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
1. 개요
2013년 5월 6일에 한국프로야구 소속팀인 KIA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 사이에 이루어진 2:2 선수 맞교환 트레이드. 두 팀이 각각 팀을 대표하던 타자와 투수를 교환하는 근래 보기 드문 초대형 딜이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으며, 향후 2013년 두 팀의 시즌 향방을 가른 큰 변수로 작용하게 되었다.
2. 당시의 상황
2.1. SK 와이번스
2011년 감독 부임 이후 이만수는 일관되게 전임 김성근 감독의 스타일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야수의 빈틈없는 수비력과 강한 불펜 전력으로 실점을 최소화하는 관리야구의 틀을 벗어나 장타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빅 볼 스타일을 SK에 접목하려 했던 이만수 감독은 SK의 장타력을 향상시키는데 주력하였지만, 클린업 트리오의 파워를 더욱 높히기 위해 2009년 홈런왕 출신 김상현을 진해수와 함께 영입하는 강수를 띄운다.
2.2. KIA 타이거즈
2013년 시범경기에서의 호성적과 4월까지 1위의 자리를 지키며 강력한 전력을 선보인 KIA는, 호성적과는 달리 항상 뒷문이 불안하다는 아주 뚜렷한 약점을 보여주었다. 지난 2년간 삼성 시절처럼 중간계투 육성에 전력을 다한 선동열이었지만, 그의 불펜 실험은 언제나 실패로 돌아갔고, 우승이라는 목표달성을 위한 마지막 퍼즐조각을 맞추기 위해선 어느 정도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불펜 보강이 시급해 보였다. 그가 주목했던 것은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SK의 철벽불펜 송은범이었고, LCK포의 포기를 의미하는 김상현 카드에 진해수를 얹어주며 신승현까지 트레이드 해 왔다.
2.3. 트레이드 당시 평가
2013년 5월 당시까지의 평가는 선동열의 압승. 이만수 감독은 2011년 8월 18일 SK 감독대행이 된 이후 가장 심한 비난을 들어야 했고, 다른 팀 팬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2009년의 MVP 성적을 기록하며 정점을 찍은 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며 전혀 살아날 기미가 없는 김상현을 트레이드 카드로 당장 핵심 불펜으로 투입이 가능한 송은범을 얻어온 것 하나만으로도 KIA는 단숨에 우승 전력이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1] 짜임새 있는 타선과 괜찮은 선발진, 그리고 유일한 불안요소였던 뒷문까지 완벽하게 대비했으니, 신의 한수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잘나가던 KIA의 성적과 비례해 선동열도 그리 큰 비난을 받고 있던 시기가 아니었다.
반면 개막전 이후 4월 내내 추락한 성적으로 인해 팬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던 이만수 감독은 별로 좋은 평을 듣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팬들의 맹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살아날지도 불확실한 공갈포를 팀의 필승조 셋업맨과 바꾸었으니 말 다한 셈. 당시 송은범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있었더라도 이와는 상관없이 SK 팬 입장에서는 김광현과 함께 한때 SK 왕조의 토종선발 원투펀치를 구성했던 프랜차이즈 선수를 공갈포와 바꿨다는 데 대한 반발감이 극심했고, 송은범이 전임 김성근 감독의 신임을 받고 있던 선수라 대다수의 SK 팬들은 하나같이 이 트레이드를 비난했다.[2] 거기다 같이 들어온 게 당시까지만 해도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 4할을 자랑하는 수소폭탄으로 조롱이나 받으며 좌완 원포인트로도 못써먹을 것이라고 평가받던 진해수였으니 당시에는 팬들이 반발을 안하기를 기대하는 게 바보같은 생각이었다.
