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하라

 




서사하라
الصحراء الغربية(as-Sahara al-Gharbiyyah)
Western Sahara

[image]
대륙
북아프리카
위치
마그레브 지역 서해안
면적
266,000km²
국가
[image] 모로코
[image]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image] 모리타니
언어
아랍어
인구
563,703명 (2018년 추정)
최대 도시
엘아이운
지위
비자치 지역 (모로코와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모리타니 영토 분쟁 중)
1. 개요
2. 역사
3. 모로코가 노리는 이익
5. 대외 관계
6. 기타
7. 현황
7.1. 마지막 미 개발지
7.2. 인권문제
8. 주요 도시,지명
8.1. 모로코 실질 점령지역
9. 창작물에서의 등장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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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서사하라 현재 세력도
الصحراء الغربية(as-Sahara al-Gharbiyyah, 서사하라)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서해안의 위치한 지역. 모로코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사이의 영토 분쟁 중이다. 지명 그대로 사하라의 서쪽에 위치해있으며, 지도에서는 모로코와의 국경선을 점선으로 표시하고 있다. 매우 덥고 건조한 지역이며, 중심 도시는 엘아이운. 인구는 약 40만 명인데 대략적인 추정치이다. 이중 모로코 정부에 대항하는 사흐라위(sahrawi)족이 약 25만 명으로 추산된다.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은 곳이며 카나리아 제도와 연계하여 모로코도 전부 식민지화하려고 했으나 프랑스의 개입으로 불완전한 통치가 이루어졌다.

2. 역사





2.1. 고대


고대에는 누미디아인의 지배를 받았으며 포에니 전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로마의 동맹국이 되어 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이때 로마에 의해 전파된 수로로 인해 사막화를 막고 비교적 비옥한 땅으로 자리잡았으나 서로마제국의 붕괴 이후 아틀라스 산맥이라는 자연적 장애물과 이기다 사막의 확장으로 지금의 모로코 지역과 문화적으로 분리되면서 독자적인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잊혀진 땅이 되어 북아프리카가 이슬람 제국의 침략을 받았을 때도 무사하였고, 지금도 엘아아온 지역에 가면 로마시절 흔적이 남아 있다.

2.2. 스페인의 서사하라 진출


이후 대항해시대를 거쳐 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유럽 열강은 아프리카를 분할하여 각국의 식민지로 삼았다. 1884년 스페인베를린 회담을 통해 서사하라를 할양받았다. 이후 서사하라는 스페인령 사하라라는 이름으로 통치되었다. 스페인령 사하라의 원주민인 사흐라위인은 독립을 요구했으나, 스페인의 식민지이기 이전에 일부 지역이 모로코모리타니 영토였기 때문에 모로코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스페인령 사하라 이양을 요구했다. 이때 인근의 모리타니도 스페인령 사하라에 대한 영유권을 요구했다.
'대모로코주의'를 재창하며 서사하라 지역 병합을 요구했던 모로코1963년 유엔에 스페인을 '식민주의자'로 제소하기에 이른다. 1974년 스페인이 민주화 운동으로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모로코는 서사하라 국경지대에 군대를 파견하여 스페인 정부를 압박하였다. 결국 1975년 11월 6일 스페인이 서사하라를 포기하고 스페인령 사하라가 종식되었다. 모로코 정부는 즉각 녹색행군을 전개하여 서사하라 북부를 장악하였다. 1976년 2월 스페인모로코, 모리타니에게 서사하라를 대략 북위 24도선을 기준으로 2:1로 분할하여 양도한다는 마드리드 협정을 맺게 된다.
한편 스페인의 통치에 맞서 사흐와리인은 1973년 5월 10일 폴리사리오 전선모리타니 수도 누악쇼트에서 결성하였다. 이들은 스페인 당국에 대항하여 독립 투쟁을 전개했으며 1976년 서사하라가 모로코모리타니에게 분할되자 이에 반발하여 동년 2월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العربية الصحراوية الديمقراطية الجمهورية)을 수립하였다. 이에 모로코폴리사리오 전선을 공격함으로써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고 폴리사리오 역시 게릴라 투쟁으로 모로코군과 맞서 싸웠다. 이 분쟁을 '서사하라 분쟁'이라 부른다.

