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민(정치인)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용인시 갑)'''
제19~20대
이우현[1]

'''제21대
정찬민'''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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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373a3c> '''제7대 경기도 용인시장'''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정찬민
鄭燦敏 | Jung Chan-min
'''
<colbgcolor=#e61e2b> '''출생'''
1958년 7월 2일[2] (66세)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가실리
(現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
'''거주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본관'''
하동 정씨 문헌공파
'''학력'''
포곡국민학교 (전학)
신갈국민학교 (졸업)
신갈중학교 (졸업)
유신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행정학 / 학사)
경희대학교 (국제경영학 / 석사)
강남대학교 (경영학 / 명예박사)
용인대학교 (행정학 / 명예박사)
'''병역'''
[image] 대한민국 해병대 병장 만기전역
'''가족'''
배우자 황미희, 슬하 1남 1녀
'''신체'''
173cm
'''소속 정당'''

'''지역구'''
경기 용인시 갑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1
'''소속 위원회'''
교육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국민의힘 용인시 갑 당협위원장
'''경력'''
제7대 경기도 용인시장
경희대학교 테크노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단장
용인문화재단 이사장
한국기업경영종합연구원 수석연구원
중앙일보 수도권 취재본부장
용인YMCA 실행이사
용인의용소방대연합회 명예회장
용인시장애인체육회 회장
용인시기흥구배드민턴협회 명예회장
용인시 줌마렐라축구단 총단장
'''SNS'''


1. 개요
2. 생애
2.1. 정계 입문 이전
2.2. 정계 입문 초창기
2.3. 경기도 용인시장
2.3.1. 행정 및 정책
2.4. 제21대 국회의원
3. 경력
4. 수상 내역
5. 저서
6. 소속 정당
7. 선거 이력
8. 사건사고
8.1. 건설사 유착 의혹
8.2. 때밀이 발언 논란
9. 여담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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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이다. 원래는 중앙일보 기자와 수도권취재본부장 등을 지낸 언론인이었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 민선 6기 제7대 경기도 용인시장을 지냈으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현재 초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지역구는 경기도 용인시 갑[3]이다.

2. 생애



2.1. 정계 입문 이전


1958년 7월 2일, 경기도 용인군 포곡면 가실리에서 태어났다. 포곡초등학교 재학 중 기흥면으로 이주하여 신갈초등학교, 신갈중학교, 수원유신고등학교, 경희대학교 정경대학 행정학과, 경희대학교 테크노경영대학원 국제경영학 석사, 강남대학교 경영학 명예박사, 용인대학교 행정학 명예박사 과정을 졸업, 수료하였다.
간혹, 경희대학교 수원캠퍼스[4] 출신이라고 잘못 알려진 경우가 있는데, 확인 결과 서울캠퍼스가 맞다.
경희대학교 학부 졸업 후 중앙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 수도권 취재본부장 등을 지냈다. 특히 용인시의 난개발로 인한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당차량사업소 내부에 전철역 설치 제안끝에 보정역 지상임시 역사를 만드는데 일조 했었다. 그 덕분에 철도청의 편견을 깨고 용인시 교통난 해소한 공으로 감사패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에는 삼성전자, 한화생명 등에서 고문으로 근무하면서, 정치에도 입문하게 되었다.

2.2. 정계 입문 초창기


한나라당에 처음 입당하여, 후에 새누리당 중앙당 수석부대변인, 새누리당 경기도당 수석대변인, 새누리당 용인을 당원협의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이었던 친이계의 박준선과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용인시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김민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5]
2년 후안 2014년에 제6회 지방선거에 출마하였다. 당시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경기도 내에 여당 당선자가 적은 상황이었음에도 약 47.5% (18만 8,787표)의 지지를 받아 새정치민주연합의 양해경 후보와 현직 시장인 무소속 김학규 후보를 등 다른 후보들을 큰 표차로 따돌리고 민선 6기 제7대 용인시장에 당선되었다.[6]

