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번호
1. 개요
전화번호 중 각 지역을 분리하기 위한 번호. 본 문서에서는 주로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지역번호를 다루고 있다. 대한민국 지역번호 획정은 KT가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시에 따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전화하려면 반드시 지역번호를 눌러야 한다. 예전에는 같은 지역으로 전화할 때 지역번호를 넣으면 전화번호를 다시 확인하라고 하면서 끊어졌었다. 한편 휴대전화의 경우 자기가 어느 지역에 있든지간에 지역번호를 눌러야 한다.
2. 역사
전화 보급률이 상당히 낮았고, 장거리 전화는 교환원을 통해야 했던 시절에는 당연히 지역번호라는 것이 없었다. 물론 당시에도 통화권 개념은 있어서 시내전화와 시외전화는 구분되었다. 이후 1970년대부터 국번이 등장하였다.
여기서 지역번호는 해당 지역마다 같은 번호를 부여할 경우 혼동을 막기 위해 매기는 번호였다. 즉, 서울에 123-4567이 있다고 하더라도, 강원도나 인천에도 123-4567이 있을 수 있게 해서, 번호 부족으로 인한 폐해를 막기 위하여 등장하였다. 특히 1980년 DDD(전자교환시스템)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기존 국번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일종의 시/군 단위 지역코드를 배정하였던 것.
1980년대~90년대의 지역번호는 서울(02)과 여타 직할시(광역시), 제주도(064)[1] 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시군별로''' 네댓 자리 수의 전화 번호가 있었다. 그러나 2000년 7월쯤에 지역에 따라 혼재하던 두 자리 수 국번과 세 자리 수 국번을 (세 자리수 국번)+(네 자리 수 번호)로 통일하는 과정에서 지역번호도 세 자리 수로 개정해서, 서울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지역번호는 세 자리 수로 줄어서 이제는 031, 033 등으로 바뀌었다. 이는 복잡한 것도 있지만 수도권 및 각 대도시권의 팽창으로 인한 인근지역 간의 전화통화 수요 급증 등으로 시내통화요금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행해진 변화이다.[2]
왜 02X 번호가 없고 서울 외 지역은 03X부터 시작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많이 제기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02X는 이미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서울시내 3자리수 국번체계가 개념상 02X에서 시작된 것이다. 즉, 과거 한양대학교의 220 국번 전화번호를 예로 들면 022-20-XXXX=02-220-XXXX라는 개념으로 부여된 것.
3. 범위
3.1. 행정구역과의 차이
행정구역과 지역번호가 100%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같은 교환국 내에 물리는 전화선로의 특성 때문으로, 어느 지역에 전화를 개설할 때 주변의 전화국에 연결하는데 전화국의 할당 지역이 행정구역을 경계로 딱딱 나눠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는 교환기가 디지털 방식이라 말 그대로 아무렇게나 번호를 줘도 문제가 없지만, 예전 수동 교환 및 아날로그 교환기 때는 효율성 문제로 전화국에 할당된 지역번호와 국번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현재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대도시 인접 지역이 시군 단위가 아니라 읍면동 단위로 통화권이 엇나간 경우라면 대부분 이런 경우다. 이런 경우 보통 지역번호를 간판에 명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같은 경기도에 속해 있는데도 부천시나 안산시 대부도의 경우 인천과 동일한 032를 사용한다.
대도시 부근 위성도시(읍면동이 아닌, 시 단위 기준) 중에 소속 도의 번호가 아닌 인접 대도시의 번호를 쓰는 곳으로, 서울통화권의 광명과 과천, 인천통화권의 부천, 대전통화권의 계룡, 대구통화권의 경산이 있다. 그 중에 전화 보급 과정에서 동일 생활권이라 해서 1970년대에 인접 대도시 통화권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된 곳은 광명, 부천, 경산이고, 정부기관의 업무 편의를 위해 특별히 편입된 곳은 과천(1985년에 안양통화권에서 서울통화권으로 변경), 계룡(1996년에 논산통화권에서 대전통화권으로 변경)이다.
3.2. 통화 권역과의 차이
2000년 지역번호 개편으로 네 자리 지역번호들이 세 자리로 통폐합되었지만 종전의 통화권역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의 031의 경우, 지역번호 자체는 각 시군별 네 자리에서 경기도의 031로 통합되었지만 안양 통화권, 안산 통화권, 성남 통화권 등 기존 통화권역은 유지되고 있다는 것. 따라서 같은 도 내에 있는 시군이어도 평택-가평 간 통화같이 장거리이면 당연히 시외통화 요금이 부과된다. 안양-안산 간 통화는 엄연히 시외전화이지만 인접지역이라 시내통화 요금이 부과된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시[4] 사실 인접지역 시내전화요금 적용이라는 부분도 엄밀히 따지면 틀린 얘기다. 시외통화 1구간(인접통화권 또는 30킬로미터 이내 근거리) 요금을 시내통화 요금에 준하여 책정했을 뿐이다.
거리 책정에서 서울은 KT구로지사[5] 가 기준인데, 이는 1996년에 수원시의 국회의원들[6] 의 로비로 한국통신이 해당 지역과 서울 간의 통화에 시내요금을 적용시키고자 그 기준점을 혜화전화국에서 구로전화국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참고 기사
4. 기타
해외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 때는 지역번호, 휴대폰번호 맨 앞의 0을 빼고 눌러야 한다. 즉 서울로 전화를 건다면 대한민국 국가번호 82를 넣어서 82-2-XXX-XXXX의 형식이 되는 것.
