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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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프리카 서북부에 위치한 국가.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마우레타니아에서 국명이 유래되었다. 냉전 시절 한국에서는 영어식 표기인 모리타니아로도 불렸었다.
수도는 누악쇼트(Nouakchott). 국토면적은 103만 700㎢, 인구는 약 477만 명으로 국토에 비해 인구가 적다. 수도인 누악쇼트는 모래밭 위에 지어진 계획도시로 '거센 바람이 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누악쇼트의 인구는 131만 명으로 국민의 1/4 가량이 이곳에 살고 있다.
2. 자연
모리타니의 위성 사진.
지형은 매우 단조로운 편으로 산이 거의 없는 평탄한 지형이다. 최고봉 케디엣 엘 질 산도 1000m가 채 되지 않는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과 엘주프(El Djouf) 사막으로 되어 있어 농경은 거의 불가능하고, 별다른 산업 시설이 없어 빈곤하다. 그나마 남부의 세네갈 강 유역에선 농경이 가능했지만 이마저도 사막화 현상으로 농경지가 줄고 있다. 철이 상당히 많이 생산되고 있으며, 2001년에 석유가 발견되었다.
모리타니는 넓은 국토 때문에 네 가지 기후구를 가지고 있다. 뜨겁고 건조한 사하라 기후구는 국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강수량 150mm 미만 지역이다. 겨울에는 낮에 38℃까지 올랐다가 밤엔 0℃까지 내려가고, 여름에는 낮에 49℃까지 오르다가 밤에 16℃까지 떨어진다. 1년 내내 하르마탄이 불며 사하라 사막 중에서도 모래사막이 넓게 펼쳐진 지역이다. 그리고 식생은 시망. 해안 기후구는 수도 누악쇼트가 포함되는 지역으로 기후는 1년 내내 20℃에서 30℃ 정도로 바람이 몹시 세지만 생각보다 춥거나 덥진 않다. 강수량은 적고 대개 한두 달 동안 집중해서 내린다.
그리고 모래언덕은 여기서도 많다. 사헬 기후구는 동남부 내륙지역으로 가나 제국의 수도였던 쿰비살레도 이 사헬 지역에 있었다. 물론 여기도 열풍이 불지만 비는 그래도 많은 편이고 일교차는 크지만 사하라 사막보단 적다. 세네갈 강 기후구는 서남부 지역으로 모리타니에서 유일하게 모래언덕이 없다. 또한, 강수량이 600mm 정도로 비가 많이 오고 연교차도 그리 크지 않지만 이 기후구는 사막화로 인해 계속 줄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통적인 이동식 가옥의 경우에는 땅에 15~20cm 가량 되는 구멍을 파고 기둥을 몇 개 꽂아 천막 비스무레한 걸 치는데, 이때 구멍에 '''물'''을 부어 다진다. 그래야 구멍이 바스러져 기둥이 쓰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3. 역사
고대 모리타니는 하마, 코끼리, 코뿔소가 살고 있는 초원이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사하라 사막의 확장으로 모리타니는 불모지가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모리타니 북부는 베르베르인들이 낙타를 끌고 들어와 거주하기 시작했다.
한편 이 지역은 말리에도 거주하는 소닝케족의 선조격인 바푸르족도 살고 있었으나 베르베르인의 이주로 인해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갔다. 1076년 무라비트 왕조가 모리타니 동남부와 말리 일대의 가나 제국을 공격해 정복했으며, 이후 아랍인들에 의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17세기 모리타니에서는 아랍계 마킬족에 지배에 대한 베르베르인의 저항이 일어났다. 베르베르인을 이끌던 나스룻딘은 아랍인들이 음악가와 주술사와 어울린다는 이유로 올바른 무슬림이 아니라 선언하며, 자신이 심판의 날에 앞서 도래하는 영도자 마흐디라고 주장하였다. 나스룻딘의 무리들은 1673년 모리타니 전역을 석권하는데 성공하였으나 1년 후 나스룻딘은 전사하고 1677년에는 다시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1814년부터 프랑스가 이곳의 해안선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1901년 그자비에 코폴라니는 자위야족이나 하산의 유목민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트라자, 브라크나, 타간트 등을 1903-1904년까지 식민화했다. 그러나 북부의 아드라르는 조금 더 오래 지속되었고 샤이크 마 알 아이나인 등을 중심으로 저항이 있었다. 이는 1912년에 군사적으로 진압되었고, 1920년까지 이 지역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에 편입되었다.
