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5대회장'''
<colbgcolor=#00a86d> '''이름'''
'''현정은'''
'''玄貞銀''' | '''Hyun Jung-Eun'''
'''출생'''
1955년 1월 26일 (69세)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본관'''
성주 현씨
'''직업'''
기업인
'''학력'''
경기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 / 학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 / 석사)
페어레이 디킨스 대학교 (사회학 / 석사)
'''종교'''
개신교
'''가족'''
남편 정몽헌
장녀 정지이
차녀 정영이
장남 정영선
'''홈페이지'''

1. 개요
2. 상세
3. 현대그룹 회장이 되기까지
4. 시숙의 난
5. 시동생의 난[1]
6. 경영능력 논란
7. 어록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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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으로, 現 현대그룹 회장.

2. 상세


본래는 평범한 주부였으나, 남편이자 전 현대그룹 회장이었던 정몽헌 사후 현대그룹을 이끌며 소위 왕자의 난 이후 실추한 현대그룹의 이미지를 살리고 현대그룹의 위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범 현대가와의 지속적인 갈등[2][3], 실적 부진, 재계 순위 하락 등으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해운업 위기에 따른 현대상선의 용선료 문제 등에 따라 현대상선이 그룹에서 분리되는 등 악재는 현재진행형이다.

3. 현대그룹 회장이 되기까지


1955년 1월 26일,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현영원[4]과 어머니 김문희[5] 사이에서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경기여자고등학교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학사/석사. 페어레이 디킨스 대학교 인간개발학 석사 졸업.
대학을 졸업한 1976년에 정몽헌과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이후 전업주부로 살았다가 2003년 8월 4일에 남편 정몽헌불법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던 중 사망하면서 뒤를 이어 2003년 10월 21일현대그룹의 새로운 회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4. 시숙의 난


2003년 정몽헌 회장 사후 현대그룹에 대한 경영권 분쟁을 처음 제기한 것은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동생 정상영 KCC 회장이었다. "정씨의 현대그룹이 현씨에게 넘어가게 놔둘 수는 없다."며 범 현대가의 결집을 호소한 정상영 회장은 정몽준현대중공업 측과 손잡고 현대그룹의 주요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주식을 대거 매입하며 승리하는 듯 했으나...
다른 범현대가의 폭넓은 지지를 끌어내는 데에 실패했고, 현정은 회장이 그룹 지주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40% 이상 확보하며 현 회장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5. 시동생의 난[6]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이 현대그룹 인수를 시도한 사건이다. 2006년 정몽준 회장 측은 외국인이 보유한 현대상선 의 주식을 26.68% 매입하였다. 이는 기존 최대 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인 17%를 10% 가량 상회하는 것으로 현 회장의 절체절명의 위기로 다가왔고 KCC 측도 간접 지원하며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재발되는 지에 관심이 쏠렸으나, 결과적으로 정몽준 측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가져오진 못하였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2011년2013년 주주총회에서 각각 내놓은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를 위한 정관 변경안에 반대하며 현대그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쟁의 소지가 남아 있는 실정이다.

