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틀맨

 


<colbgcolor=#73D1F7><colcolor=#FFFFFF> '''터틀맨
Turtle Man'''
'''본명'''
임성훈 (Lim Seong-hoon)
'''생'''
1970년 9월 3일
전라북도 전주시
'''몰'''
2008년 4월 2일 (향년 37세)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동
'''발인지'''
2008년 4월 4일
순천향대학교병원 장례식장
'''국적'''

'''신체'''
170cm, 89kg[1], O형
발 300mm[2]
'''직업'''
가수
'''가족'''
아버지 임백우[3], 어머니 백남
임준환(1966년생)
'''학력'''
동북고등학교 (졸업)
'''종교'''
불교
'''소속 그룹'''
거북이
'''포지션'''
'''리더''', 서브보컬, '''메인래퍼'''
'''취미'''
성대모사
'''특기'''
성대모사
'''데뷔'''
2001년 거북이 정규 1집 [Go Boogie!]
1. 개요
2. 사망
3. 수상 경력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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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중들이 따라할 수 있는 랩이 진정한 랩이다.

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 래퍼. 3인조 혼성그룹 거북이의 멤버이며, '''리더''', 서브보컬, '''메인댄서'''를 맡았었다.
1970년 9월 3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육군 장교 아버지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전주시는 태어날 당시 아버지의 근무지로,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광주, 전주 등 지역을 옮겨가면서 근무해왔으며, 학창시절은 서울특별시에서 보냈다.
평택에서 목욕탕을 하던 어머니 백남의 도움으로 가수의 꿈을 키우던 그는 2001년, 거북이 결성/데뷔 후 리메이크[4]과 1집 몇 곡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을 직접 작사·작곡했다.[5] 특유의 굵직한 음색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과 리드보컬을 담당했으며, 2007년에는 기획사 부기엔터테인먼트를 창립했다.
그는 육군 상병으로 소집해제 하였다. 군에서 복무하던 시절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여자친구가 성폭행을 피하려다 그만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터틀맨은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울먹였다고 한다. 여자친구와의 사별 후 터틀맨은 순정을 지키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에 대한 심정은 2집 '10년이 지났지만'이라는 노래에 담겨 있다.[6]
참고로, 터틀맨이 생전 제일 좋아했던 자신의 곡은 거북이에게 가요프로그램 1위를 안겨준 '비행기'가 아닌, 지금도 거북이의 대표곡으로 알려진 'Come On', '빙고#s-7', '싱랄라', '왜이래' 등도 아닌,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바치는 사부곡(思父曲) '장군에게'[7]였다는 사실을 그의 사후 지이가 밝힌 바 있다.
한때 1975년생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2006년에 자신이 37살로 김구라와 동갑(1970년생)이라 밝힌 바 있다.[8]실제로 2020년 금비가 복면가왕에 출연해 정체가 밝혀지자 김구라가 이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터틀맨은 당시 거북이가 힙합을 주로 추구하는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임선영을 위해 발라드 파트를 넣어주는 배려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임선영은 터틀맨을 자기를 여기까지 키워 준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도 하고, 장례식에서도 펑펑 울며 슬퍼했다.

2. 사망


'''터'''질 것만 같은 행복한 기분으로

'''틀'''에 박힌 관념, 다 버리고 이제 또

'''맨''''''주먹 정신, 다시 또 시작하면 나 이루리라 다 나 바라는대로'''

'''거'''룩한 인생, 고귀한 삶을 살며

'''북'''그럼 (부끄럼)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

'''이''''''내 삶이 끝날 그 마지막 순간에 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 대로'''

'''거북이, <빙고> 中'''[9]

2005년 4월 2일 심근경색으로 인해 갑작스레 쓰러진 후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아오던 중 딱 3년만인 2008년 4월 2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이 때문에 오랜 활동기간과 꾸준한 인기로 인해 적지 않았었던 수익의 대부분은 심근경색 치료에 쓰이느라 수익을 많이 벌었음에도 궁핍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날 당시에도 약 4억 원의 빚을 지고 있었다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 16년이 넘었지만, 음악사이트 및 유튜브에서는 거북이와 터틀맨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추모글들이 고인의 기일을 전후로 계속 올라오고 있다.
그의 시신은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되었고 유골은 경기도 안성시 유토피아 추모관에 안치되어 있으며[10] 마왕 신해철과 배우 김성민이 안치된 장소와 같다.
유토피아 추모관 근처에 오방 교차로와 오방 마을이 있는데 생전 마지막 앨범인 정규 5집 이름이 '오방 간다'이다. 지이와 금비가 추모관으로 가는 길에 오방 마을이 있음을 알고 많이 놀랐다고 한다.
참고로 사망 전날인 4월 1일은 스케줄이 없어서 멤버들과 마지막으로 만난 날은 3월 31일인데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오래 배웅을 해줬다고 한다

