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 요구자/아시아/인도
1. 개요
2. 등재 기준
3. 현재 왕위 요구자 목록
3.1. 가르왈 국왕
3.2. 괄리오르 국왕
3.3. 나고드 국왕
3.4. 나야가르 국왕
3.5. 나와나가르 잠 사헵
3.6. 다달리아 라자 사힙
3.7. 다르 국왕
3.8. 돌푸르 국왕
3.9. 두르와이 디완
3.10. 라이라콜 국왕
3.11. 라지가르 국왕
3.12. 라지파라 타쿠르
3.13. 라티 국왕
3.14. 람푸르 나왑
3.15. 로하루 나왑
3.16. 림브디 타쿠르 사힙
3.17. 마라타 동맹 차트라파티
3.18. 마이소르 국왕
3.19. 마이하르 국왕
3.20. 마크라이 국왕
3.21. 말레르코틀라 나왑
3.22. 말푸르 국왕
3.23. 메와르 국왕
3.24. 모하마드가르 나왑
3.25. 무굴 제국 황제
3.26. 무돌 국왕
3.27. 바라나시 국왕
3.28. 바라운다 국왕
3.29. 바라트푸르 국왕
3.30. 바로다 국왕
3.31. 바브나가르 국왕
3.32. 바소다 나왑
3.33. 반스다 국왕
3.34. 방가나팔레 나왑
3.35. 보르 국왕
3.36. 보팔 나왑
3.37. 부르드완 국왕
3.38. 비카네르 국왕
3.39. 빌라스푸르 국왕
3.40. 사바누르 나왑
3.41. 사일라나 국왕
3.42. 사타라 번왕
3.43. 산두르 국왕
3.44. 수르가나 데쉬무크
3.45. 시르무르 국왕
3.46. 시킴 초걀
3.47. 아르콧 나왑
3.48. 아운드 국왕
3.49. 아칼콧 국왕
3.50. 알리라지푸르 국왕
3.51. 알와르 국왕
3.52. 인도레 국왕
3.53. 인도 황제
3.54. 일롤 타쿠르
3.55. 자소 디완
3.56. 자쉬푸르 국왕
3.57. 자스완 국왕
3.58. 자오라 나왑
3.59. 자이살메르 국왕
3.60. 자이푸르 국왕
3.61. 잔지라 나왑
3.62. 잠무 카슈미르 국왕
3.63. 잠칸디 국왕
3.64. 조드푸르 국왕
3.65. 주나가드 나왑
3.66. 차르카리 국왕
3.67. 추이카단 국왕
3.68. 카니아다나 국왕
3.69. 카라울리 국왕
3.70. 카푸르탈라 국왕
3.71. 캄타-라자울라 국왕
3.72. 캉그라 국왕
3.73. 코친 국왕
3.74. 코타 국왕
3.75. 콜라푸르 국왕
3.76. 쿠치 국왕
3.77. 쿠틀레하르 국왕
3.78. 통크 나왑
3.79. 트라방코르 국왕
3.80. 파리드콧 국왕
3.81. 파타우디 나왑
3.82. 파탄 국왕
3.83. 파트나 국왕
3.84. 파티알라 국왕
3.85. 팔탄 국왕
3.86. 푸두코타이 국왕
3.87. 피플로다 국왕
3.88. 하이데라바드 국왕
3.89. 힌돌 국왕
1. 개요
본래는 왕위 요구자/아시아 문서의 하위 항목이었으나, 너무 길어져서 분리하였다. 본 문서는 인도의 왕위 요구자를 다룬다.
2. 등재 기준
이 문서는 상위 문서인 왕위 요구자의 정의에 따른 인도 지역의 현재 왕위 요구자들을 나열한 목록 문서이다.
