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세피아
KIA SEPHIA[1]
1. 개요
기아자동차가 스포티지의 독자개발 과정에서 얻은 전륜구동 플랫폼 설계 기술을 기반으로 언더바디까지 '''대한민국 최초로 완전히 독자 기술로 차체를 설계'''[2] 한 승용 모델이다. 더불어 기아자동차의 첫 준중형 승용 세단 모델이기도 하다.
2. 세피아 제원
3. 상세
본래 일본 마쓰다로부터 323의 언더바디를 들여와 상부 설계만 하여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포드 - 마쓰다 - 기아자동차 간 합작 프로젝트의 산물인 프라이드(수출명 포드 페스티바(Festiva))의 생산 및 개량과정에서 기아자동차의 기술습득 능력에 위기감을 느낀 마쓰다가 언더바디의 공급을 거절했다. 그러자 기아자동차가 스포티지의 개발 과정에서 얻은 플랫폼 설계 기술을 가지고 처음부터 자체적으로 설계 및 생산하기로 결정하여, 그것을 실행에 옮겨서 나온 모델이 바로 세피아다. 대신 마쓰다는 1.5리터 엔진만 공급해 줬다.[13][14]
1.5리터 모델은 캐피탈에 얹었던 마쓰다제 직렬 4기통 1.5리터 B5 SOHC/DOHC 엔진을 그대로 사용했고,[15] 안전 최고속도는 105마력 1.5 DOHC 기준으로 180km/h(수동 5단)/171km/h(자동 4단)였다. 페이스리프트한 후 1996년에 출시한 1.8리터 모델은 기아자동차에서 자체 개발한 139마력 T8D DOHC 엔진을 얹어 수동 5단 기준으로 안전 최고속도는 196km/h였다.[16] 주행 성능, 핸들링 모두 동 시기에 출시된 엘란트라에 비해 스포티한 특성을 보이며 판매량면에서도 나름 선전하였다.[17]
초기형 모델이 출시되고나서 1993년 대전 엑스포 공식 차량으로 지정되기도 해서 초기형 모델 중에서는 대전 엑스포 공식 캐릭터인 꿈돌이가 그려진 스티커까지 붙여진 것도 있다.
CF 이미지 대결에서도 고성능 이미지를 밀어붙인 엘란트라 못지 않게 힘이 좋다는 이미지를 많이 각인시켜 주었다.[18] 세피아의 유명한 CF로는 아래의 영상과 같이 사고로 고장난 피터빌트 359 트랙터를 뒤에 쇠사슬로 매달아 끌고 가는 CF와
브레이크가 고장난 채 폭주하던 스쿨버스를 앞에서 가로막으며 자력으로 세우는 CF 등이 있다.[19]
세피아의 좋은 판매 실적에는 이러한 파격적인 광고의 힘도 있었다.
1994년 세피아 미국 광고
1994년 미국 시장 진출 초기에 판매된 차량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2001년형까지 판매되었다.
3.1. 페이스리프트
- 1994년 11월 4일 뉴 세피아로 페이스리프트되었는데, 엔진룸 내부 설계와 실내 대시보드를 거의 신차 급으로 변경하였다.
- 1996년 5월에는 라디에이터 그릴 형상을 변경하고, 가로 일체형이던 테일 램프를 좌우 분리형으로 변경하고 중간 부분에 바디컬러 바탕에 S E P H I A 레터링을 넣는 디자인으로 2차 F/L을 하였다. 평가는 전보다 더 낫다는 평이 많았다.
- 1994년 페이스리프트 이후 현대 엘란트라와 1~2위의 다툼이 있었다. 그만큼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성공적이었다는 얘기. [20]
3.2. 파생 모델들
3.2.1. 세피아 왜건 (Timor S515)
정식 출시 모델이 아닌, 세피아의 라이선스를 사간 인도네시아의 티모르(Timor)사가 만들어 판매한 차량이다.
3.2.2. 세피아 레오(해치백/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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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위 버젼(뉴 세피아가 나오기 전이니 아마 1994년 이전 버젼이라 추정)은 구 세피아의 레오 버젼이다. 하지만 자금 부족으로 양산에 실패하여 판매된 적이 없다.
