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민

 

[image]
이름
안승민(安承民 / Seung-Min Ahn)
생년월일
1991년 6월 21일 (32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학교
중동초[1]-공주중-공주고
체격
183cm, 88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10년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 (한화 이글스)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10~2018)
등번호 변화 일람표
한화 이글스 등번호 13번
문용민(2008~2009)

안승민(2010~2014)

권용관(2015~2016)
한화 이글스 등번호 3번
한상훈(2014~2015)

안승민(2016)

최윤석(2017~2019)
한화 이글스 등번호 61번
이재우(2016)

안승민(2017)

김성훈(2018~2019)
한화 이글스 등번호 32번
차일목(2016~2017)

안승민(2018)

박준혁(2019)
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과 지명 비화
3. 커리어
3.1. 2010 시즌
3.2. 2011 시즌
3.3. 2012 시즌
3.4. 2013 시즌
3.5. 군 복무
3.6. 2016 시즌
3.7. 2017 시즌
3.8. 2018 시즌
4. 방출 이후
5. 피칭 스타일
6. 이모저모
6.1. 노안의 전설
6.2. 그 외
7. 연도별 주요 성적
8. 관련 문서


1. 개요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전직 야구선수로, 포지션은 투수.
별명은 안선생님, 안과장, 안부장,[2] 노망주 등등.
2013 시즌에는 갑자기 배팅머신이 되어 여러 경기를 말아먹으면서 암승민이라는 부정적인 의미의 별명도 추가되었다.

2. 아마추어 시절과 지명 비화


고교시절에는 비교적 약체인 공주고등학교하드캐리한 에이스로, 안승민의 컨디션과 성적에 따라 공주고의 승패가 정해져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고교 시절 커리어에서도 눈에 띄는 기록은 봉황대기 두 경기 연속 무사사구 완봉승이다. 이 외의 각종 대회에서 실력을 보여주며 청소년 대표에까지 뽑혔다.
잘하는 경기와 못하는 경기 사이에서의 기복이 심하고 속구에 다소 의존하는 경향이 있지만, 186cm-86kg의 준수한 편의 신체조건과 고교생임에도 불구하고 속구의 구속이 평속으로 140이 넘길정도로 당시 고교 투수들 중에서 최고급에 속하는 속구파였다. 훌륭한 성적도 가지고 있었기에 프로에서도 즉시 선발감으로 활용 가능하며 어떻게 키우냐에 따라 150km의 공을 뿌리는 투수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와 각 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3]
그러나 투구폼에 여러가지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투구시 발을 끄는 버릇이 있는것이 가장 잘 알려진 문제점으로, 이 외에도 부상의 원인이 되기 아주 좋은 뻣뻣한 투구폼에 선천적인 유연성도 떨어지는 편이라 부상위험이 굉장히 큰 선수로 생각되었다. 게다가 이미 부상경력도 있어서 결과적으로 스카우터들이 픽을 하는데 주저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봉황대기 무사사구 완봉승 등 호성적을 내기 이전의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에 플루크 의심도 받았다.
안승민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부각되면서 2010년 드래프트에서는 두산장민익같은 의외의 선수들이 상위 라운드에 지명을 받게 되고, 안승민은 2라운드가 끝날때까지 지명받지 못했다.
[image]
드래프트를 기다리며 지명을 기다리는 안선생님.
[image]
으, 응? 왜 안뽑아가는거지... 분명히 이쯤에서 이름이 나올텐데...
[image]
2라운드까지 자신이 지명되지 않자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4] 바로 위쪽에는 한화로부터 1라운드 지명을 받은 김용주가 그를 위로하고 있다.[5] 오른편에 계신 분은 승민옹의 부친이신 안성호 씨.[6]
중견수 부족에 몇년간 시달리는 바람에 2라운드 픽을 어쩔 수 없이 타자인 북일고 김재우에게 사용하고 3라운드에서도 중견수 자원인 성균관대 외야수 이상훈을 지명하려고 했던 한화는 자신들의 순서가 올 때까지 안승민이 지명되지 않은 행운에 쾌재를 부르며 바로 안승민을 지명했다.[7]
계약금 1억 원에 계약을 체결한 후, 한화가 신진급 선수들을 일본의 피닉스 교육리그에 보낼 때 1지명인 김용주와 같이 갔으며 이후 스프링캠프에도 김용주, 김경태와 함께 같이 가게 된다.
여담으로 히어로즈의 이장석 구단주가 매우 탐을 내던 선수였다고 한다. 3라운드까지 안승민이 남아있다는 소식을 듣자 전화로 스카우트팀에 '반드시 안승민을 뽑으라' 지시했지만 지명회의 현장에 있던 스카우터들이 무시하고 김대유를 선택하자 분노한 이장석은 4라운드에 문성현이라도 지명하지 않으면 스카우터들을 잘라 버릴 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8][9][10] 이 날의 지명 이후 안승민의 활약을 보고 느낀 게 있었는지 그 이후 이장석은 지명회의 때마다 직접 참석하고 있으며, 넥센 스카우트들은 자기들 차례가 오면 마지막으로 이장석 대표를 쳐다보고 최종 확인을 받고 난 뒤 마이크를 들고 이름을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커리어



