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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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균(''Vibrio cholerae'')이 일으키는 2급 법정 감염병. 병균에 오염된 물이나 음식, 환자의 배설물 등으로 전파된다. 잠복기간은 1~5일간이다.
원래는 갠지스 강 유역의 풍토병이었으나, 1817년 유행하면서 전 세계로 퍼졌다.[1] 이후 전 세계적으로 6차례 크게 창궐하면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
'콜레라'는 히브리어 구어로 ‘인간쓰레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과거 한국에서는 호열자(虎烈刺)로 불렸다. 일본어로 虎烈剌(코레라)라고 음차한 것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라 '호열랄'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랄(剌)자를 모양이 비슷한 자(刺)로 잘못 읽은 것에 '호랑이가 맹렬하게 할퀴듯이 아픈 병'이라는 의미가 붙었다.[2] 꿈보다 해몽이랄까. 20세기 이후, 일제강점기의 신문이나 공문서에는 이를 더 줄여서 호역(虎疫)이라고 기재한 경우도 많은데, 이때 발행된 신문을 읽어보면 전국 곳곳에서 일년에 몇 번씩 호역이 발생해서 지역이 일시 폐쇄되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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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탈수 등 사망률을 높이는 원인은 콜레라의 외독소인 Cholera Toxin(CT 혹은 CTX)이다.[3] 즉 콜레라균으로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섭취하여 콜레라균이 소장에 도달하면, 콜레라균이 소장표피세포에 붙어 분비한 외독소인 CTX가 세포막에 붙은 다음 소포체를 통해 세포 내로 들어가 세포질에 풀리면서 활성화된다.
활성화된 CTX은 ADP-ribosylation 반응을 촉진하게 된다. ADP-ribosylation은 ADP-ribose를 NAD로부터 trimeric G-protein의 알파사슬로 옮겨 adenylate cyclase의 작용을 촉진하고, 이는 cAMP(cyclic AMP)의 세포 내 농도를 급상승시키게 된다. '''즉 상피세포의 전해질과 수분 흡수 기작의 역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원래대로라면 cAMP가 ATP로 바뀌어야 되는데, 이게 막힌다. 이로 인하여 소장 내부로의 능동수송도 막히게 된다.
이로 인하여 나트륨 이온과 물이 장내로 계속적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결국 이로 인하여 설사가 계속 일어나고, 이게 계속되면 전해질 부족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 균에 감염된 환자의 특징은 대부분 열이나 오한 등의 감기 증세 없이 설사만 주룩주룩 하는 것으로, 죽는 이유는 설사로 인한 탈수 증세가 심해져서이다.
콜레라에 걸렸을 때의 설사는 갈색이나 황색 또는 먹은 내용물의 색깔이 아니라, 밝은 황색이거나 흰 쌀뜨물 같은 설사가 나온다. 때문에 설사가 지속되는 경우 배변상태를 잘 확인해야 한다.
콜레라가 일반적인 설사와 다르게 정말 무서운 이유는, 간단한 수분흡수장애 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설사라면 콜레라의 경우 균이 내뿜는 독소(cholera toxin)가 장벽 세포의 단백질을 마비시켜 내부의 전해질(electrolyte)들을 있는 대로 없는 대로 죄다 장내에 쏟아 붓기 때문이다. 결국 세포는 전해질 부족으로 죽어가고, 장내의 전해질 농도로 인한 삼투압 현상으로 몸의 수분이 계속 빠져나가게 된다. 환자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변기에 앉아있을 힘조차 없기에, 구멍 뚫린 침대 위에 누워서 계속 온몸의 물을 쏟아내는 상황이 된다.[4] 이 때문에 물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 급히 수분보충을 해주지 않는다면 '''고작 몇 시간만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 위에서 설명한 전해질 불균형 때문에 염도가 전혀 없는 순수한 물은 거의 흡수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게 치명적인 결과가 불과 수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이유는, 우리 몸에서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기 위한 작용 중에 가장 '''서투른''' 작용이 첫째로 온도 조절이고 둘째가 '''염도 조절'''이기 때문이다. 몸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수분을 잃어가게 되면 피의 농도가 진해지고, 그 와중에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죽어간다. 비슷한 연유에서 설사 증세가 있거나 땀을 많이 흘리면 수분과 전해질 보충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종 이온 음료의 효과가 바로 수분과 전해질 보충 두 가지를 도와주는 것.