- 해당 국가가 현재까지 존재하거나,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적법한 근거를 가지고 해당 작위를 주장한 사례가 있었던 경우
- 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왕위나 작위와 같이 만약 해당 정권이 존속했다면 해당 정권의 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등재하며, 계승권을 실제로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작위 이외에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
- 작위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작위를 포기, 또는 해체한 경우
- 식민국가나 피정복국가가 독립하고, 상대국이 해당 국가를 인정한 경우에 해당하면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 합의
3. 현재 왕위 요구자 목록
3.1. 가르왈 국왕
3.2. 괄리오르 국왕
3.3. 나고드 국왕
3.4. 나야가르 국왕
3.5. 나와나가르 잠 사헵
3.6. 다달리아 라자 사힙
3.7. 다르 국왕
3.8. 돌푸르 국왕
3.9. 두르와이 디완
3.10. 라이라콜 국왕
3.11. 라지가르 국왕
3.12. 라지파라 타쿠르
3.13. 라티 국왕
3.14. 람푸르 나왑
3.15. 로하루 나왑
3.16. 림브디 타쿠르 사힙
3.17. 마라타 동맹 차트라파티
무굴 제국 황제 아우랑제브의 힌두교 탄압에 대한 분노로 세워진 마라타 동맹은 '차트라파티' 라는 명칭의 군주가 다스리면서 북인도 힌두교의 중흥을 이끌었으나, 결국 1818년에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영국 동인도 회사의 지배를 받는 여러 토후국들로 나뉘어져 해체되었다. 마라타 동맹의 역대 차트라파티를 배출했던 본슬레 가문의 현 수장은 우다얀라제 보살레다.
3.18. 마이소르 국왕
영국령 인도 제국 치하에서 번왕국으로 존재하던 마이소르 왕국은 1947년에 인도가 영국의 자치령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인도 본토에 완전히 병합되었다. 다만 왕가 자체는 계속 대를 이어가고 있으며 현 수장은 야두비르 크리쉬나다타 차마라자 워디야르다.
3.19. 마이하르 국왕
3.20. 마크라이 국왕
3.21. 말레르코틀라 나왑
3.22. 말푸르 국왕
3.23. 메와르 국왕
마헨드라와 아르빈드는 모두 전임자 바그와트의 아들이다. 이들은 현재 명목상의 메와르 왕위를 두고 서로 다투는 중이다.
3.24. 모하마드가르 나왑
3.25. 무굴 제국 황제
1783년에 마라타 동맹의 봉기로 인해 빈 껍데기만 남은 무굴 제국은 이후 영국 동인도 회사에 의해 인도의 지배권을 거의 상일한 상태였으나, 동인도 회사의 폭정과 인도인에 대한 차별과 억압, 착취에 분개한 이들에 의해 세포이 항쟁이 일어나자,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바하두르 샤 2세는 즉각 스스로를 인도의 황제로 선언하였다. 그러나 결국 영국 군대에 의해 크게 패배한 뒤에 세포이 항쟁에 가담했던 바하두르 샤 2세 본인은 역시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미얀마의 양곤으로 추방당해 1862년에 죽었고, 그의 두 손자들은 공개처형당했다.[8][9] 이후 바하두르 샤 2세의 후손인 미르자 굴람 마이누딘 무함마드 자바이드 자 바하두르가 명목상의 무굴 제국 황제위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끼니를 잇기 어려운 그의 형편상 생계형(...) 왕위 요구자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3.26. 무돌 국왕
3.27. 바라나시 국왕
3.28. 바라운다 국왕
3.29. 바라트푸르 국왕
3.30. 바로다 국왕
3.31. 바브나가르 국왕
3.32. 바소다 나왑
3.33. 반스다 국왕
3.34. 방가나팔레 나왑
3.35. 보르 국왕
3.36. 보팔 나왑
현 나왑위 요구자 사이프 알리 칸은 후술할 내용대로 파타우디의 나왑위 요구자이기도 하다. 현재 보팔 나왑위와 파타우디 나왑위를 같은 가문에서 요구하는 이유는 하미둘라 칸을 마지막으로 보팔 나왑 가문의 남계 혈통이 단절되고 그의 외동딸 사지다 술탄이 파타우디 나왑위 요구자였던 이프티카르 알리 칸 파타우디와 결혼하여 이들의 자손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3.37. 부르드완 국왕
3.38. 비카네르 국왕
3.39. 빌라스푸르 국왕
3.40. 사바누르 나왑
3.41. 사일라나 국왕
