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수정

 



'''염수정 추기경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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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추기경'''
'''염수정 안드레아'''
'''廉洙政''' | '''Andrew Yeom Soo-jung'''
[image]
'''출생'''
1943년 12월 5일 (80세)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
(現 경기도 안성시)
'''신장'''
165cm 추정[1]
'''국적'''
대한민국 [image], 바티칸[image][2]
'''재임기간'''
서울대교구
2012년 5월 10일 ~[3]
추기경
2014년 2월 22일 ~[4]
'''착좌'''
서울대교구장
2012년 6월 25일
'''공식 홈페이지'''
#
[image]
'''Amen. Veni, Domine Jesu!'''(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5]
1. 개요
2. 생애
2.1. 추기경 임명
2.2. 한국 추기경 최초 방북
2.3. 난민 지원 노력
3. 평가
4. 논란
4.1. 내란음모혐의 이석기 선처 탄원
4.2. 세월호 유가족 양보 발언 논란
4.3. 명동성당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사건
4.4. 명동성당의 장애인 출입 거부 및 추기경 면담 요청 거부 사건


1. 개요


한국 가톨릭추기경이자 제14대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세례명안드레아이다.

2. 생애


1943년 12월 5일(현재 80세),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미장리(現 안성시)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4대조 할아버지 염석태 베드로가 1850년에 아내 김마리아와 함께 순교하였으며, 일명 옹기장이 순교자라고 칭되기도 하다. 그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집안에서 성직자가 나오기를 기도하며 30년간 매일 성당성지를 순례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넷째 동생 수완과 다섯째 동생 수의가 모두 신부가 되어 '''3형제 신부'''라는 이름으로도 매우 유명했다. 어렸을 적 소학교 시절 어려웠던 친구를 위해 발품을 팔아가며 도시락까지 손수 만들어서 전달했을 정도로 착했던 성품으로 알려져 있다. 집에 돈이 없어 신학교 입학이 어려웠고, 해서 처음 신학교에 입학할 때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1970년 12월 8일[6]사제로 수품되고 서울대교구사제가 된 그는 주로 본당 보좌, 주임신부와 가톨릭대학교 사무처장, 교구 사무처장 등으로 주로 사목의 일선에서 있었다. 주교품을 받은 대부분의 성직자들이 신부 시절 학자로 명망이 높았거나 유학생활을 오래하였던 것에 반해, 그는 사목의 일선에 나서 교회 행정가로서의 명망을 키우게 된다. 서울 일대에 사목경험과 교구 내 행정부문을 담당한것을 빼고 소위 주교들에게 있는 기본 '스펙' 부문을 비추어 봤을 때 특별한 주교품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일선에 인내심이 뛰어나고 항상 끈기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2001년 12월 서울대교구 목동성당 주임신부였던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하여 이한택 요셉 주교[7]와 함께 서울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되었고, 2002년 1월 25일에 주교품을 받았다.
교회 행정전문가의 이력을 살려 염 주교서울대교구 총대리로서 교구의 살림을 도맡아 처리하였으며, 평화방송 이사장, 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회와 교계 여러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선종 후, 그의 뜻을 따라 발족된 사회복지재단인 '바보의 나눔'과 장학재단인 '옹기장학회'의 이사장으로서 김 추기경의 유지를 이어 나가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생명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생명윤리운동에 앞장서 왔고,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의 1대 위원장이기도 하다. 황우석 교수가 한창 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할 때 가톨릭 측의 대표로서 그를 비판하기도 했다.
2012년 5월 10일, 제13대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의 은퇴의사가 받아들여짐에 따라,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하여 제14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염수정 주교는 자동적으로 대주교로 승품되었으며, 2012년 6월 25일 착좌식과 동시에 서울대교구장으로 정식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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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팔리움[8]을 받는 염수정 대주교

2.1. 추기경 임명


프란치스코 교황2014년 1월 12일 정오(현지시각, 한국시각 오후 8시)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안드레아 대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2014년 2월 22일 바티칸 현지에서 추기경 서임식이 거행되었으며,# 이로써 한국 가톨릭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에 이은 3번째 추기경이 탄생하였다.당시 정진석 추기경의 경우 만 80세가 넘어 교황 선출권을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도 새추기경이 필요한 상태였다.염수정 대주교의 추기경 임명은 시기에 알맞게 잘 이루어진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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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비레타와 반지, 명의본당 칙서를 받는 염수정 추기경

2.2. 한국 추기경 최초 방북


2014년 5월 21일 한국 추기경으로선 최초로 방북하여 개성공단에 방문하였다. 하루 일정으로 개성공단에 다녀온 염수정 추기경은 "남과 북이 함께 화합하는 개성공단을 방문하면서 이런 아픔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는 방북 소감을 밝혔다.



2.3. 난민 지원 노력


2018년 대한민국 내의 난민 관련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난민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특히 종교적 난민들이 한국에서 난민지위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 사실이 드러나 화제가 되었다.
8월에는 이미 대법원에서 난민 지위 거부처분취소 기각 판결을 선고받은 이란 출신 청소년을 본인의 주교관으로 불러 “교회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격려하였다.# 추기경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엔난민기구 한국 대표를 접견하기도 하였고, 10월에는 위 이란 출신 청소년의 난민 재심사를 앞두고 같은 학교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고 특별히 국무총리, 법무부장관 등 심사 당국에 서한을 보내 배려를 요청하고 신자들의 기도를 부탁하는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위 학생은 이례적으로 법무부의 재심사를 받아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고, 2018년 10월 19일 위 학생이 소속된 서울 A중학교 학생회는 입장문을 발표하여 아래와 같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더불어 염수정 추기경에 대하여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염수정 추기경님. 수많은 사람을 만나 우리의 사정을 전해주셨습니다.'''

