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슈타트 귀족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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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Lippstadt Conspiracy[5]
은하영웅전설에 존재했던 조직. 은하제국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과 제국 재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을 비롯한 '추축파'들이 야합으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자, 이를 반대하는 문벌귀족들이 결성한 연합. 이들이 처음 모인 별장이 립슈타트 숲에 있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립슈타트 귀족연합으로 지었다.
2. 명칭
자신들을 '정의파 제후군,諸候軍,' 으로 불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주장에 불과했고, 제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반란군이었다. 다만 제국은 이미 자유행성동맹을 '반란군'이라 기록하고 있었기에 다른 명칭으로 기재할 필요가 있었고, 군무성 서기관으로부터 새 명칭을 지어줄 것을 요청받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적도군,賊盜軍,'''[6] 이라고 공식 명칭을 지어줬다.
여담으로 을지서적판에서는 반적군이었고, 서울문화사판은 번역이 굉장히 쌈박한데 '''도적떼'''로 번역했다. 다만 원래의 뜻을 감안하면 오역보다는 적당히 의역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7] 애초에 그냥 적군이라고만 쓰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賊軍이 아니라, 敵軍을 생각할 테니 이쪽이 낫기도 했다.[8]
이 명칭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자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가담한 귀족들은 라인하르트를 '금발 애송이'라 울부짖으며 광분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들은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 소령은 라인하르트를 금발 애송이라고 공공연히 비웃던 주제에 자기네들이 역적이라고 욕먹으니까 화내는 게 내로남불이라고 비웃었다.
3. 구조 및 명단
립슈타트 귀족연합은 제국 내 필두의 대귀족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빌헬름 폰 리텐하임의 동맹에 수많은 귀족들이 동참한 연합의 형태를 이루었다. 지도자이자 맹주는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부맹주는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이 취임했으며 실전부대를 지휘할 총사령관으로는 은하제국군의 숙장,宿將,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이 취임했다.[9] 그 이외에도 제국 정규군과 귀족들의 사병이 집결했고 은하제국의 장군들 중에서도 귀족연합에 가담한 자가 있었다.[10]
귀족연합에 가담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자의가 아닌, 주군이나 상관 때문에 덩달아 가담한 사람들도 있다. 또한 이도저도 아니던 프란츠 폰 마린도르프가 귀족으로서의 의리상 가담하려고 했던걸 보면 反 라인하르트 성향의 귀족만 가담한 것이 아닌 "우리 다 같은 귀족 아이가?" 라는 생각으로 가담한 이들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란즈베르크의 경우 라인하르트와 그리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에 이 사례로 추정된다.
-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원수 - 맹주
-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 - 부맹주
-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 - 실전부대 총사령관
- 오프레서 상급대장 - 장갑척탄병 총감
- 오펜하이머 백작/대장 - 헌병총감
- 슈타덴 대장 - 함대 사령관
-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중장 - 함대 사령관
- 히르데스하임 백작 - 함대 사령관
- 알프레트 폰 란즈베르크 백작
- 플레겔 남작/소장 - 함대 사령관
- 샤이트 남작 -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조카이자 행성 베스터란트의 통치자[11]
- 안스바흐 준장 -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참모이자 심복[12]
-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 준장 -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참모
- 안톤 페르너 대령 -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참모
- 레오폴트 슈마허 대령 - 플레겔 남작의 참모
- 라우디츠 중령 - 베저 저격병대대 대대장
-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 소령 - 메르카츠 상급대장의 부관
- 야콥 하우프트만 - 페르너 대령의 부관[스포일러]
- 콘라트 린저 대위 - 수송함 뒤렌 8호 부장
- 쿨리히 중사 - 수송함 파사우 3호 승무원
- 콘라트 폰 모델 유년학교 생도 - 상병 대우
- 파울스 일병 - 베저 저격병대대 부대원
- 그 외 이름이 나오지 않은 귀족들
4. 창설 배경
우주력 796년 자유행성동맹의 대규모 침공 당시, 은하제국 36대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급성 심장질환으로 붕어,崩御,하였다. 프리드리히 4세는 후계자를 정하지 않고 죽었으므로, 제국에서는 제위 계승자를 두고 첨예한 권력투쟁이 일어났다.
당시 유력한 후보자는, 문벌귀족의 거두이자 황제의 사위인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딸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와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의 딸 자비네 폰 리텐하임이었다. 이 두 가문은 오래 전부터 수많은 귀족들을 구워삶으면서 제위계승을 두고 첨예한 대립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국무상서이자 재국재상 대리를 맡고 있던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은, 제국의 앞날과 자신의 권력을 위해 문벌귀족들의 전횡을 더 이상 지켜 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선제 프리드리히 4세의 총애와 빛나는 무훈을 등에 업고 유례없는 속도로 출세한 우주함대 부사령장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과 동맹을 맺고, 프리드리히 4세의 손자인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새 황제로 옹립했다. 그리고 자신은 공작 작위를 받고, 로엔그람 후작은 우주함대 사령장관에 임명하고 후작 작위를 내렸다. 궁정은 두 사람의 동맹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두 사람을 기둥으로 새로운 체제가 새워졌다. 이 두 사람의 동맹을 '추축파'라고 부른다.
한편 이 체제에서 소외된 문벌귀족들, 특히 제위 계승에서 패배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은 크게 분노했다. 그들 입장에서 리히텐라데 공작은 '선제 프리드리히 4세의 붕어와 함께 역할을 마치고 국정에서 물러나야 할 퇴물'이었고, 로엔그람 후작은 '허울만 귀족인 빈민가 태생에, 그의 누이에 대한 선제의 총애를 이용해 영달한 하극상의 전형 같은 애송이'였다. 새 질서에 불만을 품은 귀족들은 하루라도 빨리 새 체제가 무너지기를 바랐으나, 문벌귀족이라는 공통된 적을 둔 추축파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러자 오랜 세월 서로 암투를 벌였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은, 공통된 적을 두고 비밀리에 동맹을 맺었다. 그리고 새 질서에 불만이 많은 귀족들은 서서히 이 둘의 동맹에 모이기 시작했다.
5. 활동
5.1. 결성과 도주
우주력 797년, 제국력 488년 2월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을 비롯한 반 라인하르트-리히텐라데 추축파 귀족들, 다시 말해 '연합파' 귀족들이 은하제국 수도성 오딘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소유의 별장이 있는 립슈타트 숲에 모였다. 명목은 고대 명화 경매와 원유회,園遊會,[13] 였지만, 별장 지하에서는 추축파에 반대하는 '애국서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서명이 훗날 '립슈타트 맹약'이라고 불리는 서명이며, '립슈타트 귀족연합'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모인 귀족은 총 3,740명,[14] 그들이 가지고 있는 병력은 정규군과 사병,私兵,을 합쳐 모두 2,560만에 달했다. 귀족연합을 이끌 맹주는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으로, 부맹주는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으로 결정되었다.리히텐라데와 라인하르트의 횡포를 용서할 수 없다. 우리들 귀족계급은 '선택받은 자'의 신성한 사명을 띠고 골덴바움 왕조를 수호해야 한다. 오딘 신이여! 우리를 수호하소서!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 6권 발췌
립슈타트 맹약 아래 뭉친 귀족들은 라인하르트에게 대항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무력을 조직화하고 뛰어난 인재들을 초빙했다. 오랫동안 전장을 누비며 군공을 쌓은 숙장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이 실전부대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그 외에도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중장, 슈타덴 대장, 장갑척탄병 총감 오프레서 상급대장 등 뛰어나거나 최소한 기본은 하는 장군들이 귀족연합에 합류했다.
내전이 일어나기 직전,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 준장과 안톤 페르너 대령이 로엔그람 후작을 암살하자고 주장했으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대군을 이끌고 당당히 나가 '금발 애송이'를 격파해야 한다며 기각했다. 그러자 페르너 대령이 직속부하 300명을 이끌고 라인하르트와 안네로제가 있는 슈바르첸 관저를 습격하려 했으나, 우주함대 부사령장관이자 로엔그람 후작의 죽마고우인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이 5000명에 달하는 장병들과 함께 관저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시도조차 못하고 실패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부하 안스바흐 준장의 계획대로 황제를 초청해 원유회를 연다고 소문을 내고 비밀리에 가족과 몇몇 부하들과 함께 수도성 오딘을 탈출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로엔그람 후작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슈바르츠 란첸라이터의 사령관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중장이 직접 8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군무성과 통수본부를 점거하고, 군무상서 에렌베르크 원수와 통수본부총장 슈타인호프 원수를 구금했다.
