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르크 노비츠키

 

'''디르크 노비츠키의 주요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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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2011'''

'''댈러스 매버릭스 영구결번'''
No. 41

'''2002년 FIBA 농구 월드컵 MVP'''
데얀 보디로가

'''디르크 노비츠키'''

파우 가솔
'''2007년 NBA 정규시즌 MVP'''
스티브 내쉬

'''디르크 노비츠키'''

코비 브라이언트
'''2011년 NBA 파이널 MVP'''
코비 브라이언트

'''디르크 노비츠키'''

르브론 제임스
'''2017년 NBA 올해의 팀메이트상'''
빈스 카터

'''디르크 노비츠키'''

자말 크로포드

'''댈러스 매버릭스 No. 41'''
'''디르크 베르너 노비츠키
(Dirk Werner Nowitzki)'''[1]

'''생년월일'''
1978년 6월 19일 (46세)
'''신장'''
213cm (7' 0")[2]
'''체중'''
111kg (245 lbs)
'''국적'''
[image] 독일
'''출신지'''
바이에른뷔르츠부르크
'''포지션'''
'''파워 포워드'''
'''드래프트'''
'''1998년 NBA 드래프트 1라운드 9순위
밀워키 벅스 지명''' [3]
'''소속팀'''
DJK 뷔르츠부르크[4] (1994-1998)
[image]'''댈러스 매버릭스 (1998-2019)'''
'''국가대표'''
독일 U-22 (1998)
'''독일 (1999-2016)'''
'''등번호'''
'''41번'''
'''수상내역'''
'''NBA 챔피언 (2011)'''
'''NBA 파이널 MVP (2011)'''
'''NBA 정규시즌 MVP (2007)''' [5]
'''올-NBA 퍼스트 팀 4회 (2005-2007, 2009)'''
NBA 올스타 14회 (2002-2012, 2014-2015, 2019)
올-NBA 세컨드 팀 5회 (2002-2003, 2008, 2010-2011)
올-NBA 서드 팀 3회 (2001, 2004, 2012)
NBA 올해의 팀메이트상 (2017)
NBA 3점슛 콘테스트 챔피언 (2006)
FIBA 올해의 유럽선수상 2회 (2005,2011)
'''FIBA 농구 월드컵 MVP (2002)'''
'''FIBA 유로바스켓 MVP (2005)'''
1. 개요
2. 생애
3. 선수 시절
4. 지도자 경력?
5. 플레이스타일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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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OBIN HOOD '''

'''"ALL DREAMS ARE CRAZY. UNTIL THEY COME TRUE."'''

'''"모든 꿈은 미친 소리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그 꿈이 이뤄지기 전까지는."'''[6]

독일 출신의 전 NBA선수. '''댈러스 매버릭스 역대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NBA에서 역대 한손에 꼽히는 파워포워드''', 그리고 이견의 여지가 없는 '''역대 최고의 비미국인 선수'''이다. 또한 NBA 역사상 처음으로 한 팀에서 21시즌을 보낸 선수이기도 하다.
06-07 시즌에는 유럽 국적의 선수들 중 최초로 시즌 MVP를 수상하였으며, 10-11 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서 서부의 강팀들을 모두 꺾으며 파이널에서 마이애미 히트의 빅3를 만나 4승 2패로 오래 기다려왔던 우승에 성공한 동시에 파이널 MVP를 손에 넣었다.
별명은 란츠크네히트. 국내언론에선 간간히 란츠크네히트를 독일 병정으로 옮겨서 적곤 하며, 국내 NBA 팬들은 '사기츠키', '노기꾼' 등으로 종종 부른다.[7]
무려 리핏을 달성한 후 쓰리핏에 도전하는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와 우승을 위해 빅3를 구성하였던 '''히트의 르브론 제임스'''를 같은 해에 모두 꺾고 우승한 선수이기도 하다. 지금도 2011년 NBA 파이널은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정의구현 시리즈라고 칭송받곤 한다.[8][9]
인성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은퇴식 당시 초대된 찰스 바클리, 래리 버드, 스카티 피펜, 독일 출신 레전드 데틀렘프 슈렘프 등의 찬사를 받고 어쩔줄 모르는 모습을 보였다. 버드, 피펜 등 앞선 전설들의 극찬에 눈물을 글썽이는 등 인간 노비츠키의 선하고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어 관중의 감동을 이끌어냈고, 슈렘프가 독일사람답게 독일식으로 짧게 하겠다며 독일어로 소감을 말하는 장면도 많은 감동을 이끌어낸 명 은퇴식이었다.

2. 생애


디르크 노비츠키는 독일 뷔르츠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헬가는 독일 국가대표 농구선수였고, 그의 아버지는 독일 최고의 핸드볼선수였던 베르너 노비츠키, 그의 누나인 실케는 육상선수 출신으로 농구선수[10]인 운동선수 집안. 노비츠키는 어렸을때 주로 테니스핸드볼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키가 부쩍 크기 시작하자 그는 농구로 종목을 바꾸게 된다.
스포츠 집안의 아들이라서 그런지 일찌감치 재능이 보였던 노비츠키는 지역농구팀이었던 DJK 뷔르츠부르크에 참여한 후 전직 독일 농구선수였던 홀거 게슈빈드너(Holger Geschwindner)[11]의 눈에 들게되고, 그는 노비츠키의 개인코치가 된다. 게슈빈드너는 노비츠키를 엄격하게 가르쳤고[12] 농구뿐만 아니라 노비츠키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만들기 위해서 악기를 연주하고, 문학책을 읽을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13] 몇 년 후 일취월장해가는 모습을 보고 감탄한 게슈빈드너는 노비츠키에게 이런 말을 하게 되는데....

'''"너는 지금 세계무대에서 최고를 상대로 뛰는 것을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독일의 슈퍼스타로 남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만일 네가 후자를 원한다면 우리는 곧 훈련을 멈출거다. 왜냐하면 아무도 너를 막지 못할테니까. 하지만 네가 전자를 원한다면 우리는 다시 매일 훈련해야 한다."'''

이틀간의 심사숙고끝에 노비츠키는 더 높은 곳을 향해 도전하기로 했고 DJK 성인팀에 16살의 나이로 입단을 결정했다.

3. 선수 시절


디르크 노비츠키/선수 경력 문서 참조.

4. 지도자 경력?


새로이 브루클린 넷츠의 감독이 된 절친 스티브 내쉬에게 코치직을 제의받았으나 고사하였다. 본인이 아직 현장에 복귀하기는 너무 이른것 같고 아직은 쉬고 싶다는 이유.
추후 댈러스 지역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위의 이유들 뿐만아니라 과연 자신이 댈러스를 벗어나 무언가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의문이었다고. 21년을 댈러스 매버릭스에 헌신한 만큼 다른 지역으로 떠날 생각이 들기가 쉽지 않은 모양. 마크 큐반도 언제나 댈러스 코칭스태프 자리에 합류할 수 있다고 누누이 말해왔으니..

