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하시 히로시
1. 프로필
2. 소개
[image]
'''"
皆 さん、愛 してま~す! "
(여러분, 사랑합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소속의 프로레슬러.''' "
生 まれてから一回 も疲 れたこと無 いから。"
(저는 태어나서 한 번도 지친 적이 없으니까요.)'''
2000년대 초반 이노키즘으로 인해[24] 수직으로 곤두박질치며 몰락해가던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2000년대 후반 들어 다시 부활할 때, 그 주축에 서서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다시 일으킨 주역. 한 마디로 WWE에서 존 시나와 같은 입지라고 생각하면 된다.[25]
또한 투혼삼총사의 주축이었던 무토 케이지가 이노키즘에 질려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완전 이적한 후, 신일본에서 밀어준 신(新)투혼삼총사 중 한 명이다. 나머지 두 명은 나카무라 신스케와 시바타 카츠요리. 암흑기 동안 신일본을 등지고 이종격투기로 전향했던 시바타, 최연소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왕좌에 오르는 등 엄청난 푸쉬를 받았던 나카무라에 비하여 처음엔 주목을 덜 받았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쇄신을 통하여 셋 중 가장 먼저 인정받고 신일본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경기력 면에서도 2000년대 전반에는 존 시나와 마찬가지로 혹평을 들었으나, 꾸준한 노력을 통하여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일본 프로레슬링 최고급 경기력의 소유자가 되었다. 데이브 멜처는 2014년 G1 클라이맥스의 리뷰를 하면서 '''"타나하시야말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BEST IN THE WORLD다"'''라는 극찬을 한 바가 있다.
3. 경력
4.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구세주
커리어 초기에는 특출난 거 하나 없는 능력과 대학교 프로레슬링 동아리 출신이라는 불리한 배경[26] 으로 인해, 신 투혼삼촌사로 선전되며 푸쉬를 받긴 했으나 같은 신 투혼삼총사이자 차세대 에이스 취급을 받고 있던 나카무라 신스케, 이노키즘의 계승자로 총애를 받고 있던 시바타 카츠요리 등에 비해선 훨씬 뒤떨어진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셋 중 에이스와 가장 거리가 멀었다.'''기필코 저희 세대에서 다시 한 번 프로레슬링을 폭발시키겠습니다!!(
必 ず、俺 たちの世代 でもう一度 プロレスを爆発 させます!!)'''
2006년 7월 17일 제45대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결정 토너먼트 우승 이후
하지만 당시 신일본은 이종격투기 및 종합격투기 등의 인기에 밀린 상황에서 무리하게 격투기 노선을 걸으려 했던 이노키즘의 폐해로 단체 자체가 존속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고, 이 와중에 이노키즘에 힘입어 일찌감치 차세대 에이스로 낙점받아 회사로부터 어마어마한 푸쉬를 몰아받던 나카무라 신스케에게 '이노키의 망령'이라며 어마어마한 역반응이 터져나오고 시바타 카츠요리는 아예 단체를 나가버리는 우환이 터지자, 타나하시는 제대로 에이스 대접을 받은 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단체 에이스로서의 책임을 요구받으며 '권한은 없고 책임만 있는' 망해가는 단체의 에이스라는 멍에를 쓰게 된다.
단체는 망해가고, 팬들은 나날히 냉소적이고 냉담하게 변해가고 있었으며, 타나하시 본인에게 에이스로써 팬들을 매료시킬 경기력은 없었고 당장 모든 것을 때려치고 나가도 모자라지 않을 상황이었으나, 양다리를 걸쳤다 칼에 찔린 중대한 사생활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자신을 다시 받아주며 자신을 살려준 신일본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던 타나하시는 암흑기로 빠져든 신일본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자신이 믿는 진정한 프로레슬링에 대한 가치관과 팬들에 대한 깊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역경에 부딪혔다.
