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SG워너비)

 


<-2'''김진호
金振浩 | Kim Jin-Ho'''
'''출생'''
1986년 5월 21일 (38세)
서울특별시[1]
'''국적'''

'''신체'''
175cm, B형
'''가족'''
어머니 노기화[2]
'''학력'''
대원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 / 학사)[3]
'''종교'''
천주교 (세례명: 스테파노)[4]
'''병역'''
병역면제[5]
'''소속사'''
목소리 엔터테인먼트[6]
'''소속 그룹'''
SG워너비
'''포지션'''
'''메인보컬'''
'''데뷔'''
2004년 SG워너비 정규 1집 〈WANNA BE+[7]
'''SNS'''

'''MBTI'''
ESFP
1. 개요
2. 파트 배분
3. 보컬
3.1. 2004~2006년
3.2. 2006~2007년
3.3. 2008~2011년
3.4. 2012~2018
3.5. 2019~현재
3.6. 창법 변화 비교 영상
4. 외모
5. 여담
6. 솔로 활동
7. 방송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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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각각 3집, 7집 때 사진.
대한민국가수이다. 3인조 남성 보컬그룹 SG워너비의 멤버이며, '''메인보컬'''을 맡고 있다. 과거 '''소몰이창법 전성기를 이끈 1인자'''[8]SG워너비의 '''메인보컬'''이다.
경희대학교 PostModern 음악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부터 케이윌, 이현, 미오의 장정우, 이정욱과 함께 언더그라운드 흑인음악 보컬동호회 '소울리스트(SOULIST)'의 멤버로 활동했다. 이현, 케이윌, 미오의 장정우, 이정욱과는 동호회에서 친하게 지냈던 사이로 케이윌의 경우는 아예 언더 출신부터 친하게 지냈던 사이이다. 2003년 '별밤 뽐내기 선발 대회'에서는 주·월·기 장원까지 총 5번의 장원에 당선됐었다.
김용준채동하 듀엣으로 기획되었던 SG워너비가 음반을 녹음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멤버이다. 당시에 김진호는 시골에서 막 올라온 듯한 순수 청년의 이미지였고 그런 김진호는 너무나 세련되어 보였던 김용준과 채동하를 보고 기가 죽어서 '''"저 그냥 나갈게요"'''라고 말했다고.[9]
M TO M의 객원멤버로도 활동했는데 덕분에 SG워너비와 M TO M을 대중에게 헷갈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M TO M 1집 당시에는 정식객원멤버로서 전곡에 참여했으며[10] 2집 3곡, 3집 1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특히 M TO M 2집 타이틀곡 「세 글자」는 SG워너비 4.5집에도 수록되었는데, 이전에도 M TO M이 아니라 SG워너비의 「세 글자」라고 알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M TO M의 멤버들, 특히 손준혁과는 데뷔 전부터 오랜 친분이 있는 듯 하며 그 친분을 계속 유지하며 뮤니트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여 2013년 2월 솔로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작사와 작곡에도 관심이 많으며, 2집의 「그래도」와 「보관함」, 4집의 「아버지 구두」, 4.5집의 「들어주세요」, 5집의 「이토록 아름다운」의 작사를 맡기도 했다. 작사한 곡들의 가사는 매우 뛰어난 편으로, 솔로 1집앨범 발매 이후 향후 본인의 모든 솔로곡은 자작곡으로 채워서 발표했다. 솔로 정규 1집 발매 직후 방송 활동을 하면서 나온 토크에 의하면, SG워너비 활동을 중단하고 1집이 나오기 전까지 직접 쓴 곡이 무려 '''121곡'''이나 된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쓸 수 있었느냐는 물음에, "그 당시에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굉장히 쏟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

2. 파트 배분


'''SG워너비에서 파트가 가장 많다.''' 1~4집 통틀어 김진호의 파트가 가장 많지 않은 곡이 1~2곡 밖에 없을 정도.라이브에선 파트 배분을 조금씩 다르게 하여 주로 채동하와 나눠서 부른다. 특히 1~2집은 절대로 혼자 부를 수 없는, 겹치는 파트가 많아서 김용준과 채동하에게 조금씩 분배했고, 3집은 김진호의 음역대가 아닌 파트를 맡아서 채동하가 많이 불렀다. 이석훈이 합류한 5집부터는 여전히 SG워너비의 색깔을 책임지고 있지만 점점 음원과 라이브의 파트 차이가 사라지는 중이고, 음원에서의 파트도 제법 균등하게 분배되고 있다. 6집부터 이석훈의 음역대가 넓어지고 창법도 교과서적으로 변모하고, 김진호가 창법을 이전과 매우 다르게 바꾸면서 좀 더 대중성 있는 목소리와 발성을 지닌 이석훈의 파트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11]

