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홍(조선)

 


<colbgcolor=#c00d45><colcolor=#f0ad73> 임사홍
任士洪

성명
임사홍 (任士洪)
아명
임사의 (任士毅)
본관
풍천 임씨 (豊川)

이의 (而毅)
출생
1445년
한성부 (현 서울특별시)
사망
음력 1506년 9월 2일 (향년 62세)
직업
관료, 정치가, 외교관, 사상가
국적
[image] 조선
붕당
훈구파 (궁중파)
약력
병조판서
가족 관계
부 : 임원준
자녀 : 임희재, 임숭재, 임광재, 임문재
1. 개요
2. 생애
2.1. 생애 초기
2.2. 관직 생활
2.2.1. 몰락과 유배
2.2.2. 복권
2.2.3. 최후
3. 평가와 논란
4. 어록
5. 여담
6. 가족 관계
7. 대중매체에서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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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전기의 정치가이자 외척.
성종 대에 대간들과 여러 문제[1]로 갈등을 겪다가 유배를 당하고 아들인 임숭재의 도움으로 연산군 대에 다시 복권된 인물이다. 이후 연산군의 측근으로 정계에서 활동하다 중종반정으로 처형된다.

2. 생애



2.1. 생애 초기


임원준의 아들로 1449년 태어났다. 1465년(세조 11년) 알성문과, 1466년(세조 12년) 사재감사정으로서 춘시 문과에 3등으로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2.2. 관직 생활


임사홍은 시문과 서예 솜씨로 당대에 이름을 날렸고 중국어에도 능통하여 관압사, 선위사 등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고 승문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쳤다. 임사홍의 능력을 높게 산 성종은 임사홍을 문관으로 등용했고 홍문관교리, 승지, 도승지, 이조판서, 대사간, 예조참의 등의 요직을 역임시켰다.

2.2.1. 몰락과 유배


직설적인 성격 때문에 사림의 눈엣가시가 되었는데 장인인 보성군의 손자이고 조카가 되는 이심원이 임사홍을 시시콜콜 탄핵했다. 이심원은 임사홍과 나이차가 5세 밖에 안 되었지만 엄연히 고모부와 조카였다. 이심원은 작정하고 고모부인 임사홍과 사돈어르신인 임원준을 말도 안되는 사소한 일을 가지고 성종에게 탄핵을 요청했는데 성종도 기가 막혀 사소한 것을 이야기한 이심원에게 짜증을 냈다. 이에 보성군 이합과 이위가 성종에게 와서 이심원의 행동을 성종에게 사죄드리며 손자의 행동에 벌을 주라 청하였다. 이심원의 탄핵을 요약하자면 왕에게 고모부가 소인배이고 사돈어르신이 똑같은 부류이니 처벌해달라하자 화가 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자기 사위이면서 처남과 사돈 양반을 탄핵한 손자에게 고모부와 사돈어르신께 무슨 무례한 짓이냐?하고 꾸짖었는데도 손자가 듣지 않자 임금한테 고발한 것이다.[2]
1478년(성종 9년) 4월 전국에 '흙비(황사비)'가 심하게 내렸는데 사람들은 하늘의 변괴로 여기고 두려워했다. 이에 3사(사간원ㆍ사헌부ㆍ홍문관)에서는 성종에게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여 근신해야 하며 당분간 전국에 금주령을 내려야 한다고 간언하였다. 그런데 도승지 임사홍은 흙비는 재이(災異)가 아니며 국가의 제사가 연이어 있는 시점에서 을 일절 금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간언하였다.
3사는 임사홍의 발언을 비판하였고 대간들 역시 임사홍을 탄핵하라는 상소를 줄줄이 올렸다. 성종은 처음에 임사홍의 편을 들면서 대간들의 탄핵을 저지했으나 대간들의 탄핵은 점점 심해졌고 결국 성종도 뜻을 거두고 대간들의 의견에 따르게 된다.[3]
결국 임사홍은 위의 사건과 더불어 유자광 등과 파당을 만들고 현석규를 음해했다는 죄목을 받고 의주로 유배를 가게 된다.[4] 임사홍이 유배를 간 이후 성종은 임사홍을 정식으로 복권시키려 여러번 시도했지만 대간들의 반대로 인해 불발되었다. 결국 임사홍은 12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이후 성종은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임사홍을 다시 등용한다. 성종은 1490년(성종 21년) 명나라에 파견되는 관압사에 임사홍을 임명하였다. 또한 1491년 9월 승정원 도승지에 임사홍을 제수하면서 같은 해에 임사홍은 선위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5]

