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8 그레이하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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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2. 개요
3. 파생형
3.1. M20 다용도 장갑차
4. 한국과의 인연
5. 매체에서의 등장
6. 기타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1. 제원


'''M8 Light Armored Car''' (M8 Greyhound)
  • 전장 : 5.01m
  • 전폭 : 2.54m
  • 높이 : 2.64m
  • 중량 : 7.8t
  • 엔진 : Hercules 6기통 가솔린
  • 출력 : 110hp
  • 최대속력 : 90km/h
  • 항속거리 : 640km
  • 무장 : 37mm M6 전차포 1문, 7.62mm 기관총 1정, 12.7mm 기관총 1정
  • 장갑 : 최대 19mm
  • 장갑 : 8~15mm[1]
  • 승무원 : 4명(조종수, 부조종수, 탄약수겸 동축기관총사수, 포수겸 차장)

2. 개요



개의 품종중 하나인 그레이 하운드에서 이름을 따온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정찰 장갑차. 능력부족이 지적되는 M3 반궤도 장갑차[2]를 대체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6x6 정찰용 장갑차로 오픈탑식 포탑에 37mm 대전차포를 장비했고 공축 기관총으로 7.62mm 브라우닝 기관총, 포탑 위에는 대공용으로 12.7mm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을 장착할 수 있다. 포드 사에서 개발을 주도하였으며, 1943년에 생산이 시작돼서 1945년까지 약 8,600대가 생산되었다.
미 육군의 주요 정찰전력으로 빠른 속도를 살려 정찰및 수색 임무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보병지원 등에도 활용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미국제답게 정비, 보수, 유지가 간편했다. 대신 도로를 벗어나면 트럭보다는 낫지만 기동력이 극단적으로 줄어든다.
주포인 37mm포는 M3 37mm 대전차포의 전차포 버전으로 동급의 구경을 가진 주포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력했지만 이미 대전 중반부터 대전차용으로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에[3] 97식 전차 같은 일본군의 허접한 전차는 상대가 가능하지만 독일군의 전차와 정면으로 맞설 화력은 아니었다. 개발 목적도 전차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위력 정찰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독일군이나 영국군, 소련군도 유사한 차량들을 보유했다.
그런데 미군 기록에서는 1944년에 '''티거'''를 격파했다는 내용이 있다. 매복하고 있다가 티거가 홀로 지나가자 뒤로 접근했고, 그레이하운드의 접근을 눈치챈 티거가 포탑을 돌렸지만 그보다 빠르게 25야드(23미터)까지 접근해서 37mm 3발을 엔진룸에 속사해서 잡았다는 것인데, 독일쪽 기록에는 이 시점에 해당 지역에는 티거 1은 없고 티거 2 부대가 며칠 전에 지나간 게 전부이기 때문에 둘을 조합하면 어떻게 길을 잃고 혼자 뒤쳐졌던 '''티거 2'''를 잡았다는 말이 된다. 물론 37mm 포로는 영거리에서 티거 후방장갑 관통도 간당간당한 수준인데다가 티거의 희귀성 및 당시 미군이 독일군 전차의 상당수를 티거라고 착각했던 걸 감안하면 실제로는 4호 전차 판터였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단한 활약이다.
미군뿐 아니라 자유 프랑스군을 포함하여 다른 연합군 소속국들에도 보급되었다.

3. 파생형


4연장 12.7mm M2 중기관총을 장착한 T69 대공차량도 개발되었으나 M3 하프트랙을 개조한 M16 MGMC보다 성능이 열세여서 양산되지는 못한 채 프로토타입 1량으로 제작이 중단되었다.

3.1. M20 다용도 장갑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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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0 다용도 장갑차 체험 탑승
'''M20 Armored Utility Car''' (M20 Scout Car)
전장
4.99m
전폭
2.54m
전고
2.29m
중량
6.6t
엔진
허큘리스 JXD 6기통 가솔린
출력
110hp
최대속력
90km/h
항속거리
640km
무장
.50 M2HB 기관총 ×1
승무원
6명[4]
[출처]
같은 차대를 활용하여 보다 정찰 및 지휘에 맞게 만든 무포탑형 M20도 존재했다. 본래 용도와는 달리 병력이나 탄약을 수송하는데 사용되기도 한 듯.

