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 강의 다리

 

1. 버마 철도의 277번 다리
2. 위의 다리를 주제로 한 프랑스 소설
3. 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국 영화
3.1. 개요
3.2. 시놉시스
3.3. 등장인물
3.4. 읽을거리
3.5. 관련용어


1. 버마 철도의 277번 다리


태국 서부 깐짜나부리에 있는 다리. 본디 매끌롱강[1]에 있지만 쾌노이(Khwae Noi) 계곡에도 걸쳐 건설되었기에 이 계곡을 흐르는 강의 널리 알려진 이름인 '콰이 강'의 다리로 알려졌다.
1942년 일본군이 영국 육군 포로들을 이용해 건설, 1943년 10월에 완공되었다. 태국이 이 다리를 '''죽음의 철도'''라는 기존에 잘 알려진 명칭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를 추진 중인데, 일본이 이 '죽음의 철도'라는 명칭에 항의하며 명칭 변경을 압박하고 있다고 한다. 태국, 日침략전쟁 잔재 '죽음의 철도' 세계유산 추진…명칭 논란

2. 위의 다리를 주제로 한 프랑스 소설


혹성탈출의 원작자이기도 한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Pierre Boulle)이 버마 철도 건설 당시, 일본군영국군간에 있었던 갈등 등을 주제로 쓴 소설이다. 1952년 출간되었으며, 1954년 영국의 잰 필딩(Xan Fielding)이 번역한 후 인기를 얻어 1957년 영화화되었다.
프랑스인이 영국인을 소재로 했던터라 노골적인 영국인 디스가 심한 편이다, 그래서 원작소설 자체를 상당히 싫어하는 독자들도 많았고 영국 참전용사측에서는 작가를 공개적으로 고발까지 했다. 뭐 영국작가들의 전통있는 프랑스군 디스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사실 영국으로선 할 말이 없는 게 배경이 되는 말레이 전투에서 영국은 10만의 병력으로 제대로 싸움도 안 하고는 침공해 오는 3만 명의 일본군에게 항복.. 물론 자세히 따져보면 그럴 만도 하다만. 말레이 전투가 바로 그 배경이다. 니콜슨 대령과 같은 찌질이에[2] 적에게 부역하는 매국노는 없다는 의견이었다.[3]
나중에 아카데미 각색상을 피에르 불이 받았을때 논란이 심했다. 영어도 못 하는 피에르 불이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것은 어른의 사정, 사실 콰이강의 다리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매카시즘에 걸려서 공개적으로 이름을 밝히기 어려웠던 게 오스카상을 피에르 불에게 줄 수밖에 없는 사정이었다.

3. 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국 영화



'''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image]
'''최우수 작품상'''
''' 제29회
(1957년) '''

''' 제30회
(1958년) '''

''' 제31회
(1959년) '''
80일간의 세계일주

''' 콰이 강의 다리 '''

지지#s-7.2


[image]
'''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감독상·남우주연상[4]·각색상·촬영상·편집상·음악상 수상''', 남우조연상[5] 노미네이트.
'''장르'''
전쟁
'''러닝 타임'''
161 분
'''개봉일시'''
1957.10.02
'''감독'''
데이비드 린
'''출연'''
윌리엄 홀든,알렉 기네스,하야카와 세슈,잭 호킨스
'''국내등급'''
12세이상 관람가


2007년에 대한민국에서는 저작권이 만료되었다

3.1. 개요


1942년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때, 일본은 남방작전의 일환으로 병력과 보급품을 수송하기 위한 죽음의 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영국군 포로들을 투입한다. 하지만 포로 수용소장인 사이토 대좌(하야카와 세슈 분)가 장교들까지 노역에 투입하려들자, 영국 육군 중령 니콜슨(알렉 기네스 분)은 제네바 협약을 들어 이를 거부하고, 사이토는 니콜슨을 독방[6]에 감금하는데…
니콜슨은 독방에 감금되면서도 저항하여 장교도 노역에 동원하려던 사이토의 의지를 꺾었지만, 정작 군기유지를 위해 니콜슨은 다리건설에 전력을 쏟다 자기가 나서서 병자와 장교도 노역에 동원한다. 한편, 포로로 붙잡힐 당시 더 나은 대우를 받고자 중령이라고 계급을 속인 미 해군 수병 쉬어즈(윌리엄 홀든 분)는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하지만, 계급을 속였던 사실이 발각되고[7] 길을 잘 아는 사람이라 억지로 워든(잭 호킨스 분) 미 육군 대령이 이끄는 특공대와 함께 콰이 강의 다리 폭파 임무에 투입된다. 정작 작전중에는 길이 막혀서 쉬어즈의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전쟁과 군대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기행을 행하며 그 속에서 의미없이 움직이고 또 죽는 인간군상을 그려낸 영화이다.

