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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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결성
3. 데뷔 및 활동
4. 조준호 사건으로 인한 해체
5. 노현태의 독단적인 노선
5.1.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부활
5.2. 노현태의 근황
6. 박기영의 근황
7. 디스코그래피
7.1. 1집 Street Poets
7.2. 2집 What's Music (음악이 뭔데)

'''그러니까 서론, 본론 따윈 모두 제껴버리고 도대체가 결론부터 짚어가면 음악이 뭔데?!''' - 음악이 뭔데 中

'''이제 나는 더 이상은 못 참겠어! 괴롭힘 당하면서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세상엔 왜 이렇게 나쁜 놈들 많은건지 이렇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싸워보겠어! 왜 나를 가만두지 않는건지 어째서 너희들의 개가 되길 원하는지 나는 하고 싶은 말하면서 살고 싶어 너희들 무리속에 들어가서 살 수는 없어!''' - 착한 늑대와 나쁜 돼지새끼 3마리 中


1. 소개


리더인 박기영(Ricky P), 노현태, 김신교로 구성됐었던 3인조 힙합 그룹. 1999년 데뷔해 2003년 해체했다. Ricky P와 노현태-김신교의 행보가 완전히 달라서 다시 뭉치는 일은 아마 영원히 없을 것이다.

2. 결성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박기영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던 중 자신을 우등생으로 키우려는 부모님에게 반발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이에 부모님은 박기영을 미국의 명문 사립고등학교로 유학보내버렸다. 근 10년에 이르는 미국 유학기간동안 박기영은 레코딩 엔지니어 교육과정을 수석으로 수료하고 밴드 생활 등으로 음악적인 감각을 다져나갔다.
90년대 중반 한국에 돌아온 박기영은 에코의 프로듀서를 맡아 노래들을 히트시키면서 이름을 알렸고 이에 유승준, 젝스키스, 소찬휘, 김현정, S.E.S. 등 많은 가수들이 박기영에게 곡을 받아갔지만 이런 작업을 반복할 수록 그는 한국 가요계에 대한 염증만 더욱 커져갔다. 결국 박기영은 음반업계의 눈치를 보지 않고 건전한 비판정신으로 더 밝은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1999년에 '에고 엔터테인먼트'라는 법인을 설립하고 '거리의 시인들'을 만들게 된다.
거리의 시인들 결성을 위해 모은 두 멤버 노현태와 김신교는 댄서 출신으로, 특히 노현태는 국내 최초의 댄싱 팀이었던 '꾼'의 단장이자 , 엄정화, 비비 등의 가수들에게 안무를 맡아주기도 했다.
박기영은 프로듀싱부터 시작해서 악기연주 및 작곡 등 음악적인 면에 있어서 모든 걸 담당했던 중추적인 존재였으며, 나머지 둘은 원래부터 랩을 하던 이들이 아닌지라 랩의 스킬적인 면에서는 아무래도 뒤떨어지는 경향이 강했지만 목이 쉴 듯이 내질러대는 샤우팅 랩은 청중들에게 어필하기 적절했다.

3. 데뷔 및 활동


1999년 데뷔앨범 'Street Poets'을 내놓았다. 본디 타이틀곡은 대중매체 및 가요계를 비판하는 '바보들'이었지만 이 곡보다는 독특한 상황극 형식을 띈 곡인 이 꽤 인기를 끌었다. 심의로 인해 전곡이 방송금지처분을 당하거나[1] 매니저가 앨범 홍보비를 착복하는 등 온갖 악재가 겹친 1집이었으나 그래도 입소문을 타고 15만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렸는데, 이는 대다수의 트랙에서 비속어나 부적절한 가사가 들어간 것도 한 몫 했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당시 가요계의 열악한 환경과 음반시장의 상황 덕분에 일부 대중들에게만 알려졌기 때문이다.
2001년에는 '음악이 뭔데'를 타이틀곡으로 하여 2집인 'What's Music'을 내놓았지만 1집 때와 달리 대중과 타협한 듯한 음악을 보여주면서 에고 엔터테인먼트의 설립취지가 좀 퇴색된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 앨범 활동시기에 거리의 시인들은 처음으로 TV 출연을 하게되지만 얼마 못가서 아래 후술될 사건으로 인해 팀이 해체되고 말았다.
또한, 거리의 시인들 2집 활동과 동시에 박기영은 5인조 밴드인 'Joy Box'를 결성하여 앨범을 내고 활동했는데 무리하게 병행된 두 개 그룹의 활동이 그의 심신을 쇠약하게 만든 것도 거리의 시인들 해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Joy Box의 앨범은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수록곡 'Special'은 감성음악의 정점이라는 평가까지 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앞날을 가로막은 사건이 터지게 된다.'''