그제야 수도성 오딘이 추축파에 제압당한 걸 알게 된 연합파 귀족들은 탈출을 꾀했다. 하지만 우주항은 '질풍 볼프' 볼프강 미터마이어 대장이 점령했고, 오딘의 위성궤도에는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의 함대가 대기하고 있었으며, 그 바깥 공역에는 칼 구스타프 켐프 중장과 '금은요동,金銀妖瞳,' 오스카 폰 로이엔탈 대장이 함대를 이끌고 탈출하는 귀족들을 족족 체포했다. [15]
수도성 오딘은 추축파에게 점거당했으며,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은 4월 6일 '제국군 최고사령관'의 칭호를 받고 제국군 3대 장관을 모두 겸직하여 군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동시에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의 칙명에 따라 국적,國賊,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다.
5.2. 내전
비록 다수의 귀족들이 체포되었으나,[16] 아직 2560만이 넘는 병력과 9개 군사거점을 가지고 있는 연합군은 제국군 총 병력에 맞먹는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귀족은 군 계급은 있어도 군재는 없었고, 본래 추축파에 대항하기 위해 급조한 연합이다보니 제대로 단합하지 못했다.[17] 거기에다 로엔그람 후작을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끌어들인 사이 별동대를 조직하여 제도 오딘을 치자는 슈타덴의 주장은, 안 그래도 약한 연합의 단결력을 더 약화시켰다.
이후 슈타덴 대장의 의견대로 귀족연합군은 알테너,Altener, 성역에서 볼프강 미터마이어 대장이 이끄는 제국군과 맞붙었지만, 히르데스하임 백작을 비롯한 성질 급한 청년 귀족 장교들의 요구로 함대를 반으로 나눠야 했고 결국 참패했다. 히르데스하임 백작은 여기서 전사해 귀족 전사자 1호가 되었다.(알테너 회전)
이후 렌텐베르크 요새에서 오프레서 상급대장이 선전하여 제국군의 요새 침공을 저지했으나, 로이엔탈 대장과 미터마이어 대장의 함정에 빠져 체포되었고 슈타덴 대장을 비롯한 다수의 장병들이 포로가 되었다. 이후 오프레서는 다시 귀족연합군으로 돌아갔지만, 우주함대 총참모장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대장의 모략으로 연합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렌텐베르크 요새 공방전)
7월, 부맹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이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의 불화 끝에 5만 척의 함대를 이끌고 변경성역을 탈환하겠다는 명목으로 연합을 사실상 탈퇴했다.[18] 하지만 본래 군재가 없던 리텐하임 후작은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이 이끄는 제국군 별동대에 패배하고, 퇴각하면서 길을 가로막는 아군 수송함대를 격침하는 추태까지 보였다. 이후 리텐하임 후작은 가르미슈 요새로 도망쳤으나, 라우디츠 중령의 테러로 요새의 25%와 함께 목숨을 잃었으며 그의 함대는 와해되었다. 이 전투의 패배로 귀족연합군은 전력의 30%를 상실하였다.(키포이저 성역 회전)
한편 샨타우 성역을 점령한 오스카 폰 로이엔탈 대장의 함대는 귀족연합군 실전부대 총사령관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의 부대와 마주쳤고, 메르카츠와 맞서 싸워 큰 희생까지 내면서 차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조금 싸우다가 퇴각했다. 귀족연합군은 샨타우 성역을 점령했으며, 내전 이래 첫 승리를 기록했다.(샨타우 성역 회전)
7월 말,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도전장을 보내 귀족들을 도발했다. 귀족들은 분노했으며, 마침 미터마이어 대장의 함대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포 사정거리 밖에 거슬리게 돌아다니자 더 격분했다. 사령관 메르카츠 상급대장은 출격을 금지했지만 사흘 만에 젊은 귀족들이 명령을 어기고 출격, 미터마이어 함대를 무찌르고 함정과 군수물자를 노획해 돌아왔다. 메르카츠 상급대장은 이들을 처벌하려 했지만 플레겔 소장을 비롯한 젊은 귀족들이 이 자리에서 자결하겠다고 난리를 피웠고 맹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젊은 귀족들을 치하하자 포기했다.
8월 15일, 미터마이어 함대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공격하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비롯한 귀족들은 총사령관 메르카츠 상급대장의 명령도 무시하고 제멋대로 출동했다. 미터마이어 함대가 도망치자 귀족연합군은 승리를 확신하며 미터마이어 함대를 추격했다. 미터마이어 함대는 연합군이 추격을 늦추면 공격하고 반격하면 후퇴하는 식으로 귀족연합군을 도발했으며, 마침내 그들이 종심진,縱深陳, 안쪽으로 유인당했을 무렵 전광석화처럼 돌진하여 귀족연합군을 분쇄하였다. 패주하는 귀족연합군은 대기하고 있던 제국군 제독들에게 일방적으로 학살당했으며, 맹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기함마저 피탄당했다. 그때 메르카츠 제독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귀족연합군을 추격하느라 전열이 흐트러진 제국군을 일제포격으로 제압하고 근접전으로 함렬을 무너뜨리자 미터마이어 대장과 로이엔탈 대장은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제1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그 와중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영지인 베스터란트를 관리하던 공작의 조카 샤이트 남작이 주민들의 폭동에 부상을 입고 가이에스부르크에서 숨을 거두었다. 분노한 공작은 주변의 반대를 물리치고 베스터란트에 핵폭격을 가해 주민 200만 명을 몰살했으며, 추축파는 이를 방관하는 걸 넘어 이를 전 제국에 생중계해 제국의 민심을 일거에 추축파로 돌아서도록 만들었다.(베스터란트 학살사건)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으로 완전히 돌아선 민심과 계속된 패전으로 인해, 귀족연합군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고립되었다. 맹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인망과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절망한 귀족들은 자살하거나 각자 살 길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투지를 잃지 않은 플레겔 남작을 비롯한 젊은 귀족들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설득하여 남은 병력을 이끌고 제국군을 쳤다. 하지만 6번의 파상공세가 모조리 실패로 돌아가면서 귀족연합군은 지쳤고, 그 틈을 노려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의 고속순항함대가 연합군을 역습하고 제국군 제독들이 일제히 공격하면서 연합군은 붕괴한다.
붕괴하는 귀족연합군에서는 살육전이 벌어졌다. 전원 자결을 주장하는 귀족 출신의 고급장교와 평민 출신인 하급장교 및 병사들이 유혈충돌한 것이다. 수많은 고급장교들이 하극상을 당해 목숨을 잃었고, 함선들은 병사들에게 제압되어 제국군에 항복했다.
겨우 요새로 돌아온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부하 안스바흐에게 자살을 '당했고', 이후 제국군이 요새로 진입하자 연합군은 산발적인 저항을 벌였지만 금방 제압당했다. 이후 가담한 귀족들은 포로가 되었으며, 귀족연합은 해체되었다.(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
5.3. 멸망과 그 이후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중장은 로엔그람 후작 편으로 전향한다. 그 후 은하제국군 소속 함대 지휘관으로 그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내며 활약한다.
안스바흐 준장은 주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마지막 명령을 수행하였다. 그는 로엔그람 후작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그 대신 후작의 죽마고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을 살해하고 자결했다.
귀족연합군 실전부대 총사령관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은 자결하려 했으나 부관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 소령의 기지로 실패하고, 부관의 조언에 따라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하였다. 메르카츠 제독은 이후 자유행성동맹군 이제르론 요새&요새 주둔함대 사령관 양 웬리 대장 휘하의 객원제독으로서 라인하르트의 은하제국군과 대립한다.
