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타 유지
1. 프로필
2. 개요
신일본 프로레슬링 소속 베테랑 프로레슬러다. 청의군(青義軍) 소속인 동시에 투혼삼총사 다음 세대라 텐잔 히로요시, 코지마 사토시, 나카니시 마나부와 함께 "제3세대"로 분류된다. 다양한 버전의 나가타 락이 유명하다. 형제는 2남 1녀 중 장남이고, 남동생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63-69kg급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은메달리스트이자 전직 이종격투기 선수인 나가타 카츠히코(永田 克彦)이다.
3. 경력
아마추어 레슬링으로 올림픽 대회를 노리던 중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아마추어 레슬링 도장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하세 히로시의 추천으로 그곳에서 훈련할 기회를 잡아 프로레슬링으로 전향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활약한 베테랑 프로레슬러로, 1997~1998년에는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교류관계를 맺던 WCW에 참전하였고, 일본으로 복귀한 이후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 메인이벤터로 활약을 하게 된다.
타이틀을 10번 방어하면서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최다방어기록을 가졌었지만 후에 타나하시 히로시가 11회, 오카다 카즈치카가 12회로 기록을 경신한다. 프로레슬링 NOAH의 링에서 코바시 켄타의 GHC 헤비웨이트 타이틀에 도전하는 한편 이이즈카 타카시와 태그팀을 맺어 전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인 카와다 토시아키 & 후치 마사노부를 상대하는 등 타단체 선수들과 명경기를 만들었다. 이노키즘의 영향으로 프로레슬러로서는 한참 부족한 후지타 카즈유키가 IWGP 헤비급 챔피언이었을 때 2001년 6월 6일 무도관 대회에서 후지타에게 도전해 일본에서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연간 최고 시합상을 받는 경기를 만들었고, 타나하시 히로시가 성장 중이라 아직 부족할 때 타나하시를 데리고 명경기를 만드는 등 워커로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안토니오 이노키의 제자로 각광받았지만 그 때문에 MMA 경기에 출전하여 효도르와 미르코 크로캅을 상대하다 비참한 초살 KO패를 당한다. 게다가 이 KO패 때문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위상이 떨어져 암흑기에 접어들었다는 둥 안토니오 이노키가 들어야할 비난을 본인이 대신 받으며, "이노키즘"의 수난을 크게 겪은 대표적인 프로레슬러 중 한 명이 된다. 고토 히로오키가 침체기에 빠져 힘들어할 때, 이 시절의 자신이 겹쳐보였는지 “그래도 넌 나보다 낫다. 최소한 나가 죽으라는 팬은 없잖냐”라며 위로를 해줬다. 당시 나가타 유지는 아키야마 준과 적으로서, 혹은 태그팀으로서 함께 링 위에서 활동했기에 프론트 넥 락이나 익스플로이더 같은 아키야마 준의 시그니처 무브를 따라했는데 이것이 팬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08년 레슬킹덤 2에선 TNA 소속이던 커트 앵글과 맞붙어 좋은 경기 끝에 패했다. 2009년 9월엔 슈퍼 스트롱 머신, 이노우에 와타루, 히라사와 미츠히데와 같이 반체제 집단에 대항하는 정규군 스테이블인 청의군(靑義軍)을 결성하게 된다. 2010년대부턴 선수로 활동하는 한편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아마추어 레슬링 도장을 운영하며 신인들을 양성한다. 2014년 2월 8일에 모리시마 타케시를 이기고 GHC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등극해 5개월간 집권하다가 2014년 7월 5일에 마루후지 나오미치에게 타이틀을 잃었다. 2010년대에도 다른 제3세대 프로레슬러들에 비해 몸상태가 양호한 편이라 G1 클라이맥스 등 기회가 있으면 꾸준히 좋은 경기를 만들었다.
2016년엔 제3세대가 다시금 일어설 때라 선포하며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십을 두고 시바타 카츠요리와 대립했다. 2017년엔 마지막 G1 클라이맥스 출전을 선포해 G1 클라이맥스 27에서 비록 잭 세이버 주니어를 상대로 1승밖에 못했지만 좋은 경기를 많이 만든다. 그리고 본인 생애 G1 클라이막스 마지막 경기에서 자신의 옛 제자이자 전 청의군 소속인 배드 럭 파레에게 패배한 뒤, 악역인 파레가 나가타 유지에게 경의를 표하고 퇴장한다.
아키야마 준의 요청으로 둘이 태그를 맺어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참전하게 되는데, 2018년 2월 3일에 노무라 나오야 & 사이 료지를 이기고 아시아 태그 챔피언에 등극한다.
4. 노가미 신페이와의 인연
TV 아사히 소속 노가미 신페이 아나운서가 나가타 유지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에 나가타 유지의 주요 경기 다수를 중계한다.[7] 노가미 신페이는 스즈키군과는 반대로 사이가 안 좋기 때문에 이이즈카 타카시가 입장 중 노가미 아나운서가 입은 옷을 찢어버리는 바람에 청의군 티셔츠를 입고 중계했던 적도 있다. 또 중계 도중 악역의 표적이 된 노가미 신페이를 나가타 유지가 구해주는 등 우애를 돈독히 한다. 그래서 도미니언 2016에서 나가타 유지가 시바타 카츠요리를 상대로 NEVER 오픈웨이트 챔피언십 방어전을 가졌을 때와, 나가타 유지가 생애 마지막 G1 클라이맥스 출전 경기로 배드 럭 파레를 상대했을 때 노가미 신페이가 중계 도중 뜨거운 눈물을 쏟는다.
5. 둘러보기
[1] 2000년 시드니 올림픽 63-69kg급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은메달리스트. 치바현에서 아마추어 레슬링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2] 같은 부 후배로 타카하시 유지로,츠지 요타 등이 있다.[3] 코너 점핑 니 어택. 다른 명칭은 저스티스 니.[4] 스텝 오버 암 브레이커. 상대를 엎어놓고 등 뒤에 올라타 팔을 위로 당기며 꺾는 기술로, 시로메(흰자위)식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나가타가 필사적으로 이 기술을 걸 때 흰자위만 보이는 수준으로 눈을 부릅 뜨고 걸기 때문이다.[5] 익스플로이더의 개발자 아키야마 준에게 직접 전수받은 기술. 나가타는 그 답례로 아키야마에게 나가타 록 II를 전수해 주었다.[6] 독일 밴드 'Centaur'의 Insane이 원곡이다.[7] TV 아사히에서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중계할 경우 한 대회 내에서 경기별로 몇 명의 아나운서가 로테이션 방식으로 번갈아가며 중계를 맡는다.[★] A B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8] 30분 시간초과 무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