타나하시는 이윽고 그 당시까지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좀 먹고 있던 이노키즘, 나아가 신일본의 정신이라고 여겨지던 스트롱 스타일 자체가 문제의 근원이자 가장 큰 역경이라고 파악하고 그와 맞서기로 결정했다.[27] 그 일환으로 타나하시가 행한 일이 바로 세타가야구 노게에 위치한 신일본 연습장에 걸려 있던 안토니오 이노키의 사진을 떼어버린 것이다.
그 때 까지는 횡령과[28] 이노키즘에 따른 대삽질에 의해 이미 이노키와 거의 의절했음에도 단체의 창립자이자 역대 최고의 스타였기 때문에 아무도 나서는 이 없이 쉬쉬했으나, 사진을 떼어 버리고 과거에서 탈출하자는 타나하시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몇몇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노키와 같은 신일본 창립 멤버인 범접할 수 없는 최고참 '호랑이 헌터' 코바야시 쿠니아키[29] 가 적극 찬성하며 마침내 코바야시가 이노키의 사진을 떼어버렸다. 별거 아닌 것으로 유난을 떨었다 할 수도 있지만, 현지에서는 이 사건을 과거의 이노키즘에 찌들은 신일본과의 작별의 상징이자 방향성의 확실한 변경의 증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스트롱 스타일에 치중하던 전통적인 팬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타나하시는 여성, 어린이 등으로 보다 관객층을 넓히기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했으며, 몇몇 보도에 의하면 하루에 2시간 씩만 자면서 일본 지방 곳곳으로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홍보하기 위해 뛰었다고 알려져 있다. 2006년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유크스에 인수된 이후로도 판매량은 눈에 띄게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타나하시의 노력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매 흥행이 끝날 때마다 벌어지는 에어기타 퍼포먼스와 팬서비스, 그리고 "사랑합니다!" 프로모는 타나하시와 2000년대 후반 신일본의 상징이 되었다.[30]역도산 선생이 남기고 이노키 씨가 계승한 '투혼'이라는 유전자를 계승하고 있냐는 질문에, 저는 '계승하지 않는다'라고 답합니다. 이노키 씨의 탈단 후에도 노게 (도쿄도 세타가야구)에 있는 신일본 프로레슬링 도장엔 이노키 씨의 사진이 계속 걸려있었지만 슬슬 떼어내도 좋지 않을까라고 말해서 떼게 했습니다. 말하자면 전 투혼을 버린 남자입니다.
인터뷰 " '타나하시 히로시는 역도산과 이노키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中 공국진 역
이윽고 2012년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부시로드에 인수되고, TNA에 무사수행을 갔던 오카다 카즈치카가 레인메이커로 돌아와 타나하시와의 전설적인 대립을 시작함으로써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V자 반등'을 맞이하였고, 타나하시의 노력은 결국 빛을 발하여 2010년대 후반 일본 프로레슬링이 부흥하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타나하시가 정말로 신일본을 구원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 조금 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게 해주세요. '''프로레슬링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로레슬링을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회장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로써 G1은 끝납니다만 프로레슬링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테니 앞으로도 응원해주십시오!
2015년 8월 16일 G1 클라이맥스 25 우승 소감
5. 경기력
"태양의 천재아(太陽の天才児)"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입단 시험도 두 번이나 낙방했을 정도로 커리어 초기에는 보디빌딩으로 다져진 괜찮은 몸과 외모를 제외하고는 좋게 봐 줄 요소가 없다시피했던 선수. 특별할 것 없는 신체 능력, 야유를 받는 경기력, 심지어 달변조차 아니었던지라 프로모 능력도 부족했다.타나하시와 경기를 하면서 배웠다고 느낀게 있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고 해서 그도 모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 말이죠. 간혹 제가 기술을 걸던가 걸리던가 해서 관중을 접하지 못하고 그 반응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근데 한번은 제가 카프 킬러를 건 상태에서 "음, 이거 좀 너무 오래 끄는데?"라고 생각해서 봤더니
세상에, 앞 줄에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더군요.