2.3. 경기도 용인시장


2014년 7월 1일에 정식으로 취임하였다. 역대 모든 용인시장들과 달리, 구설수가 없어서 재선이 기대되었다. 재선에 성공하면 역대 최초의 재선 용인시장이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자유한국당 소속으로 다시 출마하였으나, 더불어민주당 백군기 후보에 밀려 낙선하면서 이번에도 용인시엔 재선시장이 나오지 못했다. 재선에만 실패했을 뿐, 퇴임 후 모두 구속된 전대 시장들과는 달리 상당히 좋은 시정 평가를 받았고, 실제 득표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보다 되레 많았다. [7]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역대급으로 참패한 탓에 대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개인 능력으로는 박근혜 정부 탄핵 여파를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당장 보수의 심장인 구미시[8]에서까지 민주당이 승리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 백군기 후보도 육군 대장 출신에 국회의원을 지내는 등의 경력 있는 정치인이라 정찬민 시장 입장에서는 악재라면 악재였다.[9]
그래도 각종 계파갈등, 상당한 비호감도 등 자유한국당이 존폐 위기에 처했던 당시 수도권 대도시에서 개인 능력과 행정 처리 등의 강점으로 40% 이상 득표율을 가졌으니 고양, 수원, 성남 등에 출마한 여타 한국당 후보들에 비하면 상당히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다. 웬만큼 보수세가 강한 지역들을 제외하면 이 정도의 득표율을 가져온 지역 자체가 거의 없었다. 100만권 대도시 중에선 눈에 띄었을 정도.[10] 고로 보수당 입장에서 여타 지역들은 '''참패''' 수준이었다면, 용인은 '''선전'''했다는 평가가 많이 나왔다.

2.3.1. 행정 및 정책


민선 6기 용인시장 재임 시절에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정책들을 추진했다. 전임 용인시장들이 대개 구속과 부정 평가를 피하지 못해서, 업적을 남긴 용인시장으로 존재감이 큰 편이다.[11]
가장 대표적인 것은, 용인시 최대 난제였던 경전철 환승할인 가능하게 한 것과 채무제로 선언이 있다. 특히 용인은 빚 많은 도시로 유명했어서, 이 두 가지는 큰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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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인시 채무제로 선언 : 8,200억원에 이르는 용인시 채무를 전부 갚았다고 밝혔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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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호화청사로 비난 받는 용인시청에 물놀이장,눈썰매장 등을 개장한 것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상당수의 정책들이 용인시가 기존에 골머리 앓던 문제들을 역으로 해결한 것들이다.

2.4. 제21대 국회의원


2018년 초에 이우현의 구속으로 자유한국당 용인시 갑(처인구) 당협위원장에 선정되었다. 시장 재임 당시였는데, 당시 당 지도부 차원에서 일부 단체장들에게 공석이 된 자리들을 주었다. [15]
이후 두 번째 시장 선거 2년 만에 용인시 갑에 공식 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미래통합당 공관위에서 용인시 갑에 정찬민을 단수공천하였다. 당초 처인구 출마가 예상되었던 바른미래당 출신 이동섭 의원이 과거 지역구인 노원으로 가면서, 공천 잡음이 아예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오세영 후보를 누르고 제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1대 총선에서 7명 밖에 없는 경기도지역 보수정당 당선자인데, 비교적 여유롭게 승리했다. 이로써 100만 시장과 국회의원을 모두 지내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게 되었다.[16] 전임 시장들이 비리로 줄줄이 중도 사임하는 와중에 임기를 다 마친 최초 시장출신이고, 용인시의 암덩어리로 불렸던 막대한 경전철 채무도 청산했기 때문에 용인시민들에게 일 잘 한다는 이미지가 심어졌기 때문이다.
용인시 갑이 아니라 용인시 정에 출마했어도 당선됐을 것이라는 평이 많다.[17] 다만 용인시 갑의 비례대표 득표율은 범진보 총합이 범보수 총합을 소폭 앞섰기에 정찬민이 다른 곳에 나갔다면 이곳이 민주당에 넘어갔을 것이다.
당초 용인시 을을 제외하고는 보수정당의 약진이 예상되었던 용인시였지만, 결과적으론 정찬민 하나만 당선되었다.[18] 용인 내에서 민주당이 과반을 가져간 것 역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기도 하다.[19] 따라서 21대 국회 기준으로, 유일한 국민의힘 소속 용인시 국회의원이다.[20]
21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로 교육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내정되었다.
2020년 12월 17일, ‘국정감사 NGO모니터단’이 선정한 ‘국감 우수의원상(국리민복상)’을 수상했다.#
2020년 12월 20일, 한국공공정책학회가 주관한 ‘제5회 2020년 대한민국 공공정책대상’에서 의정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3. 경력