2.2.2. 복권


성종이 죽고 그의 아들인 연산군이 즉위하였다. 연산군은 많은 이복 여동생 중 휘숙옹주를 많이 아꼈는데, 이 휘숙옹주의 남편이 바로 임사홍의 아들인 임숭재였다. 때문에 연산군은 임숭재를 각별하게 생각하였다.
1500년(연산군 6년), 임숭재는 연산군에게 자신의 아버지 임사홍에 대한 탄핵이 부당함을 탄원하였고[6], 연산군은 임사홍을 정식으로 복권시킨다.[7]
그 뒤 갑자사화때 이극균과의 친분 때문에 참수 당할 뻔하나, 과거 성종 시절 연산군의 어머니 윤씨의 폐비를 반대한 일로 모면한다. 이후 1505년(연산군 11년)에 조선 팔도의 아름다운 여자를 뽑아 연산군에게 바치는 채홍사로 임명된다.[8]

2.2.3. 최후


연산군의 폭군 행위에 반발한 대신들은 1506년(연산군 12년 / 중종 1년) 9월 2일에 중종반정을 일으켰고, 임사홍은 이 날 자택에서 반정군에 의해 처형된다.[9] 이후 20일 뒤에 의금부가 중종에게 "임사홍을 부관참시하고 적몰가산 해야 한다"고 하였고, 중종이 이를 윤허하여 임사홍은 부관참시 된다.

3. 평가와 논란


임사홍은 중종반정으로 처형된 후, 성종/연산군 시절의 행적을 말미암아 간신과 소인(小人)의 대명사가 된 인물이다. 특히 폐비 윤씨에 대한 사실을 연산군에게 알려서 갑자사화를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핍박했던 사대부들을 숙청[10] 하고 부관참시 했다는 점, 그리고 이렇게 경쟁자들을 제거한 후 연산군의 측근으로 큰 권세를 휘둘렀다는 점에서 큰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조선 시대[11]는 물론이고 현대까지 이어져왔다.
그런데 이러한 평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임사홍을 재평가 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관련 사료들을 검토한 결과 임사홍이 갑자사화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증거가 부족하고 그의 행실 또한 간신으로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한다. 특히 임사홍이 갑자사화를 주도했다는 주장의 근거들이 대부분 야사거나 사관 개인의 의견이고, 오히려 임사홍은 이극균과 친분 때문에 참수당할뻔한 인물이었다. 실록에 기록된 내용도 반정을 일으킨 중종 대의 내용이 대부분이어서 신빙성이 떨어지며, 갑자사화 당시의 연산군일기에는 임사홍이 갑자사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했다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임사홍을 간신으로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12]

4. 어록


원자를 생각해서라도 폐비만은 불가합니다.[13]

정승이라도 법령을 어기면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비록 (술을) 금할지라도 조사(朝士)는 적발당함이 없고 오직 소민(小民)만 죄를 받을 뿐입니다.