누가 봐도 이 트레이드의 승자는 선동열로 예측되었고, 이 트레이드를 발판으로 KIA의 선두 수성이 굳건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3. 최종평가
결과론으로만 본다면, 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안 나와주는 게 팀을 도와주는 '''평균자책점 8점대'''의 방화범과 '''트레이드 후 꼴랑 5홈런'''을 기록한 병살머신을 맞교환한, 당초 트레이드 목적을 완벽하게 배신한 희대의 '''LOSE-LOSE 트레이드'''. 오히려 양팀에서 구색맞추기 식으로 얹어서 보낸 선수들이 더 나은 성적을 기록했지만[3] , 이는 양팀 감독이 의도한 원래 결과와는 거리가 멀었다.
일단 팀 성적부터 이 트레이드의 처참함을 말해준다. KIA - 8위, SK - 6위. 양팀 모두 이 트레이드를 기반으로 상위권 다툼을 노렸지만, 그 결과는 사이좋게 하위권으로 추락했다. 특히 트레이드 당시에 이미 하위권을 맴돌다 후반기에 잠깐 반등해서 5위까지도 올라봤던 SK와는 달리, KIA는 트레이드 후 1위에서 8위까지 떨어지는 희대의 DTD를 기록했다. 정말 그 트레이드이후 단 한 차례의 반전도 없는 꾸준한 하락세를 기록한 끝에 신생팀 NC 다이노스에게도 밀려버렸다![4]
- 김상현 - 타율 0.236, OPS 0.658, 7 홈런, 37 타점, 17 병살
- 송은범 - 41경기 49이닝 1승 7패 5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7.35
- 진해수 - 72경기 48⅔이닝 2승 5패 10홀드, 평균자책점 5.55
- 신승현 - 55경기 51⅔이닝 1승 1패 8세이브, 평균자책점 4.88
특히 처음에 SK가 KIA로부터 넘겨받은 고성능 수소폭탄 정도로 취급받던 진해수는 박희수의 조언과 조웅천 코치의 지도 끝에 7월부터 SK의 핵심 원 포인트 릴리프 투수로 각성했다. 이로 인해 전유수, 박정배, 윤길현 등 우완 투수들만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던 SK의 불펜진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진해수의 각성 덕분에 SK는 8월에 승률 6할을 찍으며 잠시나마 포스트시즌 진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진해수호신'''으로 불릴 정도의 안정감을 보여주었다.[5]
SK의 가을야구의 꿈이 끝난 뒤에는 진해수는 얄궂게도 친정팀 KIA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9월 27일 기아전에서 연장 11회초 마운드에 올라 1⅓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무승부를 견인, 자신을 버린 친정팀 기아를 8위로 만들어 버렸다. 당일 경기 중계 댓글란이 운명의 장난이라며 대폭발한 건 덤. 그리고 10월 2일 선발 크리스 세든이 강판된 후 또 친정팀 KIA를 상대로 등판하여 세든의 승계주자를 지워버리며 1⅓이닝 무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SK 이적 후 KIA에서 11.88을 기록한 평균자책점을 SK 넘어와서는 3점대 초반으로 크게 낮추며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기 때문에 다음 시즌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SK 프런트도 이러한 공을 인정해 군말 없이 2014년 연봉을 전년 대비 50% 상승한 7,500만 원을 제시하며 재계약하는데 합의했다.그러나 2015년와서는 다시 기아시절로 돌아간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1군, 2군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결국 진해수마저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그리고 진해수는 16년 LG에서 터지게 되었다.
신승현 역시 공익근무 기간과 부상이 겹치며 '투수가 없다'며 불평하던 이만수 감독 체제의 SK 투수진에서도 완전히 전력외 취급을 받으며 2013년 한 번도 1군에 콜업되지 않았던 데 비해, KIA로 트레이드된 다음날부터 1군에 등록되어 한동안 호투하며 쏠쏠하게 활약했다. 이기나 지나 비기나 계속 등판하면서 시즌이 갈수록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부상이 재발하지 않는다면 KIA에서 맞는 다음 시즌을 지켜볼 필요는 충분해보였다. 하지만 1년도 채 못 되어 FA로 영입한 이대형의 보상선수로써 다시 LG 트윈스로 이적하며 KIA 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문제는 이 트레이드의 '''메인 매물'''이었던 송은범과 김상현. 이 두 선수들은 변명의 여지없이 폭망했다.