  • 신갈중학교 총동문회장
  • 유신고등학교 총동문회장
  • 용인시민축구단장
  • 용인기흥구배드민턴협회 명예회장
  • 용인시체육회장 • 생활체육회장
  • 용인시장애인체육회장
  • 2013월드컵태권도 대한민국선수단장
  • 용인YMCA 실행이사
  • 나눔 1004회 중앙회장
  • 기부단체 생수사랑회장

4. 수상 내역


  • 용인시문화상
  • 대한민국나눔대상
  • 대한민국유권자대상
  • 지방자치행정대상
  • 율곡대상 지방자치경영부문
  • 무궁화사자대상
  • 대통령상 대표수상 지방규제개혁부문
  • 대한민국미래창조 경영대상

5. 저서


  • 작전명 뜨는 해 (2012)
  • 용인 203 이야기 (2014)
  • 슈퍼맨 정찬민 (2018)
  • 정찬민 꽃이 피었습니다 (2020)

6.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05 - 2012
정계 입문

2012 - 2017
당명 변경

2017 - 2020
당명 변경

2020
합당[21]

2020 -
당명 변경
  • 한나라당 입당 이후 본인이 자의적으로 당적을 변경한 적은 없다.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용인 을

57,776 (45.91%)
낙선 (2위)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 용인시장
'''188,787 (47.47%)'''
'''당선 (1위)'''
'''초선'''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199,903 (41.16%)
낙선 (2위)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용인 갑

'''69,826 (53.14%)'''
'''당선 (1위)'''
'''초선'''

8. 사건사고



8.1. 건설사 유착 의혹


PD수첩 방송분(1)
PD수첩 방송분(2)
2020년 10월 방송된 PD수첩 '개발 천국의 은밀한 거래' 편에서 부동산 개발 관련 특혜를 미끼로 건설업자로부터 땅을 시세보다 싸게 산 후, 용도를 불법적으로 변경하고, 인근 도로 계획과정과 불법적인 건축 인허가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현재, 보도에 대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없다.
용인환경정의 등 용인 시민단체 25개에서 10월 23일 성명을 통해 “건설업체와 용인시 역대 민선 시장들이 유착한 비리의 역사는 더 이상 반복돼선 안 되는 수치스러운 흑역사”라며 “의혹에 대한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찰은 2021년 2월 17일 용인시청과 기흥구청을 압수수색했다.

