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트 화약

 


[image]
좌측은 은하제국 대표이자 제국 총참모장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상급대장, 우측은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의장이자 국가원수 욥 트뤼니히트 최고평의회 의장.[1]
'''Treaty of Ba'alat(バーラトの和約)'''
1. 개요
2. 배경
3. 내용
4. 분석
5. 이후
6. 둘러보기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의 에피소드
버밀리온 성역 회전

바라트 화약

(종결)

1. 개요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10장
    • 은하영웅전설 OVA 54화
  • 시기 : 우주력 799년, 제국력 490년 표준력 5월 25일
소설 은하영웅전설에서 일어난 사건, 우주력 799년, 제국력 490년 5월 25일에 은하제국자유행성동맹 사이에 맺어진 강화조약이다. 바라트 성계의 주성 하이네센의 수도 하이네센폴리스에서 체결되었기 때문에 성계 이름을 따서 바라트 화약이라고 한다.
제국측 대표는 제국재상 겸 제국군 최고사령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원수의 대리인 총참모장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상급대장이, 동맹측 대표로는 국가원수인 욥 트뤼니히트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의장이 나왔다.

2. 배경


은하제국은 우주력 799년 자유행성동맹골덴바움 왕조 제 37대 황제 에르빈 요제프 2세문벌귀족의 망명을 받아들이고 은하제국 정통정부 수립에 협조하자 이를 빌미로 전쟁을 일으켰다. 은하제국은 페잔 자치령을 병탄하고 동맹령으로 쾌속 진격했으며,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서 동맹군 주력함대를 격멸하였다.
그러나 자유행성동맹군 이제르론 요새&요새 주둔함대 사령관 양 웬리 대장이 이끄는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가 국방위원장 월터 아일랜즈로부터 전권을 위임받고 유격전으로 제국군 함대를 하나하나 쓰러뜨렸다. 제국군 수송함대가 첫 제물이 되었고, 뒤이어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대장, 헬무트 렌넨캄프 대장,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대장이 양 함대와의 교전에서 모두 패배하였다.
그러자 원정군 총사령관 로엔그람 공작은 직접 함대를 이끌고 버밀리온 성역에서 양 함대와 교전하였다. 교전은 나이트하르트 뮐러 대장의 함대가 중간에 참전하였음에도 제국군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했으나, 재상 수석비서관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의 진언을 받아들인 볼프강 미터마이어 상급대장과 오스카 폰 로이엔탈 상급대장이 버밀리온 성역의 제국함대와 합류하는 대신 자유행성동맹 수도성계 바라트 성계로 진공하여 수도성 하이네센으로부터 6000km 떨어진 공역에서 진군을 멈춘 뒤 항복을 강요하였다.
월터 아일랜즈 국방위원장과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를 위시한 정부와 군부는 결사항전을 주장했으나, 그동안 숨어있던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의장이자 국가원수 욥 트뤼니히트가 갑자기 나타나 항복을 주장하고 아일랜즈 국방위원장과 뷰코크 원수를 비롯한 반대파들을 지구교도의 도움으로 모조리 감금하고 항복을 선언하였다. 버밀리온 성역에서 교전 중인 동맹군은 승기를 잡았으나 트뤼니히트 의장이 항복을 선언하자 명령대로 제국군에 항복하였다.
동맹 최후의 우주함대가 항복하였으므로 제국은 지금 바로 동맹을 무너뜨리고 제국령으로 편입할 수 도 있었으나 제국에선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쳐 당장 동맹의 멸망 및 제국령 편입을 반대했다.

"팽창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오. 이미 아군은 행동의 한계점에 달했으니, 일단 페잔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힘을 쏟고, 그것이 이루어진 후 동맹 지배를 완성해야 할 것이오."

"우리는 현재 페잔, 이제르론 두 회랑을 통해 언제든 동맹령으로 침공할 수 있소. 이 군사적 지배권만 확보해 둔다면 굳이 형식적인 통치권에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겠소?"

"게다가 병사들도, 전쟁에서 이긴 이상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오. 장기간에 걸친 점령은 망향의 감정을 더더욱 깊게 할 것이며, 결국 로엔그람 공작님에 대한 불만을 축적할 것이오."

"제정에 적의를 품은 130억 민중을 강권으로 지배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소. 하물며 동맹 재정과 경제는 파탄 직전이니, 이를 전면적으로 끌어안았다간 최근 2년 사이 개혁으로 건전해진 제국 재정에 새로운 부담을 안겨줄 테니 바람직하지 못하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60~361

이 의견을 종합해서 로엔그람 공작에게 보고한 총참모장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상급대장은 동맹 멸망 및 제국령 편입을 반대하고, 대신 동맹의 재정이 건전해지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동맹은 멸망하는 대신 '바라트 화약'이라는 굴욕적인 평화조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3. 내용


바라트 화약의 핵심적인 조문은 다음과 같다.