3.1. 2010 시즌


1군에 제일 먼저 데뷔할 것으로 기대됐던 신인은 1지명 김용주였지만 김용주가 기대만큼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타자들 또한 아무도 1군에 올라오지 못했기에 제일 먼저 1군에 콜업되어 4월 9일 경기에서 강습타구에 부상당한 안영명 대신에 등판하게 된다.
당시 캐스터들은 프로 첫 등판임에도 쫄지 않고 롯데의 4번타자 이대호에게 스트라이크를 뿌리면서 과감히 승부하는 고졸 신인투수에게 감탄했지만[11], 정작 경기를 보는 야구팬들은 다른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노안(…). 팀의 노장들과도 노가리를 깔만한 그의 노안으로 여러가지 개그가 오갔으며 장종훈의 은퇴식에 그의 얼굴을 붙인 짤방까지 만들어졌다(…). 지켜보던 타팀빠들이 한화는 왜 투수코치가 공을 던지냐, 한화가 숨기고 있는 또 다른 레전드였냐 등의 드립이 나오기 시작. 삽시간에 야구판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이 무렵 잠실 야구장에 경기차 갔는데 LG 쪽 고참 선수들이 자기한테 꾸벅 인사를 했다고 한다. 신인이라곤 생각 안 한 거 같고 유니폼 입고 있으니 새로 온 구단 직원 정도로 생각한 거 같다고. 안습하다.
이후 4월 13일 SK전에서의 재등판. 8회초 1:1의 상황에서[12] 등판하게 된다. 1사 주자 1루, 그리고 1점의 실점이 결승타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상황에 4번타자 박재홍을 시작으로 SK의 강력한 상위타선을 막아야하는 중책이 그의 어깨에 실리게 된다. 그가 상대하게 되는 첫 타자인 박재홍에게 안타를 맞고 1사 1, 3루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또한 대주자 모창민의 도루까지 성공, 안승민은 흔들릴 수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안승민은 최정까지 볼넷으로 채우게 된다. 이 만루의 위기에서 안승민은 흔들리지 않고 산전수전 다 겪은 고참 투수 처럼 공을 던졌다. 결과적으로는 풀 카운트까지 몰리게된 뒤 외야 플라이 후 정현석의 레이저 송구로 아웃을 잡게되지만 그 결과는 안승민의 호투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이날 안승민은 선발 김혁민과 함께 수훈 투수로 선정받으며 기념적인 프로 1승을 찍게된다.
두 경기가 보여준 배짱과 실력덕분에 현재 한화 신인투수중 가장 큰 기대를 받는 선수로 한화팬들의 기대가 급격하게 오른 상태. 그 직후 바로 힛갤에 등극하신 안슨상님
그 이후로는 패전처리조에서 주로 등판. LG전에서 조인성에게 만루홈런을 맞기도 했지만 필승조만큼이나 안정적인 불펜으로 활약했으며, 선발이 일찍 무너졌을때의 롱 릴리프로의 역할도 맡으면서 전천후로 시즌을 보내다가 첫 선발등판을 6월 4일 하게 됐다. 그러나 첫 선발등판은 긴장을 해서인지 홈런 2방을 맞고 그대로 침몰(…). 다들 프로 첫 선발경기라 그려려니 했다. 사실 이 때도 배짱이라든가 이런 부분은 신인선수같은 투구가 아니었다. 빈약한 구위가 더 크게 작용했을 뿐.
그 후 2군에 내려가서 선발수업을 하면서 1군 콜업을 기다렸다. 7월 11일 기아전을 시작으로 몇번의 등판 예전이 있었지만 계속된 우천취소로 1군에 올라오지 못하다가 마침내 2010년 8월 7일 롯데전에 선발등판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6이닝 2실점 투구수 98개 6K 3피안타(1피홈런) 1볼넷. 참고로 화요일에 2군경기에 등판해 7이닝 투구수 97개를 기록하고 3일휴식뒤에 4일만에 등판, 1군 등판해서 낸 기록이다.
이날의 안승민은 예전 등판때와 달랐다. 직구의 구속은 140대 중반에 최고구속 147을 기록했고, 이대호에게 맞은 홈런을 제외하면 전부 뜬볼로 끝났다. 구위도 좋았다. 또한 서클 체인지업은 제구는 되지 않았지만 롯데 타자 속이는데 아주 유용하게 쓰면서 롯데 타자들을 농락했다. 그리고 여전히 신인 투수같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투구를 보여줬다. 또 문제시되던 발을 끌던 버릇을 없앴으며, 밋밋하다는 의견이 많던 변화구가 굉장히 날카로워졌다. 2군에 있다 올라와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줬기에 2군 투수코치 한용덕의 결과물로 생각된다. 이날 구속을 위해 깎아먹은 제구력을 주심의 넓은 스트존 덕분에 만회한 것도 있지만, 많은 한화 팬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보고 있던 한화 팬들은 제 2의 이상군, 제 2의 정민철을 부르짖으며 이상군정민철같은 한화의 우완 에이스계보를 이을 대투수가 나타났다고 흥분해 기뻐했다.
9월 17일 롯데전에서 선발등판, 7이닝 2실점 1자책 4K 투구수 81개로 승리를 따냈으며, 9월 26일 시즌 마지막 경기인 기아전에서 7이닝 3실점 투구수 116개로 역시 팀의 승리를 이끌어 내년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안승민이 1군에서 보여준 몇번의 경기에서의 모습은 팬들을 설레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직 위닝샷이 없고 제구나 구위, 구속 등이 완벽한 것은 아니였지만 야수가 실책하거나 안타 맞고 실점하더라도 묵묵히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꽂아넣으며 그동안 한화 팬들에게 많은 심적 고통을 준 투수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성적과는 별개로 안승민에 대한 평가나 기대는 매우 좋은 편. 방송경기 공포증이나 새가슴 때문에 은퇴하는 신인 선수가 굉장히 많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런 배짱 좋은 투구는 프로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대투수들 중 타자를 겁내고 대투수가 된 사람 거의 없다.
외모만 노장같은 게 아니라 팀 동료가 홈런을 치고 이대수[13]가 어린애처럼 날뛰면서 좋아하고 있는데 옆에서 근엄한 얼굴로 박수를 치면서 칭찬하는 듯한 그의 모습을 보면 성격도 어른스러운 성격인 것으로 의심된다.[14]
2군 경기에 구경간 사람이 한용덕 코치에게 안승민이 싹이 보인다고 말하자, 그 말에 동의하면서 진작에 선발수업 시킬 걸 하고 후회했을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반드시 보완해야 할 점은 한숨 나올 정도로 높은 피안타율. 3할이 넘는다.
안승민의 2010년 최종 성적은 4승 4패 평균자책점 5.43. 시즌 중후반부터 선발 등판을 했고 중간에 중간계투로 알바도 자주 뛰었던 선수가 선발승을 3승을 거머쥐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3.2. 2011 시즌