2.3. 분쟁


모로코와 함께 서사하라를 양분한 모리타니폴리사리오 전선의 지속적인 폭탄 테러를 당했다. 군사력이 취약했던 모리타니는 1979년 폴리사리오 전선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여 서사하라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고 서사하라 분쟁에 대해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하였다. 모리타니가 포기한 서사하라 영토는 폴리사리오가 적어도 북위 24도선 이남의 서사하라의 합법 정부로 인정받을 것을 우려한 모로코에 의해 점령되었다.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성립 이전부터 폴리사리오 전선을 지원해온 알제리는 폴리사리오가 국가를 성립하자 국제적으로 승인하여 외교 관계를 맺었다. 알제리는 독립 후 모로코와의 국경분쟁에서 참패한 것에 대한 앙금이 있으며, 대서양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 차원에서 서사하라의 독립을 지금까지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서사하라가 모로코령이 되면 알제리는 대서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반드시 모로코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1] 1975~76년 알제리측 국경 지방인 틴두프에 서사하라 난민캠프를 세워 폴리사리오가 관리하게 하였고, 이 캠프를 지원하고 있다.
워낙 인구가 희박한 지방이라 모로코군이 주로 지배하고 있지만 폴리사리오 전선에게 게릴라성 공격을 당하는 일이 잦아지자, 모로코 측은 자신들이 점령항 지역의 지배권을 굳히기 위해 1980년부터 1987년까지 6단계에 걸쳐 모로코 장벽이라는 이름의 길이 2,700km의 장벽을 쌓기 시작했다. 장벽이 완공되자 장벽을 따라 서쪽은 모로코, 동쪽은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이 실효지배하게 되었다.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측은 서사하라 지역의 약 1/3 가량, 서사하라 내 거주 인구(서사하라 밖으로 이주한 난민 제외)의 8% 남짓이 거주하는 영역을 점유한 상태다.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이 점유한 영토의 위치는 본 항목 상단의 지도와 모로코 장벽 항목의 지도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한편 장벽을 축조하던 중에 서사하라의 독립을 인정한 국가들이 많아졌고, 아프리카 연합(AU)이 1982년에 서사하라 지역을 국가로 인정하고 모리타니가 1984년에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을 북위 24도 이남의 서사하라에 대한 합법정부로 승인하자 모로코가 이에 격분하여 1984년에 홀로 아프리카 연합을 탈퇴하였다고 한다.[2] 정확하게는 아프리카 연합의 전신인 아프리카 통일 기구(Organisation of African Unity ; OAU)에서 서사하라를 국가로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1984년에 회원으로 가입까지 시켜줬다.[3]
아프리카 연합유엔1985년부터 서사하라 분쟁에 개입하여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국제 기구의 노력으로 1991년에 유엔 중재하에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주민 투표를 위한 사전 작업인 선거인 식별 및 등록에 대해 모로코와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사이에 첨예한 대립이 발생하여 주민투표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투표가 표류한 데는 투표권을 누구에게까지 부여해야 하는지가 문제가 되었는데, 해마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유목민족과 서사하라에 정착한 모로코 이주민에게도 투표권을 줘야 하는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진 것이었다. 후자까지 인정하면 모로코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고, 전자만 인정하면 반대로 폴리사리오측이 유리해진다.

3. 모로코가 노리는 이익


사실 모로코는 서사하라 지역에 많이 매장된 (燐)산을 노린 것이다. 화학비료의 원료가 되는 서사하라의 인산염 매장량은 세계적 수준으로 21c 현재까지 인류는 인산을 대체할 만한 물질을 찾아내지 못했다. 나우루 같은 국가는 인산 광물인 인광석으로 한때 최상위 부국이 되었을 정도. 이 덕분에 모로코는 서사하라의 매장량까지 합쳐 통계상 인광석 매장량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그 외 자원은 빈약하지만 이는 후술했다시피 거주자의 동의없는 자원탐사나 채굴을 금지하는 입장인 UN과 EU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원 외에도 모로코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곳인데, 한 현지 교민의 말에 따르면 모로코는 지도를 보다시피 세로로 긴 나라이므로 서사하라를 얻는 것은 그만큼 넓은 면적을 대서양과 접하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지리적인 이점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모로코는 어떻게든 서사하라를 얻고 싶은지 사흐라위인에게 이점을 챙겨주면서도[4] 자국민들을 꾸준히 서사하라로 이주시키고 있다.
그리고 모로코 측은 이곳을 자기들 땅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치기에 모로코 사람이라면 서사하라를 자기 나라 땅으로 여긴다. 모로코에 진출한 한국 업체가 새해 다이어리를 만들다가 안에 실린 지도에서 서사하라를 모로코와 별개인 점선을 그은 모습으로 실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고 이 지도 부분을 폐기하고 다시 내야 했던 적도 있다. 이 업체 관계자가 투덜거리면서 모로코 친구들에게 '설마하니 우리 기업에게만 이러는 거냐?'라는 질문을 하자 지인들이 말하길 일본이나 유럽 기업들도 호되게 비난당했으며 소니 같은 경우는 지도에 그려진 국경선 때문에 불매운동까지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모로코 입장에서는 이곳을 통일해야 할 지역으로 여기고, 반대로 서사하라 주민들은 독립을 원하는 상황이다.

