 14일 NC전에서 타격감이 좋은 이천웅 대신 대타로 나와서 아웃을 당해버렸다. 그것도 '''병살타'''로.
6월 15일 1군에서 말소되었다.
이 후 2군에서도 한달 가까이 경기에 나오지 않다가 7월 10일 부터 2군 경기에 출장을 시작했다.
8월 중순 1군에 다시 올라왔고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였지만 9월 5일 kt전에서 결승타를 때려내며 팀의 영웅이 되었다.
시즌 종료 후인 10월 25일 은퇴를 선언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바로 LG의 2군 코치로 선임되어 지도자로 새롭게 출발했다.
2020년 1군 타격보조코치로 승격되었다. 선수들과 동료들로부터 아주 평이 좋은 코치라고.
4. 플레이 스타일
홈런은 거의 없지만 2루타, 3루타를 다량으로 양산해내는 중장거리형 타자다. 주력 역시 좋아서[18] 다른 타자들이라면 단타가 될 타구를 장타로 만들기도 했다. 컨택능력 역시 아주 좋으며, 타출갭도 차이가 좀 되어 공도 볼 줄 아는, 전체적으로 테이블 세터에 어울리는 유형의 타자였다. 거기에 빠른 발을 바탕으로 한 수비 범위가 상당히 넓으며, 신일고 시절 투수 경력 덕분인지 어깨도 강견이었다.
위 서술을 보면 알겠지만 중장거리 히터로서 갭파워도 있고, 주력도 좀 되고, 어깨도 좀 되고 컨택도 좀 되며 수비도 괜찮은 모든 면에서 고르게 장점이 있던 선수.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파워도 말 그대로 갭 파워 수준이고, 주력도 빠르지만 도루를 많이 할 수준은 아니며, 컨택도 2할 후반대는 치지만 3할대를 밥먹듯 칠 수준의 정교한 컨택터는 아니며 수비도 전문대수비 정도의 대단한 수비는 아니었으며 어깨도 그럭저럭 좋지만 최상급 강견은 아니었다. 이렇듯 모든 면에서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뭐 하나가 특별히 좋지도 않았던, 임훈만의 특별한 장점이 없는데 그렇다고 종합적인 완성도가 뛰어난 5툴 플레이어도 아니어서 결국 선수 생활 내내 주전을 차지하진 못했고 1.5군 정도로 2군과 백업을 오간 흔하디 흔한 백업 외야수로 커리어를 보냈다. 다른 종목이지만, 축구의 평가 기준으로 치면 '작은 육각형'에 정확히 들어맞는 선수.
이렇듯 장점은 없지만 단점도 특별히 없어 큰 실수없이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는, 있을 때는 티가 안 나지만 막상 없으면 아쉬운 소금같은 좋은 백업 선수였고, 주전 외야수들이 부상을 당하면 그 자리를 꾸역꾸역 메운 것은 언제나 임훈이었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못하는 것도 없어서 대타나 대주자, 대수비로 다용도로 활용이 가능했고 2군을 왔다갔다하면서도 백업 치고는 상당히 많은 경기에 출장할 수 있었다. 선수 본인도 성실하여 어떤 보직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항상 1군과 2군을 오가는 백업 선수였음에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래도록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고, 특별히 스타 선수도 LG트윈스의 프랜차이저도 아니었음에도 은퇴 후 곧바로 LG 트윈스로부터 코치직을 제안받은 것은 바로 이런 다재다능함과 성실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담으로 상술했듯 신일고 시절에는 좌완 에이스이자 호타준족의 3번 타자로 팀을 황금사자기 우승으로 올려놓은 고교야구를 호령하는 스타선수 중 하나였는데, 그런 임훈이 프로에서 그저 그런 선수로 남은 것은 강혁, 김주형 등의 사례와 함께 역시 프로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는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1] 임경완의 FA 보상 선수로 롯데 자이언츠로 갔다가 20일 뒤 정대현의 FA 보상 선수로 원 소속팀이었던 SK 와이번스로 돌아왔다. 롯데 선수로 경기에 출장한 적은 없으나 '''엄연히 20일 간 롯데 선수였다.'''[2] SK에서도 LG에서도 이 곡을 등장곡으로 쓰고 있다.[3] '''날~려라 임!훈! 와이번스 임훈이다(x4)'''[4] '''와이번스 터프가이 임훈 안타 날려라(x2) 오 오오 오오오 오오 와이번스 터프가이 임훈 안타 날려라!'''[5] 임훈이 SK를 떠난 후에는 제이미 로맥의 응원가로 재활용되고 있다.[6] '''무적LG 임! 훈! 워어어어어어어어 임! 훈!'''[7] 일명 스타카토 응원. 반응은 영 좋지 않았고 2016년부터 사실상 폐지되었다. 사실 2011시즌에 심광호가 잠시 이 응원가를 쓴 적이 있다.[8] 무적엘지 임~훈 워어어어어 무적엘지 임~훈 워어어어어 무적엘지 임~훈 워어어어어 치고 달려라 승리를 위하여 X2[9] '''대다수의 학교에서 쉬는 시간 종소리로 쓰는 그 곡 맞다.''' 처음에는 반응은 좋지 않았지만 익숙해지면서 괜찮아 보인다.[10] 참고로 오승환의 등장곡이다.[11] 마운드에는 당시 1학년이던 김상수가 활약했으며, 같은 1학년 남윤희, 2학년 서동환이 있었다.[12] 2010년 타격왕 이대호의 0.364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된다'''![13] 통산 700타수 정도를 쳤으면서 3루타가 이미 12개다. 빠른 발로 유명한 김주찬이 3,600타수동안 친 3루타가 39개, 넓은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이종욱이 2,900타수 동안 3루타가 35개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비율. 현역 선수들 중 임훈보다 3루타 비율이 더 높은 건 1,100타수동안 3루타 '''27개'''를 기록한 정수빈 정도.[14] 득점권, 2사 상황이었다.[15] 통산 4호 홈런.[16] 김현수를 당분간 고정 2번으로 내세우겠다는 류중일에 의해 5번이었던 김현수가 2번으로 가고 빈 5번에 채은성 대신 임훈이 출전한 것. 즉, 타순을 고려하지 않고 선수만 바꿔 라인업을 짠 것이다..[17] 여기서 김현수가 1루수로 나올 때는 이천웅이 대신 들어간다.[18] 근데 극악의 주루 센스 탓에 도루는 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