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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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관료, 정치인이다. 1944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2. 관료 및 정치인 생활
경기고등학교(58회),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재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조달청장, 과학기술처 차관, 해양수산부 차관, 통상산업부 장관,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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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2월 3일, 미셸 캉드쉬(왼쪽) 당시 IMF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구제금융 지원서에 서명하는 임창렬(가운데)의 모습. 오른쪽은 김영삼 정부의 초대 경제 부총리를 역임했던 이경식 당시 한국은행 총재)
그가 재정경제원 장관 겸 부총리로 취임할 당시는 1997년 외환 위기가 본격화되어 경제주권을 상실하는 시기였다. 이에 따라 IMF에 구제금융 지원을 공식 요청하고, 그 대가로 IMF가 요구하는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시행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모라트리엄 등의 보다 심각한 사태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손학규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경기도지사 재임 기간 중 고양시에 KINTEX를 설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 외에도 파주 LG 디스플레이단지를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재가를 받아 추진하였으며, 판교 테크노밸리단지도 추진하였다. 처음에 판교를 100만평 규모로 추진하였으나 당시 여러곳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반대하여 그 목표를 다 이루지는 못하고 현재 규모로 축소되어 추진되었다. 만약 그때 100만평 규모로 추진되었다면 미국의 실리콘밸리 못지않게 R&D 연구 대학과 기업들이 우리나라 첨단 테크노 산업 지형을 바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1999년, 지방 선거 직전에 '''뇌물을 수수한 것'''이 드러나 '''구속'''되었다.# 이후 임기가 끝날 때까지 사임하지 않고 구치소에서 '옥중결재'를 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사건은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도지사 임기 말기이던 2002년 봄 대법원에서 유죄취지 파기 환송되었고, 결국 2003년 상고를 취하하면서 유죄가 확정되었다. 이 때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났다. 이 여파 때문인지 임창열 이후 민주당계 정당에서 경기도지사를 당선시키지 못했고(한나라당 손학규, 김문수, 새누리당 남경필), 임창열이 당선되고 무려 '''20년'''이 지난 2018년에야 비로소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당선되었다.
한편 2014년 9월부터 KINTEX 대표이사에 재임 중이다. 킨텍스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3전시장 건립과 호텔건립, 주변 일산테크노밸리등을 추진하였으며 만년 적자였던 킨텍스를 매출은 2배로 성장시키고 흑자로 돌아서게 만들었다. 그리고, 국내 전시장 업계에서는 최초로 인도에 킨텍스보다 3배 이상 큰 뉴델리 IICC 전시장 20년 운영권을 세계적인 Venue 운영업체와 경쟁하여 수주하였다.
2020년에는 국내 업체 킨텍스가 운영하는 인도 IICC 전시장에서 한국의 기업들이 전시회에 참가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3.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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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파선의 키를 잡고 : 1998년 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