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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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갑)'''
제13~16대
서청원

'''제17~19대
전병헌'''

제20~21대
김병기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
6대
허원제

''' 초대
전병헌 '''

2대
한병도

<colbgcolor=#878787> '''대한민국 제17~19대 국회의원
전병헌
田炳憲 | Jun Byung-hun
'''
<colcolor=#ffffff> '''출생'''
1958년 3월 17일 (66세)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1]#
'''본관'''
담양 전씨[2]
'''가족'''
슬하 1남 1녀
'''학력'''
휘문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 학사)
고려대학교 (경제학 / 석사)
'''병역'''
육군 학사장교 중위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예장고신)[3]
'''소속 정당'''
[4]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7, 18, 19
'''약력'''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비서관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국정홍보처 차장
열린우리당 대변인
제5대 한국e스포츠협회장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SNS'''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1. 개요
2. 생애
3. 정치인 전병헌
4. KeSPA 회장으로서의 전병헌
5. 논란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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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이자 국제 e스포츠 연맹 회장,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으로 재임했었다가 후술될 논란 속에 사임했다. 정세균계로 분류되며, 한편으론 친문으로도 분류되는 정치인이다.

2. 생애


1958년 3월 17일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열심히 공부하여 고려대학교에 입학했으며 정책대학원 경제학 석사 취득을 하고 졸업하였다. 그리고 대학교 졸업 후 육군 학사장교에 지원해 장교로 군 복무를 하며 중위로 만기전역하였다.
이후 정계에 입문하였고 정치를 하다가 이런저런 문제에 휘말려 현재는 21대 총선 전까지 무죄가 나오지 않는 한 사실상 정치생명이 끝나 있는 상황이다.

3. 정치인 전병헌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작구 갑 선거구[5][6]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한나라당 서장은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이후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에서도 동작구 갑 지역구에서 3선을 역임했다.
초선이였던 2004년에는 일본군의 기록을 추적하여 장준하 선생이 실제로 일본군에서 탈영하여 독립군에 합류했다는 증거를 찾아내고 이것이 장준하 선생의 자서전 '돌베개'에 기재한 내용과 일치함을 밝혀낸 적이 있다.
100분 토론 400회 특집에서는 유시민 전 장관, 신해철, 진중권 동양대 교수, 김제동과 같은 진영이 돼서 나경원 의원, 제성호 중앙대 법대교수, 이승환 변호사, 전원책 변호사로 구성된 보수 진영과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같은 팀 내 멤버들이 워낙에 한 성격하는 양반들이라 존재감을 두드러지게 표출하진 못했다.
19대 총선 당시 의정 활동은 정치적으로는 비판이 있는데 민주당 원내대표로서의 정치 행적은 야당의 투쟁이 미온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이 되었다.
20대 총선에서는 공천에서 컷오프되었는데, 측근비리로 인해 잡음이 있다는것이 주된 이유였다. #
이어 2016년 3월 22일 기자회견에서 공천배제 승복과 더민주에 잔류하면서 백의종군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본래 무소속 출마, 국민의당 입당 등을 놓고 고심하던 과정에서 양산을 방문, 문재인 당시 전 당대표를 만나 대선까지 함께 가자는 설득으로 당에 남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이후로 친문계로 분류되었다.
정치인으로서 연관되었던 사건 목록은 여기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윽고 바로 문재인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제19대 대선 캠프에 합류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더문캠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수행하고, 궐위로 인한 선거로 인수위 과정이 없는 19대 대선의 특성상 당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차기 정부에서도 비중있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이미 예상할 수 있었다. 정세균계에 해당하는 인사였지만, 정세균이 국회의장이 되면서 계파가 붕뜨기도 했고 사실 친문과도 가까웠던 만큼 친문 그룹에 합류할 가능성도 언제든지 있었고.
결국 예상대로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에 임명됐다. 보통 정무수석 비서관은 재선의원 출신의 원외 인사가 담당하는 자리이다. 수도권 3선의원에 원내대표까지 역임했던 전병헌이 맡기에는 다소 급이 낮은 직위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현재 국회가 여소야대의 5당 체제임을 고려해서 관례를 깨고 정무수석에 중량감 있는 전병헌을 기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렇게 되면서 e스포츠 협회장직은 공석이 되었으며, 당분간 조만수 사무총장이 협회장 업무를 대행할 것이라고 한다. 다만 케스파 회장직 사임과는 별개로 국제 이스포츠 협회장직은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문재인 정권 초기 2018년 초 대통령 지지율이 고공행진 하던 시기에 대대적 측근들의 검찰 수사와 기소가 이뤄지면서 스스로 사퇴하였고 사실상 정계 은퇴 선언을 한 상황이다.