이후 1994년 뉴 세피아가 출시되고, 1996년에서야 출시되지만, 안 그래도 세단에 대한 인식이 다른 형태(해치백, 왜건)보다 월등히 좋은 시장인데, 이미 출시 타이밍을 놓친 바람에[21] 판매량은 좋지 못했다. 다만 유럽 및 오세아니아 시장 공략을 목표로 개발된 파생형인만큼 해당 지역에선 그럭저럭 팔렸었다.[22]
3.2.3. 세피아 컨버터블
유럽시장을 주 목표로 생산할 예정이었으나 취소하고 기아 스포티지를 양산하게 된다. 대전 엑스포에서도 전시되었는데 모두 1996년도부터 내부에 방치되다가 원래 방치되어있던 우주탐험관이 철거되자 공원으로 옮겨져 전시되어 있었다. 출시 했다면 예상 배기량은 1,800cc.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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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옆의 차는 세피아 EV. 세피아 EV는 보닛이 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 내부의 기관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2016년 1월 기준) 사라졌다. 확인 결과 스포티지 출고 2호차, 세피아 EV, 세피아 컨버터블은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폐차되었다고 한다. 그럴 듯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 부식이 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23]
4. 세피아 2
1997년 8월 7일 출시되었다.'''중형처럼 기분 좋은 차.'''
'''영웅은 있다.'''
여담이지만, 세피아 2가 페이스리프트 전보다 판매량이 적었는데, 우선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한몫했고, 95년에 아반떼의 출시로 밀리고,대우 누비라의 상승세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엔진은 거의 그대로인데, 차체가 커진데다 옵션 및 편의장비는 더 늘어나면서 무거워진 탓에 떨어진 가속력과 연비 역시 기존 팬들에게도 실망감을 주기도 했다. 덕분에 요새는 보기 힘든 차중 하나가 되었다. 오히려 매니아들이 기를 쓰고 유지하는 구세대 차종이 더 많이 발견되는 편.
1999년 4월 19일 2000년형 세피아2로 연식이 변경되어 판매되다가 2000년 5월 29일 스펙트라로 페이스리프트되었다.[이유]
5. 세피아 2 제원
6. 평가
자체개발 플랫폼이라는 특성 때문에 여러모로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모델로서 평가받는 모델이며, 1995년 WRC 호주 랠리 비개조부분 우승 모델로 당시 NP2 그룹에서 1세대 카레이서였던 박정룡 현 아주자동차대학교 교수가 이 차를 타고 우승했다. 특히 2대 출장 중 한 대는 동급 개조 클래스의 기록을 상회했다고. '''그러나 이는 엄연히 NP2 그룹 한정이다.''' 이 그룹에는 박정룡 교수가 탄 기아를 포함해서 오직 5대밖에 출전하지 않았으며 이중에서 3대는 기계적 문제로 리타이어 한 것이지, 세피아 자체가 엄청나게 좋아서 우승한 것이 절대 아니다.[27] 게다가 당시 호주 랠리는 기아가 정식으로 WRC 챔피언쉽도 아닌 일시적 참가를 한 것이므로 현대가 2016년부터 참가해서 우승한 것과는 질적으로 매우 다르다.
차체는 동사의 프라이드와 더불어 튼튼하다는 평이였다. 그러면서도 동급 대비 가벼운 차량 중량에 기어비가 짧은 가속형 5단 수동변속기와 마쓰다 1.5리터 B5엔진의 높은 효율성 덕에, 연비는 대체로 좋은 편이였다. 특히 고속도로 주행 연비는 20km/l를 가볍게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물론 운전자의 성격, 습관이나 주행 스타일에 따라 차이가 좀 있다. 물론 4단 자동변속기의 경우는 평이 많이 갈린다. 품질 + 관리 탓인듯.
최초 자체개발 국산 섀시로써는 성공적이었는지, 단단하고 견고한 차체 덕에 코너링 면에서도 상당히 우수하다. 급격한 코너링도 잘 소화해 냄은 물론, 고속주행에서도 타이어만 잘 받쳐준다면 안정적인 코너링이 나온다.[28] 실제로 탑승해 보면 상당히 스포티한 지향의 하드 서스펜션에 깜짝 놀란다. 이게 순정 서스펜션이라고? 타 일반 승용차종의 튜닝 서스펜션 혹은 다운스프링 수준으로 하드하다. 당장 비개조부문 한정이지만 월드랠리 우승 이력만 봐도..
