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석
1. 소개
前 한화 이글스 소속의 내야수.
2. 플레이 스타일
수비 잘하기로 유명한 SK 내야진 중에서도 수비를 잘 한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수비 능력은 탁월하다. 안정된 포구와 부드러운 송구 동작, 빠른 발을 이용한 기민함 등으로 처음 등장했을 때 여러 사람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김성근 감독도 싹을 알아본 듯 첫 스프링캠프 때부터 그를 눈여겨보며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NHK의 다큐멘터리 '백구, 선수들은 바다를 건넜다'를 보면 김성근 감독이 한 신인 선수와 1:1로 타격연습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선수가 바로 최윤석이다.
게다가 오지환과 비슷한 준수한 외모 때문에 4푼치던 시절에도 방송사에서 SK 와이번스의 '''보기 드문 미남 선수'''로 인터뷰하기도 했다(…).[4]
최정과 나주환이 부상 중일 때 백업으로 나와 3루수와 유격수로 번갈아 출장해 '''수비 공백'''을 훌륭히 메웠다.
타격이 정말 답답할 정도로 안 되었다. 2010시즌 47경기에 출장하여 타율이 '''0.092'''(…). 덕분에 별명도 '''구푼이'''다.[5] 그러다가 안타를 치거나 결정적인 호수비등 활약을 보여주면 구푼갑으로 강화된다. 다만 선구안은 좋다. 타율과 출루율의 갭이 1할 2푼을 가볍게 넘는다(...).
3. 선수 경력
성남고등학교와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2010년 SK 와이번스의 5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전체 40순위) 지명 당시 평가는 체격은 작지만 유격수로서 발 빠르고 수비 잘하고 센스가 좋다는 것.
3.1. SK 와이번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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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즌 순위가 결정된 이후 김연훈과 키스톤을 이뤄 신들린 수비를 보여주며 SK 백업 내야수들에 대한 평가를 높여주었다.
3.1.1. 2011 시즌
2011 시즌 오키나와 연습경기 에서 한화의 신인 유창식에게서 홈런을 뽑아냈다.[6] 그날 SK 와이번스 갤러리는 난리가 났다. 물론 '''올해 안타는 그걸로 끝장'''(…)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2011시즌 시범경기에서 3월 17일 2루타, 3월 18일 안타를 기록했다. 솩갤에서는 연일 맹타를 휘두른다며 경악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시범경기 성적은 시범경기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에, 2011 시즌을 앞두었을 당시만 해도 준수한 수비능력에 비해 너무나 떨어지는 타격 때문에 해설위원이나 팬들 중 그 누구도 최윤석이 선발로 나설 것으로는 예상하지 않았다. 만약 타격까지 겸비하게 된다면 박진만, 권용관과 함께 주전 경쟁에서 밀리지는 않을 것이긴 한데...
2011 시즌 개막전 엔트리에는 빠졌지만 박진만이 2군으로 내려가고 난 다음부터 1군에 올라온 후부터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5월까지 정규시즌을 소화한 상태에서 무려 ~3할이란 일취월장한 타격 능력을 보여주면서 당당히 주전을 꿰찼다.
그리고 4월 24일 롯데전에서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실책과 타격을 반복했다. 실책과 실책성 플레이 2개, 그리고 4타수 3안타인데 2루타가 2개! 이 날을 기준으로 타율은 0.364가 되었다. 그래서 수비 능력과 타격을 바꾼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관련기사
4월 27일 최윤석을 당분간 주전으로 쓴다는 김성근 감독의 인터뷰가 나왔다.