4, 5월까지는 그런대로 호투했지만 6월부터 방전. 가끔 한두경기 잘 던져주고 저공비행을 유지했다.
최종성적은 29경기 139이닝 7승 9패 평균자책 5.89으로 첫 풀타임 시즌이었고 로테이션을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앞으로 기대할만 하지만, 여러가지로 부족한 성적임에는 틀림없다.

3.3. 2012 시즌


스프링캠프에서 박찬호의 찹 주니어가 되어 매일같이 박찬호와 함께 기사를 쏟아내었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와 연습경기, 시범경기를 걸쳐 0점대 방어율을 찍으며 무난하게 출발하였다.
4월 8일 롯데전에 선발 등판했는데, 전날 류현진이 야수들의 수비불안으로 6이닝 3실점 2자책점 퀄리티 스타트를 찍고도 패전투수가 된 것에 이어 이 날도 내야 수비가 3루수를 제외하고는 삽질을 일삼으며 3⅔이닝 79투구수 7피안타 2사사구 2탈삼진 8실점 7자책점을 기록하고 말았다. 2회말에 2사 만루에서 유격수 이대수가 땅볼 타구를 더듬어 실책으로 1:1 동점이 되더니, 팀이 5:1로 앞서던 4회말 1사 1, 3루 위기 때 롯데가 힛앤런 작전을 건 상태에서 1루 땅볼을 잡은 김태균이 1루 베이스를 밟지도 않고 2루로 송구를 했지만, 이미 타이밍상 1루주자를 잡기에는 늦었을 뿐만 아니라 송구가 이상한 곳으로 향해 주자들이 올세이프 된 것이 뼈아팠다. 이후 안타와 희생플라이, 연속 2안타를 맞고 홍성흔에게 고의4구를 내준 후 5:5 동점 2사 만루 상황에서 강판되었는데, 다음 투수 김혁민강민호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밀어내기를 내주고 박종윤 타석 때 폭투로 실점하고, 박종윤에게 안타를 맞으며 귀신 같이 승계주자 모두를 홈으로 불러들이면서 완벽한 분식회계를 시전하는 바람에 실점과 자책점이 더 추가 되어버렸다. 야수들과 후속 투수들 때문에 그야말로 안습. 팀은 이날 스코어 5:10으로 졌고 안승민은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후로도 등판 때마다 불질이나 분식회계를 거듭하는 안좋은 모습들을 보이며 팬들에게 엄청나게 까였다.
4월 27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초반부터 매 타자를 출루시키면서 흔들렸으나, 포수 신경현이 놀랍게도 도루저지로 2아웃이나 잡아줬음에도 이닝 종료 후 덕아웃으로 들어오며 글러브를 내팽개치며 화를 내는 모습을 보여 그 좋았던 멘탈 어디로 갔냐며 까였다. 안승민은 이날 1⅔이닝 36투구수 6피안타 1사사구 1K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이 스코어 11:4로 패하는 바람에 패전 투수가 되었다.
4월 29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팀이 1:2로 앞서던 6회초에 선발 투수 박찬호에 이어 중간계투로 나와 또다시 불을 지르며 ⅔이닝 22투구수 3피안타 1피홈런 1K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며 박찬호의 승리를 날려버렸다. 다른 투수도 아니고 박찬호의 승리를 날려버림으로써 팬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농담으로 노인 공경은 못할 망정 욕하면 어쩌냐는 댓글을 남겼다. 한화 팬들에게 쌍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은 흉흉한 사례까지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그나마 팀은 이날 3:6으로 재역전승하여 안승민은 패전을 면했다.