5. 플레이스타일



'''다양한 공격기술과 180 클럽[14]의 슛터치를 가진 득점형 파워 포워드'''였다.
7피트의 장신 선수임에도 4번 포지션에서 뛰는데 일반적인 4번, 아니 프로 농구의 대부분의 4번과는 판이하게 다른 타입의 선수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전형적인 스트레치형 빅맨도 아니다. 노비츠키에 관해 플레이가 너무 외곽슛 위주라는 편견이 있는데 사실 그는 커리어 초기부터 전성기까지 슛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노련했던[15] 내외곽을 가리지 않는 득점머신이었다.[16] 팀의 상황에 따라 5번 센터 포지션을 맡은적도 있으며 7풋의 장신으로 스윙맨같은 플레이를 했던 그야말로 리쎌 웨폰.
일단, 노비츠키는 플레이 시작을 하이포스트에서 주로 한다. 4번 사이즈를 가진 공격형 파워 포워드나 스트레치 포워드도 이렇게 시작은 안한다. 외곽에서 공을 잡고 돌파를 시도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이포스트에서 스크린으로 시작하는 투맨 게임을 통해 패싱으로 빈 공간을 만들어내고 슛을 던진다. 거기다 자신이 직접 미드레인지에서 슈팅을 던지면서 마무리하는 타입이라 인사이드 리바운드에 들어가지 않는다. 결국 노비츠키의 타점 높은 슛을 막으려면 상대 4번도 같이 나와서 컨테스트를 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사실 미들레인지, 그 중에서도 롱2에 해당되는 구간에서의 점퍼는 농구의 기본 명제를 고려할 때 매우 비효율적인 공격이다. 지금도 골대 가까이에서 슛을 던지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며 멀리서 던지는 것은 성공률도 문제고 실패 시 리바운드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따라서 멀리서 던질 것이면 차라리 3점 라인 바깥에서 던진다면 3득점을 얻는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그 쪽이 더 효율적이다.[17][18] 그런데 노비츠키의 주요 득점루트는 3점 라인 살짝 안에서 장거리 미들슛이다. 농구에서 가장 기대치가 떨어지며 가장 금기시되는 슈팅이다. 그리고 '''노비츠키의 사기성은 여기서 발휘된다. 던지면 다 들어가니까.'''
MVP 시즌이었던 2006-07 시즌 골밑슛 시도 횟수가 260번, 3~10ft 내외의 짧은 야투 시도 횟수가 116번이었는데 비해 10~16ft 중거리슛 시도 횟수는 363번, 16ft~3점 라인 안쪽의 롱2는 504번이나 된다. 3점 시도 횟수도 192번으로 짧은 야투 시도 횟수보다 많은 수준. 야투 시도 차트만 보면 파워 포워드가 아니라 슈팅 가드의 그것이라고 봐도 될 정도.
마찬가지로 2006-07 시즌의 슈팅 성공률을 보면, 골밑슛의 성공률은 정확히 6할로 르브론 제임스처럼 7할 내외를 찍는 괴물은 물론이고 6할 중반에서 7할대를 찍었던 케빈 가넷, 팀 던컨에 비해 꽤나 처지는 수준이다. 짧은 야투 성공률은 .397로 파워 포워드의 그것으로는 낙제점인 수준. 그러나 중거리 성공률이 .493, 롱2 성공률이 .500, 3점슛 성공률이 .396으로 림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위협적인 슈팅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우승을 거둔 시즌인 2010-11 시즌 노비츠키가 기록한 야투성공률은 51.7%로 커리어 하이 기록인데, 12월 부상으로 9경기를 쉬기 전까지는 무려 54.9%였다. 단순한 인사이더가 아닌 중장거리 슛을 주 무기로 삼고있는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놀라운 기록. 아울러 노비츠키는 한 차례 엘리트 슈터들의 성지인 180 클럽에도 가입한 적이 있는 선수다.
ESPN Sport Science에서 분석한 내용을 보면 이게 왜 사기인지 이해가 갈 것이다. 야오밍의 키를 가진 선수가 데릭 로즈만큼 점프를 해도 블럭이 불가능한 슛을 어쩌란 말인가? 페이드 어웨이슛을 쏠 때 무릎으로 방어하는건 덤이다.[19][20][21]
가뜩이나 막기 힘든 높은 타점인데 페이더웨이까지 구사한다. 슛거리는 길지만 들어가봐야 2점이다. 그런데 계속 들어간다. 상대 팀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힐 수 밖에 없다. 어중간하게 마크맨이 컨테스트해도 다 씹고 들어간다. 사기츠키라는 별명은 이런 사기적인 슈팅 능력 때문에 생긴 것이다.[22] 게다가 저런 슛을 궁지에 몰린 중요한 순간, 역전이 걸린 상황에서도 곧잘 넣었으니 사기란 말이 나올 수밖에...
거기에 자유투까지 좋다. 물론 빅맨치고는 얻어내는 자유투의 수가 적은 편이지만, 90퍼센트를 넘긴 시즌도 수차례 있고 통산 성공률도 87프로에 달하니 이건 뭐 파울로 끊을 수도 없고...
노비츠키의 시그니쳐 기술인 '''ONE LEGGED FADEAWAY'''에 관한 얘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페이스업 혹은 포스트업을 치며 스텝을 밟다 다리 하나를 올리며 쏘는 페이더웨이슛이다. 국내에선 슛을 쏘는 폼이 어쩐지 학과 비슷하다하여 주로 다리웨이라고 부르는편. 기술적으로 기존의 페이더웨이슛과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이클 조던의 턴어라운드 페이더웨이는 선수 본인의 높은 체공력을 살린 것이고 노비츠키의 페이더웨이는 자신의 큰 신장을 십분 발휘한 것이다. 게다가 올린 다리로 공격시 방어까지 겸하니 막기가 여간 까다로울 수밖에... 사실상 알고도 못 막는 수준이다.[23] 그래서 그런지 노비츠키 본인은 이 기술을 두고 백인 버전의 스카이훅이라 말하기도.[24] 기술의 위력이 상당한 것을 떠나 배우기엔 그렇게 어렵진 않은 것인지 다른 선수들도 많이 써먹는 편. 대표적으로 가장 유명한 선수들이 코비 브라이언트와 그리고 케빈 듀란트다.[25]
[26]
[27]
[28]