플레겔 소장은 '멸망의 미학' 운운하며 일단 도망치자는 참모 레오폴트 슈마허 대령을 사살하려다가 부하들에게 살해당한다. 배를 장악한 참모 레오폴트 슈마허 대령과 그 부하들은 전함 빌헬미나를 이끌고 페잔 자치령으로 망명했다. 이들은 전함을 판 돈으로 애쉬니보이어 계곡의 미개척지를 구입하여 농장을 경영했다.
알프레트 폰 란즈베르크 백작은 페잔 자치령으로 망명했다. 망명 당시 재산을 들고 오지 못했으나 옷에 붙어 있던 보석으로 먹고 살 수 있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부하였던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 준장과 안톤 페르너 대령은 전향하여 로엔그람 후작의 부하가 되었다.
전투에서 살아남은 대다수 귀족들은 완전히 몰락했다. 재산은 모조리 빼앗겼으며 특권도 박탈되었다. 그리고 이런 귀족들은 아직도 특권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하고 페잔 자치령의 지원을 받아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납치한 뒤 자유행성동맹으로 망명하여 은하제국 정통정부를 세우게 된다.
6. 영향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활약(?)은, 이들이 지키려고 했던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을 오히려 완전히 끝장내버렸다. 문벌귀족들은 자기 스스로 헤드샷을 날린 꼴이나 다름없었다.
프리드리히 4세의 사망 당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자유행성동맹의 제국령 침공작전을 물리치면서 군사적 명성을 높이 쌓았고, 실력있는 소장파 군부 장성들의 지지를 얻어 세력을 모았다. 하지만 그 세력은 아직 그다지 크지 않았고,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를 위시한 관료들과 협력하여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옹립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다.[19]
문제는 은하제국의 주적인 자유행성동맹은 150여 년에 걸친 제국과의 전쟁과 최근의 패전으로 국력이 한계에 달하고 군사력도 보충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갈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제국에 공세를 펼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동맹이 싸우러 나오지 않으면 라인하르트가 군공을 더 쌓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먼저 쳐들어가자니 이제르론 회랑과 이제르론 요새는 이미 동맹의 거점이 되어 있고, 명장 양 웬리가 단단히 막고 있어서 이곳을 돌파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설령 이제르론 요새를 지키는 자가 양 웬리가 아니었다고 해도 문벌귀족들의 뒷공작이 걱정돼서 제대로 정벌을 나서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당시까지 페잔 자치령은 일단 제국의 속령이므로, 아무리 라인하르트라고 해도 귀족들과 적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페잔의 독립을 짓밟고 페잔 회랑으로 침공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그러다가 립슈타트 전역으로 문벌귀족들이 패망하면서 부담이 없어지게 된 라인하르트는 이후 명분을 잡게되자 아무 거리낌 없이 페잔을 침공해버린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라인하르트는 일단 제국 권력의 최고점에 올랐지만, 이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기에는 딱히 좋은 건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즉 라인하르트에게 썩 유리한 상황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골덴바움 왕조의 존속을 목표로 하는 리히텐라데에게는 문벌대귀족들이 군부의 라인하르트를 견제해줄 것이므로 일단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장성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반란은, 군권을 쥐고 있는 라인하르트의 정치적 영향력과 운신의 폭을 크게 넓혀주었다. 일단 반란이 크게 일어났으므로 라인하르트는 반란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20] 라인하르트는 반란에 가담한 문벌대귀족들을 자신이 이끄는 제국군으로 짓밟아버리고, 반란 진압을 끝내자마자 쿠데타를 일으켜서 손쉽게 리히텐라데를 제거했다.[21] 립슈타트 전역이 끝난 후, 반란에 가담했다가 살아남은 문벌대귀족들은 모조리 한꺼번에 싸잡아 "반역자"라는 명분으로 손쉽게 정리해버릴 수 있었다. 그나마 남은 소수의 귀족들은 라인하르트에게 항복했으므로, 립슈타트 전역은 라인하르트가 문벌귀족 계급을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문벌귀족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라인하르트도 이렇게까지 쾌도난마 파죽지세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최소한 얼마 동안은 문벌귀족들과 지지부진한 정쟁을 벌여야 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이 제멋대로 반란을 일으킨 덕분에 라인하르트 파벌은 반대파를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문벌귀족은 '정치판의 권모술수'라는 자기들의 싸움터를 스스로 버리고, '전쟁터'라는 라인하르트에게 유리한 전장으로 뛰쳐나와 스스로 패망한 셈이다.
단 이는 이론상 그렇다는 말이고, 엄밀히 말하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나 리텐하임 후작 역시 라인하르트처럼 시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나 리텐하임 후작의 진짜 목적은 제국의 부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신의 자식을 황제로 옹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에르빈 요제프 황제가 옹립된 이후로 계속 시간만 지나게 되면 당연히 리히텐라데-로엔그람 라인은 안정권에 들어가게 될 테고[22] ,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최고 권력자가 되는 것은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암살 역시 마찬가지로, 설령 리히텐라데 공작과 라인하르트를 동시에 암살하는게 가능했다고 치더라도 그 뒤로 상대를 압도하여 황제를 세울 만한 권위를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23][24] 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리히텐라데 공작과 라인하르트를 암살하고 신 황제를 옹립하게 될 경우 리텐하임 역시 선례를 따르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며, 이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군인 황제 시대의 로마처럼 개나 소나 황제를 자처하는 시대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시간을 끌면 불리한 것은 라인하르트 쪽이 맞다. 시간이 지나면 라인하르트와 리히텐라데는 문벌귀족들의 정치적 공세에 부딪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영지나 귀족간 인맥이 없어서 밑바탕이 탄탄하지 못한 라인하르트와 리히텐라데 쪽이 불리하게 될 것이다. 또, 문벌귀족 측에서는 시간을 끌어서 불리한 것은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 뿐이고 나머지는 시간이 지나봤자 그냥 현상유지를 하게 될 뿐 딱히 불리하게 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문벌대귀족에게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버리고 에르빈 요제프를 섬긴다는 선택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25]
7. 패전 원인
이들은 골덴바움 왕조의 지배층인 문벌귀족의 연합이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전력을 자랑했다. 2560만에 달하는 병력,[26] 그 병력을 먹여살리는 막강한 경제력,[27] 이제르론 요새를 제외한 제국 최강의 요새인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비롯한 9개 군사거점, 메르카츠나 파렌하이트처럼 우수한 제독까지. 말 그대로 은하제국군과 1대 1로 싸울 수 있을 정도의 전력이었다.'''"귀족 연합군은 전의는 과다하나 전략은 과소하다."'''
하지만 이들은 1년을 넘길 거라는 라인하르트와 오베르슈타인의 예상을 깨고, '''겨우 7개월 만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과연 무엇이 문제였는지, 위키러의 판단일 뿐이지만 패배한 원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 부족한 명분과 불분명한 목적, 약한 결속력
일단 명분부터가 애매했다. 국정을 농단하는 리히텐라데와 라인하르트를 몰아낸다는 취지인데, 농단의 근거가 없었다. 물론 이는 표면상의 명분이었고 실제 의도는 브라운슈바이크나 리텐하임이나 다 자기 딸을 황제 자리에 올리겠다는 것이었고, 당장 눈앞의 문제인 리히텐라데와 라인하르트를 타도한다는 목적에 귀족들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하지만, 이 내전에서 승리한다 해도 누구를 황제 자리에 올리는가를 두고 또 한번 내전을 벌여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정통성 면에서 문제가 없고 전쟁을 벌일 필요가 없는 리히텐라데와 라인하르트를 선택하는 소수의 귀족도 존재했다. 게다가 이 문제는 한참 전쟁 중인 상황에 브라운슈바이크-리텐하임의 사실상 결별이라는 형태로 터져버렸다. 그 결과 벌어진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립슈타트 귀족연합은 부맹주 리텐하임이 사망하고 전 병력의 1/3을 상실하는 대참패를 겪었다. 하다못해 상대방인 라인하르트-리히텐라데의 연합이 귀족들처럼 불안정했다면 모를까 둘은 언젠가는 서로를 쳐야 할 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지만 당장의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서로의 협력이 불가피함을 알고 있었고 라인하르트의 부하들의 대다수가 라인하르트 덕에 이만큼 출세할 수 있던 평민이나 하급 귀족 출신 장성들이었기에 이런 분란이 발생할 여지가 없었다.