4. 한국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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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갑차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어서 M8은 6.25 전쟁 개전 당시 한국군의 유일한 기갑전력이었다. 총 27대를 미국으로부터 공여받았으며 모두 독립기갑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에 기갑부대를 창설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기갑 장비 공여를 통해 경험을 가진 기갑요원을 확보해야했다. 다만 미국은 공세적으로 운용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 외형과 탑승원 수, 좌석위치는 전차와 같으나 방어력과 화력이 약한 이 장갑차를 공여한 것이다.
그레이하운드가 한국에 도입된 후에는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삼팔선을 순회하면서 아군측 전차로 선전하여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는 역할을 하였다. 한국전쟁 초기에는 2대의 그레이하운드가 수대의 T-34와 조우하여 교전을 벌인 결과 1대를 기동불능으로 만들고 승무원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차량들은 전투 이후 북한군의 포격에 의해 타이어에 펑크가 나면서 도랑에 빠진 것을 구난하는데 실패하여 손실되었다.
또한 무전기 성능이 당시로서는 상당히 고성능이어서, 서울의 남산 기갑연대 통신소와 강원도 강릉의 8사단에 배속된 그레이하운드가 통신이 가능했을 정도. 그래서 통신 중계 임무를 부여해서 전선에 보냈기도 했는데, 현지 지휘관이 이게 전차가 아니라 장갑차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별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포탑에 포가 달렸으니 전차를 막으라'''고 투입해버리는 판단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태생이 장갑차인지라 무리하게 전차전에 투입된 결과 크나큰 피해를 입어야 했고, 이후로도 연이은 격전에 잇달아 투입되면서 점차 소모되어 국군과 UN군이 북진을 시작할 무렵에는 극소수만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운용 기록은 1950년 11월의 청진 전투에 투입된 것이며 그해 12월 흥남 철수에서는 적재 물자 목록에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시점에서 전량 소진된 것으로 추측되었지만 사실은 독립기갑연대의 장갑차 손실분 중 일부는 타 부대로 파견된 것들이고 이후에 미국의 원조로 넘겨받아 52년도 광복절 사열식 사진에도 그레이하운드 장갑차가 나온다.
참고로 이 당시 기술력도 전무했던 한국군들의 유일한 기갑전력이었던 27대의 기갑연대는 '''육군본부 직속부대'''였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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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때 M8과 동일한 차체를 사용하는 M20이 경찰에 의해 동원된 사진 자료가 있다.
1980년대까지 치장물자로 보관되었다고 하는데 이후 행방은 묘연하다. 5.18 민주화운동 때에는 시민군이 탈취해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군이나 정부측에서 작성한 것도 아니고 당시 현장의 민간인의 목격담일 뿐이므로 신뢰성은 그닥 높지 않다.

5. 매체에서의 등장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는 미군의 고성능 정찰차량으로 등장하며, 그 특성상 위력정찰 및 대보병성능에 특화되어 있다. 미군이 소총수용 BAR업을 하지 않는다면 십중팔구는 패스트 M8. 지뢰매설이 가능하며, 스커트업에 의한 방어력 증가와 기관총업에 의한 대보병 공격력 증가가 가능하다.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서는 M8은 정찰지원 지휘관 전용 유닛으로만 참전하며, 무포탑형 M20 다용도 차량이 중위 테크의 기본 유닛으로 등장한다. 둘 모두 기본적으로는 대보병용이지만 M8은 전작의 영국 스튜어트가 보유한 산탄 사격을 (대폭 너프해서)가져왔으며 M20은 승무원이 바주카를 1정 휴대하며 대전차지뢰 매설 능력을 가져왔다. 둘 모두 스커트업은 가능하지만, 미군의 안습한 팩션 성능을 피해갈 수 없었는지 둘 다 그 타이밍에 뽑아서 빈틈을 노릴 만한 출중한 성능은 못 되고 그저 정찰과 견제만이 가능한 수준에 머무른다. 전작에 비하면 심각할 정도의 비중 하락. 특히 M8을 보유한 정찰지원 지휘관은 그 구린 성능에 힘입어 반어법으로 필승 지휘관이라 통한다든가, M8의 37mm 주포라면 독일군 서부전선 유닛이자 미군의 재앙인 2호 전차 룩스를 따버릴 수 있으니 룩스의 하드카운터라든가 하는 농담들만이 떠돌고 있다.