그래서 보통 정맥에 관을 꽂아 공급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제3세계와 같이 그런 기구들마저 부족한 경우를 위해 WHO에서는 입으로 전해질과 물을 공급하는 수액을 개발해서 사용한다. UNICEF 등의 구호기관에서 나온 안내책자 등을 보면 설사증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한 '''소금'''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경구수액 요법에 사용되는 전해질이다. 수액요법이 발달한 덕분에 콜레라 사망율은 어마어마하게 낮아졌다. 경구수액 요법은 그냥 쉽게 말하면 끊임없이 설사를 하는 환자에게 전해질이 체액의 농도와 동일하여 다량으로 마셔도 문제가 없는 물을 계속 투입하는 것이다. 이 쉬운 방법을 과거에는 잘 몰랐고, 콜레라가 발병한 지역에서는 이미 오염되지 않은 물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치료법을 알았다고 가정할지라도 시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대에는 수처리기법이 발달하면서 근현대적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나라에서는 어렵지 않게 이 요법을 시행하여 콜레라 환자를 얼마든지 살릴 수 있게 되었다. 경구수액 요법에 대해서는 항목 참고.
구강수액 자체가 콜레라를 치료하는 건 아니나, 콜레라의 사망원인인 탈수증상으로 빠져나가는 수분만큼 수분과 전해질을 공급해서 죽음을 막는다는 어이없이 간단한 원리. 이런 식으로 '병의 원인을 찾아 없애기 곤란한 상황에서, 겉으로 나타난 병의 증상에 대응하여 처치를 하는' 치료법을 대증요법(對症療法)이라고 한다. 이렇게 싸고 간단한 치료방법이 나오기 전에는 콜레라는 사망률 40-70%에 한번 창궐하면 한 지역에서 수천 수만 명이 죽어나가던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실제로 19세기에는 인도, 러시아, 유럽, 영국, 북아메리카와 멕시코, 동아시아로 싸그리 전파되어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했으며, 네이버 등에서 제공되는 옛날 신문기사 읽기를 통하여 1930~40년대까지의 한국 신문이나 공문서를 읽어보면 서울, 평양, 함흥, 부산 등 인구 밀집지역에서 몇 년마다 한 번씩 콜레라가 발병하여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기사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근현대적 위생관념이나 상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매우 흔하게 발생하여, 한번 창궐했다 하면 동일 수계의 생활용수를 이용하던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무서운 질병이었다. 그러나 경구수액요법이 개발된 이후 콜레라로 인한 사망률은 1/14로 줄어들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상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저개발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는 후진국형 질병이 되었다.
사실 이 콜레라는 탄저균, 결핵균과 함께 세균이라는 존재를 인류가 처음으로 각인하는 것에 공헌한 질병으로 1883년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가 인도의 캘커타에서 비브리오균이 콜레라의 원인균이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 독일의 과학자 막스 폰 페텐코퍼(1818~1901)는 코흐와 논쟁을 했었다. 페텐코퍼는 자신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1892년 10월 콜레라 환자의 설사에서 찾아낸 세균들을 한데 모아 먹기도 했다. 그것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증명하고자 마셨다. 당연히 그 후 복통을 호소하며 입원했지만... 그런데 페텐코퍼는 약간의 설사증만 보였을 뿐 4일 후에 퇴원하였을 정도로 멀쩡했고,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신이 난 그는 세균과 콜레라는 아무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돌아다녔다. 당시 페텐코퍼가 실험을 조작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멀쩡했던 이유에 대해선 몇 가지 추측이 있는데 이 중에는 페텐코퍼의 위장이 콜레라 원인균을 분해할 정도로 튼튼해서 감염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사실 위장이 튼튼하다기보다는 면역체계가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세균이 일으키는 질병은 콜레라 말고도 탄저나 페스트 등 다양하고 여러 종류의 병원균이 있다. 후술하다시피 페텐코퍼는 죽을 때까지 세균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부정했는데 이미 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세균 감염설을 끝가지 틀렸다고 주장하는 오기를 부렸을 정도면 콜레라균의 사례처럼 발진티푸스균이나 탄저균이나 페스트균 등의 병원균을 자신에게 주입하는, 스스로를 모르모트로 쓰는 생체실험을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니까 독성이 강한 치명적인 병원균에 직접 감염되고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세균 감염설을 부정할 수 밖에 없던 것.
