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하

 


<colbgcolor=#0D3EA3><colcolor=#FFFFFF> '''채동하
蔡東河 | Chae Dong-Ha'''
'''본명'''
최도식 (崔道植)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생'''
1981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 강서구
'''사망'''
2011년 5월 26일 (향년 29세)
서울특별시 은평구
'''발인'''
서울대학교병원
'''묘소'''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 스카이캐슬 추모공원
'''신체'''
182cm, 73kg, A형
'''가족'''
외동아들(무녀독남)
'''학력'''
명덕고등학교(서울) (졸업)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 / 전문학사)
경희사이버대학교 (글로벌경영학 / 학사)
'''종교'''
개신교
'''소속사'''
더블유에스 엔터테인먼트
1. 개요
2. 가수 활동
3. 사망
4. 가창력
5. 사후
7. 수상 경력
7.1. 시상식
8.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가수이다. SG워너비의 전 리더이자, 서브보컬을 맡았었으며,[1] 그룹 탈퇴 후 솔로가수로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2. 가수 활동


데뷔했던 계기가 특이하다.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00학번으로 재학 중일 때, 기획사 관계자들과 작곡가들이 찾아와서 재학생들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근데 그 재학생들중 가장 노래를 잘 불러 기획사의 명함을 받았다고 한다. 정작 본인은 그렇게 잘 부른 건 아닌 거 같았다고 생각했는데 엄청난 극찬을 받아 오히려 당황했었다고 한다.
2002년 「Gloomy Sunday」라는 타이틀곡으로 데뷔하였다. 그 후 활발한 방송활동을 하다가 소속사인 지패밀리 엔터테인먼트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솔로 1집활동을 마무리한다. 이 후 엠넷미디어(당시 GM기획, 현 MBK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김용준, 김진호와 함께 SG워너비의 리더 및 서브, 메인보컬로 활동하게 된다.
SG워너비가 앨범 판매량 1위, 골든디스크 대상 2회, MKMF 대상 수상 등 그야말로 고공행진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2008년 1월, 소속사와의 의견 차이로 SG워너비에서의 탈퇴를 발표하였고, 3월 조영수의 'All star' 앨범에 참여하고 탈퇴하였다. 정확히는 2007년 추석 즈음에 재계약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왔고, 그 조율 과정에서 추후 활동에 대한 의견 차이를 확인하고 내부적으로는 SG워너비 탈퇴를 결정했었다고 한다. 2008년 2월에 엠넷에서 방송된 'SG워너비 도쿄스토리'에서 한 인터뷰에 따르면, 2008년 1월 당시 소속사와 법적인 계약은 이미 끝난 상태이며, 단지 소속사 사장님과 본인이 생각하는 SG워너비의 길까지는 몫을 채우고 나가길 원했기 때문에 2008년 5월까지 SG워너비로서 스케줄을 소화했다. 마지막 스케줄은 2008년 5월 8일일본 도쿄에서 열린 콘서트 <My Friend Forever>였다.[2] 이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사이가 틀어지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고 하는데, 이를 증명하듯 탈퇴 이후 2008년 6월에 열린 SG워너비 울산 콘서트와 서울 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하기도 했다.
가수 활동뿐만 아니라 뮤지컬 등 폭 넓은 활동을 원했지만 소속사에서는 SG워너비 활동에 전념하기를 바라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자세한 내용은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실제로 SG워너비 스케줄 때문에 예정되어 있던 뮤지컬 공연을 취소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결국 소속사와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탈퇴. 탈퇴 후 2008년에 SG워너비가 출연한 라디오 스타에서 김용준이 '꿈이 있어서 나갔다.'라고 짤막하게 언급한 것이 전부. 확실한 것은 멤버간의 불화는 아니었다고 한다.
탈퇴 후 2집 《Essay》로 컴백하려 했으나 ,목 디스크와 성대결절이 겹쳐 활동을 연기하여 2009년 11월에 늦게나마 컴백을 했음에도 목 디스크가 또 발목을 잡아 방송 활동을 많이 못했다. 곡의 퀄리티는 좋으나 기대만큼은 활동은 못한 편. 타이틀곡의 작곡가인 조영수가 '''초대박'''일 거 같다고 예상할 정도면 많이 아쉬운 편이다. 음반의 판매량 자체는 나쁘지는 않았으나 기대에는 못 미쳤다. 특이하게 이 앨범엔 채동하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3]과 직접 쓴 수필이나 심정들이 적혀 있다.
스타 골든벨에서 공연 중이던 뮤지컬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자신의 배역에게 주어진 뮤지컬 넘버를 부른 적도 있다.
2009년에는 특강을 다닌 적도 있었다. 개인팬카페인 '별속에 ★동하★' 카페에 그때 채동하가 했던 말을 '''모두 타이핑한''' 사람의 게시글이 검색된다.
2010년 9월에는 미니앨범 《D-Day》로 컴백. '발라드의 멜로디, 록의 리듬, 클래식의 과감함, BPM 147을 한 노래에 섞은 「Vanilla Sky」라는 노래가 채동하의 자작곡이자 타이틀곡이었다. 역시 그렇게 오래 활동하지는 않고 들어간 편이나 그래도 2집 《Essay》보다는 비교적 활발하고 오래 활동하여 채동하를 기다려온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의 성원에 보답을 해냈다.
2011년 1월, V.O.S에서 탈퇴했던 전 리더 박지헌[4]과 「어제 같은데」라는 싱글을 발표하고 한국에서는 각종 행사로, 일본에서는 콘서트로 점점 활발하게 활동해 나가며 다시 열심히 앞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3. 사망