3.42. 사타라 번왕
사타라 번왕국은 마라타 동맹의 후신이었으며, 그에 따라 마라타 동맹 최후의 차트라파티인 프라타프 싱이 사타라 번왕국의 초대 번왕이 되었다. 하지만 사타라 번왕국은 영국의 주도로 마라타 동맹이 격하된 거라 제대로 된 주권이 없다시피 했다. 사타라 번왕국의 2대 번왕이며 프라타프 싱의 양자인 샤하지가 1848년에 아들 없이 사망하면서 사타라 번왕 계보는 단절되었으며, 이듬해인 1849년에 사타라 번왕국 영토는 영국의 직할령이 되었다. 마라타 동맹 차트라파티 가문인 본슬레 가문이 사타라 번왕까지 배출했으므로 마라타 동맹의 왕위 요구자인 우다얀라제 보살레는 사타라 번왕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다.
3.43. 산두르 국왕
3.44. 수르가나 데쉬무크
3.45. 시르무르 국왕
3.46. 시킴 초걀
1975년에 시킴 왕국이 인도에 합병되어 인도령 시킴 주가 된 뒤에도 시킴 왕국의 왕족 후손들은 어느 정도 옛 기득권을 인정받고 있다. 시킴 주에 들어가려면 인도 본토와는 별개의 비자가 필요하다고 한다.
현 왕위 요구자 왕축 남걀은 마지막 군주 팔덴 톤두프 남걀의 차남이다. 그에게는 자녀가 없으므로 왕축 남걀이 세상을 떠나면 동생인 팔덴 규르메드 남걀이 다음 왕위 요구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3.47. 아르콧 나왑
3.48. 아운드 국왕
3.49. 아칼콧 국왕
3.50. 알리라지푸르 국왕
3.51. 알와르 국왕
3.52. 인도레 국왕
3.53. 인도 황제
하노버 왕국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왕위 요구자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부터 영국 왕족임을 자칭하면서[13] 대대로 영국 하노버 왕조의 왕위도 요구하게 되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는 무려 영국 국적까지 취득하여 독일과 영국의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인도 제국이 해체되어 힌두교도가 대다수인 인도 자치령과 무슬림이 대다수인 파키스탄 자치령으로 나누어진 것과 이후 해당 자치령들이 영연방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이 된 건 모두 윈저 왕조 때의 일이므로, 하노버 왕조의 입장에선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3.54. 일롤 타쿠르
3.55. 자소 디완
3.56. 자쉬푸르 국왕
3.57. 자스완 국왕
3.58. 자오라 나왑
3.59. 자이살메르 국왕
3.60. 자이푸르 국왕
3.61. 잔지라 나왑
3.62. 잠무 카슈미르 국왕
원래의 잠무 카슈미르 지역은 잠무 카슈미르 번왕국이라는 준독립국으로 지금의 카슈미르 지역 전체를 다스리는 나라였는데, 1947년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차례로 독립하면서 두 나라 사이에 끼이고 만다. 당시 번왕이었던 하리 싱은 카슈미르 전 지역을 독립국으로 만들고 싶어했으나, 국력이 너무 미약했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독립은 무리라는 여론이 퍼지면서[15] 하는 수 없이 타국으로의 합병을 결정하고는, 하리 싱 본인도 퇴위를 결정하고 아들인 카란 싱을 잠무 카슈미르의 섭정으로 선포하면서 실권을 넘겼고[16] , 이대로 왕위가 부활하지 못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카슈미르 전 지역이 이슬람교 우세 지역인데 반해, 잠무 카슈미르 왕실은 힌두교를 믿어서 국민투표도 없이 멋대로 인도로의 귀속을 선포했고, 그 결과, 당연히 파키스탄으로 귀속되는 줄로만 알던 카슈미르인들과 파키스탄 정부에 제대로 어그로를 끌어 버린 바람에 카슈미르 전체에 헬게이트가 도래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여파로 카슈미르 자체도 인도령인 잠무 카슈미르와 파키스탄령인 아자드 카슈미르 및 길기트 발티스탄, 그리고 중국의 불법 점령지역인 아크사이친으로 뿔뿔이 분열되었고[17] , 지금까지도 카길 전쟁이니, 시아첸 빙하 분쟁이니 하는 등의 온갖 분쟁으로 인해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 간에 긴장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즉, 하리 싱과 카란 싱 부자가 카슈미르 분쟁의 원흉들이다. 여담이지만 만약 카슈미르가 처음부터 파키스탄에 합병되었다면 잠무 카슈미르의 왕위 요구자는 본 항목에서 인도가 아닌 파키스탄의 왕위 요구자로 분류되었을지도 모른다.