그럼 페텐코퍼가 무능한 돌팔이냐면 절대 아니고 오히려 이 사람은 집과 통풍, 대기와 의복 등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현대 환경 위생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유명한 의사이다. 영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훈장과 금메달을 받으며 명의로 대우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세균이 아니라 더러운 물이 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해왔기에 반대해왔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세균 감염이 정설로 받아들이면서 페텐코퍼는 무척 실망했고 우울증에 시달려 죽을 때까지 세균 감염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콜레라는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되는 게 맞기 때문에 페텐코퍼의 생각도 반은 맞았다. 단지 오염된 물에 사는 세균이 병을 일으킬 뿐.
여기서 끝났으면 씁쓸했을 법한 이야기일듯 하지만, 사실 페텐코퍼는 제자인 루돌프 에메리히(1856~1914)를 길동무 삼아서 콜레라균을 마시게 만들었다. 위장이 튼튼해서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은 페텐코퍼에 비하여, 에메리히는 격렬한 중증에 걸려버려서 죽을 뻔했을 정도로 위독한 상태까지 가버렸다. 에메리히는 퇴원 이후, 세균 감염설을 끝까지 믿지 않으며 명예가 더럽혀진 스승을 위하여, 콜레라 감염 경로를 연구하고 발표한 논문으로 학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영국의 존 스노우라는 의사는 콜레라 때문에 고통받던 런던 소호에서 조사를 한 결과,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 바로 옆의 정화조가 부식되어 콜레라균이 포함된 소량의 똥물이 펌프로 유입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고[5] 지하수 펌프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았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오물 처리 시설은 그야말로 개판 그 자체라서, 그 당시 사람들은 건물 지하실이나 공용 마당에 오물을 퍼다 버리곤 했고, 하수 처리 시설 또한 없다시피 한 상태라 그 오물들은 전부 흙 속으로 스며들거나 그대로 고인 채 방치되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동네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가서 물을 길어 마시면서 콜레라에서 해방된 적이 있다. 지금도 이 동네에는 존 스노우를 기리기 위해 그때의 지하수 펌프가 그대로 남아있다.
전염병에 대한 근대적 의미의 국제협력을 처음으로 이끌어낸 질병이기도 하다. 19세기 콜레라 범유행을 계기로 1851년 프랑스 주도로 20개국이 모여 '국제위생회의'를 열었고, 이후에도 두 차례의 회의를 거쳐 1907년 프랑스 파리에 '국제공공위생사무소'(OIHP)[6] 가 발족했는데, 이 기구는 다름아닌 세계보건기구의 전신이다.
차이코프스키의 공개적인 사인이기도 하나, 실제로는 음독자살(강요) 혹은 독살설이 유력하다.
헤겔의 사인도 콜레라다.
파라과이 전쟁 당시에도 브라질 제국군, 아르헨티나군, 우루과이군을 가장 고생시킨 주역 중 하나다. 물론 파라과이군도 예외는 아니었고.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대통령 영부인인 엘리사 린치 여사의 막내아들 미구엘 마샬이 출생 후 며칠만에 요절#s-1한 원인이 콜레라였다.
대한민국의 경우만 해도 1960-70년대에는 연례행사처럼 콜레라가 발생했고 1990년대까지도 여름에 물난리가 나면 콜레라와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돌곤 했다. 참고로, 마지막으로 콜레라가 돌았던 2001년 콜레라 사태 당시에는 8월 30일 첫 감염자 발견 이래 9월 17일까지 132명이 감염되었다.