3. 수상 경력




4. 여담


  • 군인 집안인 만큼 매우 엄격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직업 특성상 아버지는 잦은 지방근무와 외출로 인해 거의 곁에 있지 못했고, 유년 시절을 사실상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다시피 했다. 어머니는 보건소 직원으로 일하면서 두 형제를 키워왔다.
  • 노래할 때 나오는 특유의 중저음은 원래 목소리가 아니라 군복무 시절에 구령을 하면서 터득하게 된 목소리로, 이 목소리를 랩에 적용하려고 2년을 연습했다고 한다. 원래 목소리는 노래 부를 때보다 높은 편으로, 거북이 2집 수록곡 '고부기', 4집 수록곡 'Remember Me', 5집 수록곡 '안녕 푸치'에서 원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Remember Me'의 경우 아예 피쳐링해준 가수가 누구냐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데뷔 때 원래 목소리로 녹음을 해봤는데 덩치와 안어울리는 목소리라서 새로 개발한 목소리가 거북이 노래에서의 터틀맨 목소리라고.
  • 그의 친형 임준환은 테니스 강사로 일하고 있다. 2008년 경, 모 테니스 관련 잡지에 한번 나왔다.[11]
  • 사망 후 유족은 그의 어머니와 형, 형수, 그리고 그의 조카(형의 자녀)[12]가 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와 형은 오랜만에 찾아간 지이와 금비를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동생 내지 친딸처럼 대하면서 이들의 유대감이 얼마나 끈끈했는지를 보여주었다.
  • 2008년까지 김구라와 같은 소속사에 있었다. 김구라는 과거 신정환을 좋게 보지 않았는데, 1974년 생인 신정환이 4살이 많은 터틀맨을 무시하고 하대[13]했기 때문이라고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터틀맨은 "예전에 방송국 대기실에서 신정환 선배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다"며 "선배도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헌데 선배가 갑자기 뜬금없이 '거북아 너는 몇 살이냐'고 물어와 당황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두사람의 관계가 나쁘지 않음을 알 수있고, 방송에서 신정환도 거북이와의 일화를 몇번 언급했으며 알 수 있듯이 신정환을 저격한 것이 아니다.[14]
  • MC 스나이퍼의 6집에 수록된 'Letter To Heaven'에는 둘 사이의 일화가 가사 안에 있다. 실제로 터틀맨 생전 MC 스나이퍼는 터틀맨보다 무려 9살[15]이나 어린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하나였다고 한다. 거북이 5집 음반에도 붓다베이비의 일원이었던 DJ Road가 스크래치 세션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친구여! 들리는가 진짜 남자의 노래가?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른 너만을 위한 군가
>이젠 다신 볼 수 없지만 우린 너를 기억해
>아쉬움은 남지만 만날 날을 기약해
> - MC 스나이퍼,
  • 사망 3년 전(2005년)부터는 독실한 불자#s-1로 활동하기도 했다. 한때 자신은 가수를 그만두었더라면 승려될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말년에 염주를 차고 활동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기도 했다.
  • 바이브의 원년 멤버인 유성규의 절친이자 그가 이끄는 레이블인 Chic Entertainment 소속 래퍼인 SNOFEEL(스노필, 과거 예명은 씨팍, T.D.F에서의 활동명은 진센)이 과거 거북이의 전신격 되는 힙합그룹 T.D.F(Turtles Da Foul)에서 터틀맨과 같이 활동한 인연이 있다. 2017년 발표한 싱글인 랩 가사에서도 이를 언급하였는데, 해당 가사는 다음과 같다.

>2001년 T.D.F 팀을 결성
>처음 참가한 언더 힙합 앨범
>발매 공연 몇 번 하고 나서 뒤풀이
>Turtleman 위로 가서 함께 돈 벌자
>힙부심이 강했던 나는 뿌리치고
>댄스그룹 1등해도 부럽지 않았네
>- SNOFEEL (씨팍),
  • 터틀맨이 15살 때 왜이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그가 중학교 2학년이던 1984년의 음악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생각한다면 정말 충격적인 부분.[16]

  • 엠넷 특집방송 '다시 한번'에 김현식과 더불어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방송은 2020년 12월 9일 전파를 탔다.[17]