3.2. 시놉시스



러일전쟁 승전 기념일이라는 데드라인에 건설을 끝내지 못하면 할복할 위기에 처한 사이토 대령은 니콜슨 중령을 풀어주게 되고, 니콜슨 중령은 '이렇게 된 바에야 후세에 길이 남을 다리를 건설하자' 하며 능동적으로 다리 건설을 지휘한다. 다리 건설이 끝나고 일본군의 수송열차가 다리를 처음으로 건너는 날이 오자, 니콜슨 중령은 '영국군이 만들고 니콜슨 중령이 지휘함'이라는 명패를 걸며 축하한다. 이에 연합군 특공대는 다리 폭파를 시도하지만 '''니콜슨 중령을 포함한'''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하나 둘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특공대원의 죽음을 보고 정신붕괴에 이른 니콜슨 중령이 쓰러지면서 역설적으로 다리의 폭파 스위치를 누르게 되고, 다리는 성공적으로 폭파[8]된다.

3.3. 등장인물



3.4. 읽을거리


  • 니콜스 대령의 실제 모델은 필립 투지 중령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 니콜스 대령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영국군의 자긍심을 위해 다리 건설을 독려하는 행동을 하진 않았다. 대신 공사를 지연시키기 위해 불개미를 풀어 나무를 갉아 먹게 하고, 콘크리트를 엉망으로 배합했다.
  • 알렉 기네스는 최초로 캐스팅 제안을 받았지만, 니콜슨이라는 부역자 캐릭터와 원작소설이 프랑스인의 반영감정을 담고 있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하지만, 찰스 로튼, 제임스 메이슨, 랠프 리처드슨 등 다른 영국 배우들이 모두 이런저런 사정으로 거절해서 다시 제안을 받자, 출연을 결심했다.
  • 원작에서는 찌질이인 니콜슨이 여기서는 카리스마의 소유자로 나온다. 다만 니콜슨도 어느 정도 부역에 대해서는 양심의 가책을 가지고 있다. 개통전날 사이토와의 대화장면은 명장면이다.
  • 원작에서는 다리가 폭파되지 않는다. 니콜슨이 훼방을 놓는 바람에 폭파 실패, 대신 유일한 생존자인 특공대원이 기차와 주변 부대를 폭약으로 날리고 생포된 자신의 대원인 조이스와[9] 조이스를 끌고 가는 니콜슨을 박격포로 가루가 되도록 날려버린다.[10] 그리고 인도의 사령부에서 그 미친 영국 장교놈에 대해서 보고하는 것으로 끝난다.
  • 쉬어즈는 원작에서는 인도 주둔 영국 특공대 장교이다. 미군 포로였다 탈주해서 특공대에 편입되었다는 건 영화의 설정이다. 포로 수용소에서의 쉬어즈의 모습은 윌리엄 홀덴의 전작 <제17포로 수용소>에서 많이 따왔다.
  • 영화에서는 꽤 비중이 있고 마지막에 힘들게 만든 다리가 한순간에 날라가는 것을 보고 "모두 미쳤군. 미쳤어"라는 명대사를 날린 군의관 클립톤은 원작에서는 병풍, 그나마 다리 완공전에 다른 수용소로 이송된다.
  • 흥행은 대박으로 283만 달러로 제작하여 북미에서만 306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 한국에서는 1981년 4월 10일, 무려 22년만에 개봉했다. 서울관객 18만을 기록하며 흥행은 그럭저럭 성공했다.
  • 일본 우익들은 이 영화에 묘사된 사이토 수용소장의 찌질함[11][12] 에 분노를 터트렸고, 동시에 서구의 비평가들도 사이토의 찌질함은 감독의 오리엔탈리즘의 표출이라는 의견도 있다. 막상 영국 참전용사들은 오히려 일본 장교가 지나치게 인간적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태평양 전쟁의 경험때문에 동시대를 다룬 영국 영화들에서는 일본군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출연한다. 심지어 이후에 나온 "수용소 여인" 같은 영화에서도 영국여자를 고문하고 강간하는 일본인들을 그릴 정도였으니, 이 작품에서 묘사된 일본인에 대해서 영국에서 비난할수 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이토 대령의 실제 모델인 부소장 사이토 소령은 공명정대한 행동으로 포로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이럴 수 밖에 없는 게 이 당시 버마방면군 사령관은 미친 악마인 기무라 헤이타로가 아니라 멍청하긴 해도[13] 심정은 순박한 가와베 마사카즈였다. 사실 이 영화는 어떤 의미로는 매우 흡사한 일본군 장교와 영국군 장교의 귀족주의가 서로 맞부닥치는 것을 그렸다.
  • 시어즈 역의 윌리엄 홀든은 이 영화 전에 찍은 <제17포로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에 성공해봤자 태평양 전선으로 끌려가서 일본군 포로가 될 것이다'고 비아냥거리는 대사가 있었는데, 정말 그렇게 되었다!
  • 무려 30여년이 지난 1990년에 국내에 난데없이 콰이강의 다리 2(1988년 영국영화)가 국내에 개봉했다. 하지만 이 영화 원제는 Return From The River Kwai. 콰이강의 다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의 속편이 아닌 걸 멋대로 이 제목으로 개봉했다. 그냥 평작 수준이다. 1991년 8월 17일 주말의 명화더빙 방영된 바 있다. 여기선 영국 육군 의무장교가 꽤 좋게 나오는데 영국 육군 포로를 참수하고 포로 학대를 저지르던 일본 육군 장교를 보다못해 자기 손으로 찔러죽이고 포로들을 알아서 탈출시키게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나마 포로 호송에 동원된 일본 상선선장 등 선한 일본인도 좀 나온다.
  • 50년대 영화답게 CG없이 오로지 아날로그 기술로만 촬영했는데 영화 중반에 포로들이 일부러 다리를 파괴시키는거나 영화 후반부에 다지은 다리를 폭파시키는 장면에서 기차까지 전부 다 실물 촬영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논스톱 촬영으로 촬영했다고 한다(사실 1950년대 영화의 후반부촬영은 거의 다 비슷했다). 때문에 실제로 NG나지 않게 배우들이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고한다.
  • 주제곡은 보기 대령 행진곡인데 우리나라에선 콰이강의 다리 주제곡으로 더 널리 알려져있다. 특히 포로들이 휘파람으로 부는 버전. 마지막에 다리가 다 폭파된 뒤 보기 대령 행진곡이 흘러나오는 장면은 명장면.
  • 탑기어 시즌 21 스페셜에선 세 MC들이 트럭을 타고 버마를 지나 콰이강에 다리를 놓는 임무를 수행했다. 대나무로 만든 다리를 놓고 세 트럭이 전부 지나가면 임무성공. 다리를 놓는 중 제레미 클락슨은 자신은 알렉 기네스의 역할을 맡겠다고 자처하며 농땡이 부리다가 빡친 제임스와 리처드에게 독방에 감금 당한뒤 데꿀멍. 고생해서 만든 다리라 마지막에 폭파하지않았다.