해외에서 감염된 뒤 입국해서 걸리는 경우는 제외하고, 이때를 기점으로 콜레라 국내 발병이 사라졌었다. 하지만, 2016년에 15년 만에 국내 감염으로 발병하였다. 이후 2017년~ 2019년의 콜레라 발병자들은 모두 해외에서 감염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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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이라면 얄짤없는 모야시몬에선 콜레라균 역시 모에화했다. Vibrio cholerae를 모에화.
경구수액법이 아주 간단한 치료법임에도 근래에 와서야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타임슬립물에도 쓰이는데, 타임슬립 닥터 JIN 및 드라마 닥터 진에서도 이 병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주인공은 이 병 때문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소금과 설탕을 섞은 수액을 만들어 공급해준다. 닥터 진에서는 조청을 사용하는데, 한국에서 설탕이 제대로 보급된 건 구한말~일제초기였으니 나름 고증에 충실한 현지화. 여담으로 일본의 경우는 류큐와 시코쿠 일부 지역을 통해 설탕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 히무라 켄신의 부모님 역시 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막부 말기 서양 배들이 드나들면서 에도 등 일본 전역에서는 콜레라가 창궐하여 수십만 명이 죽었다. 더우기 막부가 기울면서 행정력이 붕괴되던 시기라, 구호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검정 고무신의 주인공 기영이도 이 병 때문에 죽을 뻔했다.
이세계 전생 소동기에서도 나온다. 주인공 발드가 초기 감염자 1명이 발견된 상황에서 방역을 시작한 덕에 마우리시아는 감염을 막을 수 있었지만 감염원이었던 산프안 왕국은 왕족까지 포함해 천 명 단위의 피해를 입으면서 나라가 개판이 되었다.
에일리언 3 시점에서 콜레라는 이미 200년 전에 사멸된 것으로 나온다.
푸른거탑 에피소드 37 계급이 깡패다편에서 김재우(코미디언)가 돼지 껍데기에 있는 콜라겐을 콜레라라고 말했었다. https://youtu.be/b5hKGDuvbKc
다만 실제로는 괴질은 콜레라 자체가 아니라, 콜레라를 포함한 각종 전염병 전반을 총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콜레라 독소는 생물 내부의 전해질이 배출되도록 하는 특성 때문에 특정한 생리학 실험 등에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당연히 특별관리대상제제.
혈액형 중에서 O형이 콜레라에 가장 취약하고 AB형이 가장 내성이 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유행하면서 '코로나'와 '콜레라'의 발음이나 어감이 유사하여 특히 영어에 익숙하지 못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두 질병의 이름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있다. 새해인사서 때 아닌 '콜레라' 걱정?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크게 유행시킨 신천지의 이만희 또한 기자회견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콜레라'라고 잘못 언급하였다.
1946년에 일어난 대구 10.1 사건의 원인이기도 하다.
1. 개요
콜레라균(''Vibrio cholerae'')이 일으키는 2급 법정 감염병. 병균에 오염된 물이나 음식, 환자의 배설물 등으로 전파된다. 잠복기간은 1~5일간이다.
원래는 갠지스 강 유역의 풍토병이었으나, 1817년 유행하면서 전 세계로 퍼졌다.[1] 이후 전 세계적으로 6차례 크게 창궐하면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
'콜레라'는 히브리어 구어로 ‘인간쓰레기’라는 뜻이라고 한다. 과거 한국에서는 호열자(虎烈刺)로 불렸다. 일본어로 虎烈剌(코레라)라고 음차한 것을 그대로 들여온 것이라 '호열랄'이라고 읽어야 하는데 랄(剌)자를 모양이 비슷한 자(刺)로 잘못 읽은 것에 '호랑이가 맹렬하게 할퀴듯이 아픈 병'이라는 의미가 붙었다.[2] 꿈보다 해몽이랄까. 20세기 이후, 일제강점기의 신문이나 공문서에는 이를 더 줄여서 호역(虎疫)이라고 기재한 경우도 많은데, 이때 발행된 신문을 읽어보면 전국 곳곳에서 일년에 몇 번씩 호역이 발생해서 지역이 일시 폐쇄되었다는 기사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질병이었다.