송은범은 이적 후 1승 6패 2세이브 6홀드, '''평균자책점 8.08''', 부상으로 골골댄 2005년 이후 가장 적은 49이닝을 소화했고, '''피안타율 0.351, WHIP 2.00'''이란 초월적인 기록으로 데뷔 이래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예정대로라면 시즌 후 FA가 되었어야 했고, SK에서도 이 때문에 연봉을 대폭 인상해 줬지만 부진으로 이 모든 게 허사가 되었다. 송은범의 2013년 1군 등록일수는 111일로 FA 자격 획득 등록일수에 34일이 모자랐다. 2014년 연봉은 1억 8천만원이 삭감되었고, 2014년에도 반등 같은 건 없이 폭망 후 FA로 나간 끝에 SK 시절 스승을 찾아 한화로 이적했다. 34억+보상선수임기영을 받았으니 기아가 조금 이익아닐까?!
김상현은 이적 후 '''타율 0.240''', 60안타 5홈런 27타점의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병살타 17개'''로 리그 4위,[6] 팀 내에선 독보적인 1위였다. 팀내 2위인 최정이 기록한 병살타 수가 10개인데, 2012년까지와는 달리 공격적인 스윙으로 타격폼을 변경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1.5배 가량 많은 타석에 들어간 최정보다 병살 수가 많았다는 점은 2013년 김상현이 얼마나 팀 공격의 블랙홀이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시즌이 진행중이던 7월에 송도 2군구장에서 싸인을 요청한 KIA 팬에게 '''기아의 김상현'''이라고 싸인을 해주면서, 최소한 팀에 적응하려는 노력이라도 한 송은범과 찰떡같이 박희수와 붙어있으면서 팀 적응을 위해 노력하는 진해수와 비교되어 김상현은 팬들에게는 '새 팀에 애정도 안 가지고 있는 선수'로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혀버렸다.
송은범이 FA로, 김상현이 kt의 특별지명으로, 신승현이 보상선수로, 진해수가 트레이드로 팀을 나가면서 2015년 모든 선수가 팀을 떠났고, 트레이드 당시 팀을 지휘하던 두 감독들 역시 2014년에도 4강에 들지 못하면서 나란히 감독 생활을 접었다. 트레이드의 승리자를 따지기도 무의미한 상황이지만 일단 남는 장사는 SK가 한 게 되어 버렸다. 오죽하면 김상현이 SK 와서 가장 잘 한 일로 kt에 특별지명을 당해서 뺏길 뻔한 젊은 유망주들을 보호해 줬다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 마지막까지 남은 진해수도 쓸만큼 쓰고 트레이드 자원으로 활용까지 하였다. 송은범도 마찬가지로 FA로 한화에 가면서 보상금+유망주를 지명 할 수 있게 되었다고 KIA에 와서 가장 잘해준 일은 이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2015년 7월 24일 LG 와 SK 3대3트레이드를 통해 진해수가 LG로 이적하므로써 2015년을 기점으로 트레이드 당시의 선수들은 모두 당시 팀을 떠나게 됐다.
