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헤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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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독일의 前 축구선수'''“헤슬러는 기술적으로 완벽합니다. 2~3년 후에는 마라도나에 근접할지도 모릅니다.”'''
1990년대를 대표했던 독일의 유명한 미드필더들인 로타어 마테우스[1] , 슈테판 에펜베르크, 마리오 바슬러, 안드레아스 묄러와 함께 최고의 미드필더로 손꼽혔으며 그중에서 마테우스를 제외하고는[2] 유일하게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이기도 하다. 국대에서는 1990년 월드컵과 유로 1996에서 우승에 기여하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정작 클럽에서는 단 한 번도 우승을 거머쥐지 못한 비운의 선수이기도 했다. 1994월드컵에서는 한국전에서 아직도 과거 영상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클린스만의 터닝슛을 측면에서 어시스트하기도 했다. UEFA 유로 1992, 1994 FIFA 월드컵 미국, UEFA 유로 1996,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가 이 분의 최전성기라고 하겠다. 국대 커리어는 두 번의 메이저대회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 경력이 있지만, 그 와중에 녹슬어가던 전차군단을 홀로 지켜내던 노병이기도 하다. 심지어 독일 국대 사상 최악의 참사였던 UEFA 유로 2000에도 마테우스와 함께 주전으로 나가 뛰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국대 커리어로도 동시대 활약했던 선배 로타어 마테우스에 가려 2인자 , 아니 3인자 신세였고[3] 클럽에서는 커리어 자체가 초라했던 마당이기에 국내에서는 그의 인지도가 매우 안습하다(...).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헤슬러는 18살이라는 나이에 1. FC 쾰른에 입단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한시즌만에 주전으로 도약하였고, 이내 팀의 핵심으로 성장하게 된다.
1985-86시즌에는 쾰른이 구단 역사상 최초로 UEFA컵 결승 진출에 성공하기도 했다.[4] 팀은 우승후보로 거듭났고, 1988년엔 3위, 1989년과 1990년엔 분데스리가에서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덕분에 헤슬러는 국대에 승선할 기회도 얻게 되었다.
1990년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세리에 A의 강자 유벤투스 FC로 이적한다. 유벤투스는 헤이젤 참사 이후 트라우마로 인해 일찍 플라티니가 은퇴하는등 전력에 큰 손실을 입고 휘청대는 중이었다. 그런고로 헤슬러에게 기대를 걸었고, 헤슬러는 1990-91 첫시즌에 31경기를 출전하였다. 그러나 유벤투스는 7위에 그쳤고, 헤슬러는 한시즌만에 AS 로마로 떠난다. 로마에서 3시즌을 뛰었으며 88경기에 출장하여 11골을 넣었다. 다만 국대와는 다르게 팀은 항상 중위권에 쳐졌고 1994년엔 카를스루에 SC로 이적하여 다시 분데스리가에 복귀한다.
소속팀이 만년 하위팀인 카를스루에였지만, 헤슬러의 기량은 이에 상관없었고 유로 1996 대회 명단에도 선출되었다. 그는 여기서도 독일의 우승을 이끌지만, 소속팀은 강등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헤슬러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결국 1997-98시즌에 팀이 강등된다.
헤슬러는 자유계약으로 풀려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였지만 도르트문트의 핵심중 하나였던 안드레아스 묄러와의 경쟁에서 이기지 못했고, 주전에서 밀린 헤슬러는 TSV 1860 뮌헨으로 이적하였는데 이미 30대 중반을 넘겼음에도 4년동안 주전으로 활약하였다.
그리고 선수 말년엔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에서 뛰었으며, 38살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한다. 그는 현역시절 독일의 레전드급 미드필더로서 활약을 하였으나, 아이러니하게 소속팀에서는 단 한개의 메이저 타이틀도 얻지 못하였다.
2.2.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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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슬러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차지하였다. UEFA 유로 1992에서는 2골을 넣으며 맹활약을 했는데, 특히 스웨덴과의 4강전에서 골을 넣으며 결승 진출에 공헌하였으나 덴마크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어쨌든 이 대회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헤슬러 본인도 같은 해 FIFA 올해의 선수 3위를 기록하였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총 5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위르겐 클린스만이 환상적인 터닝슛을 어시스트한 선수가 헤슬러였다. UEFA 유로 1996에서는 체코와의 결승전에서 올리버 비어호프의 골든 골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에서 크로아티아에게 3:0으로 패해 탈락했고, UEFA 유로 2000에서는 광탈당했다. 이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3. 플레이 스타일
1990년대에 전차군단의 공격을 책임진 플레이메이커로 신장 166cm로 축구선수로서는 단신에 꼽히지만 키에 비해 괜찮은 피지컬을 지녔고, 넓은시야를 가진데다 뛰어난 패싱력과 강력한 킥력을 보유하였으며, 강철 체력까지 갖춘 선수였다.
[1] 이분은 1980년대부터 유명했다.[2] 그런데 마테우스는 독일 국대 '''최다경기 출전기록'''을 가진 선수다. 애초에 비교할 상대가 없다.[3] 왜 3인자인지 이유를 첨언하자면 그당시 동포지션에 자신과 비슷한 연배였던 안드레아스 묄러와는 경쟁 상대였는데, 국대에서의 출전수는 헤슬러가 더 많았지만 묄러는 도르트문트에서 두번의 리그우승, 한번의 포칼우승 그리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거머쥐었고, 유벤투스에선 UEFA컵을 우승, 그리고 선수로서 황혼기를 거쳐가던 샬케에서도 두번의 포칼 우승을 차지하는등 클럽커리어에선 비교조차 안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헤슬러가 돌문에서 뛸때 묄러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려버렸다.[4] 다만 레알 마드리드에게 져서 준우승에 그쳤다.
분류
- 1966년 출생
- 독일의 축구선수
- 독일의 축구감독
- 미드필더
- 베를린 출신 인물
- 1. FC 쾰른/은퇴, 이적
- 유벤투스 FC/은퇴, 이적
- AS 로마/은퇴, 이적
- 카를스루에 SC/은퇴, 이적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은퇴, 이적
- TSV 1860 뮌헨/은퇴, 이적
- FC 레드불 잘츠부르크/은퇴, 이적
- BFC 프로이센/역대 감독
- 독일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참가 선수
- 1994 FIFA 월드컵 미국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92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96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0 참가 선수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독일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독일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