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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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종로구 을)'''
시점


초대
''' 장면, 이인 '''

제2대
오화영

'''대한민국 초대 법무부 장관
이인
李仁 | Lee In
'''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
1896년 10월 26일
경상북도 대구군 동상면 사일리
(現 대구광역시 중구 사일동)
'''사망'''
1979년 4월 5일 (향년 82세)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산28-22
(現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4묘역-566
'''본관'''
경주 이씨[1]
'''자'''
자옥(子玉)
'''호'''
애산(愛山)
'''재임기간'''
초대 법무부 장관
1948년 8월 2일 ~ 1949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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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부모'''
아버지 이종영, 어머니 정복희
'''형제자매'''
동생 이철
'''배우자'''
고경희
'''자녀'''
아들 이옥, 이춘, 이영, 이정, 이강, 이균
딸 2명
'''친인척'''
조부 이관준
숙부 이시영
맏사위 이태구
'''학력'''
경북고등실업학교 (졸업)
세이소쿠중학교 (졸업)
메이지대학 (법학 / 학사)
니혼대학 대학원 (법학 / 석사)
건국대학교 (법학 / 명예박사)
명지대학교 (법학 / 명예박사)
'''종교'''
유교 (성리학)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 '''3''', '''5'''
'''경력'''
경성법학원 강사
조선변호사협회 회장
조선과학협회 회장
물산장려회장
발명협회 회장
과학보급회 회장
어학회 간부
한국민주당 총무 겸 당무부장
미군정청 대법원장
대법관 겸 특별범죄수사위원장
제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초대 법무부 장관
제헌 국회의원(종로구 을)
반민특위 조사위원
반민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국회법사위원장
제3대 민의원의원(영등포구 을)
일송 김동삼기념사업회 회장
제헌동지회 회장
제5대 참의원의원 (서울특별시 제2부)
유엔 인권옹호 한국연맹 이사
민족통일촉진회장
국토통일원 고문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수훈

1. 개요
2. 생애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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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초대 법무부 장관이자 독립운동가, 변호사, 정치인.

2. 생애


1896년 경상북도 대구군(현 대구광역시 중구) 사일동(射一洞)에서 아버지 이종영(李宗榮)과 어머니 연일 정씨 정복희(鄭福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니혼대학 전문부 법률(야간) 수료 및 메이지대학 전문부 법과를 졸업하였다.
1923년 일본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가인 김병로, 허헌과 함께 다른 독립운동가를 상대로 무료변호를 하여 3대 민족 인권 변호사로서 명망을 날렸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창씨개명을 거절하였다.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하여 한국민주당 소속으로 있었으며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론을 지지하였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49년 7월에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되어 반민특위를 해체시킨 흑역사가 있다. [2]
1949년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이후 제헌 국회의원 선거 재보궐선거(서울특별시 종로구 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장면이 주미 대한민국 대사로 부임하여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기 때문이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을 지역구에서 대한국민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참의원(參議員)에 당선되었다.
1962년 유엔 인권옹호 한국연맹 이사에 임명되었다. 1972년 민족통일촉진회장,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고문 등을 역임했다.

3. 둘러보기



[1] 경주 이씨 36세손으로 항렬자는 쓰지 않았다.[2] 1949년 6.6 반민특위 습격사건과 반민특위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김상덕이 물러난 전후로 반민특위의 활동은 사실상 무력화되어버린 시점이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이인은 애초부터 친일 청산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졌었던 인물. 이러니 반민특위의 활동은 무력화되어버리고 활동 기간도 대폭 축소되어 끝내 해체되어버린 것이다. 이인 외에도 장헌상이나 조병옥처럼 친일파 처벌보다는 반공주의를 강조하는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은 상당히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