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욱
1. 소개
前 SK 와이번스 소속 우완 오버핸드 투수.
쌍방울 때 지명되었지만 데뷔부터 은퇴까지 SK 와이번스에서만 뛴 넓은 범위에서 구단 최초 원 클럽 플레이어다.[3]
별명은 와일드 씽(Wild Thing)[4] …은 서류상 별명이고, '''엄롤코''', 우롤코가 제일 많이 쓰이는 별명이다. 잘할 때는 엄판왕. 엄쏘공이라는 별명도 있다.
조동화와 더불어 유이하게 2000년 SK 창단 멤버 중 SK 소속 현역으로 남은 선수였었다.
2. 선수 경력
중앙고 출신으로, 당시 해체를 눈앞에 둔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은 상당한 유망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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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속구를 뿌리던 와일드 씽 시절.'''
통산 평균자책점 4.68, 10승을 찍은 시즌도 전무하고 데뷔 12년차 동안 겨우 340이닝 남짓 소화한 그는 얼핏 보면 그저 그런 평범한 투수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그가 스타덤에 오른 이유는 바로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공을 던진 사나이였기 때문이다.'''
2002년 5월 11일, 문학 KIA전에서 이현곤에게 154km/h, 이종범에게 156km/h의 공을 던져 삼진을 잡아내는 모습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엄정욱은 순식간에 ‘총알탄 사나이’, ‘한국의 롭 넨’ 등등의 수식을 받으며 스타로 급부상했고, 2003년 4월 27일에는 158km/h의 광속구를 선보이면서 자신이 기록했던 한국 프로야구 최고구속 기록을 갈아치우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너무 빠른 공을 던졌던 탓인지, 7승 5패 1세이브 1홀드로 커리어 하이를 찍은 2004년을 기점으로 그는 심각한 부상에 시달리게 되어 수년 동안 고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기량은 심각한 부상에 자기 관리 실패(불성실)로 인해 날로 하락, 2006년을 끝으로 그를 더 보게 될 수 없었다. 2009년엔 고작 6경기에 나와 7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10.29'''를 마크하는 성적이 끝.
그러나 2010년엔 그도 웃을 수 있게 되었다. 2010 시즌 시작 전에 김성근 감독이 키 플레이어로 엄정욱을 꼽더니, 필승계투조는 아니지만 34경기에 66이닝을 소화하여 평균자책점 6.27을 기록했다. 예전처럼 광속구를 다시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구멍난 투수진의 어디든 들어가서 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들게 된다.
엄정욱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2.1. 2011시즌
2011년 시즌엔 4월에 잠깐 올라와 던진 후 줄곧 2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결국 선발 투수진이 완전히 붕괴된 7월에 1군으로 승격, 7월 9일 롯데 전에 선발등판했다. ''''2이닝 정도나 막아주면 감지덕지''''라고 팬들이 생각할 정도로 별로 기대하지 않은 이 경기에서 5⅔이닝 동안 3피안타 1실점의 성적과 함께 삼진 7개를 잡는 호투를 선보였다. 비록 이날 승리 투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전날 등판해 연패를 끊은 이영욱과 함께 글로버를 제외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선발진에 진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이 엄정욱은 한 번 등판을 하면 오래 쉬어야 하는 타입이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봐서는 등판 간격은 널럴할 듯[5] 현재는 이만수 대행이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해서 기용하고 있고 , 역시 한 번에 많은 공을 던지지 않는 덕분인지 다시 150km/h대의 직구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변신은 구속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변화구의 구위를 끌어 올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엄정욱에게 가장 많이 붙는 말 중 하나가 "직구를 받치는 변화구가 없다." 였으나, 올 시즌 포크볼과 체인지업의 제구와 구위가 올라오면서 변화를 보인 것으로 생각된다.
마무리 전향은 처음엔 고육지책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신의 한 수가 되었다.
2.1.1. 포스트시즌
10월 8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 팀이 스코어 1:0으로 지고 있던 9회 1사 1, 2루 상황에서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안치홍을 볼넷으로 내보낸 후 최희섭을 상대로 땅볼을 유도하여 2사 만루까지 만들었는데, 다음 타자였던 차일목에게 만루홈런을 맞으며 안 그래도 끌려가는 분위기였던 SK 와이번스의 추격의지를 꺼버렸다. 결국 엄정욱은 이날 ⅓이닝 투구수 12개, 1피안타 1피홈런 1볼넷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5:1로 패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10월 11일 광주 무등 야구장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2:0으로 앞선 9회말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 18투구수 1볼넷 1탈삼진으로 세이브를 기록하였다.
