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재보궐선거
1. 개요
대한민국의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1999년 3월 30일과 6월 3일, 8월~12월에 치러진 재보궐선거다. 2000년 2월 이전까지는 재보궐선거의 일정이 정례화 되지 않아 지역마다 선거일이 모두 달랐다.[1]
2. 3월 30일
김대중의 대표적인 측근이었으나, 참여정부 이후 민주당계와 결별하고 박근혜 정권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이 4선에 성공한 선거이다. 국민회의 소속으로 구로구 을에서 당선됐다. 시흥시는 자민련 김의재, 안양시장은 한나라당 신중대 당선. 아이러니한게 한광옥은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을 이유로 8개월만에 다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만다.
2.1. 국회의원
2.2. 기초자치단체장
3. 6월 3일
김태정 법무부 장관 부인의 옷 로비 의혹과 관련하여 정국이 어수선하던 시기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장관을 재신임하겠다 선언했고, 한나라당과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어간다. 이른바 '''옷로비 사건'''. 이로인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미국의 '''특검'''제도가 도입된다. 그와는 별개로 국내외로는 남북 차관급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이 합의되고, 일본의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대일 관계 개선을 해나가던 때다. 인터넷 짤방으로 유명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페인트 달걀 세례도 이때쯤 터졌는데, YS는 현 정권이 계획적으로 저지른 테러라며( )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서울 송파구 갑의 홍준표가 의원직 상실을 하루 앞두고 자진사퇴하였는데[2] 그 지역구에서 한나라당 총재였던 이회창이 셀프공천[3] 을 통해 당선되며 대선 패배 이후 다시 중앙 정계에 복귀하게 되었다. 그것도 61.5%의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다. 이후 인천시장 재선에 성공하는 안상수가 계양·강화갑에 당선되며 처음 정계에 입문한 선거다.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로 민심이 뒤숭숭한 가운데 치러진 99년 6월 3일의 재보궐선거는 수도권 2곳에서의 한나라당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선거 다음날, 여당은 법무부 장관을 그대로 유임하겠다고 밝혔다. 정동영 국민회의 대변인 "여론심판 따라 희생양 만드는 일 있을 수 없어." 조사 결과 무혐의로 나오긴 했다.
3.1. 국회의원
4. 8월 19일, 9월 2일, 9월 9일, 10월 5일, 10월 28일, 12월 9일
광주광역시 남구청장에 국민회의의 정동년 후보가 당선되었다. 울산광역시 동구청장은 김창현 울산 동구청장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서 재보궐선거를 했는데 무소속의 이영순 후보가 당선되었다. 경기도 화성군수에는 한나라당의 우호태 후보가 당선되었다.[4] 경기도 고양시장에는 한나라당의 황교선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주도 남제주군수에는 국민회의의 강기권 후보가 당선되었다. 경상남도 함안군수는 한나라당의 진석규 후보가 당선되었다. 경기도 용인시장에는 국민회의의 예강환 후보가 당선되었다. 마지막으로 경기도 안성시장에는 한나라당의 이동희가 당선되었다.
[1] 그래서 위키피디아나 나무위키 문서에 기재되지 않은 2000년 이전 재보선 결과도 상당하다. 지역별로 날짜가 전부 달라 목록을 만드는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이전의 지역별 재보선 결과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중앙 선관위 자료를 참조하길 바람 # [2] 정확히는 1999.3.8 의원직 사퇴선언, 1999.3.9 대법원 판결에 따른 피선거권 박탈.[3] 원래 고승덕을 공천할 계획이었으나 장인이 자민련 총재인 박태준이여서 어쩔 수 없이 공천을 반납하고 만다.[4] 씨랜드 사건을 거치면서 당시 화성군수 김일수의 비리가 드러나 군수직 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