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 베르더 브레멘/역사
1. 창단 초기
클럽의 기원은 브레멘 지역의 청소년 운동 클럽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상으로 탄 운동 도구를 가지고 축구를 시작했고, 그들이 경기한 장소인 슈타트베르더(Stadtwerder)[1] 의 이름을 따 FV 베르더 1899라는 이름으로 창단했고, 이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베르더 브레멘이라는 별칭으로 남았다. 그 뒤 여러 부침을 거치면서 지역 청소년의 클럽에서 프로 클럽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것이 1920년대의 일이다. 이 때 클럽의 팬과 선수들의 다수가 근처 담배 공장의 노동자였기 때문에 그들이 다니던 담배 회사 브랜드를 따서 texas 11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2. 나치 독일
나치 독일체제가 들어서며 가우리가라는 새로운 리그가 출범했다. 이때 몇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점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1934년부터 1936년까지 베르더의 회장이었던 빌리 슈퇴버지만 1934년부터 1936년까지 베르더의 회장이었던 빌리 슈퇴버가 열혈한 나치의 신봉자였기에 프로파간다와 군사교육에 이용되었고, 현재 베저슈타디온인 브레머 캄프반은 나치의 행사장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거기다 1934년엔 구단에서 일하던 유대인들을 쫓아내었다. 이시기엔 비슷한 일들이 독일 전역에서 벌어졌다.
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 몰락
전쟁이 끝나고 강호답게 오버리가에서 계속해서 우승경쟁을 하는데, 함부르크 SV에게 계속 밀려 준우승을 거둔다. 그러던 1963년 분데스리가 출범과 함께 리그에 참가하게 된다. 함부르크, 1. FC 쾰른과 3강구도를 형성하면서 괜찮은 전력을 이끌며 1964-65 시즌 우승을 차지하고, 1967-68 시즌에는 준우승을 차지하지만, 그 이후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와 바이에른 뮌헨의 급 성장과 잘못된 경영으로 인한 고액의 주급을 지급하며 데려온 선수들이 모두 실패하면서 팀은 암흑기로 접어든다. 급기야 1980-81 시즌에는 강등의 수모까지 맛 보며, 이 때 붙은 조롱섞인 별명이 '백만장자들'이다.
4. 부활
쇠락하던 클럽을 부활시킨 것은 오토 레하겔이었다. 1부 리그로 복귀한 베르더를 이끌고 리그 우승 1회와 준우승 3회, 포칼 우승 2회을 선사했고, 유럽 무대에서도 AS 모나코를 제압하고 UEFA 컵 위너스 컵을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1993년 리그 우승 및 1994년 DFB 포칼 우승까지 달성하고 레하겔은 팀을 떠났다. 이때 활약한 선수들이 이때 팀에서 활약한 선수가 루디 푈러, 브루노 페차이, 카를하인츠 리들레, 클라우스 알로프스, 안드레아스 헤어초크, 루네 브라체트, 마리오 바슬러, 디터 아일츠, 노르베르트 마이어, 미르코 보타바, 프랑크 노이바르트, 토마스 볼터, 마르코 보데, 윈턴 루퍼, 올리버 레크, 요니 오텐, 그리고 토마스 샤프.
1994-95시즌이 끝나고 레하겔이 바이언으로 떠나면서 다시 부진이 시작됐는데 1999년까지 감독만 5번이나 교체되며 다시 추락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1998-1999 시즌부터 감독에 부임한 토마스 샤프 감독과 시즌도중 부임한 클라우스 알로프스 단장과 함께 팀은 다시 안정을 찾았고 '''클라우디오 피사로,아이우통, 주앙 미쿠, 발레리앙 이스마엘, 믈라덴 크르스타이치'''등 정상급 선수들과 함께 다시 강호로 발돋움하기 시작한다.[2]
5. 2000년대 이후 시즌별 성적
5.1. 2003-04 시즌
오락가락하던 파스칼 보렐 골키퍼를 대신하기 위해 안드레아스 라인케를 데려왔다. 그리고 발레리앙 이스마엘 등을 영입했다.