타나하시는 그걸 본거죠.[31]
하지만 십년여의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과, 자신만의 경기 스타일과 링 싸이콜로지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 끝에 자타가 공인하는 경기력을 갖추는 데 성공하여 한 단체의 에이스이자 무적 선역 기믹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성공적으로 갖추는 데 이르렀다. 바꿔 말하자면 '태양의 천재아, 100년에 한 명 나오는 일재'라 불리며 '불세출의 천재' 무토 케이지의 천재 이미지의 계승자였던 타나하시는 오히려 남들에 비해 나은 게 단 하나도 없을 정도로 상당히 모자랐던 타고난 재능을 커버하기 위해 그야말로 미친듯이 노력한 '노력의 천재'였던 것이다.
상세한 경기 운영 스타일은 신인 시절 후지나미 타츠미와 무토 케이지를 직접 사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적 선역 기믹임에도 불구하고 '드래곤 살법'을 필두로 상대의 다리를 집요하게 공략하는 이른바 ''''다리 지옥'''' 스타일을 구사하는 그 둘의 경기 스타일 계보를 아주 착실히 계승한 후 거기에 상대와의 경기를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서 먼저 반칙을 하는 것 외에는[32] 물불을 안 가리는 약간의 언더독적 면모를 추가한 스타일이다.[33]
어찌 보면 무적 선역 에이스의 운영이 전혀 아니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타나하시의 타고난 신장이나 체격이 당대 최강의 체격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던 스승 후지나미와 무토보다조차도 확실히 부족한 것이 보일 정도로 신일본이나 일본 내 타 단체의 역대 에이스들에 비해 웬만한 헤비급 상대를 압도할 수준이 못 되는 데다가, 비록 본인의 꾸준한 단련으로 힘이 문제가 되었던 적은 없으나 그렇다고 WWE의 존 시나같이 입이 떡 벌어지는 수준의 사이즈 대비 극최상급의 근력을 지닌 것도 아닌지라 자신보다 더 신장이 크거나 확연히 체격차가 나는 난적을 상대로 이런 수단까지 쓸 만큼 에이스라는 명예를 걸고 정말로 처절하리만치 절실하게 승리를 갈구하는 모습에 오히려 설득력이 더해져 이러한 경기 운영 방식이 팬들과 평론가들에게 받아들여졌으며, 이 절실함을 베이스로 한 링 싸이콜로지는 오카다 카즈치카와의 '에이스를 둔 투쟁', 나카무라 신스케와의 '영원한 라이벌 대결' 등에서 무르익으면서 타나하시 자신과 상대가 갈고닦은 훌륭한 실력과 시너지를 이뤄 희대의 명경기들을 양산해냈고, 이는 역설적으로 그가 '진정한 에이스'로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절실함을 베이스로 한 링 싸이콜로지와 선역임에도 악역스러운 경기 운영을 가져가는 특성은 그의 캐릭터에 있어 입체감을 부여해주기도 한다. 저 서쪽의 어느 최강자와는 다르게 상대방에 따라 자신의 롤을 유도리 있게 악역으로 가져갈 수 있단 것인데, 실제로 이것이 십분 발휘된 예로 14년도 INVASION ATTACK에서 가진 나카무라와의 IC 타이틀 경기와, 15년 G1 3일째 흥행에서 가진 텐잔 히로요시와의 경기가 있다. 전자는 같은 라이벌이자 회사의 간판, 그리고 사실상 선역이었던 나카무라의 챔피언 재탈환을 더 띄워주기 위해 역시 간판이고 선역인 타나하시가 실로 악독하게 다리를 공격해서 관중의 야유와 나카무라에 대한 감정 이입을 이끌어냈으며, 텐잔의 고향 교토에서 열린 후자 흥행 역시 선역이자 고참인 텐잔을 띄워주기 위해 악독하게 다리를 공격해서 관중의 야유와 반사적인 텐잔으로의 환호를 끌어냈다.[34][35]
이렇게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경기력과 해가 가면 갈수록 극상으로 무르익고 있는 경기 운영, 입체감 있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링 싸이콜로지가 합쳐진 결과 2010년대 후반대에는 십수년간 무릎을 혹사시켜온 결과 경기가 끝난 후에는 걷는 것조차 제대로 못할 정도로 무릎 상태가 심각해지며 프로레슬러로서 치명적인 운동 능력의 급감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서술한 요소들을 바탕으로 여전히 명경기를 선보이고 있다.