2. 발병 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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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탈수 등 사망률을 높이는 원인은 콜레라의 외독소인 Cholera Toxin(CT 혹은 CTX)이다.[3] 즉 콜레라균으로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섭취하여 콜레라균이 소장에 도달하면, 콜레라균이 소장표피세포에 붙어 분비한 외독소인 CTX가 세포막에 붙은 다음 소포체를 통해 세포 내로 들어가 세포질에 풀리면서 활성화된다.
활성화된 CTX은 ADP-ribosylation 반응을 촉진하게 된다. ADP-ribosylation은 ADP-ribose를 NAD로부터 trimeric G-protein의 알파사슬로 옮겨 adenylate cyclase의 작용을 촉진하고, 이는 cAMP(cyclic AMP)의 세포 내 농도를 급상승시키게 된다. '''즉 상피세포의 전해질과 수분 흡수 기작의 역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원래대로라면 cAMP가 ATP로 바뀌어야 되는데, 이게 막힌다. 이로 인하여 소장 내부로의 능동수송도 막히게 된다.
이로 인하여 나트륨 이온과 물이 장내로 계속적으로 빠져나가게 한다. 결국 이로 인하여 설사가 계속 일어나고, 이게 계속되면 전해질 부족으로 사망하게 된다.
3. 증상 및 치료
이 균에 감염된 환자의 특징은 대부분 열이나 오한 등의 감기 증세 없이 설사만 주룩주룩 하는 것으로, 죽는 이유는 설사로 인한 탈수 증세가 심해져서이다.
콜레라에 걸렸을 때의 설사는 갈색이나 황색 또는 먹은 내용물의 색깔이 아니라, 밝은 황색이거나 흰 쌀뜨물 같은 설사가 나온다. 때문에 설사가 지속되는 경우 배변상태를 잘 확인해야 한다.
콜레라가 일반적인 설사와 다르게 정말 무서운 이유는, 간단한 수분흡수장애 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설사라면 콜레라의 경우 균이 내뿜는 독소(cholera toxin)가 장벽 세포의 단백질을 마비시켜 내부의 전해질(electrolyte)들을 있는 대로 없는 대로 죄다 장내에 쏟아 붓기 때문이다. 결국 세포는 전해질 부족으로 죽어가고, 장내의 전해질 농도로 인한 삼투압 현상으로 몸의 수분이 계속 빠져나가게 된다. 환자들은 화장실에 가거나 변기에 앉아있을 힘조차 없기에, 구멍 뚫린 침대 위에 누워서 계속 온몸의 물을 쏟아내는 상황이 된다.[4] 이 때문에 물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라, 급히 수분보충을 해주지 않는다면 '''고작 몇 시간만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 위에서 설명한 전해질 불균형 때문에 염도가 전혀 없는 순수한 물은 거의 흡수조차 되지 않는다.
이렇게 치명적인 결과가 불과 수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이유는, 우리 몸에서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기 위한 작용 중에 가장 '''서투른''' 작용이 첫째로 온도 조절이고 둘째가 '''염도 조절'''이기 때문이다. 몸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수분을 잃어가게 되면 피의 농도가 진해지고, 그 와중에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한 나머지 죽어간다. 비슷한 연유에서 설사 증세가 있거나 땀을 많이 흘리면 수분과 전해질 보충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각종 이온 음료의 효과가 바로 수분과 전해질 보충 두 가지를 도와주는 것.
그래서 보통 정맥에 관을 꽂아 공급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제3세계와 같이 그런 기구들마저 부족한 경우를 위해 WHO에서는 입으로 전해질과 물을 공급하는 수액을 개발해서 사용한다. UNICEF 등의 구호기관에서 나온 안내책자 등을 보면 설사증으로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기 위한 '''소금'''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바로 경구수액 요법에 사용되는 전해질이다. 수액요법이 발달한 덕분에 콜레라 사망율은 어마어마하게 낮아졌다. 경구수액 요법은 그냥 쉽게 말하면 끊임없이 설사를 하는 환자에게 전해질이 체액의 농도와 동일하여 다량으로 마셔도 문제가 없는 물을 계속 투입하는 것이다. 이 쉬운 방법을 과거에는 잘 몰랐고, 콜레라가 발병한 지역에서는 이미 오염되지 않은 물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치료법을 알았다고 가정할지라도 시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대에는 수처리기법이 발달하면서 근현대적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나라에서는 어렵지 않게 이 요법을 시행하여 콜레라 환자를 얼마든지 살릴 수 있게 되었다. 경구수액 요법에 대해서는 항목 참고.