2016년 7월13일 김상현이 음란행위로 인한 임의탈퇴 처분을 받게 되었다. KIA, SK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송은범이 한화 이글스로 FA 이적을 하면서 보상선수로 받아온 임기영이 2017년에 대폭발, 기아의 선발진의 한 축이 되어주면서 KIA팬들은 축배를 드는 중. 송은범은 기아에서 도움이 되지 못했으나 FA로 떠나면서 연봉도 절약했고, FA 보상픽으로 향후 기아의 선발진을 책임질 선수를 구했으니
그렇게 말 많았던 트레이드 이후 4년이 흐르고, 4년전과 똑같은 두 팀이 4년전 그때와 똑같이 각각 1위 수성, 상위권 도약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트레이드를 성사했다. 이번에는 노수광, 이홍구 이성우, 윤정우 ↔ 이명기, 김민식, 노관현, 최정민을 주고 받는 대형 4:4 트레이드다. 하지만 4년 전과는 정반대로, 트레이드된 선수들이 맹활약을 하면서 두 팀이 2017년/2018년 차례로 우승하며 KBO 역사상 최고의 윈-윈 트레이드라는 재평가를 받게 되었다! 먼저 김민식이 트레이드 직후 KIA의 주전 안방마님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명기 역시 주전 리드오프로 쏠쏠한 활약을 해 주며 KIA는 2009년의 트레이드 이후 그랬듯 드라마틱한 우승을 일궈내는 데에 성공했다. SK로 간 노수광, 이홍구 역시 크고 작은 활약을 해주면서 팀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해주어 이듬해인 2018년 정규시즌 2위를 달성하고, 노수광이 부상으로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들지 못하긴 했지만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1위 두산을 꺾고 우승했다!
2019년 7월 28일 송은범이 신정락과의 1:1 트레이드로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어, 이 트레이드에 연루된 선수들은 모두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한번이라도 입게 되었다. 이 트레이드 역시 김성근 전 감독의 색채를 지우기 위한 트레이드로 평가받고 있다.[7] 여담으로 이 트레이드는 송은범이 딱 순위 결정 시기까지만 활약하다 폭망하고 신정락이 뜬금포 기질을 버리지 못하면서 승자 없는 트레이드가 됐다...만 어차피 예비 FA 트레이드였으니 별 상관 없는 이야기.
4. 다른 종목의 사례
4개월 뒤에 V-리그에서 이와 비슷한 수준의 트레이드가 나왔다.
바로 2013년 9월 10일 2013 프로배구 여자부 드래프트 직전 나온 대전 KGC인삼공사와 성남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제니스의 2:2(+1) 트레이드.
맞교환된 선수는
인삼공사
- 세터 차희선 - 20연패의 안습한 시즌이었던 12-13시즌 당시 레프트 백목화, 리베로 임명옥과 더불어 그나마 배구한 선수로 평가받았다.
- 2013 드래프트 1순위 지명 확률 50%(이 권한으로 고예림을 지명했다)[8]
- 세터 이재은 - 김사니의 FA 이적 이후 어창선 부임 시절 도로공사의 주전세터로 자리 잡았었던 세터였다
- 센터 이보람 - 11-12 인삼공사가 통합우승을 한 이후 장소연, 김세영 트윈타워가 은퇴로 해체되며 부실해진 센터진을 보강하기 위해 데려갔다.
- (+2012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 선수인 레프트 이보선)[9]
도로공사가 받아간 차희선은 알고봤더니 4차원 이재은[10] 임이 드러나 결국 시즌 종료 후 이적도 유력해 다시 재기할 찬스[11] 였음에도 불구하고 임의탈퇴[12] 가 되었고, 고예림은 13-14시즌 신인상을 수상했지만 14-15시즌 공격도 안 되는데 수비도 안 되면서 상대 팀의 팬들이 후위에서도 나오길 바라는 선수로 전락해버렸다.
인삼공사는 더 심한데, 이재은은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인해 풀타임 출전이 어려워진 떨어진 한수지를 밀어내고 주전으로 자리매김하지 못 했고, 이보선은 13-14시즌 종료 후, 이보람은 14-15시즌 도중 은퇴했다.
게다가 2년뒤인 2015년 5월 31일에는... '''양 팀의 심장과도 같았던 주전 리베로 맞트레이드를 실현시켰다.'''[13]
도로공사에서 흥망성쇠를 같이 했던 10주년 전설이자 정신적 지주인 김해란과 인삼공사의 세 번의 모든 챔피언전 우승과 20연패의 상황에서도 팀과 같이했던 주장[14] 이자 주전 리베로 임명옥을 맞교환했다.
