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비어호프

 

''' 올리버 비어호프의 역임 직책 '''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
위르겐 클린스만
(1996~1998)

'''올리버 비어호프
(1998~2000)
'''

올리버 칸
(2000~2004)

''' 올리버 비어호프의 수상 이력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1998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위르겐 콜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올리버 비어호프
(우디네세 칼초)
'''

로타어 마테우스
(FC 바이에른 뮌헨)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1996'''

'''Die Deutsche Fußballnationalmannschaft'''}}}
''' 이름 '''
'''올리버 비어호프'''
'''Oliver Bierhoff'''
''' 출생 '''
1968년 5월 1일 (55세) /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카를스루에
''' 국적 '''
독일 [image]
''' 신체 '''
191cm, 몸무게 83kg
''' 직업 '''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 소속 '''
''' 선수 '''
FC 바이어 05 위어딩엔 (1986~1988)
함부르크 SV (1988~1990)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90)
'''아우스트리아 잘츠부르크 (1990~1991)''' '''
아스콜리 칼초 (1991~1995)
우디네세 칼초 (1995~1998)
AC 밀란 (1998~2001)'''
AS 모나코 FC (2001~2002)
AC 키에보베로나 (2002~2003)
''' 지도자 '''
독일 대표팀 (2004~ / 코치, 단장)
''' 국가대표 '''
70경기 37골 (독일 / 1996~2002)
1. 개요
2. 선수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은퇴후
5. 장점
6. 단점
7. 기록
7.1. 대회 기록
7.2. 개인 수상
8. 득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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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의 前 축구선수. UEFA 유로 1996 결승전에서 홀로 2골을 터뜨려 독일의 우승을 이끈 주역임과 동시에 독일의 대표 스타 플레이어 중 하나이다.

2. 선수 경력


프로필을 보면 알겠지만 위르겐 클린스만 못지 않은 저니맨이었는데 이 선수의 경우는 클린스만 같은 성격 문제보다는 단순히 기량이 부족해서였다. 큰 키를 보고 뽑았는데 헤더도 시원찮고 발재간도 별로고 써먹기 힘든 선수였던 것. 1986년 분데스리가에서 데뷔했지만 기량 부족으로 이팀 저팀을 옮겨 다니다가 1990년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아우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이적했는데 이 때부터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잘츠부르크에서 한시즌 무려 23골을 터뜨리며 세리에 A로 이적, 우디네세 칼초 시절 97~98시즌에 27골을 넣었고, 1991~2001년간 총 103골을 기록, 세리에A 외국인 통산 최다득점을 하는 등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이탈리아에서 맞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이탈리아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나이 30에 이르러서야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처음으로 참가한 큰 대회가 바로 UEFA 유로 1996. 마티아스 자머가 최후방을 지켰다면 최전방은 비어호프가 지켰다. 이 대회 결승전에서 체코 상대로 2골을 몰아쳐 넣으며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클린스만과 투탑을 이뤄 맹활약했으나(잠머가 부상으로 아웃된 독일 팀은 투탑만 축구한다고 할 정도로)독일 대표팀의 전반적인 노쇠화로 8강에서 멈췄다. 그 후에도 UEFA 유로 2000, 2002년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4. 은퇴후


2003년 은퇴한 뒤로 2004년부터 줄곧 독일 대표팀 단장을 맡고 있으나, 단장이 된 이후로는 여러가지 망언과 무개념 행동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다. 단적인 예들로 독일 월드컵 때 8강전 종료 직후 아르헨티나 비하 발언과 UEFA 네이션스 리그/2018-19 시즌조지아 비하 발언. 전자는 8강전 경기 직후 여러 선수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서 비어호프는 대놓고 '''아르헨티나는 독일어를 못 알아들으니 맘껏 욕을 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독일어를 아는 가브리엘 에인세가 이를 눈치챘고, 결국에는 독일과 아르헨티나 양국 선수들 사이에서 패싸움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토르스텐 프링스훌리오 크루스를 때려서 징계를 받아 4강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고, 이 공백을 메꾸지 못한 독일은 이탈리아한테 2:0으로 지고 만다. 후자 발언은 ''' "우린 프랑스와 네덜란드라는 매력적인 상대를 상대한다. 조지아 같은 국대와의 친선경기보다는 이게 더 낫지 않나?"'''였다. 이미 2016년 가을, 토마스 뮐러산마리노 축구 국가대표팀 비하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는 것도 모자라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그렇게 처참한 참사를 겪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다. 결국 그 발언 직후 열린 네덜란드와의 1차전에서 3:0으로 처참하게 패배했다. 그리고 독일이 무시하던 조지아는 정작 리그 D에서 리그 C로 승격했고, 독일은 리그 A에서 리그 B강등당했다.[1] 이 외에도 카잔의 치욕 당시 메수트 외질한테 집중되는 비난을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했다.

