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clearfix]
1. 소개
1984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사회주의 공화국의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 당시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6개의 공화국 중 하나였다. 최초로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이었다.[1] 또한 올림픽 중 처음으로 유고에서 치러진 올림픽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 유치
'''이 때부터 스웨덴은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기 시작했다.''' 후보로는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 일본의 삿포로, 스웨덴의 예테보리가 나왔다.
투표 결과...
스웨덴은 무려 1차 투표에서 쓴 잔을 마시는 굴욕을 겪은 것이었다.
3. 올림픽 이후: 보스니아 내전과 참상
8년이 지난 1992년 보스니아 내전이 터졌고, 올림픽 경기가 치러졌던 경기장들은 대부분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보스니아 내전 초기인 1992년에 세르비아계가 무슬림 보스니아인들을 대거 학살한 장소가 바로 이 올림픽 주경기장이었다. 그냥 집에서 끌어낸다고 하면 보스니아인들이 집에서 안 나오고 저항할테니 올림픽 경기장으로 '''유인해서 경기장에서 죽였다'''고 한다. 물론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이 워낙 규모도 크고 이건 정말 정신이 나갔지만...
[image]
흰 오벨리스크는 이 나라 무슬림 특유의 묘비.
엄밀히 말해서 주경기장을 파서 묘지를 만든건 아니고 경기장 지척에 공동묘지를 조성한 것이다. 테니스장에서 길만 건너면 공동묘지가 나온다. 주경기장을 비롯한 보조경기장, 테니스장 등은 지금도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스포츠 단지 내에 공동묘지가 있는 건 평범한 일은 아니다.
[image]
봅슬레이 경기장이던 곳.
빙상 경기가 열렸던 장소는 세르비아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다가 하필이면 사라예보 시내에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무슬림 보스니아계+가톨릭 크로아티아계)과 스릅스카 공화국(세르비아계)의 '''경계선'''으로 당첨되면서 재건되지 못하고 있다. 보스니아 판 브란덴부르크 문 소리를 듣고 있다. 선수촌 단지는 대부분 철거되었지만, 일부 아파트에는 총탄과 '''핏자국'''이 남은 채로 보존되어서 보스니아 내전의 참상을 전하는 전시장처럼 쓰이고 있다.
이 경기장 단지는 직접 접근하기도 매우 어렵다.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와 크로아티아의 투지만이 나란히 올림픽 경기장 단지에 지뢰를 깔아놔서 올림픽 경기장 단지 안에 '''지뢰 경계선'''이 있다. 관광할 때는 정해진 루트로만 다녀야 한다. 워낙 지뢰를 많이 깔아대서 지뢰제거도 사실상 불가능하고 한다. 그래도 관광객은 속칭 '''폐허 관광'''겸 해서 많이 온다고 한다. 유럽에서 연인원 300만 명 정도가 관람한다고 한다. 하루에 1만 명 꼴이니까 의외로 폐허단지 치고 많이 온다. 사라예보 공항과 사라예보 기차역에서 출발하여 올림픽 단지를 관광하는 버스가 30분에 1대씩 운행되고 있다.
봅슬레이 부분은 완전히 버려졌지만, 스키장의 경우에는 현재 다시 재개발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4.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성적
■ 1984 14회 사라예보 동계올림픽 (1984 Winter Sarajevo Olympics)
[image]
5. 기타
- 1980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처럼 보이콧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사실 유고슬라비아는 공산권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독자노선을 추구하는 비동맹 국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고슬라비아는 몇 달 뒤에 열린 LA 올림픽에는 루마니아와 함께 정상적으로 참가했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압력으로 공식 국호 사용을 제한당한 중화민국은 결국 타협하여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는 이름으로 올림픽에 처음 참가하게 되었다.
- 196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참가한 후 24년만에 다시 아프리카의 국가인 세네갈과 이집트가 참가하여 다시 오륜대회에 걸맞게 오대륙의 나라가 참가하였다.