솔직히 평소에는 노비츠키의 진가가 실감이 잘 안난다. 위에 적혀있는 것처럼 꽤나 비효율적인 슛을 쏘는데 3점도 아니고 2점이니까. 그의 이 사기적인 슈팅 능력이 뼈저리게 실감나는 때는 클러치 상황인데, 가공할 클러치 능력으로 명성이 높다. 워낙 4쿼터에 강한 선수기도 하고 유튜브에 역전샷을 넣은 장면으로만 만들어진 하이라이트들이 많을 정도.
노비츠키가 클러치 상황에서 강한 이유는 롱2가 비효율적인 슛임에도 꾸준히 사용되는 이유와 같다. 슛이 비효율적이지만 슈퍼스타가 되기 위해선 필수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롱2 위치는 농구코트에서 슈팅을 올라갈 수 있는 난이도가 가장 낮은 곳이다. 수비 집중도가 가장 낮은 곳은 3점 라인 밖이지만 여기는 슛을 쏘는 것 자체가 어렵고, 골밑은 슛난이도는 낮지만 수비 집중도가 높다. 물론 핸드 체킹룰 개정과 3점 능력의 전체적인 발전 이후 골밑돌파의 난이도가 예전보다 훨씬 하락해 돌파 후 득점과 3점슛에 대한 기대값이 상승, 롱2는 더욱 비효율적이 되어 주무기로 하는 선수들이 더욱 줄었다. 그러나 '''클러치 상황에서는 다르다.''' 막판 원샷 플레이까지 안 가더라도, 상대팀이 수비를 악착같이 하면 팀전술로 3점 기회를 만들기도, 평상시보다 파울을 짜게 부는 플레이오프 상황에선 골밑까지 가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개인의 능력으로 득점을 짜내줄 수 있는 확실한 에이스가 없는 팀이 팀 전력에 비해 플레이오프에서 약한 것이다. 그런데 확실한 득점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에선 수비밀도가 낮은 롱2가 중요한 옵션이 된다. 막판 원샷 플레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상황에선 오픈샷이나 골밑 돌파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슛이 견제받는 터프슛이다. 때문에 클러치 3점은 더욱 빈도수가 낮고 난이도가 높다. 게다가 팀 전술을 할 여유가 없이 에이스의 능력으로 단 2점을 급하게 짜내야 상황에서 롱2는 오히려 최고의 옵션이 된다. [29]
노비츠키는 213cm 라는 키에 비해 스피드도 좋은 편이고 드리블 능력 역시 훌륭하다. 이 때문에 슛을 페이크로 쓰고 나서 돌파로 득점을 올리기도 한다. 운동능력이 좋지 않다는 오해도 있지만, 실상은 당대의 선수들 중 동급 신장 대비 최고 수준의 스피드를 지닌 선수였다.
이 영상과 아래 영상에서 현재와는 사뭇 다른 리즈 시절 노비츠키의 운동능력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요즘은 좀처럼 볼 수 없는 탄력적인 덩크와 코스트 투 코스트를 하는 모습들이 단연 압권.

노비츠키의 4년차 2002 플레이오프로 케빈 가넷의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상대로 39점 17리바운드를 기록한, 말그대로 날라다닌 수준의 경기였다. 당시 시리즈 평균기록은 33.3득점 15.7리바운드 1.3블록 3.0스틸 야투율 52.6% 3점 '''72.7(!)'''(평균 2.6개) 자유투 88.9%. 참고로 이 시리즈에서 댈러스는 내리 3승을 따내며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하이스크린 완성도는 완벽에 가깝다[30][31]. 데뷔 초기에는 수비를 계속 지적당했지만,[32] 거듭된 노력 끝에 일대일 수비에서 구멍이 되는 일은 없어졌다.

6. 여담


  • 30득점 0턴오버 게임 횟수가 36회로 마이클 조던과 공동 1위다.
  • 독일 출신으로서 먼저 NBA에 진출했던 데틀레프 슈렘프[33]와 함께 NBA에서 성공한 독일인 농구선수로 평가된다. 독일 농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편. 거의 대표팀 소집을 거른 적이 없다. 심지어는 유럽농구에서 존재감이 미비한 마케도니아와 독일의 평가전때도 소집에 응했을 정도. 노예가 따로없다. 하지만 2010-11 시즌이 시작되기 전 오프시즌에는 대표팀 차출을 처음으로 거부했다. 독일 농구협회에서도 그의 결정을 이해하는 분위기. 이것이 국가대표 은퇴가 아니라고 밝힌 것으로 보아 향후에도 대표팀 소집에 응할 용의는 있는듯? 그리고 선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2016년 그는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 댈러스 구단은 홈구장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 바닥에 노비츠키의 실루엣을 담았는데 노비츠키의 전매특허인 ‘학다리 페이드어웨이 슛’을 올리고 있는 노비츠키의 실루엣이다. 양쪽 페인트존 부근에 하나씩 새겨질 예정이다. 또한 지난 시즌과 달리 센터 서클에 있는 말 모양 로고가 좀 더 커지고 그 아래 댈러스 도시를 형상화한 스카이라인이 새롭게 들어갔다. 
  • 2011년 독일 최고의 운동선수에 뽑혔다. 농구선수가 뽑힌 건 최초라고. 좀 늦은감이 있었다. 독일이 축구 최강국이기는 하나 한 때 2000년 초중반 독일 국대와 분데스리가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시기도 있었다.[34]
  • 사실 독일 농구 국가대표팀은 노비츠키 때문에 그나마 이만큼 먹고 산다. 노비츠키가 없으면 그야말로 시망. 이는 독일 국가대표팀 다른 선수들 기량이 노비츠키와 너무 차이가 나는데다 노비츠키 역시 국가대표 에이스라는 막중한 자리 때문에 많은 부담감을 느끼고 혼자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35] 아닌게 아니라 FIBA 농구 월드컵에서 노비츠키 활약이 압도적이었고 2002년 미국에서 열린 FIBA 농구 월드컵에선 그가 맹활약하며 독일은 역사상 최대 성적인 3위까지 기록했다! 노비츠키는 이 대회에서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차지했다. 또한 2005년에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서 개최되었던 유로바스켓 2005에서도 맹활약을 펼치며 독일은 역사상 최대 성적인 준우승까지 기록하였다! 그리고 노비츠키는 이 대회에서 득점왕과 MVP를 동시에 차지하였다. 그 외에 2001년 유로바스켓에서도 득점왕을 차지하며 독일을 4위까지 이끌고, 2006년 FIBA 농구 월드컵에서도 노비츠키가 득점왕까지 차지하면서 활약한 독일은 8강에 진출했다. 다만 2010년 대회는 부진하여 독일팀은 17위에 그쳤고 2014년 대회는 독일이 본선 탈락했다. 그 외에 유로바스켓 2007에서도 득점왕까지 차지하면서 독일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 플레이 스타일이 주로 슛을 위주로 한 플레이다 보니, 무시무시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화려한 농구를 구사하는 케빈 가넷이나 아마레 스타더마이어, 블레이크 그리핀에 비하면 좀 재미가 없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포스트업과 페이스업, 돌파를 장착하긴 했지만, 역시 재미보다는 공격의 다변화라고 보는게 맞을 듯.
  • NBA에서 통산 2만 득점을 돌파한 첫번째 유럽인 선수다. NBA에서 자신만의 족적을 잘 남기고 있는중. 그리고 3만 득점까지 달성하고 명예로운 은퇴을 맞이했다.
  • 2016년 ESPN에서 선정한 역대 파워 포워드 랭킹에서 팀 던컨칼 말론에 이어 3위에 랭크되었다.
  • 올해의 유럽 선수상을 7번 수상했고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인 가제타 델라 스포츠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유럽 농구선수상을 5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2005년 이탈리아 스포츠 잡지인 슈퍼바스켓이 선정하는 올해의 남자 유럽 선수상과 FIBA 유로 올해의 농구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 2011년 NBA 챔피언이 된 이후 주가가 급상승했다.[36] 팬들 사이에서는 플레이오프 및 결승전에서의 대활약으로 노비츠키를 재평가하는 분위기이며, 언론매체 여기저기서 찬양, ESPN에서 수여하는 "ESPY Best NBA Player" 부문에 이어 "ESPY Best Male Athlete"[37] 부문까지 수상함으로써 2011년을 명실상부한 노비츠키의 해로 만들었다.[38]
  • NBA 역사상 올스타전에 10번이나 출전하고 정규시즌 MVP와 파이널 MVP를 수상한 선수는 단 13명뿐인데 마이클 조던, 래리 버드, 매직 존슨등이 다른 주인공들이다. 유럽인으로는 노비츠키가 처음이라고.
  • 11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노비츠키는 11시즌 연속 정규시즌에서 1500득점 이상을 올렸다. 유럽 선수 중에서는 전무한 성과. NBA에서는 칼 말론 이후 처음인데 말론는 1986-87 시즌부터 1997-98 시즌까지 이 기록을 달성한 바 있다.
  • 2015년 기준 NBA 단일 구단에서 29000득점 이상을 올린 선수는 칼 말론, 마이클 조던, 코비 브라이언트 그리고 노비츠키인데 30000득점 이상으론 칼 말론, 코비 브라이언트, 노비츠키 셋 뿐이다.
  • 2015년 12월 22일 기준 코비, 던컨에 이어 오로지 한팀에서 세번째로 가장 오랫동안 뛴 선수이다. 원클럽맨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인 NBA에서 몇 안되는 진정한 프랜차이즈 스타라 볼 수 있다. 코비처럼 한 팀에서의 근속 20년도 무리없이 채우게 될듯.
  • 노비츠키는 2016년을 기준으로해서 1996년 이래 커리어 +/- 탑3에 속한다. 3위는 +6,658의 르브론이고 2위는 +6,725의 노비츠키인데 1위는 무려 +10000의 팀 던컨...
  • 역대 윈셰어 순위 8위에 올라있다.[39]
  • 非 미국인 선수 중 NBA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고 가장 많은 경기를 뛴 선수가 되었다.
  • 차갑고 무뚝뚝한 독일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인터넷을 잘 뒤져보면 예술급 표정의 그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사진.
[image]
(...)[40]
2016년 호세 바티스타 vs. 루그네드 오도어의 드잡이를 패러디한 사진을 오도어와 찍기도 했다. 이때 노비츠키는 호세 바티스타 역할을 맡았다고(...)

