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역
午川驛 / Ocheon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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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폐선된 수려선의 철도역.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오천리 56-74(도로명주소: 경기 이천시 마장면 오천로 55)(舊 경기도 이천군 마장면 오천리)에 일대에 위치해 있었다.
수려선의 역들은 지금도 버스가 제대로 다니지 않는, 교통이 열악한 지역에 놓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마장면 일대도 지금은 용인시, 이천시 시가지 등으로 가는 버스가 자주 다니지만, 당시에는 개발도 안 되어 있던 지역이라 교통편이 좋지 못했다. 오천리가 거의 옛날에 지어진 건물이 대부분인 데다, 새로 올라간 고층 건물도 몇 채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해보자.
그래서, 수려선이 수요 부족으로 폐선 얘기가 스멀스멀 나올 때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1972년 4월 1일에 수려선이 폐선되면서 역 자체는 폐역된 상태나, 역사는 민간에게 넘어가서 2015년 11월까지 남아있었다. 현재는 철거된 상태.
이 역은 경기광주 버스 12, 용인 버스 3, 용인 버스 103을 타고 오천리 정류소에서 내린 후, 쭉 가면 왼쪽에 있었다. 경기광주 버스 12의 경우에는 이천종합버스터미널 10번 홈에서 타면 됐다.
이제 철거됐으니 로드뷰로 보자. 다만, 2016년 11월 이전으로 설정해야 철거 전 역 건물을 볼 수 있다.
1932년 2월 17일에 열차가 무개화차와 충돌 후 전복되어, 승객 15명이 부상을 당한 사고가 있었다.
2. 역사(驛舍)
대한민국 협궤 역사 가운데 원형 그대로 가장 오래 남아있었던 건물이었고,[1] '''수려선에서 끝까지 살아남았었던 역사'''이기도 하다.[2]
역사 자체는 위에서도 보이듯, 경춘선 경강역 또는 경원선 전곡역과 비슷한 역사로 존재했었다. 협궤역사가 그러하듯, 규모도 그렇게 크진 않았으며, 간이역 정도 되는 크기였다. 다만, 역사만 그대로 존재했을 뿐. 이용객은 오천리 마을 한가운데에 있어서 이용객 자체는 매우 많았다고. 오죽하면, 수려선이 폐역되는데, 서울로 가서 시위할 정도였다고. 특히, 군장병들이 매우 많이 이용했다고 알려졌다. 오죽하면, 주민들 중에서는 '''"군복무 시절 수여선[3] 을 이용하면서 휴가를 나왔다."'''고 할 정도.
이 역사가 2015년 11월까지 살아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사가 폐역되고 난 이후부터 계속 민가로 쓰였고, 후에 전기공업사가 들어섰기 때문. 지역번호가 0336으로 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회사를 이전한 지가 좀 된 듯. 지역번호가 세 자리로 바뀐 때가 2000년 7월이었으니[4] , '''최소 16년 이상 저렇게 방치되어 있었다는 얘기.''' 재미있는 건, 이 역사 건물 소유자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아니고 민간인이라고.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오천역 역사가 민간에게 넘어간 지 30년도 더 됐다고 한다. 2017년 기준으로 수려선이 폐선된 지가 45년이니 역사가 폐역된 지 얼마 안 돼서 이 건물을 매입한 거나 마찬가지.
1970년대에 폐역한다는 소리가 나오면서, 역 주민들은 끝까지 수려선의 폐선을 반대했다. 이 역이 없어지면, '''오천리 자체의 생활권이 마을에서 묶여버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천리는 이천시와 여주시 가는 길목에 있다. 그 흔한 고층건물 하나 없는 동네. 여긴 행정구역만 이천시에 속해있을 뿐, 여주시는 물론이고, 이천시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는 오지 중의 오지다. 이런 성난 주민들을 달래겠다고 2000년대 경부터 등장한 것이 바로 이천 마장 택지지구. 문제는 이천 마장 택지지구가 건설되는 와중에도, 이 동네로 들어오는 시외버스 8424의 요금이 수원까지 무려 3,200원으로 비싼 데다, 시내버스 또한 자주 들어오질 않는다. 이천과 용인을 왔다 갔다 하는 3번과 이천과 청강문화산업대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12번 정도가 그나마 자주 다니고 있는 버스인데, 두 노선의 배차를 합치면 짧아야 20분 정도, 길면 30~40분 이상이다. 쟤네 없어지면, 103번이 전부인데, 하루에 8번 다닌다. 주민들은 경강선이 수려선 시절의 몇 몇 역을 거쳐갔기 때문에, 내심 오천리 근처를 통과해주길 바라고 있었지만, 경강선은 유산리를 살짝 훑고, 광주시로 넘어가는 구조라서, 동네 발전에도 지장이 있을 듯. 이천마장 택지개발지구가 오천역이 있던 자리를 밀어버리고 세우는 건데도 불구하고, 이천 호반 베르디움이 1000세대(정확히는 1, 2차 합쳐서 985세대) 가까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런데도, 지금 이 쪽으로 지나갈 교통편은 확정된 게 없다. [5]
한국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수려선의 역사를 재건한 시기는 대략 1950년대 중후반으로, 같은 시기에 경춘선의 청평역, 경의선의 수색역 등이 지어졌다. 이 역사들의 공통점은 모두 빨간색 벽돌의 건물이라는 점으로, 보존 가치는 충분했으나, 청평역과 수색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하고 철거된 전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역 보존 계획이 없다. 그나마 남아 있는 빨간 벽돌 건물은 경강역 구 역사 정도..