5월 27일 데뷔 첫 홈런을 '''차우찬'''으로부터 뽑아냈다![7] 그리고 그 다음 타석에서도 쭉쭉 뻗어갔으나 아쉽게 좌익수에게 잡혔다. 하지만 2회말 어떤 보통 이하의 투수가 개털려서 팀이 지는 바람에 묻혔다. 홈런볼도 찾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나 초구에 환장한 2011 SK 타선의 팀컬러와 정반대로 타석에서 초구에 방망이가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이 풀카운트까지 물고 늘어지며 결국 안타나 볼넷 중 어떤 방법으로든 1루로 살아나가는 생존왕 식 타격 스타일이 큰 점수를 받고 있다. 여기에 발도 꽤나 빠른 편이라 적절한 상황에서 도루를 시도할 수 있어서 덕분에 출루를 하면 꼭 돌아 온다는 전설이 있다. 이걸 귀소본능으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여튼, 이러한 활약으로 2011 시즌에는 1군에 고정될 듯 하다. 그리고 덤으로 말하자면, 최정이 가지고 있던 1군 야수조의 막내 자리 역시 가져갔다.[8][9]
SK 2군 선수들의 애환을 다룬 '다큐멘터리 3일'에서 2군의 아이돌로 떠올랐다. 경기가 끝나고 TV를 보던 2군 선수들은 '윤석이형 또 안타쳤다', '3할 타자야'라며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인 시절엔 1군 한번 가는 게 소원인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같이 2군에서 굴렀던 사람이 1군에서 안타도 치고 홈런도 친데다 타율도 3할에 육박했으니(규정타석에는 들지 못했다) 풋내기들 입장에선 부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1군에 올라온 박윤의 어깨를 다독여 주는 등 1군스런 모습을 보였으나 다음날 1군 말소(...)되었고 2군에서 맹타를 휘두르다 28일 한화전에 맞추어 다시 1군에 등록되었다.
박진만이 2011시즌 전반기를 3할 타율로 마치면서 타선에 보탬이 되는 수준이 아니라 타선을 이끌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후반기에 활약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거기에 김연훈 나름대로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가능성이라면 삽을 푸고 있는 박정권이 1루에서 빠지고 박진만이 1루수로 출전할 때 정도.
9월 들어 박진만의 성치않은 무릎 상태와 최정의 부상공백으로 유격수로 출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909 대첩에서는 멀티히트를 기록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타격이 살아나는 모습, 다음날인 9월 10일 한화전에서 3루타 하나 포함 3안타를 쳤지만 팀은 또 패배. 덧붙이자면 타율은 2할 4푼대까지 추락했지만 공 하나만큼은 끝까지 참으면서 보는 타격 스타일 덕에 '''출루율이 4할'''이다. 규정타석에는 많이 모자라지만 수치만 따지면 이는 '''리그 5위'''에 드는 엄청난 기록이다.
KIA 타이거즈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3차전은 결장하고 4차전에 대수비로 출장하여 1타수 무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5타수 2안타 1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4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011년 포스트시즌에서 6타수 2안타 1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333를 기록했다.
3.1.2. 2012 시즌
8월 17일 KIA 타이거즈와의 10차전에서는 8회 말, 상대 투수 박지훈에게서 1사 1스트라이크 이후 좌측 담장을 넘기는 시즌 마수걸이 2점 홈런을 뽑아냈다. '''우리 구푼이가 달라졌어요!''' 그러나 이미 SK가 5:0로 리드를 하고 있던 상황에서 터진 홈런이라 경기 내용을 크게 바꾸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이후 사실상 패전조를 투입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3.1.3. 2013 시즌
결국 시즌 종료 후, 경찰 야구단에 합격하여 2014 시즌부터 군 복무를 시작한다.
3.2. 한화 이글스 시절
2013년 11월 22일 시행된 2차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3라운드 지명을 받게 되어 SK 와이번스에서의 커리어를 마치게 됐다. 따라서 경찰청 야구단에서 제대한 후 2016년부터는 한화 이글스에서 뛰게 되었다. SK는 지금 데려가도 2년 동안 군 보류 명단만 차지하고 써먹을 수 없으니 아무도 지명하지 않을 거라 여겨서 그를 보호선수 명단에서 뺐다가 한화에 빼앗기는 상황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10] 반대로 한화 관계자는 같은 시기에 군 팀에 입단하는 오선진과 하주석도 최윤석과 함께 제대하기 때문에 내야진의 세대 교체 준비를 위해 지명했다고 언급했다.
3.2.1. 경찰 야구단 시절
2014 시즌에는 그냥 그런 평범한 모습으로 밥값은 해주었다. 참고로 홈런없이 30타점, 3할에 도루는 9개인데... '''사사구 42개에 삼진 24개다.'''
2015 시즌에는 5월 12일 현재까지 홈런도 치는 등 나쁘지만은 않은 활약을 보여주는 중이다. 제대 후에 강경학, 하주석과 함께 경쟁 구도에 들어갈 것으로 추측된다.