서울/광명/과천 등의 02 번호를 사용하는 지역 외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 전화(02)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잘 받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온갖 쓸데없는 스팸전화, 보이스피싱, 귀찮은 여론조사 같은 것들이 주로 02 지역번호를 달고 걸려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에 사는 친구나 친척들은 어차피 번호를 알거나 휴대폰 전화번호부에 등록이 되어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지방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계속 안 받는다면 모르는 서울 번호가 찍혀서 일부러 안받는 것일 확률이 매우 높다. 문자로 본인이 누구인지 밝히거나, 본인 휴대전화를 이용해 전화를 걸자. 단, 서울 소재 대학에 수시나 정시로 원서를 넣었는데 다 떨어져 '''추가합격''' 전화를 기다리는 수험생들은 02 번호를 학수고대하곤 한다.
5. 지역번호 편입 논의
5.1. 1970년대 서울 인근
시외요금과 시내요금의 차이가 컸던(1985년 기준 3분당 시내통화요금 20원, 최근접지 시외통화요금 270원) 시절에는 서울전화는 그 자체로 특혜나 다름없었다. 서울전화 구역에 편입된다는 것은 서울시 행정구역 편입에 못지 않은 특혜와 다름 없었다.
시흥군 서면(현 광명시)과 고양군 신도면(현 고양시 삼송, 화전 지역)의 경우는 서울전화망이 광역화되면서(서울 시계내 변두리 지역에도 서울전화가 개설되면서) 자연스럽게 서울전화로 편입된 케이스. 다만 하남시 일부(옛 광주군 서부면 일부 지역)에 해당되는 감북동, 초이동 일대는 당시에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생활권이 사실상 송파구, 강동구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울전화 권역으로 편입되었다.[7] 시흥군 서면 철산리, 광명리, 고양군 신도면+원당면 신원리, 광주군 서부면 초이리가 확정적으로 서울전화로 편입된 것은 1978년 8월 1일(체신부 고시 제476호). '''서울시 신규편입지들이 온전한 서울통화권에 편입된 것은 1970년부터 1978년까지의 기간 동안이었고, 일부 경기도 지역(광명, 고양 신도, 서하남)도 서울변두리와 같이 서울전화로 편입되었다.''' 시흥군 서면, 고양군 신도면, 광주군 서부면 일부지역의 서울전화 편입이 완료된 것은 1980년 수도권 전화 광역화 계획이 실행되면서다. 이쯤 되면 '''묻지마식'''[8] 서울전화 편입인 셈. 해당 지역이 서울전화로 편입되기 이전에는 읍면 단위의 자체 통화권(시흥군 소하읍 통화권, 광주군 서부면 통화권 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춘궁동 등도 서부면이었지만 서울통화권이 아닌 것은 해당 지역은 서부면 통화권이 아닌, 신장 통화권이었기 때문이다. 고양군 신도면 통화권은 신도면의 중심지였던 구파발이 1973년 서울로 편입되면서 이미 소멸된 것으로 추정되며, 소하읍 통화권은 해당 통화권 관할 전화국이었던 광명우체국이 서울통화권(개봉전화국) 지역인 광명리 소재였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1980년에 서울통화권으로 흡수된 것으로 보인다. 1980년 서울통화권 확장 계획안 문서가 현존하지 않아 광주군 서부면 통화권의 서울전화 흡수 편입의 근거는 알 수 없게되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구역이 아니었는데도 아마 지형적, 생활권상 문제때문에 편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에는 서울시내 변두리[9] 의 경우 전화가 설치안되었던 가구나 업체가 전화 신규가입하면 그 주소지가 서울전화로 편입되거나 체신부 고시를 통해 서울시내전화 (준)가입구역으로 설정하는 식으로 서울통화권 확장이 이루어졌다. 여담으로 영등포가 서울전화에 편입된 것은 1960년경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영등포 - 서울 간 전화에는 시외요금이 부과되었다.
일부 경기도 지역의 서울전화 편입이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구역과 연관이 크지 않냐는 의견이 있지만, 서울도시계획에 포함되었던 과천, 구리 갈매, 남양주 별내, 부천 오정은 서울전화 구역에서 배제되어 있었고(그나마 과천은 정부청사 버프로 1985년에야 서울전화 편입)[10] , 광명 남부(소하, 학온)와 고양 신원동(구 원당읍 소속), 서하남은 엄밀히 말해 서울도시계획에 포함 안되었으나 일찍이 서울전화로 편입되었다. '''서울통화권 편입과 서울시 도시계획구역 여부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는 것.'''
이외에 옥길동(부천시 옥길동, 광명시 옥길동 모두 포함)[11] , 과림동(행정동 과림동이 아닌 법정동 과림동 기준)[12] 은 1978년에, 역곡동 일부(온수공단지역)[13] 는 1980년에, 구리 아천동[14] 일부는 1981년에 서울전화로 편입. 서울전화를 쓰는 안양 석수동 일부는 원래 광명 소하동의 월경지였다가 1987년 행정구역 경계 조정으로 안양으로 편입된 동네다.