2011년 5월 26일[5],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 S아파트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타살 흔적은 없으며 사인은 자살. 자살 동기는 우울증으로 보인다고. 실제로 2009년 7월 9일, 채동하가 잘 따르던 매니저 장 모 씨가 자살로 숨졌고[6], 본인이 열심히 작업한 앨범은 건강상 문제로 기대에 못 미쳤으며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 컸다는 점이 채동하를 괴롭힌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사망 다음 날인 5월 27일은 일본 도쿄에서 공연하는 날이었으며, 이 시기에는 일본 프로모션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채동하의 일본 측 소속사에서 공연이 얼마 안 남았는데 채동하와의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입국한 사실도 소속사에 알리지 않았으며 수 차례 연락을 했음에도 받지 않았다. 이에 그의 매니저가 자택을 방문하였고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119에 신고, 구조대가 출동하여 베란다를 통해 들어갔으나, 안타깝게도 명을 달리한 상태였다. 평소에 그를 본 사람들은 짧은 외출에도 단정했으나 자살 며칠 전에는 단정한 모습과는 달리 초췌한 모습이었다고 한다.[7] 당시 기준으로 한달도 안 남은 채동하의 생일에 맞춰 미니앨범 쇼케이스와 팬클럽과 함께 하는 생일파티 등이 이뤄질 예정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와중에도 콘서트 준비는 속행되었고, 공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서야 소식을 들은 일본 측 스텝들은 입장만 기다리고 있던 수백 명의 팬들에게 '''채동하의 자살 소식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전달해야 했다.''' 공연은 생전 SG워너비 활동과 일본에서의 활동을 담은 영상들을 편집해서 상영했고, 관련 스텝들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와 추모문을 낭독하는 등 추모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팬층이 거의 30~50대 여성이라 눈물바다가 되었지만 다행히 큰 소란은 없었고 조용히 공연은 막을 내렸다. 팬카페에 며칠 전에 올라왔던 밝고 기대감 넘치는 글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며, 더욱이 그의 사망 소식과 더불어 기부, 봉사 등 각종 선행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더욱 더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8]
소속사에선 채동하의 추모 앨범이 계획되어 있었고, 생전에 작업했던 데모곡 「눈이 기억하는 사람」을 발표한다는 기사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잊혀진 것을 보면 오보일 가능성도 있고, 질문한 흔적만 있다. 답변에 의하면 유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SG워너비 멤버인 김진호2013년 2월 13일에 발매한 본인 솔로 정규앨범 1집 수록곡인 '안개꽃'은 채동하를 추모하는 곡이다.