4. 폴리사리오


폴리사리오 전선으로 불리는 서사하라 독립운동가들은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Sahrawi Arab Democratic Republic, SADR)이라는 정부를 세워 독립운동 내지는 주권 회복 운동을 펴고 있다. 이 정부를 인정한 적이 있는 국가는 85개국에 달하며, 지금까지 외교관계까지 맺고 있는 국가도 알제리, 멕시코, 쿠바, 북한, 이란 등 49개국이나 된다. 이 정부(?)의 인준 문제로 모로코-알제리의 관계가 크게 냉각되었다. 2010년까지도 서사하라 독립 정부요인들은 죄다 알제리로 가서 활동하고 있기에 모로코와 알제리는 원수지간이 되었다.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던 사건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2009년 서사하라의 독립운동가인 아미나투 하이다르의 단식 투쟁이다. 여권 국적에 서사하라라고 썼다는 이유로 모로코 정부에 의해 강제 추방되자, 공항에서 단식 투쟁을 벌인 것. 다른 하나는 2010년 11월 모로코군과 독립 시위대가 충돌해 13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5. 대외 관계




6. 기타


서사하라 북부의 옛 지명인 Saguia el-Hamra는 이 지역을 흐르는 거대한 와디에서 유래됐다.
대한민국 국군의 서사하라 의료지원단유엔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1994년부터 2006년까지 12년 동안 의료지원 활동을 하였다.
서사하라 문제에 대해, 1975년 국제사법재판소는 “서사하라의 일부 원주민 부족은 모로코와 역사적 유대관계가 있었지만 서사하라와 모로코 왕국 사이에 영토 주권의 관계를 확립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자문의견을 냈다.
실제로 모로코의 주장과는 조금 다르게 원주민인 사흐라위인(Sahrawi)들은 역사시대 동안 어떤 단일한 공동체나 국가를 성립시킨 적도 없고, 단일한 정치결사체로 모로코의 술탄에 복종한 적이 없었다. 스페인이 이 지역을 식민지로 만들때까지 사흐라위인은 Regulibat, O.delim 등의 부족단위로 유목생활을 계속했으며, 부족장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명목상의 맹약이나 신종을 “일시적”으로 맺을 뿐이었다. 게다가 모로코의 역대 왕조들이 서사하라 전역을 중앙집권적으로 실효지배 한 적도 한 번도 없었다. 모로코와 접한 북부 테크나(Tekna)지역 부족장들만 꾸준히 신종했을뿐...
무라비트 왕조나 400년전 사드 왕조, 현 알라위 왕조도 북부 사기아 엘 함라 지방 일부 지역까지만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쳤을 뿐이였고, 1884년 스페인령 사하라성립 직전까지 이곳은 사흐라위인인들이 비 중앙행정적으로 부족단위 유목생활을 영위하던 곳이였다.
2011년 4월, UN 안전보장이사회 1979호 결의안은 모로코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자결권을 위해 평화적인 해결책을 모색 해야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안보리 결의안 1754(2007), 1783(2008), 1813(2008), 1871(2009)에 이어 MINUSO(유엔 사하라 투표 감시위원회)에 정전감시를 위한 군사적 권한을 부여하고 양 측에 협조를 부탁했다.