- 안톤 페르너의 삽질
라인하르트 측도 귀족들이 결집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손을 댈 수 없었다.[28] 브라운슈바이크의 부하 페르너는 안네로제를 납치하거나 라인하르트를 암살해 사태를 전쟁 없이 끝낼 것을 종용했는데, 브라운슈바이크는 이를 무시했지만[29] 페르너가 단독으로 결행했다가 실패하고 만다. 그 덕분에 라인하르트 측에는 귀족 세력을 잡아들일 명분이 생겼고, 곧 오딘에 있던 귀족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3700여명의 귀족들 중에서 600여명이나 잡혀서 귀족들 입장에서는 시작 전부터 세력을 1/6이나 날려먹은 꼴이 되었다. 또한 페르너가 단독으로 결행한 탓에 병사 수가 부족했고 이미 매복하고 있었던 쪽이 물량 면에서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페르너가 단독으로 라인하르트를 암살하려던 시점에서 이미 실패는 예견되어 있었다. 체제의 안정을 위해 라인하르트를 암살해야 한다는 페르너의 판단은 옳았지만, 너무 라인하르트를 얕본 게 문제인 셈.[30] 여기에 페르너는 자신의 실패로 귀족들이 싹 갈려나가자 바로 라인하르트파로 전향한다.
- 지휘부의 무능과 군기문란
귀족연합군에도 인재가 없지는 않았다. 귀족연합군의 총사령관은 메르카츠로, 라인하르트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무훈을 쌓아온 명장이었다. 그러나 귀족연합군은 이 명장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해놓고 실제로는 권한을 행사하게 두지 않았으며, 명령을 대놓고 무시하는 등 제멋대로 굴었다.[31] 안 그래도 라인하르트 쪽은 라인하르트 본인뿐 아니라 키르히아이스, 미터마이어, 로이엔탈 등 유능한 함대 지휘관들이 수두룩한데, 이들과 맞서야 하는 귀족연합군은 자기네가 가진 최고의 지휘관인 메르카츠에게 지휘권을 위임하기는 커녕 사사건건 어깃장만 놓았다. 메르카츠 본인도 이게 염려되어서 귀족군에 참여하는 대신 지휘권을 달라고 했고 브라운슈바이크도 이에 동의했지만, 결국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브라운슈바이크 본인부터 청년 귀족들이 메르카츠의 명령을 무시하는 걸 대놓고 옹호했으며, 심지어 자신을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준 메르카츠에게 왜 빨리 구하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화를 내기까지 했다.
- 청년 귀족 장교들의 문제점
청년 귀족 장교들의 행태는 그야말로 막장이었다. 명장이라기에는 부족하지만 많은 실전을 겪어왔고 최소한 군인으로 기본은 하는 슈타덴 대장의 지휘에 불만을 가지고, 군계급도 없는 주제에 사령관인 슈타덴에게 대놓고 덤벼들며 어거지로 정면돌격하는 형편없는 전투를 벌이게 한다. 슈타덴은 처음에는 무시했으나, 나중에는 귀족이랍시며 슈타덴을 쫓아내고 자기들이 지휘한다고 나서니 기획했던 작전을 무르고 그들이 원하던 대로 정면으로 싸워야 했다. 그래도 슈타덴은 함대를 절반으로 나누어 그 절반을 히르데스하임 백작에게 지휘하게 하고 최소한 사령관인 자신의 지시를 따르게끔 했으며 마침 미터마이어가 살포해놓은 기뢰군을 이용해서 미터마이어 함대를 자신이 본대를 이끌고 앞을 히르데스하임 백작이 기뢰군을 우회해 뒤로 포위하여 기뢰군으로 밀어넣는 작전을 세워서 전달했으나, 그마저도 무시하는 바람에 결국 참패할 수밖에 없었다. 히르데스하임은 기함과 같이 우주의 먼지가 되고, 슈타덴은 렌텐베르크 요새까지 후퇴해야 했다. 이렇게 도저히 이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 무모함에 지고도 정신승리나 하고, 총사령관 메르카츠 상급대장의 명령을 대놓고 무시하는데다 이를 처벌하려는 메르카츠에게 오히려 대드는 등 추태만 거듭했는데, 끝내는 라인하르트의 도발에 명령을 무시하고 멋대로 나가 싸우다가 참패했다. 심지어 맹주라는 브라운슈바이크가 출격 금지 명령을 위반한 귀족들을 옹호하는 걸 보고,[32] 메르카츠는 완전히 체념하고 이들을 방치했다. 강직한 군인인 메르카츠 제독마저 포기할 정도면, 답이 없는 막장들이다. 더 심한건 아랫것들까지도 똑같이 막장이라면 모르겠는데 그들을 섬겨야 하는 부하들은 유능한 이들이 많았다. 즉 일이랑 지휘권은 부하들에게 다 맡겨두고 자기네들은 지휘관석에 앉아있기만 하는 걸로도 충분했다. 문제는 이들은 계급도 무시하는 것은 물론 능력도 없어서 부하들에게 이것저것 간섭해 일을 망치고 있었다. 그야말로 카드놀이와 전쟁도 구분 못한다는 말을 들은 헤르베르트 한 명이 패배를 불러왔는데, 귀족연합에는 헤르베르트 수준의 인간들이 한둘도 아니고 수두룩 빽빽했으니 지는 게 당연한 일.
- 생명 경시
수백년간 귀족 계급으로 평민들 위에 군림하던 탓인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겼다. 리텐하임은 아군 수송선이 자기 도주로를 가로막는다며 그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그 결과로 해당 수송선단에 있다가 부상당한 콘라트 린저 대위는 라인하르트에게 항복했고, 라우디츠 중령은 제플입자를 가지고 들어가 사령부와 함께 자폭해 가르미슈 요새 함락에 큰 공헌을 했다. 브라운슈바이크도 베스터란트 사람들이 자기 조카 샤이트 남작을 죽게 했다며 베스터란트를 핵폭격했다. 비록 베스터란트가 본인 영지긴 했으나, 거기 있는 사람들의 목숨까지 자기 소유물이라는 생각으로 마구잡이로 죽인 만행이었고 전략적으로도 아무 의미 없는 행위였으며, 나아가 이 일로 귀족들조차 경악해 라인하르트 측에 투항하거나 자살했다. 그 결과 이들은 망했다.
- 능력의 차이
귀족들은 라인하르트 휘하의 지휘관들에 비해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다. 상술한 대로 귀족연합군 지휘부와 청년 장교들은 모두 문제가 심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반대로 그들의 적인 라인하르트 군의 지휘관들은 숱한 실전을 겪으며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었다.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는 반란을 일으킨 클롭슈톡 후작을 진압하는 데 무려 한 달이나 소모했고, 제1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에서도 미터마이어의 도발에 낚여 출격했다가 죽을 뻔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무능했다.[33] 빌헬름 폰 리텐하임은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5만 척의 대함대를 가지고도 키르히아이스가 지휘하는 제국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도주하다 아군 수송함대를 공격할 정도로 무능했으며, 히르데스하임은 무질서하게 전장으로 향하다가 미터마이어 함대의 공격에 전사하는 등, 귀족들의 군사적 무능은 상상을 초월했다.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는 반란을 일으킨 클롭슈톡 후작을 진압하는 데 무려 한 달이나 소모했고, 제1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에서도 미터마이어의 도발에 낚여 출격했다가 죽을 뻔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무능했다.[33] 빌헬름 폰 리텐하임은 키포이저 성역 회전에서 5만 척의 대함대를 가지고도 키르히아이스가 지휘하는 제국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도주하다 아군 수송함대를 공격할 정도로 무능했으며, 히르데스하임은 무질서하게 전장으로 향하다가 미터마이어 함대의 공격에 전사하는 등, 귀족들의 군사적 무능은 상상을 초월했다.