성종실록 91권, 성종 9년 4월 21일 임자 4번째기사


5. 여담


  • 중국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성종이 그의 중국어 실력을 높이 보았기에 선위사로 명나라에 다녀올 수 있었다.
  • 글씨도 잘 썼다고 한다.
  • 조선왕조실록에 임사홍이 미복 차림으로 자신의 집에 찾아온 연산군에게 폐비 윤씨의 이야기를 알리는 이야기가 적혀있다.[14]

6. 가족 관계


좌리공신 임원준의 아들로 태어났고, 이후 효령대군의 아들 보성군 이갑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리고 '고려사' 및 '고려사절요'에도 기록된 임자송, 임군보 등의 직계 후손이다. 임군보는 특히 공민왕 대에 활동한 주요 인물이다. 아버지 임원준은 글을 잘 써서 세종의 신임을 받아 용비어천가 편찬에 참여했으나, 성품이 비루하고 탐욕스러웠으며, 성균관 유생 시절 과거시험에서 남을 대신해 대리시험을 보다가 처벌을 받기도 했다.
또한 예종의 딸 현숙공주를 맏며느리로, 성종의 딸 휘숙옹주를 넷째 며느리로 들였다. 임금과 사돈 관계를 맺은데다 본인은 조선의 차남 효령대군의 손녀 사위이니 그의 가문은 왕실과 세 번이나 사돈 관계가 된 셈이다
슬하에 4남을 두었다. 그런데 아들들이 다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참척의 아픔을 겪었다.
  • 장남: 임광재 - 예종의 사위이자 현숙공주의 남편
  • 차남: 임희재 - 김종직의 제자로, 사림파로 활동하다 연산군에 의해 처형된다.
  • 삼남: 임문재
  • 사남: 임숭재 - 간신[15], 성종의 사위이며 휘숙옹주의 남편이다. 임사홍이 관직생활을 할 때 성종의 사위가 되고 성종 사후 연산군의 최측근이 되어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임사홍을 다시 정계에 복권시킨다.