리그에서 28골을 득점한 아이우통의 미친 활약 등에 힘입어 바이에른 뮌헨, 1. FC 쾰른에 이어 분데스리가 클럽 역사상 세번째로 '''분데스리가 우승과 DFB포칼 우승으로 더블을 차지'''하면서 200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열게 된다. 이 시기부터 2010년대 도르트문트의 부활과 볼프스부르크가 신흥강호로 등장해 돌풍을 일으키기 전까지 브레멘은 '''바이에른 뮌헨의 유일한 대항마'''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5.2. 2004-05 시즌
미로슬라프 클로제와 모하메드 지단, 다니엘 옌센을 영입했다.
분데스리가에서는 FC 바이에른 뮌헨과 FC 샬케 04에게 밀려 3위에 그쳤다
실로 오랜만에 유럽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은 브레멘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발렌시아 CF, RSC 안데를레흐트등 만만치 않은 조에서 '''4승1무1패의 놀라운 성적으로 16강에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16강에서 '''리옹 참사'''를 당하면서 탈락했다.
5.3. 2005-06 시즌
절치부심, 그 전설의 클로제, 클라스니치의 K-K라인의 가동 및 프링스 - 보로프스키 - 바우만 - 미쿠라는 강력한 미들진을 주축으로 두터운 선수층을 구축한 브레멘은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승점 5점이 밀리며 분데스리가에서 준우승을 거뒀다.
UEFA 챔피언스 리그 2년연속 16강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엔 리옹보다 '''더 강한 유벤투스를 상대로 놀라운 선전'''을 보여주며 클럽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경기 막판 팀 비제 골키퍼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16강에서 탈락.
어찌보면 브레멘 역사상 가장 두터운 선수층을 구축한 시즌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분데스리가의 패권은 바이에른 뮌헨에게 뺏어오지 못한다.
5.4. 2006-07 시즌
미쿠가 팀을 떠났지만 디에구를 데리고 오면서 공백을 메우고 '''페어 메르테자커, 피에르 워메[3] , 다니엘 옌센[4] , 휴고 알메이다[5] , 마르쿠스 로젠베리[6] '''를 영입, 지난시즌보다 더 두터운 선수층을 구축한다.
이 시기 브레멘은 2006년 포칼 우승을 차지하고 분데스리가 전반기 1위로 시즌을 마감하지만 후반기 선수단의 체력저하 및 당시 '''페의 아이들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슈투트가르트의 돌풍'''에 밀려 3위에 그친다.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바르셀로나,첼시와 한 조가 되는 눈물나는 상황에서 첼시까지 잡으며 3승 1무 2패의 비교적 호성적을 냈음에도 3위로 UEFA컵행을 하는 비극을 맛보게 된다.[7] '''당시 브레멘과 같은 승점을 챙긴 H조였던 AC밀란은 조1위''' 게다가 이번 시즌 '''빅이어 까지 들어올린다.''' UEFA컵에선 4강에 진출하지만 에스파뇰에 패해 탈락.
5.5. 2007-08 시즌
클로제가 뮌헨으로 홀랑 떠나버리면서 공격진에 구멍이 생기지만 팀의 중심인 디에구는 최고의 폼을 달리며 여전히 팀은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리그 최종성적은 뮌헨에게 승점 10점이 밀리며 2위.