4. KeSPA 회장으로서의 전병헌


2013년 1월 24일에 제5기 KeSPA 지도부의 협회장으로 취임하였다. 현직 국회의원이면서 당의 원내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힘 있는 인물을 협회장으로 활용해 협회의 위상을 올리려는 의도가 있는것으로 보인다.
그가 한 일 중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이 사례. 2013년 롤드컵에서 한국팀이 우승을 하면 코스프레를 하겠다고 이전에 공약을 했는데 우승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자신의 의원실에서 보좌관들의 도움을 받아 분장을 하여 인증샷을 올렸다. 멩스크 코스프레도 그렇고 젊은 층에선 게임 코스프레하는 국회의원으로 유명했다.
또한 군 생활관 게임채널 차단사건에 매우 강력히 항의하여 게임을 좋아하는 죄 없는 장병들을 위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국방부는 국군 장병들에게 죄송하다고 사죄한 뒤 다시 게임채널 차단을 해제하였다.
국회 윤리자문위원회에서 국회의원 겸직 금지 원칙이 논란이 됐고 결국 겸직 금지 통보에 따르기로 결정하였고 2014년 12월 16일에 협회장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윤리위에서 실권이 없는 명예직은 허용한다는 입장에 따라, 현재는 명예회장직으로 있다.
2016년 5월 29일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고 난 뒤, 더이상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게 되었고 곧바로 KeSPA 지도부의 협회장으로 다시 복귀했다. 2017년 5월 11일자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물러난 직후 2017년 5월 16일 롤인벤, Pgr21 게임 관련 사이트에 글을 남겼다. # #
전병헌 회장이 케스파 협회장으로 있으면서 e스포츠가 발전했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있는 네티즌들이 많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국 e스포츠의 발전은 온게임넷라이엇 게임즈가 노력한 결과이지, 전병헌 체제의 KeSPA가 스스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이미지 메이킹이 잘 된 케이스라고 봐야 한다. 대표적으로 2014년 롤드컵 분산개최를 라이엇이 미리 통지했음에도, 그 당시 전병헌이 회장으로 있던 케스파는 대회의 흥행을 위해 분산개최라는 내용을 알리지 않아 팬들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엄밀히 따지자면 한국e스포츠협회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전병헌 체제의 KeSPA가 한 업무는 스포츠 협회라면 지극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전까지 협회가 너무 심각하게 막장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일 뿐이다. 거기다 현재(2019년)까지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한국의 나이 좀 있는 정치인들이 게임 관련 방침을 정한다고 하면 십중팔구 시대착오적인 꼰대질로 망가지는 일이 빈번했는데, 전병헌은 전술된 코스프레부터 게이머 친화적인 언행들을 지속적으로 표출하여 이미지 메이킹을 잘 했다. 협회 입장에서는 현직 국회의원을 데려와서 힘을 써보자 한 것이고, 전병헌 입장에서는 젊은층에게 본인 이미지를 좋게 포장하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결과물이었는데 전병헌이 퇴임 할 때까지만 해도 이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개판이나 다름없던 케스파에 게임을 좋아하고 게이머에 친화적인 국회의원 협회장이 부임하여 여러 업무를 추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게이머들은 기뻐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을 따지자면 지극히 해야 할 일이고 OGN이나 라이엇 게임즈 등의 주도로 진행되던 일들에 케스파와 전병헌이 숟가락을 얹으며 기분 좋은 말들을 늘어놓아 잘 포장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전까지의 협회는 이마저도 제대로 진행 못 하거나 깽판을 놓아 댔기에, "그나마 해야 할 일이라도 하면서 깽판이라도 안 친 것만으로 이전까지의 협회장 중에서는 괜찮은 편." 이었다는 평가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전병헌이 케스파 협회장의 지위를 이용해 온갖 비리를 해먹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나마도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이 늘어나는 중.
2017년 11월 8일 검찰은 2015년 전병헌의 보좌진들이 롯데홈쇼핑에서 수억 원대 로비 자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수석은 오전 내내 취재진의 전화를 받지 않으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오후 돌연 ‘입장문’이라며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사에게만 두 줄로 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입장문’에서 "언론에 보도된 롯데홈쇼핑 건과 관련, 어떠한 불법에도 관여한 바 없습니다"면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심정입니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2015년 당시 롯데홈쇼핑이 전 수석이 회장을 맡은 한국 e스포츠협회에 3억 원대 후원금을 냈고, 전 수석의 보좌진과 가족 등 측근들에게 상품권 등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수석의 비서관이었던 윤모 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 23일 SBS 취재 결과, 롯데홈쇼핑 재승인이 확정되기 6일 전에 전병헌 전 수석이 롯데홈쇼핑 대표를 만나 e스포츠협회에 대한 후원을 요구했다는 뇌물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진술을 검찰이 확보한 걸로 SBS 취재 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롯데홈쇼핑 강 전 대표는 6월에 전병헌 수석을 다시만나 500만 원어치 기프트카드를 건넸고, 7월에는 후원금 3억 3천만 원을 보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기프트카드를 전병헌 수석의 가족이 사용한 시기와 장소 등을 파악한 결과 강 전 대표 진술의 신빙성이 크다고 판단하였다. # 전 수석은 당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위원으로 롯데홈쇼핑 재승인 심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수석은 2014년 12월에 케스파 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공금횡령 사건은 2015년에 일어났다며 시기가 맞지 않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 비리 사건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위원의 권력을 악용한 것이므로 케스파 협회장 임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고 위와 같은 논란들이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사실임이 밝혀지면서 전병헌이 케스파 회장으로서 쌓아 온 좋은 이미지는 박살이 났으며[7], 그의 정치 생명도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자세한 논란 내용은 하단 참조.

