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은하영웅전설의 등장인물로 자작 작위를 가졌던 은하제국의 귀족이다.
인명 및 지명에 대한 오역이 많은 해적판 을지서적판에서는 율겐 오파 폰 페크니츠란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정식판인 서울문화사와 이타카판에서는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로 번역했다.
어떻게 보자면 양 웬리가 그토록 원하던 삶을 거머쥐게 된 인물.
골덴바움 왕가의 방계 후손이자 페크니츠 가문의 당주. 작중에서 언급되는 정보를 정리하면 어머니가 루트비히 3세(소설판)/오토프리트 5세(OVA)[1] 의 황녀였다. 보덴도르프 백작부인의 조카딸과 결혼했고,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된 딸을 두고 있었다. 이런 혈통으로 인하여 작중에서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고 마는데…….
당시 페잔 자치령이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의 납치를 추진하면서 제국에 은밀히 거래를 위한 교섭을 시도했고, 이러한 페잔의 계획을 묵인하기로 결정한 제국재상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과 그의 모사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이 차기 황제후보를 논의 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다만 페크니츠 자작이 아닌, '''자작의 생후 5개월에 불과한 딸'''이 황제 후보로 거론됐다.
페크니츠 자작이 아니라 그 딸을, 그것도 생후 5개월에 불과한 아기를 황위에 올렸다는 점에서 라인하르트가 얼마나 골덴바움 왕조를 능멸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카타린의 황위 계승권은 페크니츠 자작이 자기 어머니인 골덴바움 황족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므로, 카타린의 계승권을 논한다면 당연히 페크니츠 자작의 계승권이 앞선다. 그런데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우기 위해서 이런 계승 순위를 무시한 것. 하긴 아직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아직 살아있는데 구할 시늉도 안 하고 폐위한 다음에 다른 사람을 황제로 세웠을 때부터 골덴바움 왕조의 권위가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페크니츠 자작은 여타 다른 귀족들과는 전혀 달랐다. 립슈타트 전역 때 적극적으로 라인하르트 세력에게 협력하진 않았지만 반대로 수많은 귀족들이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참여했다가 모조리 몰락하는 비극을 맞았음에도 페크니츠 자작은 '''상아 세공품 수집 이외에는 정치를 포함한 그 어떠한 세상사에 아무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기에 립슈타트 전역과 전혀(!) 연루되지 않은 몇 안 되는 귀족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라인하르트 측으로써는 정치적인 부담 없이 꼭두각시로 세워두기 딱 좋은 인물인 셈이었다.
다만 페크니츠 자작에게는 사소한 골치거리가 있었으니, 상아 세공품 대금의 일부인 75,000 제국마르크를 지불하지 못해 소송이 걸린 상태였던 것. 이 분쟁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황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나 나름대로 상황을 추론해보자면, 하급 공무원이지만 나이가 적지 않았을 키르히아이스의 아버지가 연봉 40,000 제국마르크를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작은 금액이라고 보기는 어렵다.[2] 그러나 상대가 민사를 제기했다는 점을 보면 페크니츠 자작에게서 대금을 회수할 가망이 있다는 의미이며, 무엇보다 페크니츠 자작은 립슈타트 동맹에 가담하지 않은 인물이므로 보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은 귀족이다. 따라서 페크니츠 자작은 지불능력이 없었다기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없었던 것이고, 상대 역시 이런 점을 노리고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나마 체불된 것도 상아세금 대금의 전부가 아닌 일부이다. 즉 덕질하시다가 잔고가 갑자기 펑크나서 생긴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흑자도산처럼, 개개인 역시 자산 자체는 많아도 당장 현금화할 수 없어서 파산 위기에 몰릴 수 있다.[3]
이 문제에 대해서 전해들은 라인하르트는 그래도 명색이 '''다음 황제의 아버지 되실 분'''인데 그래서야 되겠냐면서 궁내성 예비비에서 소송에서 제기된 비용을 지급하도록 명령했고 큰 마찰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은하제국 정통정부의 발표와 함께 에르빈 요제프 2세의 소재가 명확해지자 라인하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폐위를 선언하고, 페크니츠 자작의 여식이 다음 황제로 옹립됐다. 이에 따라 페크니츠 자작도 황제의 아버지가 된 만큼 자작에서 공작으로 단숨에 승격됐고 섭정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물론 실권은 라인하르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역할은 그냥 얼굴마담.