엄정욱은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1⅓이닝 1피안타 1피홈런 2볼넷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13.50, 1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엄정욱은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2⅓이닝 2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지던 11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최종전에서 팀이 스코어 1:0으로 뒤지고 있는 5회말에 이미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지친 불펜에 도저히 올릴 투수가 없는 상황에서 조기 등판하여 4이닝 51투구수 1피안타 1볼넷 5탈삼진 무실점의 극강의 언터쳐블 포스를 보여주었으나, 팀 선발 투수인 브라이언 고든이 이미 4회에 강봉규에게 솔로홈런을 맞아, 1:0으로 뒤져 있었고, 무기력한 SK의 타선은 삼성의 철벽불펜에 눌려 결국 점수를 뽑지 못하여 팀이 스코어 1:0으로 패하고 결국 삼성이 최종 우승함으로써 엄정욱의 눈물나는 호투는 묻히고 말았다.
엄정욱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7⅓이닝 3피안타 2볼넷 9탈삼진 무실점, 1세이브를 기록하였다.
엄정욱은 2011년 포스트시즌 14경기 중 7경기에 등판하여 11이닝 6피안타 1피홈런 5볼넷 12탈삼진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1.64, 2세이브를 기록하였다.
2.2. 2012시즌
2011년 한국시리즈 3차전 때 보여준 무적의 중무리(?)포스 때문에 2012시즌 SK의 마무리를 맡을 것이라고 이만수 감독이 낙점했으나, 팔꿈치 수술 재활이 늦어져 마무리 자리는 정우람이 맡았기에 엄정욱은 스윙맨이나 셋업으로 주로 기용되었다.
한 달씩 드러눕고 있는 SK 불펜진에서 그나마 처음부터 활약해주고 있었지만, 철벽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주로 6~7회에 애매한 스코어에서 많이 등판했다. 임경완이 리타이어한 후에는 활용도가 늘었다.
박희수와 정우람이 함께 드러누운 7월에는 잠시 마무리를 맡기도 했었으나, 워낙에 성적이 안 좋았다.
요컨대 쏠쏠한 불펜이지만 특급 불펜이라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박희수 - 정우람을 제외하면 최영필과 함께 붕괴된 SK 마운드에서 가장 쓸만한 우완 불펜인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박희수와 정우람이 도저히 등판하기 어려운 상황[6] 에서는 곧잘 모습을 보였다. 요컨대 박-정 라인이 KBO 수위급의 S급 불펜이라면 SK 내에서는 A급 정도의 위치.
8월 21일 옆구리 근육 손상으로 1군에서 말소되고 이재영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리고 엄정욱의 보직은 박정배가 메웠다.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1:2로 앞선 7회초에 등판했는데, 선두 타자 전준우를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시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황재균가 번트를 댔는데 포수 땅볼이 되어 1루 주자가 2루에서 아웃되었고 용덕한의 대타 강민호를 우익수 플라이, 문규현을 삼진으로 잡으며 1이닝 17투구수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홀드를 따냈고 팀도 스코어 1:2로 승리하였다.
10월 17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1:4로 앞선 7회초에 등판했다. 전준우를 내야 안타, 황재균을 유격수 실책으로 출루시키고 문규현의 타석 때 폭투를 시전하여 무사 1, 3루의 위기를 맞았고 결국 문규현에게 1타점 2루수 땅볼 진루타, 김주찬에게 1타점 2루타를 맞고 스코어 3:4, 1사 2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다음 투수 박희수가 2루주자 김주찬을 홈으로 불러 들이는 바람에 엄정욱의 실점과 자책점은 늘어났고, 이날 엄정욱은 ⅓이닝 23투구수 2피안타 3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다. 이날 팀이 연장 10회까지 가는 경기 끝에 스코어 5:4로 패하는 바람에 엄정욱은 최윤석과 함께 플레이오프 2차전을 말아먹은 장본인이 되고 말았다.
엄정욱은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1⅓이닝 2피안타 1볼넷 1탈삼진 3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13.50,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엄정욱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먼 훗날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전까지 은퇴 직전에 발견됐다고 많이 알려졌던 위암 초기 증상을 2011 시즌 끝나고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발견했다고 한다. 방사선 치료를 받고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체중이 줄어들어 변화구 위주로 던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2.3. 2013 시즌
2012 시즌 후 부상이 도져 2013년에는 2군에서 8경기 ERA 6.01이라는 성적만 남기고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2.4. 2014 시즌
2014년에도 부상 재활로 인해 2014년 6월 5일이 돼서야 퓨처스에서 첫 등판을 했다.
2014년 7월 1일, 드디어 1군에 등록되었다. 일단 이만수 감독은 주로 여유가 있는 상황일 때 등판시켜 감각을 조율시키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당일 NC와의 경기에서 4:4의 팽팽한 접전이 오가는 중에 8회말 1사 후 호투하던 김대유의 뒤를 이어 등판해서 두 타자를 깔끔하게 잡았으나 9회말 선두 타자를 출루시키더니 폭투로 인해 무사 2루를 만들고 박정배에게 넘겼으나, 손시헌의 번트로 1사 3루에서 김태군의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경기에서 패배. 첫 등판에 패전을 떠안았다.