4. 가창력


살아 생전 가창력을 살펴보면, 젊은 가수치고는 '''굉장한 가창력의 소유자'''이다. 「Gloomy Sunday」로 데뷔하던 1집 때부터 김형석 작곡가가 말하길, '''박효신조성모의 장점을 합쳐놓은 듯한 느낌'''이라고 극찬했다. 작곡가도 조성모의 여러 히트곡을 썼던 이경섭 작곡가가 1집 대부분의 곡을 작곡했을 정도이다. 게다가 음반 판매량 순위 차트에서 40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신인치고는 꽤 인기가 많았다. 소속사인 지패밀리엔터테인먼트의 부도로 인해 얼마 활동하지 못 했다는 게 아쉽다는 점. 당시 활동 영상을 유튜브에 찾아보면 있다. 2002년 11월 23일MBC 음악캠프에서 캠프 뉴페이스로 데뷔한 영상까지 있다. 12월 7일에 37위로 진입. 12월 말에 부른 것도 있고 정장을 입고 부른 것도 있다.[9][10]. 엠넷 영상도 있다. '차마'는 2003년 2월 13일에 들어서야, 라이브 무대가 나왔다. 잘 들어보면, '''"채동하"'''라고 연호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11]
사실 콘서트로만 보자면 '''개인 무대에서 록 장르의 노래들을 부른다.'''[12] 2집 콘서트 개인 무대에서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무대를 한 적도 있고, 무리를 많이 하는 편. 4집 콘서트 중에서는 본 조비의 「Complicated」를 부르다가 도중에 쓰러져서 휴식하고 나온 적도 있었다. 인간극장에서 그대로 나온다. 저음부터 3옥타브가 넘어가는 고음까지 소화 가능하며, 록 스타일의 곡도 잘 소화하곤 했다.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며 콘서트에서 본 조비, 너바나의 곡들을 자주 불렀다.
SG워너비 당시 메인보컬이었으며, 김진호가 워낙 파트가 많고 폭발적인 애드립을 지르기에 팬들이 아닌 사람들은 채동하의 가창력과 그가 메인보컬이라는 사실을 잘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브할 때는 원곡의 기존 파트 배분과 다르게 하여 후렴구를 불러서 채동하도 메인보컬의 면모를 보여주며, 아예 채동하가 녹음 버전 곡에서도 후렴을 맡는 곡들도 몇 곡이 있다. 김진호가 당시에 워낙 대중성 있는 폭발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어서 메인보컬로서 파트를 다 가져가다시피 했으나 채동하가 SG워너비를 탈퇴한 뒤, 채동하의 살인적인 고음을 맡을 사람이 없어 더 이상 라이브로 들을 수 없는 곡들이 몇 곡 있는 것만 봐도 그의 가창력을 잘 알 수 있다.[13]
SG워너비 3집부터 라이브와 음반의 차이가 더 커지는데, 이는 음반 프로듀싱 단계에서 김진호의 두꺼운 목소리를 부각시키기위해 다른 두 멤버의 파트를 줄이고 미성을 강조하도록 디렉팅했기 때문이다.[14] 하지만 라이브에서는 보다 힘차고 파워풀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이 목소리가 채동하 본연 스타일에 가깝다. 대표곡들인 3집 '내 사람', 4집 '아리랑' 고음 파트만 들어봐도 라이브와 차이가 크다. 그런데 SG워너비를 탈퇴하고 발매한 솔로 2집도 미성을 심하게 강조하여 역시 라이브와 차이가 크다. 프로듀서 조영수의 취향[15]인 듯하다.
음역대가 굉장히 넓다. 2집 광을 SG워너비 탈퇴 후 솔로로 부를 때 김진호의 "못 이기는 척 해 한 번 만 내게 져주면 돼" 부분을 진성으로 부른다.
저음에서는 허스키한 쇳소리[16], 고음에서는 맑고 힘 있는 미성이 나오는 특이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선천적인 천식 때문에 기복이 좀 심하다고 평가받았었다. 목뿐만 아니라 몸 컨디션에 따른 기복도 심한 편이라, 몸이 좀 안 좋을 때는 정확한 음을 못 내기도 했다.