  • 농구에서는 사기꾼이지만 랩에는 젬병이다. 압권은 27초 부근...[41][42]
  • 샤킬 오닐의 유년기와 비슷하게도 어릴 적엔 큰 키로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스포츠 집안의 내력이어서 그런지 다른 종목에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굳이 농구를 선택한 것은 그냥 놀림을 덜 받기 위해서였다고...
  • 래리 버드는 노비츠키의 우승 시즌, 파이널이 끝나고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노비츠키에 관해 이렇게 언급한 바가 있다.

''' "우리는 공통점이 많다. 둘다 크고 외곽슛도 가능하다. 리바운드도 잘하며 경기에 헌신할 수 있다. 노비츠키를 고교 시절부터 봐왔는데 그때 난 사람들이 왜 나와 덕을 비교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가 내 이름과 함께 연관된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이후 버드는 노비츠키의 은퇴식에도 참석했는데 남다른 유머감각을 뽐내며 노비츠키의 커리어를 축하해주었다. 이때 "네 덕에 NBA 리그는 성장했어."라고 말하는 버드 앞에서 노비츠키가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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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룰 줄 아는 악기가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첼로. 상기했듯, 노비츠키의 은사인 게슈빈드너가 오케스트라 수업까지 받길 권유했기 때문.[43] 게다가 한 TV쇼에 나와선 기타 연주를 선보이기도했고, 취미로 색소폰을 분다고도 알려져 있다.
  • 2014년에 본인의 농구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더 퍼펙트샷이 개봉되기도 했다. 그의 훈련방식이나 성장과정이 궁금하다면 꽤 흥미롭게 다가올 작품.
  • 7풋 이상 빅맨의 3점슛 성공수 기록에서 압도적인 1위를 유지중이다. 2위하고의 차이는 꽤 큰편.[44] 2016년 4월 13일 기준 전체 통산 3점슛 누적 순위는 1700개로 전체 15위에 랭크되어있다. 가드와 전문 슈터가 아님에도 꽤나 상위권이다.
  • 역대 단일경기 팀내 최다득점 랭킹에서 6위에 랭크되어 있다. 1위부터 칼 말론, 압둘 자바, 마이클 조던, 코비, 르브론, 노비츠키.
  • 몇 안 되는 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평균 25득점 10리바를 유지중인 빅맨. 정규시즌보다 플레이오프에서 기록이 상승한다는 점은 평론가들이 매우 긍정적이게 평가하는 점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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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버릭스가 노비츠키의 이름을 딴 'Dirkburger'를 출시했다. 노비츠키는 칠면조 버거를 원했지만 프레즐 번에 루꼴라, 할라피뇨 비어 치즈를 곁들이고 베이컨 마멀레이드를 얹은 소고기 패티 버거로 완성되었는데 영상을 보면 노비츠키 본인이 직접 만들기도한다. 동료선수, 스탭들과 함께 직접 시식해보는 장면 가격은 12$. 3월 동안 아메리칸 에어라인 센터 구내 매점에서 판매했다고 한다. 올랜도 매직과의 경기에서 최고매상을 올렸다고.
  • 독일 사람 답게 축구도 좋아하며 독일이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크게 기뻐하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정작 볼은 잘 차지 못하는 듯 하다. 유쾌한 성격답게 가끔 볼을 찰 기회가 생기면 개그 퍼포먼스를 펼치고는 한다. 자선경기 영상 플라핑