이후 불펜에서 간간히 몇경기 나왔고, 5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6회에 중간계투로 나와 나름 준수하게 던지고 내려갔다. 그리고 팀이 7회에 역전을 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5월 27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8회 초 4:0으로 팀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바티스타가 초구 쓰리런을 맞고 볼넷-사사구를 던지면서 불을 지르자 등판하여 아웃카운트를 잡고 9회에도 안정적인 피칭을 하여 팀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더불어 양훈의 승리까지 얻게하였다.
5월에는 매우 안정적인 피칭을 보여주면서 월간 방어율 0, 삼진도 12⅓이닝 동안 14개나 잡아내었다. 선발로 던질 때와는 달리 부담감도 적고, 완급조절을 할 필요가 없어 전력투구를 하고 있어 그렇다고 한다. 4월의 처참한 성적은 이번 시즌이 실질적으로 풀타임이자 두번째 시즌이기에 소포모어 징크스로 봐야 할 듯 하다. 5월 말부터는 완전히 무너진 바티스타를 대신해서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고 있다. 28일에는 역전 주자를 둔 상황에서 데뷔 첫 세이브를 터프세이브로 장식했다.
그러나 잘하는 날과 못하는 날의 편차가 너무 크다는게 문제. 6월 2일 LG전에서 양훈의 뒤를 이어 구원등판했는데, 첫 타자 윤요섭에게 HBP, 정성훈에게 120m짜리 쓰리런을 맞으면서 양훈의 주자를 불러들이고, 자신도 2실점했다.
6월 6일에는 2세이브를 기록.
6월 9일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10회 무사 1, 2루에서 팀의 6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만루 위기까지 몰렸지만 무실점으로 막았다. 11회 역시 호투하여 잘 막았으나 12회 1사 주자 만루에서 폭투로 1점을 헌납하였다. 12회말 공격찬스가 무산되어 결국 4:3으로 팀도 지고 자신도 패전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위기상황에서 호투를 하고 최근 피칭이 나쁘지 않아 4월만큼 까이지는 않고 있다.
6월 20일 LG전에서는 불을 싸지른 마일영의 뒤를 이어 6회초에 등판해 1⅓이닝을 1K 1볼넷 무안타로 틀어막고 홀드를 따냈다. 이 때 모자 챙 안에 "타자를 보고 던져"라는 글귀가 카메라에 잡히면서 노안 드립을 향한 자폭을 해버렸다.
6월 22일 두산전에서는 박찬호 다음으로 등판하여 6회부터 8회까지 3이닝 1피안타, 1볼넷, 3K로 두산타선을 막아내었다. 팀이 4:2로 지고있는 상황에서 호투를 하였고 이것은 9회 말 한화가 역전을 하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후반기부터 마무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7, 8월에 1점대 방어율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선발보다는 불펜 체질인듯.

3.4. 2013 시즌



개막전부터 화끈하게 불쇼를 저지르더니, 리그 굴지의 배팅볼 기계로 전락하여 신나게 두들겨 맞고 2군행. 이후 어깨 부상으로 인해 2군에서도 1경기 출장에 그치며 시즌을 마감했다. 풀 타임 마무리로 새롭게 출발하려던 커리어가 대차게 꼬이고 말았고, 마무리 자리는 사실상 송창식에게 넘어갔다.
시즌 종료 후 두 차례의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탁해진 왼쪽 눈의 수정체를 제거하고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수술. 시력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면 안경을 벗고 공을 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어깨 부상이 나아지지 않아 2014 시즌 전에도 재활군에 머무르다가 결국 2014년 4월, 구단과 상의하여 공익근무요원 입대를 결정했다. 서산시청에 복무 중.[15]