- 귀족과 평민 간의 괴리
이 전쟁에서 귀족들은 국정을 농단한 라인하르트와 리히텐라데 공작을 처단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평민들은 어느 쪽이 이기든 별 상관도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문벌귀족이든 라인하르트 일파든 별 차이가 없었고, 사실상 돈이나 지위 등을 위해, 혹은 그냥 관성적으로 참전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평민들은 아직까지는 귀족들을 자신들의 상전으로 모시고 있었지만, 문벌귀족 체제 하의 모순 때문에 속에서 불만이 커져오던 참이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어떻게든 이를 터뜨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립슈타트 전역의 승패를 결정하고 골덴바움 왕조를 사실상 무너뜨린 사건이며, 이 만행을 저지른 브라운슈바이크 스스로도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었다. 베스터란트 학살사건 자체는 우연히 일어나긴 했지만 이 사건은 사실상 문벌귀족의 모든 병폐가 집약되어 나타난 것으로 설령 이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비슷한 사건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34][35]
브라운슈바이크가 연전연패하고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틀어박히긴 했지만, 라인하르트 측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것은 아니었다. 라인하르트가 당면한 적은 귀족연합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후에는 도저히 신용할 수 없는 동맹인 리히텐라데 공작이 있었고, 이제르론 회랑 너머에는 라인하르트에게 이를 갈고 있을 게 뻔한 동맹군이 있었기 때문이다.[36] 즉, 군사적으로는 한 번도 지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유리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이 시점에서 라인하르트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시간이었다. 너무 시간을 끌면 리히텐라데는 뒤통수를 치려 할 것이고, 동맹은 동란을 마무리짓고 명장 양 웬리를 내세워 제국의 내란에 끼어들거나 라인하르트 진영에 보복을 가할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라인하르트의 목적은 문벌대귀족 전체의 숙청이었지만, 리히텐라데 공작의 목적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의 힘을 꺾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리텐하임 후작은 죽었고 남은 건 야코가 죽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뿐이니, 이 시점에서 리히텐라데 공작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해서 브라운슈바이크의 목을 대가로 남은 귀족들을 사면하거나[37] 혹은 라인하르트와 브라운슈바이크 간 화해라도 주선하게 되면 라인하르트는 정치적으로 패배하게 되는 것이며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38][39][40]
그런데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문벌귀족들은 명실상부한 제국의 공적이 되었고 평민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증오를 받게 되었으며,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문벌귀족을 타도하여 제국을 수호한다는 굳건한 명분을 손에 쥐게 되었다. 반대로 귀족연합군의 평민 병사들은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자신들이 귀족들의 변덕에 따라 얼마든지 소모품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귀족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달했다. 심지어 몇몇 귀족들조차 이 사건으로 더이상 귀족연합은 회생할 수 없을 거라고 예측하였다. 그리고 결국 귀족과 평민 간의 틈새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게 되었고 귀족연합군이 스스로 무너지게 되는 결말을 낳았다.[41]
브라운슈바이크가 연전연패하고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틀어박히긴 했지만, 라인하르트 측이 절대적으로 우세한 것은 아니었다. 라인하르트가 당면한 적은 귀족연합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배후에는 도저히 신용할 수 없는 동맹인 리히텐라데 공작이 있었고, 이제르론 회랑 너머에는 라인하르트에게 이를 갈고 있을 게 뻔한 동맹군이 있었기 때문이다.[36] 즉, 군사적으로는 한 번도 지지 않았지만 정치적으로는 유리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이 시점에서 라인하르트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시간이었다. 너무 시간을 끌면 리히텐라데는 뒤통수를 치려 할 것이고, 동맹은 동란을 마무리짓고 명장 양 웬리를 내세워 제국의 내란에 끼어들거나 라인하르트 진영에 보복을 가할 우려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라인하르트의 목적은 문벌대귀족 전체의 숙청이었지만, 리히텐라데 공작의 목적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의 힘을 꺾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미 리텐하임 후작은 죽었고 남은 건 야코가 죽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뿐이니, 이 시점에서 리히텐라데 공작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해서 브라운슈바이크의 목을 대가로 남은 귀족들을 사면하거나[37] 혹은 라인하르트와 브라운슈바이크 간 화해라도 주선하게 되면 라인하르트는 정치적으로 패배하게 되는 것이며 죽 쒀서 개 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38][39][40]
그런데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문벌귀족들은 명실상부한 제국의 공적이 되었고 평민들로부터 어마어마한 증오를 받게 되었으며,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문벌귀족을 타도하여 제국을 수호한다는 굳건한 명분을 손에 쥐게 되었다. 반대로 귀족연합군의 평민 병사들은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고 자신들이 귀족들의 변덕에 따라 얼마든지 소모품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귀족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달했다. 심지어 몇몇 귀족들조차 이 사건으로 더이상 귀족연합은 회생할 수 없을 거라고 예측하였다. 그리고 결국 귀족과 평민 간의 틈새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게 되었고 귀족연합군이 스스로 무너지게 되는 결말을 낳았다.[41]
8. 만약 귀족연합이 승리했다면?
8.1. 제국의 경우
이 경우 추축파 귀족들은 말할 것도 없이 전원 처형당하거나 영토가 몰수, 동맹 및 페잔으로 망명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에르빈 요제프 2세의 경우 폐위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사실상 독살당하게 되었을 것이다. 애시당초 립슈타트 귀족연합 자체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이 자기 딸을 차기 황제로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에르빈 요제프 2세가 살아남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다만 만약 운좋게 립슈타트 전역이 끝난 후 바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리텐하임 후작이 바로 자기들끼리 2차전에 돌입하게 되었다면 잠시동안은 꼭두각시 황제로써 그대로 잠시 놔두렸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오래가진 못했을 테지만 만약 두 사람이 공멸하기라도 한다면 정통성을 가진 황제로서 자리를 보전했을 지도 모른다..