  • 카림 압둘 자바를 넘어 역대 수비 리바운드 7위에 올라섰다.
  • 디시인사이드 NBA 갤러리 공인 치트키이다. 2011년 코비와 르브론을 동시에 무너트린 신화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45] 르브론 팬덤에게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는 선수이기도 한데 2007, 2014, 2015, 2017 파이널의 흑역사도 조곤조곤 반박하는 르브론 팬들조차 2011 파이널은 단 한마디의 반박도 꺼낼 수가 없을 정도다.
  • 2015-16 시즌이 끝난 후 구단과 2년 50M에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마크 큐반의 노비츠키에 대한 신뢰와 노비츠키의 구단에 대한 충성심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마크 큐반이 Brown and Scoop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직접 밝힌 이야기로 노비츠키는 자신의 에이전트에게 "금액에 상관 없이 맵스에 남을 것" 이라는 말만 남긴채 휴가를 떠났고, 이에 에이전트는 구단과 협상을 시작하는데 에이전트가 "이 정도 금액이면 어때?" 라고 던지면 마크 큐반은 "야 우리 더 줄 수 있는데? 더 금액을 높혀봐" 라고 해서 금액을 계속 올렸다. 그리고 결국 맵스의 2016-17 시즌 남은 샐러리캡의 전부를 노비츠키의 연봉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협상은 마무리 되었다.(2년 5천만불) [46]
  • 2017-18 시즌을 앞두고 코비에 이어 한 팀에서 20년 이상을 뛴 선수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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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아프리카 게임 2017이라는 친선경기 행사에서 만난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와 함께 훈련하는 시간을 가졌다. 늘 그래왔지만 자신과 닮은 후배인 포르징기스를 매우 대견하게 여기는 듯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석에서 만난 적은 별로 없겠지만 굉장히 돈독한 관계인 것으로 보인다.
  • 2017-18 시즌 들어서 올타임 플레잉타임 3위로 올라섰다(단 정규시즌 한정). 1, 2위는 역시나 카림 압둘 자바와 칼 말론. 아울러 출전 경기 순위는 현재 기준으론 5위라고.
  • 2012년 스웨덴 여성인 예시카 올손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고 있다. 예시카 올손은 스웨덴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마르틴 올손과 마르쿠스 올손 쌍둥이 형제와 남매지간이다.
  •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르브론 제임스와의 사이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오히려 호의적이라면 호의적인 관계, 그간 르브론이 노비츠키에 관해 동료로서 존경심을 표한적도 자주 있던 편이다. 기사 링크[47] 아울러 노비츠키가 통산 30000득점을 달성했을 당시 SNS를 통해 영상으로 축하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 마이클 조던이 2010년대 중반에 선정한 본인의 시대에 뛰어도 통할 선수로 뽑힌 바 있다. 다른 선수들로는 코비 브라이언트, 팀 던컨, 르브론 제임스. 여담이지만 자주 오르락내리락거린 이야기는 아닌데 조던이 꽤 노비츠키의 플레이를 좋아한다고. 아무래도 자신과 같은 스코어러이고 불붙으면 막기 힘든 클러치의 강자여서 그런 듯.
  • 특이점 중 하나로 슈팅 릴리스가 매우 느린 편인데, 위에 언급됐다시피 어차피 블럭당할 일이 없으니 이렇게 느리게 쏠 수 있는 것이다.[48] 이 때문에 무릎의 추진력을 그대로 손목까지 전달하는 과정, 그리고 손목 릴리스가 매우 부드럽고 슛이 높고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이런 느린 릴리스는 경기 중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 때문에 제한된 시간 내에 쏘아야하는 2006년 3점슛 콘테스트에서 웃지못할 해프닝이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예선에서 1위 레이 알렌, 공동 2위인 노비츠키와 길버트 아레나스가 각각 14점으로 결승에 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노비츠키가 느리게 쏘는 스타일이다보니 막판에 허겁지겁 쐈음에도 시간이 촉박했던 것, 그리고 마지막 머니볼을 버저가 울린 뒤 쏴서 넣었다는 점이다. 리플레이로 봤을때 시간종료를 알리는 불이 켜졌을때 노비츠키의 손에 공이 있어 (심지어 릴리스하기도 전이었다) 이것이 명백했지만 심판은 이를 무효화하지 않고 인정했다. 또한 리플레이 이후 판정 번복이 여기선 불가능한지라 오심이 정정되지 않았다. 실제로 무효가 너무 명백해서 리플레이를 보기도 전에 해설하던 찰스 바클리와 레지 밀러는 입을 모아 "시간 내에 못 던졌어!"라도 하고, 바클리는 오심으로 유명한 2006년 슈퍼볼을 언급하며 "슈퍼볼 심판들 데려왔나보네"하고 비아냥거렸다. 아마 이벤트 경기이고, 예선이다보니 빡세게 잡진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49] 재밌는건 노비츠키가 오심 덕분에 우승자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노비츠키의 마지막 슛은 2점짜리 머니볼이었고 이 슛이 무효가 됐다면 그의 점수는 12점이 되어, 13점을 기록한 제이슨 테리가 3위로 그 대신 결승에 진출할 예정이었다. 즉, 원래대로면 예선에서 탈락해야하는데 결승에 올랐고, 우승까지 해버린 것.
  • 1500경기 이상을 뛰고도 평득 20점을 유지한 두 명 중 하나이다. 나머지 한명은 카림 압둘 자바.
  • 은퇴할 당시 몇가지 남긴 기록이 눈에 띄는데 NBA에서 가장 많이 뛴 선수 3위(1,522경기)[50] 야투 성공 역대 8위(11,169개), 자유투 성공 6위(7,240개), 3점슛 성공 11위(1,982개), 수비 리바운드 5위(10,021개) 등에 이름을 남겼다.
  • 댈러스에서 그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해 4월을 노비츠키의 달로 정했다고 한다. 만장일치로 통과했던 안건이었고 지난해 댈러스의 시장인 마이크 라울링스는 노비츠키에게 도시의 열쇠를 수여하기도 하였다. 명실공히 댈러스라는 도시를 대표하는 스포츠 영웅인 셈.
  •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노비츠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우리가 여태껏 봤던 최고의 슈터였고 굉장히 특별했던 선수라는 감상을 남기기도. 참고로 샌안토니오와 댈러스는 플레이오프에서 6번(...)이나 만났던 사이인데 피차 지긋지긋할 만큼 치열하게 붙어왔던 사이였다.[51] 그만큼 명승부를 많이 만들어내기도 하였는데 특히 마지막엔 1라운드에서 댈러스가 그해 우승하게 되는 샌안토니오를 4-3까지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기도(...)[52] 반면 샌안토니오는 파이널에선 4-1로 르브론의 마이애미를 싱겁게 이겨버렸다...