3. 보컬


데뷔한지 10년이 넘어가면서 각 앨범마다 다른 목소리와 창법을 사용하고 있어 년도와 앨범 순으로 서술하고, 이 문단에서는 공통적인 큰 특징만 서술한다. 고등학생 때 목소리는 그렇지 않았는데, 창법이 변하면서 말하는 목소리 톤도 변했다. 데뷔 초기에는 맑았다면 지금은 많이 두꺼워지고 낮아진 편이다.
가성이 굉장히 독특한데, 가성음역이 '''어마어마하게 높을뿐만 아니라''' 깊고 울림이 큰 가성을 낸다. 사랑법이라는 곡에서 가성을 '''4옥타브 도(C6)'''까지 올리고 이 영상에서 8분12초 쯤 가성 애드립을 하는데 여기서 '''4옥타브 도♯(C♯6)'''까지 올라간다.
진성으로는 2012년 한창 SG워너비 활동에 전념하던 당시만 해도 필요할땐 비강쪽 소리를 내며 조금은 높은 소리도 냈으나 포크적인 창법으로 개선한 2013년 이후로는 높게 올라가는 고음보다는 묵직하고 감성적인 깊은 소리를 내며 주로 라이브에선 안정적으로 내는 음이 '''2옥타브 솔(G4)''', 최대로 음을 올릴땐 '''2옥타브 라♯(A♯4)'''정도의 고음을 사용한다. 2005년도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김진호의 전성기라 불릴 당시 목상태가 좋았을때 활동 당시 살다가 라이브 영상 3분 59초쯤에 '''2옥타브 라♯(A♯4)'''을 부드럽게 올렸었고, 입술만 깨물고 있죠 라이브 영상 56분 45초쯤에 애드립으로 '''2옥타브 시(B4)'''를 올리기도 하였다.
디렉팅에서는 진성으로 M to M의 세글자, 사랑할 것 같아서에서 애드립으로 '''3옥타브 도(C5)'''까지 올렸고, 리메이크 앨범에 있는 단발머리란 곡에선 진성으로 '''3옥타브 도♯(C♯5)'''까지 올렸다. 사실 테너 입장에선 별로 안 높을수도 있지만 바리톤 입장인 김진호에겐 높은 음들이다.

3.1. 2004~2006년


흉성 베이스에 두성을 섞어서 사용하는 창법을 사용하며 굉장히 과장되고 과잉된 감정을 전달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환희와도 비슷한 목소리라고 평가 받았으나, 환희보다 조금 더 정제되지 않은 두꺼운 흉성을 사용했다.
목상태도 깨끗했고 음역대도 굉장히 넓어서 고음역의 노래와 애드립도 상쾌하고 시원하게 소화가 가능했다. 다만 전문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완성도 있는 보컬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목을 혹사하는 발성법이라 미흡한 느낌이 강했다. 승승장구하던 음반, 음원 성적과는 별개로 항상 과장된 목소리와 창법으로만 감정을 전달했고 안 그래도 똑같은 창법에 앨범 역시 천편일률적인 구성을 갖췄기 때문인지 전문가들한테는 혹평 일색이었다. 그래도 대중들은 19살~21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압도력과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며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팬들은 김진호의 성대상태와 기교적인 가창력만큼은 이 시기를 리즈시절로 손꼽고 있다.
'''순수 가창력'''으로서의 정점은 '''19살'''이었던 2004년 1집 때로 보는 것이 옳다. 전문 보컬 트레이닝을 받지 않고 데뷔했음에도, 괴물같은 성량과 흑인을 연상케 하는 굵직하고 소울풀한 음색,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넓은 음역대 등 어마어마한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였다. 이 시절 김진호는 동나이대 박효신을 뛰어넘을 만한 포스를 보여주었고, 잠재력은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다만 1집 이후로 목에 무리가 가는 소몰이 창법으로의 변환과 많은 애드리브[12][13]와, 무엇보다도 소속사의 과도한 혹사로 목이 망가지면서 10대 시절의 압도적인 파워풀함은 다시 보여 주지 못하게 되었다.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그가 소몰이 창법으로 바꾸지 않고, 과도한 애드리브를 줄이고, 파트를 다른 멤버들과 더 분배하고, 소속사로부터 혹사만 당하지 않았다면 가창력으로도 최고가 되었을 거라고 평가할 만하다. 데뷔 1년차의 김진호는 그렇게 되기에 충분할 만큼 뛰어난 가창력을 선보였었다.
많은 대중들이 김진호라는 가수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음색이 바로 이 시기이다. 이 시기의 창법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곡은 SG워너비 1~3집 전곡과 M TO M 의 「세글자」,「사랑할 것 같아서」, Big4의 「Untouchable」 등이 있다.

3.2. 2006~2007년


SG워너비 3집부터 서서히 목소리에 힘을 빼기 시작해 풍부한 소리가 아니라 가벼운 목소리로 변화했다. 이는 2집 때부터 자기관리 차원의 다이어트로 살을 굉장히 많이 뺐고 대중이 서서히 소몰이 창법에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집 쇼케이스 기자회견 자리에서 "소몰이 창법은 아직 살아있다. 다만 이전에 몰았던 소가 300마리였다면 지금은 100마리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라고 본인이 직접 발언했다. 「내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진호의 애드립이 가득 차 있어서 여전히 소를 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잘 들어보면 목소리가 얇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2006년 말에 성대결절을 겪은 이후로 좀 더 많이 변화했다. 본인 파트 50% 이상을 가성애드리브로 때우거나 연말 시상식에서 노래를 아예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목상태가 심각했던 모양이다.
2007년 4집 발매 직전에 발매한 「가시리」에서 애드립을 줄이고 많이 힘을 뺀 목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했고 4집부터는 한층 더 가벼워진 목소리가 주를 이룬다. 창법 변화 외에도 2005~2006년의 살인적인 스케줄과 콘서트 일정, 상술한 성대결절 때문에 고음역대를 많이 힘들어하면서 2집의 죄와 벌, 3집의 내 사람 등 옛날 노래를 라이브로 부를 때 고음 부분을 가성처리를 하거나, 최고음만 순간적으로 딱 찍고 내려와 나머지를 애드립으로 처리하는 기교로 소화하기 시작했다. 2007년 연말 즈음에는 다시 목상태에 무리가 되어 그 해 발매한 「아리랑」 후렴부를 가성으로 소화하기도 했다. 그만큼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목도 많이 상하고 가창력이 하락하던 시기였다.