일반 회사에게 임대되어 역명 글자와 역사를 제외하고 나면, 내부 모습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인 수인선 구 송도역[6] 에 비해, 오천역은 거의 원형 그대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민간 건물로 활용되면서 직원실로 들어가는 출입문과 역사 문이 모두 조금씩 개량된 흔적은 있지만, 빨간벽돌 건물 자체와 내부는 거의 그대로여서 보존 가치는 존재했다. 만일 철거된 오천역 역사가 폐역되기 직전의 상태로 복원된다면, 수려선을 기념하는 역사관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새로 개발되고 있는 이천 마장 택지지구도 홍보할 수 있을 것이다. 철거되었지만, 다른 곳으로 이설되어 보존되고 있는 반야월역의 경우가 그렇다.
3. 현재
이천 마장 택지개발지구 사업을 추진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에 따르면, 2013년 9월에 토지보상이 완료되어 2015년 12월 쯤 철거된다고 한다. 이천시나 지역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이 역의 보존을 지속적으로 건의하게 된다면, 이 역의 보존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7]
2015년 11월 19일 기준으로 역사 철거 준비 직업으로 주변에 바리케이트를 쳐놓았으며 건물이 올해를 넘기기엔 힘들것 같다. 오천역 보존과 관련해서 기사도 뜬거 같지만 큰 주목을 받진 못한 듯.[8]
2015년 11월 30일 기준으로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었다고 하니 앞으로 오천역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이 역이 폐역하면서 오천리의 교통은 40년이 넘은 지난 현재까지도 버스에 의존하고 있다. 구 수려선이 전부 교통량 과다에 시달리는 데다, 영동고속도로의 미칠듯한 정체를 생각해본다면...
참고로 오천역을 보존하려던 철갤러가 있었으며 결론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위에 알려진 것처럼 이 역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1] 수인선 송도역도 남아있기는 한데 많이 개조되었다. 역사 자체가 공업사 건물로 쓰이는 지라, 역사 자체는 남아있다. 다만, '''송 도'''라는 두 글자의 흔적만 있을 뿐이고, 역사의 모습은 많이 훼손 되어버린 상태다. 역무실 사무실이 있던 자리가 지금은 트럭이 드나든다. 앞모습은 거의 그대로지만.. 구 송도역이 수도권 전철 수인선을 바라보는 것처럼 되어 있다. 인천광역시에서 이 역사를 복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2] 여주역#s-5의 역 건물이 개조되어 여주시민회관으로 쓰이고 있다는 주장이 과거에 있었으나, 확인 결과 낭설이었다. 여주역 구역사는 남창역처럼 일제강점기 시절에 지어진 소규모 목조 철도 역사의 건물이었으며, 여주시민회관(구 여주군민회관)이 '''그 자리에 그대로 세워졌다.''' 물론 그 곳이 시유지이며, 용도 변경으로 지어지긴 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경의선 서강역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끝까지 살아남았다가 철거 되었다. 그 당시 여주는 군급 마을이었고, 여주역 문서에서도 보듯이, 그렇게 발전된 도시는 아니였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10만 명에서 웃도는 수준. 1970년에 99,135명이었고, 2019년 1월에도 111,368명으로 2만 명이 증가한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지도 않은 수준.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됐음에도 불구하고, 숨막히는 정체 때문에 인구가 늘지 않는 것도 있다. 수려선이 폐선된 시기는 이 보다 훨씬 전인 '''1972년'''이었다. 사실 현재 수려선 일대의 교통량을 생각해본다면, 수려선을 그대로 보존하고, 교외선 역들처럼 운행중지 처리만 하고, 추후 표준궤로 개량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3] 이 당시에는 두음법칙이 허용되었던 시기가 아니였다. 두음법칙이 적용된 건 90년대부터.[4] 물론 그 때 모두 바뀌었던 것은 아니며, 1년 이후로 간판까지 모두 바뀌었다.[5] 이미 3번과 12번은 표교2리의 롯데아울렛에 가는 이천시민들 실어나른답시고 미어터지는 상황이라, 증차 요구가 계속되는 상황이다. 뭣보다 12번은 사실상 청강문화대생 통학버스나 다름 없는 지라..[6] 말 그대로 역 모습만 갖춰져 있고, 대합실과 역무원실 사이의 벽이 허물어져 있다. 공업사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작업장 확보를 위해 그런 것이라 추정된다. 실제로 수인선 송도역은 그렇게 큰 역사는 아니였다. 지금에서야, 개발이 되어서 사람이 많지, 그 당시에 굴러가고 있던 인근의 송도유원지를 빼고 주위에는 말그대로 허허벌판 수준이었기에, 역 규모는 작은 편이었다. 수인선 뿐만 아니라, 한국에 존재했던 협궤 역사가 다 그러했다. 수원역의 협궤역사가 상대적으로 작게 지어진 걸 생각해보자.[7] 실제로 일부 철갤러들이 이 역을 보존해달라고 건의를 했었는데, LH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아고라에서도 서명운동이 올라왔었다.[8] 참고로 이 기사는 나무위키 문서에 올려진 내용을 일부분 참고했다. 거의 그냥 가져다 쓴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