5. 논란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갑

'''46,291 (43.24%)'''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38,014 (44.86%)'''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56,794 (55.56%)'''
'''3선'''

7. 둘러보기







[1] 담양 전씨 집성촌이다.[2] 경은공파 28세손 '''炳(병)◯''' 弼(필)◯ 항렬[3] 고신총회에서 두 번이나 이단으로 제정한 예수중심교회에 축사를 하였음. 링크 [4] 탈당이나 제명을 당한 것은 아니고,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으로 가면서 자동적으로 당적이 상실되었다. 정무수석비서관도 엄연히 공무원이고, 공무원은 정당 활동이 금지되기 때문. 비슷한 케이스로 과학비서관으로 가면서 당적과 비례대표직을 상실한 문미옥이 있다. 본래대로라면 정무수석 사임 이후 복당이 됐었어야 하나, 사실상 하단에 서술된 논란 탓에 무산되었다.[5] 노량진동이 포함된 선거구이다.[6] 원래 동작갑 선거구는 선거 결과에서 보수 성향이 매우 짙었고 서청원이 5선을 하기도 했던 지역인데 전병헌이 당선된 이래 민주당 강세 선거구로 바뀌었다.[7] 한편 케스파도 이후 그리핀 사건 등 여러 논란과 악재 등으로, 다시 부정적 이미지가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