프랑스의 지배 이후에도 이 지역 사람들은 유목민으로 남았지만 정주민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1960년에 독립했을 때 수도인 누악쇼트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철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이슬람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1970년대에는 스페인 식민지였던 서사하라를 놓고 모로코와 서사하라 영토를 남북으로 분할하는 등 영토를 확장하려고 했었지만 빈약한 경제력과 군사력 때문에 1979년에 지배를 포기하고 나머지 지역까지 모로코가 차지하는 것을 인정했다. 이 문제로 알제리와 대립하기도 했으며 1970년대엔 폴리사리오의 습격으로 큰 피해를 입은 후 군 병력을 1,800명에서 17,000명까지 증강했다. 이후 모리타니는 1984년에 서사하라를 독립국가로 승인했다.
독립 후, 독재자 모크타르 울드다다는 모리타니는 서양식 다당제 민주주의에 대한 준비가 없다는 핑계로 여당을 야당과 통폐합시켰다. 울드다다는 헌법을 고치고 1966, 1971, 1976년의 선거에서 연이어 당선되었다. 하지만 결국 서사하라에서의 참패와 연이은 경제 실패로 1978년 7월 10일, 쿠데타로 추방당했다.
80~90년대 내내 무어인과 흑인 간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1980년대에는 7만 명의 흑인들이 남쪽으로 추방되었고 1989년엔 세네갈과 국경 분쟁을 치르기도 했다. 남쪽의 세네갈에서 반모리타니 폭동도 발생했다. 모리타니의 무어인들은 세네갈 출신이나 모리타니 출신 흑인들을 공격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92년 형식상으로 모리타니는 민주화되었다. 그러나 군부독재는 200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다가 2005년 쿠데타가 일어났고 이후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시디 무함마드 울드 셰이크 압달라히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국내 이슬람 반군과 대화를 재개하자 이에 무함마드 울드압델아지즈는 2008년 쿠데타를 일으켰다. 2009년 울드압델아지즈는 경제재건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아프리카 연합의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울드압델아지즈는 징계로 이름높다.
2017년 8월 5일, 양원제를 단원제로 바꾸고 국기를 바꾸는[5] 개헌 국민투표가 시행되어 85% 이상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2019년 6월 22일에 친서방 성향의 무함마드 울드 가즈와니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
2020년 8월 6일에 무함마드 울드 가즈와니 대통령은 공공행정 경력이 많은 무함마드 울드 빌랄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4. 군사
5. 사회
종교적인 면에서 굉장히 폐쇄적이라서 이슬람교를 버리고 타 종교로의 개종과 배교를 철저하게 금지하며 기독교 등 타 종교로 개종 시 '''3일간의 회개 기회를 주고 다시 이슬람교로 개종을 거부하면 사형에 처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 선교사들도 입국을 금지하며 들어오거나 걸리기만 하면 바로 추방해버린다. 물론 이건 토착 신앙을 믿는 흑인 노예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것으로 보인다.[6]
노예제도가 아직도 강하게 잔존해 있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이 나라에 노예 제도가 없지만 15만명 정도가 노예 상태라고 하며, 비공식적으로는 전체 인구의 20%인 약 60만 명 정도가 사실상 노예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노예의 대부분은 주로 무슬림이 아닌 흑인이라고 한다.
결국 2007년에 노예금지법이 제정 및 통과되었으나, 국민들의 인식은 노예제도를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으니 문제다. 그것도 노예는 주인의 말에 복종하는 것이 곧 알라에게 복종하는 것이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라 믿는다는 종교로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국토의 대부분이 고립된 사막지대라서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법으로 기소된 사람은 여태까지 1명뿐이라고 한다. 이 나라에서 노예제도는 전 세계에서도 가장 늦은 1981년이 되어서야 폐지되었고, 노예를 부리는 행위가 범죄가 된 것도 2007년에 불과했다. #
결국 2013년 10월 16일에 호주 인권단체가 발표한 '세계 노예 지수'에서 '''100점 만점에 97.90점'''이라는 넘사벽 점수를 받아 세계 1위의 노예제 국가로 등극했다. 2위인 아이티는 52.26점으로 바로 다음 등수와 '''무려 45.64점이나''' 차이가 난다. 2013년까지 집계된 국가 총 인구 약 380만 명의 4.1%인 15만 명이 노예 상태에 신분까지 세습되는 상태에 있다고 한다. 종교 탓을 했지만 정작 해당 지수 상위 20위 안에 드는 아랍연맹 국가는 모리타니 하나뿐이다. 다른 사이트에서도 위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66.41점으로 66.08점의 아이티보다 높은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세계적인 관심과 모리타니 정부의 공식적인 노예폐지에 대한 영향 위의 globalslaveryindex 사이트 2018년 리포트 기준으로 노예는 9만여명, 노예지수 62점으로 세계 6위로 내려왔다. 참고로 1위는 264만명 추정, 노예지수 73.3점으로 북한이 차지했다.