챔스에서는 레알 마드리드를 제외하곤 나름 해볼만한 상대를 만났지만 라치오만 신나게 두들겨 패고 올림피아코스에게 얻어맞이면서 2승4패로 다시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 UEFA컵 역시 8강에 제니트에 패해 빈손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5.6. 2008-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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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수트 외질을 샬케로부터 데리고 오는데 성공하지만 이번엔 팀 보로프스키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났다. 그 동안 팀의 정신적 지주를 담당한 프랑크 바우만 역시 은퇴했으며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리그에서 10위까지 떨어지는 부진을 보였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인테르, 파나시니아코스, 그리고 키프로스 클럽인 파마구스타와 한 조가 되어 지난시즌보다 훨씬 더 수월한 조편성이였으나. 결과는 1승 4무 1패로 3위. 결국 다시 UEFA컵으로 좌초된다. 그 와중에 거둔 1승이 인테르전. 그리고 그 1승이 최종전에서 나왔는데 이 승리로 인테르는 조2위로 밀려나 챔스 16강에서 맨유에 광탈했고, 브레멘은 조4위를 면하고 극적으로 UEFA컵이라도 가게 되었다.
이상하게 그 동안 강세를 보이던 분데스리가에서는 빌빌거렸으나 토너먼트대회에선 강력함을 뽐냈는데. 바로 UEFA컵 32강전인 AC 밀란을 격파한 것, 이 기간에 브레멘은 세리에A 킬러로 명성을 날렸으며 8강전인 우디네세 칼초와의 경기에서도 3-1로 압살해버린다.[8]
어렵게 올라온 UEFA컵 결승에선 샤흐타르에 1-2로 무너지며 우승에 실패했다. 시즌 종료 후 디에구의 유벤투스 이적과 분데스리가에서의 10위로 인해 6년연속 유럽챔피언스리그 진출이 좌절되었던 게 선수들의 사기를 저하시켰던게 컸다.
DFB-포칼은 결승에 진출하는데 성공했고, 레버쿠젠을 꺾고 우승하면서 5년만에 트로피를 수집했다.
브레멘은 엄연한 '''중소클럽이라 자금적인 한계가 있는 클럽'''이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한 챔피언스리그진출은 브레멘에겐 단비와도 같은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고 2000년대 중후반까지 그런 강력한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였다. 우승 트로피 하나를 차지했으나 결과론적으로 실패한 시즌이라고 평하는 이유다.
5.7. 2009-10 시즌
마르코 마린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영입하고 보로프스키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리고 유벤투스로 떠난 지에구의 빈자리를 샬케에서 데려온 메수트 외질이 잘 메꾸며 오랜만에 분데스리가에서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직전시즌 DFB-포칼 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유로파리그에서도 16강까지 진출하지만 발렌시아와의 경기에 5골씩 주고받는 화끈한 공격축구를 펼친 끝에 2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원정다득점에서 밀리면서 허무하게 탈락한다.
포칼에서도 쟁쟁한 도전들을 뿌리치며 작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결승까지 진출했지만 결승전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이번에도 화끈한 공격축구를 펼치다 계속되는 역습에 4대0으로 패하고 말았다.
리그에서는 최종적으로 3위를 차지하면서 다시 챔스에 진출했다.
5.8. 2010-11 시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통해 라이징 스타가 된 메수트 외질을 1500만유로에 레알 마드리드로 보내버리며 중소클럽의 비애를 맛본다. 결과적으로 이전시즌에 비해 별 효과적인 영입을 하지 못한 브레멘은 다시 부진을 보이기 시작했다. 네덜란드리그에서 제2의 즐라탄이라는 소리를 듣던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를 영입했으나 별다른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했고, EPL에서 나름 활약했던 미카엘 실베스트르는 OME스러운 경기력으로 안그래도 가난한 중소클럽의 주급만 날려먹었다. 거기에 핵심수비수 나우두는 부상으로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고, 세바스티안 보에니쉬도 시즌 초 1경기 뛴 뒤 시즌아웃당했다. 골게터 클라우디오 피사로는 분데스리가 외국인 선수 득점 신기록을 세웠지만, 잔부상에 시달리며 22경기에만 나서 9골[9] 을 득점하는데 그쳤다.