하루아침에 공작이 되고 딸이 황제가 되며 졸지에 황제의 아버지가 된 격이나 당사자가 본래 세공품 수집 외에는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지라 페크니츠 '공작'은 타인이 멋대로 쥐어준 드높은 지위에 심한 불안감에 떨며 지내야만 했다.
이후 공작은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았으나 로엔그람 공작이 숙적 자유행성동맹을 정복하자 옥좌를 로엔그람 공작에게 선양 하도록 '허락'받아 딸의 옥좌를 넘겨준다. 전 황제의 신변과 생활 보장을 위해 은하제국은 페크니츠 공작가에 대한 신변 보호를 약속하고 전 황제 카타린 케트헨 1세가 사망하기 전까지 매년 150만 제국마르크의 연금을 지급해주었다.
처음부터 공작이니 황제의 아버지니 하는 자리에 큰 불안감을 느끼던 페크니츠 공작은 막대한 연금도 신변 보호 약속도 상관없이 그저 이 힘든 일을 끝낼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으며 오베르슈타인 원수 앞으로 불려가 선양선언서에 서명하는 순간까지 연신 식은 땀을 닦으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 모든 일을 마치고 밖에 나서고 나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가며 작품에서 퇴장한다.
인명 및 지명에 대한 오역이 많은 해적판 을지서적판에서는 율겐 오파 폰 페크니츠란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정식판인 서울문화사와 이타카판에서는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로 번역했다.
어떻게 보자면 양 웬리가 그토록 원하던 삶을 거머쥐게 된 인물.
골덴바움 왕가의 방계 후손이자 페크니츠 가문의 당주. 작중에서 언급되는 정보를 정리하면 어머니가 루트비히 3세(소설판)/오토프리트 5세(OVA)[1] 의 황녀였다. 보덴도르프 백작부인의 조카딸과 결혼했고,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지 얼마 안된 딸을 두고 있었다. 이런 혈통으로 인하여 작중에서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고 마는데…….
당시 페잔 자치령이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의 납치를 추진하면서 제국에 은밀히 거래를 위한 교섭을 시도했고, 이러한 페잔의 계획을 묵인하기로 결정한 제국재상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과 그의 모사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이 차기 황제후보를 논의 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다만 페크니츠 자작이 아닌, '''자작의 생후 5개월에 불과한 딸'''이 황제 후보로 거론됐다.
페크니츠 자작이 아니라 그 딸을, 그것도 생후 5개월에 불과한 아기를 황위에 올렸다는 점에서 라인하르트가 얼마나 골덴바움 왕조를 능멸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카타린의 황위 계승권은 페크니츠 자작이 자기 어머니인 골덴바움 황족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므로, 카타린의 계승권을 논한다면 당연히 페크니츠 자작의 계승권이 앞선다. 그런데 꼭두각시 황제로 내세우기 위해서 이런 계승 순위를 무시한 것. 하긴 아직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아직 살아있는데 구할 시늉도 안 하고 폐위한 다음에 다른 사람을 황제로 세웠을 때부터 골덴바움 왕조의 권위가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페크니츠 자작은 여타 다른 귀족들과는 전혀 달랐다. 립슈타트 전역 때 적극적으로 라인하르트 세력에게 협력하진 않았지만 반대로 수많은 귀족들이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참여했다가 모조리 몰락하는 비극을 맞았음에도 페크니츠 자작은 '''상아 세공품 수집 이외에는 정치를 포함한 그 어떠한 세상사에 아무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기에 립슈타트 전역과 전혀(!) 연루되지 않은 몇 안 되는 귀족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라인하르트 측으로써는 정치적인 부담 없이 꼭두각시로 세워두기 딱 좋은 인물인 셈이었다.