7. 대중매체에서


재평가가 시도된 것이 비교적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묘사된 매체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 조선왕조오백년에서는 신충식이 연기했다.
  • 한명회에서는 안병경이 연기했다.
  • 왕과 비에서는 임혁이 연기했다. 유자광과 죽이 잘 맞는 인물로 등장. 그래도 배우가 강직한 이미지를 지녀서인지 연산군에 대한 기본적인 충성심은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이 드라마의 막바지 에피소드인 중종반정 때 죽는다(마지막 에피소드는 연산군의 죽음).
  • 고우영의 연산군에선 눈치는 빠르지만 돈에 환장한 간신배로, 신동우의 한국사 만화에선 부정 축재 및 무고 고발로 승진을 거듭한 간신으로 그려졌다.
  • 길창덕코미디 홍길동에서는 연산군에게 절대 충성을 바치는 전형적인 간신이면서 종종 길창덕 특유의 웃음을 유발하는 개그 캐릭터로 그려졌다. 그런데 작품에서 임사홍이 홍길동에게 원한을 품게 된 이유가 자신의 아들(아마도 임숭재인듯)이 동네 씨름 대회에서 홍길동에게 지고 부상까지 입은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객을 보내 홍길동을 해코지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이 일을 계기로 홍길동은 집을 나와 조선 팔도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 돌아온 영웅 홍길동에서 중간 보스급 악역으로 등장한다. 흠많무. 아무래도 홍길동전의 원본이라 할 수 있던 실존 도적 홍길동이 연산군 시대의 인물이었기 때문인 듯 하다.
  • 드라마 대장금에서는 언급만으로 등장.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백성들이 임사홍을 때려잡자고 그의 집으로 몰려가는데, 강덕구가 임사홍의 집에 배달한 술값을 아직 안 받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임사홍이는 내 술값을 다오!"라고 절규하며 같이 몰려가서 돈 될 만한 가재도구를 챙겨 나온다.
  • 드라마 장녹수에서는 원조 사망전대 이영후가 임사홍 역을 맡아 훌륭한 천하의 개쌍놈 간신배의 모습을 보여준다. 연산군이 임사홍의 집에 놀러와서 술을 마시다가 임희재가 연산군을 진시황에 비유한 시를 연산군이 보고 격분하여 임희재를 죽인 것으로 그려진게 대표적. 압권은 모든 신료들이 임희재의 목숨만은 살릴 것을 간하였고, 연산군 조차 살려주려고 하였는데 오히려 아버지인 임사홍이 연산군에게 아첨하기 위해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연산군이 "그래? 그럼 죽여주지 뭐." 해서 임희재는 참수형을 당하고 만다. 연산군이 사냥하다가 백성들의 민가가 보이자 돌아가려 하였으나 금표를 세워 백성들을 쫓아내고 백성들의 땅을 뺏어서 사냥을 계속하라고 아첨하는 장면과 위에 언급한 대로 아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장면이 압권.
43회
#19 숲길
몰이꾼들이 사냥감을 몰고 있다. 그 뒤를 따르는 말 위의 연산과 임사홍
해설 : 갑자사화의 광풍이 거세게 몰아친 후 연산은 매일같이 임사홍을 대동하고 사냥에 몰두했다. 아직도 피에 굶주렸음인가. 조회와 경연은 폐하다시피하고 연산은 사냥터에서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임 : 뭣들 하느냐, 어서 노루를 몰지않고.
앞에서 우왕좌왕 하는 몰이꾼들. 금부당상이 달려온다.
연산 : 무슨 일이냐.
금부 : 황공하옵나이다 전하, 더는 앞으로 나아가실 수가 없사옵니다.
임 : 나아갈 수가 없다니.
금부 : 개울 건너는 전답이 가로막고 있사옵니다.
임 : 이런 고약한 일이 있나. 이 세상 천지에 전하의 땅이 아닌 것이 없거늘.
금부 : 백성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중이오라.
연산 : 알았다. 그만 돌아가자.
말머리 돌리는 연산
임 : 전하, 아니되십니다.
연산 : ...
임 : 천하가 전하의 소유이옵니다. 전하께옵서 민가를 만나 사냥을 거두고 돌아가셨다 하시오면 천한 백성들이 전하의 은전을 기리기 보다는 전하를 업수이 볼 것이옵니다.
연산 : ...
임 : 군주의 위엄을 바로 세우시옵소서, 전하.
연산 : 나더러 어찌하란 말이오?
임 : 지금 당장 민가를 철거하고 사냥을 계속 하심이 옳은 줄 아옵니다. 그리하셔야 만백성이 전하를 두렵게 여길 것이옵니다.