  • NBA에서 30득점을 기록한 선수중 최고령이라고 한다. 그것도 댈러스 홈에서 치룬 마지막경기에서 남긴 기록인 만큼 상당히 값지다. 여담으로 245번째로 넣은 30득점이었다고.
  • 사실 은퇴에 대한 입장을 상당히 애매하게 비쳐 팬들 사이에선 설왕설래한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댈러스를 제외한 다른팀들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섭섭치 않은 대접을 해주었는데, LA 클리퍼스의 닥 리버스는 아예 타임아웃을 부르곤 마이크를 잡아 팬들에게 노비츠키를 향한 기립박수를 유도했다. 이후 왠지 모르게 분위기가 은퇴쪽으로 자꾸 기울어 팬들은 노비츠키가 은퇴를 한게 아니라 당한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가끔 하기도 한다.[53]
  • 마크 큐반 구단주와의 관계가 상당히 깊 다. 큐반은 노비츠키의 은퇴식때 레전드들을 초대하고 갖가지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예산을 아끼지 않았는데,[54] 은퇴식에서 마크 큐반 본인 입으로 영구결번은 당연하고 은퇴선물로 구단 지분에다 경기장 앞에 무진장 큰 동상까지 세워주겠다고(...) 큐반은 노비츠키가 아이에서 남편으로, 그리고 아버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다며 그에대한 애정을 은퇴식때 아끼지 않고 쏟아냈다. [55] 매버릭스와 큐반 입장에서 노비츠키가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 큐반이 팀을 인수한 2000년대 초반에 매버릭스는 그야말로 안습이었다. 80년대에 날리던 강팀이긴 했지만 90년대 내내 흑역사로 보내고 00년대에도 별 비전은 없는, 비슷하게 90년대를 안습으로 보낸 밴쿠버 그리즐리스 등과 비슷하게 doormat team (집에 들어올때 밟는 매트에 비유한 의미로, 누구한테나 밟히는 최약체 팀을 의미)의 대명사였다. 그런 팀에게 반전이 일어난게 노비츠키, 마이클 핀리, 스티브 내쉬가 이끄는 신바람 농구였고, 이후 우승까지 하는 서부 명문 중 하나가 된다. 이 과정에서 댈러스의 팀 가치는 수직상승했고, 이걸 떠나 농구광 마크 큐반은 자신의 팀이 훌륭한 구단으로 성장하는 것에 기뻐했다. 실제로 20년 가까이 인간관계를 쌓다보니 친분도 당연히 깊을 수밖에 없고, 노비츠키가 트래이드 요구를 한번도 한적도 없을 정도로 구단에 대한 애정도 깊으니 이뻐보일 수밖에. 심지어 07년 당시 플레이오프에 탈락한 뒤 MVP를 수여받는 참사가 일어났을때, 정작 노비츠키는 차분한 태도와 예의바른 웃음으로 기자회견에 임했음에도 큐반은 기자회견 도중 울먹이기까지 했다. 4년 뒤 우승을 차지했을때 어린애처럼 기뻐한 건 덤. 큐반 본인의 NBA 여정을 그대로 함께하고, 매버릭스를 좋은 구단으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인데다 오랜 기간 흔들리지 않는 우정을 공유한 친구이니 사이가 나쁠 수 없는 상황.
  • 플레이오프에서 50득점을 넣은 적이 한번 있는데 그 위로는 2번을 기록한 제리 웨스트, 3번을 기록한 앨런 아이버슨과 4번을 기록한 윌트 체임벌린, 그리고 8번을 기록한 마이클 조던이 있다. 그 밑으로는 전부 노비츠키와 동일하게 1번씩[56]
  • 댈러스에서 한 거리를 그의 이름으로 붙이기로 했다고 한다. 현재는 노비츠키 웨이라고 부른다고. 현재 공식적으로 승인되었다. 현재 노비츠키 웨이의 풍경. 구글에 검색하면 쉽게 위치이미지를 찾아볼수 있다. 노비츠키 본인도 애정이 깊어 은퇴한 이후에도 댈러스에 계속 살고 있다. 미국 시민권을 딸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그냥 독일 국적으로 남기로 했다고. 독일인이 EU나 스위스가 아닌 국가의 이중국적을 따려면 정부의 승인을 따로 받아야하고, 이중국적이 독일 법에는 좀 복잡하게 적용된다.
  • 2019-20 시즌부터 댈러스 매버릭스의 홈구장인 아메리칸 에어라인스 센터 코트에 노비츠키의 실루엣을 새기기로 했다고 한다. 이젠 매 경기마다 팬들은 잊지않고 페인트존에서 그의 시그니쳐 무브인 학다리웨이를 볼수 있게 되었다. 기사 링크
  • 노비츠키는 플레이오프 통산 140경기에서 25.4점 10.2리바운드를 올렸다. 플레이오프 통산 평균 25점-10리바운드 이상을 넘어선 선수는 밥 페팃, 엘진 베일러, 하킴 올라주원과 노비츠키뿐이라고.
  • 2019년 12월 2일, 댈러스와 레이커스의 경기가 있었던 날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이날 레이커스측은 노비츠키를 위한 헌정영상까지 틀어주었다. 기립박수를 받으며 인사하는 노비츠키의 앞에 댈러스팬과 레이커스팬 할것없이 모두가 경의를 표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 참고로 노비츠키와 레이커스는 의외로 인연이 깊다. 30000득점을 비롯한 여러 기록들을 레이커스와의 시합에서 남겼으며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코비와 가솔이 이끄는 레이커스의 쓰리핏을 4-0으로 저지한 경력도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서부의 강호팀들답게 오랫동안 엉키면서 여러 추억들을 남긴 것. 아울러 코비 브라이언트와도 내쉬만큼은 아니나 절친한 사이로 유명하고[57]
  • 예전에 이 항목에서는 르브론 제임스와는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다라는 서술이 있었으나 바레아의 인터뷰에 의하면 노비츠키는 르브론, 웨이드, 보쉬 마이애미 3인방을 정말 못 견딜 정도로 싫어했다고 한다. 웨이드와는 2006년 파이널에서의 역대급 슈퍼스타콜 때문에 좋은 관계일 수가 없었고 독감 조롱 사건의 영상을 보고 노비츠키가 개인적으로도 크게 상처를 받았다고. 2019년 올스타전에서는 르브론이 악수를 하러 왔으나 노비츠키가 거부해버린 사건도 있었다.
[1] 국립국어원 정식 표기법. 원어민의 발음을 듣고 싶으면 여기 참고. 2:45초부터 미국인들이 하는 발음과 비교하면서 제대로 된 발음을 설명한다. Dear~k에 가까운 발음으로, 디얽크에 가깝다.[2] 착화 신장 216cm (7' 1")[3] 드래프트 당일 바로 댈러스 매버릭스가 지명한 로버트 트레일러와 트레이드 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역대 최악의 트레이드 중 하나로 꼽히는데 노비츠키는 후술되듯 레전드가 됐지만 트레일러는 고작 7시즌 뛰며 통산 4.8점 3.7리바운드란 초라한 기록을 남기는 평범한 선수였다. 선수생활 내내 체중조절이 안됐던 트레일러는 이후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는데 2011년에 부인과 통화하던 중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인해 34세란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4] 독일 분데스리가[5] 무려 213cm가 넘는 센터급 신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높은 타점에서 나오는 슛터치가 개사기라, 이 시즌 '''180 클럽'''에 가입하고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였다[6] 어찌보면 노비츠키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일지도 모른다. 그가 갖은 고난과 굴욕 이후에 이뤄낸 기적을 생각한다면.