7월 7일 롯데전에서는 6회에 선발 고효준이 손아섭에게 홈런을 맞아 점수가 4점차가 되자 등판했다.최준석에겐 볼넷, 박종윤에게 안타를 맞고 황재균 타석에서 폭투를 범해 1실점했다. 0⅓이닝 1실점을 기록한 후 윤길현으로 교체되었다.
결국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7월 10일 1군에서 말소되었고, 2014년에는 1군 5경기 출장으로 끝났다. 뒤늦게 밝힌 바에 따르면 신인때 한번 걸렸었던 블래스 신드롬이 이 해에 재발했었다고 한다.
2.5. 2015 시즌
2015년에도 재기를 노렸지만, 1군은커녕 2군에서도 출장 기록이 없다. 장기 재활조에 있다가 전반기를 끝으로 팀에서 떠나 인천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개인훈련 중이라고 한다. 시즌 종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3. 은퇴 후
모 팟캐스트에서 엄정욱과 고교 동문으로 친한 사이인 김환[7] SBS 아나운서에 의해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재활 기간 도중 위암이 발견되었고 다행히 상태가 나쁘지 않아 완치되기는 했으나 그 이후 몸에 힘이 붙지 않아 시속 140km 초반도 던지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SK 구단의 주선으로 히어로즈 입단을 타진했지만 몸상태가 좋지 않아 불발되었다고 한다. 그 뒤 지인을 도와 과일 장사를 하는 등 야구와 거리를 두려는 행보를 보이다가 인천의 모 야구 클리닉에서 야구 동호인들을 대상으로 투수교육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마운드 위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은 볼 수 없겠지만 언젠가 코치나 감독으로 재기할 가능성은 존재할 듯.
이후 송도에서 유소년 야구단을 창단하여 감독을 맡고 있다고 한다.
2019년 8월 27일에 이영미 기자와 진행한 인터뷰가 기재되었다.
2020년 12월 11일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1군에서 159km/h, 연습경기 161km/h, 2군에서 163km를 기록한 강속구 투수[8] 이다. 명실공히 레다메스 리즈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최대성과 더불어 158km/h라는 국내 최고 구속을 보유했던 투수였고, 그 빠른 스피드로 2004년에는 SK 선발축의 한 축을 담당하며 그 해 7월 25일 KIA 전에서 '''최고구속 154km/h'''를 기록하며 '''14삼진'''을 잡는 초특급 구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제구력은 좋은 편은 아니다. 이 때문에 별명은 '엄롤코', '우롤코'... 2004년에 '엄버넷'이라 불리면서 커다란 기대를 받았지만... 그 때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엄정욱은 상당히 안타깝다고 볼 수 있다.
5. 여담
- 원래는 왼손잡이였다고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손을 묶어놓는 등 강제로 오른손으로 교정해서 오른손으로 던지게 되었다고 한다. 테드 윌리엄스도 자신의 책에서 말했듯이 사람은 한 쪽 팔의 힘이 다른 쪽보다 강하다. 타고난 왼손잡이였다면 좌완으로 길러졌을 때 160km/h을 던지는 좌완으로 정말 랜디 존슨같은 투수가 되었을지도.
- 2011년 2군에 내려가 있을 무렵 2군 야구선수를 취재하던 다큐멘터리 3일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이 당시 취재진이 보는 앞에서 2군 경기에 출장했는데, 무려 163km/h이라는 구속을 기록하는 모습이 방송에 탔다. 2020년 현재까지 전 세계 리그를 통털어 기록으로 남은 구속 중 한국인 최고구속.[* 2위는 임창용의 일본시절 161km/h, 3위는 박찬호의 99마일. KBO리그 1군 한국인 최고기록은 안우진, 외국인은 레다메스 리즈로 둘 다 160km/h.
6. 연도별 성적
7. 관련 문서
[1] 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되었다가 신인 지명권이 넘어간 SK에 입단했다.[2] 부상 및 재활을 이유로 2007 시즌 1년간 임의탈퇴 신분이었다.[3] 하지만 팬들은 아무래도 은퇴식까지 치룬 박재상이 최초 타이틀을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무래도 엄정욱의 임팩트가 박재상보다 크지는 않았고, 왕조 시절 지분이 워낙 적었던 탓도 있다.[4] 영화 메이저리그 OST인 'Wild Thing'이 그의 등장곡이다.[5] 50구 이상 던질 경우 손에 물집이 자주 잡혀서 등판간격이 길다.[6] 문제는 이런 상황이 '''부상'''이 아닌 다음에야 타이트한 상황에서는 무조건 저 두 명이었다. 특히나 중간계투인 박희수는 3점 이내 접전이면 거의 무조건이고 심지어는 주자가 있으면 5점차 이상인 상황에도 올라오는지라 의미가 없기는 했다.[7] 엄정욱과 중앙고등학교 야구부 동문. 김환이 엄정욱보다 1년 선배다.[8] 다큐 3일에서 그 기록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