연산 : ...
임 : 뭘 보고 섰느냐, 지금 당장 사방 십리 안에 있는 민가를 철거하고 금표를 세워 백성들의 출입을 막도록 하라.
금부 : ...
임 : 어서 거행치 못하겠느냐.
금부 : 예, 대감.
달려가는 금부당상과 군졸들.
#20 숲 근처의 마을
군졸들이 달려와 집집마다 사람들을 끌어낸다. 아수라장.
해설 : 금표라고 했다. 임금의 사냥을 위해서 멀쩡한 전답을 폐하고 백성을 강제로 이주시킨 다음 그곳에 금표를 세웠다.
숲속에서 꿩 한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른다. 활을 당기는 연산. 꿩이 맞고 떨어진다. 환성이 터지고 뒤따르던 기생들이 “지화”를 먹인다. 자원이 화살 맞은 꿩을 받아가지고 온다.
자원 : 명중이옵니다 전하.
임 : 전하께서는 천하 제일의 명궁이시옵니다.
연산 : ...
웃지 않는 연산. 말없이 말머리를 돌려간다.
44회
#19 동. 안방 (밤)
휘숙 : 오늘밤에는 꼭 주상 전하께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임승재: 그만 두시라니까요. 나는 장안원 제조로 만족입니다.
휘숙 : 평생 기생 뒷바라지나 하시면서 보내실 겁니까.
임승재: 벼슬이 높아지면 뭘합니까. 골치나 아프지요.
휘숙 : 사내 대장부가 야심도 없으십니까.
임승재: 야심이라구요? 그게 사람 잡는 독약인걸 모르십니까. 내 동생을 보세요. 그놈의 야심이 희재를 망친겁니다.
휘숙 : 참 딱두 하십니다. 내가 누굴 위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요.
잔소리 늘어놓는 휘숙.
찡그리며 돌아 앉는 숭재.
해설 : 희재란 임사홍의 셋째 아들을 말함이다. 김종직의 문하로써 무오사화 때 화를 입고 귀양을 가있는 터였다. 그런데 그날 밤 임사홍은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고마는 사건에 휘말려 들었으니..
#20 임의 사랑채 마당 (밤)
사냥한 금수를 나르는 덕준과 종복들. 안에서 웃음소리.
#21 동. 사랑방 (밤)
마시는 연산.
임 : 과연 전하께옵서는 천하의 영웅이시옵니다. 저 많은 노루와 꿩을 전하 혼자서 잡으셨다니 그저 소인은 입이 쩍 벌어질 뿐이옵니다.
연산 : 활치옹, 내가 백발백중, 사냥감을 놓치지 않는 비결이 뭔지 아시오.
임 : 무엇이옵니까 전하. 이 늙은이 에게도 한수 가르쳐 주시옵소서.
연산 : 나는 노루를 노루로 보지를 않아요. (바싹 앉으며) 시위를 당길때마다 할마마마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임 : (찔끔)
연산 : 저건 노루가 아니라 할마 마마다 하고 시위를 놓으면 영락없이 명중을 한다 그말입니다. (웃는)
임 : (웃으며) 그렇사옵니까, 전하.
연산 : 또 하나...
임 : (긴장)
연산 : 그래도 집중이 안되면 이번엔 진성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임 : (질겁하는)
연산 : 그러면 백발백중입니다. (웃고는) 가끔 흥이 깨지면 대신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지요. 내 표적이 되어 벌벌 떨고있는 그 구역질나는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 화살이 저절로 날아가 명중을 한다니까요. 허나 염려마시오. 한번도 활치옹의 얼굴은 표적으로 삼지를 않았으니.
임 :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웃는 임.
연산 : 활치옹, 먹과 붓을 가져오세요. 내 이 마음을 시로 옮겨야겠어요 그 시를 활치옹에게 주리다.
임 : 부디 명문을 남기셔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벽에 걸어놓고 조석으로 마음에 새겨두었다가 가보로써 전할 것이옵니다.
연산 : 그러시구려. (웃더니 벽을 본다)...
문득 족자에 머무는 연산의 시선. 웃고 있던 임이 문득 긴장한다.
연산 : 명필이로다. 저 족자의 글씨는 누구의 것이요.
임 : 황공하오나... 소신의 셋째 아들 놈이 쓴것이옵니다.
연산 : 셋째 아들이라니오. 활치옹에게 아들 하나가 또 있으셨소.
임 : (울먹이며) 전하, 소신이 자식 농사를 진즉에 망쳤사옵니다. 셋째가 어려서 명석하여 글 공부를 좀 시켰더니 이놈이 어리석게도 김종직의 문하가 되었습니다.
연산 : (족자 가까이 보더니) 희재라... 아, 생각이 납니다. 무오년에 파직당하고 부처된 임희재가 활치옹의 아들이구려.
임 : 전하를 뵈올 면목이 없사옵나이다.