구강수액 자체가 콜레라를 치료하는 건 아니나, 콜레라의 사망원인인 탈수증상으로 빠져나가는 수분만큼 수분과 전해질을 공급해서 죽음을 막는다는 어이없이 간단한 원리. 이런 식으로 '병의 원인을 찾아 없애기 곤란한 상황에서, 겉으로 나타난 병의 증상에 대응하여 처치를 하는' 치료법을 대증요법(對症療法)이라고 한다. 이렇게 싸고 간단한 치료방법이 나오기 전에는 콜레라는 사망률 40-70%에 한번 창궐하면 한 지역에서 수천 수만 명이 죽어나가던 무서운 전염병이었다. 실제로 19세기에는 인도, 러시아, 유럽, 영국, 북아메리카와 멕시코, 동아시아로 싸그리 전파되어 몇 년간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했으며, 네이버 등에서 제공되는 옛날 신문기사 읽기를 통하여 1930~40년대까지의 한국 신문이나 공문서를 읽어보면 서울, 평양, 함흥, 부산 등 인구 밀집지역에서 몇 년마다 한 번씩 콜레라가 발병하여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기사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근현대적 위생관념이나 상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지기 전에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곳곳에서 매우 흔하게 발생하여, 한번 창궐했다 하면 동일 수계의 생활용수를 이용하던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들던 무서운 질병이었다. 그러나 경구수액요법이 개발된 이후 콜레라로 인한 사망률은 1/14로 줄어들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상하수도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저개발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찾아볼 수조차 없는 후진국형 질병이 되었다.
4. 여러 가지 일화들
사실 이 콜레라는 탄저균, 결핵균과 함께 세균이라는 존재를 인류가 처음으로 각인하는 것에 공헌한 질병으로 1883년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가 인도의 캘커타에서 비브리오균이 콜레라의 원인균이라는 것을 증명하면서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중 독일의 과학자 막스 폰 페텐코퍼(1818~1901)는 코흐와 논쟁을 했었다. 페텐코퍼는 자신이 맞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1892년 10월 콜레라 환자의 설사에서 찾아낸 세균들을 한데 모아 먹기도 했다. 그것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증명하고자 마셨다. 당연히 그 후 복통을 호소하며 입원했지만... 그런데 페텐코퍼는 약간의 설사증만 보였을 뿐 4일 후에 퇴원하였을 정도로 멀쩡했고,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 같아 신이 난 그는 세균과 콜레라는 아무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돌아다녔다. 당시 페텐코퍼가 실험을 조작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멀쩡했던 이유에 대해선 몇 가지 추측이 있는데 이 중에는 페텐코퍼의 위장이 콜레라 원인균을 분해할 정도로 튼튼해서 감염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사실 위장이 튼튼하다기보다는 면역체계가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세균이 일으키는 질병은 콜레라 말고도 탄저나 페스트 등 다양하고 여러 종류의 병원균이 있다. 후술하다시피 페텐코퍼는 죽을 때까지 세균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부정했는데 이미 학계에서 정식으로 인정한 세균 감염설을 끝가지 틀렸다고 주장하는 오기를 부렸을 정도면 콜레라균의 사례처럼 발진티푸스균이나 탄저균이나 페스트균 등의 병원균을 자신에게 주입하는, 스스로를 모르모트로 쓰는 생체실험을 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니까 독성이 강한 치명적인 병원균에 직접 감염되고도 아무렇지도 않으니 세균 감염설을 부정할 수 밖에 없던 것.
그럼 페텐코퍼가 무능한 돌팔이냐면 절대 아니고 오히려 이 사람은 집과 통풍, 대기와 의복 등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현대 환경 위생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유명한 의사이다. 영국,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훈장과 금메달을 받으며 명의로 대우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세균이 아니라 더러운 물이 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해왔기에 반대해왔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세균 감염이 정설로 받아들이면서 페텐코퍼는 무척 실망했고 우울증에 시달려 죽을 때까지 세균 감염설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콜레라는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되는 게 맞기 때문에 페텐코퍼의 생각도 반은 맞았다. 단지 오염된 물에 사는 세균이 병을 일으킬 뿐.