3.2.2. 2016 시즌
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팀에 합류하여 미야자키 교육리그와 마무리훈련에 모두 참가하였다.
그러나 스프링캠프 기간 도중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조기귀국하면서 전력화가 될지는 불투명하다.
초반에 대수비 등으로 나오다가 별다른 활약 없이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후 등번호를 33번에서 3번으로 변경했다.
3.2.3. 2017 시즌
4월 30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어 넥센전 대타로 출장, 2타수 2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5월 SK전에서 한화에서 보기 힘든 더블스틸 작전(!) 후 1타점 땅볼을 쳐냈다.
9월 확대 로스터로 올라왔다. 세 번째 경기인 사직 원정에서 2안타를 쳤다.
2차 드래프트로의 이적을 점치는 팬들이 몇몇 있었으나 아무도 사가지 않았다.
3.2.4. 2018 시즌
2018 시즌 개막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24일 개막전에서 유격수 하주석의 대수비 역할을 소화한 뒤[11] 바로 2군으로 내려갔다. 올라온 선수는 강경학.
8월 4일, 오랜만에 1군에 콜업됐다. 그리고 NC 시리즈에서 2타석 나와 모두 볼넷으로 출루했다.
8월 6일, 1군에서 말소됐다.
시즌이 끝나고 결혼했다.
3.2.5. 2019 시즌
2군에서의 기다림 끝에 6월 9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그리고 2번 타자로 선발 출장했는데, 2타수 무안타 1볼넷을 기록했다. 특유의 볼넷 고르는 능력은 여전한 듯.
그리고 이후로 경기에 절대로 나오지 않으며 왜 안 나오나 의문을 품을 때쯤 6월 15일, 대수비로 출장하여 1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타율은 0.333, 출루율은 5할이다.
6월 18일, 1번 선발 유격수로 출전해 2타수1안타1볼넷1타점으로 팀이 대패하는 와중에 그나마 활약했다. 타율 4할에 출루율은 0.571.
이후 6월 28일 정식선수로 등록된 박한결이 1군에 등록되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
결국 시즌 후 방출되었다. 방출 시에는 은퇴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1] 난나나나 안타 최윤석 (헤이!) 난나나나 안타 최윤석 (헤이!) 난나나나 안타 최윤석 (헤이!) 안!타! 최윤석!x2[2] 한화 이적 후 나주환이 사용했으나 저작권에 걸려 폐지.[3] 삼성 라이온즈 강봉규도 한때 이 응원가를 사용했다.[4] 이는 김광현과 전병두를 제외한 선수단의 얼굴이 하향 평준화된 면이 크다. 물론 얼굴로 야구하는건 아니지만...[5] 최윤석 자신도 자신의 별명이 '구푼이'인걸 알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현실인지라 할 말이 없었다고.[6] 이 홈런으로 인해 7억 신인 유창식을 향한 칰레발이 '''한순간에 사라졌다.'''[7] 2회초, 2점 홈런.[8] 2005년에 데뷔한 최정은 2006년부터 1군의 실질적인 야수조 막내였다. 그보다 어린 야수들은 대부분 1군에 못오거나 1군과 2군을 왔다갔다 했기 때문. 그의 연차를 생각하면 야수조에 한정할 경우엔 '''김광현보다 더 길게 막내생활을 한 것이다.'''[9] 고졸-대졸 신인이라 연차가 많이 벌어졌지만 사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건 아니다. 최정은 1987년 2월 28일생이고 최윤석은 1987년 3월 28일생이라 둘의 나이 차이는 1달이 채 안 된다. 다만 그 놈의 빠른 생일 때문에 최정이 1년 먼저 학교를 들어갔으니 엄연히 선배이긴 하다.[10] 훈련소에 입소한 순간부터 보호선수 명단 고려를 할 필요가 없으며, 아직 입소하지 않은 상황이면 보호선수 명단에서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나주환이 2루로 옮긴 후 완전히 살아난 데다가 김성현을 주전 유격수로 기용하고 또 신현철을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하고 트레이드를 통해 이대수를 친정팀에 복귀시키는 등 최윤석의 공백을 메워버렸다.[11] 경기 후반에 투입되어 타석에 서지는 못했다.[12] 볼넷으로 전 타석 출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