이후 한동안 제국과 동맹은 서로 소강 상태로 대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제국이든 동맹이든 각자 내전을 치렀기 때문이 그에 대해 회복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42] 일단 더 힘이 강력한 제국이 더 먼저 회복하겠지만 제국은 다시 한번 지리한 내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고 동맹의 경우 여전히 욥 트뤼니히트가 집권한 상황이므로 어쩌면 양 웬리는 정부에 의해 토사구팽당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동맹 역시 워낙 소모한 자원이 커서 한동안은 움직이기 힘들었을테니 의외로 양 웬리는 좋아했을 수도 있다.[43]
라인하르트는 전사하거나 붙잡혀서 처형되지 않았다면 안네로제 및 키르히아이스, 살아남은 부하들과 함께 동맹으로 망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후 안네로제의 안전을 보장한 후 메르카츠 대신 동맹군에 합세하여 제국을 역침공할 수도 있고 정계에 투신하여 욥 트뤼니히트와 맞붙게 될 수도 있다. 잘만 되면 라인하르트와 양 웬리라는 황금 콤비가 결성되었을 수도...[44]
키포이저 성역 회전 이후 귀족연합이 반격하여 승전한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비록 전초전 및 리텐하임 후작의 삽질로 대략 6만 척에 달하는 함선과 요새 두 개를 날려먹은 상황이지만, 이 시점에서도 귀족연합군은 제국군을 상회하는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제국군도 라인하르트와 키르히아이스 함대로 나뉘어 있었으므로, 가이에스부르크에 주둔한 귀족연합군은 제국군 본대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 시기에 약속대로 메르카츠나 파렌하이트같은 명장들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말만 잘 들었으면 호각 이상의 승부가 가능했다. 어쨌든 이 경우에는 귀족연합이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일극체제가 되었으므로,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몰아낸 후 엘리자베트 폰 브라운슈바이크가 황제가 되고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섭정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내란으로 피해가 크고 라인하르트가 기껏 발굴한 인재들이 이 상황에서 죽거나 도망쳐서 흩어질 가능성이 크므로, 한동안 제국군은 군사행동에 나서지 못할 뿐더러 제국군이 동맹령 원정에 나선다 해도 양 웬리가 버티고 있는 이제르론 요새를 넘을 가능성은 낮다. 사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및 그 딸 엘리자베트 역시 이제까지 제국의 젼례에 따라 암살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높고[45] 그게 아니더라도 제국은 엄청난 정치 투쟁과 반란에 휘말리게 돼서 도저히 동맹에 대한 군사행동을 감행하기가 쉽지 않게 될 것이다. 당장 프리드리히 4세 때만 해도 카스트로프 동란같은 지방반란이 있었는데 정통성이 낮고 능력도 없는 브라운슈바이크가 이런 지방 반란을 제때 진압할 가능성은 별로 없을 테니 말이다.[46][47]
8.2. 동맹의 경우
8.2.1. 욥 트뤼니히트 정권 유지
내란 후 제국이 자기들끼리 2차 내전에 들어가는 것이 확실한 만큼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을 거라 예측되는 양 웬리를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군을 완전히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양 웬리 숙청설은 큰 의미는 없을수도 있는데 2차례의 내전을 겪은 은하제국은 여전히 강적인지라 양 웬리를 숙청해봐야 트뤼니히트 입장에서는 아직 득 될게 없다. 외려 양 웬리를 이제르론에 남겨두는게 이득이 될 수 있는데 만일 양 웬리가 이제르론에서 물러난 상태에서 제국군의 침공으로 이제르론 요새가 함락되면 여론은 "우리의 양 웬리느님이 함락시켰는데 나쁜 트뤼니히트 때문에 뻇겼어염"으로 흘러갈 것이고 아무리 트뤼니히트라 하나 그 여론은 굉장히 귀찮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양 웬리가 이제르론에 남아있는다면 이제르론 함락에 의한 자유행성동맹의 위기는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며 설령 함락되면 그 책임을 양 웬리에게 떠넘길 수도 있다. 물론 이때는 "이제르론을 함락시켰으면서 왜 지키지는 못했냐?" 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끝 즉 양 웬리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시기도 적절할텐데 내전의 승자가 브라운슈바이크가 되든 리텐하임이 되든 제국은 동맹이 했던 이제르론 공격에 집중할테고 이 점에서 보면 트뤼니히트가 양 웬리를 경질할 틈이 없을 가능성도 높다. 물론 이 조건은 2차 내전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가정한다. 그 이유는 트뤼니히트의 태도 변화가 제국과 동맹의 국력차가 거의 2:1에 가까울 정도로 극명하게 갈라졌기에 페잔이 방침을 바꿨기 떄문에 기인하기 때문, 즉 제국과 동맹이 내전으로 똑같이 병신이 되면 페잔은 현상유지를 원할 것이고 트뤼니히트 역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8.2.2. 욥 트뤼니히트 정권 교체
가능성은 낮지만 모종의 이유로 욥 트뤼니히트가 쫓겨나고 조안 레벨로나 시드니 시톨레처럼 양심적인 이가 최고평의회장과 국방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고, 알렉산드르 뷰코크가 통합작전본부장이 돼서 양 웬리에게 군사적 전권이 주어질 경우 양 함대가 제국령을 침공할 수도 있다. 물론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동맹의 사정이 영 아니고 양 웬리의 성격상 어렵겠지만[48] 조건만 충족된다면 가능성이 있다. 사실 이는 외전에서 양 웬리가 구상해본 적이 있었고 만약 라인하르트가 사라졌다면 난이도는 훨씬 내려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혹시 라인하르트 일파 중 몇몇이 이제르론에 망명하고 양 웬리가 이들을 지휘할 수 있다면 꿈의 드림팀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9. 규모의 변천[49]
- 성립 당시
3740명의 귀족 가담. 맹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부맹주 리텐하임 후작, 병력 2560만 명, 함선 약 16만 6천 척, 군사요새 9개.
- 립슈타트 전역 시작
라인하르트군에 의해 625명의 귀족들이 오딘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체포됨. 그 외엔 큰 변화 없음.[50]
- 키포이저 성역 회전 이후
부맹주 리텐하임 후작 사망, 가르미슈 요새 상실과 전 병력의 1/3 상실. 잔여병력 약 10만 척
출전한 병력의 약 70% 상실. 잔여병력 불명.(약 7~8만 쳑 정도로 추정.)[51]
맹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사망과 가에스부르크 요새 상실. 귀족 연합 와해.
10. 기타
자유행성동맹의 제독 양 웬리는 양자 율리안 민츠와의 대화에서 대귀족들의 승리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1. 동맹군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해서 공수맹약,攻守盟約,을 맺는다. 이를테면 상호불가침, 제국령 일부 양도, 사상범 석방 등등.
2. 가급적 전력을 아끼면서 제국군과 동맹군을 격돌시킨다.
3. 양측 다 기진맥진할 때 멀쩡한 전력으로 로엔그람 후작과 동맹군을 쫓아내고 정권을 잡는다.
하지만 양 웬리가 말했듯이 이 전략은 애초에 라인하르트를 '금발 애송이'로 멸시하고 과소평가하던 대귀족들이 수용할 수 없는 전략이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52]
11. 관련 문서
[1] 립슈타트 맹약이 맺어지는 순간. 이 장면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테니스 코트의 선서>를 패러디했다. 구체제와 귀족들을 타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테니스 코트의 선서와 구체제 수호와 귀족 특권 수호를 위해 만들어진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중앙에 서서 오른손을 든 인물은 맹주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 옆에 뒷짐 지고 서 있는 사람은 부맹주 빌헬름 폰 리텐하임 후작이다.[2]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의 정확한 날짜가 불명확하다.[3] 제국 연호인 제국력 (RC)으로 표기함.[4] 다만 이 숫자는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이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당장 귀족연합에 보급이 막혔다는 말도 없고 라인하르트가 모든 제국령을 장악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 가이에스부르그 요새도 자체적으로 군함을 생산할 설비가 있거나 최소한 수리 설비는 당연히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귀족연합 측 보급이 막히게 되는 시기는 키르히아이스가 변경을 장악하고 리텐하임 후작을 처단한 때부터고 본격적으로는 베스타란트 사건을 통해 완전히 막혔을 가능성이 높다.[5] 공모, 음모 등의 뜻을 가리키는 단어. [6] 이타카판에서의 명칭이며, 일본어 원어로는 적군,賊軍,이다. 일본에서는 정부의 군대인 관군,官軍,의 반의어로 쓰이는 단어인데, 역적의 군대를 칭하는 표현.[7] 그러나 여기서 쓰인 적(賊)은 도적이 아니라 역적을 말하므로(정확히는 둘 다의 의미를 포함한 중의적 표현이다.), 썩 좋은 의역은 아니다. 또, 도적떼는 공식 문서에 쓸 만한 어휘도 아니고(...). 적도군 역시 비슷하지만, 그래도 이쪽은 대놓고 도적이라 칭하지는 않고 어쨌든 공식 문서에 쓸 정도는 된다. 실제로 한국사에서 홍경래의 난 발생 당시 조정에 올려온 보고에 ''''적도'''가 일어나 가산고을이 점령당했습니다.' 라는 부분이 있다.[8] 라고는 하지만 적절한 단어라고 보기는 힘들다. 