3.5. 관련용어



[1] 현재 쾌야이(Khwae Yai)로 개칭.[2] 원작에서 니콜슨 대령은 말레이 반도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해상으로 탈출하자는 부하들의 만류를 저버리고 휘하 부대를 모은 다음 거창한 해산식을 하고 적에게 항복했다. 영화판을 봐도 앞뒤양옆상하가 다 꽉 막혀 있는 이 인간때문에 답답한 사사람 많았을 것이다.[3] 다만 매국노는 아니고 실제로 영국군 고위 장교 포로중에 포로들과 수용소 당국과 협의를 잘 해서 많은 부하들을 살린 사람은 있다. 이 사람은 존경받는 참전자이다.[4] 알렉 기네스는 데이비드 린 감독의 차기작인 아라비아의 로렌스에도 출연했으며, 스타워즈 시리즈의 늙은 오비완 케노비 역할로도 잘 알려져 있다.[5] 하야카와 세슈[6] 함석으로 성인 한명이 간신히 들어갈만한 공간으로 '''오븐'''이라고 불린다![7] 쉬어즈는 탈출한 뒤에 스리랑카에서 탱자탱자 놀면서 자신이 포로 생활중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제대하려고 했다. 문제는 쉬어즈가 계급을 속였던 것이 높으신 분에게 걸리는 바람에 특공대에 들어갈지, 아니면 군사재판에 회부되는지 결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8] 실제로는 폭파되지 않고, 이후 연합군 폭격에 의해 파괴되었다.[9] 영화에서는 사살 처리된다.[10] 그 부대의 철칙이 절대로 포로가 돼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에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동지의 손에 죽는 것.[11] 영화 내내 니콜슨의 당당함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다 다리건설을 니콜슨이 맡자마자 자기가 지휘할때보다 훨씬 빠른 진척도를 보이니 겉으로는 '잘하네. 이대로 계속해봐'하고 쿨한 모습을 보여주더니 자기방에서 혼자 질질짜는 모습까지 보인다.[12] 다만 겉으로는 당당한척 위엄있는척 행동하지만 뒤로는 섬세하고 소심한 모습덕에 악당두목이지만 입체적인 캐릭터로 평가받기도 한다. 흔히 제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하는 첩보영화 등에 등장하는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나치 장교 등과 비교해보자.[13] 이 양반의 유명한 행각이, 버마군 사령관으로서 임팔 작전을 그대로 인가해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