3.5. 군 복무


2014년 5월 26일 32사단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소했다. 따라서 빠르면 2016년 중반에 소집해제되어 야구장에서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본래는 청주시청으로 자대배치를 받아 거기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안승민이 복무했던 과는 청주시청에서도 실세(기획재정 관련)인 과로 남자 공무원들과 여자 공무원들이 죄다 금수저~은수저 집안 출신에 명문대 출신에 장교 출신 태반이라 다행히도 성질 더러운 오크남들&오크녀들은 아무도 없었고 남자 공무원들이랑 여자 공무원들이랑 매우 잘 지내며 복무했지만, 청주가 대도시라서 그런지 업무가 대기업 수준으로 굉장히 바빠서 공무원이건 공익이건 조출에 야근까지 밥먹듯이 해서 힘들다고 내색조차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16] 그러다 2016년 현재, 주소지를 2군구장이 있는 서산시로 옮겼고 서산시청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다. 이 때문에 서산시 SNS에 안승민의 근황이 올라오기도 하였다. 시청에서 같이 일을 하는 직원들의 댓글 달린 것을 보면 평이 매우 좋은 편이다. 덤으로 청주시청 시절에 비하면 서산시청 시절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매우 편했다고.[17]
[image]
2016년 5월 25일에 소집 해제됐으며, 한상훈이 썼던 3번을 받았다.

3.6. 2016 시즌


전역 후 부상 때문에 2군과 재활군을 오가다가 9월 27일, 윌린 로사리오가 말소된 자리에 콜업됐다.
그러나 9월 30일 공 한 번 못 던져보고 말소됐다(…).
야구 불법 도박에 400만원을 배팅한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지인을 통한 불법 도박사이트 배팅 혐의.
성실 근면한 성격과 훌륭한 스터프, 그리고 마운드 위에서의 자신감을 겸비해 비교적 빠르게 1군 무대를 밟고 선발 투수부터 마무리까지 할 정도로 고속성장하긴 했어도, 그 뒤 부상을 당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기에 어떻게 그런 선수가 분명히 본인 선수 생활에 큰 지장을 줄 수도 있는 불법 도박 베팅을 할 수가 있는지 의아해하면서도 안타까워하는 팬들이 많은 상황. 일단 본인은 강력하게 부인 중이지만, 만약 수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게 된다면 그게 면죄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편 시즌 종료 후, 전직 메이저리거인 공주고 대선배의 번호인 61번을 달게 되었다.

3.7. 2017 시즌


결국 혐의가 인정되어 2017년 2월 14일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다만 초기 보도가 맞다면 지인을 통한 배팅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즉, 단순히 돈을 빌려주었다가 엮인 것일 수도 있으니 안승민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거나, 지인 조사 과정에서 안승민의 유죄 증거가 불충분하다면 무죄 판결이 가능하다.
12월 1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벌금 400만 원형을 선고받았다.

3.8. 2018 시즌


1월 31일 KBO 홈페이지 선수 이동 현황 탭에서 자유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이제서야 육성선수로 전환하는 듯으로 보인다.
2월 21일 김병승과 함께 30경기 출장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해당기사 이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화에서 방출된 뒤 연천 미라클에서 뛰다가 퇴단한 김병승은 다시 프로 팀 유니폼을 입으면 징계가 적용된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다시 프로로 돌아 올 가능성은 사실상 없으므로 큰 의미가 없다.
거기에 한화 구단에서 추가로 20경기 출장정지를 추가로 내려서 총 50경기 출장정지를 받게 되었다. 대략 6월까지는 뛸수 없게 된 셈이다. 안승민은 당초 항소를 준비했으나 항소를 포기하고 징계를 받아들였다고 한다지만 재판부는 "도박죄가 성립한다. 초범으로 전과가 없고, 도박으로 물의를 빚은 다른 프로 선수들에 비해 규모와 횟수가 크다고 보이지 않는다. 승부조작도 아니지만 도박이 갖는 위험성, 법정에서 보인 태도, 수사 과정에서 관련자들의 진술을 맞추려 한 정황까지 고려하면 피고인의 잘못은 가볍지 않다"고 선고 공판에서 설명했기에 안승민의 주장을 신뢰하기 어렵다.
재판으로 인한 실전 감각 저하를 만회하려면 3군에서 몸을 다시 만들고 2군에서 구위를 다시 끌어올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18]
육성군에서 등판 중인 듯하다. 7월이 되면서는 2군 경기에도 올라오는 중이다. 그러나 두 자릿수의 평균 자책점을 찍는 등 부진했고, 결국 시즌 후 10월 25일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고 방출되었다.