8.2. 때밀이 발언 논란



2020년 12월 10일[22], 진보 인터넷 언론에서 정찬민 의원이 로텐더홀에서 "왜 때밀이들하고 싸워"라고 발언한 것을 포착했다. 이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 시위를 하는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피해자 김용균씨 유족과 정의당원들을 때밀이로 표현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정의당은 당시 국회 로텐더홀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를 위해 농성하고 있던 김용균 씨의 모친과 정의당 관계자들 인근에서 정 의원이 "왜 때밀이들 하고 싸워"라고 말했기에, 이는 김용균씨 유가족과 정의당 관계자들은 자신들을 지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23]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11일 논평을 내 “정 의원의 망언은 중대재해 유가족은 물론 정의당과 중대재해법을 열망하는 시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이 발언을 비판했다.
정 의원은 당시 자신의 위치[24]에선 김용균씨 유가족[25]이 보이지도 않았고, 그들을 지칭한 발언도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동료 의원들과 9-10일 민주당에 대해 피켓 시위와 구호를 외치고 있었는데, 일부 민주당 의원들과 언쟁[26]이 있었기에 '여야를 떠나 정치적인 싸움은 지양하자'는 의미에서 거친 발언을 하는 동료 의원들에게 개인적인 차원에서 발언한 것이라 밝혔다.
정 의원은 부적절한 언어 사용으로 오해를 불러온 점에 대해 사과하였으며,[27]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한 언론사를 상대로 11일 오후 언론중재위 조정신청을 이미 요청하는 등 법적 조치에 나섰음을 밝혔다.#