리그 개막전부터 호펜하임에 1:4로 패하며 체면을 구겼고, 전반기에 슈투트가르트전 0:6, 샬케전 0:4로 깨졌고, 후반기엔 쾰른전 0:3 패배, 북독라이벌인 함부르크전 0:4로 대패를 당하며 성적은 바닥을 쳤고, 강등권까지 내몰렸다가 함부르크전 대패 이후 8경기 연속 무패행진으로 기사회생했고 한 경기를 남기고 우승이 확정된 도르트문트를 2:0으로 이기고 잔류를 겨우 확정지은 뒤, 13위로 시즌을 마쳤다. 토마스 샤프가 1999년 지휘봉을 잡은 뒤 최악의 순위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망했어요.
챔스 플레이오프에서 다시 한 번 세리에A킬러 본능을 선보이며 삼프도리아를 누르고 본선에 진출한다. 챔스에서 디펜딩 챔피언인 인테르, 토트넘, 트벤테와 한 조가 되어 1승 2무 3패로 조 꼴찌로 마감하게 된다. 1승도 조꼴찌가 확정된 후 인테르전 3:0 승리다. 유로파도 가지 못하며 조기에 유럽클럽대항전을 마감했다.
DFB-포칼에서도 2라운드에서 바이에른 뮌헨에게 광탈당하며 무려 10년 만에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하게 되었다.
시즌이 끝난 뒤 주장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토르스텐 프링스가 토론토 FC로 떠났다.
5.9. 2011-12 시즌
바이에른에서 메멧 에키치를 영입하여 외질의 공백을 메우려고 시도했고 밀란에서 죽쑤던 그리스의 센터백 소크라티스 파파스타토풀로스를 임대영입하였다. 뉘른베르크로부터 안드레아스 볼프를 영입했다. 파사넨과 프링스, 페터 니마이어는 팀을 떠났다.
DFB 포칼 첫 라운드에서 3부리그의 하이덴하임에게 1:2 역전패를 당해 광탈했다.
이적시장 마감날, 2006년 이후 5년 간 주전센터백으로 활약해오던 '''메르테자커'''가 아스날로 떠나버렸다. 당초 프링스의 뒤를 이어 주장으로 선임되었으나 클레멘스 프리츠가 주장 역할을 대신 맡게 되었다. 그래도 초반 7경기에서 5승을 따내며 괜찮은 출발을 보였고, 글라트바흐와 샬케에 0:5로 대패하는 부침을 겪기도 했으나 전반기엔 9승2무6패, 리그 5위로 마치며 유럽대항전, 더나아가 챔피언스리그 진출에도 어느정도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기 단 3승6무8패 승점 13점을 따내는데 그쳤고, 25라운드 하노버에 3:0 승리를 거둔 이후로는 9경기 연속 무승을 기록하였고, 마지막 4경기는 모두 패하며 시즌 중반까지 적어도 유로파는 갈 줄 알았던 브레멘은 결국 최종성적 9위로 빈손마감하게된다.
시즌이 끝난 뒤 많은 선수들이 브레멘을 떠났다. 간판 공격수 클라우디오 피사로는 뮌헨으로, 골키퍼 팀 비제는 호펜하임으로, 핵심 수비수 나우두는 VfL 볼프스부르크로, 마르쿠스 로젠베리는 WBA로, 마르코 마린은 첼시 FC로 떠났다. 2년 동안 부상에 시달리던 팀 보로프스키는 은퇴했다.
5.10. 2012-13 시즌
지난 시즌과 다르게 이번 시즌은 아예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그나마 클래스가 있었던 마르코 마린마저 첼시로 가버렸고 토니 크로스의 동생으로 주목받았던 펠릭스 크로스는 그냥 평범한 선수로 브레멘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질 못했다. 주전골리였던 비제가 떠난 자리를 유스출신 제바스티안 밀리츠로 막았고, 즐라트코 유누조비치와 엘리에로 엘리아를 데려와 그나마 전력을 보강한 것을 위안삼아야 할 듯.