3.63. 잠칸디 국왕
3.64. 조드푸르 국왕
3.65. 주나가드 나왑
3.66. 차르카리 국왕
3.67. 추이카단 국왕
3.68. 카니아다나 국왕
3.69. 카라울리 국왕
3.70. 카푸르탈라 국왕
3.71. 캄타-라자울라 국왕
3.72. 캉그라 국왕
3.73. 코친 국왕
3.74. 코타 국왕
3.75. 콜라푸르 국왕
3.76. 쿠치 국왕
3.77. 쿠틀레하르 국왕
3.78. 통크 나왑
3.79. 트라방코르 국왕
트라방코르 왕국은 오늘날 인도의 케랄라 주에 있던 나라다. 인도 제국 치하에서 번왕국으로 존재하던 트라방코르 왕국은 1947년에 인도 자치령이 성립되면서 인도 자치령에 합병되어 멸망했다. 현 왕위 요구자는 물람 티루날 라마와르마인데 현재 그에게 자녀는 없다.
3.80. 파리드콧 국왕
3.81. 파타우디 나왑
상술한 이유에 따라 사이프 알리 칸은 보팔 나왑위도 요구하고 있다.
3.82. 파탄 국왕
3.83. 파트나 국왕
3.84. 파티알라 국왕
3.85. 팔탄 국왕
3.86. 푸두코타이 국왕
3.87. 피플로다 국왕
3.88. 하이데라바드 국왕
1724년 이래로 영국의 형식적인 식민지 등을 거쳐서 독립 왕국으로 남아있던 하이데라바드는 힌두교의 세가 절대적인 남인도에서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였고, 그래서 1947년에 인도가 독립하자[20] , 힌두교도가 많은 인도에 합류하길 거부하고 이슬람교가 국교인 파키스탄으로의 귀속을 선언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측은 자국의 본토에서 너무 멀다는 이유로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귀속을 거부했고[21] , 하이데라바드의 주민들은 왕실의 생각과는 달리 인도에 합병되길 희망하여[22] 상황은 점점 엉망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국왕인 미르 오스만 알리 칸[23] 이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하이데라바드의 독립을 선포했으나, 곧바로 쳐들어 온 인도군의 압도적인 화력을 이기지 못해 금방 패망했고, 왕실은 사우디아라비아로 추방당했다. 현재 옛 하이데라바드 왕국의 영토는 언어권에 따라, 안드라프라데시 주와 텔랑가나 주 등으로 분할되어 왕실 부활의 여지가 없어져버렸다.