다만 페크니츠 자작에게는 사소한 골치거리가 있었으니, 상아 세공품 대금의 일부인 75,000 제국마르크를 지불하지 못해 소송이 걸린 상태였던 것. 이 분쟁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황이 언급되는 것은 아니나 나름대로 상황을 추론해보자면, 하급 공무원이지만 나이가 적지 않았을 키르히아이스의 아버지가 연봉 40,000 제국마르크를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작은 금액이라고 보기는 어렵다.[2] 그러나 상대가 민사를 제기했다는 점을 보면 페크니츠 자작에게서 대금을 회수할 가망이 있다는 의미이며, 무엇보다 페크니츠 자작은 립슈타트 동맹에 가담하지 않은 인물이므로 보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은 귀족이다. 따라서 페크니츠 자작은 지불능력이 없었다기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없었던 것이고, 상대 역시 이런 점을 노리고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나마 체불된 것도 상아세금 대금의 전부가 아닌 일부이다. 즉 덕질하시다가 잔고가 갑자기 펑크나서 생긴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흑자도산처럼, 개개인 역시 자산 자체는 많아도 당장 현금화할 수 없어서 파산 위기에 몰릴 수 있다.[3]
이 문제에 대해서 전해들은 라인하르트는 그래도 명색이 '''다음 황제의 아버지 되실 분'''인데 그래서야 되겠냐면서 궁내성 예비비에서 소송에서 제기된 비용을 지급하도록 명령했고 큰 마찰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은하제국 정통정부의 발표와 함께 에르빈 요제프 2세의 소재가 명확해지자 라인하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폐위를 선언하고, 페크니츠 자작의 여식이 다음 황제로 옹립됐다. 이에 따라 페크니츠 자작도 황제의 아버지가 된 만큼 자작에서 공작으로 단숨에 승격됐고 섭정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물론 실권은 라인하르트와 그 주변의 인물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 역할은 그냥 얼굴마담.
하루아침에 공작이 되고 딸이 황제가 되며 졸지에 황제의 아버지가 된 격이나 당사자가 본래 세공품 수집 외에는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지라 페크니츠 '공작'은 타인이 멋대로 쥐어준 드높은 지위에 심한 불안감에 떨며 지내야만 했다.
이후 공작은 하루하루 불안에 떨며 살았으나 로엔그람 공작이 숙적 자유행성동맹을 정복하자 옥좌를 로엔그람 공작에게 선양 하도록 '허락'받아 딸의 옥좌를 넘겨준다. 전 황제의 신변과 생활 보장을 위해 은하제국은 페크니츠 공작가에 대한 신변 보호를 약속하고 전 황제 카타린 케트헨 1세가 사망하기 전까지 매년 150만 제국마르크의 연금을 지급해주었다.
처음부터 공작이니 황제의 아버지니 하는 자리에 큰 불안감을 느끼던 페크니츠 공작은 막대한 연금도 신변 보호 약속도 상관없이 그저 이 힘든 일을 끝낼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으며 오베르슈타인 원수 앞으로 불려가 선양선언서에 서명하는 순간까지 연신 식은 땀을 닦으며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 모든 일을 마치고 밖에 나서고 나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가며 작품에서 퇴장한다.
[1] 소설판의 경우에는 다나카 요시키가 역대 황제 목록을 작성하기 전에 쓴 부분에서는 계보도에 없는 황제가 등장하기도 했기에 OVA에서 이에 맞게 수정됐다고 보면 된다.[2] 또한 프리드리히 4세가 대공 시절 뷔르거라는 술집에 2만2천 제국마르크의 빚을 졌고 이 액수는 평민에게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나오는데 그 2만2천인에도 이 정도면 7만5천은 상당한 액수라고 할 수 있다.[3] 무엇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에는 립슈타트 전역의 영향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기존에야 귀족의 이름만으로도 왠만한 외상거래 정도는 충분히 가능했겠지만 이 내전으로 인해 귀족의 신용도가 급락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