동력계통이나 주행성능은 발군인 반면, 한국인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던 딱딱한 서스펜션과 맞물려 차량 내부의 편의성이나 마감품질에서는 낮은 평가를 받았다. 주로 구 모델의 운전석이 불편하다는 평이 있었다. 장시간 운전시에 피로도에 영향을 끼치는 부분.
결함으로는 대쉬보드 들뜸 현상이 있으며, 나중에 이걸 기아에서 리콜한 적이 있다. 당시 기아자동차에서 나온 모델의 실내 조립도는 그야말로 '''개판'''이었다.[29][30] 헤드라이트 변색 현상도 있는데, 동시기에 출시된 기아의 차종(크레도스, 아벨라 등)도 동일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내장 품질 문제와 IMF 사태 때 기아차가 망해서 현대자동차에 흡수되어 인수 전 출시된 기아 차종들이 소모품/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 탓에 폐차가 많이 이루어져, 구형 프라이드를 제외하고는 현재 남아 있는 차량을 보기 힘들어지게 되었다.
7. 여담
- 카더라 얘기로 PC통신 시절 한 자동차 동호인이 고속도로 운전 도중 ECU가 다운돼서 시동이 꺼져버리는 사고가 있었단 얘기도 있다. 1990년대 중반 유럽 한 잡지에선 "그냥 철판에 바퀴 달아놓은 수준"이라는 악평(...)[31] 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 초기형 세피아의 경우 RPM 게이지가 일반 승용차와 같은 X 1,000 RPM으로 표기된 것이 아닌 트럭, 버스에 쓰이는 X 100 RPM 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러다 1993년에 연식변경 모델이 나오면서 일반 승용차에 흔히 쓰이는 X 1,000 RPM 형식으로 변경되었다.[32] 여러모로 특이한 케이스. 단 디지털 계기판은 시판 초기부터 X 1,000RPM으로 표기되어있다.[33]
- 단점으론 옛날차인지라 편의장비가 없다는 것. 1992년 상반기에 등장한 전기형 1세대 모델은 홍보자료에서만 에어백 있다고 뻥을 치고는 정작 초창기 판매된 모델에는 고급 사양에서도 에어백이 없는 그냥 3스포크 스티어링 휠이었다. 이는 엑스포 공식차량으로 제공된 모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어백은 편의사양을 좀더 더하고 1994년 초에 등장한 중기형이 나와서야 겨우 장착되었다. 1.5 SOHC 모델은 태생상 부족한 출력(92마력)과 고질적인 소음 문제 등을 꼽을 수 있다. 또한 SOHC 모델은 전동식 아웃사이드 미러[34] 를 아예 선택할 수 없었고 1.5 DOHC부터 전동식(거울조절) 미러가 달렸다. 그래도 약간의 마이너 체인지를 하면서 후륜 디스크 브레이크, VFD 디지털 계기판(이미지팩 한정), ABS, 운전석 에어백 외에도 전자동 에어컨, CD플레이어, 그래픽 이퀄라이저[35] , 조수석 에어백(퍼펙트 팩)[36] 이 추가되긴 했다. 우드 그레인도 달린 것을 볼 수 있는데 옵션은 아니었고, 그냥 기아자동차에서 나온 순정 액세서리로 따로 사서 달았다.
- 참고로 세피아 2의 해치백 타입으로 슈마가 있었다.
- 라라랜드의 오프닝 장면에서 세피아 2가 한 대 등장한다.
- 뉴세피아 일정 트림 이상에선 뒷 시트를 접을 수 있게 된다. 2020년 2월 현재 시트폴딩은 K3는 물론 K5에도 안 달아주는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이다.
- 국내에서는 K20A[37] 을 스왑한 차량이 있다.
- 세피아 역시 미니카로 출시되었었다. 크로바미니카와 세창기업에서 초기형, 창명공업과 크로바미니카에서 세피아 2가 출시 되었는데 크로바 세피아 2는 엑센트의 차체에 전면부 데칼만 변경하고 스포일러를 얹어서 나왔다
- 슬리피가 세피아 초기형을 보유하고 있다. 1.5L SOHC 93년식 오토매틱.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힘이 부족하다는 평.