5.1.1. 지역별 서울전화 편입 시기
- 영등포(1963년 서울대확장 이전의 영등포구 영역): 1960년
- 1963년 서울 신규편입지 (개봉동, 시흥동, 화곡동, 대치동, 삼성동, 상계동 등): 1970년 3월 21일[15] ~1978년 8월 1일[16]
- 경기도 광명시 광명동·철산동: 1970년 12월 1일[17] ~1978년 8월 1일[18]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구 신도읍, 화전읍 지역[19] 및 신원동[20] , 하남시 초이동: 1970년대초~1978년 8월 1일[21]
- 경기도 부천시 옥길동[22] , 광명시 옥길동, 시흥시 과림동[23] : 1978년 10월 1일 (편입 이전에는 소래면 통화권의 일부[24] )
-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일부 (특히 온수산업단지): 1980년 (편입 이전에는 인천 통화권 032의 일부)
-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노온사동·가학동·소하동·일직동,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 일부(1987년 이전 광명시 소하동 일부였던 곳), 하남시 감일동·감이동·학암동·광암동·감북동·초일동(일부)[25] : 1980년 (서울통화권으로의 흡수와 동시에 시흥군 소하읍 통화권·광주군 서부면 통화권 폐지) 참고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일부: 1981년 9월 1일 (편입 이전에는 구리 통화권 0346의 일부)
- 경기도 과천시 일원: 1985년 8월 1일 (편입 이전에는 안양 통화권 0343의 일부)
- : 계획 초기에 잠깐 검토했으나 여러 문제점이 커서 서울통화권 편입 계획 전면 폐기
-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일부 (수락리버시티): 2009년 8월 수락리버시티 완공으로 서울통화권에 슬그머니 편입된 것으로 추정.
5.2. 1980년대, 1990년대의 경기도 지역
1985년에 정부과천청사 문제로 시흥군 과천면(현 과천시)을 서울전화로 인위적으로 편입(서울전화 편입 이전에는 과천은 안양통화권에 속했음)시키면서 타 경기 지역과의 형평성, 전화요금 수입 감소 등의 문제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다.[26] 한때 서울시 행정구역 편입설이 나돌았던 과천조차도 정부청사 버프로 '''겨우'''[27] 서울전화 편입에 성공한 것. 물론 과천도 지역주민 차원의 서울전화 편입 요구가 있긴 했다. 당시에 서울전화로 편입된 과천 전화회선 수는 2만여개였다.분당전화의 서울전화로의 편입요청 사항은 현실적으로 서울전화가 과포화 상태에 다다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 인접도시들의 서울전화 편입 요구가 너무 많아 '''분당전화의 서울전화 편입은 불가한 것으로 검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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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도 부천시, 안양시, 고양시, 구리시 등지에서 총선, 지방선거 후보들의 공약으로 '서울전화 편입' 떡밥이 자주 나왔었다. 1992년 대선에서는 정주영 후보가 미금시(현 남양주시)의 서울전화 편입을 공약을 내걸었을 지경.# 분당신도시 건설 당시에도 주민들은 서울전화 편입을 요구했지만 건설부에서 서울 인접 위성도시들과의 형평성과 서울전화 포화문제를 근거로 거절한 적이 있다. 그보다 앞서 정부는 1기 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은 없다고 밝힌 적도 있었다.기사 사실 1기 신도시 계획 초기에는 이들 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을 잠깐 고려한 적이 있었지만[28] 상기한 여러가지 문제점 때문에 분당, 일산 등지의 서울전화 편입 계획은 일찍이 전면 폐기되었다. 분당신도시의 서울전화 편입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당시 정부 답변
물론 광명, 과천, 고양 신도의 서울전화 편입은 서울시 행정편입 배제에 따른 일종의 보상책이었다는 카더라가 있을 정도로[29] , 서울시 도시계획과 전혀 무관하게 개발·발전된 도시들인 분당, 안양 등지의 서울전화 편입은 정부 입장에서도 들어줄 수 없는 사항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1990년대까지 수도권 곳곳에서 일어난 서울전화 편입 요구 떡밥의 직접적인 계기는 1985년 과천시의 서울전화 편입 탓이다(...).
정리하자면, 위성도시 중에 광명시는 서울전화를 거저 얻어먹은 곳이고(...), 과천시는 정부과천청사 때문에 특별히 서울전화로 편입된 곳이다.
오늘날 서울특별시와 인접 위성도시 간에 시내요금으로 통화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부가 도시권 광역화의 현실을 반영하여 근교 주민들의 편익 증진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위성도시(서울전화로 이미 편입된 과천, 광명 제외) 주민들의 서울전화 편입 요구를 억제하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한 것이기도 하다. 1991년 당시 통신연구소 연구문서 (PDF파일 기준 페이지 378-383 참조)에서도 서울 근교지역의 온전한 서울통화권(02) 편입보다는 시외요금체계 합리화가 더 합리적이라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30][31] 위성도시들까지 서울시내 통화요금 권역으로 묶어놓으면 서울전화 편입 요구의 가장 큰 근거였던 '시외통화요금 부담 해소'라는 명분이 사라진 셈이니.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 연구문서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수도권의 통화요금권이 광역화 된 것은 1993년 7월 1일이다.기사 그 이전에도 인접지역 시외통화 요금 합리화 개편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었다. 다만, 1996년 정부는 적자 등의 이유로 서울 인접지역으로의 통화 요금을 다시 인상(1구간 시외전화에 대해 시내요금 적용 중지)하려고 했지만 수도권 신도시 주민들의 반발 때문에 이 계획을 백지화한 흑역사가 있기도 했다.
서울통화권(02 쓰는 지역)의 확장은 서울지역 국번이 이미 과포화된 상황에서 031, 032 통화권까지 02로 통합하면 국번을 죄다 갈아엎어야 하는 문제[32] 가 크기 때문에 경기도와 인천광역시가 서울특별도로 광역대통합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보다 더 어려운 일인 셈.
다만 1999년에는 하남시 전역의 서울전화 편입이 시도되었는데 추가 가입비 부담이라는 의외의 복병 때문에 결국에 무산되었다고 한다. 기사
미래부 질의답변에 따르면 근래 15년 간 경기, 인천 주민의 서울전화 편입 요구 민원이 없었다고 한다. 아마도 2000년대 이후부터 핸드폰의 비약적인 발달로 집전화를 쓰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일듯하다.