4. 방출 이후


한화에서 2018 시즌을 끝으로 방출되면서 불러주는 팀이 없어서 사실상 은퇴한 상태이다. 2019년 4월부터는 아마추어 야구 선수 출신인 친형과 대전 관저동에서 야구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까지 개설했으며 안부장TV라는 채널로 자신의 현역 시절 스타일이나 공을 던지는 방법, 견제 방법 혹은 아카데미에 다니는 어린 선수들이나 사회인들의 영상을 촬영하는 등의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5. 피칭 스타일


기본적으로 체격조건이 상당히 좋은 편이었으며, 유망주의 대거 미국 진출로 씨가 완전히 말라 있던 2009년 드래프트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최고구속 보유자였기에 기본적으로 기대치가 있던 투수였다.
그러나 안승민이 제일 먼저 1군에서 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쫄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던지기 때문이었다. 위에도 서술했듯이 프로 첫 등판에서도 상대 타자들에게 쫄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던지면서 기회를 부여받았으며, 이후 계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리를 잡았다. 약체팀이었던 공주고에서 있었던 탓인지 신인 투수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멘탈면에서 굉장히 안정되어 있어 경기 내내 뒤에 있는 야수들이 에러를 하거나 에러성 플레이를 하고 타선지원을 받지 않아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깃털과 같은 속구[19]에 제구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안영명처럼 공격적인 피칭을 한 덕에 기존 한화 투수 유망주였던 김혁민, 양훈, 유원상과는 다르게 볼넷을 내주다가 자멸하는 경우는 없었다. 실제로 볼넷은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가장 적은 수준. 대신 피안타율 역시 굉장히 높았다. "볼넷을 내주느니 차라리 안타를 맞아버려!"라는 팬들의 바람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모습의 투수로, 결과적으로 볼넷을 어느 정도 내주고 비슷한 평균자책점을기록한 장민재, 양훈 등의 투수와 같은 WHIP을 기록했다. 즉 볼넷을 안 내주는 만큼의 숫자의 주자를 안타로 내보냈다(…). 이는 부족한 구위로 존 안에 어떻게든 구겨넣다보니 나온 결과.
유원상과 양훈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스터프와 구속을 잃었고, 그외의 투수들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구속을 못 끌어올리거나 가지고 있던 구속도 잃어버린 상태에서 정재원, 김혁민과 함께 145km/h 이상의 공을 던지면서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다만 본인의 의향인지 파워피칭 보다는 땅볼로 맞춰잡는 스타일의 투수로 방향을 잡고 발전했으며, 주된 구속도 130km/h 후반~140km/h 초반에서 놀았다. 삼진보다 맞춰잡는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도 피안타율을 높이는 데 일조하였으며, 변화구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는데 주된 변화구인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이 모두 밋밋해서 난타를 당하는 게 일상이라는 문제점도 상존했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일부 팬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게 아닌가 걱정하였다. 안 그래도 신인지명 때 빠른 구속과 못해도 중간은 가는 하드웨어를 가지고도 지명순위가 뒤로 쭈~욱 밀려버린 이유가 성장 가능성을 낮게봐서 지명을 꺼렸기 때문인데, 불행하게도 추구하는 방향마저 딱 예상했던 그대로 가버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안승민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이 1.구속에 비해 구위가 약한 것. 2.뛰어난 변화구가 없음. 3.좋지 못한 제구력인데 안승민은 구위도, 제구도 별로인데 유일한 강점인 구속마저 포기해버려 2013년에 난타당했다는 것이다. 땅볼 투수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땅볼 투수도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장점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결국 2018년 시즌 후 구단에서 가망이 없다는 이유로 방출되었다.

6. 이모저모



6.1. 노안의 전설


[image]
우리_친구_아이가?.jpg
놀라지 마시라. 1991년생 동갑내기 친구들[20]이다.
[image]
[image]
[image]
이상한_한화_족보.jpg
맏형은 박정진(1976년생), 그 아래 왼쪽이 장성호고 오른쪽이 정원석(1977년생 동갑), 그 아래가 1981년생 이대수이며 안승민은 이대수보다 10살 어린 막내 되겠다.
드디어 노안 친구가 생겼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태권.
[image]
[image]
극과 극
참고로 프로필에 보다시피, 박찬호의 공주중학교, 공주고교 후배이다. 18년의 차이가 난다고. 2011년 12월 박찬호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 '박찬호는 나의 우상'이라며 많은 것을 배우겠다는 소감을 표현했다. 훈훈한 후배의 소감이지만 문제는 외모.
OSEN에서 조숙해 보이는 외모에 대한 댓글을 볼 때 상처는 받지 않느냐고 질문을 하자, "팬 분들께서 그러시는 것도 모두 저에게 관심이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어요. 상처를 받기보다는 그런 관심이 더 좋습니다. 저에게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기 때문에 그러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고마운 마음입니다."라고 답변해 넓은 아량을 보여주었다.
안승민 비긴즈
고종황제 시절과 현재시절 비교
야구 안 보는 사람의 반응
한대화 갈구는 장면[* 제목: 너 야구 몇년했어 이 xx야.]
한대화 감독과 안승민은 동년배
나라를 빼앗겨 본 자의 슬픔.JPG
[image]
이 문서를 자주 보는 사람은 알겠지만, 야구팬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한때 취소선 그은 생일이 점점 빨라지더니 급기야는 조선시대를 넘어 선사시대까지 날아갔던 바 있다. 이젠 탄생년이 1891년으로 굳어가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얼굴과 상반되게 목소리는 또래처럼 앳되었다! 그 앳된 목소리로 이제는 "28년간 연마한 포크볼이 주효했다"는 식의 노안 개그를 스스로 치고 있다(…).
안승민이 2년차일 때 3년차였던 정수빈이 폴더인사(…)를 했다고 허구연이 방송 중에 말한 적이 있다. 이후 스톡킹에 정수빈이 출연하여 사실임을 밝혔다.영상