5.1. 주요 기술
해당 항목 참조.
GIF 파일이 많으므로 모바일 사용시 데이터 주의.
6. 여담
- 타나하시가 태어났을 때 타나하시의 아버지는 원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히데요시"를 거꾸로 해서 "요시히데(吉秀)"라고 이름붙이려고 했으나, 부인의 격렬한 반대로 "히로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본래 '弘' 한 글자 만으로도 히로시라 읽을 수 있지만, 아버지가 안토니오 이노키의 팬이었던지라 이노키의 본명인 "이노키 칸지(猪木寛至)"의 마지막 글자를 이름에 붙여 지금의 이름(弘至)이 되었다.[36]
- 고향인 기후현 바로 아래에 있는 아이치현의 나고야시가 연고지인 주니치 드래곤즈의 골수 팬. 사실 골수 팬인 수준을 넘어서서 고3 여름에 재능 부족[37] 으로 야구선수를 그만둘 때 까지 아예 꿈 자체가 주니치 드래곤즈에 선수로 입단하는 것이였다.
- 야구를 그만둔 이후 하루에 20시간을 공부하는 미친 짓을 벌인 끝에 반년만에 관서 최상급의 명문 대학인 리츠메이칸 대학의 법학부에 심지어 특기 전형도 없이 성적으로 입학하는 믿을 수 없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는데, 입학 후 동아리들의 신입생 권유 때 링을 펼쳐놓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던 프로레슬링 동아리 선배들에게 반해서 당시 65kg의 말라깽이였음에도 자기 소개때 "졸업을 하면 프로레슬러로 데뷔를 할것"이라 말하는 패기를 보였다(...)
- 리츠메이칸대학 프로레슬링 동아리 출신으로, 입문 당시 신일본 현장 감독이었던 초슈 리키가 학생 프로레슬링(프로레슬링 동아리)을 싫어한다라고 공언했기 때문에 학생 프로레슬링 경험자임을 밝히지 않고 있다가 입문 7년 후인 2006년 4월에 도쿄 스포츠 전문지 취재에서 학생 프로레슬링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던 레이저라몬 HG와 대담했을 때[38] 처음으로 자신이 학생 프로레슬링 경험자였음을 밝혔다.[39]
- 최고의 자리에서 십여년을 있었음에도 한결같이 팬 퍼스트를 지향하는 일본 프로레슬링계 전체를 대표하는 팬 친화적 선수인지라 팬서비스가 매우 투철하며 퍼포먼스도 다양하다. 입장할 때는 항상 될 수 있는 한 많은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들어오며, 메인 이벤트 경기에서 승리하면 몇 분이고 에어 기타를 선보인다. 퇴장할 때도 예외는 아니라 타나하시의 굿즈인 수건을 들고 있으면 그 수건으로 몸을 닦고 돌려주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팬인 어린 아이가 있다면 들어올려주기도 한다.[40] 이러한 타나하시의 투철한 팬 서비스가 하나하나 쌓인 결과 그들이 모두 신일본의 확실한 팬으로 자리잡아 신일본이 일본 내 탑 단체를 탈환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 자타가 공인하는 가면라이더 시리즈 덕후. 가면라이더 카부토부터 보기 시작했으며, 가장 좋아하는 가면라이더는 가면라이더 W이라고 한다. 아메토크의 가면라이더 게닌 특집에서는 패널들이 전부 게닌인 가운데 유일하게 레슬러로써 참가해 뜨거운 덕후토크를 펼치기도 했다.