휴대폰, 인터넷 등의 매체 발달로[33] 유선전화의 위상이 과거 같지 않기에 02, 031 여부에 덜 의미를 두는 추세라고 하지만, 아직도 부동산 업계 일각에서는 02 프리미엄이 있다는 말이 있다. 특히 2000년대 후반 이후로 인서울 트렌드가 심해져 경기도 외곽 신도시가 각광을 받던 과거와 달리 서울 최근접 지역이 인서울 열풍의 반사이익을 얻으면서 그 프리미엄이 지금까지 남아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6. 목록
6.1. 현행
일반전화 지역번호는 2000년 7월 2일 자로 시행되었다.
경상도를 제외하고 0X2 지역번호는 모두 그 도 출신의 광역시, 0X1과 0X3은 도의 번호라는 특징이 있다. 그 예외인 경상도는 도내에 광역시가 3개이다 보니 051(부산)[41] , 052(울산), 053(대구) 등 앞번호를 부여받았다.
- 07X[42] , 034, 035, 09X가 없는 이유는 남북통일 이후 평안도와 함경도, 황해도에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다.
- 08X(080 제외)는 시외전화의 사업자 식별번호이다. 080은 수신자부담 무료전화, 081은 KT의 시외전화 사업자 식별번호로 사전 선택을 082(LG U+)로 한 가입자가 지역번호 앞에 081을 누르고 걸면 KT의 시외전화망을 사용할 수 있다. 082 데이콤[43] 이 있다.
- 060[44] 은 ARS, 운세, 생활 정보 등에 이용된다. 유용한 것도 있어서 매니아층까지 있는데 그 대신에 통화료가 비싸다. 심한 건 30초에 1,000원(!)이 나가기도 한다.
- 050X라는 번호도 있는데, 이는 가상번호로 실제로 홈쇼핑 등에서 상품을 주문할 때 안심번호 서비스를 신청하면 050X로 시작하는 번호를 부여받을 수 있고, 일부 온라인 팩스도 이 번호를 사용한다.
6.1.1. 세부
세부적으로는 아래와 같다.
6.2. 2000년 7월 1일 이전
행정구역 명칭과 지역번호 목록, 통화권 구역은 2000년 7월 1일 번호개편 직전 기준(편의상 2000년 1월 기준)으로 정리하였다. 통화권 구역은 현재 기준으로의 수정 금지. 아래 지역번호 체계는 1983년부터(물론 완전 자동화된 것은 1987년 12월이라서 그 이전에는 일부 지역은 번호가 부여되지 않았다. 서울 02는 1970년대 후반부터 쓰였다) 2000년까지 쓰였던 것이다.
참고로 1982년까지 쓰였던 것은 이것과 좀 많이 달랐고 (예: 안양 1343 → 0343), 1980년경까지는 예를 들어 서울에서 인천으로 전화를 걸 때의 지역번호(132)와 수원에서 인천으로 전화걸 때의 지역번호(032)가 다르기도 했다(...). 또한 통화권역이 1987년 이전에는 읍면 단위가 갈려 읍면이 달라 시외전화 취급되는 골때리는 경우가 많았다. 통화권 자체가 읍면 단위로 파편화되었던 셈이라 당시 통화권은 시읍면 체제에 가까웠다. 통화권이 시읍면 단위로 파편화된 문제는 1987년 12월 시군 단위 통화권으로의 개편이 완료되면서 해소되었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광명시 남부지역의 소하읍 통화권과 하남시 일부의 서부면 통화권은 서울통화권에, 지금의 경산시(하양 지역 제외)와 달성군은 대구통화권에, 옹진군은 읍면별 통화권에서 인천통화권으로 편입되었다. 부천시와 옛 대덕군 지역은 1970년대에 이미 각각 인천시내통화권, 대전시내통화권에 편입된 상태였다. 광명시 북부와 고양시 구 신도면 지역도 1970년대 초반부터 일찍이 서울시내통화권 편입.
여담으로 2005년 12월 30일부로 연기 통화권에서 청주 통화권으로 바뀐 강외면(현 오송읍)의 사례도 있다. 관련 기사
아래 도표의 내용(행정구역 명칭, 통화권 명칭 및 구역)은 2000년 1월을 기준으로 작성할 것.
통화권 행정구역(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고시 2013-60호)
7. 외국
전화 회선 수가 많지 않은 국가인 경우 전화번호 자체를 전국적으로 부여하여 지역번호를 전화번호에 합친 형태를 사용하기도 한다.
멕시코 등 일부 국가에서는 핸드폰 번호도 지역번호가 부여된다. 멕시코 시티에서 가입한 휴대폰은 55, 몬테레이에서 가입한 휴대폰은 81, 쿠에르나바카에서 가입한 휴대폰은 777 등등으로 부여되며, 쿠에르나바카에서 가입한 사람의 휴대폰 번호는 일반전화와 마찬가지로 777-XXX-XXXX가 된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일례로 워싱턴 D.C.에서 개통한 휴대폰 번호는 202-abc-defg이며 로스엔젤레스에서 개통한 휴대폰 번호는 213-abc-defg인 식이다.
7.1. 북한
북한에서는 대략 이렇다. 국가번호는 +850이지만 대한민국에서 연결은 되지 않는다. 스카이프로 연결은 되는 듯 하나 이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 등에 저촉될 수 있다.
개성공단 폐쇄 이전에 개성공단의 지역번호가 뜬금없이 049였던 이유도 이 북한 지역번호 때문.