여기서 끝났으면 씁쓸했을 법한 이야기일듯 하지만, 사실 페텐코퍼는 제자인 루돌프 에메리히(1856~1914)를 길동무 삼아서 콜레라균을 마시게 만들었다. 위장이 튼튼해서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은 페텐코퍼에 비하여, 에메리히는 격렬한 중증에 걸려버려서 죽을 뻔했을 정도로 위독한 상태까지 가버렸다. 에메리히는 퇴원 이후, 세균 감염설을 끝까지 믿지 않으며 명예가 더럽혀진 스승을 위하여, 콜레라 감염 경로를 연구하고 발표한 논문으로 학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영국의 존 스노우라는 의사는 콜레라 때문에 고통받던 런던 소호에서 조사를 한 결과,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 바로 옆의 정화조가 부식되어 콜레라균이 포함된 소량의 똥물이 펌프로 유입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고[5] 지하수 펌프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았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오물 처리 시설은 그야말로 개판 그 자체라서, 그 당시 사람들은 건물 지하실이나 공용 마당에 오물을 퍼다 버리곤 했고, 하수 처리 시설 또한 없다시피 한 상태라 그 오물들은 전부 흙 속으로 스며들거나 그대로 고인 채 방치되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동네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가서 물을 길어 마시면서 콜레라에서 해방된 적이 있다. 지금도 이 동네에는 존 스노우를 기리기 위해 그때의 지하수 펌프가 그대로 남아있다.
전염병에 대한 근대적 의미의 국제협력을 처음으로 이끌어낸 질병이기도 하다. 19세기 콜레라 범유행을 계기로 1851년 프랑스 주도로 20개국이 모여 '국제위생회의'를 열었고, 이후에도 두 차례의 회의를 거쳐 1907년 프랑스 파리에 '국제공공위생사무소'(OIHP)[6] 가 발족했는데, 이 기구는 다름아닌 세계보건기구의 전신이다.
차이코프스키의 공개적인 사인이기도 하나, 실제로는 음독자살(강요) 혹은 독살설이 유력하다.
헤겔의 사인도 콜레라다.
파라과이 전쟁 당시에도 브라질 제국군, 아르헨티나군, 우루과이군을 가장 고생시킨 주역 중 하나다. 물론 파라과이군도 예외는 아니었고.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 대통령 영부인인 엘리사 린치 여사의 막내아들 미구엘 마샬이 출생 후 며칠만에 요절#s-1한 원인이 콜레라였다.
5.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의 경우만 해도 1960-70년대에는 연례행사처럼 콜레라가 발생했고 1990년대까지도 여름에 물난리가 나면 콜레라와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돌곤 했다. 참고로, 마지막으로 콜레라가 돌았던 2001년 콜레라 사태 당시에는 8월 30일 첫 감염자 발견 이래 9월 17일까지 132명이 감염되었다.
해외에서 감염된 뒤 입국해서 걸리는 경우는 제외하고, 이때를 기점으로 콜레라 국내 발병이 사라졌었다. 하지만, 2016년에 15년 만에 국내 감염으로 발병하였다. 이후 2017년~ 2019년의 콜레라 발병자들은 모두 해외에서 감염된 사례이다.
6. 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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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이라면 얄짤없는 모야시몬에선 콜레라균 역시 모에화했다. Vibrio cholerae를 모에화.
경구수액법이 아주 간단한 치료법임에도 근래에 와서야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타임슬립물에도 쓰이는데, 타임슬립 닥터 JIN 및 드라마 닥터 진에서도 이 병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다. 주인공은 이 병 때문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소금과 설탕을 섞은 수액을 만들어 공급해준다. 닥터 진에서는 조청을 사용하는데, 한국에서 설탕이 제대로 보급된 건 구한말~일제초기였으니 나름 고증에 충실한 현지화. 여담으로 일본의 경우는 류큐와 시코쿠 일부 지역을 통해 설탕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바람의 검심의 주인공 히무라 켄신의 부모님 역시 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막부 말기 서양 배들이 드나들면서 에도 등 일본 전역에서는 콜레라가 창궐하여 수십만 명이 죽었다. 더우기 막부가 기울면서 행정력이 붕괴되던 시기라, 구호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검정 고무신의 주인공 기영이도 이 병 때문에 죽을 뻔했다.