7. 현황


한편 서사하라의 지위 문제를 둔 협상이 번번이 실패하고 유엔 중재의 주민투표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게 되자 폴리사리오 전선은 2016년 4월 26일 독립 여부를 결정하는 주민투표 일정을 유엔이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거나 미국 등 서방세계 국가들과 유엔이 서사하라 독립에 대한 주민투표에 반대하고 있는 모로코에게 경제제재 등 강력한 압박을 주지 않으면[5] 모로코와 폴리사리오 전선 사이에 전쟁이 다시 재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016년 6월 1일 서사하라의 독립운동 지도자이자 폴리사리오 전선 의장이었던 모하메드 압델 아지즈가 와병중에 사망했다.# 7월 9일, 새 대통령으로 이브라힘 갈리가 취임했다.
폴리사리오 전선이 모로코군과의 전쟁 재개 위험을 경고했다. 조만간 이 지역에 다시 전쟁이 일어날 모양새인듯.... 다시 소강상태이다.
폴리사리오 전선이 아프리카연합에 재가입한 모로코에게 서사하라의 독립을 인정하라고 압력을 걸었다.
모로코 정부가 서사하라내의 완충지대에 주둔중이던 모로코군 병력을 철군시킬 것을 시사했다. 그리고 모로코군이 서사하라내 완충지대에서 병력을 철수시키자 유엔은 서사하라 독립군인 폴리사리오 전선에게도 병력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서사하라 갈등을 해소할 보고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했다. 2018년에 안보리 결의안에서 주민투표 하라는 결의안을 통과했다.
워낙이나 오지인지라 코로나바이러스가 도착하는 데에 꽤 오래 걸렸지만, 의료 인프라 같은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동네라 피해가 매우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이 다른 나라로 퍼지면서 다시금 재감염을 낳고 있기도 하다.
2020년 11월에 다시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다.#

7.1. 마지막 미 개발지


서사하라는 남극, 시베리아 등과 함께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미 개발지로 불리는데, 이는 오랜 분쟁으로 이 지역에 대한 체계적이고 현대적인 지질조사나 자원탐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원문제는 서사하라 분쟁을 복잡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
이는 상당부분을 점유중인 모로코의 경제사정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1975년 이래로 서사하라 거주민들의 희망에 반하는 자원 채굴이나 탐사는 불법이라는 UNEU 입장 때문이다. 2015년 EU 사법 재판소는 서사하라와 관련된 EU와 모로코 간의 무역거래를 무효화 하는 판결을 내기도 했으며#, 2018년 유럽 사법 재판소는 EU와 모로코 정부 간 어업조약에 서사하라 해안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 때문인지, 2002년에 모로코 정부와 서사하라 석유 탐사를 계약한 프랑스의 토탈과 미국의 커맥기(kerr-Mcgee)[6]는 2006년 계약을 더 이상 갱신하지 않았다.
분명 원유가 풍부한 알제리 남부와, 철광석과 , 구리가 풍부한 모리타니와 지층을 공유하고 있기에 제대로 된 자원탐사 시 상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상기된 국제정치 문제로 대부분 미 탐사 지역으로 남아있다. 그런고로 스페인령 사하라 시절부터 스페인이 채굴한 인광석이 현재까지 주요 수출품으로 남았다.(...) 그런데 대충 조사한 매장량이 전 세계 1위이다.# 이는 과거 인광석으로 잘살다 망했던 나우루보다 많은 양이 있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러한 자원을 둘러싼 갈등은 서사하라 분쟁해결을 더욱 꼬이게 하는 문제로, 모로코와 인접한 알제리모리타니는 서사하라 문제에서 모로코보다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의 입장을 들어주고 있다. 모로코의 우방국들도 서사하라를 승인하지 않았지만, UN을 통한 해결을 지지한다는 관망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 지역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최초로 개척한 스페인도 외교적으로는 중립입장 이면서도,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에 대한 원조액은 알제리와 1, 2위를 다툰다(...) 아무래도 아프리카에서 적도기니와 함께 유이하게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쓰는 지역이다 보니 영향력 유지를 위해 투자하는듯...

7.2. 인권문제


현재 서사하라 서부는 모로코가, 동부는 폴리사리오 등 서사하라 반군과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이 유지되고 있어 둘 다 언급이 된다.
언급했듯이 현재 서사하라(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제외)를 점령한 모로코는 이곳의 독립시위대들을 억압하고 있으며, "치욕의 장벽"이라고 불리는 모로코 장벽을 설치해서 수많은 국제인권 단체들로부터 비판을 듣고 있다. 또다른 문제점이라면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인데, 폴리사리오 등 현재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 독립반군들도 일부 테러에 가까운 과격한 행동을 한다는 비판이 있다. 다만 현재 서사하라 상황을 감안하면, 서사하라 독립 반군들도 어쩔 수 없이 이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물론 단순히 과격한 행동이 아니라 도를 넘어서 테러를 저질렀다면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정당화하기 어렵지만).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건 다름아닌 내부에서도 독재자가 있으며, 자국 주민들의 인권을 억압한다는 것이다. 서사하라를 점령하지 않았지만 서사하라 반군을 돕는 알제리 역시 이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 제기 하지 않는다.