재미있게도, 북한판 서울과 경기도라 할 수 있는 평양과 평안남도의 지역번호도 각각 02와 031이다. 아쉽게도 북한판 인천으로 볼수 있는 남포는 032가 아니다.
8. 관련 문서
[1] 제주도도 한때 제주시(0641), 서귀포시(0642), 북제주군(0644), 남제주군(0645)로 세분화되었으나 1986년 064로 일괄 통합되었다.[2] 이 제도를 도입한 진짜 목적은 서울 근교 위성도시 주민들의 서울 전화 편입 요구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3] 광명 자체가 관할 전화국이 서울에 산재되어 있어서 완벽히 서울통화권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4] 마찬가지로 서울-부천 간 통화도 시내전화 요금이 적용되는 시외통화다. 반면에 서울-광명 간 통화는 완전한 서울시내통화이다.[3] 마찬가지로 과천-광명 간 통화도 서울시내통화. 반대로 통화권이 다른 용인시 처인구와 기흥구 사이의 통화는 시외통화로 구분된다.[5] 이름과 달리 구로구가 아닌 관악구 신림동(조원동)에 있다. 그나마 구로구하고 근접한 곳에 있긴 하다.[6] 신한국당 소속 김인영, 남평우, 이호정 의원.[7] 서울시계내 미개발지가 아직도 더러 있던 시절에도 이들 지역은 확실하게 서울 생활권이었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8] 당시 광명, 고양 신도, 서하남 주민들은 서울전화 편입요구 시위 농성은 커녕 가만히 앉아서 서울전화를 얻었다. [9] 여기에는 지금의 강남도 포함된다. 강남은 현재는 서울의 3대 도심 중 하나가 되었지만, 당시 강남은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된 변두리였다.[10] 관련 옛 기사들을 보면 알겠지만 과천의 서울전화 편입 과정은 꽤 험난했다.[11] 당시 시흥군 소래면 옥길리.[12] 당시 시흥군 소래면 과림리.[13] 공식적인 서울통화권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서울통화권에 편입된 유한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은 접경 지역에 걸쳐진 경우.[14] 당시 남양주군 구리읍 아천리.[15] 화곡동, 개봉동, 고척동, 독산동, 시흥동 등 일부지역[16] 미가입 지번에 대해 서울시내전화 준가입구역 설정[17] 지금의 광명사거리 일대[18] 미가입 지번에 대해 서울시내전화 준가입구역 설정[19] 덕은동·동산동·북한동·삼송동·오금동·용두동·지축동·향동동·현천동·효자동[20] 구 원당읍 지역[21] 미가입 지번에 대해 서울시내전화 준가입구역 설정[22] 옥길보금자리지구 사업으로 잠시 범박동에 흡수되었던 탓에 경계가 꼬여버려 현재는 02와 032가 혼재.[23] 법정동 기준[24] 잔여 지역은 1979년 인천 통화권으로 흡수, 2000년 안산 통화권으로 재조정[25] 춘궁동·항동·상사창동·하사창동도 같은 광주군 서부면 지역이었는데도 당시에는 서부면 통화권이 아닌 신장 통화권(훗날 경기광주 통화권에 통폐합)에 속해있었기에 서울통화권으로 들어가지 못했다.[26] 과천 서울전화 편입 논란때 과천 서울전화 편입에 반발했던 측이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와 안양시청.[27] 1980년 이전에 묻지마식으로 서울전화로 편입된 광명, 서하남, 고양 신도와 다르게 과천의 서울전화 편입 문제는 링크된 기사에 나온 것처럼 정관계의 뜨거운 논란거리였다.[28] 이들 신도시 입주 광고에는 한때 서울전화 편입 계획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29] 하지만 광명과 고양 신도의 경우는 서울 편입 무산 이후가 아닌 당국이 해당 지역의 서울 편입 여부를 두고 갈팡질팡하던 시기에 서울전화 구역에 편입되었고, 과천의 경우는 다른 이유로 서울전화로 편입되었다.[30] 그 문서에도 당시 근교 주민들의 서울전화 편입 요구를 의식한 내용이 보인다. 서울 근교 도시들을 서울통화 요금권으로 묶어두면 시외요금 수입 감소라는 문제만 생기지만, 이들 지역을 완전히 서울통화권으로 편입 시켜 버리면 지역번호, 국번 변경에 따른 비용도 들고, 1기 신도시인 분당과 일산만 서울전화로 편입시키면 이들 신도시보다 서울에 좀 더 근접한 구성남, 원당 등의 지역주민들이 반발하는 등의 형평성 문제와 다른 근교지역의 서울전화 연쇄 편입요구 발생 문제도 언급되었다.[31] 다만 앞 각주의 말은 '''구성남을 제외하면''' 좀 걸러들어야하는게 기존 주변부 자립도시(안양, 부천)의 시가지 확장 방식에 상대적으로 규모도 작은 평촌, 중동, 산본신도시면 모를까 분당, 일산의 경우 정책적으로 과포화 상태였던 서울 인구를 분산하기 위해서 입지부터가 좀 억지로 지어진 감이 있기 때문이다. '''즉, 1기 신도시는(특히 일산,분당은) 서울시 도시계획과 전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당시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 논밭에 맨해탄마냥 성토하고 전원도시를 짜잔~! 하고 뚝딱 만들어서 유배보내놓은 식이라 특별 대우를 할 명분은 있었다. 현재로 치면 외따로 떨어진 도청이전 혁신도시(내포신도시 같은 걸 생각하면 된다. 