- 상술된 가면라이더 게닌에서 타나하시가 "가면라이더 쿠우가 주역의 오퍼가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거절한 적이 있다"라는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가면라이더 쿠우가의 프로듀서인 타카데라 시게노리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해명한 바로는 사실과는 살짝 달랐다. 본래 토에이 측에서는 수신 선더 라이거, 타이거 마스크와 같이 '작품과 연동해서 실제 링에서 활약하는 레슬러 쿠우가'라는 기획이 진행중이었고, 그 후보 중 한명이 타나하시였던 것. 하지만 이 기획은 신일본 측의 판단으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 그의 가면라이더 사랑은 그의 캐릭터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무토 케이지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서 만든 그의 첫 별명 '100년에 한 번 나오는 일재'는 가면라이더 키바의 주역의 대사에서 따온 것이며, 상술된 에어기타 퍼포먼스도 가면라이더 히비키에서 토도로키가 전투에서 승리하고 나서 즉흥으로 연주한 퍼포먼스를 본따 만든 것. 심지어 그의 상징인 특유의 손 포즈, 즉 '일재 포즈'도 가면라이더 카부토에 대한 오마주라고 공언한 바 있다.[41]
- 타나하시 히로시/경력 문서에 서술되어있듯 배우 하라 히토미와 교제 도중 양다리를 걸친 후 이별 문제로 칼에 찔리는 중상을 입은 적이 있는데, 그 때 새로 생긴 여친의 용서와 극진한 간호 끝에 결혼까지 골인하여 현재도 문제 없이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슬하에 딸 코하루(棚橋呼春, 2003년생)와 아들 시류(2006년 생으로 추정)의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그중 딸 코하루가 주니어 모델로 활동하다 극장판 가면라이더 빌드 Be The One에 출연하며 부녀가 모두 가면라이더 극장판에 출연하였다.
- 공중기를 많이 쓰는 선수들이 무릎이 안 좋은 경우가 많은데, 체형보다 과하게 벌크업한 몸으로 십수년간 전력으로 하이 플라이 플로우를 써온 타나하시도 예외는 아니여서 2019년 레슬킹덤 13에서 케니 오메가와의 경기가 끝나고 에이 기타 도중 제자리 점프를 하다 주저앉은 적조차 있을 정도로 무릎이 절망적으로 망가지고 말았다. 스승인 무토 케이지조차 타나하시보고 무릎 괜찮냐고 걱정을 해서 자기 상태가 그렇게 심각한가 고민하는 멘트를 한 적도 있다[42] .
- 체중이 조금이라도 불어나면 무릎에 부담이 심해지기 때문에 항상 식단 조절을 하고 있으며, 그날 먹은 음식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하는데 고기는 지방을 다 떼고 살코기만, 면은 당질 0짜리만 먹는 등 거의 '고기 먹는 수도승' 수준의 식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 다이너마이트 키드와 숀 마이클스, 커트 앵글을 레슬러로서 롤 모델로 삼는다고 책에서 밝혔다. 신인 시절 자신의 포부를 '일본의 다이너마이트 키드가 되는 것' 이라고 말했는가 하면[43] , 숀 마이클스의 몸을 사리지 않는 경기 방식과 명경기 제조기로서의 능력을 본받고 싶어했고, 커트 앵글과 경기를 가졌을 때를 커리어 사상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커트 앵글이 경기 전 인터뷰에서 '타나하시는 일본의 숀 마이클스다'라고 말했을 때는 죽을만큼 기뻤다고 말했다.
- 잊을 수 없는 일본인 레슬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항상 '미스터 센톤' 히로 사이토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프로레슬링 업계에 있어서 위험한 기술을 쓰지 않고 항상 해오던 무브로 관객들을 열광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도 히로는 특기인 센톤만 선보여도 관중을 한번에 열광시키기 때문이라고.