4. 조준호 사건으로 인한 해체


그 외 각종 컴필레이션 앨범 등등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리고 있던 거리의 시인들이지만 2002년 초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게 됐다. 사건의 발단은 박기영이 미국 시민권자라 한국에 법인을 차릴 수 없게 되자 보컬 트레이너를 맡고 있던 조준호를 대표이사로 내세웠던 것인데 회사 관리는 안중에도 없이 자신의 이득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조준호는 거의 모든 자금이 박기영에게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법인카드로 결제하지 않은 회사운영비와 음반제작비는 모두 공금 횡령이니 대표이사인 자신에게 보상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른다. 마침 당시에 유승준의 병역기피 사건으로 이슈가 되었던 시기였던지라 조준호는 미국시민권자로서 병역미필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박기영에게 유승준처럼 곤란하게 만들어주겠다는 협박까지 곁들이는데 그 내용은 ''''유승준도 군대에 안 가고 미국으로 도망친 인간인데 너도 이것처럼 비슷한 꼴 날 것이다\''''라는 식의 내용이다.
끝내 억대의 소송에 휘말리게 된 박기영은 피해가 팀원들에게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거리의 시인들을 해체시킨 뒤[2] 2003년 자진입대했고 당시 34살이었던 나이로 인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된다.
후일 조준호는 엉뚱하게도 유시민 지지자들이 모인 다음 카페[3]에서 활동하던 중 자신을 공격하는 이들과 키배를 치르게 되고, 과거 박기영과의 소송건에 대해 이와 같은 주장을 내세운다.[4] 카페에 가입해 있던 자신의 팬을 통해 조준호의 글을 접하게 된 박기영은 대리로 반박글을 올렸다. 상당 부분을 귀찮다며 그냥 거짓말이라 치부하고 넘기긴 했으나 법정 싸움의 진행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제대로 반박하고 있다. 나중에는 아예 박기영이 직접 까페에 가입했지만 2시간동안 쓰던 글을 날려먹었다며 사건에 대한 추가적인 의사를 밝히지 않고 '나쁜 사람들은 조심해야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과 똑같아지지 말고 자신의 순수함을 지켜낼수 있는 진정한 승리자들이 되길 바란다'는 짧은 글을 남긴 뒤 다시 카페를 떠났다.

5. 노현태의 독단적인 노선


그렇게 거리의 시인들이 해체된 뒤 노현태와 김신교는 보컬과 랩 담당의 새로운 멤버 김동준을 영입하여 'Code82'라는 팀을 결성하고 2003년에 '3 Version'이라는 앨범을 발매했지만 음악적인 중추였던 박기영이 빠지는 바람에[5] 반응은 딱히 신통치 않았으며 결국 흐지부지 해체되었다. Code82의 와해 이후 김신교는 음악활동을 중단, 본업인 춤쪽에서 활동했다.
노현태는 의 맨발의 청춘 리메이크곡에서 랩 파트로 참여하고 솔로로써 싱글을 내는 등 간간히 활동을 보여주다가 2007년 앨범홍보를 위해 '이효리의 남자친구로 오해받은 적이 있다'는 노이즈 마케팅 전략을 펼치면서 좋지 않은 의미로 존재감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이 좋지 않은 존재감은 노현태가 2007년말 이명박 전 대통령(당시 후보)의 대선 홍보곡 '최고명박'을 부른 것으로 현실화되었고 수많은 팬들이 "배신감을 느꼈다"며 욕을 하며 등을 돌렸다.이후 노현태는 유리와 함께 한동안 소식이 없던 대한민국 컴필레이션 앨범의 최신작 2008 대한민국에 참여, 노현태와 김신교의 2인조로 거리의 시인들의 재출발을 알렸으나 앨범이 전체적으로 병맛 퀄리티라 역시 파묻혔다.