3.3. 2008~2011년


2008년 5집 당시엔 보컬 트레이닝도 받고 좋은 목관리를 하면서 4집보다는 훨씬 좋은 목소리를 내줬다.「라라라」 때만 해도 준수한 실력을 보여주며, 가창력이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1년 후 2009년, 6집 「사랑해」에서 쥐어짜기 창법의 절정을 찍는다. 그래도 라이브에서의 압도력은 여전했다.[14] 「내 사람」 후반부 가성 애드립이 약간 달라졌는데, 3집 때보다 좀 더 풍부한 소리를 내며 바이브레이션이 들어간다.
2010년부터 방송활동을 줄이고 콘서트에만 집중하면서 목관리는 잘 관리 해왔지만 이미 혹사를 많이 당한 성대 상태라 1~2집 곡을 부를 때는 과거의 소리가 잘 나오질 않아 여전히 힘들어하지만 이전보다는 잘 소화하는 편이다. 이때도 김진호는 소몰이창법을 계속 유지했지만 2011년 The Last 콘서트 솔로무대에서 김광석의 '그날들'을 부르는 모습을 보면 솔로활동(2013~현재) 시절의 창법이 점점 나오기 시작했다.

3.4. 2012~2018


2012년 SG워너비가 멤버 군입대로 인해 잠시 공백기를 가지면서 솔로활동을 시작했는데, 목소리가 시간이 흐를수록 SG워너비 1집과 2집때처럼 점점 더 두꺼워져 갔다. 하지만, 이전에 볼 수 있었던 두꺼운 소몰이 창법은 사용하지 않으며 포크적인 음악을 시도하면서 담백하고 말하듯이 때로는 소리를 그냥 던지듯이 어쿠스틱하게 노래를 했다. 힘을 낼 때는 과장된 소리보단 굳이 비교하자면 약간 성악가가 노래하듯 성대를 제대로 접촉시키며 중고음에서 넓고 매우 탄탄한 목소리로 노래를 소화했다. 억지스러운 예전의 소몰이 창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감정을 풍부하게 섞어서 노래 할 수 있으며 실제로 불후의 명곡 살다가 무대를 보면 예전과의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다만 코어 팬들 중에는 예전 소몰이 시절의 리듬감 있는 목소리를 선호하는 팬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제발 예전 창법으로 돌아와달라는 말들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본인도 이런 사실을 인지했는지 미니홈피와 페이스북에 '지금도 옛날의 목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나이가 들고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더 깊어지는 목소리를 들려드리고 싶다'며 '세월이 흐르며 서서히 맛이 익어가는 음식처럼 자신의 목소리도 서서히 익어간다고 생각해주길 바란다'라는 요지의 글을 올린적이 있다.
예전의 리듬감 있는 R&B적인 목소리를 내려면 낼 수는 있는 듯하나 2013년 이후 방송 혹은 공연에서 보여준 적은 없다. 히든 싱어 시즌 4에서 전현무가 1라운드의 곡 「Timeless」를 소몰이창법으로 부를 것인지 아니면 현재 창법으로 부를 것인지 물었을 때 소몰이창법을 부른 지 오래 돼서 무슨 창법을 쓸지 고민이라 말했다. 그리고 결국은 모든 라운드의 곡을 현재의 담백한 창법으로 소화했다. 현재 창법을 고수하여 자신의 음악성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히든 싱어 판정단(김진호 편)들은 바뀐 김진호의 창법을 알아채지 못했고, 결국 2라운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창법이 바뀐 것일 뿐, 실력이 줄거나 하진 않았다. 창법만이 아니라 노래하는 스타일 및 자세도 변했다. 소몰이 창법 시절에는 노래할때 온몸으로 노래하는 버릇이 있었다. 제스처가 상당히 커 패러디도 많이 나왔는데 창법을 바꾼 이후로는 노래할 때 필요외엔 제스처를 거의 하지 않고, 하더라도 고음을 지를 때 고개를 뒤로 제치는 정도로 줄었다. 마이크도 핸드 마이크 대신 스탠딩 마이크를 주로 쓰고 아무 움직임도 없이 그저 가만히 서서 노래를 하는 스타일로 변했다.

3.5. 2019~현재


2019년 솔로 3집 발매를 기점으로 또 한번 창법이 변화되었다. 낮은음에서도 가성을 사용하는 빈도가 늘었고 발매된 솔로 3집을 들어보면 기교를 더더욱 줄인 모습이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진 울림통 있게 소리가 들리도록 성대근육을 많이 사용하여 접촉을 강하게 내는 방식이었다면 2019년 이후론 그 강함의 빈도도 줄었고, 비브라토도 필요할때 외엔 거의 사용하지 않는 형식으로 창법이 미세하게 변화되었다.
성대 피지컬적으로 김진호 본인의 나이도 먹어가고, 체스트쪽 소리와 접촉을 너무 강하게 하여 성대를 그동안 무리하게 사용했기에 성대 접촉이 잘 안되고 목소리의 떨림이 많아져 그에 따른 대안으로 창법을 가벼우면서도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울림통있는 소리를 간간히 보여주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가수중 박효신의 창법 변화에 버금갈 정도로 김진호도 창법과 목소리의 변화가 SG워너비 1집부터 비교한다면 다른사람으로 느껴질 정도로 창법이 굉장히 많이 변화되었다. 단, 무리한 소리를 많이 내왔기에 발성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발전되지 못한건 사실이지만 그의 솔로 음반들을 들어보면 가창력과 변화된 목상태를 떠나 듣는이에게 감동과 가사를 전달하는 능력은 SG워너비로 한창 활동하던 시기보다 훨씬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팬들과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평가는 창법과 발성으로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의 가수를 넘어 여전히 마음을 울리는 시인과도 같은 모습이라는 평가를 받고있다.