- 기아차 최초로 독일과 미국에 수출한 차종이기도 하다. 각각 1993년과 1994년에 수출되었다. 수출형 차량이다보니 독일 수출형은 1세대 마쯔다 미아타에 들어가던 B6-ZE엔진이 들어갔다. #1#2
8. 둘러보기
[1] '''S'''tyle '''E'''conomy '''P'''ower '''H'''i_tech '''I'''deal '''A'''uto. 의미 참 길다(...). 어떻게 보면 SEPIA를 비튼 언어유희로도 볼 수 있다.[2] 다만, 따로따로 나누어 보면 최초는 아니다. 외관의 설계는 '포니'가 최초이며, 플랫폼 설계는 '스텔라'의 마이너체인지 버전(기존의 포드 설계 서스펜션에서 현대 독자 설계 서스펜션으로 변경하였다.)이 최초이다. 이 두 요소를 다 갖춘 자동차가 세피아. 여기에 엔진까지 더해져 100% 요소 모두 독자 기술로 이루어진 차가 '엑센트'.[3] 1.5 B5 SOHC[4] 1.5 B5D DOHC[5] 1.8 T8D DOHC[6] 1.5 SOHC[7] 1.5 DOHC[8] 1.8 DOHC[9] 1.5 SOHC[10] 1.5 DOHC[11] 1.8 DOHC[12] 당시 옵션으로 ABS 팩, 이미지 팩, 퍼펙트 팩을 넣으면 뒷바퀴에도 디스크 브레이크가 장착됐다. 물론 퍼펙트 팩은 레어급이며, 이미지 팩도 퍼펙트 팩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레어였다. 공통점은 전자동 에어컨, 뒷바퀴 디스크 브레이크, VFD 디지털 계기판. 차이점은 퍼펙트 팩의 경우 최후기형 뉴 세피아에만 있고 듀얼 에어백이 추가로 장착되었다. 또한 이미지 팩은 리어 디스크 브레이크만 적용되고 ABS는 적용되지 않았다. 이미지 팩이 적용된 세피아는 출시 떄부터 단종될 때까지 "image"라는 별도의 마크를 차량 뒷쪽에 달았다. 1.8리터 모델에는 VFD 계기판, 전자동 에어컨 옵션이 없었고 ABS와 듀얼 에어백, CD플레이어를 묶은 패키지가 별도로 있었지만... 세피아 1.8리터 모델 자체가 초레어다.[13] 여담으로 이런 사실과는 정반대로 영문위키에선 마쓰다 패밀리아(323)를 베이스로 개발했다고 서술했었다. 이후 정정.[14] 여담으로 당시 기아가 자체 언더바디 개발에 성공하자, 마쓰다에서는 부랴부랴 323의 섀시를 싸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기아에서 단칼에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대신 기아는 마쓰다 크로노스(626)의 새시를 마쯔다로 부터 받아와서 크레도스를 만들게 된다.[15] 사실 그대로 얹은 건 아니고, 고RPM 영역의 성능을 약간 희생시키는 대신 중저RPM 영역에서 토크를 강화하는 세팅으로 바꿔서 얹었다. 이에 따라 1.5 DOHC는 115마력이었던 캐피탈과 달리 105마력으로 디튠됐다.(감마 GDI 엔진을 디튠한 맥락과 같다) 여기에 더불어 수동변속기의 경우 기어비가 짧은 가속형 미션을 달았다. 국내 도로 사정상 고속주행할 곳이 많지 않고, 대도시 인구 편중화로 시내주행이 주를 이루는 한국의 실정에 맞춘 적절한 세팅인 셈. 물론 캐피탈이나 콩코드 때만큼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속도로에서도 잘 나가는 차라는 명성은 유지했다.[16] 참고로 후기형이다. 저 때 얹었던 1.8리터 T8D 엔진은 엘란, 크레도스에 얹히기도 했다. 물론 엘란의 것은 고회전형.[17] 당시 국내 차량들 중 최단기간(12개월)만에 10만대 판매를 달성했다.[18] 실제로 트랙터를 견인하면 뼈대가 '''모두 휘어버린다!''' [19] 그래도 여기에는 실제 가능한 것이 아니니 모방하지 마라는 굉장히 솔직한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바 있다.