멸망 당시 미르 오스만 알리 칸이 런던에 있는 파키스탄 고등판무관 계좌에 100만 파운드를 잠시 맡겼는데, 나중에 돌려달라고 하자 파키스탄 정부가 돌려줄 수 없다고 하여 소송전이 벌어졌다. 파키스탄 정부가 외교관 계좌라는 이유로 면책특권을 주장하여 소송이 멈췄다가 2013년부터 재개됐는데, 2019년 10월 3일에 오스만의 후손들이 승소하여 그동안의 이자까지 3500만 파운드를 돌려받게 되었다. 파키스탄 정부의 항소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승소 시 돈을 나눠받기로 합의한 인도 정부는 판결을 환영했다. 기사
3.89. 힌돌 국왕
[1] 잠 사헵은 나와나가르의 군주를 가리키는 단어다.[2] 라자 사힙은 다달리아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이다.[3] 디완은 두르와이와 자소의 군주를 가리키는 칭호다.[4] 타쿠르는 라지파라와 일롤의 군주를 가리키는 단어다.[5] 타쿠르 사힙은 림브디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이다.[6] 마라타 동맹의 군주를 가리키는 명칭이다.[7] 세포이 항쟁 지도자들이 바하두르 샤 2세를 옹립했다. 영국 국왕이 멋대로 자칭한 인도 제국의 황제보다는 이쪽이 인도 황제를 자칭할 명분이 더 충분했다. [8] 이 사건은 '하나의 인도'이라는 의식이 없었던 인도인들에게 국민주의적인 감정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이때 생긴 반영 감정으로 인해 지금도 인도는 완전하게 친서방 국가를 자처하지 않고 있으며, 영국과의 협력을 일체 거부하고 있다. 다만 영국을 제외한 다른 영미권 국가들과는 대체로 사이가 좋은 편이며 프랑스와도 사이가 좋다.[9] 여담으로, 바하두르 샤 2세가 양곤으로 추방되기 전에 촬영된 사진이 있는데, 이 사진은 무굴 제국의 황제를 촬영한 유일한 사진이라고 한다. 한국어 위키백과의 바하두르 샤 2세 문서에 이 사진이 실려 있다.[10] 데쉬무크는 수르가나의 군주를 가리키는 단어다.[11] 초걀은 시킴과 라다크의 군주의 명칭이다. 부탄에도 초걀이 있는데, 군주가 아니라 영적 지도자다.[12]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13] 성씨에 Königlicher Prinz von Großbritannien und Irland를 추가했다.[14] 비크라마디트야 싱의 할아버지로, 아들인 카란 싱은 잠무 카슈미르의 번왕이 아니라, 섭정으로서 잠시 통치했다.[15]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는 인도 및 파키스탄으로부터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원하는 카슈미르인들이 늘어나고 있다.[16] 잠무 카슈미르 왕실을 해산한 건 아니니, 이들은 왕위 요구자가 맞다.[17] 아크사이친 자체는 사람도 살지 않고, 풀 한 포기 없이 메말라있는 쓸모없는 황무지에 불과하지만, 카슈미르 지역의 교통의 요지로 꼽히는 곳 중의 하나였던 지라, 이곳에 대한 중국의 불법적인 점령은 인도를 굉장히 빡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똑같이 중국이 탐을 내던 지역 중, 대대적인 농업이 이루어질 만큼 풍요롭고 다양한 민족들이 거주하는 아루나찰프라데시에는 대규모의 군대를 주둔시켜서 중국이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했다.[18] 현 왕위 요구자와 동명이인이다.[19] '아사프 자 ○세'하는 식으로 계승되었다. 태국 국왕의 칭호가 '라마 ○세'인 것과 같다.[20] 다만, 이때는 아직 인도 자치령이라는 이름의 영연방 왕국이었다.[21] 당시에 동파키스탄이라는 이름으로 가지고 있던 방글라데시의 훗날 일어난 독립운동도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진 관계로 막지 못했다. 만일 하이데라바드를 받아들였으면, 이곳이 제2의 방글라데시가 되어 된통 피바다가 났을 것이다.[22] 국교는 이슬람교였지만, 정작 무슬림은 한줌도 되지 않았고, 주민들의 절대 다수가 힌두교도였기 때문이다.[23] 왕호는 아사프 자 7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