반적군이나 적도군, 적군 등은 전부 다 정식 군대, 정규군같은 단어에 충분히 대응되고 의미도 통하는 단어들이지만 도적떼는 뜻도 문제가 있지만 욕설처럼 들려서 공식으로 올라갈 만한 품위있는 말도 아니다.[9]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문벌귀족들이 가족의 안위를 위협하자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10] 이는 립슈타트 귀족연합에 참가한 귀족들 다수가 군 계급을 가지고 있다는데서 보면 알겠지만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를 이끌고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11]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로 합류하지 않고, 베스터란트에 머물면서 브라운슈바이크를 지원한 듯하다.[12] 거의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세트로 등장한다는 점을 보면, 단순한 군인 신분이 아니라 브라운슈바이크의 비서나 집사, 고문 역할을 겸하는 인물로 여겨진다. 브라운슈바이크가 제국군 예비역 원수이니 안스바흐도 준장을 받았을 것이다.[스포일러] 라인하르트파가 귀족연합군 내부에 심은 첩자.[13] 여러 사람이 정원이나 산·들에 나가서 노는 모임.[14] OVA에서는 3,786명.[15] 여기에서 소설과 OVA의 묘사가 다른데, 소설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탈출 직후 추축파가 오딘을 점거하고 반대파를 몰아내지만, OVA에서는 슈바르첸 관저 습격 직후 라인하르트가 쿠데타를 지시하며, 브라운슈바이크는 오딘을 탈출하다가 바렌 함대와 마주치지만 민간선박 사이에 끼어들어가 무사히 탈출한다.[16] 원작에는 이때 체포된 귀족의 수가 언급되지 않지만, OVA에서는 625명이라고 언급된다.[17] 귀족 사병에 일부 정규군이 있었으며 추측상 용병들도 있었을 것이다. 반면 라인하르트는 정규군을 이끄는데다가 자기가 이끄는 이들이 전부 자기 부하들이다보니 단결력에서는 월등하게 뛰어날 수 밖에 없다.[18] 하지만 사실 진짜 목적은 오딘을 탈환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바로 직전에 슈타텐의 (본의는 아니지만)트롤링도 있었고 브라운슈바이크나 리텐하임이나 둘 다 자기 딸이 제위에 오르도록 후원하는 입장이라 더 큰 공을 원하고 있었는데 오딘을 탈환해 황제를 옹위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을 수는 없기 때문. 이에 비해 변경성역 탈환은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다지 티나는 공적은 아니다. 다만 브라운슈바이크의 방해공작을 피하기 위해 명목상으로만 변경성역 탈환을 주장했을 가능성이 높다.[19] 물론 라인하르트에게는 군사력이 있었으므로 쿠데타를 일으킬 정도의 여력은 되었겠지만, 이 때까지 황제의 곁에서 명분을 쥐고 있었던 쪽은 어디까지나 리히텐라데였기 때문에(사실 라인하르트도 리히텐라데와 함께 에르빈 요제프를 황제로 세웠기 때문에 명분을 가질 수 있었다.) 라인하르트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자칫 잘못하면 반역자로 몰려 쫒겨나는 꼴이 될 수 있었다.[20]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귀족연합에 붙인 공식명칭인 '적도군'. 라인하르트는 립슈타트 귀족연합을 황제에게 반기를 든 역적으로 몰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치가 명분 싸움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정적을 반역자로 몰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나게 큰 메리트다. 또 하나는 자신의 본 무대인 군대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21] 단, 쿠데타의 경우에는 라인하르트가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으로 정신줄을 놓은 사이에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의 제안을 받아들인 라인하르트의 부하들이 대신 진행한 것이다. 하지만 키르히아이스가 죽지 않았더라도, 아니 죽지 않았으면 리히텐라데는 훨씬 쉽게 제거당했을 가능성이 크다.[22] 당장에야 브라운슈바이크-리텐하임 쪽이 세력이 크니까 그쪽에 붙어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황권이 안정되면 결국 권력을 쥐는 건 리히텐라데-로엔그람이 되므로 언제든지 이득을 좇아 반대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23] 군대를 장악한 라인하르트를 암살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고 실패하면 역습당할 가능성도 있는 데다가, 설령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라인하르트와 리히텐라데를 암살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리텐하임 후작을 누르지 못하면 말짱 헛수고이고 오히려 리텐하임 후작에게 라인하르트와 리히텐라데를 암살한 자를 처단한다는(일단 이들은 제국 재상과 제국 최고 사령관이다) 명분을 줄 수도 있다.[24] 무엇보다 라인하르트는 실패할 확률이 높고 리히텐라데는 그보다는 더 쉬우나, 리히텐라데를 노린다고 하면 '''라인하르트에게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 된다.''' 라인하르트는 그 즉시 관료들을 틀어쥘 수 있기 때문이다.[25] 다만 이렇게 되면 문벌귀족도 그리 좋을 것은 없으며 사실상 리히텐라데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꼴이긴 하다.[26] 참고로 동맹이 제국령 침공작전에 동원한 병력은 3022만 명, 제국이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에 동원한 병력은 2000만 명, 회랑 전투에 동원한 병력은 1791만 명이었다. 이 문벌귀족들이 동원한 병력이 1개국가의 규모에 맞먹는다는 말이 된다.[27] 전 제국령에 영지가 널려 있었으며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전까지만 해도 평민들을 쥐어짜서 평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기는 했지만(이게 또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의 원인이 되었지만)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 틀어박힌 상태에서도 라인하르트에게 항복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28] 귀족들도 여기에서만은 아주 바보인 것은 아니었던지 명화 감상, 야유회 등의 명목으로 모여서 불만을 토로하고 결집했기에 이것만으로는 잡아들일 근거도 처벌할 근거도 없었다.[29] 이는 명분상 암살을 시도하면 향후 리텐하임과의 제위다툼에서 불리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30] 라고는 하지만 페르너가 정말로 라인하르트를 얕봤다면 굳이 기습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지원을 받지 못해서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병력만으로 도박에 가까운 기습을 했지만 이미 대기시켜 두었던 방어병력을 뚫는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31] 그나마 리텐하임 생전에는 샨타우 성역 회전이라는 최초이자 최후의 승리라도 거두었는데 리텐하임 사후부터는 폭주한다. 사실 메르카츠를 영입한 것부터가 사실 리텐하임의 브라운슈바이크 견제 차원에서 나온걸 보면 리텐하임 사후 이 문제는 예고되어 있던 셈.[32] 그래도 브라운슈바이크는 양심이 아주 조금은 있었는지 이들의 모습을 보고 "그래도 얘네들 사기가 이렇게 높은데 가만히만 있기에는 좀 뭣하지 않나" 라는 식으로 다독이기라도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잘못이 잘못이 아닌 것으로 되는건 아니다.[33] 그나마 브라운슈바이크는 이들 중 가장 유능한 축이다. 클롭슈톡 사건 진압에 애는 먹었어도 적어도 실전 경험은 있었고, 향후 대전략을 수립할 때도 메르카츠 외에는 유일하게 작전을 내놨고(본인은 금발 애송이놈은 9개의 거점지를 각기 공격할 것이니 병력이 분산되어 있을 것이고 그 사이 가이에스부르크에서 나와 이들을 각개격파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메르카츠가 내놓은 반론에서 노리는 목적도 정확히 짚고(메르카츠는 모든 실전 기능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만 집중하자고 했는데 이에 브라운슈바이크는 그 금발 애송이놈이 여기까지 오느라 지치는 것을 노리자는 거냐며 물었고 메르카츠는 이에 그렇다고 말했다.), 제1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에서도 늦기는 했지만 누가 알려주었는지는 몰라도 누군가가 이는 함정이라는 진언을 올리자 그럴 가능성이 있겠다며 후퇴를 지시하는 등, 다른 귀족들과 비교해보면 이 인간은 유능해보일 지경이다. 이에 비해 명색에 부맹주인 리텐하임은 이보다 추태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34] 실제 역사에서 사라예보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 사건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긴 했지만, 이 사건이 아닌 다른 사건으로도 얼마든지 제1차 세계 대전은 일어났을 것이라는 점에서 베스터란트 학살사건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사라예보 사건의 범인조차 세계 대전이 터질 줄은 알았지만 자신 때문에 일어날 줄은 몰랐다고 했을 정도.[35] 사실 발칸 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릴 정도로(~의 화약고라는 말의 원조가 발칸 반도다.) 갈등과 반목이 심한 지역이었다. 수많은 국가와 민족의 난립, 범 슬라브주의와 범 게르만주의의 충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내분, 러시아와 영국 간의 그레이트 게임, 전통적인 러시아와 투르크 간 분쟁 등으로 바람잘 날이 없던 곳이 발칸 반도였기 때문.[36] 애초에 구국군사회의의 쿠데타도 동맹의 개입을 막기 위한 라인하르트의 의도가 있었다.