무엇보다 정부가 큰 문제인데 입으로만 노예를 금지하지 단속에 나설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특히 자국의 노예제 폐지에 앞장서는 활동가들을 지독하게 탄압한다. 2015년에는 노예제 폐지 활동가 3명이 모리타니 법원으로부터 각각 징역 2년형을 선고받자 분노한 지지자 수십명이 법원 청사를 습격하여 경찰 수송 차량의 유리창을 부수는 폭동까지 벌어졌다.
치안은 그나마 안전한 편이다. 쿠데타는 완전히 종식되었고, 누악쇼트에서도 서누악쇼트 쪽은 꽤 안전하다. 과거 니제르 치안 수준. 다만 누악쇼트 해변은 자주 흉기 사고가 발생하니 주의. 해변에 갈꺼면 누아디브에 가자. 다만 누아디브 반도 시작점이 아주 위험한데, 아프리카를 전문으로 여행하던 여행자가 2007년에 쓴 책을 보면 아프리카 많은 나라들이 만든 지 수십 년이 넘은 차들도 끈질기게 재활용해서 쓰기 때문에 모로코와 이 나라의 국경에 폐차들이 가득해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국경선에 무장 도적들이 가득하여 차를 약탈하고 쓸 만한 부품을 다 빼버린 다음 내다 버리기 때문이라는 데에 경악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누아디브에 누아디브 국제공항이 있는데, 주기장에는 비행기 3기만 주기가 가능하다. 대개 공항의 활주로를 보면 중간에 검은 선이 있는것을 볼 수 있는데[7] , 이곳은 희미하거나 없다. 그만큼 비행기가 많이 오지 않는다.
부정부패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뇌물과 비리가 불가피하다 여겨지며 배의 무덤이라는 곳도 돈을 받고 배를 버리는 것을 용납한 공무원의 비리로 탄생된 것이다.
언론 자유도도 매우 낮아 2014년 12월엔 모리타니의 블로거 무함마드 셰이크 울드 음카이티르 기자가 모리타니의 신분 차별 관습을 비판하면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슬람 초기인 7세기 상대 부족과 전쟁했을 당시 신분 차별제도를 용인했다는 글을 핑계로 총살형을 선고했다.
가난한데도 사회복지가 있어서 노년층에게 노령수당을 지급한다고 하고 다산을 권장하여 아이를 낳을 경우 출산보조금을 준다. 하지만 실업이나 질병에 대한 수당은 불충분하거나 없는 형편이다. 식량 부족도 심각하여 모리타니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가뭄때는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굶어죽는 사람이 많다. 이 나라는 현재도 뚱뚱할 수록 미녀로 대접받는 문화가 남아있어서, 처녀들의 결혼하기 전에 일부러 음식을 계속 먹이는 풍습이 남아있다. 뚱뚱한 여성을 미녀로 간주하는 문화권은 모리타니 말고도 많지만, 일부러 결혼하기 전에 작정하고 살을 찌우는 문화는 나이지리아와 모리타니 정도 밖에는 없다.[8] 빈곤율이 높다보니 질병 문제도 심각하여 말라리아, 결핵, 홍역, 유행성 감기에 많이 걸리며 사망하는 사람도 많다. 그것을 말해주는 좋은 예가 높은 유아사망율과(출생아 1,000명당 127명) 낮은 평균수명(47세)이다.
1인당 GDP는 1300달러 수준으로 세계 150위 권이지만, 대통령 연봉은 33만 달러로 무려 아프리카 1위이자 세계 8위의 국가 수반 연봉을 기록했다. GDP 대비 대통령 연봉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그만큼 정치권의 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다.
5.1. 언어
공용어는 아랍어이지만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프랑스어도 널리 사용되고 있고, 프랑스어도 아랍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외에도 월로프어, 풀라어, 밤바라어, 투아레그어 등도 사용되고 있다.
5.2. 종교
모리타니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슬람교가 국교로 지정되어 있고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이다.[9] 타 이슬람 공화국과 같이 기독교, 원시 신앙을 믿는 소수의 국민들도 있다. 교회는 있지만 일반인에게 개방되어있지 않으며 신자들은 대부분 외국인 감독이 있는 페럴림픽 선수나 사업가이다. 원시 신앙은 주로 흑인 노예들이 신봉한다.
5.3. 스포츠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축구에 열광한다.