6.2. 그 외


  • 어린 시절 눈을 나뭇가지에 찔린 것이 원인이 되어 백내장을 앓고 있다고 한다. 안경을 쓰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라고. 관련기사 이걸로 군 면제를 신청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21] 이제 남은 것은 역시 국제 대회 메달 뿐인가... 근데 팀 버프를 못받으니 선발될 가능성이... 거기다 병무청이 국제대회 메달 수상자도 병역면제 혜택 안 주겠다고 드립을 시전 중이다. 전술한대로 2013 시즌 종료 후 왼쪽 눈에 인공 수정체를 삽입했다. 그래도 천만다행히 현역장교/현역부사관/현역병 복무는 피했고 공익 복무에 성공했다. 안승민이 공익으로 빠진 이유가 (다른 문제가 더 있을 수 있으나) 이것 때문일 수 있다. 백내장으로 인한 인공 수정체 삽입 수술자는 4급 대상자다.
  • 안경을 벗고 수염을 깎으면, 약간 어려보이기는 한다.[22] 그럼에도 우직한 뿔테안경 고집하는 이유는 렌즈나 수술은 운동과 선수생활에 지장이 있어서다. 남자던 여자던 20대 초반이면 한참 외모에 신경쓸 나이인데, 그런 비쥬얼 다 포기한채 속사정도 모르는 찌질이들이 노안이다 뭐다 놀리는거 그냥 쿨하게 생까시고 그냥 아버지께서 사주신 검은 뿔테 안경쓰고 묵묵히 던지는 걸 보면 정말 대인배는 대인배인.
  • 과거 13번은 한희민이 쓰던 번호인데 다른[23] 선수[24][25]과는 달리 등번호 값 제대로 해주고 있다(?!).
  • 정민철 투수코치가 현역 시절 사용하던 글러브를 선물로 줘서 경기에서 그 글러브를 사용한다고 한다.
  • 좋아하는 곡이 변진섭의 '희망사항'(컬러링이라고), 김흥국의 '호랑나비', 그리고 남진의 '둥지'라는 답변을 하셨다. 기자가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말하라니까 진짜라고 하신다... 선호곡을 저렇게 말한 이유는 첫째로 어차피 나이 들어보이는데 선호곡도 걸맞아야 웃길 거 같아서라고 했다. 그리고 데뷔 초 구대성까지 다 있는 투수조 회식에서 그를 제외한 투수조 막내들이 발라드를 선곡하는 등 분위기를 개판 내자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호랑나비를 선곡했다고. 그 뒤로 반개그맨이 돼서 뭔짓을 해도 크게 혼나지 않았다고 한다.
  • 2014년 3월 3일 오키나와 전훈 중 지진이 있었는데 다른 선수들이 모두 무서웠다는 와중에 안승민옹께서 홀로 흔들림 없는 반석같은 평정심을 보여주시어 주위를 숙연케 했다.
[image]
  • 자기가 노안인 것도 잘 알고 있지만 그 이미지가 장민재 형 때문에 희석됐다며 '형은 그냥 좀 못생겼어'라고 디스한 적 있다.(...) 한때는 김혁민 장민재 송창식 등과 세트 취급 당했다고 한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0
한화
25
63
4
4
0
0
0.500
5.43
80
10
17
28
43
38
1.51
2011
29
139
7
9
0
0
0.438
5.89
177
22
38
90
101
91
1.49
2012
62
72
3
7
16
5
0.300
4.75
69
6
26
53
41
38
1.25
2013
18
33⅔
3
4
0
2
0.429
7.49
51
5
10
12
31
28
1.78
2014
군복무(공익근무요원)
2015
2016
1군 기록 없음
2017
2018
<color=#373a3c> KBO 통산
(4시즌)
134
307⅔
17
24
16
7
0.415
5.70
377
43
91
183
216
195
1.47