[37] 실제로 작중에서도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목을 라인하르트에게 들고 가면 사면해주지 않을까 기대하던 귀족들도 있었다.[38] 키르히아이스 사망 직후, 다른 장수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오베르슈타인의 의견에 따라 최속으로 수도 오딘을 제압한 건 괜히 그런 게 아니다. 이 시점에서 라인하르트가 무너졌는데 리히텐라데의 정치적 공세를 받게 되면 자기들 목숨도 장담할 수 없게 되기 때문. 훗날 오베르슈타인이 이를 거론했을 때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가 그 일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다고 말한 점에서 자신들의 목숨과도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39] 또, 라인하르트가 베스터란트 사건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으면서도 오베르슈타인의 조언에 따라 입을 다물었던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였다. 이 사건이 가져올 정치적 파장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미 립슈타트 전역 직전에 힐데가르트가 승리를 위해서는 귀족과 평민을 이간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고, 라인하르트도 굳이 힐데가르트가 지적하지 않았더라도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40] 만약 이 전쟁에서 무슨 이유든 간에 귀족들이 남은 상태로 전쟁이 종료되었다면 그 남은 귀족들은 대부분 리히텐라데에게 붙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브라운슈바이크는 설령 살아남더라도 자신이 가진 것의 대부분을 손에서 놓게 되겠지만 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손에서 놓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은 리히텐라데였을 것이다.[41] 이 시점에서는 더 이상 리히텐라데도 귀족들과 손잡을 여지가 없어졌다. 물론 리히텐라데는 당장에는 굳이 귀족들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나중에 라인하르트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필요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화려한 자폭쇼를 저질렀으니 이제와서 귀족들과 손을 잡으려고 하면 본인도 제국의 적으로 낙인찍혀 정치적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42] 페잔 입장에서도 둘 다 동일하게 국력이 나가떨어졌기에 한쪽을 일방적으로 물밑에서 지원하는건 고려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라기보다는 애시당초 페잔이 양국을 지원하는 것은 서로간에 균형을 맞춰서 어느 한쪽이 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데 둘 다 전쟁하느라 퍼졌으니 페잔 입장에서는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고 오히려 이 기회에 물자나 더 팔아먹으면 된다. 하지만 이후 페잔의 고위층도 분열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 제국과 동맹이 힘이 빠질대로 빠진 상태인 만큼 페잔에서도 이 두 곳을 당장은 신경쓸 필요가 없게 되었고 아드리안 루빈스키와 흑막인 지구교, 속내를 감추고 있던 루퍼트 케셀링크 등 이쪽도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뒤통수를 치려는 자들의 복마전인데 이제 여유가 생긴 만큼 상대방을 필요없다고 생각해서 정리하고 싶어질 것이다.[43] 사실 서로에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이제르론 요새에 양 웬리를 짱박아놓고 신경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욥 트류니히트 일당은 제국의 침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다루기도 힘들고 자칫 잘못하면 정적이 될 지도 모르는 양 웬리를 변경에 처박아놓을 수 있으니 좋고 양 웬리는 어차피 당분간 제국이 처들어 올 일은 없다고 생각할 테니 이제르론 요새에서 싫은 꼴 안 보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트뤼니히트를 안 봐도 되는 것도 양에게는 큰 메리트[44] 이 경우는 오히려 라인하르트가 정계에 투신해 욥 트뤼니히트를 누르고 동맹의 정치 부문을 장악한 뒤 양 웬리를 내세워 다시 한번 제국을 침략하게 되는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얼마 전까지 적이었던 인물을 고위군인으로 임명할 일은 없겠지만 미모와 지성을 앞세워 경력을 쌓는다면 정치가로서도 얼마든지 대성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라인하르트의 정치력도 나쁜건 아닐 뿐더러 겉만 번지르르한 트뤼니히르를는 겉이든 속이든 알찬 라인하르트로서는 붙어볼만한 상대다... 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좀 무리한 상상이다. 라인하르트가 동맹에 망명한다 하더라도 적국의 고위인사를 역임한 망명자 출신으로 정계에서 성장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얼마전까지 적이었던 인물을 고위군인으로 임명할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군 통수권을 가진 정치인으로 선출하는 일은 있을 것이라고 보는 관점 자체가 좀 이상한 것이다.[45] 막시밀리언 요제프 2세도 암살 시도가 있었을 정도다. 당장 골덴바움 역사만 봐도 암살된 황제가 한둘이 아니기도 하고.[46] 혹은 반대로 이런 반란 시도를 억제하기 위해서 동맹에 대한 대대적인 침공을 가할 수도 있다. 내부가 어수선할 때 외부의 적을 치는 건 전형적인 방법이기도 하고. 이 경우 설령 지더라도 브라운슈바이크 본인만 살아 남으면 반대로 정적들에게 패배의 원인을 뒤집어씌워 숙청할 명분을 얻을 수도 있다.[47] 양 웬리는 회랑의 전투에서 동맹의 일절의 지원 없이도 고작 2만여 척의 함대만으로 라인하르트 황제 휘하 10만여 척의 함대를 철통같이 막아내는 마술을 선보였으므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능력으로 이제르론 요새를 뚫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거기다 이번에는 동맹의 지원도 있을 테니 더욱더 불가능한 이야기.[48] 양 웬리는 군사적 성공보다는 동맹의 회복을 더 바랄 것이므로. 이 시점에서 동맹군은 제국령 침공작전의 실패로 거의 붕괴되어서 이제르론 요새를 미리 차지하지 않았으면 제국군의 대규모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프리드리히 4세의 사망과 뒤이은 립슈타트 전역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 망했을 것이다. 회랑 전투만 보더라도 광활한 지역에서 한게 아니라 이제르론 회랑이라는 매우 협소한 지형에서 벌인 전투이다. 외려 시바 성역 회전에서는 이제르론 혁명군은 제대로 얻어맞았다. 이는 양 웬리가 없다는 핸디캡이 있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5배나 많은 적군을 평야에서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적은 그냥 숫자만으로도 포위할 수 있을 것이다.[49] 다만 이 숫자는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 이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당장 귀족연합에 보급이 막혔다는 말도 없고 라인하르트가 모든 제국령을 장악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또, 가이에스부르그 요새도 자체적으로 군함을 생산할 설비가 있거나 최소한 수리 설비는 당연히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귀족연합 측 보급이 막히게 되는 시기는 키르히아이스가 변경을 장악하고 리텐하임 후작을 처단한 때부터고 본격적으로는 베스타란트 사건을 통해 완전히 막혔을 가능성이 높다.[50] 물론 말이 이렇지 실제로는 그 625명분의 귀족들의 사병들도 잃었을 것이다.[51] 전 병력이 출전했을 가능성은 적다. 당장 메르카츠가 병력을 이끌고 나갔더니 제국군이 역습당할지도 몰라서 물러났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정황상 주력군은 메르카츠가 이끌고 있으며 이 때 타격을 받은 귀족군들은 주로 젊은 귀족의 사병군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패배에도 귀족연합군은 여전히 7~8만 척 정도는 유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즉, 이 때의 피해는 약 2~3만 척 정도를 내보냈다가 70%가 날아가서 7~8천 척 정도가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실질적으로 귀족연합군이 무너지게 된 것은 베스타란트 사건이 결정적이었는데 이 시점에서 무려 전 병력의 70%나 날아가서 고작 3만 척밖에 남지 않았다면 라인하르트도 굳이 무리수를 둬 가면서 그런 짓을 벌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52] 비단 대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고를 수 없는 선택지로 1은 전쟁 전기에는 귀족군도 연패중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불리한 상황이 아니라서 고려할 가능성 제로 후기에는 고르고 싶어도 못 고를 가능성이 높고 결정적으로 이러면 라인하르트가 "제국의 귀족이 반란군과 몰래 협정을 맺다니?" 라고 나와서 명분이 라인하르트에게 넘어간다. 2는 동맹군은 제국령 침공작전에서 너덜너덜해진 만큼 이제르론에 제국군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제국군과 싸우려 할 리 없고(실제로도 트뤼니히트 집권기간동안 제국령에 대한 침공작전도 심지어 선빵전도 없었다.) 라인하르트도 바보가 아닌 만큼 동맹군과 싸울 리 없다. 3은 말 그대로 2가 반드시 달성돼야 가능한 일, 근데 2의 실현 가능성은 앞에 얘기한 내용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