피파랭킹은 하위권이지만 2014년에 프랑스 국가대표팀 출신인 코렁탱 마르탱스 감독이 부임하면서 축구협회와 함께 철저한 개혁정책을 펼치고 있다. 국가의 지원을 빵빵하게 받아 수도인 누악쇼트에 축구 전용구장까지 개장하며 성적도 수직상승했다.
2019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이집트에도 역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했고, 비록 승리 없이 2무 1패로 탈락했지만 본선 역사상 첫 골도 챙겼고, 앙골라, 튀니지와의 경기에서는 0-0무승부로 총 승점 2점을 챙기며 의미있게 마무리했다.
이후에는 2021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카메룬 예선을 진행중인데,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인 모로코를 상대로 원정에서 무승부,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을 상대로 승리를 챙기는등 순항중이다.
또한 굉장히 폐쇄적인 이슬람 국가임에도 2019년에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창설되어 운영중이기도 하다. 여자 대표팀 역시 축구협회에서 상당한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후문.
6. 행정구역
주로 해안가와 남부에 도시가 있다. 수도 누악쇼트는 북, 서, 남누악쇼트로 나누어졌으며 제 2도시 누아디브는 북쪽에 있는 유일한 대도시이다.
7. 국기
1959년 프랑스에서 독립하기 이전에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녹색 바탕에 노란 초승달과 5각별이 새겨진 국기를 사용했으며, 초승달이 눕혀져 있고 별이 위에 떠올려진 모습이 새겨져 있다. 녹색 배경은 이슬람교를 상징함과 동시에 푸른 초원의 꿈을 통해서 사하라 사막을 녹지화하자는 의지를 담고 있다. 초승달과 5각별은 이슬람교의 문장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2017년 국민투표를 통해서 국기 디자인을 일부 수정하여 위와 아래에 빨간색 가로 줄무늬를 추가했는데, 이는 프랑스 지배 당시 독립을 열망하며 싸웠던 독립투사들과 그들의 희생을 상징한다.
8. 국가
9. 외교
10. 여행
대한민국 국민은 누악쇼트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할 수 있다. 서사하라와의 육로 국경이나 누아디부 공항에서의 도착비자 발급 여부는 불확실하다.
관광지로 옛 모습을 잘 간직한 사막의 마을이나 중세 가나 제국의 고도 쿰비살레가 있으며 모래로 덮인 마을을 통과하면서 그곳의 유목민과 차를 마시거나, 혹은 달처럼 생긴 분지를 횡단하는 등의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모리타니 주재 한국공관이 없고 비자 발급 등의 업무는 일본 대사관이 대행하고 있다.
그러나 2009년부터 수도 누악쇼트에서 최초의 자살테러 사건이 일어난것부터 계속 날이 갈수록 범죄가 늘어나며, '''누악쇼트 해변을 중심으로 보면 흉기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그러니 모리타니 여행시 정말 신중히 생각하고 여행 계획을 세우고 가는것이 좋다.
농업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해서 물가가 매우 비싸다. 그래도 시장에서는 수박이나 망고, 애호박 등은 싼 편이며 고기 등을 살 것이 아니면 가격도 비싸고 질도 나쁜 대형 마트보다 시장을 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10.1. 교통
육로 입국 시 세네갈에서 입국할 경우와 달리 서사하라 또는 말리에서 입국하는 것은 위험하다. 서사하라와의 국경은 넘는 여행자들이 있으나 국경 인근 무인지대는 지뢰가 많이 매설되어 있고 테러단체의 활동으로 납치 가능성이 있어 여러 나라들에서 국경 인근 지역을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해 놓았다.
이동은 도보를 추천한다. 렌터카는 정말 오래된 소련제 중고차밖에 없고 2000년대식 자동차는 보기도 어렵다.
버스는 소매치기가 증가하는 추세라 현지인들도 어디 놀러갈때나 돈 숨기고 타지 웬만한건 걸어 다닌다.
택시는 세 종류가 있는데 가장 싼 직진택시, 회전택시, 가장 비싼 일반 택시다. 직진택시는 오직 직선거리로 가며 좌/우회전을 안해 거리를 돌아간다. 회전택시는 직선택시 탈때 사거리에서 턴 레프트/라이트를 하면 알아서 회전택시로 바꿔준다. 대신 추가 요금이 붙는다. 마지막으로 일반 택시는 그냥 택시다.
근거리 요금은 기본 10우기야로, 도착했을 때 30~50우기야를 주면 된다. 너무 적게 주거나 온지 얼마 안된 외국인한테는 75~100우기야를 내놓으라고 하는데, 너무 적게 줬으면 10우기야 정도를 더 주고 내리고, 처음 온 외국인일 경우 100% 바가지니 60우기야정도 주자.