6. 경영능력 논란


현정은 회장은 남편의 사망으로 회장이 될 때까지 기업 경영 커리어가 사실상 전무했기 때문에, 회장 취임 당시부터 경영능력을 의심받았다. 실제로 회장으로 취임한 후 삐걱리는 모습을 보이다 결국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르는데, 바로 그룹 전체 매출의 70%를 담당하는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이 시장 상황을 오판하고 장기 용선 계약을 했다가 엄청난 적자를 내게 된 것이다.
2006~2008년 경 중국 경제가 고성장을 거듭하고 그에 따라 국제 물동량이 급등함에 따라 해운사들이 승승장구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은 현대상선은 벌크선을 빌리면서 10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맺어버렸다. 장기계약의 경우 10% 정도 용선료가 할인되는데다 운임이 계속해서 상승 추세였으니, 단기적으로도 실적을 개선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도 손해 볼 계약은 아니라고 판단한 결과였다. 문제는 2008년 경제위기가 닥쳐오면서 상황이 반전됐다는 것이다. 전세계의 경제 성장률이 줄어들었고(한국 역시 평균 5%대 성장을 하다가 3%대 성장으로 반토막이 났다), 중국을 포함한 각국이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고 미국이 셰일 가스 혁명으로 에너지를 자급하기 시작하면서 국제물동량은 현상유지에 그쳤다. 자연히 해운 단가는 급감했는데, 발틱운임지수가 2008년 7170에서 2015년 742로 떨어지는 등 타격은 극심했다. 해운사의 수입인 해운 단가가 몇토막 수준으로 추락했는데 장기계약으로 용선료는 이전 호황기 기준의 비싼 단가로 고정지출되었으니, 그 차액분이 고스란히 적자로 누적되었다.
결국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현대상선은 부채비율이 5000%에 이르는 등 막대한 빚을 지게 되었다. 현정은 회장이 300억의 사재를 출연하는 등의 자구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채권단에 의해 2016년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되었고 사명을 HMM으로 변경하였다. 사실 재무상태가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300억으로는 이자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또한 이 현대상선의 채무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증권 역시 매각되었다. 결국 현대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모두 매각되었고,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현대엘리베이터만을 지킬 수 있었다. 사실상 사세가 중견기업 수준으로 쪼그라들어 재벌이라 부르는 것도 민망한 수준이 되었다. 실제로 현대상선을 매각한 2016년부터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하는 대기업집단 명단에서 제외되었다.[7]
물론 이러한 사태가 오로지 현 회장만의 실책에 의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동종 업계의 한진해운 역시 장기 용선계약으로 현대상선과 같은 최후를 맞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다만 한진해운 역시 최은영 회장이 무능함으로 유명한 회사기 때문에 한진해운과 비교하는 것은 현정은에 대한 모욕 수준이다) 2006~2008년 해운업계 초호황 당시에는 경제위기를 맞고 시장 상황이 급변한다는 것은 누구도 쉽게 예견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계약을 맺으면서 리스크를 헷징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항도 삽입하지 않고 관련 보험도 들지 않아 엄청난 손실을 자초한 것은 분명하다. 현정은 회장은 전문경영인들에게 경영을 일임하고 최소한의 관리를 했다고는 하나, 그룹 매출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기업이 10년 단위의 장기 초대형 계약을 맺는데 현 회장이 관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또한 구조적 변화로 인하여 해운 시장이 침몰을 거듭한다면 현대상선을 빠르게 청산하거나 매각하여 썩은 살점을 도려냈어야 했고, 이러한 결정은 오너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현 회장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빚을 내며 버티다가 다른 알짜 계열사인 현대로지스틱스와 현대증권마저도 그룹이 매각하는 상황을 초래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와 같은 실책들로 인해 현재 현 회장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하다. 오죽하면 그룹 내에서도 정상영 회장의 KCC그룹으로 넘어가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범 삼성 계열사의 이명희, 이부진 등이 뛰어난 경영 성과로 주목받은 것에 비교되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안쓰러운 처지다.

7. 어록


'''"힘들고 어려울수록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자.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의 변화가 우리 전체의 변화를 가져오는 기적을 함께 경험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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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2일, 신년사 中 #

'''"정몽헌 회장이 돌아가신지 15년이 됐고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제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 하고 싶다. 지난 10년처럼 일희일비 하지 않을 것이며 담담하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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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3일, 정몽헌 회장 15주기 금강산 추모식 귀한인사에서

'''"주력 계열사(현대상선)가 불가피하게 매각돼 그룹 규모가 큰 폭으로 줄었지만 부실의 멍에를 더 지속하지 않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돼 그나마 다행이다. 현대엘리베이터를 포함한 각 계열사는 과거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이 작동하도록 '승리하는 DNA'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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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일, 2017년 신년사 中

'''"현대상선과 이별하게 되면서 발자취를 다시 되새겨 보고 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새삼 느끼는 등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연말 연초에 인사발령이나 주재원 부임 시 다 같이 인사 다니던 직원들 모습이 눈에 선해 현대상선 임직원 여러분과 이별한다는 것이 아직도 와 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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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4일, 현대상선을 공식적으로 계열분리하기 하루 전날 현대상선의 임직원에게 삼계탕을 보내면서 남긴 편지에