3.6. 창법 변화 비교 영상


「살다가」
「내 사람」
「김진호 라이브 변천사(2002~2015)」

4. 외모


상대적으로 미남형인 SG워너비 전 맴버 채동하와 비교되어 '못생겼다', '뚱뚱하다'라는 편견이 있다. 같은 멤버인 채동하가 탈퇴 후, 특강을 다니면서 장난삼아 했던 말 중에 '''"솔직히 진호 못 생겼잖아요."''' 라고 말하면서 확인사살을 했다. 본인도 못생겼다고 자주 언급하지만 컴플렉스는 아닌 듯하다. 데뷔 전 오디션에서 성형을 해야 한다면 가수 안 할 거라고 한 일화도 있다.
사실 뚱뚱하다는 건 딱 2004년 SG워너비 1집까지의 얘기였고, 2005년 SG워너비 2집 준비부터 꾸준히 자기관리를 해서 2015년 이전까지는 굉장히 날렵한 몸매를 유지 해왔었다. 게다가 나이와 어울리는 풋풋한 대학생 외모가 된 것도 덤이다. 학창시절 사진들을 보면 매우 귀여운 외모이기도 하다.
당시 매일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과 자기관리 때문인지 콘서트에 가보면 꽤 튼실한 근육을 볼 수 있다.[15] 콘서트 중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하면 웃통을 벗고 민소매만 입고 노래를 부르는 탓에...
같은 멤버인 이석훈의 언급에 따르면 얼굴이 굉장히 작아서 실제로 보면 놀랄 정도로 작다고 한다. 이석훈 본인도 김진호의 작은 얼굴이 가끔 부러웠다고 언급한적이 있다.
박지성유해진의 닮은꼴로도 자주 이야기된다. 이들과 SG워너비의 전성기가 다소 겹치다 보니 사실 잘나가는 얼굴이라는 소리도 들렸다. 김종국, 대성과 더불어서 '''작은 눈 삼총사'''라고도 불렸다. 류준열과도 엮인다.
2016년 이후 외모는 sg워너비 1집 활동때와 비슷하게 살이 많이 쪘다. 솔로활동 이전엔 살찌고 술을 마시는것에 대해 대단히 큰 강박증이 있었으나 사람들을 만나며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공유하는 즐거움을 알게된 이후론 이전의 강박증은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대신 살이 다시 불어났지만 데뷔초와 비교하면 당시엔 근육은 없고 살만 쪘을때와는 달리 현재는 살과 근육이 같이 붙어서 덩치가 굉장히 커졌다.

5. 여담


  • 정작 본인은 SG워너비 스타일의 노래보다는 잔잔한 발라드 쪽을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진호의 솔로곡 「고백」과 「러빙」, 그리고 콘서트에서 부르는 솔로곡들을 보면 잔잔한 발라드가 많고, 2013년 7월 18일 발표된 솔로앨범은 예상대로 잔잔한 스타일의 곡들로 채워졌다. 현재 SG워너비 김진호 솔로 1집에 수록될 곡 중 「안개꽃」과 「자연미인」[16]이 일부분 공개되었는데, 확실히 조용하고 기교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발라드 곡들이다. 데뷔 전 지역 가요제에서 입상했을 때 부른 노래도 정재욱의 어리석는 이별이었다.
  • 2010년에 S-OIL '올해의 시민영웅상'을 받았다. 2010년 7월 8일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동에서 여자를 폭행하고 가방을 빼앗아 달아나는 강도를 농구 끝나고 귀가하는 친구들과 함께 달려가 맨손으로 때려잡았다고 한다.
  • 군면제자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기에 면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잘못된 사실이다. 편부모 가정은 상근예비역인 3급 판정을 받는다. 거기에 김진호는 평소에 운동도 열심히 하는[17] 신체 건강한 청년이므로 김용준과는 달리[18] 현역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했으...나, 2012년 팬카페에 쓴 글에서 2009년 10월에 입었던 부상에서 십자인대가 파열되어서 면제를 받았다고 밝혔다.[19] 실제로 면제를 받은 사람은 선천성 심장병이 있었던 채동하 한 명 뿐이다.
  • SG워너비가 처음 데뷔했을 때 환희와 동일인물로 오해받은 적이 잠깐 있다. 이 것 때문에 휘성은 「Timeless」를 듣자마자 환희에게 전화해서 "너 브라이언 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다그쳤다는 일화가 있다. 실제로 본인도 라디오방송이나 2집 콘서트 개인무대에서 「가슴 아파도」를 부른 적이 많다.
  • 6집 활동 때 출연했던 연예가중계에서 밝힌 바로는 진짜 소의 반응을 이끌어보려고 앞에서 거리면서 소몰이 창법을 해봤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 2016년에 출연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는 소 앞에서 소몰이 창법을 했던 재연까지 선보였다. 소머리 국밥집이나 열어보라는 유희열의 농담에 현실적으로 생각해본적도 있다며 가게 이름은 김용준이 추천해준 워우(牛)워우(牛) 였다고 한다.
  • 가수 홍경민민경훈의 고등학교 후배며, 민경훈과는 대학교 과 후배이기도 하다. 히든 싱어 시즌4 김진호 편 다음 회차에 출연한 민경훈에게 전현무가 2라운드에서 떨어진 그를 언급하자, '진호 씨가 제 학교 후배거든요... 저는... 조금 더... 가 보고 싶네요.'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정말 조금 더 가서 "히든 싱어 사상 최초 3라운드 탈락"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 2020년 12월 09일 라디오 스타에 적재가 출연하면서 언급이 됐는데 자료 사진으로 SG워너비의 전 리더였던 채동하의 장례식 때의 사진을 사용하면서 팬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불과 몇 년 전에도 YES 24 퀴즈에서 채동하 관련 부적절한 문제 출제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는데 이러한 일이 또 터지니 팬들은 매우 화가 날 수 밖에 없는 상황. 방송사 측에서는 사과와 함께 영상을 수정했지만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중이다.