1. 자유행성동맹 명칭과 주권 존속에 대해서는 은하제국의 동의에 따라 이를 보장한다.

1. 동맹은 간다르바 성계를 비롯해, 이제르론 회랑과 페잔 회랑의 출구 부근에 위치한 두 개의 성계를 제국에 양도한다.

1. 동맹은 제국 군함 및 민간선이 동맹령 내를 자유로이 항행할 것을 인정한다.

1. 동맹은 제국에 연간 1조 5000억 제국마르크의 안전보장세를 지불한다.

1. 동맹은 주권의 상징으로 군비를 보유하지만 전함 및 우주항모 보유 권리를 포기한다. 또한 동맹이 군사시설을 건설하고 개축할 때는 사전에 제국정부와 협의해야 한다.

1. 동맹은 국내법을 제정하여 제국과의 우호 및 협조를 저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활동을 금지해야 한다.

1. 제국은 동맹 수도 하이네센에 고등판무관부를 설치하고 이를 경비하는 군대를 주둔시킬 권리를 가진다. 고등판무관은 제국 주권자(황제)의 대리로서 동맹정부와 절충, 협의하고 나아가 동맹정부의 모든 회의를 방청할 자격을 가진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5권 <풍운편>, 김완, 이타카(2011), p.362


4. 분석


  • 제 1항에 의거하여 자유행성동맹은 국가의 명칭과 주권의 존재유무가 은하제국의 동의 하에 인정받는 제국의 속국이나 다를 바 없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유행성동맹은 이 조약으로 사실상 존재 자체는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자유행성동맹이란 국호와 주권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동맹의 존속에 제국의 동의가 있어야 하므로 사실상 속국이었다.
  • 제 2항에 의거하여 간다르바 성계의 제국군 군사거점인 행성 우르바시이제르론 회랑, 페잔 회랑의 동맹쪽 입구의 성계들이 제국쪽으로 넘어갔다. 우르바시에 1개 함대를 주둔시켜 동맹을 견제하고 유사시 2개 회랑 어디서든 언제든지 대규모 함대를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기존의 이제르론 회랑을 통한 방어가 불가능해짐으로서 동맹은 군사적으로 더욱 취약해졌다.
  • 제 3항에 의거하여 제국 함선들이 동맹 영토에서 활동하는데 어떤 제한도 걸 수 없었다. 변경 지역에서 은하제국의 눈을 피해 함대를 재건하는 등의 행위가 일체 봉쇄되었다.
  • 제 4항은 은하제국이 그 동안 소모한 군비를 충당하기 위해 들어간 조항이 아니다. 이미 립슈타트 전역을 치루며 문벌귀족들의 막대한 재산이 국고로 압류되었기 때문에 제국에게 달리 '배상금'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남은 미약한 군사력도 일부 정리해야하고 군의 재편성에도 제한이 걸린 자유행성동맹에서 그간 국방비로 소모된 예산이 다른 쪽으로 몰리며 동맹의 재정이 빠르게 건실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넣은 조항이다.[2]
  • 제 5항에 의해 동맹군은 우주함대의 주력인 전함과 우주항모를 모조리 자침시켜야 했다.[3] 전쟁 기간동안 얼마 남지도 않아 이미 은하제국군을 상대할 수도 없어진 자유행성동맹군의 전투력은 조약을 통해 사실상 소멸되었다.[4]
  • 제 6항은 자유행성동맹 시민들이 은하제국이나 무력하게 항복한 동맹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 등을 열지 못하도록 동맹 정부가 동맹 시민을 탄압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강제하여 동맹 정부가 '반평화활동금지법'을 제정해[5] 동맹헌장 7조에 규정된 언론과 결사의 자유를 무력화시켜 격분한 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등 동맹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하였다.
  • 제 7항에 의거하여 동맹 정부의 국정운영은 제국 고등판무관부의 감시와 간섭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고등판무관부를 경호하기 위해 장갑척탄병 4개 연대, 경장육전병 12개 연대가 하이네센에 주둔하여 유사시에는 고등판무관의 판단에 따라 동맹 수도 하이네센폴리스가 제국군에게 장악당할 수 있게 되었다.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인적자원위원장 황 루이는 조문이 공개되자 "목에 밧줄을 감은 채 발끝만 간신히 바닥에 붙여준 상태로군." 라고 말했다.