이세계 전생 소동기에서도 나온다. 주인공 발드가 초기 감염자 1명이 발견된 상황에서 방역을 시작한 덕에 마우리시아는 감염을 막을 수 있었지만 감염원이었던 산프안 왕국은 왕족까지 포함해 천 명 단위의 피해를 입으면서 나라가 개판이 되었다.
에일리언 3 시점에서 콜레라는 이미 200년 전에 사멸된 것으로 나온다.
푸른거탑 에피소드 37 계급이 깡패다편에서 김재우(코미디언)가 돼지 껍데기에 있는 콜라겐을 콜레라라고 말했었다. https://youtu.be/b5hKGDuvbKc
6.1. 영화 개벽
1821년부터 돌기 시작한 전염병 콜레라는 20차례나 가까이 19세기 조선을 괴롭혔다. 사람들은 이를 요괴의 장난이라 하여 괴질(怪疾)이라고 불렀다.
- 임권택 감독 영화 개벽 中에서
영화 개벽에서는 요괴의 장난이라하여 괴질(傀質)이라고 불리며 등장하였다. 극중에 나오는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은 '''괴질은 요괴의 장난은 결코 아니다'''라며 요괴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도 하였다.괴질은 결코 요괴의 장난이 아닙니다. 괴질도 천지음양의 조화일진데 괴질도 한울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울님을 한울님으로 막아야할 것입니다. 섣부른 미신에들 빠지지들 마십시오. 물은 반드시 끓여먹을 것이며 가래침과 대변은 반드시 파묻으시고 가싯물을 함부로 버리지 말 것이며 찬밥과 새밥을 섞지 말고 흘린 밥일랑 주워먹지 마시고 누구에게든지 먹던 밥이나 헌 반찬을 대접하지 마시고 밥을 지을 때 지성으로 씻으시오. 그리고 몸을 자주 닦으시오.
-영화 개벽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덕화)
다만 실제로는 괴질은 콜레라 자체가 아니라, 콜레라를 포함한 각종 전염병 전반을 총칭하는 의미로 쓰였다.
7. 기타
콜레라 독소는 생물 내부의 전해질이 배출되도록 하는 특성 때문에 특정한 생리학 실험 등에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당연히 특별관리대상제제.
혈액형 중에서 O형이 콜레라에 가장 취약하고 AB형이 가장 내성이 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 유행하면서 '코로나'와 '콜레라'의 발음이나 어감이 유사하여 특히 영어에 익숙하지 못한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두 질병의 이름을 헷갈려하는 경우가 있다. 새해인사서 때 아닌 '콜레라' 걱정? 심지어 대한민국에서 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크게 유행시킨 신천지의 이만희 또한 기자회견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콜레라'라고 잘못 언급하였다.
1946년에 일어난 대구 10.1 사건의 원인이기도 하다.
8. 참조
9. 관련 문서
[1] # 가장 오래된 콜레라에 대한 기록은 1563년 인도에서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다만 병 그 자체는 이미 부처가 수행하고 다니던 시절에 있었다고 한다.[2] 참고로 현대 중국어에서는 콜레라를 가리킬 때 음역어인 虎列拉, 虎列剌등의 이름도 쓰지만 보통은 霍乱(huòluàn)라는 명칭을 쓴다.[3] 두 개의 서브유닛이 결합한 A+B 독소에 속한다.[4] 이는 영화 페인티드 베일에서 잘 묘사된다.[5] 소호 거리의 콜레라 발병 환자들은 모두 같은 펌프에서 나온 물을 마시고 있었지만, 인근의 맥주공장 노동자들은 한 명도 콜레라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맥주공장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물을 마시거나 혹은 맥주를 공짜로 마셨기 때문이라고.[6] 프랑스어: Office International d'Hygiène Publiq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