과거 '''꾸준한 챔스리그진출'''로 나름 자금력을 꾸역꾸역 확보하며 준수한 스쿼드를 구축한 옛날에 비하면 아르나우토비치를 제외하곤 과거의 이름값에도 한참을 못미치는 스쿼드로 매 경기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였고 도르트문트전 0-5 대패, 바이에른 뮌헨전 1-6 대패로 이젠 의적도 아닌 완전 호구로 전락. 결국 강등권에 달랑 2점 높은 14위로 시즌을 마감한다. 토마스 샤프 감독은 시즌 종료 직전에 경질당하기에 이른다.
5.11. 2013-14 시즌
이번에도 그나마 희망인 아르나우토비치를 또 팔어버렸다. 대체자로 아르헨티나 출신의 공격수 프랑코 디 산토를 데리고 왔지만 폼이 영 좋지 못했다.
리가에선 여전히 뮌헨에게 0-7, 도르트문트에 1-5로 대패하며 이젠 꿈도 희망도 없는 중소클럽이 되어버렸다. 시즌 초반 아주 잠깐 8위를 한 걸 제외하곤 꾸준히 강등권 언저리를 맴돌았으며 그나마 라이벌 함부르크와 약체 듀오 뉘른베르크, 브라운슈바이크를 연달아 잡으며 순위는 2계단 상승한 12위로 마무리.
5.12. 2014-15 시즌
개막전 1라운드에서는 헤르타 베를린을 상대해 2:2로 비겼고 2라운드에서는 호펜하임을 홈으로 불러들여 1:1로 비겼다. 뒤이어 3라운드 레버쿠젠 원정에서 손흥민의 골을 포함한 격렬한 난타전 끝에 3:3 무승부를 기록하며 3연무를 기록했고 4라운드부터 4라운드 아우크스부르크 원정 4:2 대패를 당한 것을 시작으로, 5라운드 샬케와의 홈경기에서 3:0 완패, 6라운드 볼프스부르크 원정에서 2:1 패배, 승점을 따내야만 했던 7라운드 프라이부르크 홈경기에서 1:1 무승부, 이후 8라운드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 6:0의 참패를 당하며 시즌 최악의 출발을 보였고, 순식간에 리가 꼴찌로 추락했다. 9라운드 승격팀 쾰른에게마저 1:0으로 덜미를 잡히자 구단은 결국 로빈 두트 감독을 경질하고, 그 자리에 U-23팀 코치였던 빅토르 스크리프닉을 앉혔다.
감독 교체 이후 펼쳐진 10라운드 마인츠전 2:1 승리, 11라운드 슈투트가르트전 2:0 승리로 한숨을 돌리나 싶었지만 12라운드, 클럽 최대의 라이벌 함부르크와의 북독일 더비에서 0:2로 패배. 뒤이어 13라운드에는 승격팀 파더보른을 4:0으로 두들겨 소중한 승점 3점을 챙겼으나 14라운드 프랑크푸르트 원정 2:5 대패로 다시 꼴찌가 되었다, 이후 15라운드 하노버전 3:3 무승부, 16라운드에는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에게 4:1로 완패했다. 그러나 전반기 막판 17라운드, 도르트문트전에서 2:1로 승리하며 기사회생의 불씨를 살린 채 전반기를 마감한다. 그리고 후반기 시작과 함께 '''헤르타 베를린-호펜하임-레버쿠젠-아우크스부르크를 연달아 격파하고 샬케와 1:1로 비김으로써 단번에 승점 13점을 추가하는 놀라운 성적향상을 기록한다.''' 비록 볼프스부르크에게 5:3 패배를 당해 한풀 꺾였지만 프라이부르크 원정에서 디 산토의 환상적인 결승골로 승리를 챙기면서 6승1무1패의 엄청난 반등에 성공하며 어느새 리가 8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그러나 25라운드에서 노이어, 알론소, 로벤, 리베리 등이 빠진, 거의 1.5군 스쿼드로 나온 바이에른 뮌헨에게 홈에서 0:4로 완패했다.