차이점은 원래 시가지, 즉 분당/일산의 경우 서울특별시, 내포의 경우 홍성/예산)와 이주대상지역(논밭한가운데 허허벌판)의 여건 차이가 당시 서울특별시와 일산/분당 간의 차이의 경우 내포신도시와 예산/홍성 구시가지의 차이 '따위' 보다는 너무 많이 차이났다는거. 그래서 인구분산 유도를 위해 '''어떻게든 '서울(일상)생활권'을 강조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 이는 지하철 계획에서도 티가 나는데, 이미 벽제 인근까지 북상해있던 걸 억지로 휘어서 끌어내려 놓은 일산선과, 당시 3호선 종점에다 현재의 김포골드라인처럼 억지로 매달아놓은 분당선의 수서~오리 구간, 그리고 해당 도시 방향으로는 유달리 멀리까지 운행하는 서울시내버스를 보면 이건 시작부터 대놓고 도저히 일상생활권(소생활권)이 될 수 없는 거리의 도시를 서울특별시 일상생활권(소생활권)으로 이어놓으려고 억지를 부렸음을 알 수 있다. 지금 보면 뭐가 머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는 서울 광역권이 지금보다 많이 작았고, 분당과 일산은 그 광역권 바깥에 던져놓았던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동두천과 평택에 신도시를 지어다 놓고 좁은 의미의 서울 생활권이라고 운운하는 꼴이었다.[32] 롯데백화점 안양점(현재는 폐점)의 전화번호인 031-463-2500를 예로 들자면, 단순히 02-463-2500으로 전환하는 식으로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기존 서울 지역 국번과 중복 가능성이 높기 때문. 이 예시에서, 기존 서울 지역에 02-463-2500을 쓰는 가구나 업체가 있으면 지역번호 단순전환은 불가능해진다.[33] 서울전화 추가 편입을 억제하고자 도입한 시외요금체계 합리화로 인하여 02 프리미엄의 직접적인 혜택이 줄어든 부분도 없진 않겠지만.[34] 2004년 이후 신규 및 변경할 경우 강제로 적용한다.[35] 다만 광명시와 과천시 등은 서울과 같은 02, 부천시 등은 인천과 같은 032를 사용한다.[36] 본래 SK텔레콤의 삐삐 번호였으나, 삐삐가 쇠퇴함에 따라 2009년에 반납하였다.[37]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자원이 점점 고갈되어 가고 있는 상황인지라 통신사들이 LTE 라우터에도 이 식별번호를 부여하고 있다.[38] 전화선을 이용한 인터넷 연결(Dial-Up Networking)로도 사용한다.[39] 다만 계룡시 등은 대전과 같은 042를 사용한다.[40] 다만 경산시는 대구와 같은 053을 사용한다.[41] 제2도시라는 상징성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42] 인터넷전화의 식별번호로 쓰고 있는 070은 제외.[43] 지금의 LG유플러스 시외전화 사업자 및 인터넷 사업자 번호.[44] 과거 700 서비스.[45] 현재에도 과기부 고시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구분이다. 명칭은 현행 고시에 따른다.[46] 영등포는 1960년경에 서울전화 편입. 1963년 서울 신규 편입지 일부와 광명시 광명동 일부 지역은 1970년에 서울 전화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서울 일부 변두리는 1978년에 서울전화로의 편입이 완료되었다.[47] 원래 안양권인 0343이었다가, 1985년에 서울전화 편입.[48] 1970년대 초반부터 광명동, 철산동 일대는 이미 서울통화권에 편입되었고, 학온동ㆍ하안동ㆍ소하동 등은 1980년에 소하읍 통화권이 서울통화권에 흡수되는 식으로 서울전화에 들어갔다. 서울 위성도시로서 유일하게 오리지널 02에 가까운 도시.[49] 옥길지구의 경우 중간에 법정동이 조정된 사정으로 인해 법적으로는 서울통화권이나 유선전화는 032를 사용한다.[50] 원래 광명 소하동이었다가 1987년에 안양으로 편입된 지역.[51] 스타필드 고양은 법적으로는 서울통화권이나 031 사용.[52] 광명시 광명동ㆍ철산동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초반부터 이미 서울시내전화로 편입.[53] 서부면 통화권이 1980년에 서울통화권에 흡수. 단, 초이동은 그보다 일찍 서울전화 편입.[54] 2011년 충청북도 영동군으로 부대를 이전하여 서울 국번을 쓰지 않게 되었다. 다만 현행 고시에는 아직도 남아있기에 일단은 남겨둔다.[55] 지리적으로 인천과 밀접하고 구 부천군 도서부를 포함한 것 때문인지 1995년 인천 편입 이전부터 032였다. 다만 1970년대까지는 읍면 단위의 통화권이었다가 통화권 통폐합 과정에서 1980년대초에 인천 통화권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56] 1995년 인천 편입 이전에는 0349였다(인천 행정구역 편입 10개월만인 1996년 1월 인천 032 편입).[57] 원래는 부평전신전화국 관할이었다가 1976년에 부평전신전화국 산하 부천분실이 설치되었다. 즉, 오리지널 032.[58] 과거 부천군 도서지역을 거쳐 옹진군에 속했던 영향으로 현재까지도 032를 사용하고 있다.[59] 법적으로는 서울 통화권이나 접경지역이라 그런지 주로 032를 사용한다.[A] A B C D 직할시 승격 이전부터 이 번호였다.