9. 여담


  • 제6회 지방선거 출마 당시 새누리당 내 용인시장 후보 지원자는 16명, 전체 21명으로 전국 최다였다.#
  • 시장으로서 실시한 정책들을 보면 당과는 다르게 상당히 개혁적인 편이다. 중앙정치에 따라 일률적으로 정책을 집행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용인시장 재임시절에 다른 당 소속인 염태영 수원시장과 이재명 성남시장과 같이 정부의 지방자치개악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2018년 지방선거 당시에는 당적을 헷갈리게 하는 보호색 마케팅으로 잠시 이목을 끌었다.#
  •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공약으로 SK프로축구단인 제주 유나이티드를 용인으로 연고 이전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제주 유나이티드의 연고지가 용인으로 바뀔 것이라는 얘기는 시장 재임 시절부터 있었던 떡밥이었고 제주 유나이티드도 연고 이전은 없을 것 처럼 말했지만 부천에서 제주로 연고 이전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나진 않을 듯하다.[28]
  • 용인시가 지역적[29]으로나, 전국적[30]으로나 정치적으로 화제[31] 인물이 많았다 보니, 정찬민 의원은 시장과 의원을 지낸 재선 정도의 정치 경력이지만, 고참 현역 정치인이 거의 없다. 그나마 있는 백군기 후임 용인시장과 김민기 용인시을 의원 정도가 현역 중에 오래된 편인데, 비슷한 수준의 경력이다.[32]
  • 정치 입문 시기가 생각보다 이른 편이고, 그에 비해 국회에 입성한 건 상당히 늦어졌다. 아무래도 시장과 의원을 지내면서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젊다는 이미지와, 고참이라는 이미지가 동시에 있는 편이다. 한나라당 전성기 시절에 입문했는데, 정작 선거에 출마한 시기는 보수정당 혼란기였어서 입문 시기나 평가에 비해서 선수가 적은 감이 있다.
  • 원래는 2019년 재보궐선거에서 용인 갑에 이미 출마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직 이우현 의원이 구속 상태였기 때문. 하지만 선거 이전에 의원직을 사퇴하지 않아서, 실현되지 못했다. 만약, 그때 재보선에 당선되었다면 현재 재선 의원이었을 것이다.[33]
  • 과거 시장 재임 시절에는 소속 정당을 헷갈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여타 기존의 지역 보수 정치인들과는 차별화되는 정책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정치색을 드러내는 발언을 거의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남경필 경기도지사, 한선교-이우현 의원 등 동시대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자의적으로 정당을 옮긴 적이 한 번도 없다.[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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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대 임기 중 의원직 상실.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인해 재보궐선거 미실시.[2] 음력으로는 1958년 5월 16일생이다.[3] 용인시 처인구[4] 당시 분교, 현재 명칭은 국제캠퍼스로 2011년 본·분교 통합 후 서울캠퍼스와 이원화 캠퍼스로 운영[5] 여담으로 당시에는 접전 지역이었으나, 19대 총선 이후로는 기흥구가 민주진영의 확실한 강세 지역이 되었다. 그럴만도 한 게 처인구, 수지구에 비해 원래 보수세가 약하고, 보수진영의 총선 후보들이 정찬민을 제외하곤 모두 지역 토박이가 아니었다. 20대 총선 때 출마한 허명환 후보 같은 경우는 통영 지역에서도 경선 하위권이었던 후보인데, 친박이어서인지 낙하산 공천되어버렸다. 높은 당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19대보다 훨씬 낮은 득표율을 가져갔다. 그리고 보수진영이 압승한 18대 총선에 당선되었던 박준선 전 의원마저도 서울지역 사람이었다. 현역 프리미엄을 갖고도 경선에서 밀렸으니 말 다했다. 이 정도면 보수당 차원에서 총선에서 기흥구에 투자를 안한 면도 있다. 차라리 정찬민이 더 이전인 18대부터 계속해 지역구를 관리했으면 오늘날과 같은 보수당의 험지는 안 되었을 것이다.[6] 김학규 시장이 민주당 출신이라 어부지리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이전에 한나라당 당적을 가진 적도 있어 민주당 표만 가져왔다고 보긴 어렵다. 또한 그와 별개로 어느정도 득표를 한 보수성향 무소속 출마자도 있었어서 그렇게 단순 합산해서 보더라도 이긴 선거였다. 상대 후보 경쟁력이 강하지 않았기에 양자 구도였으면 정찬민 후보가 아예 과반을 득표했을 수 있다.[7] 이는 정찬민 시장 재임 기간에 용인시 인구가 급증한 영향도 있다. 임기 중에 성남보다 빠르게 100만 도시에 이르렀고, 현재도 이 상승세가 계속되어 110만대 도시로서 창원을 제친 상황이다. 고양을 넘는 것도 시간 문제다.[8] 박정희 대통령의 고향이다. 반대편으로 비유하자면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적 뿌리인 목포와 비교할 수 있겠다.[9] 물론, 현역 시장과 비례대표 국회의원 출신을 비교하면 당연히 전자가 우위일 수 있다. 하지만 역대 다른 용인시장이나 국회의원 후보들의 면면에 비하면 낙하산이 아닌 것만으로도 나름 신경 써서 낸 후보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일단 당세가 너무 밀리는 상황이었기에.[10] 워낙 원 사이드로 밀린 선거라서, 경남지사랑 용인시장 선거 정도가 그나마 볼만 했다. 출구조사에서는 이미 큰 차는 아니어도 패배가 뚜렷했지만...[11] 국회의원이 된 현재에도, 시장으로 호칭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이다. 임기가 겨우 4년 밖에 안 되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용인시장으로서 인상깊은 행보를 했다.