공격 찬스는 많았지만 팀의 주포 프랑코 디 산토가 경고 누적으로 출장하지 못한 게 컸다. 이날 프랑크푸르트가 파더보른을 4:0으로 작살내고 승점 3점을 추가하면서 베르더는 다시 9위로 내려앉았다. 26라운드에서 8위 프랑크푸르트가 18위 슈투트가르트에 3:1로 얻어맞으며 8위 탈환을 노릴 수 있었지만 쾰른 원정에서 전반 27분 다비 젤케가 선제골을 넣었음에도 후반 88분 통한의 페널티킥을 허용해 1:1로 비김으로써 8위 탈환에는 실패했다. 다행히 이후 일정은 강호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와 후반기 들어 부활한 도르트문트를 제외하면 무난한 편이니 베르더 팬들은 아직 실망하기 이르다.
4월 1일, 구단 오피셜로 다비 젤케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나 2. 분데스리가의 레드불 라이프치히로 이적할 것이라는 소식이 떴다. 많은 베르더 팬들은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아르나우토비치를 팔고 데려온 프랑코 디 산토가 이 시즌에 12골로 포텐이 터지면서 아르나우토비치를 판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어버렸다.
34라운드에서 도르트문트를 이기고, 도르트문트가 포칼컵에서 우승하지 않으면 정말 간만에 유럽 대항전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2-3으로 지고 말았다. 사실 이겼어도 자력 진출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반시즌만에 팀을 강등권에서 유로파를 노릴 수준으로 올려놓은 감독님에게 팬들은 상당히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시즌 성적은 리그 10위로 마무리했다. DFB-포칼은 2부리그 아르미니아 빌레펠트에게 16강에서1-3으로 져서 탈락했다.
현재 브레멘에서 가장 부족한 포지션은 골리라고 생각되는데, 다가오는 이적시장에서 어떤 선수를 데려오느냐가 다음 시즌 브레멘의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분데스리가 최종 성적을 살펴보면, 골득실이 -15이고, 실점은 65점으로 리그 중위권에서 보기 힘든 골득실을 보여주고 있다[10] . 이때까지 주전골리로 기용되었던 볼프는 한계가 보이고 있으며, 현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카스틸스는 시즌이 끝나면서 임대가 종료된 상황이다. 3, 4옵션 골리들은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고, 곧 임대가 끝나 돌아올 2옵션인 리하르트 슈트레빙어도 마찬가지로 실력과 폼에 대해 장담 할 수 없는 상황이다[11] .
그리고 즉시 골키퍼를 보강했다. 그 주인공은 브레멘 유스 출신이자 프랑크푸르트의 서브 키퍼 펠릭스 비드발트. 원래 브레멘의 타깃은 강등된 프라이부르크의 수문장 로만 뷔르키였지만 그가 제시한 이적료가 너무 높아서 뷔르키와의 협상 테이블을 접고 비드발트와 2년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2년 후 16/17시즌 후반기 브레멘의 11경기 무패 행진에 큰 공헌을 했으니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공격진의 경우 다비 젤케가 라이프치히로 이적하게 되었으며, 또다른 주포 프랑코 디 산토는 잔류가 불명확하다. 이들의 자리는 프라이부르크에서 굉장한 활약을 하고 돌아오는 닐스 페테르센과 쾰른으로부터 영입한 안토니 우자가 메우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수비진은 클레멘스 프리츠와 함께 팀의 정신적 지주로 함께해온 제바스티안 프뢰들이 왓포드 FC로 떠났고, 상술했듯 좋은 모습을 보여준 코엔 카스틸스도 임대가 종료되어 떠났다. 주장 클레멘스 프리츠 역시 다음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비시즌 기간 동안에 확실한 선수 영입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5.13. 2015-16 시즌
2014-15시즌 31라운드프랑크푸르트와의 1-0 승리 이후 '''35경기 연속 실점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과 함께 강등 유력 후보가 되었지만 막판 뒷심을 발휘하여 최종전에서 15위 프랑크푸르트를 상대로 종료 직전 질로보지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 순위를 뒤집으며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했다.