- 개최국인 유고슬라비아는 이 대회에서 알파인 스키에서 은메달 하나만을 따는 처참한 성적을 보여주었다(일본과 공동 14위),[2] 지난번 대회의 깜짝 스타 리히텐슈타인도 동메달 2개(15위)로 8년 전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아무리 망했어도 동메달 1개로 15위 꼴찌를 기록한 오스트리아나 아예 메달도 못 딴 네덜란드만도 못했다. 안습한 이야기들이다.
- 이 대회 7년 뒤인 1991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급속한 붕괴 과정을 겪게 된다. 유고슬라비아 내전 참고.
- 동독이 금메달 9개를 따며 동하계 올림픽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금메달 순위 1위에 올랐다.[3] 피겨 스케이팅의 유명한 카타리나 비트를 위시하여, 여자 스피드스케이팅과 남자 봅슬레이 금메달과 은메달을 싹쓸이하는 등 초강세를 보였다. 동독의 버프로 소련도 이 대회에서는 고작(?) 금메달이 6개에 그쳤다. 다만 메달 개수 총합으로는 동독 9, 9, 6에 소련 6, 10, 9라 근소한 차로 소련이 1개 앞섰다.
- 스피드 스케이팅에서는 여자부에서는 동독 선수들이 메달을 거의 휩쓸었다. 동독의 크리스티나 루딩은 500m, 1000m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관왕이 되었으며, 4년 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다시 1000m에서 우승하며 2연패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싸이클 개인추발에 출전, 은메달을 차지하였다. 남자부에서는 소련, 캐나다, 스웨덴 등 다양한 국적의 선수들이 금메달을 땄으며, 일본 선수가 처음으로 스피드스케이팅 올림픽 메달을 따기도 했다. 이 와중에 스피드 스케이팅 한 종목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네덜란드와 전 대회에서 에릭 하이든이 남자부 금메달을 싹쓸이했던 미국은 이 대회 스피드 스케이팅 종목에서 노메달에 그쳤다.
- 피겨 스케이팅의 아이스 댄싱 종목에서 영국의 제인 토빌 / 크리스토퍼 딘 조가 '볼레로(Bolero)'를 연기하고 심판 전원 예술점 6.0 만점을 기록했다. 이 조의 '볼레로'는 피겨 스케이팅과 아이스 댄싱 종목을 대표하는 걸작 고전으로 회자되고 있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의 여자 싱글 프리 스케이팅 연기를 직접 관전한 후 인터뷰에서 '제인 토빌 / 크리스토퍼 딘 조의 연기가 생각난다'고 말한 일화가 유명하다.
- 마스코트는 어린 늑대인 '브치코'였다. 여섯 개의 경쟁작 가운데 선정.
- 대한민국은 동계올림픽 출전 사상 최대인 15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바이애슬론에서는 남자부의 황병대가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그러나 성적은 안습. 특히 스키 선수 3명이 사전 스키복 점검 규정을 알지 못해 모조리 실격 당하는 일까지 있었다.
- 개회식에서 선수단 입장 때 미국의 국명이 SAD로 나왔다. 이유는 세르보크로아티아어로 미국의 국명이 Sjedinjene Američke Države(키릴 문자로는 Сједињене Америчке Државе)기 때문이다.
[1] 하계 올림픽은 1980년 모스크바에서 사회주의 동유럽으로는 최초로 개최되었다. 두 번째로 동유럽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은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이다.[2] 원래 유고슬라비아는 올림픽 개최하기 전까지 동계종목에서는 노메달이었다. 비록 하나 밖에 못땄지만. 최초로메달 땄으니 어느정도 성과를 거둔 샘이다.[3] 통일 후 처음 참가한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는 동독 출신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많은 메달을 획득하여 종합 1위를 한다. 이후로도 통일 독일은 동계올림픽에서 몇차례 종합 1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