5.1.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부활


노현태와 김신교의 2인조로 부활을 알린 뒤에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응원송 등에 참여했으며 동년 10월 '거리의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싱글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베이비복스 출신의 심은진이 피처링한 발라드풍의 '진심 아닌거 알잖아'. 물론 여전히 박기영이 없으니 상황은 Code82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곡 자체도 '거리의 시인 feat. 심은진'인지 '심은진 feat. 거리의 시인'인지 헷갈릴 지경.
거리의 시인이 예견된 실패를 맛본 뒤에도 노현태의 기행은 멈추지 않았는데, 2010년말에는 가수 김도헌과 함께 NK스머프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여 싱글 '싸랑랑해'를 발표했다. 웃긴 것은 네이버 프로필상 그룹 장르가 '''기능성 음악'''으로 되어 있다. 참고로 이 곡은 노현태의 친한 동생인 LG 트윈스의 내야수 정성훈의 등장곡이다.
2011년 1월에는 자유기업원 원장인 김정호를 주축으로 김교민[6], 박민하와 함께 프로젝트 그룹 '김박사와 시인들'을 꾸려 싱글인 '희망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타이틀곡은 무분별한 복지정책을 비판하고 자유경쟁주의를 설파하는 '개미보다 배짱이가 많아'. 그리고 다른 수록곡은 아무래도 노현태 본인의 심경을 털어놓은 듯한 '똥파리들 (악플그만)'. 노현태 본인이 김정호에게 랩을 가르쳤다고는 하는데 역시 가르친 사람 수준이 수준이거니와 랩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김정호 원장이니만큼 랩의 수준은 허경영보다 약간 나은 정도이다. 영상
이후 노현태는 제작자의 위치에서 수린과 호빈[7]의 여성 듀오 '엠 싸이코 걸스'를 밀어주려 했고 직접 랩 피처링도 맡았으나... 결과는 시망. 연예 뉴스에서 노현태를 검색해보면 대부분 연예인 야구단 '조마조마'[8] 활동 이야기다.
잠시 돌아왔던 김신교가 다시 거리의 시인을 떠나자 2012년말 노현태는 싱글을 몇 번 낸 적 있는 랩퍼 블리스와 춤을 담당하는 임우진, 정순길, 김인수의 네 멤버를 영입, 팀을 재정비하고 다시 거리의 시인들 이름으로 '안 돼'라는 싱글을 발표했다. 타이틀곡인 '안 돼'는 노현태가 직접 작사 작곡을 맡았으며 언제나 가까운 사이였던 유리를 비롯해 약삭빠르게도 나는 가수다 2를 통해 유명세를 올리고 있던 더원을 피처링으로 내세워[9] 대중적인 인기를 노렸지만 박기영 이탈 후에 언제나 그래왔듯 흥행 참패. 이외에 거리의 시인 시절 냈던 싱글 수록곡 '진심 아닌거 알잖아'와 '너에게만 그래 나이기만 바래'를 리마스터링하여 다시 수록했다.

5.2. 노현태의 근황


거리의 시인들 활동은 흥행 폭망으로 다시 흐지부지되었고, 2013년과 2014년 조마조마 소속 후배 연예인들인 조성우, 김인수, 윤경호, 정순길, 윤석현을 끌어들여 '나는 정말 야구선수다'와 '우리 결혼합니다' 두 장의 싱글을 내놓았다. '우리 결혼합니다'는 여동생의 결혼을 축하하면서 내놓았던 곡.
노현태는 2015년 5월 쇼미더머니4에 참가했지만 1차 예선에서 떨어졌다. # 거리의 시인들 1~2집 시절 가사를 그대로 재탕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게다가 오디션 모습도 나이와 경력을 앞세워 거친 욕설을 내뱉는 등 소위 꼰대질하는 장면이 많아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쇼미더머니 4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정상수를 잽싸게 끌어들여 '쇼 미 더 머니'라는 제목의 싱글곡을 발표했으나 당연히 혹평일색. 이효리에, 심은진에, 더 원에, 이제는 정상수... 이쯤 되면 혼자서 할 수 있는게 도대체 뭔지 궁금할 따름이다. 2016년 6월에는 역시 정상수와 함께 '랩을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자아성찰돋는 제목의 싱글을 발표했다.
가끔 곡을 내놓고는 있지만 SNS를 보면 거의 야구선수 내지 관련 직종 종사자나 다름없는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 모 스크린 야구장에 해설로 목소리를 빌려주기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시끌벅적해지는 와중에 옛날 이명박 대선홍보곡이나 김박사와 시인들 시절 워낙 까인 전력 때문인지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을 자중하고 있는 듯 하나, 그 대신 정상수가...
이후 고고스 프레밀리 연예인 야구단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댄스팀으로 등장하기도.
기획쪽으로도 어찌어찌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데, 2011 ~ 2012년 딸랑 세 곡 내놓고 별 재미 못 본 엠싸이코 걸스가 그 곡들로 2018년까지도 지방 행사를 뛰고 있었다. 이후 엠싸이코 걸스 멤버 중 호빈을 중심으로 레이디 T, 몸빼걸스의 그룹들을 새로 런칭하며 행사 중심으로 끈질기게 명줄을 유지하는 중. 레이디 T부터 최근의 몸빼걸스까지는 트로트 그룹을 표방하고 있지만, 엠싸이코 걸스 시절의 '스트레스 팍팍'은 지금까지도 행사 단골곡. 사실 저 곡 자체도 엠싸이코 걸스보다는 피처링으로 참여한 임태경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은 기이한 곡이다.