[7] 정말 '''사기'''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클러치 상황에 나오는, 혹은 그냥 단순한 플레이가 너무나 사기적이어서(...)[8] 당시 르브론이 이적하는 방식 (생방송을 통해 새 팀을 발표하면서 친정팀에 어마어마한 굴욕을 안겨줌) + 이적 후 팀에서 한 "Not 3! Not 4"(훨씬 많이 우승한다는 말) 발언 + 리그 최고의 선수가 최전성기의 자신과 거의 대등한 라이벌과, 이보단 못 미치지만 슈퍼스타 레벨의 파워 포워드와 뭉치는 것에 대한 거부감 + 슈퍼팀 자체에 대한 거부감 +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일부 르브론빠들의 과도한 쉴드 및 다른 선수들 끌어내리기 + 언더독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으로 인해 파이널 시작 전부터 히트에 대한 반감이 어마어마했다. 당시 ESPN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마이애미가 위치한 플로리다를 제외한 49개 주가 댈러스의 우승을 바라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나왔을 정도.[9] 거기에 독감투혼을 보여준 노비츠키를 르브론과 웨이드가 조롱한 것, 패배하고 나서 르브론이 한 치졸한 "Real World" 발언으로 인해 반르브론 정서는 농구계에서 정점에 달했었다. 워낙 노비츠키가 플레이오프 내내 뛰어난 활약을 하기도 했고. 그래서인지 국내 한정으론 노순신이란 별명이 생기기도...[10] 현재는 NBA 케이블 TV에서 일한다고 한다. [11] 전 독일 국가대표 출신의 코치. 대개 노비츠키의 은사로 알려져 있다.[12] 주 2~3번, 주로 슛과 패싱 연습. 지금의 노비츠키와 NBA의 대세를 생각하면 앞서 갔다고도 볼 수 있다.[13] 첼로라든지 현악기 등. 그래서인지 노비츠키는 독일의 한 토크쇼에서 기타 연주 및 노래를 부르기도했다. [14] 역대 가입자중 최장신이다. 비슷한 장신라인으론 래리 버드케빈 듀란트가 있지만, 이들은 3번 스몰 포워드다. 반면 노비츠키는 4번 파워 포워드로 '''빅맨중 유일한 180클럽 가입자다'''. 이점만 보더라도 노비츠키의 유니크함을 잘 알 수 있다.[15] 오해에 가려져있을뿐 그는 포스트업과 페이스업, 돌파 외에도 여러 공격기술들을 안정적으로 구사했던 선수였다.[16] 우승을 차지했던 2011년 파이널 2차전에서 경기 종료까지 얼마 남지 않은 클러치 상황에서 팀을 승리로 이끈 위닝샷이 돌파에 이은 레이업이었던 것을 생각해보자.[17] 실제로 농구에 세이버매트릭스를 적용하는 전문가들은 3점슛의 성공률에 가산점을 주는 Total Shooting Percentage(TS%)라는 기록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18] 아니면 가까이 붙어서 성공률도 높이고 리바운드 다툼에도 도움이 되거나. 그래서 롱2라고 불리는 장거리 미들슛을 주무기로 삼는 선수들은 노비츠키나 라마커스 알드리지처럼 높은 성공률을 갖지 못하면 팀에 민폐가 되는 경우가 많다. [19] 이게 사기적인 게, 야오밍은 7피트 5인치, 즉 226cm인데, 데릭 로즈의 전성기 점프력이 40인치, 즉 1미터를 조금 더 높이 뛸 수가 있었다. 현재 로즈는 몇번의 무릎 부상을 입은 전력으로 그만큼 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즉 야오 밍의 키를 가진 선수가 데릭 로즈처럼 뛰면 3미터가 넘는 높이까지 올라가는 건데, 그 높이로 뛰어도 블락슛이 안되고 공은 이미 림으로 향해가고 있다. 이걸 막으려고 대인 방어로 거머리처럼 붙었다가는 노비츠키가 방어하는 무릎에 접촉 될 경우 파울이 불릴 게 뻔하며, 던져서 들어갈 경우 앤드-원 혹은 바스켓 카운트, 즉 자유투를 하나 더 던지게 된다. 그런데 노비츠키가 자유투를 상당히 잘 던지는 선수라 이렇게 되면 상대 슈팅 가드에서 3점슛을 먹히는 거나 똑같다. 이 요상한 폼으로 던지는 슛이 스테판 커리의 3점슛 급으로 던지는 족족 들어가니 수비하는 선수 입장에서는 그의 공이 림을 향해 포물선을 그릴때 그저 림이나 백보드 맞고 빗나가길 바랄 뿐...[20] 훅슛을 블락하기 힘든 이유와 비슷하다. 수비자가 볼을 건들 수 있는 시점에선 볼텐딩이 불린다는 이야기다. 훅슛과 마찬가지로 블락하려면, 릴리즈 순간이나 직후에 해야 한다. 즉, 볼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블락 할 수 없다.[21] 블레이크 그리핀, 라마커스 알드리지에게 한 번씩 블락당한 적은 있다. 즉 블락당할 확률이 희박한 것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리핀 같은 경우엔 빠른 타이밍에 뛰어서 블락 이 나온 것이고 라마커스 알드리지의 경우 정면이 아닌 뒤에서 훑어내는 것을 노렸기에 가능했다.[22] 오죽하면 수비엔 정말 둘째가라면 서러운 '''케빈 가넷'''도 저걸 어떻게 막냐란 말을 했었을 정도.(웃긴 건 정작 가넷의 타점 높은 슛도 막기 어려운 걸로 유명했다. 이쪽은 높은 데다가 슛을 거의 머리 뒤에서 쏘는 슛폼 때문에. 물론 성공률이 노비츠키급은 아니었다) 동포지션의 매치업 상대 중 혼자서는 막기가 좀 버겁다는 말을 하는 선수들도 많았다.[23] 올린 다리로 3피트, 즉 반경 1미터 내에 수비선수가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 이렇게하니 맨투맨으로 마크가 불가능하다.[24] 여담으로 르브론 제임스가 이 기술에 관해 앞서 말한 압둘 자바의 스카이훅 다음으로 가장 막기 힘든 슛이 아닐까라는 평가를 한 적이 있다. 래리 버드는 이 슛을 쏘는 노비츠키를 두고 '''그런 슛을 본적이 없다. 그 슛을 완전히 마스터해버린듯한 느낌이다. 놀라울 정도. 솔직히 말해 내가 그와 매치업될 일이 없어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라는 말을 전했다. [25] 자주는 아니지만 마누 지노빌리도 썼던 적이 있었고 등번호를 41번으로 할 정도의 노비츠키의 팬으로 알려진 켈리 올리닉은 노비츠키 본인 앞에서 시전했는데.... 들어가지 않았다. 카이리 어빙도 활용하는 중. 에반 터너도 쏜 적 있다. NBA에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26] 이때 수비가 '''케빈 가넷'''으로, 클러치 능력을 떠나 저 보기만해도 토나오는 수비를 뚫어 3점 플레이를 해낸 것만으로도 그가 뛰어난 공격수임을 말해준다.[27] 첫우승을 차지한 2011년 파이널 2차전 중 클러치 레이업으로 경기를 종결짓는 장면, NBA 역사에 남을 명장면 중 하나로도 손꼽힌다.[28] 커리어 후반부에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 넣은 클러치샷으로 그가 아직 건재하다는것을 몸소 알린 경기.[29] 그렇기 때문에 역대 최강의 클러치 플레이어들은 중거리슛의 달인들이 많았다. 래리 버드도, 마이클 조던도, 코비 브라이언트도 모두 중거리슛이 주옵션이었고 르브론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중거리슛 능력을 갖춘 뒤에야 리그 최고 수준의 클러치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리그를 호령하던 시절 슛거리가 더 길고 볼핸들링이 더 좋은 스테판 커리가 아닌 케빈 듀란트가 클러치 상황에서 메인이 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이 상황에선 중거리 위치에서 많은 기회가 나는데, 커리의 피지컬이나 플레이스타일로는 이 위치에서 높은 확률로 득점하기 힘들기 때문. 