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선(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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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12월 19일 ~
1. 소개
2. 생애
3. 선거 결과
4. 둘러보기


1. 소개


李在善
대한민국정치인이다. 종교가톨릭으로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이다.

2. 생애


1956년 충청남도 보령군에서 태어났다. 출생 후 대전으로 이주하여 대전대신고등학교, 한남대학교 지역개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대전 지역에서 개인 사업을 하며 대전JC 회장을 역임하였다.
1995년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김종필 총재의 특별보좌관에 임명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대전광역시 서구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국당 염홍철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민주연합 부대변인, 원내부총무 등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2002년 말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하여 한나라당에 입당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구논회 후보에 밀리고 자유민주연합 정하용 후보에도 밀리며 3위로 낙선하였다. 2006년 11월 5일 구논회 국회의원이 위암으로 별세하여 치러진 2007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에 밀려 패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자유선진당에 입당하였다. 마침 같은 당이 된 지역구 현역 심대평 의원이 지역구를 세종(당시 공주-연기)으로 옮겨주었기 때문에 운이 좋게도 지역구가 비었고 자유선진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박범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선진통일당, 새누리당에 속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번에도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후보에게 1위를 내주며 낙선하였다. 2017년 12월 27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당협위원장 교체에 반발하여 탈당하였다. 171227 디트뉴스, 171227 중도일보 등에 따르면 떠날 때가 됐다고 밝혔기에 정계 은퇴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 지역정가의 평가다.
정계 상황에 따라서 자유민주연합으로 시작, 한나라당을 거쳐, 다시 자유민주연합의 후신 격인[1] 자유선진당 그리고 한나라당의 후신인 새누리당으로 옮겨타는 줄타기를 했는데, 충청권 지역정당 후보로 출마했을때는 3승 1패로 승률이 좋으나, 영남계 보수정당(자유한국당의 직계 전신) 후보로 출마했을때는 3전 전패를 기록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지역정가에서는 이 점이 당협 박탈과 정계은퇴에 일정부분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3. 선거 결과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선거구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대전 서 을
'''자유민주연합'''
'''41,825 (44.69%)'''
'''당선 (1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자유민주연합'''
'''31,428 (35.58%)'''
'''당선 (1위)'''
2002년 한나라당으로 당적 변경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한나라당
28,138 (24.94%)
낙선 (3위)

2007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2]
한나라당
24,573 (37.08%)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자유선진당'''
'''35,156 (41.37%)'''
'''당선 (1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자유선진당
32,982 (30.67%)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새누리당
39,912 (34.79%)
낙선 (2위)


4. 둘러보기






[1] 정확히는 자민련은 민자당에서 분당되었다가 민자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에 다시 흡수합당되었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의 후신이라기보다는, 충청계 보수라는 포지션이 같다는 의미다.[2] 전임자 구논회 의원 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