5. 사후


채동하가 세상을 떠난 후, 아이돌 홍수 시대에서 채동하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차 사라져만 가는 줄 알았지만...
2013년 10월 12일 방송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첫 출연한 김진호를 통해 잊혀가는 줄만 알았던 채동하가 다시 기억되게 된다. 이날 김진호는 추모 특집으로 고인이 된 채동하를 추모하며 SG워너비 시절 히트곡 「살다가」를 열창했다. 중반부에 채동하의 파트에서 채동하의 목소리가 그대로 나오면서 감동이 더해졌다. 최종적으로 432점이라는 매우 높은 점수를 받고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방송이 끝난 후에도 각종 음원 차트 상위권에 이번에 부른 「살다가」가 1위를 찍고 채동하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다시 사람들에 기억에 남겨지게 될 수 있었다. #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강민경이 말하길, 자신과 이해리에게 조언을 제일 많이 해주고 챙겨주었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혼냈던 선배였다고 한다. 그리고 채동하가 세상을 떠난 뒤에 김진호가 정말 많이 힘들어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불후의 명곡 우승 인터뷰 때 김진호에게 한 마디 요청했더니, "아... 이건 너무 잔인한데요."하면서 괴로워했을 정도였다. 사실 채동하가 살아 생전에도 이런 오그라드는 멘트를 엄청나게 싫어했기 때문에(...)라고 답했다. 영상 9:00 무렵부터 강민경의 이야기가 나온다.

6. 음반 목록




7. 수상 경력



7.1. 시상식


<rowcolor=#FFFFFF> '''날짜'''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2004년'''
12월 2일
제19회 골든디스크상
PAVV 신인가수상
Timeless
12월 10일
제15회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2005년'''
11월 1일
제12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그룹 부문 가수상
죄와 벌
11월 27일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남자 그룹상
12월 7일
제20회 골든디스크상
본상
'''대상'''
12월 26일
쥬크온 뮤직 어워드[17]
리메이크 부문상
Classic Odyssey
올해의 가수 부문상
살다가
12월 28일
뮤즈 뮤직 어워드[18]
올해의 앨범 부문상
올해의 리메이크 부문상
Classic Odyssey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본상
죄와 벌
프로듀서상
12월 30일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12월 31일
MBC 가요대제전
본상
멜론 뮤직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살다가
'''2006년'''
1월 3일
2005 중국 시나엔터테인먼트 선정
10대 아시아 레코드
살다가
10월 31일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남자 발라드부문 가수상
내 사람:Partner for Life
11월 27일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올해의 최고 앨범상'''
The 3rd Masterpiece
'''올해의 최고 노래상'''
내 사람:Partner for Life
디지털 인기상
12월 1일
제16회 서울가요대상
본상
12월 14일
제21회 골든디스크상
본상
'''디지털 부문 대상'''
12월 29일
SBS 가요대전
본상
프로듀서상
'''2007년'''
11월 17일
Mnet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R&B 소울 음악상
아리랑
12월 14일
제22회 골든디스크상
본상
'''대상'''
'''2009년'''
12월 2일
제30회 청룡영화상
특별상


8. 기타


  • 선천성 심장병이 있다. 이로 인해 군대는 당연히 면제. 어려서부터 수두, 홍역 등 각종 질병을 모두 겪으며 힘들게 자라왔고 그 후유증으로 천식을 달고 살았었다. 그리고 담배 또한 별로 피우지 않고 [19] 와인을 마시는 편이다.[20] 의사나 친지들은 천식 환자가 어떻게 그렇게 무대에서 뛰어다니며 노래를 하는지 신기하다고 했다.[21]
  • 씨야이보람과는 연인 사이였었다. 스타 골든벨에서 이보람이 한 번 더 언급하면서, 채동하에게 "잘 할게요."' 라며 영상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그로부터 1년 뒤 결별했다. 참고로 씨야는 SG워너비의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탄생한 여동생 가수로 불리기도 했다.[22] SG워너비 콘서트의 게스트로 씨야가 참여한 적도 있다. 이보람은 채동하가 운명을 달리하기 며칠 전에 안부 문자를 보내왔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때 당시 일 때문에 답장을 하지 못했고, 그 이후 뒤늦게 사망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에 가서 발인날까지 워너비 멤버들과 자리를 지켰다고 한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장윤정 2집에 「편지」라는 제목의 듀엣곡이 있다.
  • 2017년 4월, Yes24에서 이벤트로 낸 문제가 논란이 되었는데, 당시 문제가 다음 중 'SG워너비의 멤버가 아닌 사람은?'이라는 문제를 내고 보기에 있는 4명 중 1명을 고르면 되는 문제였다. 당시 보기 1번에 채동하가 있었고 당연히 답은 現 멤버가 아닌 사람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1번 채동하. 여기까지만 보면 별로 문제점이 없어 보이는 퀴즈였으나, 문제가 된 건 바로 퀴즈의 답에 대한 해설이다. '채동하 씨는 2008년 SG워너비를 탈퇴하였다.'라고 썼거나 채동하의 사망 사실을 밝히려고 했다면 '(고)채동하씨는 2008년 SG워너비를 탈퇴하였다.'로 쓰면 별 문제가 없었을 일을 '''"1번 채동하는 SG워너비를 탈퇴 후 자살"'''로 표시하여 고인을 능욕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온라인 상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면서 논란이 커지자 4월 15일, Yes24는 사죄문을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비롯한 SNS에 올렸지만, 이미 화가 날 대로 난 SG워너비 팬들+채동하 팬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다. 관련 기사.