8. 주요 도시,지명



8.1. 모로코 실질 점령지역


  • 다클라(Ad-dakhla) - 엘아이운에 이은 서사하라 제2의 도시. 스페인령 사하라 시절에는 Rio de oro 지방의 수도역할을 했으며 가톨릭성당, 항구, 스페인 내전시기 포로수용소(...)가 건설되었다. 다클라 공항은 명목상 모로코의 최남단 공항이다.
  • Cape bojador - 보자도르 곶
  • Smara
  • El Marsa
  • Hawza
  • El Argoub
  • Guerguerat
  • Chalwa

8.2.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 점유지역


모로코 장벽 동쪽 지역으로 통칭 자유지구(Free zone)라고 불린다.#
  • 티파리티(Tifariti) -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SADR)의 수도이다. SADR의 행정기관과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 국가 의회(SNC)가 있으며 그 외 티파리티 대학교, 병원, 모스크, 박물관 등이 있다.
  • Bir Lahlou - 2008년 까지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의 이전 수도였다.
  • Mehaires
  • Mijek
  • Agwanit
  • Dougaj
  • Zug
이 지역은 특이하게 하싸니아 아랍어와 함께 스페인어도 공식언어이다. 스페인의 영향력이 짙은 곳으로 대부분 스페인 도시들과 자매관계를 맺고 있으며 많은 기반시설들이 스페인 지방정부 지원으로 건설되었다.(티파리티의 Navarre 병원 등)
스페인 정부는 공식적으로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을 승인하지 않았다. 대신 스페인 국제협력개발기구(AECID)나 각 지방정부, WEF ,EU식량계획 같은 국제기구나 CEAS-Sahara,Asociación Granadina de Amistad con la RASD, Asociaciones de Amigos del Sahara de Valladolid, Cantabria por el Sáhara같은 스페인 국내 NGO를 통해 간접지원하고 있다.

9. 창작물에서의 등장


한국만화 만화 플라잉 타이거가 서사하라를 무대로 했다. 다만 만화에서는 서사하라가 강압적인 군사독재에 시달리는 엄청난 자원 부국으로 실제와 다르게 나온다. 이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서사하라는 을 제외하면 개발된 자원이 없는 가난한 지역이다. 환경도 사막인 가난한 나라에서 값비싼 최신 전투기(당시로선 그럭저럭 신형급(?)이라고 할 F-16으로 나오지만.)를 사서 용병까지 고용하자면 어쩔 수 없이 넣은 설정.
중국 작가 싼 마오의 수필집 <사하라 이야기> <흐느끼는 낙타>가 서사하라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의 신혼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부담 없이 읽기 좋다.

10. 관련 문서



[1] 알제리 항목에 있는 알제리 지도를 보면 북쪽에 지중해에 접해있지만 정작 대서양으로 나가려면 스페인, 지브롤터, 모로코 사이의 좁은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가거나 스페인을 거치거나 모로코를 거쳐야 한다. 이것은 중국인도양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를 얻으려고 미얀마파키스탄 등과 우호관계를 맺은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2] 그러다가 2017년에 다시 아프리카연합에 가입했다.[3] 영어 위키백과의 OAU 항목아프리카연합 항목 참조. 1982년 이전까지 OAU 회원국이 짐바브웨까지 해서 50개국이었는데 턱걸이 과반인 26개국이 사하라 아랍 민주 공화국을 1982년 1월까지 승인했었다. 그 상황에서 가입이 되었으니...[4] 의식주에 대한 가격 통제 및 이점 제공.[5] 실제로 모로코는 아랍권에서 정치적, 외교적으로 친미국, 친서방 성향이 강력한 국가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 미국을 가장 먼저 승인한 나라가 모로코로 모로코 국왕이 미국에게 독립 축하 편지를 보냈고, 미국이 최초로 체결한 상호우호조약, 가장 오래된 외교시설 소재지 또한 모로코일 정도. 프랑스 식민지배에서 독립 후 미국 F-16 전투기나 M-113 장갑차 같은 미제 무기들을 구입, 운용할 정도로 친미 성향이 극히 강력한 나라이다. 물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며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을 침략국가라고 비난하면서 사이가 나빠진 적도 있었지만 이라크전을 일으킨 부시 대통령이 물러나고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다시 관계가 개선되었다.[6] 세계 최초의 해저 유전 개발업체로, 현재는 아나다코(Anadako)를 거쳐 옥시덴탈 석유(Occidental Pertoleum)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