11. 여담
카리브의 아이티와 여러모로 비슷한 나라다. 어업이 최대 산업이며 가난하고, 이웃 국가들이 비교적으로 부유한(세네갈, 도미니카 공화국) 편에 속한다. 또 양국 모두 노예제가 현존하며, 치안도 불안하다.
유목민들이 도시(특히 누악쇼트)에 정착해서 천막집을 짓는 장면이 NHK의 다큐멘터리에 나온 적이 있는데, 기둥을 세울 때 땅을 파서 기둥뿌리를 묻을 구멍을 만든 후 '''사막에서 목숨만큼 귀중한 물'''을 구멍에 부어서 흙을 다진다. 안 그러면 구멍이 건조한 기후에 무너져내려서 기둥이 쓰러져 버린다고 한다.#영상
12. 언어별 명칭
[1] 2017년 8월 6일 자로 위아래로 빨간색 가로 줄무늬가 하나씩 들어간 국기가 새로 제정되었다. 이전에는 아래의 국기를 사용하였다. 과거 노란 초승달과 별의 색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 노란 초승달과과 별의 색을 '''주황색'''으로 바꾸어 쓰기도 했다.
[image][권위주의] 3.92점[2] 인간개발지수[3] 본래 1963년 7월에 수교를 했지만 북한과 국교를 맺은 이후에 단교했다가 다시 재수교.[4] 본래 1964년 11월에 수교를 했지만 폴리사리오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1977년 6월에 단교했다가 재수립하였다.[5] 이 전의 국기는 현재 국기에서 위아래 빨간색 띠를 제거한 형태이다. [6] 물론 이건 당연히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흑인 노예들은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하기 때문에 이슬람을 믿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실제로 이슬람권에서 '불신자'를 의미하는 아랍어 단어에서 유래한 kaffir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멸칭으로 사용되고 있다.[7] 비행기가 착륙하면서 생기는 마찰력 때문.[8] 언론에서 해당 풍습을 우스꽝스러운 악습으로 비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는 산모가 될 젊은 신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풍습이다. 서아프리카 건조 지대에서는 산모의 영양실조로 출산 중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다만 모리타니의 의료 수준과 소득 수준이 어느정도 상승한 후에도 해당 풍습이 계속 이어진다면, 이는 산모의 건강을 해치는 인습으로 봐야 한다.[9] 공식자료로는 99.9%가 무슬림이다. 하지만 이건 이슬람을 국교로 삼은 나라들의 공통점으로 타종교 외국인을 제외하면 전부 이슬람 무슬림으로 측정한다. 특히 모리타니는 이 자료를 믿을 필요가 없는게, 흑인노예는 사람으로 취급안하기에 무슬림으로 될수도 없다고 믿는데 그 숫자만 전체인구의 최소 2%, 최대 10%로 파악되고 있다.
[image][권위주의] 3.92점[2] 인간개발지수[3] 본래 1963년 7월에 수교를 했지만 북한과 국교를 맺은 이후에 단교했다가 다시 재수교.[4] 본래 1964년 11월에 수교를 했지만 폴리사리오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1977년 6월에 단교했다가 재수립하였다.[5] 이 전의 국기는 현재 국기에서 위아래 빨간색 띠를 제거한 형태이다. [6] 물론 이건 당연히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흑인 노예들은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하기 때문에 이슬람을 믿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 실제로 이슬람권에서 '불신자'를 의미하는 아랍어 단어에서 유래한 kaffir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멸칭으로 사용되고 있다.[7] 비행기가 착륙하면서 생기는 마찰력 때문.[8] 언론에서 해당 풍습을 우스꽝스러운 악습으로 비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는 산모가 될 젊은 신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풍습이다. 서아프리카 건조 지대에서는 산모의 영양실조로 출산 중 사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다만 모리타니의 의료 수준과 소득 수준이 어느정도 상승한 후에도 해당 풍습이 계속 이어진다면, 이는 산모의 건강을 해치는 인습으로 봐야 한다.[9] 공식자료로는 99.9%가 무슬림이다. 하지만 이건 이슬람을 국교로 삼은 나라들의 공통점으로 타종교 외국인을 제외하면 전부 이슬람 무슬림으로 측정한다. 특히 모리타니는 이 자료를 믿을 필요가 없는게, 흑인노예는 사람으로 취급안하기에 무슬림으로 될수도 없다고 믿는데 그 숫자만 전체인구의 최소 2%, 최대 10%로 파악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