[1] 라이브에선 김진호의 음원 일부 파트를 이어받아 메인보컬도 겸임했었다.[2] 2008년 4월에 이석훈이 SG워너비의 새 멤버로 영입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약 1개월간 SG워너비는 4명이기도 했던 것. <My Friend Forever>는 전반부에는 이석훈의 SG워너비가 5집 수록곡들을 불렀고, 후반부에는 채동하의 솔로 무대 이후에 채동하의 SG워너비가 콘서트를 마무리했다.[3] 「15년 전 오늘」, 「마음도 사랑도 눈물도」.[4] 2016년 1월 재결합하여 다시 V.O.S로 활동 중이다.[5] 발견된 날은 5월 27일이나 사망 추정 시각은 5월 26일 저녁이다. 그래서 유골함에도 사망 날짜가 2011년 5월 26일로 되어있다.[6] 이 당시 '''"심장의 절반이 날아간 것 같다."''' 고 밝혔다. 생애 첫 매니저이자 본인에게는 엄청 소중한 매니저였다고 한다.[7] 그래도 며칠 전까지 매니저들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자신의 콘서트에 대한 홍보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더 고통스러웠을지도...[8] 채동하는 SG워너비 탈퇴 이후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네팔에 여러 번 방문하여 현지에서 밀알학교 건축 현장에서, 그리고 장애인들을 위해서 봉사하였으며, 특히 2009년에는 한 다큐멘터리에서 봉사활동에 전념하는 모습이 비춰지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네팔 아이들, 그리고 국내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위해 학습 용품을 기부하고, 독거노인들을 위해 쌀을 보내는 등 선행을 해오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사망 소식과 더불어 생전 선행 소식이 알려져 많은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9] 2분 10초 이후로 잠깐 치직거리니 참고하자.[10] 채동하 1집 때 이정현의 '아리아리'가 나왔다.[11] 채동하의 개인 팬카페인 별속에 ★동하★가 그 즈음에 생겼다.[12] 솔로 1집 <차마>도 록 장르였다.[13] 고음만 잘 올린다고 가창력이 좋은 것은 절대 아니지만 채동하는 저음부터 고음까지 넓은 음역, 감미로운 음색, 안정적인 발성, 훌륭한 성량, 애절한 감정표현 등 모든 면에서 상당히 뛰어난 보컬이다.[14] 당시 채동하는 "내가 이 정도 실력밖에 안 됐나" 하면서 자괴감 같은 게 들었다고.[15] 정확히는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두드러지게 프로듀싱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SG워너비는 조영수가 가장 자신들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16] 쉽게 생각하면 노홍철의 이긴 한데, 그만큼 심하진 않고 바람이 새는 정도.[17] 현재는 벅스뮤직으로 합병.[18] 뮤즈는 싸이월드와 네이버 등 주요 포털사이트에 배경음악을 공급하는 온라인 음악사이트 어워드다. 현재는 올레 뮤직으로 합병.[19] 피우다가 끊다가를 반복했었다고 한다.[20] 인간극장에서 보면 캔맥주는 마신 듯 하다.[21] 인간극장 SG워너비 살다가 살다가 편 참조. 그의 어머니가 밝힌 내용이다.[22] 이게 거짓말이 아닌 게 채동하는 이보람을, 김용준은 남규리를, 김진호는 김연지를 트레이닝했다는 소리가 있었을 정도로 씨야는 여자 SG워너비라는 수식어가 있었으며, 파트 배분조차 김진호>채동하>김용준, 김연지>이보람>남규리였고, 일단은 담당하는 포지션도 김진호와 김연지는 리드보컬, 채동하와 이보람은 메인보컬, 김용준과 남규리는 서브보컬에다 최고연장자(채동하 81년생, 남규리 84년생)가 리더 맡은 것까지 똑같다. 이 정도면 복붙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