[20] 다만 현재는 현대 아반떼의 잔존개체가 더 많은데 세피아는 내구성에서 좋은평을 듣지는 못하고 잔고장이 어느정도 있는편이라 대부분의 개체들은 노후되자 빠르게 폐차되어 잔존 개체가 거의 없는데 반해 아반떼는 매우 강한 내구성과 잔고장이 없어 잔존 개체도 많은편이고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정도다.[21] 세피아 레오 출시 이후 단 1년만에 세피아2로 모델 체인지가 되었다.[22] 단 북미시장에서는 슈마가 나오기 전까지 세단 모델만 존재했었다.[23] 폐차되었다는 얘기는 확실하지않다.[이유] 기아 측에서는 세피아라는 이름이 네임벨류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스펙트라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다만 해외 일부 시장에서도 세피아로 팔리긴 했다.[24] 1.5 B5 SOHC[25] 1.5 B5D DOHC[26] 1.8 T8D DOHC[27] 당시 경기 결과표.[28] 다만 고속주행시 차량의 진동은 심한 편. 차체가 준중형급이 아닌 소형급에 가까울 정도로 가벼운 데다 딱딱하게 세팅된 서스펜션이 한몫하는 듯. 노면의 상태가 그대로 몸으로 전달되는 느낌. 물론 고속주행 안정성면에선 이쪽이 훨씬 유리하다. 현대차 특유의 물컹한 서스펜션은 승차감 측면에서는 좋겠지만, 고속주행의 안정성 측면에서는 독이 될 수 있다.[29] 세피아 출시 이후 약 20년 뒤인 2010년대에, 미국 매체에서 테슬라의 조립품질을 '''90년대 기아차''' 수준이라고 깐 적도 있었다.# 그만큼 당시 기아차의 조악한 실내 조립품질 문제가 심했다는 의미.[30] 이것은 고유모델을 처음 만들 때 흔히 겪는 일로서 현대도 '포니'에서 경험한 바 있고, 대우도 '에스페로'에서 경험하였다. 현대는 고유 모델을 만든 지 오래 되었으므로 이런 문제는 일찌감치 해결했으나, 대우와 기아는 고유모델 개발이 늦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노하우가 아직 없었던 것이다. 기아는 중형차인 크레도스마저 이 문제를 해결할 노하우를 미처 쌓지 못한 채로 종말을 맞았고, 결국 현대자동차와 합병되었다.[31] 1986년 대만의 위룽기차가 '필링(FEELING) 101' 이라는 이름의 고유 모델을 발표했었는데, 당시에 조경철 박사가 대만에서 시승하고 내렸던 평가도 딱 저 표현이었다.(...) 여담이지만 위룽기차는 필링 101 시리즈가 실패한 뒤에도 고유모델 개발을 시도했고, 럭스젠으로 다시 결실을 보았다.[32] X 100rpm 으로 할 경우, 눈금 표시가 10, 20, 30, ... 으로 되어 속도계와 혼동을 줄 우려가 있다.(...) 버스나 트럭의 경우는 기껏 해야 4,000rpm이 최고라 저렇게 해도 판독에 큰 문제가 없지만, 가솔린 엔진의 경우는 레드존이 8,000rpm까지 가는 경우가 있어서 눈금이 촘촘해져서 속도계와의 혼동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33] 이 때 연식변경으로 이미지팩 전용휠, 등급 명칭 변경, 백패널디자인, 그릴 디자인이 변경되었으며 CDP 옵션이 추가되었다.[34] 옛날 차들은 지금처럼 접는 것까지 스위치를 이용하는 것이 아닌, 거울 각도만 스위치로 조작하는 방식이다. 아웃사이드 미러를 접는 것까지 스위치를 이용하는 것은 1997년 기아에서 엔터프라이즈가 나온 이후부터다. 물론 지금 차들은 필수지만.[35] 2단 카스테레오이므로, CD플레이어를 달면 이퀄라이저 자리에 들어간다. 따라서 대체 관계다.[36] 1.5 DOHC 한정 옵션. 이미지팩에 ABS, 듀얼 에어백, CD플레이어가 추가되는 옵션으로, 옵션값만 250만원 가까이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급의 차량에서 조수석 에어백까지 다는 건 거의 사치 수준이었는지라, 초 레어 확정.[37] 무려 혼다 시빅 타입R에 들어가는 엔진이다![38] 다른 차량은 현대 아반떼, 대우 누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