6. 솔로 활동


2009년, 6집이 발매되기도 전부터 김진호는 늘 미니홈피에서 전곡 작사/작곡을 한 앨범을 만들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시기상 계속 미뤄지다가 2013년 2월 14일, '''드디어 솔로 1집 앨범 《오늘: 당신의 외로움과 함께이고 싶습니다》가 발매되었다!!!''' 타이틀곡은 「알고 있니」. 수록곡 10곡 모두 자작곡으로 채워져있으며 모두가 어쿠스틱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곡으로 채워져 있다.
대중성을 배제한 곡들로 채워져 있어 음원차트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주간 한터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앨범 자체에 대한 반응은 매우 좋은 편이다. 주로 소몰이의 대가로만 알려져 있던 김진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는 평이 많다. 사실 과거의 김진호는 당시 유행하던 과한 기교에 의해 그 실력에 거품이 껴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리고 김진호에게 SG워너비라는 네임벨류를 제외하고서 솔로 가수로서의 입지는 그리 탄탄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종의 사건 이후, 김진호는 이전의 소몰이 창법을 버리고 담백하되 호소력 있는 창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에 작사•작곡을 직접하게 되면서 감정선이 깊어졌다. 작사•작곡 실력에 뛰어난 면모를 보이는데, 특히 가사에 대한 극찬이 많다. 이 중, 2번 트랙의 「가족사진」의 가사는 김진호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뮤직비디오와 함께 소름돋는다는 반응도 많은데, 이후에 출연한 불후의 명곡 : 전설을 노래하다 가족 특집에서도 이 「가족사진」을 불렀고 멜론 차트 10위권 안에도 랭크되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결과적으로 김진호의 솔로 활동은 성공적이었고, SG워너비가 아닌, '''김진호'''라는 가수로서 자신만의 입지를 다졌다. 솔로 정규 1집 발매기념 팝업콘서트가 홍대와 부산에서 있었고, 단독 콘서트 <오늘>도 성황리에 마쳤다.
솔로 2집은 9월에 발표하기로 했으며,기사 2013년 7월 11일, 여름스페셜 EP앨범 《한강애》가 선공개되었고, 18일에 수록곡 7곡[20]이 공개되었다. 발매 과정에서 CD에 Instrumental 2곡이 누락되는 실수가 있었고 전량 리콜이 되었지만, 이미 구매한 팬들은 별로 내색치 않는 모양. 오히려 레어템 취급을 받는다고(...).
2013년 7월 13일에서 8월 10일까지 매주 수요일, 토요일에 삼성동 카페M에서 <살롱콘서트-김진호의 가까운 공연>을 열었다.[21]
젊은 오버 가수로는 특이하게 버스킹공연을 하곤 했다. 8월 4일에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8월 11일에는 홍대 길거리에서 공연했다.
이제는 SG워너비 활동 때문에 자주 못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졸업사진」 발표 후에 졸업식 축하행사에 재능기부로 공연하기도 했다.
2013년 8월 9일의 공지에 의하면 23일부터 25일까지 예정되어있던 단독 콘서트 <나와!>가 주최 측의 여러가지 사정에 의해 취소되었다고 한다. 티켓팅이 끝났고 김진호의 경우 비행기를 타고 오는 해외팬의 비중도 높은지라 피해가 막심한 상황. 2013년 8월 13일에 새로운 공지가 떴는데, 24일에 새로운 작은 공연을 준비했으며, 티켓팅을 했던 팬들은 전액환불은 물론이고 티켓구매 확인증만 있으면 누구나 입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밝혔다. 항공권을 미리 예약했던 해외팬들에게도 적절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2013년 8월 12일부터 17일까지 팝아티스트 산타와 함께 손을 잡고 <김진호 X 산타 콜라보레이션 전시회 2013>을 연다. 장소는 신사동의 재미갤러리.
(이 항목은 2012년 9월에서야 작성되었다. 채동하, 김용준, 심지어 데뷔가 늦은 이석훈까지 모두 작성되어 있었다.)
데뷔 10년만에 공식 개인팬클럽이 만들어졌다.[22] 팬클럽 이름은 '목소리'.[23]
2013년 8월 17일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에 뜬금없이 출연했다. 2007년 인간극장 이후로 두번째 다큐프로 출연이다. SG워너비가 휴지기를 가지게 된 이후의 김진호의 모습을 다루었으며 채동하에 대한 언급도 살짝 나온다. 인터뷰 중에 '''약 3년간 수입이 없었다'''라는 멘트가 방송을 타며 기사화 되기도 했다.
2014년 4월 17일 《木소리》 앨범 발표가 예정되어있었으나, 16일 세월호 참사로 연기했다.
2014년 5월 17일과 18일, 올림픽공원 K 아트홀에서 <듣는콘서트>를 개최했다.
계속해서 연기되었던 미니 2집 《木소리》 앨범 발매를 취소하고, 곡을 추가해 정규 2집 《사람들》을 9월 17일 공개한다.
2015년 10월 10일자 히든 싱어에 출연해서 모창자들과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백미는 모창자들과 함께 부른 「가족사진」과 「살다가」.
2017년 2월 16일 졸업식 시즌에 맞춰 신곡 「졸업사진」을 발표한다. 2월 14일에는 티저가 공개되었고 2월 초부터 졸업과 관련된 이벤트를 연속해서 하고 있다. 이벤트 경품을 보아 배달의민족과 함께 진행하는 듯하다.
2018년 8월 13일 명동성당 에서 열린 명동문화축제 행사에서 3일차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근황을 알리고 축제에 참여하였다.