'''"시아버지와 남편과 같은 상을 받게 돼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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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8일, 제42회 상공의 날 기념행사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은 소감

'''"현대 드림호 명명식을 맞이해 새로운 꿈을 꾸고자 한다. 지금 해운업계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현대 드림호를 통해 현대그룹과 현대상선은 재도약이라는 꿈을 반드시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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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8일,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현대컨테이너 명명식에서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위기상황을 먼저 극복해야 한다. 아시다시피 우리 그룹의 주력산업인 해운업과 증권업이 많은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여건에 있는 다른 계열사도 미래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결코 안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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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일, 신년사 中

'''"고 정주영 명예회장님이 첫 삽을 뜨고 정몽헌 회장님의 손때가 묻은 현대건설을 이제야 되찾았다. 위에 계신 두 분도 많이 기뻐하셨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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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8일,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우선협상 대상자에 선정된 이후 선영 발표문에서[8]

'''"현대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는 오늘 오후 동숭동 사옥에서 이사회를 열고 기업지배구조 개선 및 경영투명성에 대한 획기적 조치로 우량기업인 현대엘리베이터의 국민주를 발행하기로 결의했다. 국민 여러분들이 ‘현대그룹 살리기’에 적극 동참해 주실 것을 진심어린 충정으로 호소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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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17일, 현대엘리베이터 국민주 공모를 결의하면서 발표한 호소문에서

'''"이제 저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미망인에서 고인이 남긴 유지를 이어받은 현대그룹 회장으로 새롭게 일어섰다. 고인이 남긴 큰 뜻을 계승 발전시켜 현대그룹이 재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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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21일, 현대그룹 임시 이사회 中


8. 기타


  • 2009년 8월 16일현대그룹 회장 신분으로 북한김정일과 면담하였다.
  • 미래통합당국회의원김무성은 현정은보다 불과 4살 연상인 그의 외삼촌이다.
  • 2018년 9월에 열리는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에 경제인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하였다. 대북 사업에서 현대그룹의 상징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으므로 참석이 가능하였다.
  • 최근에 맏딸 정지이를 계속 승진시키면서 후계자 수업을 시키고 있다.
  • 일제강점기 시절 중추원 주임관대우 참의에 임명되어 친일의 길을 걷고, 일본군에 수차례 거금을 헌납했던 그 당시 손꼽히는 거부 현준호(친일반민족행위자)가 현정은 회장의 할아버지이다.
  • 2019년 11월 북한이 금강산의 남측 시설을 다 철거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가운데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회동을 가졌다.
  • 의전차량으로 제네시스 EQ900을 사용 중이다. 범 현대가 답게 과거에도 현대 그랜저 등 현대차 플래그십 세단을 의전 차량으로 줄곧 사용해왔었다.
[1] 도련님의 난이라고도 한다.[2] 정주영 회장의 며느리이긴 하지만, 정씨 일가가 아닌 현씨라는것 때문인지 정몽구, 정몽준 등 대부분의 범 현대가 사람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다른 범 현대가가 위기 때 서로 도와주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지만, 현정은의 현대그룹은 오히려 공공의 적 취급 당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정주영 명예회장의 기일에 모일때 참석하기는 한다.[3] 현대건설 인수전에서도 이명박의 지지를 받은 정몽구의 압승으로 끝났다.[4] 전 신한해운 대표. 신한해운이 1984년 현대상선과 합병한 뒤로 현대상선 대표를 지냈다.[5] 전방 창업주인 김용주의 장녀이자 김무성의 첫째 누나. 따라서 현정은은 김무성의 외조카가 된다.[6] 도련님의 난이라고도 한다.[7] 그러나 이미 세간의 인식에는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가의 적통을 계승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그룹이 대기업집단 명단에서 제외되는 엄청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슈가 되지 못하고 묻혔다.[8] 그러나 이후 익히 알려져있다시피 현대그룹은 채권단이 요구한 대출계약서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바람에 우선협상 대상자에서도 제외되고,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건설을 가져가는 것을 고스란히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