중위권과 강등권이 불과 한끗 차이인 상황에서 파피 질로보지의 결승골은 브레멘의 순위를 단번에 13위까지 올리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5.14. 2016-17 시즌
2014/2015시즌을 연상시키는 강등권의 전반기와 후반기의 대반전.
5.15. 2017-18 시즌
다시 한번 반복되는 강등권의 전반기와 후반기의 반등.
5.16. 2018-19 시즌
함부르크 SV가 강등됨에 따라 이번 시즌부터 함부르크와 함께 분데스리가에 가장 오래 머문 클럽이 되었다.[12] 핵심 미드필더(유누조비치, 델라이니)의 이적으로 텅 비어버렸던 중원을 급히 베테랑들로 보강했다. 이적 기간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선수 교환이 유독 많았다.
시즌 초반은 바이에른 뮌헨보다 승점이 앞서면서 브레멘의 부활이 기대되었으나, 레버쿠젠전 2-6 대패를 기점으로 연패에 빠지며 전반기는 11위로 마쳤고, 후반기에는 12경기 무패 행진과 29경기 연속 득점 기록으로 시즌 최종전까지 유로파리그 경쟁을 벌였으나, 프랑크푸르트에 승점 1점이 뒤진 8위를 기록하며 아쉽게 유로파리그 진출에 실패했다.[13]
결국 브레멘이 최종 성적 8위로 분데스리가에 잔류하게 되었고 라이벌 함부르크는 시즌 후반에 극심한 부진으로 4위에 머물러 승격에 실패하면서, 2019-20시즌은 브레멘이 단독으로 분데스리가에 가장 오래 머문 클럽이 되었다.
5.17. 2019-20 시즌
막스 크루제의 이적과 주전 선수들의 역대급 줄부상으로 시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해 40년만의 다이렉트 강등의 가능성이 높았으나, 최종전에서 쾰른을 상대로 대승하고 16위였던 포르투나 뒤셀도르프가 우니온 베를린에 0-3으로 대패하며 극적으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쳤고, 2부리그 3위 1. FC 하이덴하임과의 플레이오프에서 원정 다득점으로 브레멘이 잔류에 성공하게 되었다. 게다가 라이벌 함부르크가 뒷심 부족으로 지난 시즌에 이어 연속으로 4위를 기록하며 승격에 실패하면서 분데스리가에 가장 오래 머문 클럽의 단독 타이틀을 유지하게 되었다.
5.18. 2020-21 시즌
[1] 하중도를 상징하는 독일어라고 한다.[2] 토마스 샤프가 처음 브레멘 사령탑으로 취임한 이 시즌에 1부리그 잔류와 DFB 포칼 우승이라는 성과를 올렸다.[3] 인테르에서 영입한 카매룬 국대 윙백[4] 코펜하겐에서 영입한 당시 덴마크 국대 미드필더[5] FC포르투에서 영입한 포르투갈 국대 공격수[6] 아약스에서 영입한 당시 스웨덴 국대 공격수[7] 이때 첼시의 유럽클럽랭킹은 10위로 시드2번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흉악한 조편성이 나오게 된 것이다..[8] 그 이전의 2005/06 시즌에도 챔스에서 만나 우디네세를 3위로 밀어내고 16강에 올랐다 [9] 그런데 브레멘 팀내 최다골이다.[10] 강등 확정된 파더보른과 함께 분데스리가 실점 순위 공동 1등을 차지했다[11] 그러나 현재 코치진들과 u-23에서부터 함께해왔던지라 몇번의 기회는 더 줄것으로 보인다.[12] 지난 시즌까지 함부르크의 55시즌, 브레멘의 54시즌, 바이에른 뮌헨의 53시즌 순이었으나 이번 시즌부터 함부르크와 브레멘 모두 55시즌을 머물게 되었다.[13] DFB-포칼은 4강까지 진출하였지만 4강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는 불운으로 2-3으로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