2019년 9월 김진호 솔로 정규앨범 3집이 개천절인 10월 3일에 발매한다는 기사가 떳다. 약 5년만의 솔로 정규앨범이라 그동안 오랫동안 기다린 팬들에게 최고의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앨범 발매와 더불어 단독콘서트도 계획중에 있다고 밝혔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통해 3집에 수록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2곡을 선공개 하기도 했으나 그 2곡은 3집에 수록되지 못했다. [24]
2019년 10월 3일 김진호 솔로 정규앨범 3집 《노래샘》을 발매했다. 총 9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여전히 진실성 담긴 음악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 한가지 특징이 있다면 모든 수록곡을 원테이크로 녹음하여 튠과 음정 보정없이 음질 개선 작업만 완료한 후 곡들을 수록했다고 한다. 일부 곡들은 핸드폰으로 녹음 한 소리 그대로 곡을 수록하였다.[25]
2019년 11월 1일~11월 2일 3집 발매 기념 콘서트 《노래샘》을 개최했다. 콘서트 발표가 있자마자 표가 모두 매진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팬들이 추가공연이나, 전국투어 콘서트 개최를 희망하며 많은 목소리를 낸 결과 개인 인스타그램 방송에서 전국투어 개최 할 의향이 있다는 의사를 표현하긴 했으나 앨범이 생각보다 크게 히트치진 못해 전국투어 계획은 보류되었다.
그 이후 2020년 2월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앵콜 콘서트가 예정되어 지난 콘서트에 못간 팬들과 노래샘 콘서트를 한번 더 관람하고픈 팬들을 위해 공연을 개최하고 날짜와 티켓팅을 실시 하였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라는 전 세계적 바이러스성 유행병으로 인해 안전이 우선시라 판단하여 공연이 어쩔 수 없이 취소되어 팬들과 가수 본인에게 너무나도 아쉬운 결말을 알리게 되었다.
2020년 4월 3일 제주 4.3 사건 추념식에 참석하여 가족사진을 부르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2020년 4월 8일 싱글앨범《그거 모으러 왔나 봐요》를 발매했다. 김진호가 말하길 '때묻은 시 첫번째 프로젝트' 라고 하며, 고귀함, 순결함 보다는 때묻은 일상을 노래하고 싶어 발매된 곡이며 마음에 무언가 맺힐때 한곡씩 음반을 발매하겠다고 했으며, 그 프로젝트의 첫번째 곡이다. 여담으로 앨범커버가 특이하게도 아무사진과 그림도, 글자도 없는 흰색 배경이다. 김진호가 말하길 앨범커버 사진이 없는 이유는 각자의 일상을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백을 두었다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유를 알렸다.
2020년 5월 8일 방송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 「가족사진」과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26]를 불렀다. 날이 날인데다 두 곡 모두 어머니와 관련된 곡이어서, 어머니를 게스트로 초청하여 어머니께서 평소 즐겨 부르시는 노래[27]를 라이브로 청해 유희열과 함께 듣기도 하고, 두 노래의 창작 비화와 평소 어머니가 자신이 가수라는 것을 주변에 밝히지 않는다는 등의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2020년 5월 21일 팬들의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불렀던 가족사진 버전을 음원으로 요청하여 김진호가 새롭게 녹음하여《가족사진(2020)》싱글앨범을 발매했다. 또한 해당 곡은 휠라와 함께 준비한 가족사진 응모 CF에도 사용되었다.
2020년 7월 21일 '때묻은 시 두번째 프로젝트' 싱글앨범《도착》을 발매했다. 포스트락의 대부라 불리는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를 연상케 하는 편곡과 그간 김진호가 해왔던 스타일과는 약간 다른것이 특징인 앨범이다. 반응을 보면 그간 김진호가 해왔던 스타일의 음악이 아니라 약간의 호불호는 갈리긴 했으나 대체적으로 팬들 사이에선 곡 분위기와 가사가 일품이라고 평가 받고있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가성의 사용 빈도도 유난히 많아지고 창법 또한 슈게이징 스럽게 변화되어 향후 포스트락적인 곡을 발매할 가능성도 꽤 높아졌다.
앞으로 사진 프로젝트 형식으로 하여 증명사진, 웨딩사진 순으로 곡을 발매할 것이라고 필라 인터뷰에서 밝혔다.
2021년 1월 20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SG워너비로 한창 활동하던 과거 이야기와 솔로활동 시절, 그리고 최근 근황에 대해 전했다. 이 방송에서 확실한건 그동안 오랫동안 SG워너비 그룹 활동을 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인 해체가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김진호 본인이 절대 해체가 아니며, 아직도 멤버인 이석훈, 김용준과 자주 만나 미래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고 전하며 해체 루머는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7. 방송


<rowcolor=#FFFFFF> '''날짜'''
'''방송사'''
'''제목'''
'''비고'''
2015. 10. 10.