6. 박기영의 근황


한편 소송 싸움에 이기긴 했지만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박기영은 공익 복무를 마친 뒤 슈퍼특공대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다.

결국 사기꾼의 본색을 드러낸 '''어느 조!'''[10]

니 부모님이 니가 그런 놈이란 사실을 알기나 하냐?

'''니 목소리가 나의 음악을 더럽힌걸 아냐?'''

돈 때문에 양심팔고 친구들을 배신하고

착한 애들 뒤통수치면서 살아갈수가 있냐?

- "내 노래 듣지마!" / 박기영

특히 앨범에 수록된 '내 노래 듣지 마'라는 곡에서 조준호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기도 했다. 실제로 들어보면 가사 일부에서 특히 조준호에 대한 불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11]
이후 무일푼으로 미국에 건너가 기타리스트 활동을 해나가며 독특한 퍼포먼스 등을 통해 조금씩 명성을 쌓게 되고, 2012년 8월 Ricky P의 이름으로 블루스에 CCM 성격이 가미된 솔로 1집 'RickyP'를 내놨다. 앨범에는 에코에서 활동했었던 한양여대 실용음악과 김정애 교수, 조이 박스 및 슈퍼특공대에서 보컬로 활동했던 미로, 시각장애인 보컬리스트 이민석[12], 블루스 음악가 Willie Green 등이 참여했다. 또한 마스터링은 그래미상 3회 수상에 빛나는 Bob Katz가 맡아 앨범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사실 미국에서는 6월에 내놓았던 앨범을 2개월 후 국내에 정식 발매한 것. 전체적인 앨범 평은 꽤 좋은 편.
앨범에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곡 '비겁한 타잔'을 수록하려 했으나 미국에서는 타잔 저작권과 얽혀 수록하지 못했고, 국내에 발매할 땐 해당곡을 수록하였다. 4대강 공사를 비판하는 듯한 가사인데, (당시) 대운하 정책을 옹호하는 '한반도대운하'라는 곡부터 시작하여 김박사와 시인들 활동 등을 통해 친정권적 메시지를 내보였던 노현태와는 정 반대의 행보.
2013년 8월에는 옛날 조이박스, 슈퍼특공대 시절 함께 했던 보컬 MIRO와 함께 싱글 '진정한 자유로'를 내놓았다.
그의 사운드클라우드의 100만 재생수는 사운드클라우드 뮤지션들에게 유명하다.
미국에서 보컬 미로와 결혼하고 자식들과 함께 잘 지내고 있는듯. 여담으로 엄청난 원더우먼 덕후다. 아내를 원더우먼에 자주 비유한다던가, 코스프레를 자주 시킨다.
2017년에는 페이스북에 노현태와 김신교를 디스하는 글을 올렸다. 이들이 거리의 시인들이란 이름을 더럽힌다는 투의 얘기를 하며 용서할 수 없다고까지 하는 걸로 보아 앞으로 다시 결합하거나 화해할 일은 없을 것 같다.

7. 디스코그래피



7.1. 1집 Street Po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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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음반과 카세트테잎 음반의 곡 목록이 약간 상이하게 선곡되었다.
(radio Version) 곡들은 CD에만 수록 되었다.
참고로 앨범 자켓에 가사가 수록되지 않았으며 거리의 시인들 공식 홈페이지에서만 볼 수 있었다. [13]
-CD음반 선곡버전-
  1. Ricky P
  2. 바보들
  3. Transition 1
  4. 드디어 왔다
  5. 생일[14]
  6. 착한늑대와 나쁜돼지새끼 3마리 [15]
  7. 현태일기 [16][17]
  8. 강강옛날옛적
  9. We Rock! [18]
  10. 술취한 시인들
  11. 하늘
  12. 내가 말하겠어 (free Style)
  13. 에코[19]
  14. 아리랑[20]
  15. Transition 2
  16. 마무리 [21]
  17. 바보들 (radio Version)[22]
  18. 드디어 왔다 (radio Version)[23]
  19. 생일 (radio Version)[24]
  20. 현태일기 (radio Version)[25]
-카세트테잎 음반 선곡버전-
  1. Ricky P
  2. 바보들
  3. Transition 1
  4. 드디어 왔다
  5. 생일
  6. 착한늑대와 나쁜돼지새끼 3마리
  7. 현태일기
  8. 강강옛날옛적
  9. 에코
  10. 아리랑
  11. We Rock!
  12. 술취한 시인들
  13. 하늘
  14. 내가 말하겠어 (free Style)
  15. Transition 2
  16. 마무리
'''1999년 09월 발매'''