[12] 후임 백군기 시장 대에는 이 슬로건을 유지하기로 했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결국 이와 비슷한 '사람 중심 새로운 용인'이라는 슬로건으로 바꿔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아직까진 길 곳곳에서 '사람들의 용인'이라는 글씨를 찾아볼 수 있다.[13] 다만 흥덕역 설치건은 용인 외 안양시 동안구, 의왕시, 수원시, 동탄신도시 주민들에게는 용인시의 병크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14] 한편 용인시가 채무를 청산했다고 밝혔지만 4,900억원대의 부채가 아직 남아있어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해당 기사에도 나와있듯이 경전철 부채는 용인시 공식 부채로 취급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조기 상환도 불가능한 상태다. 무엇보다 전직 시장들의 실책으로 전국 채무 1위였던 용인시의 상당한 채무를 임기 중에 전부 갚아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단순히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채무를 줄이기만 한 것이 아니므로 재정정책을 성공한 셈이다. 이것은 시의 재무지표에서도 드러난다. 2014년 7월 취임 당시지방채 4550억원, 용인도시공사 금융채무 3298억원 등 용인시의 7848억원의 채무를 2018년 모두 갚아 ‘채무 제로’를 공표했었다.[15] 이들 대부분은 바른정당 탈당파들의 자리와 앞서 말한 이우현 등 현역 의원들이 재판으로 상실된 자리들이었다. 후자의 경우는 아예 새로 자리를 마련한 개념이었지만, 전자는 후에 복당파들 때문에 잡음이 생기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강릉시.[16] 지방선거가 비교적 늦게 생긴데다가 인구 100만명대 대도시가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임 용인시장인 백군기 시장도 국회의원 출신이지만, 비례대표였었다. 이쪽은 지역구 의원이라 좀 더 의미가 있는 셈.[17] 다른 지역의 경우, 용인시 을 지역은 민주당계 '''초'''강세지역으로, 21대 총선에서도 김민기 현직 의원이 '''60%'''를 득표하며 여유롭게 3선에 성공했다. 참고로 정찬민과 김민기 두 사람은 제19대 총선에서 맞붙은 적 있으며 이 때 여당 후보였던 정찬민이 패한 바 있다. 용인시 병의 경우 우회 도로 건설 문제, 주택 관련 문제 등으로 인해 정찬민에 대한 여론이 안 좋다. 실제로 7대 지방선거 당시 수지구의 정찬민 후보 득표율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낮았다.[18] 전임 의원인 이우현이 구속으로 의원직이 상실되는 고난이 있었지만, 정찬민이 용인시장 재임 시절에 일을 잘한 게 많았기에 당선될 수 있었다.[19] 용인시 병 지역구는 성복동을 중심으로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했지만, 터줏대감 한선교가 불출마한데다가 워낙 논란(성희롱, 멱살)이 많았었다. 민주당계 강세 지역 죽전2동 편입으로 보수정당이 16년만에 패배하였다. 용인시 을 지역구는 과거엔 보수정당 우세 지역구였으나 보수성향 지역 수지구가 용인시 병으로 독립, 한나라당 말기의 삽질, 젊은 층의 기흥구 유입으로 19대 총선부터 이미 민주당계 텃밭으로 바뀐 지 오래이며, 용인시 정 지역구는 지역구 설치부터 죽전동과 동백동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계 우세 지역구였고, 죽전2동 대신 경합지역인 상현2동이 편입되었음에도 무난하게 이탄희가 당선되었다. [20] 용인시의 다른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민기(용인시 을), 정춘숙(용인시 병), 이탄희(용인시 정),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기 때문이다.[21]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22] 사건은 9일[23] 발언 당시 로텐더홀에서 구호를 외친 단체는 국민의힘 외에 김용균씨 유가족 측 밖에 없었다고 한다.[24] 3층[25] 2층 입구[26] 같은 날, 야당 의원들은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등장하자 "정권 타도"라고 소리쳤다. 정 의원은 이들을 보며 오히려 미소를 지었고, 일부 야당 의원들은 "왜 웃나, 웃음이 나오냐"라고 소리쳤다. 이들은 김남국 의원을 향해서는 "뻔뻔하다"고 외쳤고, 박주민 의원을 향해서는 "독재! 독재다"라고 외쳤다.#[27] "평소에 유족들을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세신사분들에게도 죄송한 말이다"라고 했다.#[28] #[29] 대표적으로나 역대 전임 용인시장[30] 대표적으로 표창원, 한선교, 이우현, 우제창, 박준선[31] 대부분이 구설수나 사법처리로 정치 인생이 다소 빠르게 끝났다.[32] 4선 이상의 거물급 정치인은 한선교 의원이 용인시 역사상 유일한 수준이었는데, 20대 총선에 불출마하면서 확실히 은퇴해버렸다. 무엇보다 전직 의원,시장 중에 아직까지 정치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33] 1년 임기라서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수 있지만, 초선이냐 재선이냐는 국회 내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구분이다. 정 의원은 시장까지 지낸 특이 이력까지 있으니, 3선이나 마찬가지인 대우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34] 정작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으로 소속 정당에서의 당명 교체와 통폐합이 연거푸 있었다. 이처럼 이름만 나열해보면 수가 많아서 마치 여러 정당을 들어갔던 것 같지만, 사실상 계속 같은 정당에 있었다고 봐도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