- 신일본의 미국 진출 방식에 쓴 소리를 한 적이 있다. 미국의 팬들은 신일본다운 것을 원하지 미국화된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다른 국가에 흥행을 할때도 원판 그대로 제공하는게 더 좋다는 예시로 자신이 2002년에 WWE의 일본 흥행을 구경갔을 때를 얘기했는데, 일본인 통역가가 아나운서가 얘기하는 것을 일일히 통역하자 관객들이 야유를 했다는 것. 타나하시는 이를 관중들이 "우리는 진퉁 미국식 레슬링을 보고싶다!" 는 메세지를 보내는 것으로 여겼으며, 미국 팬들도 똑같이 미국화된 신일본이 아니라 진짜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보고 싶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 프로레슬링 평론가 데이브 멜처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레슬러이다. 외국 커뮤니티도 인정하는 멜쳐의 타나하시 사랑 신일본이 10년대에 이르러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고 일본 프로레슬링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 뒤, 타나하시가 신일본의 중심축으로써 꾸준히 좋은 모습과 절정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데서 높은 평가를 받는 듯 한데, 문제는 빠가 까를 만든다고 멜쳐의 경기 평점이 신일본 경기들, 특히 타나하시의 경기에 약간 후한 경향이 있어서[44][45] 멜쳐 별점의 공신력이 흔들리는 수준까지 이르고 있다. 심지어 멜쳐의 아이스 버킷 챌린지 영상에서 멜쳐에게 지목당하며 그 설득력을 더했다(...) 프로레슬링 갤러리에서는 이런 평가에 이런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 자칫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아닌 하시모토 신야의 제로원에서 활동할 뻔했다. 타나하시가 아직 생초짜이던 시절 신일본에서 버림받은 하시모토 신야가 제로원을 만들었는데, 하시모토가 타나하시에게 자신이 만든 단체 한 번 보러 오라고 말했지만 타나하시가 마침 바쁜 일이 있어서 이를 거절했다. 이후 선배들한테 들어보니 당시 신일본 내에서 아무 입지도 없던 타나하시에게 단체를 소개시켜주는 척 하면서 대뜸 계약서 들이밀어 서명하게 해 빼가려는 수작이었다고 한다.
- 애견인으로, '하나'라는 이름의 토이 푸들을 키우고 있다. 타나하시의 인스타 아침 게시글은 50%의 확률로 자신 혹은 아들이 찍은 하나 사진으로 시작한다.
6.1. 각종 매체에서의 출연과 콜라보레이션
- 가면라이더 무한 사랑을 내비친 끝에 2016년 12월에 개봉된 가면라이더 에그제이드 무비대전에 악역으로서 캐스팅되어 출연하였다. # 참고로 작중 역할인 쿠루세 소우지의 직업은 의사인데 덕분에 엄청난 근육질에 금장발인 의사를 볼수 있다.이 남자의 활약상
- 신일본 프로레슬러들이 다수 까메오 출연한 99.9 ~형사 전문 변호사~ 시즌2 마지막화에서 까메오 출연하였다.
- 2018년 9월 개봉한 영화 「パパはわるものチャンピオン」(아빠는 악당 챔피언)[46] 의 주연으로 출연하여, 한 가정의 가장이면서 동시에 악역 자버 가면 프로레슬러 '고키부리맨(바퀴벌레맨)' 으로 활동하며 아들에겐 정체를 숨긴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상영작으로 선정되었고[47] , 미디어캐슬에서 수입하여 2021년에 '시네마캐슬' 기획전으로 상영되었다.
- 테마곡인 LOVE & ENERGY가 태고의 달인 플러스에 수록되었다.
- 철권 7 FR의 캐릭터 라스 알렉산더슨과 콜라보레이션해서 복장을 맞추면 2라운드 승리 or 패배시 입장곡인 LOVE & ENERGY가 나오게 바뀌었고 레이지 아츠도 일재 포즈 이후 슬링블레이드로 바뀐다.
- 용과 같이 극2에 다수의 신일본 프로레슬링 선수들이 출연하는데, 신 클랜 크리에이터에 등장하는 마지마 건설의 직원으로 등장. SR급 공방일체형 캐릭터로 등장한다. 프로필 이미지는 오른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며 일재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검은 양복 모습.