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중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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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6년부터 2년간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정당. 통칭은 '국중당'('''국'''민'''중'''심'''당''') 혹은 '중심당'. 당색으로는 주로 분홍색을 사용했다.[1]
충남도지사 출신 심대평을 중심으로 한 정당으로, 충청도 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지역 정당이었다. 이념적 성향은 보수주의. 실상은 충청지역주의. 따라서 충청권 보수정당의 하나였다.
2. 상세
심대평은 원래 자유민주연합 소속으로 1995년 이래로 충남지사 3선을 하였으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면서 당세가 급격히 약화하고 당의 맹주인 김종필이 정계은퇴를 하게 되자 실질적인 중심인물로 거듭나게 된다. 문제는 그가 충남지사로서의 임기가 2006년에 끝난다는 것이었고, 원외 인사였기에 실질적인 당내 세력이 약하다는 것이었으며, 이는 자민련 중앙당과의 괴리감을 불러오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당세의 급격한 약화로 인해 심대평이나 기존 자민련 기반 정치인 상당수는 '''새로운 간판을 내걸어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가시화한 것이 2005년 3월 8일 심대평의 자민련 탈당 선언이었다. 탈당 직후 심대평은 이른바 충청신당, 중부권신당을 모색하며 새로운 정당 결성을 준비했고, 2005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마침 오시덕 열린우리당 의원의 의석 상실로 인해 재보궐 선거구가 된 충남 공주/연기 지역구에 총선 때 낙선한 자민련 출신 정진석을 사실상 공천시킨다. 물론 아직 창당 전이어서 실제로는 무소속 후보였지만 심대평의 간접적 화력지원을 등에 업어 정진석은 쉽게 당선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감을 얻은 심대평은 같은 해 10월 공식적으로 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정진석에 이어 당시 경북 문경/예천 지역구의 무소속 의원인 신국환을 영입하여 의석 2개를 확보한 상태에서 충청 내 자민련 기반을 순식간에 흡수, 11월 4일에는 자민련 당 대표 김학원과 전격적으로 양당합당, 사실상 자민련을 흡수합당하기로 합의한다. 이에 따라 자민련 당 대표 김학원을 제외한 이인제, 류근찬, 김낙성 의원이 선도탈당하여 국민중심당에 합류한다. 하지만 12월에 김학원이 합의를 파기함에 따라 국민중심당은 의석 3개만 불리고 자민련은 흡수하지 못한다.[2]
2006년 들어서는 열린우리당의 염홍철 대전시장 후보 전략공천에 반발하여 탈당한 열린우리당 권선택 의원을 영입하여 의석 수를 6석까지 불렸다. 그러나 원래 권선택을 대전시장 후보로 영입하려 했으나 권선택이 최종적으로 시장 후보를 포기함에 따라 시장 선거는 다른 후보를 내야 했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총 9명의 광역단체장 후보를 냈으나 말 그대로 처참하게 전멸당했다. 다른 지역들이야 뭐 생색내기로 공천했다고 하더라도[3] 심대평 다음을 뽑는 충남지사 선거에서도 이명수 전 부지사를 공천했다가[4] 25.54%로 1위 한나라당 이완구 후보에 20% 이상의 격차로 참패했다. 대전시장 후보도 10%선이고, 충북지사는 3%, 강원지사는 2%.(...) 기초단체장도 오직 충남에서만 7곳을 당선시킨다. 그나마 시장은 공주시장 이준원, 논산시장 임성규, 계룡시장 최홍묵 3명이고 나머지는 군 지역이었다. 충남에서조차 천안, 아산같은 지역거점도시권에선 외면받은 것이다.
2007년 들어서도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다.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심대평 대표가 대전 서구 을에 출마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5] 이로서 의석은 7석으로 늘었으나 신국환 공동대표가 느닷없이 탈당하여 중도통합민주당으로 향하며 도로 6석. 거의 동시기에 이인제도 대권을 노리고 민주당으로 이적하여 5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사실상 당세가 기운 상황에서 맞이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심대평이 원내정당이 후보를 내지 않을 수 없다는 자존심으로 후보등록을 했으나 이회창이 전격적으로 출마를 선언하자 후보직을 사퇴하고 당 차원에서 이회창을 지지한다. 이에 반발하여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명박 지지를 선언하며 탈당하고 한나라당으로 옮겨 4석.[6] 이후 한나라당의 친이계-친박계 내홍 속에 친박계 곽성문 의원과 김병호 前 의원이 탈당하여 이회창 캠프에 합류하지만 공식적으로 국민중심당에 입당하지 않고 이후 자유선진당 창당때 합류한다.[7]
17대 대선 이후 국민중심당은 이회창과 연대하여 해산, 자유선진당으로 이어진다.
이후 심대평 대표는 자유선진당 대표를 맡으나[8] 세종시와 충청권 총리 떡밥이 불거지자, 그 과정에서 불화가 생겼고 2009년 8월말에 심 대표는 자유선진당에서 나와 국민중심연합을 만들었다.[9]
다만 2011년 하반기에 다시 자유선진당에 복당하였다. 19대 총선에서는 공주시-연기군에서 분할 신설된 세종시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온 이해찬 전 총리에게 압도적으로 패했다.
3. 지도부
3.1. 당 대표
3.2. 원내대표
4. 역대 선거 결과
4.1. 전국동시지방선거
4.2. 재보궐선거
5. 관련 문서
[1] 유독 심대평이 세운 정당은 분홍색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후 국민중심연합도 분홍색을 사용했으며, 자유선진당의 당색은 파란색이었지만, 거기에 분홍색 글씨/스카프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2] 이후 김학원은 2006년 자민련을 해산하고 한나라당에 들어간다.[3] 예를 들어 서울시장 선거 TV토론을 나온 임웅균씨는 성악가 출신이었다.[4] 이 사람은 자민련 지도부(김학원 지도부)와의 갈등으로 자민련에서 출당기자회견을 했으나 막상 출당된 상황은 아니었고, 결국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고 아산시 재보궐선거에 나갔지만 이중당적 의혹에 결국 출마하지 못했다.[5] 전임자 구논회 작고. 해당 지역구 보궐선거는 열린우리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다.[6] 정진석은 그 대가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충남 공주/연기 공천 신청에서 배제되었지만, 한나라당 비례대표 상위순번으로 공천되어 당선되었다. 공주/연기 지역구는 심대평이 자유선진당으로 출마했기에 지역구 공천으로 선거에 나섰으면 영락없이 낙선했을 것이다. 이후 정진석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으로 2010년에 입각한다.[7] 김병호 의원은 이미 2007년에 의원직을 상실했다.[8] 총재가 별도로 있었다. 이회창 의원이 총재를 맡았다.[9] 동시에 같이 연합해서 교섭단체를 맡은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대표도 의원직을 잃어서 20석에서 2석이 이탈한 자유선진당은 원내교섭단체의 지위를 잃었다.[10] 탈당 후 민주당 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