[60] 대전 편입 이전의 구 대덕군(신탄진 등) 포함. 1970년대에도 대덕군 상당지역은 대전시내통화권에 이미 편입되었다.[61] 일부 지역(남선리, 부남리, 석계리, 용동리, 정장리)은 예전부터 042를 써왔고 나머지 지역(두계리, 왕대리, 입암리, 농소리, 금암리, 유동리, 광석리, 도곡리, 향한리, 엄사리)은 논산 0461를 썼으나 1997년 10월 1일에 대전 042 편입. # 참고로 신도안면 남선리가 본래 대덕군 진잠면에 속했다.[62] 원래는 0524였다가, 양산군 지역번호인 0523에 잠시 편입된 뒤(당시에는 기장군이 양산군의 일부로 존재했다) 1996년 3월에 부산 지역번호에 편입.[63] 신고리 1·2호기[64] 원래 0522 였다가 광역시 승격으로 마지막 자리가 빠지며 3자릿수로 변경되었다. 0522-XX-XXXX 번호가 그대로 하이픈 위치만 바꿔서 052-2XX-XXXX로 변경.[65] 현풍읍 등 남부 지역은 0548이었으나, 현풍공단의 전화 확충망 차원에서 1987년 12월에 대구 지역번호에 편입.[66] 하양 지역은 원래 0541였다가 대구 지역번호에 편입되었다.[67] 광주 편입 이전의 구 송정시와 구 광산군 포함.[68] 수지, 기흥, 구성은 동수원전화국에서 관할했다.(현재는 인구 증가로 신갈지사, 수지지사 추가 개설) 현 처인구 지역과는 달리, 1990년대 중반부터 옛 수지읍 지역은 260번대 국번, 옛 기흥읍, 옛 구성읍 지역은 280번대 국번을 쓰기 시작했다. 참고로 서울 지역번호를 쓰는 광명·과천 등과 마찬가지로, 수지·기흥·구성 지역 역시 과거 일부가 수원시 도시계획구역에 속한 적이 있는데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69] 2000년 7월 1일 이전에는 지역번호가 0342로 분당 및 오포 지역은 0342-70X, 71X, 78X-XXXX로, 수정구, 중원구, 남한산성 지역은 0342-72X, 73X, 74X(그 이전에는 4X), 75X-XXXX로 나갔었다.[70] 고양군을 관할하던 원당전화국(현 KT덕양지사)은 서울 불광전화국 산하 원당분실로 시작했지만 서울전화로 편입되진 않았다.[71] 스타필드 고양은 구 신도읍이고 법적으로는 서울통화권이나, 사정으로 인해 고양 번호가 부여되었다. 그래서 삼송지구(지역번호 02)에 사는 사람들이 같은 삼송지구에 있는 스타필드 고양에 입점한 점포들(지역번호 031)에 전화를 걸 때에는, '''같은 동 안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번호 031을 따로 눌러야 한다'''.[72] 안산통화권의 뿌리는 안양전화국 산하 반월공단분국.[73] 2000년 7월에 과림동을 제외한 시흥시 전역이 안산통화권으로 단일화.#[74] 2000년 7월 1일 이전에는 지역번호가 0346으로 0346-56X(그 이전에는 6X), 57X, 52X-XXXX로 나갔었다.[75] 2000년 7월 1일 이전에는 지역번호가 0361로 0361-25X(그 이전에는 5X)-XXXX로 나갔었다.[76] 2000년 7월 1일 이전에는 지역번호가 0363로 0363-44X(그 이전에는 4X)-XXXX로 나갔었다.[77] 마창진 통합 개편 이후로 통화권도 현재와 같이 통합. 전에는 마산과 창원만 같은 통화권이고 진해는 따로였다.[78] 과거 0641(제주시내, 애월읍 등), 0642(서귀포시내), 0644(한림면, 대정읍 등), 0645(성산읍, 표선면 등)로 나뉘어 있었으나 통합되었다. 전지역 국번은 700번대이다.[79] 명칭은 당시의 것을 최대한으로 따랐다. 괄호 안의 명칭은 옛 명칭. 현행 통화권은 별도의 표를 참조할 것.[80] 영등포는 1960년경에 서울전화 편입. 1963년 서울 신규 편입지 일부와 광명시 광명동 일부 지역은 1970년에 서울 전화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서울 일부 변두리는 1978년에 서울전화로의 편입이 완료되었다.[81] 원래 안양권인 0343이었다가, 1985년에 서울전화 편입.[82] 1970년대 초반부터 광명동, 철산동 일대는 이미 서울통화권에 편입되었고, 학온동ㆍ하안동ㆍ소하동 등은 1980년에 소하읍 통화권이 서울통화권에 흡수되는 식으로 서울전화에 들어갔다. 서울 위성도시로서 유일하게 오리지널 02에 가까운 도시.[83] 옥길지구 개발 이전에는 옥길동 소재 가구, 업체들은 02를 사용했다. 현재는 법정동 개편으로 꼬여버려서 옥길지구 아파트들은 주로 032를 사용.[84] 서부면 통화권이 1980년에 서울통화권에 흡수. 단, 초이동은 그보다 일찍 서울전화 편입.[85] 원래 광명 소하동이었다가 1987년에 안양으로 편입된 지역.[86] 광명시 광명동ㆍ철산동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초반부터 이미 서울시내전화로 편입.[87] 검단은 1996년 6월에 김포 0341에서 인천 032로 변경.#[88] 지리적으로 인천과 밀접하고 구 부천군 도서부를 포함한 것 때문인지 1995년 인천 편입 이전부터 032였다. 다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읍면별 자체 통화권이었다.[89] 1995년 인천 편입 이전에는 0349였다(인천 행정구역 편입 10개월만인 1996년 1월 인천 032 편입).[90] 원래는 부평전신전화국 관할이었다가 1970년대에 부평전신전화국 산하 부천분실이 설치되었다. 