연산 : 내가 너무 무심했소. 진즉에 풀어주어야 했을 것을 (유심히 보더니) 과연 명필이요. 무어라 썼는지..
눈으로 읽는다.
임 : (당황해서) 전하 제 아들놈 일은 그만 잊으시고.
연산 : ... (들고 있던 술잔을 탁 놓는다)
임 : ...
연산 : ... (부르르 떨더니) 조순 종요이면 자태평인데 진황하사 고창생이라.. (신음)
임 : (벌떡 일어나 부복하며) 전하, 소신을 죽여 주시옵소서.
연산 : ...
눈이 뒤집힐 지경이다. 족자의 시.
해설 : 임희재가 남긴 시의 내용은 연산의 폭정을 비유한 것이었다. 요순을 본받으면 저절로 태평할 것인데 진 시황은 무슨 일로 백성을 괴롭혔는지. 재앙이 집안에서 일어날 줄도 모르고 공연히 오랑캐를 막으려고 만리장성을 쌓았구나.
임 : 전하.
#22 동 사랑채 마당 (밤)
여기저기서 음식을 먹고 있는 내관들과 금부당상. 연산이 나온다. 맨발로 따라나오는 임.
임 : 전하, 전하.
연산 간다. 급히 따르는 내관들.
임 : 전하 이 늙은이를 죽여주시옵소서.
땅바닥에 머리를 찧는다.
#23 동 대문앞 (밤)
산위에 오르는 연산. 달려간다. 썰물이 빠지듯 군졸과 내관이 빠져나간 썰렁한 대문 앞.
#24 임의 안방 (밤)
임 : 도대체 누가 그 족자를 사랑에다 내다 걸었느냐.
임승재: ...
임 : 네 짓이냐.
임승재: 아버지께서 희재의 글이 뛰어나다고 칭찬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임 : 너는 글을 읽을 줄도 모른단 말이냐.
임승재: ...
임 : 장차 이일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
현숙 : 설마하니 주상 전하께서 벌을 내리시기야 하겠습니까.
임 : 주상 전하를 진 시황에 비유를 했어요. 그러고도 어찌 살아남기를 바라겠어요.
현숙 : 저희가 주상께 용서를 빌어 보겠습니다.
임 : 아닙니다. 아녜요. 그래서 해결 될일이 아닙니다.
#25 편전
부복한 유순, 허침, 박승질, 허감, 임사홍 등
연산 : 가져 오시었소?
신수근: 예 전하.
복사한 임희재의 시를 받친다.
연산 : 이게 무언지 아십니까. 아직도 조정 안에 김종직의 잔당이 남아 있음이요.
모두 말이 없다.
연산 : 무오년과 갑자년의 숙청을 거치고도 종묘 사직을 위협하는 무리들이 남아있어서 임금인 나를 능멸하고 역모를 꾸미고 있음이 아닙니까. 도대체 경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유순 : ...
연산 : 말씀들을 해보세요.
유순 : 전하, 한낱 유생의 시 한수를 두고 전하께옵서 심려하실 일이 아닌 줄 아옵니다.
연산 : (시를 흔들며) 나를 진 시황에 비유하고 있어요.. 내가 비록 요순은 못된다고 하나 선정을 베풀려고 애를 쓰고 있음을 모르십니까.
유순 : 전하 임희재를 엄히 단죄하심이 옳을 줄 아옵니다.
연산 : ...
박승질: 전하께옵서는 임희재의 시가 어째서 전하를 가르치고 있음 이라고 생각하시옵니까. 전하를 시황에 비유함은 천부당 만부당 하온 일이옵니다.
연산 : 으음..
김감 : 그러하옵니다. 노여움을 푸시는 것이 옳을 듯 하옵니다.
연산 : (임을 힐끔 보며) 좋습니다. 임희재를 변방에 부처하는 것으로 이일은 덮어두겠습니다.
임 : 아니되옵니다, 전하.
모두 놀래서 임 본다.
임 : 임희재의 젊은 혈기를 엄히 다스리지 않으시오면 전하의 위엄이 바로 서지를 않사옵니다.
연산 : ...
임 : 일벌백계로서 임희재를 다스리셔야 후환이 없을 것이옵니다.
연산 : 그렇다면.. 임희재를 죽이라 그말씀이시오.
임 : ...
연산 : 대답을 해보시요.
임 : 전하.
허침 : 전하, 임희재는 병판의 자식이옵니다. 병판이 자식을 벌주기를 청하는 것은 부모된 죄가 아니겠사옵니까. 임희재를 벌주심은 선정이 아닐 것이옵니다.
연산 : 내가 병판 대감에게 묻고 있어요.
허침 : 전하.
연산 : 도승지는 들으시오. 임희재를 엄히 추문한 연후에 그 죄상에 벌을 주되 반드시 참하도록 하시오.
허침 : 전하.
연산 나가 버린다.
임 : ...
쑤근거린다.
허침 : 대감.
임 : ...
허침 : 저희가 나서보겠습니다. 설마하니 전하께옵서.
임 : 아닙니다. 그냥 내버려 두십시오.
허침 : ...
임 : 죄를 지었으니 죄값을 받아야지요.
만만히 나가버리는 임사홍. 모두 어이없어 바라본다.
#26 길
힘거에 실려가는 임희재.
해설 : 임희재는 아버지를 잘못 둔 죄로 죽었다. 임사홍의 자신의 출세를 위해 아들을 자청해서 죽였다하여 웃음꺼리가 되었으나, (후략)
왕과 나에서는 임병기가 연기했다. 참고로 임병기는 연산군 대의 간신 트리오로 일반 대중들에게 손꼽히는 신수근, 유자광, 임사홍을 모두 연기하였다.