즉 롱2를 주옵션으로 쓰지 않더라도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팀을 수렁에서 구해낼 수 있는 선수가 되려면 롱2를 확률높게 꽂아넣는 능력은 필수다.[30] 오늘의 NBA 칼럼중 나온 문구이다. 염용근 기자의 의하면 오랜 기간 반복 숙달된 본능(?)이나 다름없다고.[31] 동시대 최고의 파워 포워드인 팀 던컨, 케빈 가넷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는 수준이다.[32] 한때 수비가 없다는 지적과 함깨 '''irk nowitzki'''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33] 2년 연속 식스맨상을 수상한 선수.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어졌지만 나름 대단한 커리어를 보낸 선수였다. 93, 95, 97년에 올스타로 선발되기도 했는데, 특히 93 시즌에는 19.1점 9.5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올라운드 빅맨의 상징이자 상당히 드문 기록인 20점 10리바운드 5어시스트에 근접하기도 했다. 노비츠키가 대성하기 전까진 노비츠키가 슈렘프에 비교되었다.[34] 이건 결과론적인 이야기일뿐이다. 2000년대 초반 노비츠키는 기껏해야 올스타 언저리급 선수였다. 그가 슈퍼스타 반열에 오르고 MVP에 이름을 올릴만큼 위상을 갖춘건 2005년 이후였으며 이때쯤 축구에서도 미하엘 발락 미로슬라프 클로제같은 선수들이 전성기를 맞이하는 시기였다.[35] 크리스 카만 등 NBA에나 유로리그에서 뛰는 독일 선수는 있지만 유럽농구의 수준이 상향평준화가 돼서 이렇다할 성적은 안 나온다.[36] 그도 그럴게 3-peat에 도전하는 코비의 레이커스를 스윕으로 즈려밟은 뒤, 르브론을 필두로 한 빅3의 마이애미를 무너뜨리고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우승을 노리기 위해선 슈퍼팀 or 준슈퍼팀을 꾸리는게 관례인 현 느바 환경과 비교했을때, 더 맨으로서 당대 최악의 과정으로 뭉친 빅3를 제압한 것은 다시 보기 어려운 대업적이라 칭해도 모자람이 없다.[37] 1993년 마이클 조던이 수상한 이래로 NBA 선수로선 최초이며, 현재 유일무이한 외국인 선수 수상자이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 미국내 시상이다보니 외국인인 노비츠키에겐 불리할 것이란 측면이 강하기 때문. 동시에 2010-11 시즌 우승의 임팩트가 굉장히 강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아울러 노비츠키 이후로 수상한 NBA 선수는 르브론 제임스와 스테픈 커리와 같은 일류 선수들이다.[38] 참고로 "Best Team" 부문은 댈러스 매버릭스가, "Best Coach/Manager"는 댈러스의 릭 칼라일 감독이 수상했다. 말그대로 댈러스가 상을 휩쓸었다.[39] 상위 순위를 살펴보자면 1위 카림 압둘 자바, 2위 윌트 체임벌린, 3위 칼 말론, 4위 마이클 조던, 5위 존 스탁턴, 6위 팀 던컨, 7위 르브론 제임스, 8위 덕 노비츠키, 9위 케빈 가넷 등이 올라와 있는걸 볼 수 있다.[40] 참고로 트위터엔 이것 이상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진이 올라올 때가 있다... 굉장히 유쾌한 사람인 듯.[41] 참고로 말하자면 댈러스 매버릭스와 노비츠키는 이런 짓(...)을 거의 매시즌마다 했었다. 팀 관련해서 웃긴 영상은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42] 많은 사람들이 노비츠키가 이런 영상을 마지 못해 찍는다고 오해하고 있는데 유머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 사적인 공간이나 자선경기에서도 이런 개그를 늘 하는 편이다. 그냥 그것에 큐반의 약빤 기획력이 합쳐진 것뿐...[43] 쿼텟이라든가 어떤 형태의 밴드든 팀웍과 팀원과의 호흡을 이해하는데 좋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44] 2위인 안드레아 바그냐니와 2배 정도의 차이가 난다.[45] 굳이 설명을 하자면 이때 코비와 르브론은 전부 쓰리핏을 도전중인 선수들이었다. 코비는 이해 우승하면 성공이었고 만약이란 것은 없지만 르브론이 이 당시에 우승했다면 파이널 MVP 수상은 어려웠어도 그 다음에 백투백 우승을 했으니 쓰리핏 자체는 성공했을지 모른다.[46] 참고링크[47] 노비츠키의 시그니쳐 무브를 카림 압둘 자바의 스카이훅 다음으로 가장 막기 힘든 기술이라고 하는 등. 희한하게도 노비츠키 또한 르브론의 출전 시간 단축에 관련된 발언을 두둔한 적이 있었다.[48] 그렇다고 빨리 못 던지는 것도 아니다. 시간에 쫓겨 던진 수많은 버저비터 성공 영상만 봐도 알 수 있다.[49] 추가로 당시 대회가 열린 곳은 휴스턴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가까운 댈러스의 슈퍼스타인 노비츠키를 응원하러 온 팬들도 많았다. 휴스턴 선수들이 3점슛이나 덩크 콘테스트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홈 선수에 가까운 노비츠키에게 빡세게 불진 않은 것. 실제로 마이클 조던도 88년 덩크 콘테스트에서 약간의 어드밴티지를 얻었다고 알려졌다. (결승 상대인 도미니크 윌킨스의 마지막 덩크가 대부분 사람들의 예상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50] 1위는 로버트 패리쉬((1,611경기)이고, 2위는 카림 압둘 자바(1,560경기).[51] 재밌는 점은 팀 던컨이 은퇴할때 댈러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 역시 던컨을 행해 비슷한 발언을 했었다.[52] 이때 오죽하면 포포비치 감독은 6명이 코트에 나가보이도록 수비하는 댈러스 선수들이 착시하게끔 벤치에 앉아있던 선수를 한명 일으켜세우는 작전까지 시전했었다(!)[53] 근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리그가 장기적으로 폐쇄가 된 시점에선 신의 한수로 평가받고 있다... 온전히 올스타전과 함께 풀시즌을 다른 구단들의 축하속에 마칠수 있었고 성대한 은퇴식도 가졌으니... 반대로 함께 뛰기도 했었던 빈스 카터가 미련이 남기도 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커리어를 좀 더 이어갔지만 결국 허무하게 은퇴 의사를 내비친것에 비하면 정말 잘된일이다.[54] 노비츠키는 이날 대체 돈을 얼마나 많이 쓴거냐고 큐반에게 아예 대놓고 물어보았다.[55] 마크 큐반은 58년생으로 노비츠키가 은퇴할 당시 만 60세였다. 노비옹의 수염과 큐반의 동안의 콜라보로 둘이 동년배로 보인다.[56] 다른 선수로는 찰스 바클리, 르브론 제임스, 빌리 커닝햄, 아이재이아 토마스, 빈스 카터, 칼 말론, 코비 브라이언트, 레이 앨런, 슬리피 플로이드, 러셀 웨스트브룩, 도미니크 윌킨스 등등이 있다. 링크[57] 그래선지 서로 농담이나 장난섞인 디스도 많이 주고받고 별들의 잔치인 올스타전엔 둘이 함께 즐거이 수다떠는 모습들이 많이 찍혀 구글 이미지 검색을 통해 그들의 우정을 쉽게 찾아 볼수 있다. 그리고 코비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난 후 SNS에서 '코비는 날 포함하여 전세계에게 영감을 주었다. 당신은 항상 그리울 것이고, 항상 기억될 것이며, 항상 사랑받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당신의 딸 지아나와 함께 편히 잠들기를...'이라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