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베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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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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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베 강 외에도 라인 강, 다뉴브 강도 표시되어 있다.
독일, 체코, 폴란드, 오스트리아를 지나는 총길이 1,091km의 강이다. 다만 폴란드나 오스트리아를 흐르는 본류의 길이는 두 국가를 다 합쳐도 전체의 1%가 안 된다. 독일 영토를 관통하는 길이가 전체의 70% 정도이고 체코가 30% 정도.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지대에 있는 스테티산지를 수원으로 하여 체코 북부, 독일 동부를 흘러 하류에서 함부르크를 지나 북해로 흘러들어간다. 이름의 어원은 '강'을 뜻하는 고대 스칸디나비아어 'Elfr'이다. 'Elfr'가 중세 저지독일어 단어 'Elve'를 거쳐 'Elbe'로 정착된 것이다. 정작 엘베 강 유역에 거주하던 고대 게르만족은 이 강을 'Albis(알비스)'라고 불렀다. 'Albis'라는 단어의 흔적은 엘베 강을 가리키는 고지독일어 단어 'Albiz'에 남아 있다. 독일의 드레스덴, 마그데부르크, 함부르크가 이 강을 끼고 발전한 도시들이다.
2. 역사
엘베 강이 기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사례는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에서이다. 이 저서에서 엘베 강은 Albis[1] 라는 명칭으로 등장한다. 프톨레마이오스와 동시대를 살아간 로마인들도 이 강을 Albis라고 불렀으며, 서기 1세기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엘베 강을 로마 제국의 동쪽 국경으로 삼으려고 시도한다. 20년에 걸친 정복 사업 끝에 성공하는 듯이 보였던 엘베 강 이서지역 제패는 서기 9년 아르미니우스에 의하여 로마군이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물거품이 된다. 토이토부르크 전투 이후 로마 제국은 라인 강 너머로 국경을 물렸고 이후 로마가 멸망할 때까지 라인 강이 로마의 동북지역 국경으로 유지된다. 중간중간에 로마군이 라인 강을 건너 군사작전을 진행한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방전쟁 차원에서 게르만족들을 억누르려고 넘어간 거지, 게르만족을 로마의 속주민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없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서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무주공산이 된 이 일대는 슬라브족들의 차지가 된다. 카롤루스 대제의 프랑크 왕국이 9세기 경 이 지역을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시키지만, 카롤루스 대제는 슬라브족들을 억누르는 대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자치권을 허용하는 온건한 정책을 실시한다. 하지만 카롤루스 대제 사후 프랑크 왕국이 분열되면서 다시 혼란기가 찾아오고, 북부의 색슨족이 남하하여 슬라브족들을 축출한다. 그나마 잔존해있던 슬라브족 주민들 역시 10세기 무렵 진행된 북방 십자군과 동방식민운동으로 인해 게르만족에게 동화되면서 자취를 감춘다.
해운 무역이 중심이 된 중세 시기, 엘베 강은 중요한 무역 루트 중 하나였고 엘베 강을 따라 자리잡은 한자동맹 소속의 도시들이 번영을 누린다. 중세를 지나 근대에 들어서도 엘베 강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았고 1842년에는 서쪽의 베저 강과 북쪽의 발트해를 이어주는 상업용 운하가 개설된다. 이 상업용 운하를 통해 독일 서부의 공업 지대와 독일 동부의 농업 지대가 교역이 더 활발히 진행되면서 독일의 경제 성장이 빨라진 것은 덤. 덧붙여서 내륙지방에 위치한 체코슬로바키아(당시 오스트리아의 속령) 역시 이 운하 덕분에 상공업이 크게 번성한다. 이 운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목숨줄과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할 당시 연합국은 체코슬로바키아를 보호할 목적으로 북해와 만나는 운하의 초입 지역(함부르크 일대)을 체코슬로바키아의 소유로 할 것을 명시한 조항을 베르사유 조약에 넣어 버린다. 그리고 이 소유권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할된 이후에는 체코에게 소유권이 넘어갔으며, 2029년에 소유권이 종료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르던 1945년 4월 29일에는 이 강 유역에 위치한 작은 도시 토르가우(Torgau)에서 미군과 소련군이 최초로 조우하기도 했으며, 종전 후 독일이 분단되면서 엘베 강은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국경선이 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위에서 언급한 상업용 운하가 이 때문에 직격탄을 맞았다. 운하의 일부분이 동독의 영토로 편입되면서 마음대로 상선이 들락날락할 수 없었기 때문. 결국 서독은 운하를 다시 파야만 했다(...). 다만 독일이 통일된 이후로는 기존의 운하를 다시 사용한다고 한다.
3. 여담
- 유럽에서 홍수가 잦은 지역이 바로 이 강의 유역이다. 당장 21세기 들어와서만 세 차례(2002, 2006, 2013)의 대형 홍수가 일어났다. 특히나 지난 2013년의 홍수는 근처의 대도시인 마그데부르크와 라이프치히까지 직격해서 대피령이 떨어지고 해외 언론에도 오르락 내리락 했다.
- 엘베 강 유역은 10세기의 동방식민운동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슬라브인들의 영토였기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사이의 전간기에서 극단적인 폴란드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엘베 강까지 영토를 확장하자!'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물론 폴란드 내부에서조차 이에 대한 반응은 남의 힘으로 독립한 주제에 환빠짓 하냐? 정도. 나중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이 엘베 강까지의 독일 영토를 폴란드에 할양하길 고려해 본 적이 있었다. 실제 엘베 강을 독일-폴란드 국경선으로 삼았다면 독일은 그야말로 동방식민운동 이전의 독일 영토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만약 이렇게 되었다면 베를린마저 폴란드 영토가 된다. 덤으로 현재 폴란드 영토가 독일보다 더 커졌을 테고 말이다.
- 근세 이후로 독일어권은 엘베 강을 기준으로 동부와 서부로 나뉘곤 했다. 서부 지역은 자유주의, 상공업이 발달하여 부르주아 위주의 사회가 성립한 반면 동부 지역은 보수주의,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융커들이 장악했다. 근대 독일 역사에서 승자는 융커였지만 그 대가로 엘베 강 동부 지역은 산업화된 서부 지역에 비해 낙후되고 만다. 그리고 융커가 몰락한 이후에도 이 일대를 통치한 것이 동독이라 서부와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 구간이 넓은 곳과 좁은 곳이 존재하는데, 특히 독일 쪽 넓은 구간에선 유럽 최대 높이의 227m 높이의 송전탑이 설치되어 있다. 가다가 보면 소름끼치게 크다는 의견이 많다.
- 강바닥에 '기근의 돌'이라는 것이 있는데 가장 오래된 기록은 1616년으로 이후 강이 마를 때마다 그 시점을 기록해 두었다.
[1] 고대 게르만어로 강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