5. 이후


동맹 국가원수 욥 트뤼니히트는 화약에 서명한 뒤 패전 책임을 진다는 명목으로 의장직을 사임하고 제국정부로부터 생명과 재산을 보장받고 제국으로 망명했다. 트뤼니히트에게 배신당한 고관들과 국민들은 분노했고, 그의 인기는 눈 녹듯 사라져버렸다. 오죽하면 동맹의 시민들은 숙적이였던 제국군보다 트뤼니히트를 찢어 죽일놈이라 하여 더 증오했다.
국방위원장이자 전란 동안 정부를 이끈 월터 아일랜즈는 심신의 활력을 다 써버려 반쯤 폐인이 되어 병상에 누워버렸다.
자유행성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 원수는 퇴역했다.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장 도슨 대장은 군사 최고책임자로서 수감되었다.
전 자유행성동맹 최고평의회 재정위원장 조안 레벨로는 동맹 정부 각료들이 국가원수 대행을 요청하자 받아들여 최고평의회 의장직에 올랐다.
수도로 돌아온 양 함대 간부들 중 양 웬리, 프레데리카 그린힐, 더스티 아텐보로, 발터 폰 쇤코프, 율리안 민츠, 루이 마솅고는 예편원을 제출하고 퇴역했다. 알렉스 카젤느도 예편원을 제출했으나 기각되었고, 후방근무본부장 대리를 맡게 되었다. 에드윈 피셔, 무라이, 표도르 파트리체프, 랄프 칼센은 퇴역하지 않고 자택 대기 상태가 되었다.
은하제국 정통정부에 마지막까지 남은 각료 수상 요펜 폰 렘샤이트 백작은 오스카 폰 로이엔탈 상급대장 휘하 병력이 사택을 포위하자 스스로 독을 마시고 자결했다. 그의 죽음으로 마지막 기둥을 잃은 은하제국 정통정부는 붕괴했으며, 정통정부 군무성 차관을 맡은 알프레트 폰 란즈베르크 백작과 레오폴트 슈마허 대령은 에르빈 요제프 2세를 데리고 잠적했다. 로엔그람 공작은 이미 망한 망명정권의 잔당 따위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았으며, 일단 수사 명령을 내리긴 했으나 금방 잊어먹었다.
로엔그람 공작은 제도 오딘으로 귀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누이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 대공비,大公妃, 칭호를 내리고, 2년 전 죽은 자신의 친우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에게 대공,大公, 칭호를 내렸다. 그리고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상급대장은 섭정을 맡고 있던 위르겐 오퍼 폰 페크니츠 공작을 제국재상부로 호출하여 제위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에게 양위하는 대신 페크니츠 가문의 작위와 재산의 보장, 여제 카타린 케트헨 1세가 죽을 때까지 매년 150만 제국마르크 지급을 조건으로 그로부터 여제의 퇴위 선언서와 제위 양도 서약서의 서명을 받아냈다.
우주력 799년, 제국력 490년 6월 22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공작이 정식으로 황제로 즉위함에 따라 골덴바움 왕조는 490년의 역사를 끝맺음과 동시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로엔그람 왕조가 탄생하였다.
한편, 동년 8월 13일, 조안 레벨로 최고평의회 의장이 집회의 자유를 명기한 동맹헌장 7조를 유기한 정지하고, 반제국 활동을 단속하는 '반평화활동금지법'을 의회에 제출하자 민주공화주의자들은 격분했고 엘 파실 자치정부 수장 프란체스크 롬스키 주석은 동맹 탈퇴와 독립을 선언하였다. 엘 파실 독립정부의 탄생이었다.
바라트 화약은 이후 잘 유지되는 듯하다가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으로 은하제국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 상급대장이 죽자 라인하르트가 11월 10일 스스로 진실을 밝히고 재원정을 선언하는 바람에 불과 5개월 만에 깨지고 만다.

6. 둘러보기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의 에피소드'''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
페잔 점령 작전
율리안 민츠의 페잔 탈출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
수송선단 습격전
라이가르 성역 회전
타실리 성역 회전
버밀리온 성역 회전
바라트 화약

[1] 주목해야 할 사실은 동맹측은 국가원수가 나선 반면 제국측은 고작 총참모장에 불과한 인물이 나왔다는것이다.(형식적 지도자가 8개월짜리 아기라는 점이 있지만 실질적 지도자는 라인하르트였다.) 제국과 동맹의 격차를 보여주는 일이자 한편으로는 하필 그 많고 많은 인물들 중에서 오베르슈타인이 나왔다는 사실은 어쩌면 제국군 장성들도 트뤼니히트를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2] 그래서 레벨로는 월급과 연금을 삭감하는것으로 어느정도 충당하려고 시도했다. 덕분에 퇴역 후 연금을 받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누리려던 양은 받을 연금이 깎이고 말았다.[3] 실제 역사에서는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 때 독일군이 비슷한 일을 겪었다.[4] 5항은 자유행성동맹으로써도 순순히 받아들이긴 어려운 일이었기에 서류상으로만 파기하고 은밀하게 빼돌리거나 자침 작업을 최대한 태만하게 진행하였다. 물론 양 웬리 함대의 사례처럼 뜻하지 않게 실패하기도 했고, 얼마 후 양은 다음 계획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5] 양 웬리가 모살미수당할뻔한 것도 이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