히든 싱어 4
2회
원조 가수
2021. 01.20.

유 퀴즈 온 더 블럭
1 2 3 4 5 6

7.1.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rowcolor=#FFFFFF> '''방송 날짜'''
'''특집'''
'''곡명'''
'''경연 순서'''
'''결과, 득표수'''
2013년 10월 12일
추모 연가 7
살다가 (원곡자: SG워너비)
7번
'''1승(우승), 432점'''
2014년 5월 24일
가족 특집
가족사진 (원곡자: 김진호)
5번
2승, 431점
2014년 11월 15일
11월에 진 별
내 사랑 내 곁에 (원곡자: 김현식)
1번
1승, 414점
2013년 10월 12일 방송된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를 통해 오랜만에 방송에서 노래하는 무대를 가졌다. 이날은 추모특집으로 고인이 된 옛 멤버 채동하를 추모하며 SG 워너비 시절 히트곡 「살다가」를 열창했다. 중반부에 채동하의 파트에서 원곡이 흘러나오며, 즉 채동하의 목소리가 그대로 나오면서 감동이 더해졌다. 최종적으로 432점이라는 매우 높은 점수를 받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또한 방송이 끝난 후에도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 이번에 부른 「살다가」가 1위를 찍기도 했다. 노래 시작 전, "요즘은 대학교나 병원 등에 무료로 노래하러 다닌다."라며 근황을 간단히 얘기하기도 했다.#[28] 당시 출연한 강민경은 김진호가 채동하 사망 이후 매우 힘들어했고, 그러한 상황을 음악적으로 극복해내려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비워내는 시간을 가졌다는데 창법이 바뀐 것도 이 과정에서 나왔다고 한다. 확실히 이전과는 달리 과한 기교를 버리고, 담백하면서도 강한 호소력을 갖게된 목소리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정재형도 변화한 창법에 대해 언급했고 문희준과 신동엽도 그를 계속 방송에서 보고싶다고 말할 정도이다. 다만 이에 대해 김진호는 자신이 좀 더 솔직하게 노래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방송에 나오겠다고 답했다.[29]
2014년 5월 24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가정의 달 특집에 오랜만에 출연했다. 전설의 노래 혹은 예전 노래를 부르는게 일반적인 불명에서 이례적으로 본인의 솔로 1집에 수록된 자작곡 「가족사진」을 불렀는데 진정성있는 가사와 사연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해서 '''431점'''이란 높은 점수를 기록했지만 마지막으로 나온 휘성[30]에게 3표차로 뒤지며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 [31]영상
2014년 11월 15일자 불명에 출연해서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불렀는데, 1번 순서라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414점이라는 역대 1번 최고점수를 받으며[32] 웅산에게 승리했지만, 결국 빠른 순서를 극복하지 못하고 손승연에게 패했다.
총 3회 출연했는데 그 중 2회가 본인 노래라는 기이한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매 회 출연 때마다 임팩트가 큰 무대를 선보여 자주 출연한 이석훈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고 성적도 좋다.

8. 기타


  •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근황을 묻는 질문에 "고3 졸업식을 다니면서 무료로 노래도 해주고 그리고 병원 같은 데서도 노래를 많이 했다. 제 어떤 허전함, 공허함들 그리고 제가 노래하는 어떤 의미들. 워너비로 영광스러웠던 시간들도 행복했는데, 직접 매니저도 없이 제 동료들이랑 사비로 산 스피커, 악기를 차에 실어 가지고 마지막 십대들(졸업을 앞둔 고3 학생들)의 사연을 신청 받아서 찾아간다. 전국 지도를 그려가면서 문화적인 혜택을 덜 받는 지역부터 시작해서 돌았다. 노래 하나로 무언가를 나누러 가는 가수도 있구나 느끼게 하고 싶었다. 선택받은 분들은 반짝이는 행복함을 나누지만 재가 돼서 내려온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고 설명했다.
  • 창법 변화에 대한 질문에는 "예전의 목소리를 지금까지 구사하시는 선배님들도 완벽하시지만, 피터팬처럼 제 과거의 시간들을 관리해서 지켜내는 것 말고, 그 상태만을 계속 고집하는 것도 때로는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저는 이미 많은 이야기가 생겼다. 멤버 (故 채동하)와 이별도 있었고, 각자의 삶의 이야기도 있었다. 많은 분들이 다 같이 갖고 계신. 그 목소리 그대로, 이 순간 놓여있는 목소리 그대로 일기처럼 노래를 써서 사람들과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생각을 전했다. 기사