오리지널 032.[91] 구 소래읍 지역의 경우 원래는 소래면 자체 통화권이었다가 1979년에 부천 전화로 편입되었다. 관련 고시 그리고 1996년에는 연성동 전역과 거모동, 월곶동의 매립지 지역이 인천 032으로 편입.#[92] 대전 편입 이전의 구 대덕군(신탄진 등) 포함. 1970년대에도 대덕군 상당지역은 이미 대전시내전화에 편입된 상태였다.[93] 일부 지역(남선리, 부남리, 석계리, 용동리, 정장리)은 예전부터 042를 써왔고 나머지 지역(두계리, 왕대리, 입암리, 농소리, 금암리, 유동리, 광석리, 도곡리, 향한리, 엄사리)은 논산 0461를 썼으나 1997년 10월 1일에 대전 042 편입.#[94] 원래는 0524였다가(중간에 잠시 양산 지역번호인 0523에 편입되었으나 도로 분리), 1996년 3월에 부산 지역번호에 편입.[95] 원래 0522 였다가 광역시 승격으로 3자릿수로 변경되었다. 0522-XX-XXXX 번호가 그대로 하이픈 위치만 바꿔서 052-2XX-XXXX로 변경.[96] 현풍읍 등 남부 지역은 0548이었으나, 대구 지역번호에 편입.[97] 하양 지역은 원래 0541였다가 대구 지역번호에 편입되었다.[98] 광주 편입 이전의 구 송정시와 구 광산군 포함.[99] 2000년 9월 읍 승격.[100] 수지, 기흥, 구성은 동수원전화국 관할이다. 현 처인구 지역과는 달리, 1990년대 중반부터 옛 수지읍 지역은 260번대 국번, 옛 기흥읍, 옛 구성읍 지역은 280번대 국번을 쓰기 시작했다. 옛 수지읍 지역의 일부는 사실 1970년대부터 수원통화권에 속했다. 참고로 서울 지역번호를 쓰는 광명·과천 등과 마찬가지로, 수지·기흥·구성 지역 역시 과거 일부가 수원시 도시계획구역에 속한 적이 있는데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101] 1996년 10월 이전에는 충북 음성군 감곡면도 포함했다.[102] 화성군 오산읍 시절 맨 처음에는 0332로 시작했다가 화성 지역번호에 편입되었다.[103] 인천의 서구 북부(옛 김포군 검단면)와 계양구 북부(옛 김포군 계양면)도 원래는 김포 지역번호였다가, 검단은 1996년 6월에 032 편입.[104] 광주시 승격 및 오포읍 승격, 중부면의 남한산성면 개칭은 2000년 1월 기준 이뤄지지 않았다.[105] 고양군을 관할하던 원당전화국(현 KT덕양지사)은 서울 불광전화국 산하 원당분실로 시작했지만 서울전화로 편입되진 않았다.[106] 1979년에 안양전화국 산하 반월공단분국이 신설되면서 새로 설정된 통화권이다. 그 이전에는 각각 수암면, 군자면 자체 통화권이었다. 2000년 지역번호 대개편때, 인천 통화권이었던 시흥시 북부, 중부가 안산 통화권에 편입.[107] 목감동 제외.[108] 수원 당수동과 군포 대야동은 과거 화성군 반월면에 속했던 지역이다. 반월면 폐지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109] 별내면 청학리, 용암리 제외.[110] 상술한 오포 및 당시 중부면 일부 지역 제외.[111] 원래는 별도의 '신장'(과거 하남 지역의 별칭) 통화권이었다.[112]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용암리는 의정부 생활권으로 동의정부전화국 관할이다.[113] 맨 처음에는 0354로 시작했다가 의정부 지역번호에 편입되었다.[114] 철원 같은 경우에는 과거 의정부전화국로부터 지역번호가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히 의정부와의 교류가 가장 많아 경기 북부이자 강원 영서북부 둘 다 속하기 때문에 이게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115] 1980년대에는 이 안에서 5자리 국번을 사용했는데, 영월읍 일대가 03732, 신동읍 일대가 03734, 상동읍 일대가 03736을 사용했다.[116] 1980년대에는 이 안에서 지역별로 5자리 국번을 사용했는데, 평창읍 일대가 03742, 대화면 일대가 03744, 대관령, 횡계 일대가 03746을 사용했다.[117] 초기에 거진읍 일대는 5자리 국번으로 03925를 사용했었다.[118] 현재는 괴산군에서 분리된 증평 포함.[119] 감곡면은 원래 이천(경기도) 통화권(0336)이었다가 1996년 10월에 음성 통화권으로 편입.#[120] 2005년 12월 30일부로 청주 통화권으로 변경.[121] 초기에는 0456이라는 독자적 지역번호를 쓰다가 서산에 흡수되었다. 현재에도 서산과 같은 통화권으로 묶인 것을 보면, 태안군이 분리된 이후에도 전화국이 분리되지 않은 것 같다.[122] 두마면(계룡출장소)는 후에 042로 분리.[123] 1980년대에는 구룡포 일대는 05628이라는 5자리 국번을 사용했다.[124] 1985년까지는 통화권이 기장과 양산이 둘로 분리되어 있었다. 1996년에는 현 기장군 지역이 부산통화권으로 편입.[125] 다만 신태인은 맨 처음에 0682였다가 정읍 지역번호에 편입되었다.[126] 삼여 통합 이전 여천시와 여천군도 같은 번호를 사용했다.[127] 과거 0641(제주시내, 애월읍 등), 0642(서귀포시내), 0644(한림면, 대정읍 등), 0645(성산읍, 표선면 등)로 나뉘어 있었으나 1986년에 통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