터틀맨이 2020년 지금도 살아있다는 가정 하에 재현한 30대 후반의 터틀맨 외모와 특유의 표정, 제스처까지 완벽히 복원했다.[18] 목소리의 경우 생전 터틀맨이 녹음했던 추임새[19]가 아닌 부분은 음성 합성 티가 나지만 그렇다 해도 거의 완벽하게 복원한 기술력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터틀맨이 사망했을 2008년도에는 있지도 않았고 2018년부터 하나의 문화가 된 손가락 하트 포즈까지 마지막 사라질 때 재현해서 큰 감동을 선사했다.
방송분에서 44분 50초부터 잠깐 스쳐지나가는 장면을 보면 생전 터틀맨과 비슷한 체형의 남성 댄서의 모습을 그린 스크린 앞에서 촬영후 얼굴을 합성했다.
터틀맨의 홀로그램이 나오자 어머님인 백남 여사와 형 임준환은 공연 내내 통곡을 하다시피하며 무대를 지켜보았고 형은 동생의 모습이 그래픽인 것을 아는데도 무대로 뛰어올라가고 싶었다고 했으며 어머니 백남 여사는 "사랑하는 내 아들 성훈아."라는 말 이후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거북이의 멤버들과 팬들, 현장에 있던 MC 하하과 게스트 펭수[20]또한 슬픔에 젖어 있는 모습이 나왔다.
이 방송에서 처음 알려진 사실로, 사실 터틀맨은 살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터틀맨이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여 의사 조언대로 검사를 위해 한 달간 입원하라 하였으며 30kg를 감량하면 살 수 있다고 조언하였으나 터틀맨은 한 달간 입원하게 되면 음악 활동과 컴백 활동을 못 하며 살을 감량하였더니 본인의 개성 있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결국 병원을 뛰쳐 나왔다고 한다. 쓰러지더라도 '무대 위에서 쓰러지겠다'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불타올랐던 사람이다. 그리하여 완성한 작품이 바로 거북이에게 첫 1위를 안겨준 "비행기"다. 게다가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서 병원에 갈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1] 2006년에 방송된 TV종합병원에서 집에 있는 체중계로 측정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측정된 값은 102.9kg. 반올림하면 103kg 였으나, 2007년에 14kg 감량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의사가 원 체중에서 30kg, 즉 73kg 이하로 빼지 않을 시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2] 보통 이 정도 키면 260~265mm인 경우가 대다수인데, 키에 비해 발이 크다. 여담으로, 강호동과 발 크기가 같다.[3] 터틀맨과 같은 병세로 1997년 별세했다.[4] 사계#s-1.5.1, 한동안 뜸했었지 등.[5] '모든' 곡은 아니고 1집 당시 삼속곡으로 잠시 활동했던 '순한 사랑'과 'Real Love' 는 본인의 자작곡도 아니지만 리메이크 곡도 아닌 완벽한 타 작사, 작곡가의 제작 곡. 참고로 '순한 사랑'의 작사, 작곡, 편곡은 작곡팀 디스코파이터가 도맡았다. 그리고 원래 거북이는 처음에 터틀맨, 레드페이스, 지이로 데뷰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1집에는 터틀맨과 레드페이스가 공동 작사, 작곡한 곡들이 더러 존재한다.[6] 이 곡이랑 4집 수록곡 '10년 전으로'와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두 곡은 전혀 다른 곡이다. 4집 '10년 전으로'의 경우, 주요 화자가 터틀맨이 아닌 Z-E(지이) 이며, 지이가 10년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한탄하며 내뱉는 랩에 터틀맨이 10년전으로 되돌아 간다고 해도 다시 지금 이 시점이 되돌아오면 그 때마다 다시 10년전으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후회하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에 최선을 다하라고 일침하는 답가로 이뤄져 있다. 2집 '10년이 지났지만'이 터틀맨의 자전적 내용이라면 4집 '10년 전으로'는 Z-E (지이) 의 자전적 내용이니 거북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어볼 것을 추천.[7] 어느 댓글에 따르면 이 곡은 2004년 6월 단독 콘서트에서 터틀맨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라이브로 불렀다고 한다. 거북이의 노래들은 보통 터틀맨이 대다수의 파트를 3인에게 공평하게 배분했지만 유일하게 이 곡만 곡 전체가 터틀맨의 솔로라고 한다. 이후로는 죽을때까지 단 한번도 라이브로 부른 적이 없다고 한다. 사부곡이다보니 아버지 생각에 말을 잇지 못했다는 듯.[8] 만일 밝혀지지 않았다면 터틀맨 사망 기사에 향년 33세(세는나이 34세)라고 쓰여 나왔을 것이다.[9] 지이, 금비도 이 노래에 같은 방식으로 등장한다.[10] 가수 터틀맨(임성훈) 12주기 추모식, 유토피아추모관, 2020-04-02[11] 12월의 인물 - 임준환, (사)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 2007-12-05[12] 결혼조카의 탄생은 터틀맨이 사후에 이뤄졌기 때문에 생전에 만나지는 못했으며, 2007년 테니스 잡지에서는 미혼으로 나와 있다.[13] 신정환이 "거북아, 너 몇 살이니?" 이런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나중에 터틀맨의 나이를 알고 놀랐다고는 했는데, 사실 터틀맨이 신정환보다 늦게 데뷔한데다 (신정환이) 나이에 비해 동안인 점도 한 몫 했다.[14] 거북이, 후배가수들에게 "인간이 되라", 씨앤비뉴스, 2008-01-11[15] 터틀맨이 1970년 생, MC 스나이퍼가 1979년 생이다.[16] 이 노래는 19년이 지난 2003년에 세상 빛을 보게 된다.[17] Mnet, 故김현식·터틀맨 추모 특집 '다시 한번' 편성, 스타투데이, 2020-10-28[18] 다만 터틀맨의 특유의 랩을 구현하는 건 어려웠는지 싱잉랩으로 대체했다.[19] 하하가 이 추임새가 담긴 USB 메모리를 발견해서 복원 작업팀에 전달했다.[20] 평소 팬이긴 하나 생전에 서로 만난 적이 없으며 살아 있을 당시에는 펭TV자체가 없었다. 애초에 유튜브 라는게 한국에 알려지기도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