[1] 가무잡잡한 피부와 쌍꺼풀 없는 눈 때문에 시골 소년스러운 느낌이 나지만, 엄연히 서울 출생이다. 아차산 일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하며, 대원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원고 재학시절, 학교 축제로 노래를 불렀던 영상도 있었다.[2] 2008년 인간극장 기준으로 50세로 출연하셨다. 1958년생으로 짐작된다. 아버지는 김진호가 어릴 때 돌아가셨으나, 아버지가 신던 구두를 20년이 다 되도록 놓고 있다고 한다. 어머니가 혼자 사셔서 그런 듯.[3] 카라의 한승연이 1년 후배이다.[4] 기사[5] 사유는 2009년 농구 하다가 다친 십자인대 파열이다. 당시 목발을 짚고 무대에 자주 오르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장이 되었기 때문에 면제를 받은 것으로 와전되었던 적 있다.[6] 김진호 개인 1인 기획사다.[7] 이 당시 고작 '''고등학교 3학년''' 이었다. 요즘 아이돌이야 더 어린 나이에도 데뷔하지만 이 시기에는 어린 나이에 데뷔하는 축에 속했다.[8] 박효신도 소몰이 창법을 사용하긴 했으나 나중에 창법을 바꾸었기 때문에 소몰이 창법의 전성기는 SG워너비라고 해도 무방하며 그 중심에는 김진호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김진호도 창법을 바꾸었다.[9] 소속사에서 성형을 해 주겠다고 하는 걸 거절하고 뛰쳐나왔다고 히든 싱어에서 밝혔다.[10] 솔로곡도 있다.[11] 드라마 태양의후예 OST 사랑하자에선 김진호의 파트가 하나밖에 없다. 예전에 김용준이 자신의 파트가 너무 없어서 라이브때 먼산을 보던 장면이 김진호에게 오마쥬된 느낌.[12] sg워너비의 2집~4집까지의 수록곡 자체에 애드리브가 무지막지하게 많았고 그 애드리브를 전부 김진호가 담당했으니.. 목이 상할 만하다.[13] 음색이나 세세한 창법은 다르지만, 김진호와 비슷한 길을 걸어왔던 가수로 먼데이키즈의 이진성이 있다. 이진성도 소몰이는 아니었지만 김진호와 비슷하게 흉성을 기반으로 한 다소 목에 무리가 가는 창법을 구사했다. 김진호에 버금갈 만큼 애드리브도 많았다. 다만 결정적으로 이진성은 김진호보다는 혹사가 덜했고, 이쪽은 타고난 성대가 강철수준이라 목이 상하지 않았다.[14] 새로 투입된 이석훈의 음역이 5집보다 늘어나면서 조금 더 부드러워진 것에 비해 김진호는 자기 음역에 비해 더 높은 음역대의 파트를 받아서 더 무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당시 키를 1키정도 낮추고 타이틀곡을 라이브 할때가 자주 있었다.[15] 이석훈의 언급에 의하면 운동할 때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볼링같은 실내 스포츠에는 약하다고 한다.[16] 산과 바다 등의 자연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 단독팬미팅과 MTV 더 스테이지 빅 플레저에서 공개된 자작곡인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솔로 1집에는 수록되지 않았다.[17] 얼마나 열심히 하냐면, 운동 많이 하기로 유명한 이현이 김진호와는 달리다 부딪히면 죽을까봐 같이 못 하겠다고 할 정도.[18] 김용준은 부정맥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19] 이 때문에 24회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목발을 짚고 있었다.[20] 2곡은 Instrumental[21] 브런치 콘서트와 디너 콘서트로 나뉜다. 다만 SG워너비 시절 했던 디너쇼와는 좀 다른 분위기의 공연이다. 소극장 공연같은 분위기.[22] 김진호를 포함한 SG워너비는 활동한 8년간 공식 팬클럽이 없었다. 팬들이 스스로 모여서 만들어진 다음카페 SG워너비 사랑방과 각 멤버들의 개인 팬카페 별속에동하, 이치고이치에, 천상의목소리김진호, 수윗트피이석훈들이 연합하여 팬클럽 단관 등의 일들을 자원해서 진행해왔다.[23] 페이스북에서 공모전을 통해 뽑았다. 참고로 김진호의 트위터 주소도 MOKSOLEE[24] 그 2곡의 제목은 '나도 그래' / 'It's Time' 이다. [25] Track.1 낙서(집에서 습작) / Track.5 고맙고도 미안해 - 이 곡은 김진호의 친구가 술자리에서 고민을 털어놓는 상황에 김진호가 그 얘기를 들으며 즉석에서 작사 작곡을 하여 연주한 그대로를 핸드폰으로 녹음한 곡이다.)[26] 어머니와 함께 불렀다[27] 신계행의 「사랑 그리고 이별」이라는 곡을 완창하셨다[28] 링크에도 나와있겠지만, 김진호는 많은 대학교들이 대학교 축제를 위해 대학생들의 등록금으로 가수를 섭외한다는 사실을 접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에 대해 상당한 충격이었는 듯, 이후로 '''무료재능기부'''로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노래하게 되었다.본인은 마이크를 잡게된 이후로 가장 의미있게 마이크를 사용한다고 고백했다고.[29] SG워너비 컴백 이후, 2015.10.10에 방영된 히든 싱어에 출연했을 때에는 예전에는 좋은 포장에 맞게 자신의 목소리도 맞추려했지만 이제서야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고 언급했다.[30] 본인의 아버지와 함께 듀엣 무대를 가졌다.[31] 하지만 그래도 불후의 명곡 방영 이후에 가장 큰 이슈가 되었고, 이 「가족사진」이라는 곡은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으며, 심지어는 당시 오프닝에서 가수 라인업을 소개할 때도 BGM은 이 곡이었으니 아무래도 감동 받은 건 관객들만이 아니었던 모양.[32] 현재는 기록이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