8. 관련 문서


[1] 야구부가 있는 공주시의 초등학교.[2] 송과장의 등장으로 안부장으로 더 많이 불렸다.[3] 프로에 와서 교정을 한 결과 전력투구를 하면 150 초반은 던질 수 있다고 한다. 다만 "던질 수 있는"거지 제구력같은 문제가 남아있어서 던지지 않는다고.[4] 그런데 박명환야구TV에 나와서는 좀 다른 얘길 했다. 지명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고 그냥 생각이 많아서 습관적으로 저렇게 행동한 건데 언론에는 이 사진만 나갔다는 것. 자기는 2라운드 선수인데 그해 더 상위 순번 선수보다 기사가 더 많이 나와 좀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5] 김용주는 고교시절 북일고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끈 에이스 투수로, 봉황대기에서 21이닝동안 단 1점만을 허용하면서 북일고의 우승을 이끌어냈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분명히 1지명으로 뽑힐만한 성적을 냈었던 투수이기는 하다. 그러나 운동선수치고 작은 체격(프로필상 175cm)과 고등학생임에도 불구하고 경기 운용능력과 제구력으로 승부하는 투수라는 점에서 장래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았다. 무엇보다 고교시절의 투구이닝수가 너무 많아서 혹사 후유증이 걱정되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무리 북일고 선수라지만 2, 3지명쯤으로 뽑을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용주가 1지명으로 올라오게 되자 또 다시 북일고 학연라인을 의심하며 분노를 터뜨렸다.[6] 사진을 잘 보면 김용주의 왼쪽에 역시 이름이 불리지 않아 초조해하는 문성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문성현은 안승민보다 뒷 순번인 4라운드에서 히어로즈의 지명을 받았다.[7] 참고로 이상훈은 안승민 바로 다음 차례인 4라운드에 지명하게 된다. [8] 실제 2009년말에 히어로즈 스카우트팀에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다. 스카우트 책임자였던 주성노 이사가 떠나고 노춘섭 이사가 새로 들어왔고, 서한규 스카우터는 2군 작전코치로 자리를 옮겼다.[9] 반대로 당시 김시진 감독은 김대유를 상당히 원했다고 한다. 김대유의 아버지인 김종석과 선수시절의 친분이 있었기 때문이다.[10] 실제 부산고등학교 시절에 보여 준 것이 전혀 없던 김대유를 뽑은 것에 많은 히어로즈 팬들이 인맥드랩이라면서 반발하였다. 김대유는 지명 직전까지 전혀 거론되지 않던 투수로, 프로 입단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김대유는 예상대로 군 복무 후에도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하다가 2차 드래프트를 통해 히어로즈를 떠났다.[11] 성적 자체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1과 1/3이닝에 3피안타 3자책점.[12] 재미있게도 4일전 그가 강판된 뒤에 등판했던 투수이자 한화 최고참인 구대성이 박정권을 볼넷으로 내보된 뒤.[13] 이대수도 타자를 대표하는 노안으로 김태균보다 겨우 1살 많다.[14] 실제로 공주고 시절 별명은 아버지였으며 동기와 후배가 매우 잘 따랐다 전해진다.[15] 카카오스토리 서산시청 공식채널[16] 안승민 본인은 자기가 괜히 힘들다고 말했다간 공무원들한테 얻어맞을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공무원들이 공익들을 최대한 배려해줘서 조출에 야근은 잘 안 시켰다고 하고 설령 시켰어도 그만큼 추가수당을 지급해줬다고 한다.[17] 같은 충청도 관내에서 청주시청과 비슷한 수준의 강력한 업무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은 천안시청이다.[18] 공익 입소 전 1군에서 뛴 13 시즌에도 마무리로 낙점되었음에도 공이 치기만 하면 그야말로 쭉쭉 뻗어나가는 상태였다.[19] 다만 공의 회전 수 같은 명확한 지표 없이 서술되었음에 유의하자. 구위가 좋아서 피홈런이 없는 투수는 몇 경기 던지고 은퇴한 투수가 아니라면 없다. 복판에 밀려 들어간 경우 클레이튼 커쇼라도 답은 정해져 있다. 또한 제구가 안되는 투수의 경우 구위가 떨어져서 피안타가 나온다고 보기도 애매하다.[20] 사진에 나와있지 않지만 수호, 윤지성박초롱, 아이린하고도 동갑이다. 심지어 4명 전부 생일은 안승민보다 빠르다. [21] 취소선을 쳤지만 사실이다. 군 면제는 금수저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안승민 본인도 집안 재산으로 마구 병역면제를 받아내는 금수저들을 매우 안 좋게 본다고.단 요즘은 현역입대 대상자가 하도 없다 보니 금수저든 뭐든 다 몸만 괜찮으면 현역이라는 듯.[22] 어디까지나 안경 쓰고 수염 기를 때에 비해서다.[23] 18번은 아부지제구력 마술사의 등번호였다. 백승룡이 방출되기 전까지 쓰다가 14시즌 부터는 신인 최영환이 쓰고 있는 중.[24] 김태균의 52번. 김강이 2차 드래프트로 떠나고 일본에서 복귀하고 나서 김태균 본인이 다시 쓰고있다.[25] 이영우의 등번호였던 34번. 이후 18번을 쓰다 13시즌 이후 방출되었다. 오준혁이 쓰고 있었지만 경찰청 입대 이후로는 결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