6. 기타


이 차량의 최후 운용국은 다름 아닌 브라질이었다. 무려 1960년대까지 쓰다가 차량 자체의 노후화 및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당시 미국의 대 남미 무기 및 기술 수출 제한 크리 등을 먹어 전부 퇴역시켰다. 다만 M8을 교체하고자 나온 EE-9 & EE-11 장갑차들이 사실상 M8의 브라질 국산화 버전이기에 기존의 M8과는 별로 차이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EE 장갑차 시리즈의 개발국인 브라질을 포함, 세계 여러 EE 시리즈의 도입국들이 아직도 해당 차종을 전부 대체시키지 못해 어찌보면 아직도 세계 어딘가에서 M8 그레이하운드는 구르고 있는 것이다.[6] 더 재미있는 점은 이 2차대전의 유물을 사간 나라가 있다는 것. 아프리카와 중동, 남미의 여러 국가들을 대상으로 수출 실적까지 확보되었고, 그 구매자들 가운데 하나가 사우디의 최정예인 SANG[7]였다. 카프지 전투 및 이후 걸프전의 주요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SANG가 이 장갑차로 실전 검증을 넘어 큰 전과를 세우면서 EE 장갑차들이 굉장히 잘 팔렸다는 후문이 있다.[8]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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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갑만 놓고 보면 97식 전차와 라이벌이다.[2] 지금 쓰이는 M3 브래들리와는 다르다.[3] 자전적 그래픽 노블인 "Alan's War: The Memories of GI Alan Cope"(2008)에서 주인공이 패튼 휘하의 수색대에서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정찰을 나가는데, 37mm 포는 건물을 부수는데만 딱 한번 사용했고 탄약고에는 탄약 대신 현지에서 선물로 받은 와인을 실었다고 회고한다.[4] 원본인 M8보다 승무원이 2명 더 많다. 이는 상부 포탑을 치우고 차체내에 4명이 앉을 의자를 추가했기때문이다.[출처] TM 9-2800, 1943년 9월 1일 [5] 제1연대 수색대대 → 수색단 승격 → 독립 기갑연대(이 때 육군직할) 개편 → 7사단 → 수도사단[6] EE 장갑차 시리즈의 원조라고 볼 수 있는 브라질조차 최근(2014년도)에 들어서야 후속작인 VBTP-MR로 대체중이다.[7] 사우디아라비아 국가경비대(Saudi Arabian National Guard). 걸프 전쟁 초기 '사막의 방패' 작전 시기에 있었던 카프지 전투에서 전차까지 몰고 오면서 카프지에 침범한 이라크의 대규모 기계화부대들을 변변찮은 지원없이 자기네들이 보유하고 있던 V-150과 같은 소형 장륜 장갑차들만으로 전부 개발살내놓고 현지에 숨어있던 14명의 미 해병 정찰대를 구출하는 등의 혁혁한 전과를 세웠던 부대이다. 이후 반격기인 '사막의 폭풍' 작전기에도 맹활약을 하였고, 이를 감명깊게 본 미군이 이후 스트라이커 전투단을 만들게 된다. SANG는 사우디군 전체가 후티 반군 따위에도 털리는 현재 가운데에서도 그나마 정예인 부대로 꼽힌다. [8] 이는 SANG에서 운용하던 V-150 등의 기타 장갑차들도 마찬가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