  • 2015년 영화 간신(영화)에서는 배우 천호진이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였다. 그야말로 권력에 미친 간신. 그러면서도 연산군에게는 벌벌 기어야 하는 안습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 때문에 죽은 아내의 피묻은 적삼을 폐비 윤씨의 것으로 속여 갑자사화를 일으키고 권력을 잡는다.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연산군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부지런히 연산군을 찾는다. 물론 연산군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잡아 공신이 되려고... 거짓 초패를 받고 부랴부랴 입궐하다가 박원종 일당 장사패-이심 이라는 역사(力士)가 지휘하는 장사패들에게 살해당한다.[16]
  • 7일의 왕비에서는 강신일이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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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폐비 윤씨의 폐비를 반대하였고 사헌부사간원이 왕의 사생활과 취미에 간섭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런 문제에서 여러 대간들과 갈등을 빚었다.[2] 이심원은 이 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미움을 사서 집에서 쫓겨난다. 훗날 갑자사화 때 두 아들과 화를 입는다.[3] 임사홍이 이렇게까지 심하게 탄핵을 받은 것은 임사홍이 종친이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국정을 농단할 것을 대간들이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파악된다. 또한 임사홍이 대간들에 대해 쓴소리를 하고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는 점도 탄핵을 받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4] 유배를 간 것도 대간들이 사형시키자고 강력하게 주장하던 것을 성종이 임사홍을 최대한 배려해 감형한 것이었다.[5] 다만 이렇게 성종이 등용을 했다고는 해도 정식으로 정계에 복귀한 것은 아니였다. 전술했듯이 임사홍에 대한 대간들의 엄청난 탄핵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종실록을 살펴보면 거의 2페이지 분량이 임사홍에 대한 대간들의 탄핵 상소문으로 가득찬 것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반대가 심했으니 이라 하더라도 신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복권을 강행하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다.[6] 연산군일기 38권, 연산 6년 8월 19일 신축 3번째기사[7] 연산군일기 48권, 연산 9년 1월 21일 기축 3번째기사[8] 다만 일을 제대로 못 한 것인지 연산군이 임사홍을 질책하는 기록이 남아있다.[9] 중종실록 1권, 중종 1년 9월 2일 무인 1번째기사[10] 대관들의 견제 때문에 무려 12년 동안 유배를 갔었고, 유배에서 해방되고 관직에 복귀한 후에도 대관들의 탄핵에 시달려야 했다. 때문에 이 시절에 사대부들에게 맺힌 원한 때문에 연산군이 갑자사화를 일으키도록 부추겼다고 판단된다.[11] 명종실록, 선조수정실록, 숙종실록, 영조실록, 고종실록.[12] 채홍사 일을 할 때 연산군에게 일을 제대로 못 한다고 크게 지적을 당한 일이 있다. 심지어 이때 임사홍을 평생동안 괴롬히던 소인배 소리까지 연산군에게 들어야 했다.# 때문에 재평가를 하려는 측에서는 이러한 사료를 근거로 임사홍이 연산군에게 크게 신뢰를 받은 관료는 아니라고 주장한다.[13] 임사홍의 이 말로 인해 폐비 윤씨의 폐비가 늦춰졌다. 하지만 결국 폐비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14] 다만 해당 기록은 진위 여부에 논란이 있는 편이다.[15] 아버지는 간신인지 논란이 있지만 이놈은 확실한 간신이다.[16] 실제 역사에서는 자택에 들이닥친 반정군에 의해 처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