[1] 물론 트레이드 당시 시즌 스탯은 별로 안 좋았으나, 송은범의 통산 커리어와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호투를 고려했을 때 송은범의 영입은 KIA에게 긍정적일 거라 예상되었다. 우승을 노리던 기아의 가장 큰 장애물인 삼성을 상대로 송은범이 기록하고 있던 통산 평균자책점이 2점대라는 점도 메리트로 꼽혔다.[2] 굳이 SK 팬층이 아니었더라도 그 다음날 스포츠 신문에서도 이 트레이드를 가리켜 김성근 색채 지우기의 일환으로 지목하고 헤드라인을 뽑았다.[3] 특히 진해수는 2013년과 2014년에는 호투를 이어가면서 진해수소폭탄의 오명을 지웠다.[4] 트레이드 때문에 KIA선수단의 분위기가 개판이 되어버려서 성적이 곤두박질했다는 의견이 있다. 김상현은 당시 계륵같은 존재이긴 했지만, 2009년의 대활약으로 나름대로 프랜차이즈 선수로서의 인식이 강했고, 본인도 팀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진해수의 입장에서는 '''부친상'''(그것도 사고로 인한 실종 후 겨우 시신을 찾아 수습한 것이다.) 직후에 트레이드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선수들이 '성적이 안나오면 가차없이 버리는구나'라는 불안감이 증폭되었고, 이는 유례를 찾기 힘든 폭망으로 이어졌다는 의견이다.[5] 그 뒤 9월 12일 경기와 그 뒤에 가진 넥센과의 연전에서 모두 패배하며 SK의 꿈은 한여름 밤의 꿈이 되었다.[6] 2013년 병살타 Top 5(병살타 18개를 기록한 이범호, 강정호, 최진행이 공동 1위이고 병살타 15개로 공동 5위가 이택근, 전준우, 홍성흔) 선수들 중 규정타석(128경기*3.1=396.8, 소수점 버림으로 396타석) 미달인 선수는 '''김상현뿐이다'''.[7] 사실은 FA를 앞두고 굳이 잡지 않을 선수를 두고 연봉 협상을 하느니 쿨하게 가을야구가 확실시되는 팀에 길 터주는 용으로 보내주고 북일고 출신 투수를 받는 게 목적이라는 이야기도 있다.[8] 배구의 경우, 전체 1~3순위 지명은 추첨제이다. 성적 낮은 순으로 3팀이 각각 50%, 35%, 15%씩 전체 1번 지명확률을 나눠가지며, 추첨 결과로 나온 순서에 따라 ㄹ자로 지명하게 된다.[9] 드래프트 당시 도로공사의 지명선수였기에 여기에 수록한다.[10] 이재은을 보낸 이유가 몬타뇨 이후 리그에서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니콜을 활용 못한 것이 문제였다.[11] 도로공사가 이효희를 영입하면서 이전 소속팀인 기업은행이 보상권한을 얻었기 때문에 기업은행으로 갔다면 정비하고 김사니 은퇴 이후 만년 허리 문제로 고생하는 이소진을 밀어내고 주전 세터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그 권한이 김사니 영입으로 흥국으로 넘어갔기에 흥국으로 갔더라도 다행히 거긴 자기네와 연관이 깊은 세화여고가 아닌 본인의 모교인 수원전산여고 출신이 많았을테니 나쁠 건 없었겠지만...[12] 심지어 친구이자 2013-14시즌 당시 임의탈퇴 처분을 받아 배구계를 떠났다가 복귀한 GS칼텍스의 이나연이 설득을 했음에도 배구계를 떠났다.[13] 사실 트레이드 판이 최소 2:2 이상으로 더 커질 뻔 했는데 도로공사측에서 문명화를 원하면서 이걸로 마무리된 거.[14] 실질적 주장이다. 배구 규정상 리베로 플레이어는 정식 주장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경기에서는 한수지가 주장 표식을 달고 뛰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