'''행동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참 성직자가 무엇인지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분들이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서울A중학교 학생회, 「이름은 잊혀지고 사건은 기억되어야 합니다. - 이란 친구의 난민 인정을 환영하며」 中


2.4. 평양교구 봉헌


2020년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평양교구장 서리#s-5를 겸하고 있는 염수정 추기경은 평양교구와 북한 교회를 파티마의 성모께 봉헌하였다. 봉헌식에서 낭독한 봉헌문에서 염수정 추기경은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위로해 줄 것과 평양교구와 북한교회에 신앙의 자유를 얻어 줄 것을 파티마의 성모에게 요청하였다.


3. 평가


중도 보수 성향의 고위성직자로서 한국 천주교 내에서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이다. 보수 성향의 신자들은 '좌파 물이 들지 않았다'며 존경하는 반면, 진보 성향의 신자들은 성직자로서 자질이 모자란다며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일반적.[9] 사실 이런 문제는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 이용훈 마티아 주교, 강우일 베드로 주교 등과 같은 진보 성향 고위성직자들에게도 거꾸로 적용된다.

4. 논란



4.1. 내란음모혐의 이석기 선처 탄원


2014년 7월 내란음모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에 넘겨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위해 염수정 추기경이 4대 종단(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의 최고위 성직자들과 함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하여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1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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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수정 추기경이 집무실에서 '내란음모구속자' 가족들을 만나 면담한 후 위로의 기도를 봉헌하는 모습
4대 종단의 지도자들이 특수 혐의의 피고인을 구명하기 위해 일제히 의견을 모은 것도 이례적이나, 그간 천주교 사제들의 정치 참여를 비판하였던 염수정 추기경이 정치적 사안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 또한 이례적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염수정 추기경이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한 경위와 탄원서 전문을 공개하였는데, 그 내용이 지극히 교의적인 논리에만 입각하여 염 추기경이 선처를 호소한 이면에 어떤 정치적 입장이 내재되어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4.2. 세월호 유가족 양보 발언 논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서울대교구청에서 마련된 염수정 추기경과의 기자간담회 중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질의응답 과정에서 문제의 해법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픔을 해결할 때 누가 그 아픔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해 힘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가족들도 어느 선에서는 양보해야 뜻이 합쳐질 것”'''이라고 답한 염 추기경의 발언이 언론과 사회구성원들의 주목을 받으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1 #2 #3
염수정 추기경은 “세월호 참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이냐”는 이어진 질문에 “정치적 논리에 빠지고 싶지 않다”고 선을 그은 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염 추기경의 이와 같은 발언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밝힌 프란치스코 교황의 입장과 상당히 엇갈린 것이라는 각계각층의 해석이 잇따르며 비난성 여론과 질타가 쏟아졌다.
비난 여론을 인식하여 교구 대변인을 통해 “천주교 차원에서 중재 노력을 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으나, 정부와 유가족 사이의 경색된 국면의 와중에 순수한 의도의 중재가 아닌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옹호하고 대변하려는 편향된 의도라고 주장하는 세력도 일부 존재한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낸 김영한비망록에서는, 한국 천주교박근혜 정부로부터 교황 방한 관련 '''각종 지원'''을 받고 있었던 정황과 함께 염수정 추기경의 내란음모혐의자 선처 탄원에 대해선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음이 드러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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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중 ''''교황 관련 각종 지원'''' 언급 (2014.7.23)ⓒ민중의소리
이후 이어진 염수정 추기경의 세월호 유가족 양보 발언에 대하여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는 내용의 메모가 나와 박근혜 정부가 천주교의 대외적 행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지원을 통해 컨트롤을 시도하려 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도 일각에서 제기하였다.# ('''염 추기경 發言, 같은 자세를 타 종교지도자도 취하도록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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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 중 2014년 8월 27일자 메모 (자료제공=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4.3. 명동성당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사건


명동성당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사건 문서 참조.

4.4. 명동성당의 장애인 출입 거부 및 추기경 면담 요청 거부 사건


명동성당의 장애인 출입 거부 및 추기경 면담 요청 거부 사건 문서 참조.


[1] 정세균(167cm)보다 작고,박근혜(162cm)보다 크다[2] 가톨릭 추기경들은 바티칸 시국시민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복수국적이 허용된다.[3] 염수정 추기경의 경우 2021년 기준 만77세로 이미 교구장 주교 은퇴연령인 만75세를 훨씬 넘긴 상황이지만 2014년 5월부터 맡아온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위원 직무가 만 80세까지 연장됨에 따라 만80세가 되는 2023년 이후로 교구장에서 물러날 예정이다.전임 교구장이었던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 역시 이와 같은 이유로 교황 선출권을 상실한 만80세에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바 있다.[4] 추기경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선종때까지 직책을 유지한다.[5] 요한묵시록 22장 20절[6] 사제 수품 동기로는 임덕일 아마또 신부, 박용일 타데오 신부, 김충수 보니파시오 신부가 있다.[7] 천주교 의정부교구 초대 교구장[8] 대주교(대교구장)에 해당하는 경우 받게 된다.[9] 이는 전임교구장이었던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