5. 장점


발기술을 비롯한 기본기는 떨어져서 항상 정통 센터 포워드의 역할에 치중했다. 현역 당시 프로필을 보면 알겠지만 큰 키와 탁월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타겟형 스트라이커 플레이에 능했다. 그의 최대 장기는 바로 헤더. UEFA 유로 1996 체코전에서의 골도 그렇고 98 프랑스 월드컵 16강전에서 터트린 입이 쩍 벌어지는 역전 결승골 등 선수생활 내내 대부분의 골을 헤더로 만들어냈다. 스피드가 빠른 것도 아니고 발재간이 좋은 것도 아니었던 그가 위대한 스트라이커로 자리매김한 것은 순전히 헤딩 때문이다.
수비수들 사이에서 튀어나와, 내지르는 헤딩 능력은 일품이었다. 특히 공중전 장악능력은 발군이라 독일에서 이에 버금갈 선수는 그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클로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찾기 어려웠다.

6. 단점


가장 치명적인 결함은 오직 '''헤딩 중심의 포스트플레이'''에만 치중되었다는 점이었다. 비어호프가 주축이 된 독일 대표팀 특유의 딱딱하고 투박한 볼키핑과 공중전, 느린 주력 및 취약한 패싱 능력은 상대팀의 수비를 아주 쉽게 만들어줬으며 그래서 독일은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 우승한 이후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를 망쳤다. 특히 리옹 참사라고 불리는 1998년 월드컵 8강전에서 독일이 처녀출전한 크로아티아에게 0-3으로 학살당할 때 비어호프는 아무것도 못했다.[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준우승에 기여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우디아라비아 - 아일랜드 - 카메룬 - 파라과이 - 미국 - 한국으로 이어지는 꿀대진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고 그 꿀대진에서조차 미로슬라프 클로제, 미하엘 발락, 그리고 올리버 칸이 없었으면 16강도 어려웠을 정도였다. 당시 독일은 클로제 - 발락 - 칸 3인방에게 상당히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클로제가 공격을 진두지후하고 발락이 팀의 중심이 되며, 팀이 무너질 때 쯤이면 올리버 칸이 믿기 어려운 슈퍼 세이브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 이미 만 34세의 노장이었던 비어호프는 클로제와 올리버 뇌빌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플랜 B 정도로만 기용되었다.
비어호프는 전형적인 고전 독일축구 세대의 마지막 선수이며, UEFA 유로 2000에서의 대실패 이후 독일이 본격적으로 순혈주의를 포기하고 외국계 선수들을 등용하면서 독일 국가대표팀은 비로소 부활할 수 있었다.

7. 기록



7.1. 대회 기록



7.2. 개인 수상



8. 득점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유럽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86/87
바이어 위어딩엔
독일 분데스리가
19
3
4
4
4
2
1987/88
바이어 위어딩엔
독일 분데스리가
12
1
1
0
-
-
1988/89
함부르크 SV
독일 분데스리가
24
6
3
1
-
-
1989/90
함부르크 SV
독일 분데스리가
10
0
1
0
-
-
1989/90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독일 분데스리가
8
0
-
-
-
-
1990/91
아우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32
23
3
2
-
-
1991/92
아스콜리 칼치오
이탈리아 세리에 A
17
2
0
0
-
-
1992/93
아스콜리 칼치오
이탈리아 세리에 B
35
20
2
1
-
-
1993/94
아스콜리 칼치오
이탈리아 세리에 B
32
17
1
0
-
-
1994/95
아스콜리 칼치오
이탈리아 세리에 B
33
9
0
0
-
-
1995/96
우디네세 칼치오
이탈리아 세리에 A
31
17
2
1
-
-
1996/97
우디네세 칼치오
이탈리아 세리에 A
23
13
1
0
-
-
1997/98
우디네세 칼치오
이탈리아 세리에 A
32
27
3
2
-
-
1998/99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4
19
3
2
-
-
1999/00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30
11
3
1
6
2
2000/01
AC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27
6
5
1
10
2
2001/02
AS 모나코
프랑스 리그 앙
18
4
7
3
-
-
2002/03
AC 키에보 베로나
이탈리아 세리에 A
26
7
2
0
2
0
[1] 다행히(?) 개편으로 인해 2018-19시즌 강등은 없어졌다. 강등 제도는 2020-21시즌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 실시되었다.[2] 단, 리옹 참사 당시 비어호프가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적으로 비어호프에게 책임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전반전에 뵈른스가 백태클로 퇴장당하면서 독일이 수적 열세에 놓였고, 그 결과 전반에 한 골, 후반에 독일 선수들의 체력이 방전되면서 막판에 연이어 두 골을 먹고 3-0으로 참패했기 때문. 게다가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야르니의 선제골과 블라오비치의 두번째 골은 도무지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는 기가 막히게 골문 구석으로 향하는 중거리 슛이었다. 독일 국가대표팀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기도 했지만, 여러모로 불운도 공존했던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