7.2. 2집 What's Music (음악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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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리는 말씀 (내레이션:류시현)
  2. 음악이 뭔데
  3. Shut Da F**k Up
  4. 너만 믿으면 돼
  5. 애물단지
  6. 독감경보
  7. 감기군단
  8.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시간들
  9. 고해성사
  10. Hip Hop
  11. War
  12. 무지에 대한 분노
  13. 독백
  14. Ricky's Blues Jam
  15. 거리의 시인들이여 영원히
  16.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시간들 (instrumental)
'''2001년 10월 발매'''

[1] 이 때문에 iTV를 제외한 모든 지상파 방송에 나오지 못했고, 라디오 에디트 버전의 곡들이 간간히 라디오 전파를 타는 정도였다.[2] 그 외에도 2집 당시 결성되었던 Joy Box도 이 사건의 여파로 해체되었다.[3] 원래 전체 공개였지만 언제서부터인가 회원만 게시물을 열람할 수 있게 되어 게시물 링크 대신 캡처 이미지로 대체.[4] 해당 내용 중하단에 박기영의 가족들을 금호그룹의 회장 혹은 사채업자 등으로 왜곡하는 표현까지 있었으며 거의 박기영에 대한 선전포고 비슷한 내용이다.[5] '서태지 없는 서태지와 아이들', 이라는 평가가 딱 적절했다. 비슷하게 음악적 중추이던 터틀맨 사망 후 팀이 사실상 공중분해된 거북이의 예가 있다.[6] 와 함께 아이돌 그룹 '팬클럽'의 멤버였다.[7] 엠 싸이코 걸스가 망한 뒤 레이디 티라는 걸그룹의 멤버로 활동 중이지만 이 또한 거의 듣보급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8] 총무직이며 경기에서는 투수와 중견수 포지션을 맡고 있다. 여담으로 감독겸 투수로 박광수에, 다른 인원으로는 심현섭 등이 있다. 다 이쪽 계통에서 정치성향이 보수적 스탠스로 유명한 이들이다.[9] 안그래도 팀을 5인조로 꾸려서 난잡한 판국에 보컬 피처링까지 더해진 정신없는 결과물이 나왔다.[10] 다만 일부는 실명을 거론하기도 했다.[11] 가사의 내용 자체가 사회 비판, 국회의원들의 이권다툼, 조폭 미화, 을사조약 등을 운운하면서 조준호를 디스하는 내용이다.[12] 옛날 임요환과 대결하여 화제가 되었던 그 시각장애인 게이머 맞다. 현재 CCM 가수. 해당 음악이 그런 성격을 띠는 것도 있기 때문.[13] 물론 지금은 폐쇄 되었다.[14] 남자 그룹 ‘지오’의 2집 앨범 ‘Party’에 실렸던 곡을 다시 부른 것이다.[15] 2000년 당시 핫브레이크 쵸코바 의 TV광고 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16] 중간에 만화주제곡 짱가를 샘플링하여 개사 하였다.[17] 인트로 파트에는 Ricky P가 노현태에게 전화하는 음성이 삽입 되었고 아웃트로 파트엔 노현태가 마무리 랩하는 도중 음악이 꺼져서 녹음실 스태프에게 항의하는 음성이 그대로 녹음 되었다.[18] 2000년 당시 하이텔의 TV광고 음악으로도 사용되었다.[19] 가수 에코가 맞다. 피처링에 참여 하였으며 본곡은 에코가 직접 랩을 하였다. [20] 민요 아리랑을 개사하였다.[21] 김신교와 Ricky P 그리고 에코가 피처링 하였으며 노현태는 본 곡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유는 즉 노현태가 녹음시간에 잦은 지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본 곡 반주가 끝난 후 노현태가 자기 파트가 없다고 당황해 하며 항의하는게 그대로 녹음 되었다. [22] 인트로에 Transition 1의 앞부분을 합성 편집하였다.[23] 인트로에 Transition 1의 뒷부분을 합성 편집하였다.[24] 인트로에 생일축하노래를 추가하였다.[25] 인트로와 아웃트로의 멤버들간의 잡담 파트가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